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4-03-07 22:07:12
냉정과 열정 사이
냉정과 열정이 공존하는 사랑? 냉정과 열정사이 감상
냉정과 열정 사이.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진실이 사랑했던 두 사람, 결별 이후 남자는 이탈리아 유학에 오르게 된다.
어느날 우연히 이탈리아에서 전애인을 발견한 남자는 그 여자에게 연락을 취해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일본에 와서도 계속 생각나는 그녀, 남자는 용기를 내 그녀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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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감성이 나랑 맞지 않는달까.
90년대 ~00년대 초반까지의 일본 영화 특유의 필름질감과 분위기는 그 어떤 다른나라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서 좋지만서도,
영화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들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과 행동 그리고 혐오때문에 가끔은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도 그렇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피렌체와 밀라노를 보여주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주인공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만의 고고한 사랑을 위해 다른사람의 사랑과 진심 그리고 인격까지 무시하는 연출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조성한다.
여주인공이 현재의 남자친구를 대하는 방식도 옳지 않지만,
나는 남주인공 준세이가 자신의 여자친구 메미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싫었다.
위에서 나는 '여자친구'라고 언급하였지만,
그녀가 그의 여자친구가 맞긴 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녀는 그에게 그저 성적대상일뿐 제대로 된 인격체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는 그녀의 열렬한 사랑에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않으면서 그녀와 같이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그에게 그저 성적욕구해소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 공격적이고 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극중 준세이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가 울면서 나를 사랑하긴하는거냐고 소리칠 때, 그는 꿈쩍도 안하고 자기는 아오이를 더 사랑한다며 떠날때, 준세이가 정말 끔찍해보였다.
메미를 단 한번도 존중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준세이와 아오이의 '사랑' 이야기를 보니 달갑지 않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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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이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전부이다.
이 영화의 인상 깊은 부분은,
아오이와 준세이의 예의 없는 사랑과
극중 배경인 피렌체와 밀라노의 아름다움
그리고 사운드트랙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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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소설 원작인데 왜 불편하다고 중얼됨?"
이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일본 소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더 물으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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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영화보면서 피렌체, 밀라노 여행갔던게 생각나서 좋았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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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역사 속에서 피 흘리며 사라진 이들을 추모하다
돌아온 참전용사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오클라호마에 다시 돌아온 남자 어니스트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미국 오클라호마. 1900년대 초 미국은 인디언 오 세이지 부족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하지만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오클라호마에 석유가 터진 것이다. 부자가 된 원주민들. 다른 부족의 원주민들과는 다르게 오세이지 부족은 엄청난 부를 누린다. 현대문명을 정면으로 누리는 오세이지 부족. 전쟁도 끝났으니 돈 쓸 일만 남았다.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하는 윌리엄 킹 헤일이다. 조카 어니스트를 불러들인 킹. 두 사람이 연락을 자주 하던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킹이라고 불러.”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킹. “너 여자 좋아하냐?” 격식 없는 몇 마디를 나눈다. 어니스트는 격하게 답한다. “당연하죠.” 킹 헤일의 입에서 신기한 말이 나온다. “너. 오세이지 부족 중에 돈 많은 ‘몰리’라는 애가 있어. 걔랑 결혼해 봐라.” 마침 어니스트는 택시 운전사로 취업했다. 몰리? 기억이 난다. 몰리라는 여자는 어니스트의 단골손님이었다. “아. 그 여자 제 단골이에요.” 몰리에게 접근하기로 한 어니스트. 어니스트의 인위적인 로맨스 이면에 깔리는 살인사건들이 있었다.
아이리시맨
이 영화는 그동안 마틴 스코세이지가 유지해 온 영화의 톤을 유지하고 있다. <비열한 거리>부터 <아이리시맨>까지 마틴 스코세이지는 미국의 흑역사를 들추고 조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대표작인 <택시 드라이버>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 망상에 사로잡히다가 몇 명을 살해하고 미국사회의 히어로가 된다. 이 트래비스 비클 서사는 20세기 중반의 미국과도 겹쳐 보인다. 냉전이라는 이념 대립이 망상이라는 정신병력과 대치되고, 살인이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으로 비유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주인공이 ‘베트남전 참전 도중에 얻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사회가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영화가 지적한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누아르/갱스터 영화를 만들며 미국사회의 단면을 폭로한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선 돈이라면 영혼까지 바친 미국사회의 자본주의를 조롱하고, <아이리시맨>에선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톺아보며 이민자들과 마피아들과의 관계를 비튼다.
