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4-17 16:11:35
콜라이더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각본 25선
한국 영화 1편, <기생충>
콜라이더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각본 TOP25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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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스 갬빗 그리고 천재 판타지
천재
우리들은 천재를 좋아한다. 2016년도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결을 했을 때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유일하게 기계를 이긴 인간의 스토리여서 좋아했다기보다 이세돌이 보여준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에 열광한 것이 더 크다고 본다.
사람들이 바라는 천재의 모습이 있다. 가정이 불우하거나 특유의 독특한 습관. 약물중독이라던가 먼가 광기에 찬 모습. 결핍된 대인관계. 기존의 틀을 무너뜨리는 과감함. 그리고 고뇌.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천재를 보아도 약간 섭섭해한다.
그런 면에서 퀸스 갬빗은 사람들이 바라는 천재의 모습을 1도 빠짐없이 집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에 잘 들어맞는 요소와 전형적인 내러티브로 아주 잘 만들었다.
스토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베스 하먼으로 어린 시절 사고로 고아가 된 후 고아원에서 주 정부가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진정제를 먹다 중독되는 과정에서 체스에 재능을 발견한다. 지하실에서 한 늙은 노인에게 체스를 배우면서 하먼은 점점 체스에 눈을 뜨게 되고 입양이 된 후에도 체스에 의지를 불태우며 여러 강자들을 무찌르고 정상에 도전한다. 그 과정에서 하먼이라는 체스 선수로써의 성장과 여성으로서의 성장.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성장. 영리한 연출.
이 드라마를 영리하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바라는 천재의 모습을 전부 넣었다는 것이다. 흔히 천재들은 특유의 습관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하먼도 집중하거나 승리를 목전에 두면 톡을 손으로 받치거나 주먹으로 양 턱을 받치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이 행동이 나오면 반드시 고조되는 배경음악을 깔아 긴장감을 부여하고 바로 뒤에는 승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뿐 아니라 천재성이 동력을 얻지 못할 때 약물에 의존하려는 점. 무언가 불우한 가정환경과 대인관계에 미흡한 점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천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체스라는 주제 자체가 주인공에게 메리트를 준다. 보통 체스는 남성이 향유하는 스포츠기에 하먼은 체스 선수로써의 성장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성장과 승리로 보인다. 처음 하먼이 체스를 할 때 사람들은 체스는 남자의 스포츠라며 하먼을 무시한다. 심지어 체스 대회에서도 실력이 있는 남성들과 대진을 붙여주지 않고 같은 성별의 여성과 대결하도록 붙여준다. 그러나 하먼은 이를 천재성으로 극복한다. 초반 한 번을 제외하고 극 중 내내 그녀는 남성들과 대결을 한다. 하먼이 대결하는 남성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고생부터 남자 대학생. 중년의 남자. 노년의 남자 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순서는 단순히 체스의 고수는 나이가 많은 남성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노년까지 체스라는 세계를 전부 향유하고 있는 남성 중심의 체스 세계를 차례차례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하먼은 우리가 흔히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소들도 전부 다 가지고 있다. 우리가 스타에게 가지고 있는 흔한 편견들.
세련된 패션. 매력적인 외모. 술, 담배, 성적인 관계, 불우한 대인관계까지 하먼에게 빠지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여기까지만 해도 감독이 참 영리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서 한 수를 더 둔다. 나는 하먼도 천재지만 감독도 천재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천재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위기와 극복. 무릎을 팍 찍고 일어나는 극복의 과정을 넣는다. 요즘 아무리 사이다류의 스토리들이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아도 사람들은 위기가 없는 스토리를 금방 질려한다. 하먼에게 무릎을 팍 찍는 위기는 약물과 새어머니의 죽음이다.
보통 이 위기를 개인의 노력이나 뛰어난 천재성을 다시 발휘하며 극복해야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두지 않는다. 하먼의 위기를 우리와 같은 주변 인물을 통해 극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래. 아무리 천재라도 우리와 같은 범인들의 도움이 없으면 안 돼" 혹은 "그래 아무리 천재라도 어린 시절의 친구와 인연은 소중하지"라는 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주변.
매번 주인공보다 이상하게 주변 인물을 통해 느끼는 것이 많은 편이다.
나는 하먼보다 하먼 주변에서 머물렀던 한 인물에게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하먼이 도전해야 하는 도전자였지만 후에는 연인 비슷한 관계에 있었던 남자. 그리고 결국 후에는 하먼을 떠나고 체스를 포기하지만 나중에 하먼을 도와주려는 해리에게 눈이 계속 갔다.
해리는 뛰어난 체스 실력을 가진 사람으로 체스 선수의 길을 가려 하지만 하먼과 대결 후 그녀의 모습을 보고 무력감을 느낀다. 해리에게는 열정도 천재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재능도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때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보는 것이 대부분인데 해리는 깔끔하게 모든 것을 포기한다. 자신이 좋아했던 것을 포기하는 용기. 재능의 영역이 있음을 깨닫고 포기하는 해리에게 이상한 연민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예전에 어떤 예능에서 본 장면이 생각났다. 천재는 99% 노력과 1%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을 두고 사람들은 역시 99% 노력이 필요해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저 말이 진짜 의미하는 것은 99% 만큼 노력을 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천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재를 보고 열광하고 동경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재를 보고 무력감과 벽을 느낀 해리의 쓸쓸한 표정이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우리가 천재에게 바라는 것과 시대에 걸맞는 요소들. 그리고 속도감 있는 전개.
