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4-03-19 14:28:52
눈물나게 맛있는 엄마의 집밥처럼!
영화 <3일의 휴가>
눈물나게 맛있다! 특별한 재료도 들어가지 않는데도 엄마의 밥은 그 눈물이 아깝지 않도록 맛있다. 그 맛이 그리워 손수 해먹어봐도 이내 실망하게 되는 건, 엄마의 정성이 담긴 손맛이 빠졌기 때문. <3일의 휴가>는 눈물나게 맛있는 엄마의 집밥과도 같은 영화다. 엄마, 집밥, 추억, 그리고 눈물과 감동은 다소 올드해보이지만, 원래 아는 맛이 무서운 법. 이 작품은 변하지 않는 그 진리를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시간은 저승에서도 빨리가는가보다. 죽은 지 벌써 3년째를 맞이하는 복자(김해숙)은 지상에서 보낼 수 있는 3일간의 휴가를 받는다. 가이드(강기영)의 안내에 따라 우크라(UCLA) 대학 교수인 딸 진주(신민아)를 만나러 간 그녀는 기쁨 대신 당황한다. 미국에 있어야 할 딸이 자신이 살던 시골집에서 백반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 복자는 어떻게든 딸을 미국으로 보내려 하지만, 말도, 접촉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켜만 봐야 하고, 이런 복장 터지는 어미의 마음을 모르는 진주는 단짝 미진(황보라)과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추억에 잠긴다.
음악영화를 보면 음악이 나를 그리운 과거로 데려간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우리를 어떤 기억으로 데려간다.
<3일의 휴가>를 집필한 유영아 작가(드라마 <서른, 아홉>, 영화 <도그데이즈> 등)의 말처럼, 이 영화는 음식을 매개체로 우리들의 엄마를 소환하고, 잊고 지냈던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엄마의 음식, 그 안에 담긴 맛과 사랑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그 맛이 구수하다. <방가? 방가!> <나의 특별한 형제> 등 소외된 이들의 따뜻한 감성을 영화에 녹여냈던 육상효 감독은 죽음 엄마가 3일 동안 이승에서 딸을 만난다는 판타지 요소를 가미해 구수한 영화의 오감을 살린다.
애증의 관계라 불리는 극 중 모녀 이야기는 영화의 동력이자, 궁금증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복자가 죽은 뒤, 진주는 미국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시골집에서 사는데, 그 이유는 대외적으로 공황장애지만 결국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다. (복자 또한 진주에게 부채감이 있다.) 이들의 관계가 왜 소원해졌는지 플래시백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딸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복자의 모습. 그런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사랑을 받지 못해 서운하고 원망스러워 쌀쌀맞게 반응한 진주는 우리의 삶을 투영한 듯한 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의 아픔은 요리가 치유한다. 진주는 어렴풋이 생각나는 엄마의 레시피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복자는 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이 때 요리에 담긴 각자의 추억이 소환되는데,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당시 서로 몰랐던 감정을 알게 되고,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마치 마음 속 메워지지 않았던 구멍이 음식이 불러온 기억으로 메워진 느낌이랄까.
후반부로 갈수록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한 모성애가 올드함을 전하긴 한다. 이로 인해 초반 복자는 물론, 가이드와 미진의 위트와 유머가 쌓아올린 분위기가 반감된다. 그럼에도 영화의 모성애가 주는 감동은 크다. 특별히진 않지만 맛있는 집밥처럼, 매번 봐왔지만 끝내 눈물을 훔치는 모성애의 쓰임새는 적절한 모양새다. 여타 모성애를 강조한 영화 보단 과잉되지 않은 감동을 전한다.
극중 가이드는 휴가를 떠나는 복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휴가 동안 좋은 기억만 담고 오시면 됩니다”라고. 모성애 부분 등 태생적으로 가진 호불호 지점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사처럼 영화를 보면 엄마와의 좋은 기억이 샘솟는다. 영화 속 차려진 스팸 김치찌개, 만두, 잡채, 잔치국수 등은 아닐지언정 엄마와 함께 했던 한 끼 추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사진 제공: 쇼박스
평점: 3.0 / 5.0
한줄평: 올드한 모성애, 그럼에도 보게 되는 맛!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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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생일인 배우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0월 20일, 바로 오늘! 오늘이 바로 생일인 배우 분들이 여럿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오늘 생일인 배우가 나온 드라마 혹은 영화를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오늘 생일인 배우가 나온
드라마 혹은 영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이지현 배우, <안녕, 드라큘라>
ⓒ JTBC
synopsis
이대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마음이 한없이 약해질 때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둔 문제들이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물어뜯고 흔들어 대는 밤.
이처럼 각자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둔 문제를 드라큘라에 한 번 비유해봅시다.
긴긴밤, 우리가 이 강력한 드라큘라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cine pick!
퀴어 드라마로 성 정체성으로 인해 부모와 갈등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는 JTBC 단편 드라마이다.
허성태 배우 <오징어 게임>
ⓒ IMDb
synopsis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
cine pick!
백상예술대상,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에미상 등 국내외 유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오징어 게임>.
허성태 배우 역시 <오징어 게임>을 통해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에이판 스타 어워즈에서 수상했다.
허성태 배우 <범죄도시>
ⓒ 네이버 영화
synopsis
주먹으로 도시의 평화를 유지해온 형사 마석도와 반장 전일만이 이끄는 강력반은
신흥 범죄조직의 악랄한 보스 장첸과 그의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화끈한 소탕 작전을 세운다.
cine pick!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에서 <범죄도시>로 영화부문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한 허성태 배우.
"내 누군지 아니?"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현봉식 배우 < D.P>
ⓒ 현봉식 배우 인스타그램
synopsis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준호와 호열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
cine pick!
한국 군대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현실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은 <D.P.>.
디렉터스컷 어워즈, 백상예술대상, 청룡시리즈어워즈 등 유수의 시상식에서 수상했다.
