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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비됴2024-04-03 00:29:27

사구에서 외치는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

<듄: 파트 2> 리뷰

3년 전만 해도 듄친자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듄친자의 운명을 거부했다. <듄>만으로는 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듄: 파트2>를 본 이후 이젠 듄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모래 늪에 두 다리가 빠져 탈출하지 못할지언정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이 고전 원작을 자신만의 운명 사슬로 엮어낸 드니 빌뇌브의 연출력을 보아하니 더 이상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수순은 그의 모든 계획이었으리니~ 폴을 위해, 그와 함께 대서사시를 만드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드니 빌니브를 위해 외쳐본다. 리산 알 가입!  

 

 

|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자, 인간이니!

 

 

 

폴(티모시 살라메)은 살아남았다. 황제 샤담 4세(크리스토퍼 월켄)의 모략으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없어졌지만, 가문 유일의 후계자인 그는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함께 사막 부족인 프레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폴과 레이디 제시카는 각자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각 반란군, 부족 대모가 된다. 레이디 제시카는 더 나아가 폴을 프레멘이 그토록 바라던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으로 만들려 한다. 폴은 그 운명을 거스르려 하고, 동료인 챠니(젠데이아 콜먼)와 사랑을 키워 가려 한다. 한편, 반란군의 기세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황제는 하코넨 가문의 암살자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아라키스로 보낸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겠지만) 드니 빌뇌브 영화의 단골 주제는 ‘운명’이다. 극 중 인물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이고,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을린 사랑>의 쌍둥이 남매는 태생의 비밀, <컨택트>의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미래의 모습,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라이언 고슬링) 또한 정체성의 비밀을 확인하고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마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족관 속 활어처럼, 이들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목도하고, 그제야 자신이 처한 처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거스르고 싶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자진해서 들어간다. 그 희생과 감내를 해야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값진 것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가 <듄>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했을 때, 감독의 작품 속 관통된 ‘운명론’이 다뤄질 것이라 예상했다. 메시아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 자리에 섰을 때 우주의 재앙이 몰려온다는 걸 알고 이를 벗어나려는 주인공 폴은 드니 빌뇌브가 군침을 흘릴 캐릭터라 생각했기 때문. 운명을 알고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확인한 후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감독 이전 작품의 주인공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듄>은 폴에게 닥칠 운명의 소용돌이 여파를 크고 깊고 넓게 만들려는 목적성이 가장 컸다. 감독의 운명론을 보여주기 위한 디딤판을 견고히 만들기 위해 영화는 아스트레더스 가문의 몰락, 하코넨 가문과의 악연, 프레멘과의 인연, 퀴사츠 해더락의 운명 등을 보여주고, 암시하는 데 주력한다. 

 


이를 바탕으로 <듄: 파트2>에서의 폴은 자신에게 놓인 운명과 대립한다. 전반부 스스로의 힘으로 모레 벌레를 타며 프레멘에게 인정받고, 무앗딥, 우슬 이란 이름을 얻는 그는 운명을 거스르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챠니와의 운명적인 사랑 또한 그에게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정해진(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운명과 환경에 무릎 꿇게 되는 폴은 메시아가 되어 황제군과 대립하고 많은 이들이 바라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바라지 않는 그 역할의 무게를 감내한다. 

 

 

 

| 누구를 위한 메시아인가?

 


운명 앞에 놓인 폴의 선택과 향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대서사시를 마주하는 듯한 거센 후폭풍처럼 그려진다. 가문의 비밀 무기를 등에 업고 프레멘들과 함께 황제와 하코넨 가문 군대를 공습하며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치르는 폴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성장한 어른으로서 적 앞에 당당히 선다. 폴의 성장담만으로 <듄: 파트2>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아니 어쩌면 폴의 성장을 지켜보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성장은 누구의 선택인가? 폴의 선택이라 장담할 수 없다. 레베카는 자신과 배 속의 아기, 폴을 모두 살리기 위해 아들을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의 길로 인도한다. 이후 메시아를 통해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 프레멘들의 공통된 마음을 이용, 그들의 대모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그녀는 마치 프레맨은 물론, 폴을 체스판의 말처럼 운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영화에서 체스판이 나오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레베카는 폴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베네 게세리트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집단인데,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은 막대한 권력을 갖는다. 황제보다 더 위에 있는 이가 바로 베네 게세리트의 수장격인 가이우스(샬롯 램플링)다. 그녀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폴의 아버지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자기 아들을 쿼사츠 헤더락으로 만들려는 레베카는 가이우스에게 눈엣가시다. (이는 1편에도 잘 나온다.) 이런 이유에서 가이우스는 레베카와 향후 권력에 치명타를 날릴 폴을 없애기 위해 황제를 이용, 장대한 암살계획을 세웠다. 어쩌면 목숨을 건 레바카의 체스판 놀이는 가이우스에게 던지는 복수의 체크 메이트처럼 보인다. 

