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025-06-25 23:53:58
그림자에 가려진 모든 이들에게
조던 필 <놉> 2022
그러니까 처음부터 흑인이 있었다.
헤이우드 남매 OJ와 에메랄드는 인류 최초의 활동사진 ‘움직이는 말’ 속 이름 모를 흑인 기수의 후손이다. 이 가족은 할리우드에 말을
공급하며 여전히 영화계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에 의해 아버지가
사망하고, OJ와 에메랄드는 둘이서 사업을 운영하게 된다. 이후
움직이지 않는 구름을 수상하게 여긴 OJ가 UFO로 추정되는, 아버지를 죽인 대상을 발견하고, 둘은 이를 카메라에 담고 오프라윈프리
쇼에 나가 성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헤이우드
남매와 더불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은 아시아계의 아역 배우 출신, 테마파크 소유주 ‘주프’다. 그는 아역 시절
‘고디가 왔다’ 촬영 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았다. 촬영 도중 풍선이 터지는 소리에 흥분한 침팬지 고디가 연기자들을 폭행, 살해했고
홀로 식탁 아래 숨어있던 주프는 기묘하게 서 있는 운동화 한 켤레를 바라본다. 이후 그도 고디에게 들키고
말지만, 왜인지 고디는 주먹 인사를 건네는 듯 보이고 이후 출동한 경찰의 총을 맞고 사살당한다. 성인이 된 그는 더 이상 영화 일을 하지 않고, 테마파크를 만들어
계속해서 당시 상황을 전시하고 있다.
주프는
고디와 마찬가지인 ‘볼거리’였던 시절을 겪었지만, 볼거리를 ‘전시’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가장 먼저 앞서 언급한 UFO, 진
자켓을 발견하고 이가 외계인이라는 걸 눈치챈 사람이다. 그러나 주프가 가진 트라우마는, 또다른 비극을 만든다. 마구간의 재정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OJ는 돈을 모아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말들을 주프에게 팔고 만다. 주프는
OJ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여 말들을 진자켓의 먹이로 쓰고, 새로운
쇼를 선보일 계획을 한다. 그리고 그는 계획과 달리 쇼에서 진자켓의 먹잇감이 되어버린다. 착취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모한 그에게는 끝내 고디의 주먹 인사가 닿을 수 없다.
자본을 쫓는 영화
산업 속에서 개인은 늘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특히, 유색인종, 여성, 성 소수자, 어린이
그리고 동물 들에겐 더 그렇다. 이 작품은 더 큰 스펙타클을 위해 팽개쳐진 이들을 사려 깊게 조명하며
영화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놉>에서 계속 반복 되는 ‘나쁜 기적’은 주프의 끝내 쓰러지지 않은 운동화였고, 아버지를 죽인 외계인을 찍어 성공하고자 하는 남매의 모습이며, 영화
산업 그 자체가 된다.
엔젤이 설치한
디지털 CCTV, 촬영 감독의 필름 카메라로도 담아내지 못한 진자켓을 찍는 데 성공한 건 놀이공원의
사진기였다. OJ도 아닌 에메랄드가 온 힘을 다해 사진기로 진자켓을 담는 이 엔딩은, 나쁜 기적 그 자체인 영화 산업에 대한 저항이며, 이에 뛰어든 모든
소수자들과의 연대이다. 그리고 사실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자조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주프와
에메랄드의 모습은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이 쇼비즈니스라는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촬영에 뛰어든 에메랄드도, 끝내 아역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쇼를 기획한 주프처럼 비극적인 뒷날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 <놉>의 결말이 희망찬 히어로 물로 끝나려면 우린 계속해서 이 이름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스트, 클로버, 고디, 럭키, 그리고 진자켓.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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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 리뷰
"우린 그저 운이 좋았던 거죠. 당신과 나."
꼭 보겠다고 말한 다짐이 무색할 만큼 난 오랫동안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수작이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마이클 레젠더스 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의 연기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내가 차일피일 감상을 미룬 건 영화의 소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기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이 추적한 논란이 바로 가톨릭 아동 성범죄였으므로. 내가 가톨릭 신자인 것은 아니나 선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 종족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결국 고개를 들 만한 이야기는 늘 보는 것이 망설여지기에(그래도 늘 보긴 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영화 제목인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의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 팀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인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마땅한 사건을 추적하겠다는 기자들의 직업정신과 열의가 돋보이는 작명이다. 재미있게도 팀 내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자는 국내에 소개된 포스터 속 문구처럼 '세상을 바꾼 최강의 팀플레이’를 해냈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영상 속에 끊임없이 비쳤음에도 개개인으로 기억에 남진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은 ‘네 기자’가 아니라 네 기자가 포함된 ‘스포트라이트’라는 유기체적 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과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의 대립을 통해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팀플레이일지언정 얼마든지 갈등이 존재할 수 있고,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가 비치는 가톨릭에 대한 회의 등을 통해 기자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지켜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을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설정한 전략은 사건의 피해자/가해자 측에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즉, 작가인 조지 싱어와 감독이자 작가인 톰 매카시는 가톨릭 교구의 아동 성범죄를 추적하기 위해 실화를 극화하면서 단 한 명의 피해자에 매달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피해자 한 명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졌고 교회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끔찍하게 망가뜨렸는지를 전시하거나 소비하지 않은 대신, ‘생존자’라 불리는 피해자들이 모임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얼마나 무심해질 수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한 영화 내에선 집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에게 거듭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한 명의 신부/사제의 일탈처럼 비치지 않도록 사건을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재를 열심히 한들 가톨릭 교회 관계자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이 사과가 몇 알 썩었다고 박스채 버릴 순 없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더더욱. 