이 <플라워 킬링 문>은 역시 미국의 어두운 역사 한 장면을 들춰낸다. 오세이지 족을 착취하고 부숴버렸던 미국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삼았다. 이 소재를 위해 두 가지 연출법이 사용됐다. 첫째로 비극과 시대배경과의 상관관계다. <아이리시맨>에서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지미 호파라는 인물이 전국구적인 인기도를 끈 환경이었다. 이 환경에는 대공황이라는 시대 배경과 마피아라는 집단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인물들의 전락극을 보면 이 두 요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전적으로 감독이 의도한 바다. <플라워 킬링 문> 역시 오세이지족의 강제이주와 인디언들을 차별하는 시대배경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서 극 중 등장인물이 사망한다. 사망했으니까 관을 짜야한다. 이때 관련 업자가 오세이지 족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묘사가 있다. 미국인들이 오세이지 족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사용되는 부분이나 극 중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보면 ‘이 일 이면에 깔린 것’때문에 영화 플롯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둘째로 영화의 톤을 잔잔하고 건조하게 짰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이리시맨>과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경력이 50여 년이 넘는다. 이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백인들의 악행을 더 뜨겁고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다. 영화는 극적인 고양감 없이 악행들을 묘사한다. 이는 악행이 주인공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인물들의 악함을 보여주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 장면을 잔인하거나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면 이 영화의 핵심이 범죄 그 자체가 되어 작품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플라워 킬링 문
이 영화의 원작은 논픽션 소설 <플라워 문>이다. 이 책은 논픽션이라는 특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게 실화라고?'를 충격적으로 전달하려면 역시 장르는 미스터리/스릴러물이 적당하다. 잘 읽힌다는 뛰어난 가독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물음표 투성이었던 오세이지 족 연쇄 살인사건을 탐구한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톰 화이트라는 인물이다. 극 중에는 톰 화이트라는 인물의 비중이 크지 않다. 하지만 책에서는 중요한데, 저자 데이비드 그랜이 장르적인 재미를 잡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고른 것으로 보인다(또 책에서는 에드가 후버를 위시로 한 FBI라는 집단을 소재로 쓰기도 했다).
이 영화는 영화가 인물의 마음을 보여줘야 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이용한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에게는 각기 다른 아이러니가 있다. 삼촌 헤일은 스스로의 내면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인물이 원주민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이해가 된다. 대표적으로 극 중 인물 중에 누군가가 사망하고 난 다음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킹은 영화의 모든 전후사건을 통제하면서도 유일한 변수를 만드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또 후반부에서 어니스트가 특정 인물들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을 보면 이 인물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타인에게까지 옮겨간다는 특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잘 아는 킹과는 다르게 어니스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점이 많은 인물이다. 어떤 식으로 의문점이 많은지는 사실상 영화의 핵심이 되어 후반부까지 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자기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나도 어려운 어니스트. 끊임없이 고뇌하고 생각하지만 어니스트는 이 상황들을 돌파할만한 힘이 없다. 어니스트를 둘러싼 또 다른 딜레마는 아내 몰리에 관한 것이다(이 부분은 여러분이 직접 보시길 바란다). 두 딜레마는 이야기를 이끄는 미스터리가 된다. 당연히 미스터리를 받아줘야 할 주인공이 필요하다. 이 무력감을 디카프리오라는 명배우가 표정연기로 보여준다. 이는 책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영화의 가시성이 가진 힘이다.
탐구하는 카메라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각본이다. 영화를 끌고 가는 두 가지의 흐름이 흥미롭다. 첫째로 어니스트 서사다. 어니스트라는 인물에게 중요한 건 몰리와 자식들이다. 주인공은 가족들을 지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지키는 방법에 대해 영화가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다. 삼촌 킹 헤일이 조카(어니스트)에게 지시하긴 하지만 어니스트는 이에 대해 더 캐묻거나 '이게 진짜인가?'확인하지 않는다. 간단한 설정 같아 보이지만 이 부분은 영화의 핵심과도 닿아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메시아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어니스트가 자기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건 적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게 선한 일이라고 영화가 규정짓는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기도 모르는 일을 벌이고 있고, 영화도 이것이 어떤 일인지 모른다. 마치 백인이 인디언들에게 도움이 된 적이 있을까?라고 관객에게 묻는 것처럼.
둘째로 이 영화의 나긋나긋한 템포를 살린 이야기 전개가 흥미롭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 26분이다. 200분에 다다르는 장대한 분량이다. 눈을 확 잡아끄는 사건이 있으면 집중이 쉬울 텐데, 초반부는 이야기의 진상을 일일이 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비슷하게 영화에서 범죄가 일어날 때 촬영한 방식을 보면 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범죄/수사물 장르 형식을 띠고 있는 것 치고는 희귀한 케이스다. 이 빠르고 강한 전개 대신 카메라가 선택한 것은 일상성이다. 오세이지족이 더듬거리면서 카메라를 만지는 장면, 킹 헤일과 어니스트가 잡담 나누는 장면, 어니스트가 차 운전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일상성의 묘사는 주인공 어니스트와 몰리의 내면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화가 둔 수로 보인다. 이 영화 자체가 두 사람의 내적 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영화의 핵심과도 닿아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를 담기 위해서 관객은 카메라와 같은 시선에 놓인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템포가 느린 것이다. 영화는 이 느린 템포를 바탕으로 단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논픽션 여부를 떠나) 이야기의 중심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천천히 폭력에 스며들어간다. 물론 영화가 폭력 묘사를 게을리 한 건 아니다. 폭발이 일어나는 몇몇 장면은 끔찍하다. 하지만 이 폭력 묘사보다 영화의 후반부가, 또 초반부의 어니스트, 몰리의 모습 그리고 사라져 간 오세이지 족이 기억에 남는다.
