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9 12:11:00
㈜하이스트레인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파트너 참여
하이스트레인저 X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콘텐츠진흥원 CKL기업지원센터 입주기업인 콘텐츠 스타트업 ㈜하이스트레인저가 오는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리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해 콘텐츠를 선보인다.
올해로 4년 연속 전주영화제와 협업하는 (주)하이스트레인저는 다양한 콘텐츠 정보를 한 곳에 모아 정보 소통의 편의성을 높이고, 자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매개로 누구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영화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과 영상형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가 직접 영화의 흥행을 예측해봄으로써, 고객사는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고, 소비자는 영화에 대한 관심도 상승과 리워드를 얻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영화 예측 애플리케이션 <씨네픽>을 운영중이다.
하이스트레인저는 영화제 개막 전부터 ‘씨네랩’과 ‘씨네픽’을 통해 예매권 이벤트와 기대작 소개 콘텐츠를 연이어 공개하며 영화제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씨네랩>을 통해 한국 경쟁작, 국제 경쟁작, 월드시네마, 특별전 등 주요 섹션에 출품된 40편 이상의 작품 리뷰는 물론, 영화 관계자 및 일반 관객 인터뷰를 포함한 심층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하이스트레인저는 기존 영화 전문 매체와는 차별화된 큐레이션 중심 콘텐츠와 사용자 친화적 접근 방식을 선보일 계획이다. <씨네픽>에서는 영화제 관련 이벤트를 열어 관객들이 게임을 통해 영화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하이스트레인저 김동국 대표는 “누구나 즐겁게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람들이 영화를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이 되겠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CKL기업지원센터를 통해 하이스트레인저와 같은 콘텐츠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최대 2년의 입주지원과 제작지원시설 등을 지원하고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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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실] 3월 넷플릭스 공개 신작 모음 - 아아무튼 신작이라고요?
일타스캔들(2023)
평소에 한국드라마 잘 보지 않는 나에게 너무 흥미로웠던 설정이 눈에 들어와서 보게 된 일타스캔들
바로 입시,, 학원,, 인강강사 소재였다.
작가가 나름 열심히 현 입시체제나 흐름에 대해 알아보고 현우진한테 자문도 받고 한 티가 나긴 한다. 근데 한드 전개를 해야해서인지 어딘가 어색하고,, 굳이? 싶은 전개도 있지만 그래 드라마니까 용서 가능한 수준. 아무튼 신선했다.
스카이캐슬 이후로 이렇게 입시를 나름 깊게 다룬 드라마가 있나 싶고 나름 신선했다 생각.
배우들은 다들 잘한다. 특히 전도연 정경호 배우는 정말 잘했음 둘이 각 인물을 잘 살리는 연기를 죽 이어가서 좋다. 극의 흐름이 많이 흔들리지 않는 듯 했다.
노윤서 배우도 너무 잘하고 내가 <런온>에서 너무 좋아했던 이봉련 배우도 잘한다! 고딩 어머니들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근데 한드의 고질적 문제점이 여기서도 드러남. 뒤로 갈수록 재미가 없고+사귀면 더 재미가 없어짐
왜일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일타스캔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한드 전체적으로
드라마 특성상 각 인물의 매력이나 특징이 극대화되어 스크린에 표현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결국 그 캐릭터의 매력이 되는 거고.
근데 두 인물이 사귀면서 그 매력이 이전에 비해 죽어버리는 것 같고 그래서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지만,, 아쉽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이 굳이 왜 스릴러 장르를 넣어야했는지 의문. 쇠구슬 얘기만 나오면 흥미가 떨어지고
둘이 만나게 된 이후로 갑자기 지실장 수상함~~이러면서 전개가 이리저리 튀어서 별로 재미가 없고,, 잘 쓸거 아니면 스릴러 빼주세요
<동백꽃 필 무렵>이 성공한 이후로 로코 한드에서 스릴러 넣는게 유행이 되었는지,,
차라리 회차를 줄이고 둘의 관계나 인물들에 집중하고 빨리 끝내는게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드라마 만듦새는 전제척으로 좋다. 돈 열심히 쓴 티도 나고 <런온>처럼 산뜻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화면이 각본이랑 어울리고. 배우들도 잘하고
뒤로 갈수록 흥미는 떨어지지만 8-10화 정도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이런 중년? 30-40대 로코 너무 재밌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2023)
나는 이전부터 종교, 종교와 과학의 대립, 사이비 이런 소재를 너무 좋아했어서 나오자마자 얼른 봤다.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공개 전에 JMS에서 공개를 못하게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결국 공개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일단 1화를 틀자마자 토하고싶었다
1-3화는 기독교복음선교회 JMS 정명석, 4화는 오대양 박순자, 5-6화는 아가동산 김기순, 7-8화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사건에 심각함의 정도를 잴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JMS의 실체를 담은 1-3화를 보면서 제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만큼 심각한 정도의 성폭력을 수백명의 여신도들에게 저질렀고 그런 자료들이 적나라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도 있고
오디오 자료뿐만 아니라 시각적 자료도 신도들 얼굴 모자이크 빼고는 나체가 그대로 나온다던지 매우 선정적이라서 처음에는 거부감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건을 널리 알리고 실체를 파해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은 알겠으나 피해자들을 이렇게까지 선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게끔 연출할 일인가 싶었다.
근데 조성현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모두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은 연출이었으며 현재도 남아있는 신도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어 탈교할 수 있게끔 이렇게 연출했다는데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8화에 걸쳐 소개되는 네 종교의 신도들은 모두 지상파 언론조차 믿지 않으니 이렇게 다 늘어 보여줘야 세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만 한 것도 같았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내어 나와 성폭력 당시를 설명하고 JMS 목사기까지했던 메이플이 미행당하면서까지 언론에 모습을 비추는 모습을 보면서 괜시리 눈물도 났다. 슬퍼서가 아니라 화나고 답답해서 화면 속 사람들과 같이 울었다. 이 다큐를 보고 나만큼 그들의 가해와 폭력에 분노하고 들고 일어서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화 다음화를 계속 틀었다.
4화의 오대양 사건은 이전에 꼬꼬무에서 봤던 사건인데 꼬꼬무와는 달리 당시 사건 현장을 다르게 분석하는 양측의 입장을 비교하며 들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새로웠다.