퀸스 갬빗.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까마구의 까망책방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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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으로 가져야만 꿈을 이룬 것일까?
교수님께서 좋은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추천해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와 결이 맞지 않아서 보는 내내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언젠가 다시 보면 그 의미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의문덩어리인 작품인 듯 싶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시놉시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 밴드를 전전한다. 팀의 리더 성우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 일자리를 얻어 팀원들과 귀향한다. 수안보로 가던 중 섹스폰 주자 현구는 밤무대 밴드 생활에 희망을 버리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수안보에 도착한 성우는 고교시절 밴드를 하며 꿈을 나눴던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했던 친구들은 어느새 생활에 찌든 생활인으로 변해있다.
약국을 하고 있는 민수는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고, 시청 건축과에 근무하는 수철은 환경운동가가 되어있는 인기와 시위가 있을 때마다 마찰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다. 성우에게 음악의 지표였던 음악학원 원장은 알콜 중독에 빠져 출장밴드를 하는 폐인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인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야채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성우는 어린 시절의 꿈과 사랑을 되새기며 이들의 변화에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여자를 좋아하는 올갠주자 정석은 여전히 여자들을 꼬시며 문제를 일으킨다. 강직한 드러머 강수는 목욕탕의 때밀이 아가씨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정석만큼의 재주가 없어 데이트 한번 변변히 못하는데. 정석이 때밀이 아가씨에게 접근한 사실을 알게 된 강수는 정석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껴 큰 싸움을 벌이고, 급기야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된다. 결국 강수는 밴드를 떠나고 밴드가 해체 위기에 놓이자 성우는 급하게 음악학원 원장을 팀에 합류시킨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계속 골치를 앓는 정석과 알콜 중독이 심각한 원장과 팀을 이끌어가는 것은 성우에게 버겁기만 하다.
부산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현구나 마을버스 운전기사를 하게 된 강수 역시 밴드 생활을 접고 살아가는 것이 간단치만은 않다. 고단한 현실에서 어린 시절의 꿈 맞닥뜨린 성우에게 이제 선택이 남아있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빛바랜 이야기에서 찾을 수 없었던 긴장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긴장감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 작품을 영화관이 아닌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집이라는 환경 속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그간 봐왔던 작품들은 조금 집중이 흐트러지다가도 긴장 포인트를 잡아서 순간적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어떠한 긴장감도 불어넣지 못하는 단조로운 카메라 무빙과 정말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들. 뭔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그 무언가가 전혀 내재되어 있지 않아서 보는 내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밴드영화에서 왜 사로잡는 음악이 없을까?
변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큰 주제로, 그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 밴드를 이용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재로 밴드를 선택했다면 적어도 밴드 씬만큼은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적어도 한 컷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치기엔 내 귀를 사로잡는 연주가 단 한 개도 없었다.
영화 속에서 비춰지는 밴드 씬들은 그저 직장인 아침이 돼서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하듯이 노래와 의상만 바뀌고, 시작하는 장면도 끝나는 장면도 똑같다. 카메라 구도도 달라지는 것이 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사람들이 나이트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밴드가 굳이 소재로 쓰였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속세에 적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왜 밴드가 사용되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은 해결되지 않았다.
과연 꿈을 버린 것일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엔딩이었다. 영화의 엔딩은 여수로 내려간 성우와 성우의 첫사랑 인희가 보컬로 들어오면서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끝이 난다. 너무나도 힘든 현실이지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어렸을 적 꿈꿔왔던 ‘밴드’라는 굼을 꾸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자를 두둔한다.
그런데 과연 어렸을 적 꿈궈왔던 것을 꼭 직업으로 선택해야만 그 꿈을 이룬다고 볼 수 있을까?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그 꿈을 버린 것으로 그 사고를 제한하는 프레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 환경이 있고 어렸을 적 꿈을 모두가 이루며 살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꿈을 버.렸.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안타까웠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제와 나의 가치관이 꽤 맞지 않아서, 그리고 영화의 진행방식이 나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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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소중함에 대한 시간의 역설이 멜로와 가족애를 모두 잡았다.
<러브레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돌아보면 꽤 많은 일본 영화를 봤었는데, 그중 단연 많이 보는 장르라면 멜로나 가족 장르가 되겠다. 특히 국적을 불문하고 2010년 이후 작품들보다 2000년대 초중반에 나온 작품들이 유난히 마음에 드는데, 특유의 투박한 감성과 어딘지 낡아 보이는 장면들이 가장 마음에 드는 매력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포인트가 많다.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이기도 하고, 포스터 자체가 워낙 눈에 익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왠진 한 번 봤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꽤 많은 영화를 봤지만, 리뷰를 쓸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찾질 못했다. 와중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만나게 됐고, 새벽녘에 맥주 한 캔과 함께 조용히 빠져들었다.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꽤 깊은 공허함과 동시에 따뜻함이 남는 매력 있는 영화였다.
