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4-24 16:53:29
마블리 vs 역대 빌런 모음 <범죄도시4>
여러분들의 <범죄도시> 빌런 pick은?
마블리 변천사 VS 역대 빌런
여러분들의 '빌런' PICK은? 댓글로 적어주세요
<범죄도시4>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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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기록과 해석의 순간
OVERVIEW
2018년 브라질, 우연히 손에 넣은 16mm 필름에 담겨 있던 낯익게 느껴지지만 먼 곳에서 온, 그리고 오래 전에 촬영된 기이한 이미지들에 충격을 받아 이 영상의 기원을 조사하기로 한다.
REVIEW
이 영화의 감독 자나이나 나가타는 오래된 16mm 영사기 점검을 위해 릴을 하나 구입했는데, 선물로 작은 필름 롤이 함께 들어 있었다. 이 롤에는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한 가족이 휴가를 보내는 19분 분량의 홈무비가 담겨 있었다. 감독은 이 발견의 순간부터 컴퓨터를 떠나지 않고 인터넷과 모든 도구를 동원해 이 휴양지 이미지의 실제 배경을 알아내는 조사에 착수한다. 무해한 필름 롤과 아마추어 이미지가 주는 정보로 단순한 인터넷 검색에서 끝날 줄 알았던 이 특별한 수사 스릴러 형식의 영화는 결국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시기 일어난 인종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문성경)
"사적인 영화"는 감독이 영사기 점검용으로 "릴+사적인 영화"라는 제품을 온라인 구매하면서 시작된다. 릴과 함께 들어있던 19분 가량의 영상은 누가 봐도 가제 그 이상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제목의, 출처 불명의 무성 필름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미 편집한 영상이었다. 즉 어떤 의도가 이미 반영된 기록물이었다.
검은 화면에서 타이핑되는 글씨로 시작한다. 타각타각 소리와 함께 화면에 타이핑되는 속도대로, 관객은 감독이 겪은 정보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이 영화는 19분의 풋티지 영상, 그리고 영상 속 정보의 조각을 찾아 따라간 감독의 여정을 관객이 고스란히 따라가게 한다. 영화 <서치>에서 딸을 찾는 아빠의 탐색전을 흥미진진하게 본 사람이라면, 다음 장면을 궁금해 하며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단순하게 크루거 국립공원이다. 얼핏 사파리에 가서 재미있었던 시간을 담은 기록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감독이 설치한 음악이 고조되면서 계속 의문을 갖게 만든다. 끼긱끼긱 퉁겨지다 득득 긁히며 끊어질 듯 말 듯한 현, 퉁퉁 불규칙적으로 쏟아지는 타음이 불안을 고조시킨다. 기린이 걸어가거나 원숭이가 움직이고 가젤이 뛰고 물 안의 하마들이 지나가는 그 자연스러운 장면들조차 불안해 보인다. 그러면 궁금해진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 영상을 편집했을까? 코끼리의 걸음이 왜 반복되고 있을까? 앉아 있는 사자를 왜 재차 비출까? 사파리인데 조금도 경쾌하지 않다.
불안 안에서 궁금해하고 있노라면 전통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춤이 나온다. 사파리에도 있던 백인 아이가 춤을 지켜보며 슬며시 화면을 지나간다. 불안한 예감은 어두운 냄새를 맡는다. 도시의 길거리와, 현란한 복장의 인력거꾼과, 놀이기구가 있는 해안 도로와, 푸르게 어두운 아쿠아리움, 잔디밭, 사람들, 부유한 옷차림의 백인들과, 들판의 오두막들... 영상이 나아갈수록 어둡고 불편한 감각이 느껴진다.