하윤경 배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호두앤유ent
synopsis
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
cine pick!
많은 이들에게 하윤경 배우의 입덕 드라마로 꼽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하윤경 배우의 섬세한 연기를 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하윤경 배우 <경아의 딸>
ⓒ 네이버 영화
synopsis
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딸 연수는 독립한 뒤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가 유출한 동영상 하나에 연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버리고
이 사건은 잔잔했던 모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키는데…
cine pick!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 받으며 연출력을 인정 받은 <경아의 딸>.
하윤경 배우의 강점인 감정의 섬세한 연기 표현을 엿볼 수 있으며, 자연스러운 연기로
극에 몰입감을 선사한다.
서신애 배우 <여왕의 교실>
ⓒ MBC
synopsis
이 ‘레전드급 마녀’에 맞선 ‘명랑반장’ 심하나와 6학년 3반 친구들의 고군분투 도전기.
단순한 학교 이야기를 넘어선 예측불허 에피소드들 속에서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
그리고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 어른들에게 되묻는 2013년, 우리들의 이야기.
cine pick!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여왕의 교실>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특히 삽입곡인 초록비와 드라마 속 대사들이 주는 감동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드라마이다.
서신애 배우 <지붕 뚫고 하이킥>
ⓒ 옛드: MBC 레전드 드라마
synopsis
서울로 상경한 두 자매가 성북동 순재네 집 식모로 입주하게 되면서 이 집 식구들과 벌이는 유쾌한 에피소드를 담은 시트콤이다.
cine pick!
서신애 배우가 아역상을 수상했던 작품 <지붕 뚫고 하이킥>.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을 탄생 시켰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조회수가 오르는 작품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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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VS. 콩 - 훌륭한 메인 메뉴, 아쉬운 사이드 메뉴
한국에서 불모지에 가깝게 된 영화 장르 중에는 괴수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비평 및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주목받고 불타올랐지만, 이후 "7광구", "물괴"의 참패 이후 다시 사그라든지 오래다. 이렇게 한국에서 만든 영화 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 제작한 영화도 그런 경향이 보이는데,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질라"는 관객수 만 명도 못 모으고 퇴장하였고, 이번에 리뷰하는 고질라 VS. 콩이 포함된 몬스터버스의 전작 중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도 관객수 350,000만명 대 정도밖에 흥행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괴수물이 해외에 비해 유난히 부진하기에, 이번 고질라 VS. 콩도 어느 정도 힘을 보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예고편부터 조회수 7,600만회를 넘기는 등 많은 기대를 받는 것을 보아 대흥행까지는 어려워도 전작보다는 확실히 주목받겠다고 추측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기준(21년 3월 30일)으로 이미 관객수 35만명을 달성함으로서 전작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한국 관객수를 넘기는 것은 사실상 확정되었다. 본격적인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하자면, 고질라 VS. 콩은 괴수 매니아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 훌륭한 괴수물이다.
몬스터버스 작품들의 공통적인 비판점은 빈약한 인간들의 서사이다. 이러한 비판은 몬스터버스 작품 뿐만 아니라 타 괴수물에서도 대체적으로 보이는 비판점인데, 왜냐하면 괴수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 즉 본질은 괴수가 도시를 때려부수는 장면이나 괴수간의 싸움씬이다. 이 장면들이 비율이 적거나 장면의 퀄리티가 빈약하다면 괴수물로서 탈락인 것이다. 그렇기에 괴수씬의 비율을 높이고 힘을 줄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보니 인간 파트가 줄어들고 줄어든만큼 표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히 인간은 괴수의 장소 이동 및 방관자, 도움, 그리고 응원(...) 정도 밖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 훌륭한 괴수물이라 평한 이유는, 어찌됐던 간에 괴수 파트는 정말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 작품은 몬스터 버스 유니버스의 사실상 마무리 같은 포지션이지만, 전작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뒷배경을 몰라도 일단 괴수들이 싸우는 것은 재미있고 스케일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괴수씬은 정말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장면이 박진감 넘친다. 다만 이런 빠르고 화끈한 전개를 위해 개연성을 다수 버린 점은 정말 노골적으로 보이는 단점이다. 일부 장소의 이동이나 인물의 행동을 어찌저찌 해결되거나 우연, 에너지에 이끌렸다 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굉장히 안일하지만, 그대신 강력한 오락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고질라 VS. 콩은 정말 괴수물로서의 본질을 훌륭하게 잡았다고 평할 수 있다. 괴수물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괴수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선보였다. 다만 그렇기에 인간의 서사는 줄어든만큼 덜 지루하지만 여전히 빈약하다는 단점을 안고 가지만, 본질은 확실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객을 만족시킬 정도기에 덮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화끈하게 두 괴수의 맞짱을 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길 바란다. 코로나로 인해 썰렁해진 극장가에 "왜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봐야하느냐?" 라는 질문을 "이런 영화를 보려고." 라고 답할 수 있는 영화가 등장했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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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 스토리> - '가벼운 영혼의 손으로 쓰다듬는 이별'
고스트 스토리 (A Ghost Story)
개봉일 : 2017.12.28. (한국 기준)
감독 : 데이빗 로워리
출연 :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그로버 콜슨, 윌 올드햄
‘가벼운 영혼의 손으로 쓰다듬는 이별’
지독할 만큼 고요하게 변한 집안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추억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추억은 무거운 슬픔과 고통이 되어 남은이를, 다시 돌아온 이를 짓누른다. <고스트 스토리>는 그런 이야기다.