7-8화의 만민중앙교회 이야기는 JMS와 똑같이 역겨웠으며, 5-6화의 아가동산 이야기를 보면서는 그들이 세운 회사가 신나라레코드라는 점에 놀랐다
이전에 신나라레코드에서 앨범을 몇 장 산적이 있었고 또 친구들에게 선물해준다고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앨범을 산 적이 있는데 그게 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돈이라니 소비하지 말아야지
정리해보면 공개 직후 논란이 되기도 했던 1-3화의 선정성 논란은 논란을 제기하는 쪽도, 감독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사실을 드러내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의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사건별로 촘촘하게 잘 구성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부제를 왜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라 정했을까 생각해봤는데 사실 그들이 신을 정말로 믿었을지도 의문이다.
본인들을 재림예수며 메시아라 칭하는데 일단 '배신'이라는 건 그 이전에 신뢰나 믿음이 있었다는 건데 처음부터 그들과 신 사이에 믿음이 있긴 했을까 싶다.
현재 아가동산 측에서 5-6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이 작품을 아직 안 본 사람이 있다면 꼭 5, 6화부터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 글로리 part 2(2023)
드디어 공개된 더글로리 파트2
다섯시 맞춰서 들어갔는데 넷플릭스 한국 서버가 잠시 터졌다고 하니까 다들 나같았나보다 싶고 웃겼다.
그래서 어땠냐. 하면 너무 기대하지 말걸 싶었다.
물론 재밌었다. 잘 만든 작품이고 각본 연출 연기 미술 다 좋았으니까
그래도 너무 기대를 했는지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결말에 대해서도 깔끔한 결말이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온전히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스포가 있으니 아직 안 본 사람은 읽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스포당하고 보면 재미없으니까
일단 모든 전개가 다 이유가 있고 현실적이었다. 연진이 현남을 찾아가 협박한 것도, 말 많던 여정과 동은의 만남이 단순한 우연, 운명이 아니었다는 것도
또 여전히 대사가 정말 주옥같다. 번역으로는 느낄 수 없을만한 뉘앙스와 그걸 잘 살려내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한 씬 한 씬 맛깔나게 만들어낸 느낌으로
인물이 정말 많긴 하지만 어느 하나 허투로 쓰고 넘어가지 않는 인물 활용과 메타포도 놓치지 않고 가져가는 것까지 좋았고
아 아쉬운가,,? 하다가도 아 안아쉽다 싶게 인물들 마무리하는 것까지.
보면서 교회에서 사라 엔딩이 정말 아쉬웠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던 거지. 스태들러로 꽂아넣는 순간에 여기서 끝날리가 없지 싶은 그 카타르시스가 정말
가해자들 엔딩은 다 좋았다.
결국 그들은 동은이 살짝 밀어줬을뿐, 서로가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가르고 죽고 죽이는 결말을 맞은 게.
언제나 말로 동은과 소희, 경란을 가해하던 혜정은 더 이상 말을 뱉을 수 없게 되어버렸고
이상하고 구린 눈빛으로 피해자들을 바라보던 재준은 자신과 예솔을 이어준다 생각한 눈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으며
그렇게 약을 찾던 사라는 잠깐의 유혹에 교회에서 그 잠깐을 못참아서 약을 하고 사탄이라며 혜정의 목을 꿰뚫어버리고
모든 사실을 돈으로 얻고 모든 진실을 돈으로 덮어버리던 연진은 끝끝내 중요한 진실을 평생 알지 못한 채로 교도소에서 썩게 되었으며
그 돈의 출처이자 항상 믿어 의심치 않던 어머니까지 자신을 놓아버리고 예솔이까지 잃어버리게 된 이 엔딩
진짜 완벽하다
근데 나는 오히려 동은의 엔딩이 살짝 아쉬웠다.
물론 이 작품에서 복수는 정당성이 있고 시청자들도 응원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복수라는 건 스스로도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불법적인 일도 하고 이제 다시는 그 전과 똑같은 사람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서
나는 당연히 파트1을 보면서도 동은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끝내고 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할 것이고, 그게 맞는 엔딩이라 생각했는데
여정이의 어머니가 등장해서 당황했다.
근데 막상 또 여정의 어머니가 여정도 동은이 택하려는 길을 가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전개는 또 설득력 있었다. 혼란스러움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그러고서는 또 여정의 복수를 도울 것을 암시하는 결말이 나는,, 이게맞나 싶었다.
복수를 하면 물론 통쾌하고 그들도 잃어보라는 심정이겠지만 그럼으로써 자신 스스로도 잃을텐데 저걸 또 다시 이어나가는 엔딩이 내 가치관에는 맞지 않았나봐
근데 또 엄마와 이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경찰과 같은 기관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걸 도와주지 않으니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개인이 복수를 하면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거니까 이런 엔딩을 맞았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같다.
근데 내 가치관에는 잘 맞지 않았던 듯. 그래도 정말 용두용미로 잘 마무리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더 아쉬웠던 것은 차주영 배우와 혜정을 대하는 태도가 좀 별로라고 생각했음
파트1에서도 배우 동의 없이 가슴 부각되는 의상으로 바꿨다고 배우가 말하게 다니게 하고 이번에는 바디더블을 써가면서까지 꼭 필요한 컷도 아닌데 혜정의 나체를 꼭 보여줘야 했는지
너무 남감독같아서,,(당연함. 남감독임) 굳이?? 굳이 저렇게 연출했어야 했나 싶었다 많이.
이런 아쉬운 부분 빼면 그래도 정말 한드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끝맺음을 지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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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아다지오'의 매력으로 가득 채운 '로마 3부작'의 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스테파노 솔리마 stefano SOLLIMA
출연]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Pierfrancesco Favino, 토니 세르빌로 Toni Servillo, 아드리아노 지안니니 Adriano Giannini, 발레리오 마스딴드리아 Valerio Mastandrea, 지안마르코 프란치니 Gianmarco Franchini
ITALY|2022|127 min|DCP|Color|International Premiere
시놉시스
열여섯 살 소년 마누엘은 부패한 경찰로부터 나이트클럽에서 한 정치가를 몰래 촬영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마지막 순간에 비디오를 찍지 않고 도망친다. 그 후로 협박에 시달리게 된 소년은 아버지의 지인인 늙고 병든 과거의 갱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소년을 구함으로써 늙은 갱들은 속죄의 길을 찾게 될까?
드니 빌뇌브의 뒤를 이어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의 메가폰을 잡은 순간, 이탈리아 영화감독 스테파노 솔리마의 이름은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데뷔한 순간부터 주목 받은 영화감독이었다. 데뷔작인 <A.C.A.B.>로 2012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상, 러시아영화비평가상, 국제영화클럽연합상을 모두 수상했을 정도.