감독은 꼼꼼하고 성실하게, 차곡차곡 파고든다. 영리한 구성을 따라가다 보몀 어느새 불안은 경악이 된다. 생각지도 못한 얼굴과 이름들을 마주하게 된다. 평화로운 여행의 기록일까 싶었던, 아니 실제로 상당 부분 그랬을 이 영상에는 착취의 역사가 배어 있다. 타인의 피를 팔아 제 배를 불린 사람들의 기억이 스며 있다. “사적인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전혀 사적이지 않은, 역사 교과서에 길이 실릴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보다 보면 궁금해진다. 사적인 기록은 정말 사적인가? 기록은 언제까지 "사적"일 수 있는가? <안네의 일기>가 그랬듯, 기록은 서랍 안에 있을 때만 사적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읽히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가끔은 작가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의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안네가 일기를 쓸 때 안네가 차마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처럼, 19분의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한 이가 이 영화를 상상했을 리 없다. 그냥 값비싼 취미였는지도 모른다. 코끼리가 걷는 장면이 반복되는 게 단순히 재미있어서 별 생각 없이 했는지 모른다. 아이의 미소를 사랑해서 계속 담다 보니 모인 영상들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의도였든, 영상엔 단순히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것만 담기지 않았다. 길 가다 불려와 쭈뼛거리며 카메라 앞에 선 여자의 얼굴에 어린 경계와 불안, 그 자리를 피해보려고 얼굴을 가리는 사람, 환하게 웃는 백인 아이 옆에서 현란한 옷을 입고 등짝보다도 커다란 모자를 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인력거를 끌어야 하는 사람.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분리되어야 한다고 허울 좋은 단어를 끄집어내면서도 착취의 순간에는 옆에 있는 걸 불편해 하지 않았던 누군가들의 얼굴. 영국 여왕처럼 차려입은 여자들과 말쑥한 정장을 한 남자들의 만찬, 연설.
마치 그 대조를 의도한 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19분의 영상 바깥에서도 동일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감독은 영상이 촬영된 시점에서 서서히 현재까지 이야기를 끌어온다. 역사가 이 영상이 찍히던 시절의 남아공을 지독한 인종차별의 시절로 기록함에도, 어떤 이들은 해안도로와 수영장과 원색의 옷자락과 환한 미소에서 풍기는 부유한 기운을 잃어버린 천국으로 기억했다. 없던 추억까지 제조해 버리는 힘이 있는 밴 모리슨의 음악을 배경 삼아, "비티지"하고 "레트로"한 색감 속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러나 모두에게 추억의 풍경일까? 다른 누군가에게도 천국이었을까? 영화는 희생을 담아내지 않고도 희생의 얼굴을 비춘다. 그렇게 누군가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사적인 기록은 공적인 역사의 순간으로 읽힌다.
다큐멘터리가 역사적 순간을 말할 때, 한 축이 기록이라면 다른 한 축에는 해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해석을 통해 기록과 해석의 존재 의의를 동시에 비춘다. 기록을 읽어내는 과정에 관객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동참시키고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고 묻는다. 1960년대의 일에서 지금 여기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지. 여전히 허울 좋은 말에 가려진 차별과 격리로 누군가를 투명하게 만드는 시도들은 없는지. 그 현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눈은 어디에 있는지. 영리한 영화는 이렇게 존재 의의를 스스로 증명한다.
2023. 04. 28 19:30 메가박스 전주객사 9관 (172)
2023. 04. 30 14:00 메가박스 전주객사 9관 (338)
2023. 05. 05 17: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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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힐 때
정소영 감독의 단편영화 「달이 기울면」 의 텍스트 분석을 하기에 앞서 먼저 트라우마(trauma)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트라우마에 의거한 불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란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한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많기에 이러한 이미지는 장기 기억되어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머리속에 이미지가 떠오르며 불안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영화에서 가장 독특하게 느껴지는 기울어진 집은 주인공 ‘재아’의 트라우마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기울어진 형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정성과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트라우마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불쑥 튀어나와 정신을 잠식한다. 그래서 주인공 ‘재아’ 또한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외부적 요인인 지진으로 인해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게 되자 기절하는 등의 장면이 나온 이유가 그러하다.