<고스트 스토리>의 포스터만 보면 8월에 잘 어울리는 공포영화일 것 같고, 예고편을 보면 <사랑과 영혼>같은 판타지 로맨스일 것 같다. 만일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고 ‘무서울 것 같아서’, ‘로맨스는 싫어서.’ 이 영화를 넘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영화가 주는 무게와 여운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
“사랑하는 이가 내 옆을 떠나면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해 보고, 그런 꿈을 꾸고 눈물 흘렸던 적은 있었지만, 오히려 떠났던 이가 돌아와 나를 기다릴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고스트 스토리>에선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 C와 M이 나온다. 어느 날,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M은 실의에 빠진다. 두 사람의 추억이 가득 묻은 집안에 홀로 남겨진 M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영혼만 남은 C는 유령이 되어 자신의 기억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M은 떠난 C를 그리워하고, C는 M의 곁으로 돌아와 M의 모습을 지켜본다.
내 눈엔 그녀가 보이지만, 그녀의 눈엔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보여서는 안 될 것 같다. 남겨진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무겁고 슬픈 떠난 자의 시선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 완벽하게 고요하고 차갑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흐를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담긴 조잘거림이 아닌 적막뿐이라는 사실이 숨 막히게 슬프다.
고스트 스토리 시놉시스
사랑을 잃다
교외의 작고 낡은 집 - 작곡가인 C와 그의 연인 M은 조용하지만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C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M은 무거운 슬픔에 잠긴다
사랑을 기억하다
창백한 조명의 병원 영안실 -고스트가 되어 깨어난 C는 마치 홀린 듯 M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는 그녀와 고스트는 사랑했던 기억을 추억하며 무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사랑을 잊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집 -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며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M은 결국 집을 떠난다. 남겨진 고스트는 영원히 그녀를 기다릴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C와 M은 교외에 위치한 한적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젊은 연인이다. 화려하고 넓은 집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아늑한, 어딘가 포근하게 느껴지는 집이다. 작곡가인 C는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며 연인 M과의 추억으로 가득한 이 집이 마음에 든다. 그에 반해 M은 더 깔끔하고, 시내에 가까운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 한다. 다정하게 누워 이사에 대한 기억을 나누던 중, M은 이사를 할 때면 메모를 남겨 떠나는 집에 숨겨놓는다고 말한다.
“이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것이 있었으면.”
M은 돌아올 확률이 없단 걸 알지만, 혹시라도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나를 반겨주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쪽지를 남긴다고 말한다. 큰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더라도, 그냥 이 집에 살면서 좋았던 기억들, 마음에 들었던 것들. 또는 노래 가사나 시 같은 것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전의 내가, 나의 기억이 반겨준다면 외롭거나 쓸쓸하진 않겠지.
“이 집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
C의 사고가 있기 전날 밤, 1층에 있는 오래된 피아노에서 쿵-소리가 난다. 화가 난 무언가가 힘껏 내리친듯한 소리. C와 M은 급하게 1층으로 내려와 거실을 확인해보지만 그 어떤 것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밤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그날은 C에겐 마지막 날이 되었고, M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날이 되었다.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영안실, M은 홀로 서서 C의 시신을 마주한다. 어두운 방 안에서 바라보는 M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M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현실을 외면하듯 C의 얼굴 위에 천을 다시 덮는 것 외에는. M은 크게 울 힘도,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다.
M이 떠나고, C는 혼자 남겨진다. 그리고 이내 하얀 천이 불쑥 솟아오른다. C는 무거웠던 몸을 내려놓고 영혼만 남아 유령이 된 채 병원 복도를 걷는다. 보이지 않는 C의 존재를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령이 된 C의 앞에 밝은 빛이 넘쳐흐르는 문이 열리지만, C는 그 문을 바라만 볼 뿐이다. 문은 그의 뜻을 알았다는 듯 사라지고 C는 당연하게도 집으로 향한다.
M에 대한 사랑이, 미련이 너무 깊어서. 혼자 남겨진 M이 걱정돼서. 우리의 추억을 잊을 수 없어서. C가 집으로 향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광활한 땅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도착한 C는 문쪽에 서서 M을 지켜본다. 이제 두 사람의 집이 아닌 M만 남겨진 그곳은 지독히 고요하고 적막하며, 시린 공기가 흐르는듯하다. M은 주방에서 말없이 파이를 퍼먹는다. 미련스러운 일이란 걸 M도 알고 있었겠지만, M은 멈추지 않고 파이를 먹는다. 약 5분에 걸쳐 우악스레 파이를 퍼먹던 M은 결국 먹은걸 전부 게워낸다. M은 다시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숨을 쉬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 파이를 토해낸 순간,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C는 그런 M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지만, 영혼만 남은 C의 손은 예전 같은 따스함도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C는 어떤 수를 써도 사랑하는 M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슬픔을 누르려는 듯 파이를 욱여넣던 날이 지나고, M은 이불을 정리한다. 그리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외출을 한다.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온다. 유령이 된 C는 같은 자리에서 M을 지켜본다. 남겨진 사람이라 생각했던 M은 조금씩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떠난 사람이라 생각했던 C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우리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그녀가 다른 누군갈 찾아? 날 두고 떠났어”
C를 떠나보낸, 남겨진 사람 M은 자신의 세계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 C는 새로운 남자의 옆에 있는 M을 보고 화가 난 듯 책을 떨어트리고 전등을 흔든다. C는 아직 서로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M은 바닥에 누워 예전에 C가 들려줬던 노래를 듣는다. 남자를 남겨두고 떠난 여자와 홀로 남겨진 남자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였다. 노래를 듣던 M의 손이 C가 서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M이 손가락만 살짝 펴도 닿을듯한 거리. 하지만 M은 이내 손을 오므리고 C와의 거리는 다시 멀어진다. 그렇게 M은 C에게서 멀어진다.
M은 함께했던 흔적을 지우고 짐을 싼다. 그리고 언제나 했던 것처럼 집에 쪽지를 숨겨놓는다. C는 홀로 남겨진다. 자신이 들려줬던 그 노랫말처럼. C에게 남은 건 집에 깃든 둘의 추억과 M이 남겨놓은 쪽지뿐이다.