이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아다지오>가 유독 눈길을 끄는 이유다. <아다지오>는 데뷔작 <A.C.A.B.>, 2015년 작품 <수부라 게이트>으로부터 주제적으로 이어지기 때문. 동시에 <아다지오>는 솔리마의 '로마 3부작'을 마무리하는 영화다. '솔리마'라는 작가의 한 장이 끝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솔리마가 그의 트릴로지를 끝내는 방식이 눈길을 끈다. 보통 할리우드 작품의 경우 삼부작의 끝을 굉장히 장엄하고 화려하게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MCU의 많은 삼부작이 그랬고, <반지의 제왕>이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다지오>는 다르다. '아다지오'라는 제목의 이중성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데 주력한다.
'아다지오'로 쌓아 올린 분위기
아다지오는 음악 용어다. '천천히', '느리게'라는 뜻을 지녔다. 이는 <아다지오>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액션 범죄 영화이지만 솔리마는 섣불리 총을 꺼내지 않는다. 경찰과 마피아의 대립인지, 마피아와 또 다른 마피아의 싸움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례로 첫 45분 동안 영화는 주인공들의 관계를 밝히지 않는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은퇴한 마피아 '다이노타'(세르빌로). '마누엘'(프란치니)을 협박하는 무자비한 악역 '바스코'(지안니니), 전직 마피아이자 다이노타의 동료였던 맹인 '폴니우만'(마스텐드리아)과 '로미오'(파비노)까지. 영화는 이들의 관계, 목적, 과거사를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마누엘이 그들과 엮이게 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그 덕분에 영화는 천천히 끓어오른다. 정보가 풀릴 때마다 긴장감이 찬찬히 쌓인다. 일례로 바스코가 잔인한 악역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드러난다. 그러나 그가 부패한 경찰이라는 사실은 가려져 있다. 그 덕분에 그의 신분과 목적이 드러나는 순간 대립 구도와 추격전은 한층 더 분명해지고 절박해진다. 과거와 현재에 걸친 로미오와 다이노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비극은 중반부에야 모습을 드러내며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마지막 불꽃의 미학
캐릭터 활용법도 제목에 충실하다. "아다지오"는 이탈리아 말로 "안녕"이나 "안녕히 가세요"와 같은 인사말이다. 달리 말해 <아다지오>는 인생의 끝이 임박한 늙은 마피아들의 작별 인사다. 실제로 세 명의 마피아는 모두 늙고 병들었다. 폴니우만은 눈이 멀었고, 다이토나는 정신이 뒤죽박죽이다. 로미오는 암에 걸린 시한부 인생이다.
솔리마는 그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조금은 늦추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들이 어떻게 마지막을 담담히 수용하고 끝을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마누엘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어려움을 역이용하기에 더 흥미롭다. 시력을 잃은 폴니우만은 바스코의 부하를 맞닥뜨린다. 언제든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찾아온 정전 덕분에 폴니우만은 동등한 처지에서 마지막 싸움을 벌일 수 있다.
다이토나도 마찬가지다. 마누엘을 추적하는 바스코에게 고문당하는 노인. 마지막으로 바스코가 질문하는 순간, 다이토나는 정신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항상 되뇌던 곱셈을 다시 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로미오도 다르지 않다. 시한부 인생인 그의 첫 등장은 무기력하다. 침대 아래 바닥에 늘어져 있다. 하지만 마누엘을 만나고, 다이토나와의 악연을 청산한 후에 그는 예정된 죽음을 앞당기는 용기를 보여준다. 한때 원수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바스코와 치열한 총격전을 벌인다. 늘고 병든 세 마피아의 작별 인사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밝게 타오르는 촛불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준다.
로마는 이렇게 쓰는 거야
로마 활용법 덕분에 이들의 작별인사는 더욱 빛나고, 처연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첫 장면부터 영화는 거대한 화재로 인해 위기에 빠진 로마를 보여준다. 산불 때문에 도시는 점점 자주 정전에 빠진다. 여름과 화재가 겹쳐 도시의 온도는 점점 더 상승한다. 재 구름 덕분에 하늘도 서서히 어두워진다. 불을 피하기 위한 차들의 행렬 때문에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이러한 로마는 묵시록의 한 장면 같다.
이에 더해 솔리마는 자기 특기를 살려 로마의 어두운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미션 임파서블 7>이나 <분노의 질주 10>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게 한 수 알려주는 듯하다. 값싼 아파트의 철조망과 문은 사람들을 가둔 듯 보인다. 높고 더러운 창문 때문에 햇빛도 잘 안 든다. 이는 마치 벗어날 길이 없는 로마에서의 우울한 삶을 상징한다. 자기 전작처럼 부패한 공권력과 정치인 때문에 범죄에 찌든 도시를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러한 로마의 두 이미지가 만나면 <아다지오>의 목적지는 명확해진다. 로마라는 도시 자체가 실패한 운명임을 선언한다. 로마의 부실한 인프라는 이 도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을 일깨운다. 거대한 산불은 범죄와 폭력으로 찌든 로마를 불태워야 한다는 듯이 강렬하게 타오른다.
이는 은퇴한 마피아도, 부패한 경찰과 정치인도 모두 자기 죗값을 치르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은퇴한 마피아가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젊은이에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 주려하는 이유도 명확해진다. 로마라는 도시의 어두운 면을 스크린으로 끄집어낸 덕분에 세 마피아의 작별 인사는 더 처연하고, 인상적이다. '로마 3부작'의 끝으로서 여운이 깊은 마무리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다지오'의 일장일단
다만 '아다지오'에 충실한 영화 구조와 흐름은 양날의 검이다. 긴장감을 천천히 쌓아 올려 한 번에 터뜨리는 스토리텔링은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 영화를 조금 접했다면 마누엘을 이용하는 바스코 일당의 목적과 정체를 파악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각 캐릭터의 과거사도 쉽게 짐작 가능하다.
물론 중간에 몇몇 장면은 관객을 쥐고 흔들기도 한다. 미친 노인처럼 보이는 다이토나가 한순간 바스코의 경찰차에 올라타 칼을 들고 경고하는 장면, 로미오가 자기 집에 설치된 녹음기를 찾아내는 장면 등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이다 보니 장르적인 쾌감은 크지 않다. 액션 자체의 절대적인 분량도 부족하다.
종합하면 <아다지오>는 솔리마를 사랑하는 팬에게, 특히 그의 로마 영화를 사랑하는 팬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반면에 이 작품이 솔리마와의 첫 만남이라면 그의 진가를 알아보기 어려운 영화일 수밖에 없다.