가장 돌봄이 필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취약한 환경에 처한 어린아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건들 뒤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면모는 죄책감 없는 개인의 범죄적 계산과 그 모두를 눈 감은 무소불위의 권력일 것이다. 피해자가 너무도 많아 병리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는 전문가의 말이 흘러나오는 세상 이건만 한편으론 천상에서 지상으로 걸음 한 신의 말씀을 경건하게 받아들인 양 설교하는 종교적 지도자인양 행세하면서도 무수한 개인을 짓밟은 범죄자는 권위에 보호받으며 그저 교구를 옮겨다니기만 하였다. 이렇듯 영화는 스포트라이트팀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이 사건의 뒤엔 얼마나 많은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었으며 스포트라이트팀이 받은 퓰리처상에 대한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시사 고발 영화는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다. 지나간 일을 다시금 들추고자 할 뿐이었다면 기자들의 회고록을 찍거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되는 일 아닌가. 존재했던 진실을 서사적으로 엮어 내면서도 전달해야만 하는 메시지를 러닝타임 내에 예술의 이름으로 삽입하여 시민의 성찰과 각성을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고발 영화의 미덕이지 않을까. 모든 시사 고발 영화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따르며 관객을 소외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히 부당한 억압에 따라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단순히 상업 영화라는 미명 하에 왜곡시키고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흥미만을 좇아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결국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무너진 사회 정의를 조명하는 고발 영화에 조금의 윤리의식도 기대할 수 없거나,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사건을 단순한 감정의 배설구로 사용하는 것은 적지 않은 모순일 테다. 이런 점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언론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무감각한 사회로 인해 비극이 심화된 사건의 본질을 해치지 않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실화를 각색하였다. 또한 영화 내 등장하는 변호사 미첼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의 대사, "이건 명심하세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까지 하니, 훌륭한 시사 고발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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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신작을 보고 싶은데 아는 지식이 1도 없을 때
이번 주 수요일, 그러니까 12월 15일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개봉날이다! 개봉 전부터 다른 두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 토비 맥과이어의 등장 여부와 빌런 '닥터 옥토퍼스' '그린 고블린' '샌드맨'등 다른 시리즈의 주연들이 출연한다는 루머가 들려왔다. 또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로키>와 <완다비전>의 연계까지 이런저런 특징으로 인해 다른 작품 -<이터널스> / <블랙 위도우> / <샹치 : 텐 링즈의 전설> -보다 더 MCU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즉슨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알아야 할 정보가 있다는 뜻도 되겠지? 근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작품을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정보도 있으니, 여러분이 수요일 개봉 이전에 가볍게 읽고 나서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오늘도 허접한 나의 글솜씨를 읽어주는 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1. 현재까지 나왔던 스파이더맨 시리즈들
스파이더맨 1(2002) / 스파이더맨 2(2004) / 스파이더맨 3(2007)
감독 : 샘 레이미
주연 : 토비 맥과이어(스파이더맨/피터 파커 역), 커스틴 던스트, 알프레드 몰리나, 윌렘 더포, 토머스 헤이든 처치, J,K 시몬스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이다. 감독은 영화 장인 샘 레이미가 맡았다. 1985년 마블이 소니에게 스파이더맨 영화 실사화 판권을 판매한 것이 계기가 되어 두 회사가 합작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1조 원이 넘는 초대박의 흥행 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에 히어로 영화의 금자탑을 쌓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이 있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스파이더맨 역은 토비 맥과이어가, 히로인 MJ 역은 커스틴 던스트가 맡았다. 이 당시 출연했던 악당은 후술 할 '닥터 옥토비우스(알프레드 몰리나'와 '그린 고블린(윌렘 더포)'가 있는데, 전자는 연구에 충실하다 자연스레 흑화한 캐릭터를 그렸다면 후자는 이중인격에서 오는 괴리를 묘사했다. 이 둘의 악당 묘사가 후의 마블 팬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또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봤다면 기억이 날 'J. 조나 제임슨(이하 JJJ)' 캐릭터도 있는데 이는 이 트릴로지의 피터 파커가 언론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다른 악당은 3편에 등장한 샌드맨이 있다. 탈옥자 신분에서 수사망을 피해 도망치다 실험실에 들어가게 되고 이는 샌드맨으로의 흑화 계기가 된다. 후에 피터 파커와 굉장히 중요한 인연이었다는 게 알려지며 '베놈'과 함께 <스파이더맨 3>의 주요 악당이 된다. 이외에 이후에 해리 오스먼이 연기한 '뉴 고블린'과 '샌드맨', 베놈이 되는 '에디 브룩'도 출연했지만 우리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을 보기 위해 이 글을 읽는 것이니 인물 소개에 있어서는 예고편에 나온 사람들만 소개하면 되겠지? 인물 외적인 부분에서는 전설적인 거꾸로 키스신이나 '스파이더맨 3'에서의 춤추는 장면, 또 '스파이더맨 2'에서의 지하철 사고를 막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현재 왓챠/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멋지고 잘생긴 히어로가 아닌 상 찌질이 영웅을 그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시리즈의 '닥터 옥토비우스/그린 고블린/ 샌드맨'은 출연이 확정되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4)
감독 : 마크 웹
출연 : 앤드류 가필드(스파이더맨/피터 파커 역), 제이미 폭스, 리스 이판, 엠마 스톤