곰 때려잡은 지 7년 차
이 영화에서 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릴리 글래드스톤이 보여준 연기는 탁월하다. 세 사람 모두 아카데미 후보군에 충분히 오를 수 있을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은 주사에 관한 부분이다. 거기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특유의 화내는 연기가 아닌 신선한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어니스트라는 인물이 가진 역설적인 모습이 여기 다 드러난다. 또 디카프리오는 발음, 발성도 평소와는 영 다르다. 얼굴 이목구비 구조도 우리가 알던 모습과는 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인물 자체가 기존 디카프리오가 맡던 배역들 중에서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이런 연기법이 더욱 두드러진다. 몰리 역을 맡은 릴리 글래드스톤은 분기점이 되는 연기를 보여준다. 한 지점에서 인물의 성격이 변하며 영화의 흐름이 바뀌는데, 이야기에서 이 장면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영화를 2 회차하게 되면 눈에 띈다. 이 인물은 모순되지 않음이 핵심인 듯하다. 겉과 속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양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후반부 두 인물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특히 그렇다. 이 사람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해 온 행적의 연장선상을 보면 이 인물은 그답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고, 이에 흐트러짐이 없다. 악함을 새롭게 해석한 베테랑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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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룩 업> 진짜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박사는 한 혜성이 100% 확률로 지구와 직접 충돌할 것이라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이에 두 사람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의 집무실 방문부터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토크쇼 출연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대 IT 기업의 회장 '이셔웰(마크 라이런스)'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진실을 곡해하며 극심한 갈등을 빚고, 그 사이 지구와 인류는 하루하루 종말에 가까워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돈 룩 업>의 겉모습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전작인 <빅쇼트>와 <바이스 중 후자와 매우 유사하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부통령(vice president)이었던 딕 체니를 '악(vice)'으로 규정하고 신랄하게 비꼬았던 <바이스(Vice)>처럼 <돈 룩 업>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당장 올리언 대통령이 철저히 표에 따라 혜성에 대비하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이나 정치적 능력이 전무한 아들 제이슨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트럼프의 포퓰리즘 정책과 가족 인사에 대한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올리언이 명백한 자연재해인 혜성의 접근을 부정하는 것도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력을 평가절하했던 그의 실책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룩 업>을 정치 풍자 영화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정치 비판은 외관과 달리 단순히 한 개인의 실정을 비난하거나 좌우 진영 논리에 빠지는 대신, 더욱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때문이다. <돈 룩 업>이 진정으로 문제시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 사회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각의 기능에 따라 분화된 현대 사회의 시스템들 사이에 가교가 부재한 현실의 결점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각자 고유한 기능을 전담하는 시스템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중세 시기만 하더라도 사회의 모든 기능은 종교와 도덕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치와 법, 경제, 문화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신성하지 못하거나 악마적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은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렇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나 도덕은 부정선거, 주가 조작, 논문 표절, 스포츠 선수의 도핑처럼 정치, 경제, 법의 시스템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렇지 않은 경우 각각의 시스템은 철저히 자신의 영역 내에서만 작동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권력의 크기와 경제적 이윤이 직접 연관될 수는 없으며, 돈이 많다고 재판에서 무조건 이기지는 못하며, 정치적 이유로 예술 창작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
문제는 이처럼 독립된 시스템들이 각자 영역 내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 전체 사회 구조의 유지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협력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경제나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는 암호화폐의 등장과 같은 새로운 혁신이 발생하고, 학문이나 문화의 영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각 시스템 간의 소통의 부재는 법과 정치의 시스템이 그 변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게 하며, 더 나아가 빠르게 발전한 시스템이 뒤처진 시스템의 기능을 침범하게 한다. 그 결과 현실에서는 자본이 사회적으로 유일한 진리가 되거나, 정책 설계에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보다도 정치적 유불리가 중시되는 등 사회 전체의 구조가 무너진다. <돈 룩 업>은 바로 이 대목을 풍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하려 한다.