일본 영화가 가진 청록색의 청량함은 유난히 푸르게 느껴진다. 주위 배경과 이질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게 신기할 다름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오프닝은 영화의 배경을 알리듯 가볍게 끊는다. 청량한 배경과 긴 여백으로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의미심장한 장면을 던짐으로써 관객에게 호기심을 끌어낸다. 대부분의 일본 영화들이 그러던데, 특유의 클리셰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시놉시스와 다르게 꽤나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분위기는 산뜻하게 이끌어간다. 마치 '불행한 일 같은 건 있지만, 괜찮아!'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진중한 현실의 사건을 가볍게 풀어낸다는 점에서부터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남편과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아이오 미오(다케우치 유코 분), 어느 날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고 돌아오게 된다' 소재 자체만 두고 보았을 때는 사실 치트키에 가까운 수준이다.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는 주제임과 동시에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조금 보태 이런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재미없게 만들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꽤나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가벼운 도입부를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 이별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알게 모를 밀당이 영화 전반적으로 흐른다. 관객에 마음을 아릿하게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다가도 동시에 허탈하게 웃을 수 있도록 놓아주기도 한다. 동시에 비의 계절이 되면 돌아오는 엄마라는 사실 자체가 연출적으로 낭만적이다. 비의 계절, 그러니까 계절 상 장마가 끝나버리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관객에게 인지시킨다. 때문에, 관객은 결말로 달려가면서 끝까지 오묘한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새까맣게 태운 빵과 풋내기 부자, 귀여운 음악, 배우 특유의 말투, 쉬어가는 듯 보여주는 여백의 장면들까지 이러한 조합들이 의외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지 않고 영화 내내 적당한 균형감을 유지해준다. 영화 전체적인 소재를 잊게 만들 만큼 연출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꽤나 쓸쓸해 보일 법한 연출도 여러 번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은 슬쩍 웃음 짓다가도 눈밑이 천천히 시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마, 누군가의 빈자리라는 점을 현실에 빗대어 연출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도 빈자리가 영원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상기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연출가의 밀당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영화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연출이나 대사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초반에 비의 계절을 바라보는 부자와 동시에 우연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비디오 테이프의 미오의 장면은 연출가의 섬세함이 극대화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함께하는 것 같지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닌 묵직하면서도 서글픈 연출이 마음을 여러 번 울린다. 이처럼, 관객의 감정을 끌어당기기 위해 여러 도구들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방금처럼 장면 연출 외에도 대사, 주인공의 모습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영화로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여러 번 영화 속으로 들어가 여러 주인공들을 교차해가며 동기화되어가는 감정을 느낀다. 다른 영화들보다, 이 영화에 유난히 눈물을 많이 흘렸던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 같다. 너무 동요하지도 않는 적당한 감정선이 우리에겐 더 애틋하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개연성이나 접점을 찾아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뻔할지도 모르는 결말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점에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헌신과 순수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이해가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개성 없는 캐릭터성과 상투적인 흐름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나, 이 모든 것을 뒤집을 만큼 감성적인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신파극 감싸주기'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영화가 다르게 보이지도 않을까 싶다. 영화는 무작정 관객을 붙잡고 '어서 울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화는 생각보다 관객에게 사건의 흐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기승전결의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지루할 수 있겠지만 영화의 스토리가 되어줘야 하는 일련의 과정조차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볼만한 영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일련의 과정들을 따라가면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점은 스토리의 순서가 생각보다 이래저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교차적이라는 점이었다.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려, 다시 과거로 회상되어가는 연출은 뭐랄까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둘의 첫 만남부터, 연애를 하게 된 시점과 행복했던 기억까지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스토리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푹 빠져들게 된다. 문득, 첫사랑이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지점들이 많았었다. 이러한 연출의 허점은 스토리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니 교차점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관객에게 혼란의 불편함을 심어주는 실수들이 있는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이런 불편함을 겪어보지 못했다. 아마, 인물이 인물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3자의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친숙하게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당신 물건이 그대로 있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대사를 통해 영화는 이별에 대해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건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사람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이별이 되었든 사별이 되었든 흔적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과거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마지막 장면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떠나야 하는 때를 알고, 슬픔에 잠기기보다 떠난 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해 애쓰는 미오의 모습은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둔 아이오 타쿠미(나카무라 시도)와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하나, 마지막에 서로의 각별한 추억을 떠올려 똑같은 행동으로 마지막을 보내는 모습에서 이별에 대하는 방식은 반대였지만 그 마음만큼은 같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돌아온 아내와 유난 떨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유난 떨지 않아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출이었다. 