2012년 리부트 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이다. 감독은 <500일의 썸머>의 마크 웹. 역시나 마블과 소니가 협업해 만들어진 시리즈이다. 호쾌한 액션과 시각디자인 비주얼로 좋은 피드백을 들었던 영화다. 또한 입담꾼인 피터 파커를 그렸다는 점에서 역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 만듦새가 주요 단점으로 지적받았다고 한다. 또한 흔히 스파이더맨 하면 토비 맥과이어가 보여주는 짠내 나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 당시의 앤드류 가필드는 미소년 타입에 친구 많게 생긴 인싸니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고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또 삼촌 밴 파커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 (이게 나중에 찾아보니까 원조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도 나왔다는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핵심 키워드를 전해주는 연출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이걸 디테일하게 적으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다 말해줄 순 없지만 그웬 스테이시 역을 맡은 엠마 스톤의 '그 한 장면'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빌런으로는 일렉트로와 리저드가 있다. 전자의 본명은 '막스웰 딜런'인데, 그는 소심한 아웃사이더였으나 특별한 계기를 통해 일렉트로가 된다. 스파이더맨이 전했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의 친구가 된 줄 알았지만 결국 무관심했단 걸 깨닫고 나서 악당이 되는 인물이다. 다른 빌런 리저드는 피터의 아버지 리처드 파커의 친구였다. 그와 같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던 과학자였으나 혈청 실험을 계기로 악당이 되어버린 인물이다. 이 두 악당은 이 작품 <노 웨이 홈>에 출연이 확정됐다. 역시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아, 이 시리즈의 3편은 제작 취소된 듯.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2016) / <스파이더맨 : 홈커밍>(2017) /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2018) / <어벤져스 : 엔드게임 >(2019) /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2019) /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2021)
감독 : 루소 형제(<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 엔드게임>)
존 왓츠(<스파이더맨 : 홈커밍>,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출연 : 톰 홀랜드(스파이더맨 / 피터 파커 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젠데이아, 배네딕트 컴버배치, 제이콥 배들런, 존 패브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이다. 소니와 마블의 판권 분쟁에서 다시 마블이 어느 정도 판권을 가졌다는 뜻에서 솔로 무비 1편의 제목을 <홈커밍>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첫 등장이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아니었는데, 이 캐릭터의 첫 출연은 캡틴 아메리카의 솔로 무비 <시빌 워>였다. 두 편으로 나뉜 어벤저스 내전을 함께 치르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캡틴 아메리카와 전투를 벌이지만 스티브의 노련한 경험 덕인지 그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이 <시빌 워> 초반부터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함께 등장했고, 이후에 제작된 솔로 무비 <홈커밍>에서도 그 둘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아이언맨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에서도 둘은 유사 부자 관계로 인연을 이어간다. 이 뿐일까?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서도 토니 스타크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오니 마블 팬들의 비판도 합리적인 셈이다. 물론 비판만 있지는 않다. 톡톡 튀는 하이틴 무비로서의 정체성이나 다른 히어로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 시리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뭔가 나사가 빠진 피터 파커의 성격 역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히어로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강한 캐릭터라기보다는 정신적으로 함께 성숙해진다는 것 역시 나름 신선한 접근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재 이 MCU 스파이더맨의 제작자 에이미 파스칼에 의해 이 작품 이후의 3부작 제작이 확정되었다.
2. 출연이 확정된 인물들
닥터 옥토비우스(출연 : 스파이더맨 2 / 담당 배우 : 알프레드 몰리나)
<스파이더맨 2>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서 본인의 핵융합 실험물을 과신하다 만들어진 사고로 악당이 된다. 이 악당이 되는 과정에서 아내 로지도 죽고, 끔찍한 괴물로 변모했으니 삶의 목적이 날아간 셈이다. 외진 골목에서 자살하고 싶었지만 등 뒤에 붙은 기계 덕에 그마저도 실패하고 움직이는 살인 병기가 된다. 목 뒤에 붙은 칩이 악당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도구인데, 이 칩은 그의 머리에서 사고방식을 좌지우지함과 동시에 초인적인 힘을 갖게 해 준다. 전투를 할 때 뒤의 촉수 비슷한 것을 이용해 싸운다. <노 웨이 홈>의 예고편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스파이더맨과 싸우다 '괴물로 죽지 않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이 작품에서 출연이 확정됐다. 아마 종반부의 결정 이전에 차원 문이 열려 MCU의 세계관에 합류하게 된 듯.
그린 고블린(출연 : 스파이더맨 1 / 담당 배우 : 윌럼 더포)
<스파이더맨 1>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선 임상실험에서의 부작용으로 인해 그린 고블린으로 흑화 하는 캐릭터다. 위의 닥터 옥토퍼스가 후에 갱생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파이더맨의 목숨을 노리려고 한다. 피터의 사실상의 아버지 역할을 했지만 그마저도 주인공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병약한 비주얼 탓에 근력이 약해 보이지만 그런 것 없다. 맨몸액션에도 강하다. 또 호박 폭탄이나 글라이더를 타고 다녀 현대 과학에도 능통한 악당이 된 셈이다. 닥터 옥토비우스와 마찬가지로 최후를 맞기 전에 차원문이 열려 MCU에 합류한 듯.
샌드맨(출연 : 스파이더맨 3/ 담당 배우 : 토머스 헤이든 처치)
<스파이더맨 3>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엔 탈옥수의 처지에서 도망가다 실험실에 들어가 뭐가 잘못되는 바람에 샌드맨이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른 두 빌런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악당인데, 이후에 그가 어떻게 됐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모래로 변하고 커지고 작아지고 하는 것이 주 신체적인 특징이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특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뭐 그러는 듯. 사진에서 왼쪽이다.
리저드(출연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 담당 배우 : 리스 이 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선 팔 한쪽이 불편한 캐릭터로 나온다. 원래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그러니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연구에 투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앞선의 압박 때문에 연구하던 혈청을 자기 몸에 투여하게 되고, 팔이 다시 생김과 동시에 괴물처럼 변했다. 일렉트로가 전기를 활용하고 그린 고블린이 폭탄을 터트리는 것과 별개로 이 악당은 오로지 맨몸액션을 벌이는데, 그 힘이 어마 장장하게 강해 스파이더맨이 고전하기도 한다. 일렉트로와 다르게 이 작품의 종반부에 감옥에 갇히게 된다. 사진에서 오른쪽이다.
일렉트로(출연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 담당 배우 : 제이미 폭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 출연했다. 원래 출연했던 작품에선 존재감 0의 아웃사이더 캐릭터로 나온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조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근을 하다 전기뱀장어에가 가득 찬 수조에 빠지게 되고 악당으로 변신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는 소심이 캐릭터지만 기적적으로 부활하며 스파이더맨을 고전시키는 악당이었다. 전기라는 소재를 활용해 발전소만 가면 강해진다던가 파란 신체를 가지고 있다던가 하는 점이 이 인물을 가로지르는 특장점이 될 것이다. 역시 영화 후반부에 사망하는 캐릭터지만 MCU에 합류했다. <노 웨이 홈>에서는 아이언맨의 아크 리액터를 가지고 있는 장면이 나왔는데, 전기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 인물의 힘을 업그레이드시킨 매개체가 된 듯.