실제로 <돈 룩 업>은 사회적 시스템 간 소통 부재와 그로 인한 문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혜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게이트와 민디 박사가 올리언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민디 박사가 천문학적 용어를 동원해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말해도 정작 해당 언어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전무한 백악관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그저 평온하다. 참다못한 케이트가 지구와 혜성이 부딪히면 모든 생명체가 죽을 것이라고 가장 쉬운 방식으로 경고해도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과학적 발견은 정치의 시스템 안에서 철저히 득표를 위한 수단으로 치환되고, 실질적으로 정치인과 과학자 간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과학자는 언론인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반응에 실망한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차선책으로서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 여론을 움직여 보려 한다. 그러나 토크쇼에서는 그들의 발견을 그저 수많은 가십 중 하나로 취급할 뿐이다. 정작 토크쇼에서 건져낸 것은 아무도 그 진실과 미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 경악하고 분노한 케이트를 조롱하는 각종 밈과 짤, 그리고 랜들의 외모에 주목하는 인기에 불과했다. 신문사에서도 자체적인 팩트 체크를 이유로 그들의 과학적 발견을 기사화하는 것을 거절한다. 이에 더해 과학과 경제, 정치와 시민사회 사이에서도 시스템의 소통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다. 혜성 충돌마저도 경제적 효용으로 계산하는 거대 IT 기업의 회장 이셔웰은 민디 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는다. 정부가 좀처럼 혜성 관련 정책 변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의심이 자라나고, 이는 폭동으로 이어진다.
과학의 영역 안에서도 세부 분과별로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케이트의 발견을 두고 나사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나, 이셔웰이 혜성을 파괴하고 혜성에 존재하는 여러 광물 자원을 활용할 대책으로 제시한 신기술이 동료평가(peer review)도 거치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진정한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심지어 종말이 임박한 순간 올리언 대통령이 아들인 제이슨 비서실장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위에서 열거한 모든 문제점을 한 장면에 함축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가 후반부에 종교적 심성으로 회귀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민디 박사의 가족과 친구가 모두 모여 마지막 식사를 할 때, 그들은 모인 이들 중 종교를 믿는 이가 없는데도 케이트의 남자 친구인 '율(티모시 샬라메)'의 도움을 받아 신에게 기도한다. 이는 기도하는 방법도 모를 만큼 과거와 달리 탈종교화된 현대 사회의 일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개선하지 않으면 현대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모든 체계가 실패하고 끝내 종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은 혜성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자연재해나 특정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막을 수 있는데도 막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체계적 문제라고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 룩 업>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장점이 잘 발휘된 작품이자 <바이스>보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을 착실하게 추적한 <빅쇼트>에 가까운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빅쇼트>는 비판의 대상을 철저히 미국 경제 시스템의 모순과 병폐에 국한한 영화였다. 애덤 맥케이 감독은 특정 개인의 사악함이나 불행함에 초점을 두고, 악한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거나 분노를 터뜨리며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길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케이트 블란쳇이나 티모시 샬라메처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들을 제각기 언론인, 정치인, 과학자와 같은 조연으로 캐스팅한 선택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여러 스타 배우의 존재가 특정 캐릭터에게 쏠릴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영화는 친숙한 스타의 얼굴을 통해 정치, 언론, 과학, 경제와 같은 서로 다른 시스템 간의 단절된 관계성을 직관적으로 제시하고 메시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다만 몇몇 단점으로 인해 사회적 시스템 자체를 풍자하려는 <돈 룩 업>의 의도는 다소 희석되는 감이 있다. 일단 과학자들이 재난을 경고하며 울분을 토한 뒤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무시하는 전개가 몇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것은 결코 짧지 않은 영화의 러닝타임(139분)을 고려할 때 다소 과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애덤 맥케이 감독이 SNL 작가로 일한 경력이 있는 만큼 이는 SNL의 한 코너를 가능한 길게 늘여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토크쇼 출연처럼 전체적인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으로 인해 극의 집약도와 완성도를 전체적으로 하락시킨다.
또한 앞서 보았듯이 지나치게 일차원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풍자의 방식도 호불호가 갈릴 여지를 남겨놓는다. 해당 묘사 자체는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영화의 주제와 통찰에 쏠려야 할 주의와 관심이 분산되면서 영화의 의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면 공감할수록 그 전달 방식은 역으로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애덤 맥케이 감독 특유의 코미디 연출 센스, 시간선을 꼬아놓는 식의 화려한 편집과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가 만난 케미스트리보다 크지는 않기에 <돈 룩 업>은 여전히 호평이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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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같이 달콤한 꿈을 향해 나아가기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절망을 주기도 한다. 쉽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 꿈이 막혀버리기 쉽고 다시 일어나 도전하기까지 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오기 전에 일반적으로 꿈은 우리에게 달콤한 환상을 준다. 꿈을 이룬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달콤함을 느낀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 달콤함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과 계기를 찾으려고 애쓴다.
꿈은 초콜릿과 닮았다. 한 입 베어 물고 입안에서 녹는 초콜릿의 맛이 느껴졌을 때 느껴지는 달콤함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그렇게 달콤함을 느끼면서 주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다. 마치 힘든 삶의 감초처럼 초콜릿은 모든 이들에게 달콤함을 선사한다. 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꿈을 꺼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이야기를 할 때 마치 그 꿈을 이룬 것 같은 달콤함이 느껴진다. 심장은 두근두근 뛰고 몸 안에 도파민이 퍼지며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초콜릿과 꿈의 달콤함이 영화 <웡카>에 가득 담겨있다.