돌아온 아내와 밥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행복해 보였지만 동시에, 그만큼 이별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슬픈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 전체적으로 메시지가 굉장히 잘 드러나는 편인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지금'에 대해서 수없이 강조한다. 지나간 시간에 후회되고, 다가올 미래가 두렵더라도 지금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기를 이야기한다.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을 통해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로 현재 소중한 것들에 대한 것들을 강조하는 셈이다. 기억을 잃은 아내를 설정함으로써 다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과거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주인공과는 정반대인 면도 메시지 그 자체와 닮아있다. 영화에서야 이별의 기한을 재설정함으로써 주인공의 삶을 대입해 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거리가 있지 않으니까 지금을 온 마음을 다하길. 인형을 거꾸로 매달아놓음으로써 지금의 시간을 조금 더 늦추고 싶은 아이 아이오 유우지(다케이 아카시 분)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현실에서 흘러가는 삶도 중요한 남편 아이오 타쿠미의 삶을 모두 가지고 있는 당신, 당신에게 주어진 지금을 살고 흘러간 시간에 대해 후회하기보다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벽녘에 맥주와 함께 봤던 걸 후회할 정도로 먹먹한 영화였다. 꽤나 당황스러운 전개, 아이러니한 결말을 가지고 있지만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멋대로 단정 짓고 싶다. 소재에 관련해서 소위 말하는 치트키에 가깝지만, 영화가 2005년작임을 생각해본다면 치트키의 시초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결말을 기대하는 분들에게 할 얘기는 아니지만, 해피엔딩은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 정도로 괜찮았고, 마음이 크게 가는 영화였다. 일본 영화들은 본 이후로도 마음속에 꽤 오래 남기 때문에 한 번 보고 나면 다음 영화까지 보는데 꽤 긴 기한이 필요한 편이다. 그럼에도 보고 싶어 지는 이유는 이런 작품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 먹먹한, 너무나 아름다운, 그냥 괜히 따듯해지는 기분이 드는, 첫사랑이 문득 떠오르는 ... 많은 수식어가 떠오르는 영화였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었던 故다케우치 유코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출처 : <いま、会いにゆきます>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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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키리에의 노래>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리에의 노래 KYRIE, 2023
일본 / 드라마 / 119분
감독: 이와이 슌지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키리에의 노래>
여기, 이름을 버린 두 소녀가 있다.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실패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로 살기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이름을 잊기로 했다. 이름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부여되는 명칭으로, 우린 이름을 갖게 된 순간부터 대체 불가한 단 한 명으로 살다 죽는다. 이름, 고작 한 단어지만 삶을 지칭하는 동시에 지탱한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름값'은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인생값'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두 소녀가 버린 건 이름이 아니라 자기 삶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온 시간과 그만큼 쌓인 기억,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 자신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마오리는 형형색색 가발과 선글라스 없인 살 수 없는 잇코가 됐고, 발레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던 어린 루카는 노래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는 싱어송라이터 키리에가 됐다. 마오리와 루카, 잇코와 키리에. <키리에의 노래>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발버둥 치지만, 끝내 본래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를 맞이하는 이들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자연의 순리처럼 필연적이라,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어느 날, 거리를 걷던 잇코는 노상에서 버스킹 중인 루카를 한눈에 알아본다. 루카는 가발과 선글라스를 벗은 잇코를 보고 나서야 그녀가 마오리임을 알아차린다. 이미 과거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자신을 다시 소개한다. 대학생을 꿈꾸던 마오리가 왜 자신을 감추고 살게 됐는지, 루카가 어쩌다 노래할 때만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그들이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와 그녀의 매니저 잇코로 만났다는 게 더 중요하다. 두 사람은 삶의 기준을 가수와 매니저로 잡고 함께 나아가려 한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만 했던 것처럼, 운명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주기적으로 과거 조각들을 끼워 넣는다.
시련과 고통의 집합체인 조각의 역할은 단순하다. 가수와 매니저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려는 두 사람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의도는 없다. 단지,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 믿는 소녀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이도록 노출할 뿐이다. 목적은 보여주는 것에서 끝난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겼으나, 이미 영화는 결정했다. 나아가 그 결정은, 이야기 내내 진득하게 깔린 키리에의 노래처럼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며 자리한다. (참고로, 그녀의 노래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의 이름은, 과거 루카의 언니 이름에서 왔다. 루카의 언니, 키리에에겐 약혼자(나츠히코)가 있었다. 의대 진학을 꿈꾸던 나츠히코는 고심 끝에 임신한 키리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지만, 쓰나미로 인해 약혼자를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키리에의 동생이 살아있단 소식에 루카만큼은 꼭 지키겠다 다짐하지만, 그마저도 꺾이고 만다. 자연재해만큼이나 단호하고 냉혹한, 법 때문이었다. 혈연관계가 아닌 자는 어린 루카의 삶에 관여할 수 없었다. 이후 루카가 나츠히코를 찾아오면서, 다시 그에게 루카를 돌볼 기회가 주어지지만, 또다시 현실 앞에 무릎 꿇는다. 그렇게 루카는 혼자가 됐고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키리에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다 마침내 잇코와 재회하게 된다. 키리에의 공연은 잇코의 뛰어난 매니저 활동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점차 키리에는 거리의 가수들이 찾는 아티스트로 소문나고 각자 따로 노래하던 이들과 동료가 되어 함께 공연하기 시작한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영화는 <키리에의 노래>란 제목처럼 키리에(루카), 단 한 사람만 중심에 세운다. 키리에가 만나는 사람들의 서사는 주인공 성장 서사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될 뿐이다. 특히 잇코와 나츠히코의 과거와 현재는 키리에의 '과거가 된 오늘'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제 몫을 다하는데,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영향을 적지도 과하지도 않게, 딱 '적절하게' 준다는 점이다. 키리에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다. 그들은 키리에에게 선뜻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같이 아파하며 삶을 긍정한다. 악심을 품은 사람은 소녀의 곁에 다가오지도, 쫓아오지도 않는다. 그 힘으로 키리에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된다. 슈퍼스타가 되는 것보다,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도 똑같이 보내고 싶어 하며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소한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규칙은 서로 주고받는 일, 그렇다면 그들은 환대에 대한 보답을 받았을까? 글쎄,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영영 모르는 일로 남는다. (영화가 의도한 각자의 몫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키리에는 바다 위에 뜬 부표 같은 존재다. 