영화는 기울어진 형태를 주된 이미지로 잡았다. 그래서 영화 속 주된 공간적 배경인 집 자체가 기울어져 표현되는데, 기울어진 집안이 주는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불쾌한 기분을 야기한다. 가장 안락해야할 공간이 기울어졌다는 것은 주인공의 삶이 밸런스가 무너지고 극심한 혼란 상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트라우마를 형상화시켰을 뿐만아니라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기울어진 집에서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집이 더이상 안락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불안정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관객들은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진다. 즉 낯익은 낯설음을 경험하게 됨으로써 영화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는 주인공. ‘재아’가 기울어진 집에서 부모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고 난 뒤 이웃 아주머니가 전해주는 과일을 받기 위해 어그러져 열리지 않는 문짝 대신 문 옆에 난 조그만 통로를 통해 물건을 주고 받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우려와 자신은 이 기울어진 동네를 벗어난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이제 기울어진 동네에 남아있는 사람은 주인공인 ‘재아’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재아’는 제사를 위해 촛대를 세우거나 사과를 올려 놓지만 기울어진 집 때문에 물건들이 구르거나 제대로 안착되지 못한다. 화나고 짜증나지만 이 곳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 소식을 알 수 있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방사능 비, 홀로 사는 여대생을 노린 성폭행 범죄의 증가와 같은 안 좋은 소식들 뿐이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인 전화기에서는 돈을 재촉하는 오빠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제사를 준비 하던 중 ‘재아’에게 친오빠가 찾아온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오빠가 찾아오는 씬(Scene)의 분위기가 매우 공포스럽게 그려진다. 마치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처럼 말이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특징인 어두운 밤, 비가 거세게 내리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동네에 추적추적 발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려고 하는 데 문은 굳게 잠겨있기에 집을 돌아 창문으로 다가간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사람의 모습은 ‘재아’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재아는 칼을 들고 창문을 억지로 여는 사람을 찌른다. 그러나 그가 오빠인 것을 깨닫고 안심하게 되는데 이 부분만을 보자면 영화는 스릴러장르로 보인다. 그러나 미스테리(Mystery)한 인물은 ‘재아’의 친오빠로, 같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는 맥커핀(Macguffin)으로, 맥커핀(Macguffin)이란 속임수, 미끼라는 뜻으로 영화에서는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고안한 극적 장치를 말한다.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헛다리짚기’ 장치를 말한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동일화와 긴장감 유지이다. 주목을 받는 대상을 맥거핀(Macguffin)으로 사용해 관객들의 김을 빼놓는다. 관객은 스스로의 믿음과 판단력이 조롱당했음을 깨닫게 되지만 이 때문에 불쾌함을 느끼기보다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는 무지와 오해로 인한 아이러니한 세계를 형성한다. 히치콕은 헛다리짚기를 통해 동일화의 허구성을 체험하도록 만들었지만, 히치콕 이후의 감독들은 극적 재미를 위한 트릭으로 맥거핀(Macguffin)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감독은 ‘재아’의 자살기도, 친오빠의 등장을 맥거핀(Macguffin)으로 그려내어 영화의 재미를 높였다.
기울어진 공간에서 친오빠의 등장은 ‘재아’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처럼 비춰준다. 그러나 친오빠와 같이 제사 준비를 해도 기울어진 공간에서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과일들은 제대로 그릇에 위치하지도 못하고 선풍기 또한 기울어진 곳에서는 작동이 되지 않아 사용할 때마다 수평을 맞추어야 작동이 된다.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
이 장면은 불안정한 사람이 제대로 사회에서 작동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수평을 맞추어야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울어진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형상화하며 바깥세상 즉, 사회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울어진 마음을 수평으로 맞추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야 제 기능을 하며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기울어진 공간에서는 억지로 수평을 맞추지 않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억지로 수평을 맞추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빠는 왼발은 의족을 차고 있고 오른발에 소리가 나는 발찌를 차고 있다. 이는 오빠에게는 족쇄이자, 재아에게는 트라우마의 청각화다. 오빠가 장애를 가지게 된 이유는 ‘재아’의 욕심 때문이다. ‘재아’는 어릴 적 서랍장 위에 있는 과자를 가져가기 위해 지진이 나는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오빠는 그런 ‘재아’를 구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서랍장이 친오빠를 덮쳐 왼쪽발이 절단된 것이다.