닥터 스트레인지(출연 :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 / 담당 배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어벤저스 시리즈를 다 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캐릭터 별개의 솔로 무비도 있고 내년 2월에 차기작이 있으니 아마 <노 웨이 홈>을 아는 팬들이라면 이 작품 역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계관 내에서 굉장히 강력한 마법사로 통한다. 멀티버스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도 충분하고 타노스와의 일전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점에서 무력만큼이나 지적 능력도 강한 편. 담당 배우 배네딕트 컴버배치가 이 분야 전문가라 그런지 살짝 사회성이 떨어지는 천재 캐릭터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많이 나아진 듯. '생텀'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다. 또 스파이더맨 2편에서 '스티브 스트레인지'라는 이름이 언급됐는데 이 인물에 대한 이스터에그라는 설이 다분하다.
해피 호건(출연 : 아이언맨 시리즈 / 담당 배우 : 존 패브로)
역시 아이언맨 시리즈를 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아이언맨의 경호원'이라는 역설적인 캐릭터를 아주 잘 소화한 인물이다. 토니의 친구로서, 또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 캐릭터로서 아주 탁월하게 MCU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후 토니 스타크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어떤 식으로 이 세계관에 존재할 수 있을지 궁금해할 팬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J. 조나 제임슨(출연 : 스파이더맨 1, 2, 3 / 담당 배우 : J. K 시몬스)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피터 파커는 언론인으로 나온다. 이 JJJ 편집장은 이 데일리 뷰 글의 편집장이라 피터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물인 셈. 이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트릴로지에서 주인공을 못살게 괴롭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미워할 순 없다. 웃음을 전해주는 역할도 하니 씬 스틸러의 교과서라고도 볼 수 있을 듯.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스탠 리가 이 JJJ 캐릭터에 대해 '내가 연기해도 그것만큼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극찬한 바 있다.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의 쿠키에 잠깐 등장했고, 이 <파 프롬 홈>에서도 출연이 확정되었다.
데어데블(출연 : 마블 드라마 데어데블 시리즈 / 담당 배우 : 찰리 콕스)
시각장애인 히어로. 넷플릭스에 있는 데어데블 시리즈의 주연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히어로지만 감각이 초극한으로 발달해 사실상 눈을 뜬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신체능력을 보여준다. 본업이 변호사라는 점에 있어 피터가 미스테리오 살인 사건을 잘 넘어가게 되는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MCU 팬들에게 인기도 많고 캐릭터도 좋은 편. 세계관 합류가 확정되었다.
3. 그 외에 알아야 할 사실들 : 멀티버스
멀티버스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로키>에서 언급되는데, 이 드라마 후반부에 나오는 '계속 남아있는 자'는 다방면의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역시 이 시간을 관리한 덕에 멀티버스가 있고 다른 차원의 자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근데 이 능력을 좋은 쪽으로만 쓰지 않았다.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고 있던 이 인물은 다른 차원의 자기 자신과 지식을 공유하며, 이 개념을 통해 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시간선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멀티버스를 관리하는 '계속 남아있는 자'. 이 <로키>의 후반부에서 로키와 실비에게 '나를 죽이면 또 다른 멀티버스 전쟁이 일어난다'라고 말하지만 실비에 의해 죽게 된다. 이 인물이 이렇게 죽음으로서 인해 진짜 멀티버스가 열리게 되고 이후의 MCU에 큰 영향이 간 듯. 이 드라마 안에서 실비가 겪었던 개인적인 고생이 이 인물 탓이었다는 점이나 애 먼 사람들을 평행세계로 끌고 와 혹사시킨 것, 또 앞에서 언급했던 멀티버스 워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악의 축으로 평가받는다. 사실상 인피니티 사가 이후의 MCU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의 멀티버스 이슈가 정말 예고편에 나온 대로 피터의 쫑알거림이 원인이 된지는 모르나, 이 <로키>에서의 멀티버스가 열리게 된 이유가 된 것인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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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한 밤, 다섯 대의 택시에서 벌어진 일
8★/10★
다섯 개의 도시 그리고 다섯 대의 택시. 야심한 밤, 각 택시에서는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 영화 속 기묘한 사건들은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풍자적인 웃음을 자아낸다.
먼저 로스앤젤레스. 거친 느낌을 지닌 소녀 배우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는 캐스팅 디렉터가 택시를 탄다. 캐스팅 문제로 여기저기 통화하며 골머리를 썩는 중, 내내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택시 기사가 보인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녀는 제작자가 애타게 찾던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다. 캐스팅 디렉터는 드디어 적임자를 찾았단 안도감에 기사에게 캐스팅을 제안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은 정비공이 되는 게 꿈이라며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 할리우드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대신 정비공의 꿈을 추구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택시 기사에게는 일확천금의 기회보다 자신의 꿈을 성실히 좇는 게 더 중요하다.
다음은 뉴욕이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애태우다 간신히 탑승한 택시 기사가 어딘가 이상하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심지어 운전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손님과 기사가 자리를 바꿔 목적지로 향한다. 승객은 동독에서 서커스 단원으로 일했다는 기사에게 친근감을 표하면서도 그를 다소 우습게 보는 듯한 기색도 보인다. 그러나 정작 마지막에 편안한 웃음을 짓는 건 영어도,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뉴욕의 택시 기사다. 때로는 내면의 단단함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매너가 엉망인 손님들을 태운 후 기분이 상한 상태인 파리의 택시 기사. 그의 택시에 시각장애인 여성이 탑승한다. 기사는 무지가 깃든 호기심으로 승객에게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를 구체적으로 캐묻는다. 여자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대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의연하게 대답한다. 택시 기사는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에게 시각장애인은 무언가를 ‘결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팡이에 의지해 안전하게 목적지로 걸어가는 그녀와 달리, 택시는 그녀를 내려준 후 곧바로 사고가 난다. 이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네 번째 이야기는 장난스러운 수다쟁이가 주인공인데, 그는 로마에서 택시를 운전한다. 심심하던 차에 때마침 신부가 택시에 오른다. 택시 기사는 다짜고짜 고해성사를 하겠다며 자신이 호박에 자위한 일, 양과 수간했던 일, 동생의 아내와 부정한 일을 저질렀던 일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기사가 자기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끝없이 수다를 떠는 동안, 뒷자리의 신부는 약을 제때 먹지 못해 숨을 헐떡이다 이내 사망하고 만다. 수다스러운 택시 기사의 방정맞은 고해성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신부. 보편적‧도덕적 권위의 담지자인 신부가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우습다.