거센 물결에 이리저리 치여도 절대 뒤집히지 않는 불굴의 신념을 품고 있는 자. 나츠히코가 그동안의 일에 대해 루카에게 간절히 용서를 구할 때도, 사기 결혼으로 수억 원의 피해액을 낸 잇코가 한 피해자의 칼에 맞고 쓰러질 때도,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축제가 아수라장이 되어도 키리에는 중심을 잃지 않는다. 물론 키리에가 자기 역할을 알고 의식적으로 행동한 건 아니다. 그럴 정신도, 마음도 가질 수 없는 친구니까. 하지만 그녀는 성공적으로 모두의 부표가 된다. 오직 주인공에게만 한정된 '적절하게'의 효과다. 노골적인 따뜻함과 노골적인 치유과정‥ 전부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코가 시큰해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거란 감독의 자신감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잇코의 생사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키리에는 여전히 한 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 홀로 버스킹을 한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다시 매니저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이젠 그녀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굳이 않아도 된다. 뒤집히지 않은 부표의 비밀은 쓰나미가 무서웠냐는 잇코의 물음에 답한 키리에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모르겠어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왠지 바다는 그리운 느낌이에요. 모두가 바다에 있을 것만 같아요.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쓰나미를 용서할 수는 없다. 마치 내 이름을, 내 삶을 버릴 수 없고,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지문을 남길 수 없는 것처럼. 키리에는 모르겠단 표정과 그립다는 노래로 받아들였다. 마오리가 잇코로 살기 위해 몸부림칠 때, 루카는 본능적으로 키리에를 품었다. 앞서 말한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과 함께 필연적인 과정을 걷기로 했다. 깊은 트라우마가 자신을 삼키는 것을 용인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인간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에서 살아남은 어린아이가 자신을 치유하고, 각자의 슬픔을 버티며 사는 이들에게 치유의 매개체가 되는 이야기. 마침내 키리에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된 이야기. 흘러가는 강물만큼이나 잔잔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텁텁한 뒷맛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별개로, 완벽한 결말이란 외피 안에 숨긴 의도적인 결말이, 너무나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그렇다. 키리에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잡았을 거다.
키리에는 노래한다.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 같은 날을 맞닥뜨릴 거라고, 그런데도 우린 자유로울 것이라고. 그녀의 울부짖음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건, 작은 신사 앞에 서서 기도했던 그녀의 기도 내용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오리의 말처럼, "그래 기도는 기도지. 더는 묻지 않을게." 가 <키리에의 노래>를 유일하게 대변한다는 점에서 설원을 걷는 루카와 마오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름값을 남겼음을 밝힌다.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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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된 진부함에 맥 못 추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재즈를 사랑하는 대학생 '개츠비(티모사 샬라메)'는 학내 언론에서 활동 중이며 영화광인 여자 친구, '애슐리(엘르 패닝)'가 영화감독 '롤란 폴라드(리브 슈라이버)'의 인터뷰를 위해 뉴욕을 가게 되자 함께 동행한다. 그는 애슐리와의 근사한 뉴욕 데이트를 꿈꾸지만 그녀의 인터뷰가 각본가인 '테드(주드 로)를 만나면서 점점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자 적잖이 당황하고 불안해한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홀로 뉴욕을 거닐던 개츠비. 그는 우연히 알고 지내던 동생 '챈(셀레나 고메즈)'을 만나고, 비 내리는 뉴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며 우연 같은 운명을 따라나선다.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영화 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앨런 감독은 하비 외인스타인 성범죄 파문 당시 그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출연한 티모시 샬라메, 셀레나 고메즈, 레베카 홀 등의 배우들은 그의 발언과 영화 내용에 반대하는 의미로 출연료 전액을 성폭행 피해자 지원 단체에 기부했다. 또한 감독 본인도 입양 딸인 딜런 패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는 자서전 출판이 취소되는 등 여러 어려움에 처했고, 이 영화 역시 부적절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의심을 받는 등 개봉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개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영화 내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지닌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수많은 장르에 도전했던 우디 앨런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들은 스토리 전개 상의 몇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다. 우선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인생의 절정기를 지났거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의 여자 친구 혹은 배우자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소통이 잘 되지 않고, 그에게 그다지 큰 위안과 힘이 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앞에 자신과 말도 잘 통하고, 관심사도 같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같은. 어느 여성이 등장한다. 이 남자와 여자는 우연인 듯 운명처럼 계속해서 만나고 사랑을 만들어간다. 우디 앨런의 대표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 <카페 소사이어티> 등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문제는 이 규칙들을 그대로 따른 결과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마치 배경만 뉴욕으로 바뀐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뉴욕을 사랑하는 개츠비의 입에서는 뉴욕에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낭만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파리를 가장 완벽한 도시로 여기며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오웬 윌슨)'처럼 뉴욕을 열심히 돌아다닌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챈을 만난다.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뉴욕을 가기로 한 순간부터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하던 애슐리가 아닌 챈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길이 약혼자였던 '이네스(레이첼 맥아담스)'와 헤어지고 파리에서 만난 '가브리엘(레아 세이두)'과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영화는 비를 맞으며 키스하는 개츠비와 챈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는데, 이마저도 비 오는 파리의 거리를 함께 걷는 길과 가브리엘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두 가지 악수를 두면서 새롭지 않은 스토리를 더욱 진부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우선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우연을 남발하며, 우연이 아니라면 사건을 전개하지도 못한다. 물론 우연이 없으면 영화의 스토리는 시작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르며, 우연은 운명적인 사랑을 강조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뿐만 아니라 결말에 이르기까지 우연으로 가득하다. 작중 개츠비가 챈을 만나 그녀의 집과 미술관에 가는 것, 애슐리가 영화 스타들을 하나씩 만나게 되는 계기들은 말 그대로 우연의 연속이다. 이처럼 인물들의 성격, 시간 및 장소적 배경, 논리적인 흐름 안에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대신, 뉴욕과 비라는 소재를 운명적인 사랑으로 연관 지으려는 시도의 결과 반복되는 우연은 클리셰로 가득한 진부한 영화를 탄생시킨다.