Acceptable 무난함
마지막 힘을 짜내 타오르는 로마의 찬란함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10/4~13) 중 상영일정
10월 7일 13:00 CGV 센텀시티 스타리움관 (상영코 158)
10월 8일 19:30 영화의 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216)
10월 12일 12:00 영화의 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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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결혼 이야기>,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결혼에 대해 꿈꾼 적은 없다. 굳이 따지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 않을까? 평생 흔들리지 않고 혼자 살 때보다 둘 이상일 때 조금 더 든든하지 않을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나눠먹고 대화를 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찌감치 행복한 가족이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믿지 않았다. 결혼식이 해피엔딩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둘이서 여행만 가도 한 번은 싸우는데 결혼이 그렇게 좋기만 할리가. 결혼을 계약처럼 연장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가족과 결혼에 대해 충격적이지만 슬픈 사실을 한 가지씩 깨달았다. 가족은 생각보다 그렇게 화목하고 평화롭지 않다. 잘 사는 집이든 못 사는 집이든 어느 집에나 속 썩이는 사람이 있고, 콩가루가 솔솔 날리는 듯한 분쟁이 있기 마련이다.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다. 결혼에 대해 놀랐던 점은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보다 결혼을 생각하는 그때 마침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결혼에 수많은 조건이 있다면 사랑 역시 그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좋고, 사랑이 없으면 정으로 산다고 하더라. 그래도 반평생을 함께 할 텐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해버리냐고? 막상 결혼의 압박이 들어오는 나이가 되니 이해는 된다. 결혼을 하라는 주변의 눈초리나 말소리는 지겹다. 그렇다고 혼자 살자니 혼자만 사는 삶은 자신이 없다. 해치워버리듯 해도 비난하지 못하겠다.
과거와 확연한 차이점은 요즘 결혼은 과거만큼의 인내심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지 않아도 된다. 헤어져도 된다. 이혼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의무감으로만 지속했던 결혼이야말로 나쁘다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혼하는 시기는 인내심이 어디까지 발현되었느냐 정도의 차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혹은 자리를 잡고 나서 황혼에 이혼하거나 졸혼을 하는 경우도 많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헤어질 수 있다. 나조차도 정말 밥맛 떨어질 때면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게 말이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의외로 그래도 가장 중요한 순간 결정을 내릴 때는 아빠와 가치관이 비슷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인가. 정말 중요한 50%만 맞으면 나머지는 맞추면서(혹은 어차피 맞추지 못할 테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라던 말씀이. 그게 엄마의 결혼 철학이었는지도.
<결혼 이야기> 속 니콜과 찰리는 변호사 없이, 소송 없이 '둘만의 원만한 합의'로 이혼하기를 꿈꿨다. 바람대로 되면 좋았겠으나 애초부터 둘의 입장 차이는 너무나 명확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고 공감되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둘의 감정이 극도에 치달았을 때 말다툼을 보고 확실해졌다. 찰리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그의 희생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도 니콜은 찰리에게 저주를 퍼붓지는 않았다. 찰리의 말에 말문을 잃은 건 니콜만이 아니었다. 헨리만 괜찮다면 병에 걸리거나 차에 치여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니. 내가 당신을 더 사랑했다는 니콜의 말에 그게 LA에 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반응은 맥빠졌고, 같은 극단 메리 앤과의 외도에도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졌다. 결혼 생각도 없고, 나에게 바라는 게 많은 당신 때문에 내가 수많은 유혹을 젊은 나이부터 얼마나 피하느라 힘들었는지, 당신이 나를 먼저 거부했으니 바람이 아니란다. 유혹에 관해서라면 니콜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찰리는 이기적이다. 본인이 아프다는 이유로 끝까지 가버린다. 총알이 살을 뚫고 나서도 회전을 하면서 몸속에 파편을 남기듯이. 후벼파는 것 이상의 말을 쉽게 하더라. 그가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하지 않았다면 고개를 저으면서 그를 선택했던 니콜을 처량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누가 봐도 상처받은 눈이면서 미안하다며 찰리를 꼭 안아주는 그녀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게 사랑인 걸까. 내가 상처받아도 그 사람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는걸, 그 말을 하면서 본인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고 안아줄 수 있는 게. 사랑을 하기엔 나 역시 너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영화를 봤다. 찰리를 정말 이해할 수 없을지 궁금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어도 상관은 없다. 찰리는 내 남편이 아니니까. 다시 보니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는 왜 뉴욕을 놓을 수 없었을까? 뉴욕이 집이고 자신의 가족은 '뉴욕'의 가족이라고 무척 강조한다. LA는 왜 안 되는 걸까. LA의 변호사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도 넓고 살기 좋다는데도, 니콜의 가족을 좋아하면서도, LA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심지어 그가 사랑하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았던 니콜이 원하는데도. 뉴욕이 대체 그에게 뭐길래. 'LA'의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뭐길래.
니콜이 변호사 노라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찰리는 이혼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니콜의 의사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말이다. 니콜은 LA에서 살고 싶었고 다양한 장르에 참여하는 배우이자 감독이 되고 싶었다. 지금처럼 '찰리의 극단'에서 '찰리가 가장 아끼는 배우'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에서 종횡무진하고 싶었다. 남편의 외도에 상처받은 사이 마침 LA에서 하는 드라마가 기회처럼 찾아왔다. 찰리의 응원을 기대했건만 그는 쓴소리만 뱉었다. 그가 LA에 잠시라도 살려고 시도했다면, 그가 함께 극단에서 공동 감독을 맡아 공연을 준비했다면, 니콜에게 네 생각은 어떤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말을 했더라면. 수많은 가정법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니콜은 결혼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은 찰리와의 이혼을 피할 수 있었을까. 니콜이 '찰리의 아내'로 살기로 체념하는 것 말고, 찰리가 막무가내로 뉴욕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고, 그를 설득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영화를 살펴봐도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의 이야기만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찰리도, 그의 변호사도 그런 이야기를 터놓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추측할 뿐이다. 니콜이 찰리에 대한 장점에 썼던 것처럼 그는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했다. 누구보다 뉴요커 같다. 직업적인 명성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집이 생겼다. 뉴욕은 그의 마음의 고향이다.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와 좋은 기억이 없는 어머니와 태어난 고향은 뒤로했다. 그는 소중한 니콜과 아들 헨리, 인턴마저 가족 같은 극단 사람들을 만났다. 좁고 경적소리가 넘치는 뉴욕에 스스로 가족을 만들었다.