오빠가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재아’의 트라우마를 야기한다. 그리고 오빠에게 발찌는 족쇄이다. 집을 떠나온 뒤 3년 동안 자신이 가진 핸디캡을 딛고 살아보려고 했지만 의족을 착용한 오빠에게 던져지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 나름대로 막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지내왔지만 생활의 궁핍함과 차가운 사회의 시선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막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오빠는 자신의 족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잠식된 모습을 그린다.
「달이 기울면」에는 동굴이 등장한다. 오빠가 제사를 준비하다가 물건이 제대로 안 세워지고 굴러 떨어지는 이 공간이 지긋지긋하여 땅을 파고 동굴을 발견한다. 동굴 안에서는 빛이 새어 나오고 기울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동굴안에서 ‘재아’와 오빠는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 그리고 마치 어머니 자궁과 같은 안락함도 느껴진다. 이 공간 속에서는 두 인물간의 트라우마를 직접 입밖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에 지진이 발생하고 기울어진 집은 점차 수평이 맞춰지게 된다. 수평을 맞춰지는 집을 보면서 ‘재아’는 자신이 오빠의 발을 다치게 한 사건이 떠오르고 재아는 기절한다. 다음 날 아침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문이 부서지고 ‘재아’는 오빠의 유품을 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죽음 충동과 연결 지어 텍스트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여자 주인공 ‘재아’와 오빠는 죽음 충동에 빠져있다. 죽음 충동이란 프로이트가 제창한 정신분석학 용어로 죽음으로 향하려는 욕구를 말한다.
‘재아’가 자살기도를 하는 장면을 맥거핀으로 사용하면서 ‘재아’의 죽음충동을 그려내거나 오빠가 자신의 죽음을 동굴안에서 고백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기울어진 집 안에 구멍을 뚫어 동굴을 만들고 동굴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일방적인 공간(상징계)에서 동굴이라는 상상계의 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보여준다. 동굴은 죽음으로 가는 공간이다. 동굴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고 오빠가 자신의 죽음을 토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크레딧에서 조그만 공간으로 빨려 가는듯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임상체험을 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환한 빛이 나오고 그 빛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진술을 영상화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시간으로서의 이미지란 공간 속에 과거, 미래, 현재가 혼용되어 있는 공간을 말하는데 불쾌한 공간의 고리를 끊고 싶은데 그 파편화된 이미지에서 과거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굴에서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오빠가 자신의 죽음을 말하자 지진이 일어나고 파편화된 과거의 이미지를 통해 재아가 자신 때문에 오빠가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된 공간인 동굴은 시간으로서의 이미지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와 미래, 현재의 시간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단편 영화「달이 기울면」을 보고 나면 맥거핀, 죽음 충동, 시간으로서의 이미지등 다양한 이론들을 영화적으로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준 영화인 것 같다.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다소 무겁지만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수평만 유지할 수 는 없다. 한 쪽으로 기울수 도 있고 불안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트라우마(trauma)를 통해 잠식되는 불안감이라는 어두운 감정을 기울어진 공간 속 ‘재아’라는 인물을 통해 잘 드러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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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노력이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을까?
알렉스 돌은 대학 신입생이며 대통령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무척 잘한다. 그러나 그녀의 또 다른 관심사는 노비스 조정 훈련에 참가해서 대표팀으로 뛰어보는 것이다. 공부뿐만 아니라 로잉 머신으로 훈련을 지겹도록 연습한다. 그런 그녀에게는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 줘야 하는 강박 때문인지 타고났다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까지 공부든 조정 훈련이든 열심히 하는 알렉스 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점점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코치에게도 인정받자 자신을 더욱 단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경쟁자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1등에 집착하는 알렉스 돌은 점점 자신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을 해치게 된다.
타고났다는 말을 듣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알렉스 돌'의 노력과
투쟁을 보여주는 영화!
남들보다 치열하게 노력해야 1등이 될 수 있다는 집착이 무엇을 힘들게 했나?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들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영화!