“누굴 기다리고 있어요.”
유령이 된 영혼들은 생전의 추억이 남아있는 공간을 다시 찾는다. C와 M의 옆집에도 C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유령이 산다. 두 유령은 각자의 창 앞에 서서 인사를 나눈다. 유령들은 추억과 사랑, 미련이라는 창틀에 갇힌 듯 창을 넘어가지 못한 채로 그 앞에 서있을 뿐이다. 누굴 기다리는지도, 무엇이 그리운지도 명확히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C는 M이 떠난 후에도 집을 떠나지 못한다. 이전부터 집을 떠나고 싶어 했던 M은 집에 홀로 남겨지자 슬픔과 추억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떠나고, 집을 떠나지 않고 싶어 했던 C는 여전히 이 집에 남아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가 M이 C에게 이 집이 좋은 이유를 묻는 장면이 있다. C는 “추억이 있잖아.”라고 답한다. C는 추억에 묶여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결국, 무엇을 하든, 팽창하는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
집에서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리던 날.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우주와 우리의 세계에 대한 연설을 하던 예언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무한하게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그것은 의미가 없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C의 존재가 그렇다. C는 M의 쪽지를 꺼내기 위해서 사람을 내쫓고, 무게가 사라진 손을 내밀어 문틀을 긁어낸다. 드디어 쪽지를 손에 쥔 순간. 집이 무너져내린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C는 무너진 집 위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C의 노력은 한순간 사라질 아주 작은 것이었고, 집이 허물어지는 순간 C의 미련은 모든 의미를 잃는다.
C의 미련은 C를 다른 시간으로 이끈다. C는 집이 지어지기 전, 첫 정착자 가족의 딸이 쪽지를 적어 바위 밑에 깔아두는 순간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내 그 가족은 인디언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된다. 아이의 시신이 보이고, 뼈가 보이고, 그 위에 풀이 자라 모든 흔적을 덮어버린다. 아이가 남긴 쪽지도 가족의 시신과 함께 그대로 썩어버렸겠지. 어떤 의미를, 미련을, 추억을 담은 것이든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든 모든 건 결국 우주에서 사라지게 된다.
“여기 남고 싶어?”
시간은 빠르게 흘러 C와 M이 함께한 순간을 비춘다. 처음 집에 들어서던 날과 C가 이사를 결정했던 날까지. C와 M은 유령이 된 C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셋이 함께 그 집에 추억을 남긴 것이다.
M은 유령이 된 C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C에 비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긴 M은 영화의 초반, “이 집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문득 잠에서 깨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말한다. 유령이 된 C는 당연히 자신이 사랑하는 M의 곁을 맴돌았을 테고, C에게 C의 유령은 또 다른 자신이었으니 M만 홀로 유령의 존재를 느꼈을 것이다.
M은 꺼림칙한 이 집이 아닌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C를 설득한다. C의 유령은 C와 M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C가 이사를 결정하자 피아노 앞에 털썩 앉으며 쿵 소리를 낸다. C의 유령은 이사를 결정했던 그 밤을 후회했을까?
시간은 다시 흐르고, M은 집을 떠난다. C는 다시 홀로 남겨진다. C는 집이 철거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M의 쪽지를 다시 찾아낸다. 그리고 쪽지를 보자마자 사라진다. 이승에 남아있어야만 했던 미련이 사라진 것이다. 유령들은 미련과 기억을 갖고 그 장소로 돌아온다. 떠나는 게 아닌, 남겨진 사람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머문다. 옆집에 있던 유령은 집이 철거되자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을 거란 걸 깨닫고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난다. C는 M의 쪽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M의 쪽지엔 어떤 내용이 적혀있었을까? 이 집에 있으면서 행복했던 추억? 아니면 C가 들려줬던 노래의 가사 한 구절? 예상컨대, C가 미련을 가질 만큼 큰 의미를 담은 쪽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떠났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와 오랜 시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같은 곳을 떠돈다. 남겨진 거라 생각한 사람은 떠난 사람을 뒤로 밀어두고 새로운 시간을 살아간다. 떠난 사람의 시간은 남겨진 사람이 떠난 순간부터 그 자리에 멈춘 채, 더 이상 흐르지 못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남겨지는 날은 생각해 본 적 있어도, 먼저 떠난 내가 미련에 끌려 돌아온다는 건, 그것도 남겨진 사람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는 건 상상해본 적 없다. 미련과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더 이상 흐를 수 없는 떠난 자의 시간이 이토록 무겁고 시릴 줄은 몰랐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며 왜 먼저 떠난 것인지 원망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도 미련이 남아있다면 그 또한 지겨울 만큼 아파하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결국은 사라질 추억이고 사랑이고 미련이지만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 덧없는 감정에 휘둘린 채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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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턴트 워 (ENHANCED,2019)
안녕하세요. 광남입니다. 오늘은 영화 뮤턴트 워 (Enhanced, 2019) 리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영어 제목으로 '(정도,가치,질 등을)강화한, 증대한'이라는 뜻을 가진 뮤턴트 워는 말 그대로 인간보다 강화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돌연변이는 엑스맨 시리즈로 익숙해져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는데요. 끝까지 보면서 조금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영화 뮤턴트 워 리뷰, 바로 시작합니다.
뮤턴트 워
영화의 줄거리는?
Enhanced, 2019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인간병기 '뮤턴트'. 그들은 인간이지만 인간에게 조종되는 실험체였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탈출한 뮤턴트들은 각지로 숨어자신만의 생활을 하게 된다. 얼마 가지 않아 탈출한 뮤턴트들을 붙잡기 위해 최정예 특수부대가 비밀작전에 투입되고, 다시금 뮤턴트들은 실험실로붙잡혀 간다. 한편,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진 알파 뮤턴트는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다른 뮤턴트들을 살해하고 힘을 흡수하는데..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뮤턴트가 이제 다시금 세상을 파괴하려 한다!