마지막 택시는 헬싱키에 있다. 만취한 친구를 포함한 세 명의 남자가 택시에 탄다. 그들은 술에 뻗은 친구에게 아주 딱한 일이 있었다며 기사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차가 망가지고,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딸이 임신하고,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아 술을 진탕 들이켠 후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기사가 그 정도면 감당할 만한 슬픔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승객들은 딸을 먼저 떠나보낸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먹이고, 그의 고통과 자신의 현재를 견준 후 큰 위안을 얻는다. 정작 가장 큰 위로가 필요했던 남자는 내내 뻗어 있느라 아무 위로도 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가장 필요한 이에게 가 닿지 못하는, 가장 필요한 이가 소외당하는 위로와 연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영화 도입부에서 톰 웨이츠가 걸걸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Back in the good old world〉)의 가사처럼, 우리 삶은 기껏해야 무덤 위 꽃다발밖에 남기지 못한다. 덧없는 허무함으로 점철된 삶에도 기억할 만한 순간이 있다면, 아이러니와 따뜻함을 동시에 품어 엷은 미소를 자아내는 사건들, 즉 영화 〈지상의 밤〉이 보여주는 장면을 닮았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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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결투'가 아닌 '반복되는 미투'에 관한 이야기
14세기 말. 프랑스 노르망디의 기사였던 장 드 카루주의 영지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카루주의 부인 마르그리트였고, 가해자는 한때 카루주의 동료였던 자크 르그리였다. 사건의 진실과 정의를 판별하는 과정에서 카루주는 결투 재판을 신청했고, 파리 고등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카루주와 르그리의 결투 재판은 세간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중세 말기는 각각 신을 시험하는 행위, 왕의 사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이유로 교황과 왕 모두 결투 재판을 꺼려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실제로, 이 결투는 파리 고등법원이 허가한 역사상 마지막 결투 재판이었다). 요컨대, 카루주와 르그리의 결투는 시대의 황혼기에 벌어진 최후의 이벤트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이 지금까지도 논쟁적으로 회자되는지를 설명할 순 없다. 결투는 르그리의 패배로 끝났는데, 그의 후손은 결투 후 “5세기가 지난 뒤에도 … 이 결투의 결과가 오심이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르그리의 후손뿐만 아니라 수많은 역사가와 전기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시빗거리로 삼은 건 늘 강간 피해자인 마르그리트 진술의 신빙성이었다.*
영화 〈라스트 듀얼〉의 동명 원작 소설을 쓴 영문학자 에릭 제거는 마르그리트 진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데 동원된 여러 음모론적 상상력의 일부를 책에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탐욕, 질투, 배신 등 ‘사악한 여성’이 가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수많은 악덕이 수 세기 동안 반복적으로 소환되어 마르그리트 진술의 신빙성을 심문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은 거의 언제나 르그리가 마르그리트의 '무고'로 억울하게 희생당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결투를 앞둔 르그리(아담 드라이버)와 카루주(맷 데이먼). 〈라스트 듀얼〉스틸컷.
이런 주장에 맞서, 소설과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마르그리트가 진실을 말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먼저 살펴 볼 것은 소설이다. 소설은 촘촘한 역사적 고증으로 그날의 진실에 접근한다. 에릭 제거는 수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사건이 벌어진 시공간과 역사적 상황·맥락을 입체적으로 재현했고, 사료에 공백이 생길 때면 집요할 정도로 성실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며 빈 곳을 채웠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 중세의 풍경과 사람들의 멘탈리티가 그려질 정도다.
한편, 영화는 자세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카루주, 르그리, 마르그리트 세 인물의 관점을 순차로 배치하여 진실을 조망한다. 첫째는 카루주의 입장이다. 그는 명문가 출신이며 용맹하고 과격한 성격으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명예를 갖춘 종기사다. 그런데 함께 전장을 누빈 르그리가 피에르 백작의 눈에 든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르그리가 승승장구할수록 카루주의 입지는 좁아진다. 결국 카루주는 르그리와 피에르 백작이 합심하여 자신을 배척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피에르 백작(벤 애플렉), 르그리와 대립하는 카루주. 〈라스트 듀얼〉스틸컷.
특히 토지를 둘러싼 몇 번의 소송이 결정적이었다. 카루주는 마리그리트의 결혼 지참금이었던 오누르포콩 영지가 자신이 아닌 르그리에게 배분된 점, 벨렘의 성주였던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지 못하게 된 점 등에 불만을 품었고, 자신의 상급자를 법원에 고소했다. 일련의 소송들은 주군과 봉신 사이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고, 카루주와 르그리‧피에르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졌다.
카루주에게 있어서, 르그리의 마르그리트 강간은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결정적 일격이었다. 토지, 명예, 권력 등을 르그리에게 점진적으로 빼앗겨 온 카루주는 강간 사건을 자신의 명예와 남성성에 대한 최후의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르그리와의 사법 결투는 아내를 위한 복수, 즉 정의의 실현이 아닌 자신의 위신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둘째는 르그리의 관점이다. 남다른 여성 편력을 가졌던 그는 마르그리트가 성에 혼자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소설에서는 그가 마르그리트와 육체적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르그리가 마르그리트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르그리가 이를 강간이 아닌 ‘사랑’, 즉 합의에 의한 관계로 이야기한다는 점이 다르다. 르그리는 마르그리트가 사랑이 깃든 육체적 욕망 충족의 상호성을 부정함에 분노한다. 자신과 마르그리트의 ‘사랑’이 그녀의 변덕과 카루주의 비틀린 열등감으로 인해 시끄러운 사건으로 이어졌을 뿐이라며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종기사인 동시에 성직자였기에 결투가 허용되지 않는 교회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카루주처럼 자신의 명예(강간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입증함으로써 획득되는)를 위해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다.