알렉스 돌은 자신에게 해를 입힐 정도로 공부와 조정 훈련을 열심히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여유로움이었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고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노력은 노오력이 되어 자신을 힘들게 했다. 또한 1등이란 단어에 집착한 만큼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 하는 알렉스 돌은 점점 미쳐간다. 그렇기에 남들이 쉬고 있을 때 자신은 끊임없이 로잉 머신으로 신기록이 나올 때까지 연습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들어지는 건 자신뿐이었다. 코치가 강요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타고난 재능이 있는 친구들보다 더 잘하려고 했기에 아주 힘든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지고 미쳤다는 말을 듣는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압도하려면 필요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고 이런 알렉스 돌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노력에 장점은 있었는데 자신이 계획한 목표를 향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게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려고 남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본 사람들의 끈기와 무서운 추진력을 보게 되었다. 모두 1등이 되기 힘들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정말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언가에 푹 빠지면 정말 성공하는 것일까?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점도 주는 영화 <더 노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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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반쪽의 이야기>, 닫힌 방을 연 멍청이들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넷플릭스보다 왓챠를 더 많이 보고 있다. 간이 콩알만 한 탓에 제목은 알면서도 차마 보지 못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수두룩하다. 궁금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호기심이 쫄보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게 <반쪽의 이야기>. 플라톤의 향연을 인용하면서 시작된 영화에서, 약간은 낮고 덤덤하게 나오는 주인공 엘리의 목소리가 좋았다. 다른 톤의 목소리였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와 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큰 틀에서는 익히 봤던 전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한 편지를 대필해 주는 것도, 마음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것도, 그러다 이상하게 정드는 것도. 아,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는 건 반전이 아니다. 처음부터 애스터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엘리의 목소리처럼 묘하게 다른 이야기가 있다. 목소리만큼이나 덤덤하고 시니컬한 엘리가 과제 대행 '거래'를 하는 점. 분량마다 금액도 정해져 있고, 과제 성적도 꽤 좋게 받을 수 있다. 돈독 올랐다고 하면 서럽다. 용돈벌이를 하는 게 아니라 전기 요금 등 생활비를 벌고 있다. 엘리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과제 대행을 자연스럽게 맡기는 동급생들. 대부분은 무관심하고, 일부는 기차소리와 엘리 추라는 이름을 섞어 '처기처기 추추'라면서 기차소리로 놀려댄다. 플라톤의 사랑이란 주제로 대행 과제를 포함해 총 6개 과제를 내고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선생님. 엔지니어링 박사학위 등 전문성을 갖추고도 영어실력이 부족해 커리어의 시작인 줄 알았던 스쿼헤이미쉬에 주저앉은 아버지. 유쾌하고 재밌는 성격이었을 것 같은 사진만 남기고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 스쿼헤이미쉬 반은 갖고 있다는 지역 유지의 아들 트리그에게서 보이는 여유와 자신감, 트리그에게 열광하고 동경하는 수많은 학생들. 평생 이곳을 떠난 적 없는 사람들. 사람이 사는 곳엔 늘 문제와 상황이 난무하지만, 겉으로 평화로워 보인다고 해서 괜찮은 상태는 아니다.
누가 그랬나. 삼각형은 완전하고, 삼각관계도 완전하다. 엘리와 폴 모두 애스터를 좋아한다. 엘리는 교회를 가지도 않는데도 4년간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다. 애스터 아버지가 목사인 교회에서 과제 대행으로 바쁜 엘리가 황금 같은 주말을 두고 반주를 한다면?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애스터 때문일 거라는데 손모가지도 걸 수 있다. 매주 만났을 텐데도 애스터와는 별다른 친분이 없다. 우연히 마주쳐서 한 첫마디가 '난 엘리 추야' 하는 자기소개인 걸 보니 알만하다. 이름은 알지만 가까워지지 못했다. 엘리와 애스터 중 누구 하나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폴의 이름 뒤에서 편지로, 고스트 메신저로 애스터를 만나게 된 후로 엘리는 정말 이해받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둘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 추상화와 문학을 좋아하는 것도, 제법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눈빛 교환만 의미심장
왜 엘리와 애스터는 진작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애스터가 학교의 "그 트리그가 좋아하는 예쁜 애"고, 엘리는 "과제 대행하는 중국애"라서? 트리그와 트리그 팬클럽에는 끌려다니면서 마음 맞는 아싸 친구와는 다닐 수가 없어서? 애스터를 좋아하지만 애스터는 엘리 같은 애는 모를 테니 멀리서 지켜보는 게 나아서? 학교에서의 이미지와 인간관계가 아니라면 종교 때문일까. 목사인 아버지가 엘리는 종교가 없어서 친하게 지냈다면 혹시 말리셨을까.