 


레베카보다 한술 더 뜨는 이가 있으니 프레멘의 수장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다. 사막 환경 속에서 프레멘을 한데 묶고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그의 방법은 메시아다. 곧 메시아가 당도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 이 믿음으로 민족을 대동단결시키고, 군대를 조직화해 행성을 지키고 운용해 나간다. 스틸가가 레베카 보다 두뇌 회전이 빨라 보이지 않는다. 대신 메시아의 당도를 순수하게 믿는 쪽이다. 맹목적인 믿음. 그래서 더 위험해 보인다. 

 


원작에서도 종교의 허위성, 우상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드니 빌뇌브 또한 이를 오롯이 가져와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이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우상은 운명이자 선택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충분히 감언이설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과정은 영화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각색의 방점은 챠니! 

 

 

 

<듄: 파트2>가 좋던 싫던 간에 모두 다 인정하는 건 각색 부분이다. 방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166분으로 압축한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다는 의견. 원작을 읽은 이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비판 어린 눈초리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바로 챠니를 통해서.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의 챠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폴의 연인이자, 민족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운명론에 휩싸인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철저한 객관화가 되어있는 인물이기 때문. 폴이 쿼사츠 헤더락의 길을 걷고 끝내 자신 앞에 황제를 무릎 꿇게 하는 상황을 지켜봄에도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반기를 든다. 폴을 향해 머리 숙이는 병사들 사이에서 홀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이내 그곳을 탈출하는 챠니에게 있어 이 상황은 마뜩잖은 것에 모자라 잘못된 길을 기어이 가는 이들을 향해 눈으로 질타를 날리는 듯하다. 

 


이번 영화가 감독의 전작과 다른 부분 있다면 운명의 소용돌이에 놓인 이들을 주관적이지 않은 객관화된 시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치 챠니는 곧 감독의 분신처럼 보인다. 종교의 허위성과 우상화에 비판적인 원작자의 의도는 각색을 통해 챠니로 옮겨진다. 영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감독은 책이 출간된 1965년보다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현대 여성의 특징과 현시대의 관점을 챠니에게 입힌 후, 이 기막힌 운명을 지켜보게 한다. 감독은 마치 차니로 하여금 관객이 이 바보 같은 운명론자들의 행태가 어떤 일을 초래하는지 목도하게 한다. 드니 빌뇌브의 각색은 압축만큼 차니의 활용도도 빛나 보인다. 

 

 

 

| 극강의 수직 액션,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은 말해 뭐해!

 

 

 

 

루고자 하는 비범한 이야기를 더 강하고 흡입력 있게 만드는 건 영상이다. 모레 벌레를 타고 이를 이용해 공격하는 액션, 프레멘과 하코넨, 황제군의 대결 등은 전편의 액션이 맛보기였음을 말하듯 극강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특히 100%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화의 특성상 공들인 수직 액션이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데, 극초반 모래 언덕 라인을 기준으로 언제 올지 모를 적의 공격을 긴장감 있게 풀어내는 장면이나, 하늘에 떠 있는 하코낸 우주선과 프레맨 지상군의 대결, 원형 경기장 안에서 펼쳐지는 페이드 로타의 액션, 황제군을 향한 모레 벌레의 공격 등은 양옆이 아닌 위아래가 긴 아이맥스 고유 화면비 1.43:1에 안착, 최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액션만큼 열일하는 이가 있으니 티모시 샬라메다.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놓인 폴의 다양한 감정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로 표출되는데, 종교, 정치적 권력을 얻으면 그 즉시 종말로 치닫는 다는 걸 아는 것처럼 티모시 샬라메는 표정과 눈빛으로 그 불안과 고뇌를 표출한다. 마치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질것 같은 그의 불안한 초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워 보인다. (이래서 티모시 티모시 하는가 봅니다.) 여기에 메시아 선택 후 나오는 리더의 위용과 카리스마 연기가 방점을 찍으며 관객은 넉다운된다.   

 

이제 남은 건 재앙과 추락이다. 폴의 예지대로 파트3에서는 고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질 모양새다. 반대로 이 방대한 유니버스의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이 시리즈는 현시점에서 할리우드 대형 프렌차이즈 제작 시스템의 고점을 찍을 듯하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도. 그리고 극장가에 거세게 부는 모래바람도. 

 

 

 

사진= 워너브라더스 제공

 


평점: 4.0 / 5.0
한줄평: 사구에서 피어난 전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

작성자 . 또또비됴

출처 . https://brunch.co.kr/@zzack0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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