첫 번째 감정 - 웡카의 설레임
윌리 웡카(티모시 샬라메)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맨 첫 장면 배를 타고 새로운 도시에 입성하는 장면부터 웡카는 자신의 꿈이 모두 이루어질 거란 생각을 한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이 만든 초콜릿으로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긍정성을 드러낸다. 긍정적인 말을 뱉으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웡카가 자신의 목표에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전달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강하게 믿는다는 것이,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바보 같은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웡카의 자신감은 그가 무언가를 이룰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웡카가 도착한 도시는 쉽지 않다. 첫날부터 웡카가 가진 돈을 쓰게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물가는 비싸다. 하지만 웡카가 가진 설레임은 그 모든 걱정을 날려버릴 만큼 강력하다. 자신이 만든 초콜릿을 처음 세상에 내놓을 거라는 꿈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는 것은 웡카를 더욱더 설레이게 한다. 이런 웡카의 설렘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그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는 관객들 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웡카를 돕는 인물들에게도 전달되어 꿈을 위한 도전을 하게 만든다.
결국 꿈을 향하게 하는 건 그 꿈이 이루어질 때의 설레임 때문이 아닐까.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최악의 상황에 놓이지만 웡카의 설레임에 공감하면서 그 설레임을 꿈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달콤한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해 돕는 것이 결국 그들 모두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설레임의 힘이다.
두 번째 감정 - 웡카의 그리움
웡카는 돌아가신 엄마(샐리 호킨스)를 그리워한다. 늘 엄마표 초콜릿을 먹으며 행복함을 느꼈던 웡카는 늘 엄마가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마치 그 초콜릿이 엄마인 것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자신이 맞이하는 도전적인 순간과 환희의 순간들을 함께한다. 그런 중요한 순간이 시작되기 직전 늘 월카는 혼잣말로 주문처럼 이야기한다.
엄마 한 번 해볼게요. 잘 보세요!
마치 마법처럼 웡카가 자신의 초콜릿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모습은 무척 자신감이 넘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치 엄마가 지켜보는 것처럼 웡카의 마음속엔 늘 엄마라는 존재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웡카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감정이자 위기에 빠져도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또한 무엇보다 웡카는 엄마가 초콜릿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알고 싶었지만 결국 엄마에게 듣지 못한 채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미 웡카는 최고의 초콜릿 제조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가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좀 더 완벽한 초콜릿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을 만들어낸다. 그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엄마표 초콜릿의 맛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완벽한 맛이었기 때문이다.
웡카가 그리워하는 엄마는 웡카의 꿈을 만들어준 인물이면서 완벽한 스승과도 같다. 그래서 웡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에너지를 초콜릿 연구에 쏟아내고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완벽한 초콜릿을 세상 사람들에게 선사해내고 만다. 어쩌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 웡카에게 그런 완벽한 꿈을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감정 - 초콜릿 회사 사장의 두려움
영화에는 기존 초콜릿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심에 서있는 슬러그워스(패터슨 조셉)는 처음부터 끝까지 웡카가 도시에서 초콜릿을 팔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초콜릿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이미 엄청난 성공을 한 그는 웡카가 만든 초콜릿을 먹어본 이후, 웡카를 도시에서 몰아내려 무척 노력한다. 사실 슬러그워스는 웡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세고 성공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웡카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용납하지 못한다.
슬러그워스는 왜 그렇게 두려움에 빠져있는 걸까. 그는 이미 경쟁회사의 사장들과 연합해서 도시의 모든 초콜릿을 독점 공급하고 있었다. 경쟁사의 사장들과 연합하면서 다른 작은 경쟁사들을 배제하기로 담합한 것이다.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콤한 초콜릿에 빠져있는 그 상황에서 새로운 경쟁자의 유입은 그들의 입지를 줄일 수 있으니 더욱더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초콜릿의 맛이 웡카가 만든 것보다 떨어졌으니까!
슬러그워스의 두려움이 강력한 힘으로 표출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약점을 드러낸다. 돈과 초콜릿으로 많은 사람을 매수하여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만, 자신들만의 순수한 꿈을 가지고 있는 선한 사람들에게 그것이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슬러그워스를 포함한 초콜릿 회사 사장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계속 표현했다고 느껴진다. 영화의 초반, 초콜릿 판매매장이 있는 거리에서 웡카가 자신의 초콜릿을 판매하려고 노래를 부르는 그때, 각자의 매장에서 웡카를 보는 그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두려움을 볼 수 있었다. 이후 그 두려움이 영화 내내 표현된다. 결국 그 두려움은 그들을 몰락시킨다.