찰리 입장에서 LA는 어디까지나 니콜의 고향일 수밖에 없다. 찰리의 뉴욕은 흔들려도 이상할 것 없이 뿌리가 얕다. 10년을 넘게 산 니콜은 뉴욕보다 LA를 그리워하지만 찰리에겐 10여 년 된 뉴욕이 전부다. 그 뉴욕엔 편히 볼 수 있는 부모님, 형제 같은 혈연이 찰리에겐 없다. 은연중에 니콜과 그녀의 가족을 보면서 LA의 넓은 공간만큼이나 휑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LA에 있는 니콜과 헨리는 찰리가 없어도 자연스럽다. 헨리를 너무나 쉽게 LA에, 니콜의 손에 맡긴다면 그는 그의 부모님과 그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고 그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가 힘들게 만든 가족이 무너졌을 때조차 그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한 뉴요커가 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기적이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채 마음에 담아둔다. 대체로 진심과 좋은 말은 담아두었을 것이다. 니콜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뉴욕을 떠나면 이 가족이 부서질 것 같은 걱정도, 그녀의 연기를 비평하지만 감동받았던 마음도.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배우가 자신을 떠나 LA로 난생처음 활동을 하러 간다니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 가 버려. 갈 테면 가. 그러고도 당신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은 누굴 만나도 불행할 거야. 그녀가 떠나가 버리기 전에 먼저 이혼하자고 하진 않았을까? 둘 중에 이혼을 먼저 이야기한 건 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도록 니콜을 몰아붙였든지. 초반에 이혼 준비로 성질을 내고 눈물을 보이는 니콜의 모습에 비해 침착한 찰리를 보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이혼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좋은 사람, 좋은 부모인지 시험받았다. 추억은 무능과 부도덕의 증거가 되었다. 찰리는 조금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니콜이 늘 잘라주던 머리는 이발소에 가서잘라야 하고, 빨래방에서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3800km를 날아 뉴욕에서 LA로 와야 헨리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양육권도 45:55의 비율로 손해를 봤다. 영화의 끝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살아있는 것(Being Alive)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 나를 필요로 하고, 상처 주고,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
이 싸움에서 결과적으로 니콜이 이긴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솔직했고 더 많이 사랑했고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니콜의 눈빛 역시 종종 촉촉해진다. 니콜이 읽지 못했던 편지를 찰리가 읽었을 때, 'I'll never stop loving him, even though it doesn't make any sense now'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서로를 축하하고 싶지만 예전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을 때. 찰리가 UCLA 전임으로 오게 되어 한동안 여기 머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쓸쓸했다. 이혼하기 전엔 왜 그럴 수 없었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변호사나 판사에게는 지지부진한 한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결혼 이야기든 당사자에게는 며칠 밤낮을 해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헨리라는 아들을 둔 찰리와 니콜 커플의 이야기는 그래도 사랑이 있는 결혼이었다. 보기 좋았다. 서로의 장점을 읊는 장면으로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이 반대라서 보완해주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진흙탕 싸움을 하지 말자던 사람들이 진흙탕에 빠져들어 이혼을 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뭘 모르고 어리석어서 진흙탕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서로 약점을 아는 사람들끼리 일부러 급소를 건드리면서 상처를 내는 다툼. 그 말이, 그 행동이 이렇게도 쓰인단 말인가? 놀라진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음은 칼질하듯 날카로운 단면으로 잘리지 않는다. 사람과 시간이, 사랑이 남아있다. 다만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할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도 남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단 한 가지 감당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누구와도 헤어질 수 있다. 당신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원하는 삶에서 멀어질수록 마음 한 켠에서는 엉켜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부른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결혼은 이래서 해볼 만하고, 이래서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혼 역시 그래서 희망찬 행동이기도 하고 절망스러운 밑바닥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 결혼은 사랑 하나만으론 충분하지 않은 이야기다. 아직도 절절한 둘의 눈빛과 별개로 그들은 이혼서류에 서명했다. 그들이 수많은 결혼의 위기를 넘겼음에도 이번에 정말 이혼을 했다는 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풀린 신발 끈은 묶어주지만 같은 방향을 볼 수 없고 나란히 걸을 수 없다. 잔잔한 오보에 소리에 서로에게 등진 채 자신이 갈 곳으로 걸어가는 찰리와 니콜을 보면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 떠올랐다. 둘에게 들려준다면 아마 눈이 빨개진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찾을 때의 마음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 버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김광석 <사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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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킹헤즈의 이해불가함과 대체불가함을 담아낸 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1984, 조나단 드미)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담아낸다’는 것, 놀랍게도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것을 해낸다. “Hi, I got a tape I want to play.”와 “Does anyone have any questions?” 사이, (녹음된) 데이빗 번의 날카로운 음성이 전하는 것은 맴버 소개를 제외하면 가사 뿐이다. 스토리텔링 위주인 토킹헤즈의 가사는 딱히 싱잉으로 정의되지 않는 번의 보컬링을 통해 전달되어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의 가사와 음악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 아니 어쩌면 해석을 시도하는 것 자체부터가 별 의미없는 행위다. 말이 되기making sense를 기꺼이 멈추는 이 밴드의 무대는 머리로 이해하기를 그만둘 때 비로소 심장과 살갗에 닿는다.
기타로 ‘Psycho Killer’의 리프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데이빗 번, 카메라는 쉴새 없이 움직일 예정인 그의 발을 감싼 스니커즈에서 출발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댄스 무브에 집중하는 맴버들을 마구 흔들리며 스쳐가기도 하고, 한 벌스 내내 데이빗 번의 상반신에 고정돼 있기도 한다. 번이 스테이지를 문자그대로 조깅할 때는 마치 그에겐 관심이 없는 듯 다른 맴버들에게 머물러 있고, 제 키만한 스탠드 조명을 파트너삼아 밀고 당기며 춤을 출 땐 바로 곁에서 동선을 좇는다. 그 장면들은 전부 긍정적인 의미로 미쳤고 이상하다. 라인 바이 라인이 즉석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데이빗 번의 구상에 맞춰 순서대로 짜인 제스처들이다. 투어 중 목격한 일본 전통 공연들에 영감을 받았다는 기묘한 안무들은 완벽히 토킹헤즈의 음악과 결합된다. 구성된 무대의 모든 액션이 즉흥으로 와닿는 까닭은, 그날 그 순간 발생한 맴버들의 흥과 힘, 그 사이 교감은 스테이지드 될 수 없는 것이어서다. 선명한 디지털 레코딩과 조화를 이루는 <스탑 메이킹 센스>의 촬영은 공기중의 에너지 흐름을 포착한다.
