클로저2024-02-29 13:44:47
할 때마다 아픈 이야기지만, 우리는 계속 해야만 한다.
영화 <허스토리>리뷰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은 특별할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방송국에 입사한 뒤, 처음으로 스텝스크롤에 내 이름이 나갔던 순간의 떨림과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의 무게감을 느꼈던 그 때의 마음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해 결과물을 만들어 조연출의 이름을 달고 공중파로 송출 되었던 나의 첫번째 작품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신입인 내가 그 작품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었고, 또 행운이었다. 기획과 섭외가 모두 끝나고 이미 팀이 꾸려져 사전 촬영이 진행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출팀은 모두 남자였는데, 현장에서 할머니들의 생활을 영상에 담고, 그 어려운 이야기들을 인터뷰 할 때, 조금 더 부드럽고 다정하게 이끌어갈 여자PD가 있으면 좋겠다는 선배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여유없이 꽉차게 프로젝트가 돌아가던 터라 지원 나갈 사람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인 내가 참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송의 ㅂ도 모르는 나였지만, 그 때의 나는 할머니께 어떤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마음을 많이 나누기로 했다. 다큐멘터리가 진행되는 동안 촬영이 없는 날에도 매일 안부 전화를 드리고, 살뜰히 살림을 돌보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시다 하면 집에 들렀다. 손녀처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인터뷰는 더 힘이 들었다. 아니, 할머니는 힘을 내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그걸 듣고 있는 게 힘이 들었다. 온 몸의 힘을 다 끌어내 아픈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께, 더 깊게, 더 자세히 물어봐야 하는 내가 미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 스러운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어금니를 꽉 물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할머니와 얼굴과 마주보고 편집을 할 때 마다 울었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처가 나는 마음은 영원히 아물지 못할 것 처럼 아플 것 같은데… 듣기만 해도 괴로운 이 이야기를 이제껏 몇 천번을 해오신 걸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나의 인생을 모두 바치고 계신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어떻게 해야 나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까 고민했던것 같다.
위안부를 다룬 영화는 많다. <낮은 목소리> <귀향> <아이캔스피크> 그리고 <허스토리>까지 다큐멘터리부터,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나는 드라마 타이즈의 영화들까지…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제작 되는 것은 한번이라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라면, 그 때의 나와 같은 고민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할텐데.
영화<허스토리>는 1992년 12월 부터 1998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레 조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가 할머니 7명 총 10명의 할머니들이 원고가 되어 약 6년동안 진행된 재판에 관한 이야기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감한 고백을 바탕으로, 부산 여성 경제인 연합회가 부산 내에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신고센터’를 설립하면서 시작한다. 연합회의 회장이었던 문정숙은 자신의 여행사에 신고센터를 열어 운영하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된다. 특히 자신의 집에서 16년간 함께 햇던 할머니 마저 끔찍한 가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문정숙은“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아온 것이 부끄럽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들을 위해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재판 과정은 험난했다. 할머니의 존재를 알리고 일본 정부를 기소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자 같은 나라의 국민들 마저 할머니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모른다.’ ‘돈 받아 처물라꼬 저런다’며 비난 했다. 변론의 기회를 얻어 할머니들과 함께 도착한 일본에서는 차별적 시선에 상처를 입고, 숙박을 거부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별은 재판에서도 이어져 일본은 아무 이유없이 4년이나 선고를 미루며 무대응 전략을 펼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6년간 일본 재판부와 끈질긴 사투를 벌여 다시 재판을 열게 된다. 할머니들의 증언은 결국 일본 재판부의 양심을 흔들고, 결국 1998년 1심 재판에서 “종국 위안부 제도가 현재도 극복해야할 인권 문제로서 일본국 헌번 13조에서 인정하는 기본적인 권리의 침해임을 인정한다.” 며 정부의 책임을 인정 받는다. 하지만 배상에 대한 명령뿐, 사과는 할 수 없다는 일본 재판부의 말에 원고들은 모두 법정을 박차고 나간다.
영화는 일부 승소 후 끝이 났지만, 안타깝게도 2001년, 2003년 열린 2심 및 3심 재판에서 선고가 뒤집혔고 결국 패소가 확정됐다.일본은 다시 할머니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문정숙’의 실제 인물인 ‘김문숙’은 200년 부산에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설립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니 하나 힘 보탠다고 세상이 바뀌드나?”라고 묻는 사람에게 문정숙은 말한다. “세상은 안 바뀌어도 우리는 바뀌겠지예”라고.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 이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