영화 <웡카>는 꿈에 대한 동화다. 꿈이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설레임을 느낀다. 그리고 어려움이 앞에 닥쳤을 때, 과거의 어떤 순간이나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하며 상황을 돌파할 힘을 얻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두려움을 맞는다. 꿈을 이루어내는 그 모든 과정이 지나고 나서, 그 꿈이 진짜 이루어졌든,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든 어쨌든 우리 모두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영화 속 웡카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 힘을 합쳤던 것처럼 우리도 친구들과 함께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 모든 감정들과 함께. 무척이나 긍정적인 감정들로 가득한 초콜릿 같은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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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풋한 청춘들이 연주하는 낭만 그 잡채!
2004년 극장에서 만난 여고생들의 음악에 흠뻑 빠졌다. 우연히 접한 밴드 악기의 재미를 알게 된 이들이 누구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혼자 배우는 재미에 빠진다는 설정, 그리고 조금씩 성장하며 어엿한 빅 밴드의 위용을 갖추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졌다. 엽기발랄한 소녀들의 코믹함은 덤. 개봉 20주년을 맞이해 재개봉을 한 <스윙걸즈>는 시간이 멈춘 듯 그 매력이 변함없었다. 풋풋한 청춘들이 연주하는 낭만도 마찬가지였다.
여름방학에 보충 수업이라고? 공부와는 담쌓고 사는 13명의 여고생은 학교를 탈출할 생각밖에 없다. 하늘이 도운 걸까! 합주부가 두고 간 도시락을 전해줘야 하는 상황에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땡땡이를 감행한다. 더운 날씨에도 기분 좋게 도시락 전달한 이들. 하지만 그 도시락을 먹은 합주부 전원은 식중독에 걸린다. 소녀들은 수업을 빠지기 위해 합주부를 대신해 악기를 잡고 재즈의 세계에 입문한다. 허나 예상 보다 빨리 합주부원들이 돌아오고, 이들은 다시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는 상황. 근데 마음이 달라졌다. 잠시나마 경험했던 재즈에 재미를 붙인 것. 이들은 일명 ‘스윙걸즈’를 만들고 중고 악기를 구매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악착같이 돈을 번다. 그리고 수 없이 연습을 한 후, 대망의 첫 공연을 시작한다.
<워터보이즈>에서 남고생들에게 수중발레를 시켰던 야구치 시노부는 <스윙걸즈>에서는 여고생들에게 재즈 연주를 시킨다. 소재와 성을 바꿔 우연한 기회에 접한 것에 재미를 느껴, 끝까지 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린 감독은 성장의 과정과 멋진 결과물을 스크린에 수놓는다.
후반부 멋진 연주 공연도 좋지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등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부르며,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실제 영화 캐스팅은 전국 대상으로 오디션을 통해 진행되었고, 그중 13명이 선출되었다. 재미있는 건 극 중 소녀들처럼 합격한 소녀들 또한 연주 초보였던 사실. 크랭크인 세 달 전부터 함께 합숙하면서 악기 연습에 매진했는데, 이 과정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영화는 소녀들의 도전에 초점이 맞춰진다.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어렵게 아르바이트해 산 중고 악기를 들고 공원, 하천 등 인적 드문 곳에서 홀로 연습하는 장면이다. 누가 하라고 해서 연습하는 게 아닌 진정 자신이 좋아서, 잘하고 싶어서 시간을 내어 악기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멋지다. 대중음악도 아닌 소수의 마니아가 좋아하는 재즈이며, 대학 입학에 가산점이 붙는 것도 아닌데, 이 소녀들은 복잡한 계산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다. 그냥 자신이 맡은 악기를 마스터하고, 함께 멋진 협주를 하고 싶은 생각에 오롯이 앞으로 직진한다. 이런 소녀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낭만 그 잡채다!
어른이 될수록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데,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우리 안에 없어지는 건 삶의 재미와 낭만이다. 그 시절 일본 성장 영화의 원형처럼 불리던 이 영화에는 우리의 삶에 빈 곳을 메워주듯 유독 청춘이란 시간에서 번지는 낭만을 그린다.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냥 좋아하는 걸 함께하는 그 순간. <스윙걸즈>는 지금은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낭만의 시간을 소환한다.
여기에 영화의 감성을 완성해 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우에노 주리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로 잘 알려진 우에노 주리는 극중 테너 색소폰을 잘 불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토모코 그 자체다. 연주는 물론,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이들에게서 빚어지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넘쳐난다. 이 밖에도 트펌펫을 연주하는 칸지야 시호리, 트럼본의 모토카리아 유이카, 드럼의 토요시마 유카리 등 소녀들의 매력도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스윙걸즈>는 제28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각본상, 음악상, 녹음상, 편집상 수상 등 대중은 물론, 평단에도 큰 사랑을 받았다. 2004년 국내 개봉 당시 내한한 우에노 주리는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것에 몰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말은 유효하다. 모두 스윙에 몸을 맡기고 소녀들의 낭만 연주에 취해보자.