다른 하나는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중년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 잘생기고 인기 있는 스타에게 무조건 사랑에 빠지는 여성 등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있는 그대로 투영시킨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애슐리다. 영화는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으로 영화감독, 작가, 스타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라며 애슐리가 겪는 일련의 사건을 정당화한다. 그녀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기자로서 목적과 직업 정신도 철저하다는 설정이 무색하게 그저 그녀를 파도에 떠밀리듯 상황에 떠내려 다니는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할 뿐이다. 이에 더해 남성이 권력과 사회적 위치를 이용해 여성을 원하는 대로 이용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기보다는 어설픈 유머로 포장하고 청춘의 사랑싸움으로 치부한다. 영화의 초점 자체가 개츠비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는 감독의 행보와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눈을 뗄 수 없는 확실한 매력을 뽐내기도 한다. 우선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우디 앨런의 경우 유달리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많이 제작해왔고 이번에도 도시에 대한 그의 사랑이 다시 한번 발현된 듯 보이기도 한다. 뉴욕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재즈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도 아련하고 약간의 긴장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데, 특히 티모시 샬라메가 직접 부른 "Everything happens to me"가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는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그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고,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며, 냉소적인 듯 보이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과의 진심 어린 교류를 원하는 캐릭터를 맡을 때 자신의 이미지와 배역의 이미지를 가장 잘 조화시키는 듯 보이는 배우다. 작중 개츠비는 어머니가 숨겨왔던 진실로 인해 본인도 모르게 고통받아 왔던 인물인데, 티모시 샬라메의 퍼포먼스는 개츠비의 캐릭터를 적절히 살려주면서 극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준다.
작년 2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프랑스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자 젠더와 인권 관련 문제가 있는 감독과 그의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가 논쟁의 대상이 된 바 있다(http://www.goham20.com/59622/). 이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과거와 달리 현재 그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들의 영화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디 앨런도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 온 뛰어난 필모그래피와 별개로,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그 역시 사라지게 될 감독 중 하나일 수 있다(그의 성추행 논란은 아직도 명확히 결론 나지 않았다). 다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그 이유가 단지 영화 외적인 논란과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여성 차별적인 시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은 이제 진부하고 치밀하지 않은 스토리와 자기 복제로 인해 과거의 영광을 잃을지도 모른다.
P(Poor, 형편없는)
우디 앨런도, 배우들도 예상한 만큼은 보여준다. 단지 그들의 만남에 기대가 더 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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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네 오빠도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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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덕]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 및 퍼가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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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를 이해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오빠”가 포승줄에 묶여 기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미안한 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우리 오빠는 아니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는 또 다른 “오빠”의 덕후인 너를.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괜찮은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자기 오빠만 아니라면 저런 일이 일어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너의 태도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네가 웃고 있다는 점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미소 안에 숨겨진 알 수 없는 우월감과 안도감을 결국 숨기지 못해 내게 들켰다는 사실을 네가 알까.