영화에서 나를 무너뜨린 대사는 이해받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아냐(You know what it's like to finally meet someone in your age who gets you?)는 엘리의 말 때문이었다. 세상에 누군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내 또래고 내 근처에 있고,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그 순간만큼은 눈물 날 정도로 부러웠다.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은 늘 내게 모자라거나 비어 있는 것들이다. 대사를 듣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놀라울 정도였다. 어쩌면 평생 이해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서, 그래도 엘리 너는 행복하면 됐다 싶다가도, 그 대상이 끝내 나는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버려서였을 것이다. 누구보다 반쪽에 진심이었던 건 아니었나 싶게.
4년 만에 처음 대화인 건지
하지만 그런 엘리와 애스터 사이에도 장벽은 있다. 애스터가 "상황이 다르고, 내가 달랐다면.."이라고 말하는 그 이유 때문이다. 엘리가 폴인 척하고 애스터와 연락을 했던 건 애스터에겐 분명 당황스럽고 배신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도 별로 화가 안 나는 게, 폴과 엘리의 결이 너무나 달라서 짐작을 못했을 리 없는 정도다. 글로는 멋진 말을 던질 줄 알고 관심사도 똑같은 사람이, 만나면 긴장했다고 얼어붙어서 대화가 몇 단어 이어지지도 않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글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고, 말은 침묵이 반이지만 어딘가 든든한 느낌이었던 것도.
애스터에게 약간은 실망했다면 미술 전공을 선택한 것 이외에 주체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엘리 말대로 상황이 다르고, 내가 다를 일은 없다. 엘리가 트리그의 프로포즈에 안돼!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애스터는 못 이기는 척 트리그와 결혼했을 것이다. 엘리를 엘리라고 불러주지 않고, 농담이긴 하지만 heathen (이교도= 비종교인)이라고 불렀다. 엘리는 저 멀리 아이오와로 떠나갈 예정인데도. 다만 그녀가 보여준 대담한 선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천온천에 데려간 점. 그곳에서 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적극적이고, 자신도 얼마나 이해받는 기분이었는지 표현했다. 그렇게 이해받는 느낌을 주는 사이더라도, 완전히 이해받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완전히 이해받는 건 완전한 반쪽을 찾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 무너질 필요는 없다. 이해받았던 순간과 그때의 마음만 잘 간직하더라도, 그 순간을 되감아 보는 것만으로도 버틸 만하다. 엘리가 대학 가서 보자고 하지 않나. 이 둘 사이는 두고 볼 만하다.
요즘도 편지 쓴다
엘리는 폴에게 여러 번 놀라곤 한다. 고민이 많은 엘리에 비해 폴은 그 고민을 말도 안 되게 쉽게 풀어버린다. 말도 나눠보지 않은 애스터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고선 엘리에겐 사랑에 빠져 본 적 없는 것 같다며 정곡을 찌른다. 엘리가 뒤통수에서 따갑게 듣던 '처기처기 추추' 놀리는 소리에 맞서 소리쳐 준다, 사랑하는 건 노력하는 게 아니냐는 명언도 남기고, 사랑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영화를 보면 폴이 점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단순하고 말 주변 없는 빙구라 생각하면 오산. 뭣도 모르고 짓는 미소도 약간 어설프게 뛰는 달리기 폼도 귀엽다. 이거 참 큰일이다. 귀여워 보이면 답이 없는데. 무엇보다 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애스터랑 말 한 번 해보지 못했지만 편지를 써보자. 누가 요즘 편지를 쓰냐고? 로맨틱하잖아. 말을 잘 못하니 엘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찾아도 가고. 폴이 처음에 애스터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살펴보자. 애스터 너는 똑똑하고, 착하고, 예뻐. 그중 2개만 해당되어도 너를 좋아했을 거란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근데 정말 그럴까? 사실 저 조건이 맞추기 더 힘든 게 필요한 건 어지간히 다 들어있다. 실제로 호감을 갖는데 저보다 더 남다른 이유가 넘쳐날까? 단순 무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답일 수도 있다. 폴이 글 솜씨나 말솜씨가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이 얕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말은 잘 못해도 타이밍은 놓치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애스터에게 타이밍 좋게 고백도 하고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할 건 다 한다. 애스터가 폴과 함께 있으면 안전한 느낌이 든다는 건, 그런 든든함일 것이다. 실패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되게 할지를 고민하니까.