마르그리트(조디 코머). 〈라스트 듀얼〉스틸컷.
세 번째는 두 남자에 의해 이중으로 억눌린 마르그리트의 관점이다. 남편인 카루주는 자기 소유물(아내)을 르그리가 탐했음에 분노하고, 르그리는 자신의 '사랑'이 모욕당하고 명예가 훼손되었음에 분노한다. 정작 강간을 당한 마르그리트는 두 남자의 분노에 치여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마르그리트가 ‘말할 수 없었음’은 당시의 법제도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중세 프랑스의 경우,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피해 여성은 범인을 고소할 수조차 없었다.” 마르그리트가 강간을 범죄로 고발하려면, 자신의 ‘물건(마르그리트)’을 라이벌이 마음대로 ‘사용(강간)’했음에 분노하는 카루주의 법적 권리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황당한 건, 만약 결투에서 카루주가 패배할 경우 마르그리트 역시 르그리에 대한 무고죄로 화형에 처해진다는 점이었다. 결투 재판이 대중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이벤트의 성격을 지녔다고는 해도 이는 엄연히 재판의 연장이었다. 결투 재판이 정의를 판별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었던 건 왕을 비롯해 성직자, 법관, 당대의 민중들이 결투의 승패에 하나님의 판결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죄 없는 자를 결투에 패배시킬 리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카루주가 패배하여 마르그리트가 화형에 처해진다면, 강간 사건 역시 없었던 일이 된다는 게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이 모든 상황들은 마르그리트가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강간 피해를 증언했는지를 짐작케 해 준다. 수많은 조롱과 불신 속에서도,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겪은 일을 반복적으로 분명하게 증언했다. 에릭 제거는 “그녀가 프랑스의 최고법원까지 가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진술이 사실임을 의연하고, 거듭해서 맹세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간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마르그리트 증언이 믿을 만하다고 단언한다.
르그리의 변호사 르코크가 남긴 기록이 말하듯, “사건의 진상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실제로 그런 범죄 행위가 일어났다는 주장을 단 한 번도 꺾지 않았다.” 즉, 여러 전문가들이 “거의 시작부터 이 유명한 사건 주위에 꼬이기 시작한 신화와 오류”를 반복적으로 짜깁기하여 거짓을 유포하는 동안, 마르그리트만이 일관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불행한 건, 에릭 제거가 비관적으로 예상하듯, “수상쩍은 전설이 앞으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리라는 점”이다. 진실을 일관되게 말하는 여자의 말보다 '명예'를 주장하는 남자의 말, 소문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전문가'의 말이 더 큰 권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마르그리트 이후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무수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라스트 듀얼〉은 마지막 결투 재판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너무도 불운한 역사적 반복에 관한 이야기다.
*에릭 제거는 “이런 황당무계한 전설들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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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높은 영상 속 질낮은 이야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건 어떤 것일까. 살기 위한 의지가 사그라든 상황에서도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아마도 가족은 다시 살아야 할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다시 직접 만나서 서로를 안고 보듬으면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생각은 의지를 주기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맡은 일이 국가적으로 기대가 있었던 일이라면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더 힘을 쓰게 된다. 여러 동료를 잃은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목표점에 근접한 남은 인물은 끝까지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더 문>은 한국 최초로 달 탐사를 하기 위해 우주로 향하는 우리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호에는 3명의 대원이 타고 있었지만 태양풍으로 인한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황선우 대원(도경수)만 살아남는다. 그를 구하기 위해 5년 전 첫 번째로 탐사선을 만들었던 김재국 센터장(설경구)이 다시 우주센터로 돌아와 도움을 주게 된다. 김재국 센터장은 5년 전 달탐사를 위해 나래호를 발사시켰다가 폭발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우리호는 나래호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탐사선을 잘 알고 있는 김재국 센터장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국 최초 달 탐사선인 우리호에 닥친 재난
다른 대원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기체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달탐사를 강행하겠다고 결정한 황선우 대원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해 결국 달에 도착한다. 사실 황선우 대원은 우리호에 탄 3명의 대원 중 가장 우주 비행에 대한 지식과 능력이 떨어진다. 3명 중 가장 초보자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탐사선에 남아 관제센터와 협력을 하고 그것을 통해 달에 결국 도달하는 과정이 영화에서 꽤나 긴장감 있게 담겨있다. <더 문>에서 보여지는 모든 과정은 그 황선우 대원의 의지 때문에 만들어진다.
영화는 황대원이 반복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보여주는 가운데 우주적인 재난인 유성우를 등장시켜 큰 위기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황대원의 의지와 김재국 센터장의 원격 지원으로 많은 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더 문>의 내용을 이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주 재난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이 영화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는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모두가 예상 가능한 따뜻한 결말로 달려간다.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건, 할리우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어진 CG다. 달의 상공과 달 지면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어색하지 않고 영화에 몰입감을 더해준다. 유성우가 떨어져 지면이 폭발하는 장면들과 그것을 피해 움직이는 탐사선의 모습들이 꽤 실감 나게 담겨있다. 그 장면에 과학적인 오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어색함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능하면 극장에서 직접 질 높은 영상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훌륭한 우주 장면과 CG
이런 영상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각 장면들의 신선함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달탐사선의 고장으로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탐사선 외부로 나가있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그래비티>를 떠올리게 하고, 달에 혼자 살아남은 대원을 무사히 귀환시키는 이야기에서는 <마션>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달에서 유성우를 피해 차량으로 질주하는 모습은 <애드 아스트라>의 달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이미 선보였던 여러 설정과 장면들을 참고하여 장면을 구성했다는 기시감이 많이 든다. 그러니까 화면의 질은 우수하지만 신선함은 떨어진다.