고화질로 리마스터링된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 시절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동시대에 밀접하게 관람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관에서 본다면, 꼭 시공간을 뛰어넘어 1983년 판타지스 극장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현장 객석에선 쉬이 보기 어려운 것들까지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칠이 벗겨진 썬번 기타, 그것을 연주하는 번의 현란한 손놀림, 쉼 없이 리듬을 타는 티나 웨이머스의 어깨와 무릎, 미소가 떠나지 않는 크리스 프란츠의 얼굴 같은 것들. 객석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을 담는 시선이 오히려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각 클로즈업은 숏이 나뉘어 있더라도 끊기지 않고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4+5인의 맴버 각자의 대체불가함,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밴드로 움직이는 방식이 인식-되기보단 감각된다. 알려져 있듯 이 필름엔 아티스트 인터뷰가 없고 반응은 환호성 몇 차례 정도만 삽입된다. 다만 마무리 즈음 객석을 조명한 숏이 몇 이어지는데, 관객들조차 어쩐지 토킹헤즈화 돼 있다. 엔딩크레딧이 흐를 무렵엔 방금 그들 가운데에서 사흘에 걸쳐 이 예측불가한 퍼포먼스를 관람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40년이 지났음에도 이 필름과 콘서트는 전혀 낡지 않았다. 물론 이는 데이빗 번이 단지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는, 신세대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꾸준히 신곡을 내는 현재진행형 창작자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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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하루의 총합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시체가 터지고 마음이 터지는, 뭔가 많은 것들이 팡팡 터지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쪽이다. <덩케르크>도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카피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테고, <1917>도 그다지 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1917>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할 땐 좀 놀랐다. 자꾸 같이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친구 얼굴 봐서 한 번 보러 갔다. 그리고... 같이 미쳤다. 용산 아이맥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 포토티켓을 뽑아대는 우리는 누가 봐도 과몰입 오타쿠였다. 아무리 정상인인 척 리뷰를 써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러브레터> 때처럼 과몰입 오타쿠답게 구구절절 써보려 한다.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영화 전체를 서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영화 <1917>의 수식어는 항상 "원 컨티뉴어스 숏" 이야기다. 2시간짜리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촬영했다는, 물론 당연히 2시간을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끔 잘 연결한, 즉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최신 기술을 집약한 영화라는.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렇게 찍기 위해 모든 세트장을 직접 제작하고, 그 세트장 동선에 맞춰 대사 길이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6개월의 리허설 끝에 찍었다니 부분적으로 연극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본과 기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설명에 압도되어서인지, <1917> 이야기는 평론부터 리뷰까지 기술 이야기 일색이었다.
그러나 <1917>은 기술 이야기만 하고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과시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다.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 탁월한 연출, 감정 머리채를 잡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지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장점들을 모아 더없이 주제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는 노란 꽃과 흰 꽃이 섞여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시작한다. 관 속의 시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블레이크와, 나무에 적당히 기대 눈을 감은 스코필드. 블레이크를 부르며 누구 한 명 데려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 채.
두 사람은 참호로 들어가 장군에게서 임무를 받는다. 적진이 후퇴했으며, 데번셔 제2연대가 후퇴한 적군을 총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항공사진을 보면 적군은 작전상 한 발 물러난 것뿐이라, 위기에 빠진 건 오히려 데번셔 제2연대라는 것. 적군이 통신망을 끊고 갔기 때문에 인편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해당 연대의 1,600명 중에는 블레이크의 형도 있고,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얻어걸린 스코필드도 함께 간다는 것.
참호를 빠져나가 허허벌판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코필드는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말 타고 창 찌르고 칼 휘두르던 전쟁은 종말을 맞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 당시 전쟁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을 따라가면서 좁은 참호를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시작부터 보여주고, 짐짝처럼 참호에 몸을 기대어 죽음의 냄새를 맡는 병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체가 그대로 썩어 지저분해진 진흙, 시체를 파먹고 자란 큰 쥐들을 보면 적군의 공격 못지않게 비위생적인 환경 또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참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블레이크에 비하면,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겪어보고 그만큼 노련해진, 동시에 내상도 더 깊게 입은 병사로 보인다. "정말 적군이 후퇴했다면 보급품에 수류탄을 왜 줬겠냐"라고 꼼꼼히 따져보지만,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씩씩거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참호를 벗어나기 전 그는 "Age before beauty," 장유유서라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블레이크보다 앞서 미지의 위험에 발을 딛는다.
스코필드도 높은 직급은 아니지만,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었다던 '솜 전투'를 경험했고, 거기서 훈장도 받았다. 목숨이 오가는 장면을 많이 보았고 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간순간 구체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말을 아낀다. 아직 순진한 블레이크에 비해 그가 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장면도 그랬다.
두 사람은 아군의 참호와 적군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를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에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가득한 곳. 나무와 철조망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공간. 시체가 마치 지형지물처럼 늘어져 있는 이상한 광경이다. 총검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며 그들은 적진의 참호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말 시체를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표정을 봐도, 철조망에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운 진흙을 올라갈 때 손 잡아달라고 이름 부르는 걸 봐도 블레이크는 전쟁터에 있기엔 아직 너무 어린 소년이다.
스코필드는 그런 블레이크를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철조망을 잡아주다 손을 찔려도, 그 손을 썩어가는 시체에 푹 담그게 되어도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앞만 보고 가면 그 뒤에서 총으로 엄호하고 있다. 두 배우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정말 비어 있는, 그러나 적군이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적진의 참호는 반파되어 있다. 땅굴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 날 것 같은 병사 숙소가 보인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흑백 가족사진 앞에 잠시 멈춰서는 스코필드와 침대에 앉아 방방 스프링을 튕겨보는 블레이크. 두 사람은 부비트랩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처음부터 거슬렸던 커다란 쥐 때문에 목숨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둘이 출발했으니 하나는 죽거나 다치겠구나 싶긴 했다. 두 사람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플롯이면 분명 중간중간 위기를 맞고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무사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니까. 그럼 여기서 죽나, 하는데 블레이크의 발 빠른 대처로 스코필드는 목숨을 구하고, 첫 위기는 다행히 벗어난다.