뮤턴트 워
지배하려는 욕구
Enhanced, 2019
영화 도입부, 생각보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주는데요. 뮤턴트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인간병기들이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이었죠.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겨우 되찾아 살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자신들이 한 행동이 아니라고 하지만,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또 인간에 의해 일상이 무너지고 갇히게 됩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일상이 무너져버린 뮤턴트, 여기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됩니다.
뮤턴트 워
알파 뮤턴트 역할은..
Enhanced, 2019
영화 <뮤턴트 워>에서 가장 쌘 뮤턴트는 알파 뮤턴트입니다. 모든 뮤턴트들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뮤턴트는 자신의 힘이 뮤턴트들에게 나눠진 것을 알고 다시 흡수하려고 하죠. 알파 뮤턴트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면서 인간들과 동료 뮤턴트들마저 죽이게 됩니다. 굉장히 폭력적으로 죽이지만 액션보다는 염력이 주된 힘이죠. 그러나, 생각보다 왜소하고, 다소 실험을 받았다고 하기엔 고생한 흔적 하나 없어 보이는 외모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뮤턴트 워
재미포인트가 있었다면?
Enhanced, 2019
킬링타임으로 보기에도 큰 재미는 없었다고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뮤턴트를 제압하는데 어설픈 전기봉 하나 들고 제압하는 장면부터 자신의 힘을 과신하던 알파 뮤턴트가 무너지는 장면까지 모두 어릴 적 보던 백터맨이나 파워레인저가 더 재미있겠다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뮤턴트'라는 단어에 기대감을 엑스맨 시리즈에서 다루는 뮤턴트라고 생각하고 보신다면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오늘은 영화 뮤턴트 워 (Enhanced, 2019) 리뷰를 진행해봤습니다. 레지던트 이블, 퍼시픽 림 제작진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돌연변이를 콘셉으로 한 영화라 조금 더 기대를 했었지만 많은 실망을 했던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스토리 전개였다는 평을 끝으로 리뷰를 마치려고 합니다. 조금 악랄한 비평을 한 것 같지만, 직접 보신다면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것 같습니다. - 광남 -
* 본 콘텐츠는 블로거 '광남'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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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모음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어느새 완연한 봄날씨가 찾아왔는데요, 주말에는 비도 오고 기온도 떨어진다고 하니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바쁜 한 주의 끄트머리, 오늘도 씨네랩은 여러분의 주말을 책임질 재미있는 영화추천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애들은 가라! 오늘은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일곱 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색감천재로 불리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개들의 섬>부터
여러 할리우드 영화 연출에 영향을 끼친 콘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까지!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국내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개들의 섬(2018)
Isle of Dogs
ⓒ 네이버 영화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브라이언 크랜스톤, 코유 랜킨,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등
장르: 모험, 코미디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1분
인류를 위협하는 개 독감이 퍼지자, 세상의 모든 개들은 쓰레기 섬으로 추방되고, 자신이 사랑하던 개를 잃은 소년은 개를 찾아 홀로 섬으로 떠난다. 소년은 그곳에서 다섯 마리의 특별한 개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사라진 개를 찾아가는 그들 앞에 기상천외한 모험이 펼쳐지는데… 개를 사랑한 소년, 소년을 사랑한 개 남다른 개들의 색다른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걘 겨우 12살이니까.
우린 애들을 좋아하잖아.
ⓒ 네이버 영화
영화 <개들의 섬>은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인 웨스 앤더슨 감독의 두 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견류 독감'의 영향으로 전국의 모든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킨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했으며, 2018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작 및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은곰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는데요, 영화는 사랑하는 개 '스파츠'를 찾아 나선 소년 '아타리'와 그를 돕는 다섯 마리의 개들을 주인공으로 했으며 독창적인 컬러감과 구도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던 웨스 앤더슨 감독이기에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답게 <개들의 섬>은 디테일에 있어서 엄청난 놀라움을 자아내는데요, 캐릭터들의 표정과 움직임, 배경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정교한 작업을 위해 3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러닝타임 101분을 위해 무려 144,000개의 스틸을 이어 붙였으며, 1초에 24 프레임을 구현하는 기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on ones' 기법과 달리 움직임이 다소 딱딱하고 불온전한 느낌의 'on twos' 기법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하네요. 초밥을 만드는 장면 하나에 15주가 소요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비주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캐릭터, 따뜻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가 적절히 섞여 들어간 스토리텔링 또한 이 영화의 큰 매력입니다. 인간과 개의 교감을 섬세하게 다뤄 애견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가슴 찡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웨스 앤더슨을 좋아하신다면 그의 또 다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인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또한 추천드립니다.
퍼펙트 블루(1997)
Perfect Blue
ⓒ 네이버 영화
감독: 곤 사토시
출연: 이와오 준코, 마츠모토 리카, 치즈 신파치, 오쿠라 마사아키 등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81분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는 있지만 내리막길만 남아 있는 일본의 소녀 아이돌 그룹 ‘참’의 리더 격인 미마. 롱런을 위해 에이전시로부터 배우로의 전업을 권유받고 그룹을 탈퇴한다. 광적인 팬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핑크빛 공주 의상을 입는 자신에 익숙했던 그녀에겐 갑자기 강간신을 찍는 성인 연기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겨운 일. 시골에서 올라온 자연인으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아니면 아이돌 스타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혹은 누드사진을 찍는 그녀가 진짜일까?
1초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어째서 동일인이란 걸 안다고 생각해?
단지 기억의 연속성. 그것 만에 기대어
우리들은 일관된 자기 동일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어.