덧붙이는 말: <스윙걸즈> OST는 재즈 입문서나 다름없다. ‘Sing Sing Sing’은 물론, ‘Mexican Flavor’, ‘In The Mood’, ‘Comin’ Through The Rye’, ‘Moonlight Serenade’ 등 한 번쯤은 들었던 재즈 명곡들이 가득하다. 소녀들과 함께 재즈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자. 스윙에 몸을 맡긴 채~~
사진제공: (주)팝엔터테인먼트
평점: 3.5 / 5.0
관람평: 좋아서 하는 소녀들의 밴드 생활, 낭만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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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즘을 내세우다 길 잃은 수녀들!
수녀가 구마를 한다? <검은 수녀들>은 이 콘셉트만으로도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비슷한 이야기 루트로 흘러간다고 해도 신부가 아닌 수녀가 악령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는 건 관객으로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검은 사제들>의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파묘>가 불을 지핀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붐을 또 한 번 이어 나가겠다는 영화의 야심은 그 당위성이 충분한 듯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 초반 가져간 특장점을 오롯이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검은 수녀가 뜨면 악마도 벌벌 떤다. 일명 검은 수녀라 불리는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소년 희준(문우진)의 몸에 숨어든 악령에게 성수를 들이부으며 한판 대결을 벌였지만,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소년의 몸에 숨어든 악령이 12형상 중 하나라 확신한다. 어떻게든 희준의 몸에서 악령을 쫓아내려는 유니아와 달리, 구마를 믿지 않는 소년의 담당 의사인 바오르 신부(이진욱)는 과학과 의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더 이상 지체하면 소년의 몸이 악령에게 잠식되는 건 시간문제. 유니아는 바오르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 수녀(전여빈)와 함께 직접 구마를 하기 위해 우진을 빼돌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가장 중요한 건 휴머니즘이라 생각했다”
<검은 수녀들>은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이 장르의 외피를 쓴 휴머니즘 영화다. 연출을 맡은 권혁재가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듯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중점은 악령과의 힘겨루기가 아닌 악령에 사로잡힌 이를,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고군분투에 있다.
유니아 수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바로 ‘살려야 한다’다. 그녀가 구마 의식을 직접 거행하는 것도, 연이 있는 무당에게 데려가 굿을 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아는 그녀는 소년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진한다. 소년만 살리는 건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미카엘라도 살린다. 귀태(鬼胎)로 태어나 원혼이 보이는 그녀는 이런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았는데, 유니아를 만난 뒤로 지우고 싶은 자신의 출신을 밝히고, 영적 능력을 받아들인다. 유니아 또한 악령의 소리가 들리는 영적 능력자로서 미카엘라를 본연의 삶으로 회귀시키고, 구원의 시간을 마련한다.
이렇듯 유니아를 통해 영화 전반에 깔린 건 모성애.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희생을 담보로 한 모성애다. 신부가 아닌 수녀라는 점,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감독은 유니아를 통해 이 부분을 강조한다. <검은 사제들>은 물론, 여타 오컬트 영화와의 차별화 포인트를 주기 위해 이같은 주제를 강조했는데, 이를 잘 활용했는지는 의문이다.
감독은 모성애를 근간으로 한 휴머니즘을 부각하지만 일차원적인 여성성에만 의존한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모습, 같은 위치에 놓인 여성들의 연대를 이야기 하는 건 좋지만, 수녀(또는 여성)라서 안 된다는 식의 논리가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새로움은 덜하다. 더불어 악령의 입에서 내뱉는 여성 비하적인 발언 등 또한 구마 의식의 긴장감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컬트 장르적 재미도 덜하다. <검은 사제들>과 비교했을 때, 구마 의식 자체가 너무 느슨하고, 성수를 들이붓는 것 외에 특이점이 없는 행동들은 박진감을 떨어뜨린다. 수녀가 행하는 구마 의식이라는 특장점을 좀 더 다양하게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속신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은 있지만, 활용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나마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 건 송혜교, 전여빈의 연기다. 1.66대 1로 좁게 찍은 영화에서 이들의 얼굴은 보다 더 크게 보이는데, 이에 따라 두 배우의 감정 연기는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종교적, 사회적 억압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일을 행하는 송혜교의 강단(물론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생각나지만), 내·외면의 공포와 사투를 벌이는 전여빈의 감정 연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시감은 들지만, 무당 역을 맡은 김국희 배우의 연기도 인상깊다.
