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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2024-03-11 21:42:45

삶을 이야기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메이 디셈버(2024)



“왜 날 연기하고 싶어요?” “전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좋아요”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인 ‘그레이시’(줄리안 무어)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찰스 멜튼).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게 된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가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부부의 일상과 사랑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과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잇따른 질문들이 세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는데...

<메이 디셈버> 줄거리

 

 

그레이시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그런 면모가 자신의 자아가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진짜 튼튼해서 하는 말이 아닌 세뇌에 가깝다. 그레이시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자신과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통제하려 한다. 딸의 졸업식 드레스를 칭찬인 것만 같은 말로 자신의 취향으로 바꾸게 만들고, 조의 스케줄을 직접 관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자신의 주변을 휘젓고 다니는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견디지 못해하고 케이크 주문이 취소되자 컨트롤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해낸다. 이런 그레이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레이시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자신 주변의 환경들을 정적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데, 자신과 조의 과거 역시 벗어날 수 없다. 온갖 것들을 견딜 수 없는 그레이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현재 가족들과 행복하다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 주변과 자신을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존재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런 그레이시의 통제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인물은 바로 '조'이다.

 

 

20년 전 성인인 그레이시가 미성년자인 조와 사랑을 한 것은 분명 범죄이고 조는 피해자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조는 자신의 선택으로 그레이시가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조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그는 더이상 '그레이시'와 밀회를 나누던 중학생이 아니다. 그 사건 당시의 '그레이시'의 나이가 되었고, 세 아이들을 곧 독립시킬 예정인 아버지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른인 '그레이시'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하나 일러주고 허락해 줘야만 움직인다. 그레이스의 허락 내에서 살아가는 그는 아직까지도 중학생에 머물러 있는 걸까? 그런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바로 자식들의 독립이다. 곧 세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그레이시와 둘만 함께하는 미래를 고민한다.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그때의 중학생에서 성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그레이시라는 책임이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후의 삶도 그레이시와 함께 이곳에서 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오고 그와 계속 부딪히며 조는 과거를 다시 훑어보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는 정말 선택권이 있었을까, 이전까지의 삶이 어땠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등등 진작했어야 할 고민들을 이제야 하며 멈춰있던 20년의 세월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삶의 변화로 인해 더이상 제 안에 가둬둘 수 없는 상황은 그간 억눌려왔던 것들을 다 뱉어내듯 요동친다. 그레이시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조와 그레이시가 만들어둔 삶에서 벗어나 과거를 파헤치려 드는 조를 견딜 수 없는 그레이시는 부딪히고 균열된다. 그레이시가 꾸려낸 삶은 더이상 그레이시 본인조차도 연기인지 진짜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그레이시는 그것이 진짜라 믿고 조와 엘리자베스 등 외부에 존재하는 돌발 현상들에도 꿋꿋이 서있는다. 그리곤 비로소 자신이 맡을 역할인 그레이시를 전부 이해했다 여긴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들었던 나의 이야기는 거짓이며 나의 자아는 튼튼하다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인물 자체가 되기 위해 작품에서 다루는 실제 사건의 인물들인 그레이시와 조를 관찰하러 간다. 그는 그들의 바로 옆에서 질문하고 경험하며 그레이시의 전부를 자신에게 빙의시키려 한다. 엘리자베스는 끊임없이 '그레이시'를 아는 사람들, '그레이시'가 자주 다녔던 장소들을 계속 들쑤시고 다니며 그레이시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 한다. 그레이시가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끼어들고 사건 외의 자신의 모든 삶을 알아내려는 엘리자베스를 경계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기어코 조지에게서 그레이시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알아내고 자신이 비로소 그레이시를 완벽히 이해했다 여긴다. 하지만 떠나는 엘리자베스에게 그것은 거짓이라 말하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스의 속내와 실제 상태는 이러할 것이라 단정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의문에 빠지게 만든다.

 

 

촬영을 하며 계속해서 다시를 말하는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메이 디셈버>를 보던 관객들도 순식간에 의문에 빠진다. 방금 위에 쓴 글처럼 그레이시가 이러한 인물이라 결론 내렸는데, 이제는 의문투성이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왜 이 영화가 단순히 실화를 다시 재연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실화 속 인물들의 역할을 맡은 캐릭터가 그들을 관찰하고 따라가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잠깐 본 그레이시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 이해했다 말하는 엘리자베스는 영화 속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준 그레이시를 전체인 양 해석하고 그의 모든 것을 재단해버린 관객들과 같다.

 

 

왜 우리는 쉽게 단정 지어버렸을까. 영화 내에서 조는 그레이시와 자신의 일을 이야기라 말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건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건 우리들의 진짜 삶이라고. 남의 삶을 흥미로운 호기심이 드는 이야깃거리 취급해버렸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그레이시를 이해했다 여기고 관객들은 영화 속의 정보만으로 그레이시의 삶을 판단해 버린 것이다. 결국 엘리자베스의 연기는 그레이시의 범죄만으로 그의 삶을 떠들어대던 언론과 다를 바 없다. 짧은 글 하나로 전체를 판단하고 모든 삶이 이야기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다른 이의 삶을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메이 디셈버>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 .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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