전쟁터의 긴장감은 사람을 순식간에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사지를 벗어나고 블레이크의 농담으로 풀어지는 것 같았던 공기는 하늘을 가르는 정찰기 소리로 단숨에 다시 굳어진다. 블레이크는 때마침 나타난, 다 뭉턱뭉턱 베어졌지만 아직 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체리나무로 다시 분위기를 풀어본다. 5월이면 형과 함께 어머니의 과수원에서 체리를 딴다는, 아마도 가족에게 다정하고 싹싹한 둘째 아들일 그는 전장에 비현실적으로 나부끼는 꽃잎 사이를 거닐며 몇 마디 대사만으로 자신의 전사를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영화가 사용한 기법 상,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느낌을 전쟁에 버무려놓은 배경 상,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호의 위기를 체리 꽃잎으로 마무리하고 꼭 '2단계, 버려진 농가' 같은 느낌으로 눈앞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젖소 한 마리와 우유 한 통이 있을 뿐 별스러울 건 없는 공간이었다.
퇴각하던 독일군은 협상국 군대의 식량 확보와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나무도 베고 젖소도 죽였는데, 한 마리가 비현실적으로 살아남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 연대가 이런 젖소를 발견했고, 암소를 연대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스코필드는 어쩐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공중전에서 패한 적기가 추락하고, 몸에 불이 붙은 독일인 파일럿을 "편히 가게 해주"려던 스코필드와, 안 된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던 블레이크. 사제가 되는 걸 고민했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나이브한 선의를 봐주지 않는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폭발에 쓰러졌을 때 블레이크가 그랬듯, 칼에 찔린 블레이크를 들어올려 보려 하나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결국 눈을 감는다. 힘없이 떨군 그의 손 옆에 마지막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아무나 한 사람 골라잡은,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할 수 있었다면 반대했을 이는 그렇게 유일한 전령이 된다. 동시에 군사적인 사명뿐 아니라 친구의 유언을 건네받은 개인적인 사명까지 그의 어깨에 얹힌다.
블레이크의 시체를 움직여보려 할 때 아군이 나타난다. 여태까지 두 명에 몰입해 따라가고 있다 보니 아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고,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적군이든, 시간이든, 죽음이든, 부상이든, 적막이든.
스코필드의 사정을 들은 스미스 대위는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스코필드를 사병 트럭에 태운다.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사병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스코필드는 혼자서만 다른 곳을 멀거니 바라본다. 멀어져 가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를 생각하며 전해야 할 편지를 틴케이스 안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트럭을 타고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독일군이 길을 막도록 베어놓은 나무를 치우고,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어가며 스코필드는 시간과 싸워야 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를 이상히 여기며 묻는 사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다들 말을 아끼지만,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은 작전과 무의미하게 터덜터덜 실려가는 그들의 현실은 곧 1차 세계대전 자체의 현실이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다른 길로 에둘러갈 사병 트럭에서 내려, 스코필드는 조심스레 무너진 다리를 건넌다. 그 앞 버려진 저택에 있는 저격수와 맞붙게 되고, 명중 확인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저격수와 대치하며 그도 죽음 코앞까지 다녀오게 된다. 영화가 잠시 암전되는데,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여기서 인터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냈다. 다시 눈을 뜬 스코필드는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시계가 깨져 더 이상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어느덧 세상은 어두워져 있다.
카메라는 죽은 저격수를 넘어 창문으로 쭉 내려가고,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면서, 반쯤 무너진 마을로 스코필드가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 살아있는 적군을 찾아 끝까지 말살하려고 적기가 조명탄을 쏘며 날아다니고, 조명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낮처럼 밝아지는 광경, 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그림자가 유유히 자라나듯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보이는 것과 음악이 어우러져 가슴을 쥐어잡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분수대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광장. (저 장면을 조명으로 만들었다니 놀랍다.) 역시 무사한 시절에 붙였을 서커스 공연 포스터. 그러나 구석에 피 묻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이 뒤틀리고 모순적인 공간에서, 그만큼이나 반대되는 상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얼굴도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닿을 듯 추격해 오던 독일군과, 그를 피해 들어가다가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
이 영화에 나오는 단 두 명의 여성이자, 체리나무 장면 이후 처음으로 평온하게 숨 고르기를 하는 장면이다. 짤막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두 사람은 대화한다. 독일군이 아님을 설명하며 여성을 안심시키고, 여성은 스코필드의 뒤통수에서 피를 살짝 닦아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스코필드가 고개를 든 건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는 아기를 보고 가방에 있던 부식과, 이렇게 쓰일 줄 모르고 담아뒀던 우유까지 모두 꺼내준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어루만지고 시를 읊어주는 걸 보며, 아마도 그가 "집에 가는 게 더 괴롭다"라고 할 만큼 괴로워한 데에는 후방에 아이까지 두고 떠나온 이유가 있겠거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이 시는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시이기도 하다.
They went to sea in a Sieve, they did,
In a Sieve they went to sea:
In spite of all their friends could say,
On a winter’s morn, on a stormy day,
In a Sieve they went to sea!
그들은 바다로 갔네 체를 타고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모든 친구가 말려도
폭풍우 치는 한겨울 아침이었어도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And when the Sieve turned round and round,
And every one cried, ‘You’ll all be drowned!’
They called aloud, ‘Our Sieve ain’t big,
But we don’t care a button! we don’t care a fig!
In a Sieve we’ll go to sea!’
체가 빙빙 돌고 돌아갈 때
모두가 "너희 다 익사할 거야!" 소리칠 때
그들은 외쳤네 "우리 체는 크지 않지만
신경 안 써!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체를 타고 우리는 바다로 갈 거야!"
Far and few, far and few,
Are the lands where the Jumblies live;
Their heads are green, and their hands are blue,
And they went to sea in a Sieve.
저 멀리 점점이
머리가 초록빛이고 손이 푸른빛인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영화에서는 1연의 처음 5행과 마지막 5행만 읽는다. 가운데 5행은 읽지 않는다.)
때마침 시계탑 종이 울리고, 시간을 가늠한 스코필드는 단꿈에서 서둘러 일어난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모르는 아기를 거둬 기르고 있을 만큼 인간애 있고 단단한 프랑스 여인은 스코필드를 걱정하지만 그는 고마운 마음을 유감으로 전하고 단호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힘이 빠진 나머지 본인이 읽(지 않)은 시 구절처럼 익사할 뻔했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하얀 벚꽃 잎이 흩날리고 새 소리가 들린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큰 축인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낸다. 아름다운 벚꽃잎과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까지 건너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사위는 밝아져 있다.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장송곡을 듣는다.