이야기의 전개도 아쉽다. 황대원이 달에 도착해서 유성우를 만나게 되어 큰 위기가 발생하는데 중반부터 시작된 유성우가 끝까지 쏟아진다. 또한 그렇게 많은 유성우가 쏟아지는데 탐사선과 황대원에게는 쏟아지지 않는 시간이 꽤 길어 의아함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리고 미국 나사에서 한국을 공식적으로 돕지 못한다는 설정인데, 영화의 말미 나사 디렉터인 윤문영(김희애)의 신파적인 연설로 윗선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구조작전도 이해할 수 없게 느껴진다. 영화 곳곳에 포함된 신파 코드 역시 SF 영화로서의 매력을 많이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아쉬운 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이다. 혼자 남은 대원을 살리기 위해 투입되는 김재국 센터장은 과거에 일했던 사람이고 탐사선의 구조나 기능을 잘 안다. 하지만 그가 현재 우주센터에서 어떤 지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현재의 센터장을 무시하고 헤드셋을 빼앗아 황대원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직원들에게 일을 지시한다. 그의 지시에 따라 센터의 인물들이 업무를 진행하는 것 또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달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황선우 대원의 아버지는 과거 김재국 센터장과 같이 나래호 발사 준비와 진행을 했던 인물이다. 그 당시 나래호의 실패로 3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것으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그 당시 책임자였던 김재국 센터장 역시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김센터장은 황선우 대원을 구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황대원은 김센터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에 황대원의 아버지의 편지와 김센터장의 고백을 보여주며 황대원이 마음의 변화를 하게 만들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니까 초반에 가졌던 김센터장에 대한 증오가 아버지의 편지 이후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고, 김센터장의 고백 이후 김센터장을 용서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글로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이 둘 간의 감정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이야기와 캐릭터
이 주 인물의 주변에 있는 인물도 아쉽다. 이야기 내내 센터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조한철) 캐릭터는 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는 리액션을 많이 보여준다. 장관으로서 책임을 보여주거나 나쁜 역할을 맡아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그저 놀라고 무서워하는 과한 리액션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김센터장과 같이 일하고 있는 한별(홍승희)의 존재도 물음표를 만든다. 한별은 위기의 상황에 꽤 좋은 아이디어를 전달하지만 그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를 거의 설명하지 않으면서 기능적으로만 활용시키도 만다.
영화 <더 문>이 한국에서 제작한 SF영화로서는 적지 않은 예산으로 좋은 화면의 영화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상만큼 성공적이지 못하다. 인물들의 감정은 과잉이 된 듯 신파를 유발하고 각 인물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관계를 설정해 가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영상이 주는 재미는 있지만 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달에서 벌어지는 탈출 장면은 긴장감 있게 보게 되지만 지구에서의 모습에서는 흥미가 떨어진다. 이야기와 캐릭터만 놓고 보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본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은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더 문>에서 그의 장기가 유기적으로 잘 발휘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관객이 캐릭터에 대해서 공감하기 어렵다 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신파 부분에서도 하품이 날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는 좋은 영상을 보여주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아쉽다. 설경구, 도경수, 김희애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하지 못하게 구성된 이야기가 배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지 못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더 문>은 극장에서 보기 최적화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달에 남은 대원의 의지가 발휘되면서 벌어지는 탈출 장면은 훌륭하고 깔끔한 그래픽으로 만들어져 있고 스케일도 크기 때문에 작은 화면보다는 큰 화면에서 보는 것이 좋다. 이야기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만든 SF영화가 만들어낸 우주 장면이 궁금한 관객들에게는 극장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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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을 전설로 내버려둬야 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 대학 교수 정년 퇴임을 앞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이 전설적인 모험가는 아들을 잃고 아내와 이별한 채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수였던 '바질 쇼'(토비 존스)의 딸이자 자기 대녀인 ‘헬레나’(피비 윌러-브리지)가 존스 앞에 나타난다.
불쑥 찾아와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에 대해 캐묻는 헬레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던 존스. 심지어 나치 출신 물리학자이자 오랜 숙적 '위르겐 폴러'(매즈 미켈슨)의 부하들까지 자기와 헬레나를 습격하자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챈다. 이에 인디아나 존스는 마침내 중절모와 채찍을 챙겨 들고 새로운 모험에 뛰어든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이자 4편 이후 15년 만의 속편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하 <인디아나 존스 5>). 그간 시리즈를 책임진 스티븐 스필버그 대신 제임스 맨골드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역으로 복귀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는 공식이 있다. 귀중한 유물을 쫓는 액션으로 가득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카메라는 일상에 복귀한 존스를 비춘다. 그는 이내 새로운 유물을 쫓아 집을 나서지만, 고난으로 가득한 모험 끝에 악역에게 유물을 내준다. 하지만 유물에 깃든 신비한 힘 덕분에 존스는 언제나 해피 엔딩을 맛본다.
시리즈의 최종장을 장식하는 <인디아나 존스 5> 역시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발전한 기술력 덕분에 비주얼은 화려해졌지만 내용은 예전 시리즈와 비슷하다. 이는 할리우드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최신 기술로 과거의 프랜차이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획이 유행이기 때문.
익숙한 이야기로 향수를 자극하는 기획은 사실 양날의 검이다. <탑건: 메버릭>처럼 올드팬과 새로운 관객을 모두 사로잡을 수도 있지만,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처럼 모두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인디아나 존스 5>는 후자다. 디즈니 & 루카스필름 조합의 선배인 <스타워즈>의 전철을 따라간다.
과거에 사로잡힌 고고학자의 은퇴
과거의 전설을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왔기 때문일까? <인디아나 존스 5>는 유달리 과거에 대한 고찰로 가득하다. 영화의 핵심 소재인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만 해도 그렇다. 존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은 시간의 틈을 발견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시선도 과거에 고정돼 있다. 영화의 시점은 1969년이다. 온 세상이 달 착륙에 대해 떠들고, 도심에서는 우주 비행사 퍼레이드가 열린다. 하지만 존스는 고고학자답게 과거만 들여다본다. 그는 강의에서 달착륙 대신 아르키메데스가 시라쿠사를 공격하는 로마군을 격퇴한 방법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사이가 안 좋아진 아들은 다툼 끝에 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했다. 이 때문에 존스는 아내 마리온과도 갈라섰다. 그래서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들에게 입대하지 말라고 간청하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싶으니까.