ⓒ 네이버 영화
영화 <퍼펙트 블루>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곤 사토시 감독의 1997년작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곤 사토시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아이돌 그룹 '참'의 멤버였던 '미마'가 아이돌 그룹을 탈퇴하고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동화(動畵)를 많이 쓸 수 없으니 움직임이 아닌 미술과 연출로 승부를 걸자고 생각했다고 하며, 결과적으로 작화와 연출 면에서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 되어 애니메이션에서 연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감독은 '상상과 일상의 융합'이라는 테마를 반복적으로 사용, 다양한 명작을 많이 배출해 냈습니다.
최근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더 웨일>이 개봉을 했는데요, 애러노프스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인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퍼펙트 블루>를 종종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영화들 중 <레퀴엠 포 어 드림>, <블랙 스완> 등에서 <퍼펙트 블루>와 거의 유사하게 연출된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2001년에는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이 <퍼펙트 블루>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려다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답니다.
파프리카(2007)
Paprika
ⓒ 네이버 영화
감독: 곤 사토시
출연: 하야시바라 메구미, 후루야 토루, 야마데라 코이치 등
장르: 미스터리, SF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0분
29살의 정신과 치료사 치바 아츠코에게는 또 하나의 자아가 있다. 바로 18살의 대담무쌍한 꿈 탐정 파프리카이다. 파프리카는 사람들의 꿈속에 들어가 그들의 무의식에 동조함으로써 환자의 불안과 신경증의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한다. 어느 날, 치바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던 혁명적인 정신치료장치 DC-MINI의 프로토타입이 도난당하고 조수마저 실종된다. 장치를 찾아 나선 치바는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파프리카는 내 분신이잖아.
- 아츠코가 내 분신이라는 발상은 못 하나 봐?
ⓒ 네이버 영화
영화 <파프리카>는 위에서 소개해드린 <퍼펙트 블루>를 만들기도 했던 곤 사토시 감독의 유작입니다. 이 작품의 제작 이후 감독은 췌장암이 발병해 투병 생활을 하다 2010년 사망해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는데요, <파프리카> 역시 <퍼펙트 블루>와 마찬가지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파프리카>의 원작자이자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이기도 한 츠츠이 야스타카 본인이 해당 작품을 사토시가 영화화해 주길 원했으며, 원작 소설보다 더 확장된 상상력과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력이 더해져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중인격의 인물, 악몽에 시달리는 현대인, 꿈의 영역까지 도달한 과학, 현실과 꿈의 뒤섞임 등 많은 것을 다루고 있는데요, SF와 미스터리, 스릴러와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믹스에 여느 영화 못지않은 탄탄한 구조와 감독 특유의 탁월한 작화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물리적 경계가 없는 매체인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영화로,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화면구성이 관객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합니다. 앞서 <퍼펙트 블루>를 오마주한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언급드렸었데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 <파프리카>의 기초 설정 및 장면들의 유사성 또한 영화팬들 사이에 꾸준히 회자되는 이야기랍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2022)
Pinocchio
ⓒ 네이버 영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이완 맥그리거, 크리스토프 왈츠, 틸다 스윈튼, 케이트 블란쳇 등
장르: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의 마법 같은 모험. 오스카 수상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의 손에서 고전 동화가 새롭게 재탄생했다. 생명을 얻은 목각 인형의 이야기가 놀라운 스톱모션 뮤지컬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강력한 사랑의 힘이 펼쳐진다.
삶이 귀하고 의미 있는 건
그 삶이 짧기 때문이야.
ⓒ 네이버 영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등을 연출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으며, 스트리밍에 앞서 사전 공개되었던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압도적인 호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원작 동화 피노키오의 맥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인 '전쟁'과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러워 감독만의 새로운 버전의 피노키오가 탄생했다는 점이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영화 곳곳에 심어 둔 사회적인 풍자와 은유적인 메시지, 원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생의 교훈과 소중함이 버무려져 마냥 아름답지만 않으면서도 따뜻한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감독의 전작들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는 본래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가 판타지적 세계관에 녹아들어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이는 감독입니다. 피노키오를 만들면서도 행복한 분위기보다는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는데요, 원작 소설의 무서운 면에 더 이끌렸으며 자신만의 피노키오를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만의 피노키오가 완성되어 아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으며, 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치코와 리타(2010)
Chico & Rita
ⓒ 네이버 영화
감독: 하비에르 마리스칼,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출연: 에만 소르 오냐, 리마라 메니시스, 마리오 구에라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3분
1948년 쿠바의 하바나, 야망에 찬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는 어느 날 밤 클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리타와 만난다.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는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지지만 열정과 욕망, 질투와 오해가 뒤엉키며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네온사인 화려한 기회의 도시 뉴욕, 이제 막 그곳에 발을 디딘 치코는 스타로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리타와 재회하게 되는데… 하바나에서 뉴욕 그리고 파리,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까지, 사랑과 꿈을 좇는 그들의 뜨거운 여정이 펼쳐진다.
나도 당신을 모르지만 내 평생
당신을 기다려 온 것 같은 느낌이야.
ⓒ 네이버 영화
영화 <치코와 리타>는 2012년에 개봉한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로, 1992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페르난도 트루에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하비에르 마리스칼, 토노 에란도가 공동 연출했으며 쿠바의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음악을 맡은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소개되어 대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1950년대의 쿠바,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의 장소를 오가며 펼쳐지는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작화를 맡은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스코트 '코비'를 디자인한 천재 아티스트로, 투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일러스트에서 스페인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영화 내 흘러 귀를 즐겁게 하며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벤 웹스터, 냇 킹 콜 같은 재즈 명장들이 영화 속 캐릭터로 등장해 영화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음악을 사랑하는 어른의 연애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해 드립니다!
돼지의 왕(2011)
The King of Pigs
ⓒ 네이버 영화
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등
장르: 스릴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96분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인한 ‘경민(목소리 오정세)’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목소리 양익준)’을 찾아 나선다.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근근이 먹고사는 종석은 15년 만에 찾아온 경민의 방문에 당황한다. 경민은 무시당하고 짓밟혀 지우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과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목소리 김혜나)' 이야기를 종석에게 꺼낸다. 그리고 경민은 학창 시절의 교정으로 종석을 이끌어, 15년 전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려 하는데...