우리 사이를 10년이나 지속하며 지내온 나조차도 덕후가 되어 이상한 필터가 눈과 마음에 씌워버린 채 내 앞에 앉아 있는 낯선 너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째서 만들어진 신(God)에 가까운 검은 머리 짐승에게 이토록 마음뿐 아니라 이성까지 빼앗겨 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너와 있을 때 생겨나는 묘한 불편함은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계속 나를 긁어 댔다. 너는 늘 우리 오빠 이야기만 했고. 우리 오빠의 작품을 보기를 강요했으며. 우리 오빠가 팬들 중 유일하게 너를 팔로우했다며 제주도에서도 보인다는 롯데 타워만큼이나 올라간 어깨를 으쓱댔으니까. 만난 것은 우리 두 사람인데 어째서 약속 장소에는 나는 허락하지 않은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 같기만 한지. 그리고 왜 약속을 잡은 나와는 이야기하지 않고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주제에 내 약속 상대를 뺏아간 그 누군가와만 이야기하는 것 같은지. 네가 즐거워서 얼굴이 더 밝아질수록 나의 불쾌함은 그 밝음의 그림자처럼 깊어져만 갔다.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늘 입버릇처럼 자존감의 성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심리학에서 의존할 대상이 필요하거나, 누군가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충족시킬 대상을 내세울 때 연예인에게 집착하는 성향이 생긴다는 사실을 대입했다. 그만큼 너의 애정은 자신을 향한 푸념만큼이나 광기에 가까웠고. 나는 너의 그런 찬란함만 가득한 광기가 이해가 가면서도 온전히 안을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너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저런 거”쫓아다니는 애들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던가. 혹은 직업에서 그다지 입지를 다지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너는 참 열심히도 살았다. 덕질하느라 적금도 겨우 넣는다는 너의 푸념은 입가에서 마를 날이 없었던 건 너는 쏙 빼고 말하겠지만.
영화 속엔 네 친구들이 참 많더라. 그런 사건이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오빠가 그럴 리가 없다며 옹호하기도 했고. 쿨한 척 죗값을 치르고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으며. “너네 오빠”의 가면 벗은 모습을 밝힌 기자 한 사람이. 세상에서 잠시 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낄 때까지 무지성으로 헐뜯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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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팬으로 대변되는 집단의 대다수가 가진 좋아한다는 감정이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도 한다. 그 죽고 못 사는 오빠가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인 줄 짐작으로 알았으면서도 기꺼이 눈을 가렸음을 말할 때는 머뭇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더더욱. 결국 그들의 선택적 눈가림이 진짜 피해자들에겐 2차 가해이기도 함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일하며 그 사람을 좋아하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해도 온전히 떳떳함을 느끼지 못하고 슬그머니 어깨를 움츠리는 것처럼.
물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억울하기도 하겠지. 입에도 담기 싫은 그 일이 생긴 후, 팬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동급 취급을 당하거나. 걔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당사자가 아닌 팬들에게 넘겼을 테니까. 그뿐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너를 떠올리고 있는 나조차도 내가 너를 이해해 “주겠다”는 시건방진 마음을 가지고 다리나 꼰 채로 의자에 앉아 맘껏 너를 비웃으며 영화를 관람하고 있으니까. 너를 포함한 그 집단은 이런 시선과 아니꼬움까지 업은 채 본질보다 더 왜곡되고 있을지도 모르지.
영화가 다루는 대상, 혹은 질문에서 빠져 있는 게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너도 피해자 중 한 부류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것도 돈, 시간, 마음까지 다 바친 대상에게.
세연이 박사모를 찾아가는 모습을 비추었을 때의 얼굴을 네가 보았어야 했다.세연에겐 거울 요법이었을 테고. 그 어떤 기준도 없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열변을 토하는 박사모 회원 중 한 사람을 보면서 세연이 느꼈을 어이없음은 내게도 조금의 통쾌함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기세에 밀린다는 생각을 아마 너네 오빠가 최고인 줄 알던 너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처음 만나보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뭐 요새 하는 말을 빌리자면 자강두천(자존심 강한 두 천재) 정도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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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와 동시에. 영화의 마지막 지점은 묘하게 내가 너와 별반 다른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나 조차도 은근히 선을 긋고 있음을 알게 되는 그 시작점. 불쾌하지만 사실적이고 어딘가 축축하지만 화려한 독버섯이 가득 피어 있는 길티 플레저를 닮은 이 영화처럼.
나도 충동적으로 용돈의 일부를 털어 [리틀 드러머 걸] 블루레이 세트를 사고(언제 오냐ㅠ),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것에 강박적이며.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영화를 찾기 위한 여정을 외롭게 걷는 것을 즐기는 데다 “대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고급인 척 하지만. 그래도 “너 정도”는 아니니까.라는 말로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그 오빠”에 빠져 있을 때 나는 너보다는 “수준 높은”것을 하고 있다고 너를 매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훅 밀려왔다.
그런 사람 좋아하지 말고 네 인생에나 신경 쓰라고 말하고 싶어 늘 마음속 파우치에 그 문장을 고이 챙겨 다녔던 나도 그다지 떳떳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 물론 그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개입해야 할 문제일지 아닐지 투표를 한다면 개입하지 않는다에 더 많은 표가 들어있을 것임은 투표 전인 지금도 명백해 보이니까. 어차피 정도와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좋아하는 것을 향한 다양한 감정은 네가 그렇고, 영화 속 인물이 그렇고 나에게도 그랬듯이, 모두의 마음속 하늘에 뜬 채 지지 않는 엉망진창 무지개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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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덕질이 하루 안에 그칠 리 없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그려진 것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건강하게 덕질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그 행복하기 위한 덕질의 전제 조건으로 나중에 상처받을까 봐 애초에 마음을 다 주지 말자고 말하는 영화 속 인물의 말에는 반대한다. 사랑이란 것이 우연처럼 찾아와 남남이던 두 사람을 우리로 엮어 뗄 수도, 떼고 싶지도 않게 여겨지던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과연 그 다짐이 제대로 작동해서 헤어질 때 마음 한 구석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강판에 갈려 나가는 것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 적은 없지 않은가.