그들이 데번셔 2연대 후발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뛴다. 몸을 웅크린 이들, 정신을 놓고 울음을 터뜨린 이, 동료를 붙드는 이들... 다양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다가, 이렇게 가서는 시간 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참호 위로 올라서 평야를 달린다. 포탄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부딪혀 넘어지면서도, 병사들과 종횡을 달리해 그는 뛰어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내게로 뛰어온다. 전쟁의 내상과 외상을 모두 가진 이가,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린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적막하게 괴로워하며 앉아있다가 우르르 뛰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 그 흐름을 끊고 달리는 사람이 된다.
영화 내내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대사들을 통해 어쩌면 답 없는 전쟁광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인물 매켄지 또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머리를 쓸어내리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Last man standing.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코필드는 고개를 든다.
자막에는 "마지막 단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매켄지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맞는 번역이지만 사실은 중의적인 문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투를 끊어낸 이가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반듯하게 서는 순간.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몰살도 있지만,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인간 그 자체도 있다.
전투를 막았다고 그의 사명을 마친 것은 아니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유품을 건넨다. 이제 다시는 두 형제가 함께 체리를 딸 수 없겠구나, 슬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형은 인사를 나누며 스코필드의 이름을 묻는다. 윌리엄. Thank you, Will.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건넨다. Will은 의지의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형에게 갈 거라고, 내가 할 거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블레이크의 의지가 스코필드의 이름에도 들어있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노란 꽃이 없는 들판에 혼자 앉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열어보던, 소중해진 것을 집어넣던 틴 케이스를 열어본다. Come back to us. 꼭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담긴 가족의 사진.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만 전장에서 그는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화에서 따와서 만들었다. 특정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실화의 가닥가닥을 엮어 만든 것이다.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식을 먹고 개를 쓰다듬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사람들의 시간,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거둬 기르고 낯선 군인의 상처에서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들은 생각보다도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다. 심지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 중엔 인도 남부 출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스코필드가 노래를 들으며 나무에 몸을 기댈 때 그 자리에는 흑인도 있었으며, 사병 트럭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 병사가 등장한다. 가볍게 억양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딱히 희화화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들의 존재는 놀랍다.
(실제로 1917년은 인도 남부에 있는 하이데라바드 토후국에서 영국군에 전투기를 선물한 해다. 토후국의 왕 니잠은 엄청난 부와 탄탄한 사회를 이룬 군주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패권 다툼이라는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싸움에 가담하여 자신도 당당히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참전했음을 고증하는 것임인 동시에 자본의 영향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찾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이들이 실은 각각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것. 각자 자기의 죽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게 전쟁의 무의미한 본질이다. 그러나 전쟁은 보통 큼직한 것들로만 기억된다. 솜 전투, 인천 상륙 작전, 한산도 대첩 같은 웅장한 이름들로. 수많은 전쟁 영화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담곤 했다. 일반인들의 미시사는 전쟁의 본질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전쟁이 깨뜨린 일상의 대조점으로 주로 담기곤 했다.
그러나 전쟁 자체를 이루는 것은 거대한 전투와 군함, 장군보다 그냥 수많은 보통 사람들임을 이 영화는 담는다. 스코필드는 그중 한 사람이다. 참호 속 혹은 트럭 속의 다른 병사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계가 깨져도 잔혹하게 흘러가던 스코필드의 하루는 그런 여상한 하루하루의 총합이 전쟁임을 알려준다. 그냥 보통 좋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들의 하루하루의 총합으로 전쟁은 이루어진다. 스코필드의 어떤 하루는 전쟁이라는 전체를 닮은 프랙탈이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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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판 위, 인생을 건 대국
이병헌과 유아인.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두 배우가 바둑판 위에서 진한 사제지간의 심리전을 펼친다.
조훈현과 이창호,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에는 스승과 제자의 고요한 전쟁, 그리고 말보다 강렬한 침묵의 대화가 있다.
이병헌은 조훈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천재 바둑기사로서의 자부심, 제자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세대교체의 그림자까지. 이병헌의 묵직한 눈빛과 단단한 어조가 조훈현이라는 인물을 완성시킨다. 유아인은 젊고 날카로운 이창호로 분해, 마치 기계처럼 완벽한 수읽기와 냉정함을 연기한다. 무표정 속 미세한 떨림, 스승 앞에서의 복잡한 감정선을 유아인은 특유의 에너지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사제지간의 관계가 어느새 경쟁과 대립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은 마치 장기판처럼 느릿하지만 긴장감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남기현 역의 조우진이다. 조우진은 두 천재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바둑 인생’을 보여준다. 조우진의 연기는 묵묵하지만 깊고, 영화 전체의 정서를 단단하게 지탱해준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타이틀 대국은 압권이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앉아 맞붙는 순간, 카메라는 말 없이 그들의 손짓, 시선, 호흡을 쫓는다. 모든 심리와 감정이 응축된 이 장면은 『승부』라는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자, 영화가 향해온 감정의 절정이다.
『승부』는 결국 누가 이겼느냐보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태도,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 도전하려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둑판 위의 묘수만큼이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기느냐’보다 ‘어떻게 마주하느냐’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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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1]직쏘가 생각나게 하는 쏘우의 스핀오프 스파이럴 개봉!! 재밌다!
쏘우의 스핀오프 영화 스파이럴이 개봉했습니다.
배우 크리스락이 기획아이디어와 각본에도 참여했는데요.
주연 배우로도 활약하고 있죠.
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크게 어색하지 않게 연기하고 있어요.
영화도 쏘우 시리즈의 초기 영화들 처럼 너무 급하지 않게 서서히 발동을 걸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너무 쏘우 시리즈와 동일한 구성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보는 재미는 있네요.
기존의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영화에요.
감독은 대런 린 보우즈만 인데, 쏘우 2,3,4편의 감독이었죠. 다시 원래 잘하던 시리즈로 돌아왔네요.
그동안 공포영화들을 찍어왔지만 사실 거의 B급공포에 머물러 있었거든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 전체를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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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웅 주연 필사의 추격 / 코믹 액션 / 범죄 수사극 / 아쉬움이 남는 후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필사의 추격"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엔드크레딧 나오면서 나옵니다. 가장 마지막에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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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메인 예고편
평범한 메이에게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인사이드 아웃] [인크레더블] 제작진의 새빨간맛 사춘기! [메이의 새빨간 비밀]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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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튼 아카데미> 메인 예고편
우당탕탕 흘러가는 #바튼아카데미 에서의 겨울 ⛄️❄️ 세 사람의 따뜻한 연대와 위로가 담긴 [바튼 아카데미] #2월21일극장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