오컬트 무비, 특히 엑소시즘 영화에서 두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부분이 잘 살지 못하고, 평이하게 흘러가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아쉽다. 구마의식을 하는 수녀들은 흔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검은 사제들> 이후 이 세계관이 계속 이어 나간다면 다음 구마 의식은 아가토 신부(강동원), 미카엘라 수녀가 담당하게 될 듯. 다음 작품엔 꼭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사진 제공: NEW
평점: 2.5 /5.0
한줄평: 휴머니즘을 내세우다 길 잃은 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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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없을 때 불안감이 만드는 모습
우리 사회에서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만 의미하지 않는다. 집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투자의 대상이 되었고 부를 상징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리려 하고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한참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부터 집값은 빠른 속도로 뛰었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하나 마련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돈을 벌어 저축해야 했다. 그렇게 저축해서 집을 사는 기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져만 갔다. 그렇게 집에 대한 인식이 투자의 수단으로 변하면서 절망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집 한 채를 사기도 버거웠다. 집값이 오르면서 전셋값과 월세값도 늘어났다. 그렇게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인식 전환에도 불구하고 집은 우리가 가장 편하게 쉬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집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집을 사지 못하더라도 전세나 월세로 지낼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더 심각한 절벽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곰팡이로 가득한 집에서 생활해야 하거나 아주 작은 평수의 공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공간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족과 살아가야 한다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좀 더 나은 공간으로 가고 싶지만 당장은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이들은 매 순간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보증금 사기로 살 집을 잃어버린 부부의 이야기
영화 <홈리스>는 보증금 사기를 당해 집이 없는 처지에 있는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보증금을 잃은 후 한순간에 갈 곳을 잃었다.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하지만 매일 쉴 공간을 찾기 벅차 보인다. 그들에게는 갓난아이가 있다. 그래서 이 가족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당장 생활비도 부족한 그들에게 보증금이 있는 월세집은 바로 들어가기 어렵다. 초반에 영화가 비추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 우울해 보인다. 그래도 한결은 배달 일을 하며 하루하루 일당을 받고, 고운은 아이를 케어하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들은 도움받을 가족도 마땅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제도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마땅치 않다.
한결과 고운 부부의 고민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겪는 주거 문제를 좀 더 극적으로 영화에 담겼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조금씩 최악의 상황으로 빠진다. 사기를 당한 상황에서 아이가 다친다. 안 그래도 돈이 부족한데 돈이 필요한 일이 자꾸만 생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려 겨우겨우 하나의 상황을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에 또 다른 문제가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집이라는 안락한 공간은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하지만 여전히 집값은 높고 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만의 집을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좀 더 공격적으로 투자를 시도한다. 코인이나 주식에 들어간 돈이 불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순간에 그 돈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대부분의 자산을 잃은 그들에게 결혼이나 출산은 먼 일이다. 만약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영화 <홈리스>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들이 부정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자신들 만의 집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은 한 걸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우연히 알게 된 할머니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그 집에 대한 비밀이 영화에 미스터리 한 느낌을 만든다. 그들이 그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는 내내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불안감은 관객의 마음도, 주인공들의 마음도 오염시킨다. 이들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하지 못할 행동을 하나씩 하기 시작한다. 남편인 한결 뿐만 아니라 부인인 고운도 당장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합법적인 선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집은 생존을 의미하고 그 생존을 위해 마음속에 자리한 '도덕과 상식'을 포기한다.
집이 없다는 불안감을 부부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영화
이런 주인공들의 선택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들은 궁지에 몰렸다. 이 가족이 꿈꾸는 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영화의 말미 이들이 할머니의 빈 집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주 평범한 가정처럼 편안하게 보인다. 한결과 고운은 그들의 선택의 끝이 어떤 것일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충격적인 선택을 할 때마다 무척 마음이 무거워 보인다. 아이에게 자신들의 고통을 전달하지 않고 키우고 싶은 이들의 욕심은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한결을 연기한 배우 전봉석과 고운을 연기한 배우 박정연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을 선택을 하지만 한가닥 남은 양심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무척 잘 표현해냈다. 영화에서 이들이 고민하고 절망하는 순간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려고 뛰는 한결의 모습, 할머니 집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려고 할머니의 집을 버리며 멍한 표정을 짓는 고운의 모습은 이들의 절망감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영화 <홈리스>는 21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CGV 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일처럼 현실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사지 못해 절망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한 주거 공간은 가지고 있는 돈에 비례해 그 등급이 나뉜다. 혼자라면 어디에서라도 살 수 있겠지만 아이가 있다면 어느 정도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는 곳을 택해야 한다. 여기에 집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사건들이 무작위로 찾아온다. 어떤 방법으로도 구할 수 없는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이 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투자용으로서의 집도 요원하지만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에 다가서는 것도 무척 쉽지 않다. 영화 속 한결과 고운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마치 집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의 절망감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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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교사 안은영」리뷰ㅣ넷플릭스가 넷플릭스 했습니다ㅣ스포없음ㅣ드라마 리뷰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드라마 리뷰(*스포없음)
한줄평: 2화 중간까지는 엄청난 띵작이었지만
그 이후는... 음... 글쎄요ㅎㅎㅎ 샛별이 10화까지가 그립네요
#보건교사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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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 3> 공식 예고편
이번 학기,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세 번째 시즌, 9월 17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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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낙원의 밤>
《신세계》《마녀》박훈정 감독의
가장 섬세하고 우아한 감성 누아르낙원의 섬, 제주에 어둠이 내린다 《낙원의 밤》
4월 9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