어차피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의 행동이 정상에 가까울 리 없다. 그러니 너도 나도. 정상인 척 숨기려 하지는 말자. 하지만 일상만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 여전히 나보다 정도가 심한 덕질을 하는 네게는 힘들 수도 있겠지만. 두 발 모두를 허공에 띄워 정처 없이 표류하기보다 적어도 가계부만은 쓰기를.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선택한 덕질이라 할지라도 현실 앞에 눈 감기보다 한쪽 눈 정도는 뜰 수 있기를.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는 지긋지긋하게 너를 덕질하는 현실이 너를 놓아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는 말자.
그러니 다음에 만날 때는 너의 23 아이덴티티 중 그 오빠의 덕후인 모습은 숨긴 채 만나자. 덕질은 너만의 것일 뿐. 다른 사람 마음의 옷걸이에 제멋대로 걸어두는 외투가 아니다. 불쾌함을 느낀 상대방이 너의 외투를 툭 떨어뜨린다고 해서 네가 옷걸이를 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와 나는 그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서로 간의 시간도 감정도 존중하는 길일 테니까.
또한 네가 좋아해 마지않는 그 오빠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자. 우리 오빠는 그럴 리가 없다라던가 어떻게 팬들한테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철학적으로라도 인정해야 한다. 행여나 네 마음속 감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런 “안 좋은 일”이 탈옥해서 세상에 돌아다닌다 해도.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늘 알아야 한다. 애초에 너네 오빠의 자유의지가 그랬을 뿐이다. 너네 오빠는 그럴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었을 뿐. 너는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없고. 그 사람은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어야 할 의무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의 덕질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길 때 비로소 더 자유로울 것이다. 물론 어렵겠지만.
삶에 지쳐 오아시스를 찾을 수는 있을지언정. 신기루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말자.
우리, 남보다 나를 앞세운 삶을 살자.
마치면서
정말 뒤틀려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분명 어이없는 마음이 들게 하면서도 마지막의 성찰을 보여 주는 부분에서 세연의 얼굴 표정은 아 자신이 이렇게 비쳤을 수도 있겠구나를 알게 한다. 어머니의 부분도 좋았다. 적어도 어머니는 팬심에 삶의 지혜가 더해져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강제 탈덕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이제 웃으면서 지나 보낸 것 같은 모습을 보이셨으니까.
정말 영화 보는 내내 친구의 모습이 겹쳤다. 실제로 리뷰 속 사건들과 친구의 태도 때문에 절교를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친구가 이제는 만날 때 더 이상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기간제 연장을 한 것 이긴 하지만. 내가 누굴 이해하려는 스스로의 마음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에 대한 좀 더 나이 들어버린 자가 할 수 있는 꼰대 마인드를 온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학생=공부라서 나는 전교에서 놀았고 혹은 사범대를 갔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부분도 우스웠다. 어차피 학벌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님은 스스로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애초에 화이트 칼라에 해당하는 집단들이 도덕적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게 말이 되는 일이었다면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의대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올 만큼 노력한 사람이니 사람 하나쯤 화장실에서 죽인다고 매장당하는 게 아깝다는 말에 이토록 분노감을 느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리뷰를 쓰는 방식도 매우 고민했다. 애초에 덕질에 대한 과도한 친구로 인해 그다지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보통 덕질을 바라보는 사람이 훈계하는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똑같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보다 낫다는 시선을 가진. 내 모습의 일부이기도 하기에 영화의 내용과 녹여서.
흑역사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고 성찰하려는 태도를 가진 감독의 배짱도. 영화도 모두 좋았다.
[이 글의 TMI]
1. 은근히 터지는 부분이 있음.
2. 9월에 본 영화 중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음.
3. 마지막 남은 사랑니가 대공사(+위험함)를 해야만 뽑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됨.
4. 치과에서 이 덩치에 울 뻔함.
5. 정말 지옥의 카운트다운만 남은 셈.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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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드게임 시간여행의 종지부를 찍어준 로키! 인피니티 스톤을 돌덩이로 만드는 절대적 힘, TVA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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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10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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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5 진정한 힘, TVA&타임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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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가장 임펙트 있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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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쟁이] 마블을 거절한 역대급 배우들!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영어 영상 이후에 정말 편한 마음으로 다시 한국어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마블영화의 캐스팅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봤습니다.
배우들 중심으로 풀어봤으니 재미있게 시청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구독 꼭 부탁해요~
2017. 1. 0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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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가 날 부를 때> 30초 예고편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돈을 벌고 공부하며 고군분투하던 ‘안란’.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몇 번 본적도 없는 어린 남동생이 안란에게 덜컥 맡겨진다.
동생을 키우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누나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어른들.
“내 인생에는 너만 있는 게 아냐.
나에게도 우주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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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 강시선생> 메인 예고편
저주받은 강시들에 얽힌 비밀을 밝혀라!
배고픈 귀신들을 위한 귀신절에
갑자기 출몰한 강시들로
마을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혼비백산이 된 마을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퇴사마 ‘하오’는
이 사태에 무시무시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데…
역대급 퇴마 호러액션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