이곳은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나뒹구는...
세상이다.
ⓒ 네이버 영화
영화 <돼지의 왕>은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잔혹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성인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부산행>, <정이> 등으로 국내를 넘어서 해외에서도 연출력을 인정받은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 본격적으로 그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소 거칠고 현실적인 삽화체 그림이 특징이며 불편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이기에 일부러 불편함을 느끼게끔 디자인한 그림체라고 합니다. 매우 잔혹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어린 학생들 간의 학교폭력과 독재권력에 대한 풍자, 사회적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돼지의 왕>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았고,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파리 시네마 영화제, 몬트리올 판타지아 장르 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2022년에는 해당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요, 김동욱, 김성규, 채정안 등이 출연하였으며 원작 이상의 잔혹한 수위와 묘사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잔인한 학교폭력과 이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 모르쇠로 일관하는 어른들은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보다 강력한 규제와 관심이 필요한 상황, 학교폭력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파닥파닥(2012)
Padak
ⓒ 네이버 영화
감독: 이대희
출연: 시영준, 김현지, 안영미, 현경수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78분
자유롭게 바닷속을 가르던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 어느 날, 그물에 잡혀 횟집 수족관에 들어가게 된다. 죽음이 예정된 그곳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올드 넙치'. 그는 자신만의 생존비법(?)으로 양어장 출신의 다른 물고기들의 신망을 받는 권력자다. 바다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파닥파닥'으로 인해 수족관의 평화는 깨지고, '올드 넙치'와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데... 바다를 향한 고등어 '파닥파닥'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너희들은 이미 죽은 거야.
여기 들어온 이상 이미 죽은 거라고!
ⓒ 네이버 영화
마지막으로 추천드릴 작품 역시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인데요, 개봉 전부터 각종 영화제로부터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영화 <파닥파닥>입니다. <파닥파닥>은 드라마와 뮤지컬이 결합된 일종의 뮤직드라마의 형식을 갖춘 애니메이션 영화로, 횟집 수족관에 갇혀버린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이 자유를 갈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연예인이 아닌 전문 성우들이 더빙을 한 것이 특징인데요, 극 중 뮤지컬 부문에서도 성우들이 모든 노래를 직접 불렀으며 한국 독립 영화의 애니메이션에서 배우가 아닌 성우들이 캐스팅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네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횟집 수족관은 마치 계급화와 서열화가 만연한 관료주의 인간사회를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으로 표현되며, 기회주의자, 냉소주의자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이 물고기의 얼굴을 하고 등장합니다. 수족관의 보이지 않는 벽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현실에 안주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꿈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영화로, 꽤나 그로테스크하고 잔인한 연출과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12세 관람가로 책정되어 있으나 15세 이상 관람, 나아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개봉했어도 납득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수준이라 발랄한 콘셉트의 마케팅에 낚인 것을 후회한 가족 관람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총 일곱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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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리뷰
<라우더 댄 밤즈(2015)>, <델마(2017)> 등으로 이미 몇 차례 한국에 소개된 바 있는 노르웨이의 감독 요아킴 트리에가 신작으로 찾아온다. 나는 감상한 적 없으나 이번 영화는 그가 감독한 오슬로 3부작을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이라 한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여성 주인공이 빛나는 작품이다. 요아킴 트리에는 미래와 사랑과 그 밖의 많은 외부적 요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여성의 성장 서사를 스크린을 통해 근사하게 보여준다. 어떤 면에선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2012)>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법 혹은 자아를 모색하는 방식이 완전히 닮아 있지는 않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더라도 삶에 있어 ‘무용’이라는 최소한의 방향성을 쥐고 있던 27살 프란시스와 달리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속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조차 힘들다고 토로하는 스물아홉 살 청춘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고전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글쎄, 이젠 고전이 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로는 무엇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로마의 휴일(1953)>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정도라면 충분한 걸까? 궁금하긴 하지만, 이 질문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엔 우리가 모두 아는 클리셰, 그러니까 보장된 플롯이 존재하니까. 영화 초입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녀는 서로가 남극과 북극에서 온 사람처럼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온갖 사건을 통해 놀라우리만큼 가까워지고, 말미엔 완벽한 한 쌍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정석’이지 않나.
그런데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다르다. 영화엔 분명 로맨스가 등장하고, 상당 부분의 서사가 주인공의 연애에 치중한 듯 보이나 그저 그뿐이다. 그 어느 누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율리에가 사랑을 쟁취하는 순간을 꼽겠는가. 감독은 망망대해 같은 인생의 한 지점, 로맨스라는 거대한 파도를 만난 율리에가 부단히 헤엄치는 모습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낭만적인 마술을 부리긴커녕, 시니컬한 태도로 로맨틱 코미디가 선사하는 장르적 환상을 걷어내는 데에 여념이 없다. 율리에가 동거하던 남자 친구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는 순간 악셀은 율리에의 거주 문제를 꺼내고, 율리에와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가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합의한 기저에는 전 지구적 환경 문제가 얽혀 있다. 그래, 오로지 사랑에 기대어 모든 현실을 헤쳐 나가기엔 참으로 세상이 버겁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20세기를 살던 청춘에게도 미래가 그저 황금빛이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사랑이 무용하다 말하기보단, 차라리 율리에의 세계가 너무나 연약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보다 옳으리라. 그는 진로를 결정할 때조차 자신을 탐구하다기보단 성적에 기대어 의학도가 되었다가,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또다시 자신의 심연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표면을 부유하다 사진을 배우게 된다. 누군가는 이러한 선택을 용감하다 하였으나 서점에서 일하며 때때로 글을 쓰는 율리에는 여전히 자신에게 확신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맨날 이거 했다가, 싫으면 저거 했다가, 끝까지 해내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율리에가 찾은 해결책은 자기의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언뜻 그의 시도는 성공적인 듯 보인다. 악셀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에이빈드와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던 그가 이렇게 고백한다. “너와 있을 때 완전한 내가 되는 것 같아”. 그러나 이 말은 더없이 공허하다. 스스로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헛된 것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므로.
