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대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했던 그 해에 영화 <컨저링>이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개봉을 앞두었던 영화의 광고 카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는 8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잊히지 않습니다.
박수만 쳤음에도 <킹스맨>에서 보았던 "뇌꽃놀이(?)"장면처럼 팝콘들이 흩날렸으니까요.
물론, 8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상황이 더 무섭지만 이를 시작으로 영화 <컨저링>은 하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포함해 본편 3개과 4편의 외전만으로도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다가올 텐데요.
이를 제작진들도 알기에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은 많은 변화들을 시도들이 눈에 보입니다.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보기에 앞서, 팬들은 <컨저링>시리즈는 초자연적 현상을 바탕한 "오컬트 호러"임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이식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 거는 기대감이 남달랐습니다.
이제는 고착화된 시리즈를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였습니다.
퇴마 의식을 진행하던 워렌 부부는 무사히, 일이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악령은 사실 다른 이에게 옮겨진 것이고, 악령에게 빙의된 대상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에 워렌 부부는 법정에 선 범인이 '악령에게 빙의되었다'라는 증거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을까?
1. 3편까지 왔으니까, 변해볼까?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서 우리가 집중할 건 '숫자 3'입니다.
1에서 2로 커진 숫자만큼 스케일도 비례하듯이 커지는 것이 보이지만 ,'숫자 3'은 다르게 풀어 나가야 하는 숫자입니다.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시켰던 2편과는 다르게, 3편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눈에 익었기에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앞서 말했듯이 "수사극"의 기법과 "법정"을 배경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게끔…
그래서인지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기존 시리즈와 비슷한 분위기임에도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이전 시리즈들이 피해자들의 모습만을 비췄다면, 이번 영화는 사건의 배후를 단면적으로 드러내는데요.
보통 추리와 같은 수사극 장르에는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때문에 관객들은 이야기에 참여 즉, 몰입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화는 "신비함"이라는 큰 윤곽으로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차별화를 두니 8년이나 알고 지낸 영화라고 해도 새로이 보일 겁니다.
2. 장르의 호불호, 관객들이 갈라진다.
다만, 아쉬운 건 차용된 장르가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주 장르로 대체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오컬트 호러"로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관객들을 놀래는 영화입니다.
보통의 법정극이나 수사극이었다면, 법정에 서있는 범인이 영화의 평가를 좌우할 반전 카드로 쓰겠지만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이미 부제부터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는 영화입니다.
이에 모자른지 이미, 초반부터 악령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니 이런 모호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주객전도가 되었어야만 했나?
그렇기에 수사극과 법정 장르물을 기대했다가는 실망스러울 텐데, 특히 이를 수사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장르물은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므로,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시켜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수사하는 과정은 관객들을 해당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부분인데, 이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증거의 논리보다는 해당 장면의 감정들이 보이고 무엇보다 <컨저링>시리즈에서 "로레인"의 능력이 "영매"이기에 "이거다!"라고 정해둔 상태라서 맥이 빠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1차적인 해석, 조금만 더 풀었으면...
변화의 시도가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만들었다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는 어땠을까요?
해당 영화를 먼저 챙겨 본 다른 분들의 평가처럼 초반 오프닝은 강렬했습니다.
다만, 이후 보이는 공포들은 이에 못 치는 감이 있어 금방 피로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 연출이 "점프 스케어", 즉 깜짝 놀래는데 주력을 든 것이 클 겁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를 풀어가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포는 없더라...
이전 <어른들을 몰라요>의 리뷰에서 풀었듯이
"사람들이 많이 오인하는 것은 아이를 임신함으로 모성애가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지만, 이때 사람이 가지는 감정은 공포입니다. 자신의 몸을 숙주 삼아 끊임없이 성장하고 이내 밖으로 나오는 건 암과 같은 질환과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요. 소재를 바꾸어 '스킨십'과 '감염'에 대해서도 비교해도, 이 역시 똑같습니다. 흔히, 연인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낌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데 이는 아기가 엄마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절은 '비대면'과 '비접촉'입니다. 좀비 영화에서도 깨무는 것을 비롯해 침과 피와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과 감염도 한 끗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는 해석처럼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사랑도 충분히 공포로 해석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극 중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워렌 부부"도 있지만, 살인을 저지른 남자친구를 믿어주는 연인이야말로 공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가 이를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됩니다.
4. 아이디어는 많았는데...
결국, 1차원적인 해석에 그친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인상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겁니다.
그만큼 감정에 기댄 나머지 무서운 장면도 무섭게 느껴지지 못한 건 <컨저링>을 떠나 "공포 영화"로서의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말로 들릴 겁니다.
물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가 보여준 시도들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오컬트 호러 시리즈에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접목해 관객들의 몰입을 도왔다는 점과 "사랑"과 "공포"라는 감정의 연결 지점을 생각하면 시리즈에서 가장 신선한 속편입니다.
다만, 시도에 비해서 결과물이 시원찮았다는 것이 그렇지만요.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파천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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