제임스 맨골드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를 떠나보내고, 인간 인디아나 존스의 이야기를 살리기로 결정한 듯 보인다. <로건> 속 울버린의 은퇴와 비슷하다. 히어로의 소명을 다하고 로건으로서 퇴장한 울버린처럼 인디아나 존스도 마무리를 준비한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지켜내며 고고학자로서 소임을 다한다. 마지막 모험을 통해 학자로서의 꿈도 이룬다. 시라쿠사 공방전이 한창이던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 아르키메데스를 직접 만난다. 이처럼 고고학자로서 후회 없는 경험까지 한 후,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마리온과 재결합하며 비로소 개인적인 회한을 떨쳐낸다. 스스로를 과거에 묻어 두었던 전설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명예롭지 못한 퇴장
그런데 이상하다. 감동적이어야 할 인디아나 존스의 은퇴는 큰 감흥이 없다. 2시간 3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마냥 지겹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각본의 문제다. '과거'라는 주제는 잘 잡았지만, 정작 그 주제를 살려줄 만한 이야기나 구도를 짜는 데는 실패했다
캐릭터들의 관계만 봐도 각본의 실패를 눈치챌 수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존스와 악역, 존스와 동료 간의 케미스트리가 유달리 안 느껴진다. 마지막 악역인 폴러는 나치 출신 과학자다. 그는 히틀러의 실책 때문에 나치가 패망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로 시간을 되돌려 히틀러를 암살하고, 나치 독일에게 승전보를 안기려 한다.
그런데 폴러와 존스의 대립은 대두되지 않는다. 그들이 본질적으로 같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 개인적인 실패를 만회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적대시할 이유나 동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연히 과거로 가는 시간의 틈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크지 않다. 대신 영화는 나치 대 미국인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답습한다. 그 결과 존스의 마지막 모험은 긴장감이 부족하다.
존스와 헬레나의 호흡도 미묘하다. 그녀는 존스와 대립하는 반동인물이다. 유물 암거래상답게 고대 유물을 박물관이 보존해야 한다는 존스의 신념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존스의 후계자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존스의 대녀일 뿐만 아니라, 평생을 고고학에 매진한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찾아 나섰다. 즉, 그녀는 존스와 함께 모험을 하면서 서서히 그를 닮아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헬레나의 캐릭터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의 다양한 사연은 착실히 제시되나, 그들을 하나로 묶는 데 실패한다. 그래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헬레나라는 캐릭터는 돌변한다. 존스의 동료였다가, 대녀였다가, 암거래상이다. 긴 시간을 함께 붙어 있어도 존스와 헬레나 사이에서 특별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결국 존스의 마지막 모험은 악역과의 혈투도, 낭만적인 은퇴도 아닌 채로 유야무야된다.
어드벤처 영화의 전설, 평범해지다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인 액션도 어설프다. 어드벤처 장르의 전설이자 효시인 <인디아나 존스>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는 40년 전에 스필버그가 맡은 이전 시리즈보다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나의 시퀀스 안에서도 리듬이 뚝뚝 끊기며, 고도의 기술력을 활용한 색다른 볼거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폴로 11 기념 퍼레이드를 배경으로 펼치는 추격전이 대표적이다. 폴러의 부하를 피해 도망치는 존스. 그는 말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다가 뉴욕 지하철 역에서 기차까지 맞닥뜨린다. 이 시퀀스는 분명 놀라운 시각적 경험이다. 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에 어설픈 유머가 끼어들며 자주 끊어지다 보니 박진감은 떨어진다. 또 말을 탄 채 오토바이와 자동차보다도 빨리 달려 그 좁은 도로에서 도망치는 상황의 맥락도 어색하다.
액션 하나하나의 시퀀스도 다소 길다. 오프닝 장면만 보더라도 기차 추격전이 끝날 법한 타이밍에 액션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욕심도 과하다. 액션 시퀀스 하나하나가 긴데, 숫자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영화는 여러 시퀀스가 얇은 줄거리에 의지해 겨우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팬서비스는 확실했다
<인디아나 존스 5>는 이 모든 단점을 팬 서비스로 무마하려 한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중절모와 채찍을 여러 번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에는 반갑다. 마치 잭 스패로우의 해적 모자나 스카이워커의 광선검을 보는 듯하다. 이전 시리즈의 소소한 재미도 살아있다. 동굴 벽에 가득 붙어 있는 벌레를 본 주인공들이 비명을 지리는 장면처럼.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그들도 더 이상 반갑지 않다. 부실한 내용물을 감추기 위해 중절모와 채찍, 그리고 존 윌리엄스의 음악에 의지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에 대한 향수와 팬심을 남용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설령 고전 영화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팬서비스에 치중했다 하더라도 효과적이지는 않다. 최신 영화 못지 않은 비주얼 때문에 실망과 괴리감은 커진다.
다만 <인디아나 존스 5>의 의의는 확실하다.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를 마지막으로 만날 기회니까. 또 떠나야 할 타이밍에 품격 있는 작별 인사를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실제로 그는 세월이 깃든 얼굴로 최고의 인디아나 존스를 보여준다. 칸 영화제가 그에게 공로상을 안겨 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Poor 형편없음
전설은 잠들어 있을 때 비로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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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침묵의 숲> 30초 예고편
청각 장애가 있는 소년 ‘창청’은
특수 학교로 전학을 간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푼 ‘창청’은
‘베이베이’라는 소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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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창청’은 ‘베이베이’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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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형사록 시즌 2> 티저 예고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강력계 형사 '택록'의 마지막 반격?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형사록 시즌2] 7월 5일, 오직 디즈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