물론 이것이 개인의 성장에 있어 로맨스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율리에는 연인과 함께하던 순간에도 변화했고, 이별 후 자신에게 남겨진 옛사랑의 흔적을 통해서도 성장한다. 기실 영화는 악셀과 율리에가 사랑을 하던 순간보다, 사랑이 끝난 이후의 지점에 많은 공을 들였다. 율리에의 남자 친구 혹은 만화가로서의 악셀을 반기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네가 얼마큼 대단한 사람인지 믿게 해주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하는 그에게 애틋함을 느끼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악셀은 시한부 선고까지 받는다. 소울메이트라 불러도 괜찮을 만큼 끈끈한 관계가 된 악셀과 율리에 사이에 남은 시간은 너무도 적다. 이별하던 날, 나중에 재결합을 할지도 모르지 않겠냐고 했던 율리에의 말은 그리하여 가정법으로만 머문다. 감독은 특별히 두 사람의 끝을 쓰라리게 그려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초가을의 밤공기처럼 건조하다. 악셀과의 만남 이후, 에이빈드의 아이를 잃게 되는 율리에의 감정선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 삶이 끝난다는 것을, 다가온 삶의 한 국면을 예비하고자 애쓴다 해도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채 가능성이 소멸할 수 있음을 배우는 것으로 그친다.
그러하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로맨틱한 정서는 굉장히 다면적이다. 마냥 행복하다고 말하는 대신 율리에에게 로맨스는 생명수였던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었다고 의심할 법한 무엇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자면, 자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의 사랑이란 우리 문화의 기대처럼 삶 전체를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대단할 수 없음을 꼬집는 듯도 하다. 더불어 결말부에서 감독은 율리에를 어떤 남성과도 맺어지지 않도록 설정하여 할리우드 특유의 로맨틱한 마법 장막이 오슬로에 드리워지지 못하도록 막았다.
단 한 번뿐인 미지의 삶
이렇듯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기꺼이 탈피한다. 영원한 사랑의 지속을 속삭이는 대신 오히려 매 선택이 불가역적이라는 지점을 강조한다. 율리에는 악셀과 헤어지기 전으로도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로맨스가 아닌 한 인물의 성장 서사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노르웨이라는 지구 반대편 국가, '2022 세계 행복 보고서'(2021 World Happiness Report)에서 8위를 차지한 나라에선 인생을 배회하는 청춘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열두 개 챕터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갖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 친절하게 영화의 구성을 예고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는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표지와 목차를 읽은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니, 영화관에 앉아있더라도 관객은 이 영화가 지금 이야기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아무리 각 챕터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들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혹은 소설- 속 주인공인 율리에는 자신이 현재 인생의 어떠한 지점에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언젠가 무엇이 이루어지리라는 막연한 예감과, 지금 이 상황보다는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초조함만을 품은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선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넘어야 한다. 유명하디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인용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 과정은 당연히 평탄할 수 없다. 개인의 자아는 치열하게 고민한 후 비로소 이룩할 수 있는 것이지 손쉽게 구매하거나 덧씌울 수 있는 페르소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학생으로서의 율리에만 연기해도 문제가 없었던 학업과 달리, 연애를 통해 율리에는 부딪히고 때로는 도망가며 많은 것을 경험한다. 자신이 남자 친구 악셀에 비해 어리고,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기도 하고 위트있는 대화를 이어나가거나 춤을 추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갈등을 목격하기도 한다. 에이빈드를 만나 바람을 피우고 환각제를 흡입하며 회피하기도 하지만, 끝내 발붙인 현실을 떠날 수 없는 율리에는 자신의 가장 빈곤한 부분을 몇 번이고 마주한다. 이윽고 선택의 무게를 깨닫게 된 그는 느리게 자기 파괴적 상태에서 벗어난다. 거대한 산처럼 보였던 사람을 비로소 친밀했던 한 명의 인간으로 동등하게 여길 수 있게 됨으로써 미지의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선택의 폭이 지극히 좁아 고민의 여지없이 아이를 낳고, 낳고, 낳았던 조상들로부터 21세기 서른 살 여성에게까지 이어진 어떤 굴레는 더 이상 율리에를 옥죌 수 없다. 분명히.
영화 속에 몇 번쯤 등장하였던 타이밍이 잘못되었을 뿐이라는 말은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한 변명처럼, 혹은 상대방을 위한 위로처럼 몇 번쯤 사용되었다. 이 말이 어떤 의미로든 옳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아닐 것이다. 인생에 있어 올바른 타이밍과 잘못된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리만큼 중립적인 순간들의 총합일 뿐이니. 그러니 그렇게 미사여구를 붙이며 상실한 기회를 정당화하지 않아도 괜찮다. 일회성 삶 속 실패는 한낱 흔한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저무는 여름에 새로이 섞여있을 웃음과 눈물과 설렘의 찰나만을 기억하자. 이것은 온전히 율리에와 당신, 그리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순간이다.
한국에서는 <사랑할 때는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번역되었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세계 최악의 인간(Verdens verste menneske)>이다. 흥미롭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한 제목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최악의 인간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쩌겠는가.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을. 타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무대 뒤편의 모습까지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는, 드러내지 않는 속내까지 모조리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상 위의 유일한 인간이 나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경험한다는 것, 그것은 부득이하게 잘못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러하니 스스로를 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너무 스스로에게 무자비해지지는 말자. 우리는 우리를 가장, 최선을 다해 경험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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