폴에게 유일하게 뜨악한 건 풋볼 경기에서 득점한 후에 엘리에게 키스를 하려던 때였다. 갑자기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꼭 저러다가 정든다고. 누구 이어주려고 도와주다가 둘이 좋아진다고. 저번 주까지 폴이 애스터랑 사귀게 됐다고 들떠하면서 키스하던 사이인 걸 떠올리면 '저놈이!' 하고 등짝을 때리고 싶은 건 사실이다. 엘리가 키스를 받아들였어도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바로 뒤에 애스터가 나타나 버렸으니까. 조금만 잘못 나갔으면 장르가 치정물이 될 뻔한 순간. 폴을 지켜보다 보니 마음이 넘쳐서 키스로 확인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먼저 하려던 말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좀 궁금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의 묘미가 대화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폴이 애스터에게 했던 고백과 어떻게 달랐을까는 상상에 맡기게 되었다.
타코 소시지, 그 맛이 궁금하다
폴이 왜 엘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다. 엘리는 폴을 성장하게 해 준 사람이다. 엘리는 폴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저 세 가지 조건(똑똑하고, 착하고, 예뻐) 중 두 가지 이상 혹은 전부를 충족한다. 폴이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애스터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비록 시작은 편지 한 통에 50달러인 비즈니스였지만, 엘리가 각종 분야 선생님처럼 트레이닝해 주는 걸 보면 열정 페이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을 터. 타코 소시지를 응원하고 유명해질 수 있도록 음식 비평가에게 몰래 편지도 보내주었다. 맛있는 거 더하기 맛있는 거는 그냥 맛있는 거라며 영화 내내 밀어붙이던 타코 소시지. 그쯤 되니까 한 번 먹어보고 싶더라.
대화가 핑퐁 같다고 핑퐁 치면서 대화한다
그뿐인가. 엘리는 대화를 이어가는 법을 알려주고, 포기하고 싶거나 멍청하다고 느껴질 때 진심으로 응원했다. 15년 만에 풋볼 팀이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 준 것도 엘리다. 애스터를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엘리와 있을 때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도 사실이고. 엘리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짚어보라면, 엘리를 궁금해하기 시작했을 때다. 애스터를 더 잘 알기 위해 잠입 수사를 하던 중 엘리에게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본 차 안. 엘리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물어보기 시작했을 때. 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엘리의 기타 소리를 길 건너편에서 들었을 때 보이던 그 표정부터였다. 피아노 조율을 망쳐서 졸업생 공연을 망칠 뻔한 엘리에게 네 곡을 연주하라며 도와주었을 때도, 뒤풀이에 가서 술에 취한 엘리를 챙기며 자신의 집에 데려왔을 때도. 애스터를 좋아하는 걸 알고 무너졌을 때도. 있는 그대로의 엘리를 응원하며 기차역에서 헤어지던 때에도. 엘리로 인해 폴의 눈빛은 참 많이도 변했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많은 눈빛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 속에 간단히 나온 '닫힌 방'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엘리의 아버지, 엘리, 폴, 애스터, 모두 각자 닫힌 방에 있었다. 엘리의 아버지는 과거에 갇혀 있었다. 항상 모든 영화에는 최고의 순간이 있다던 아내를 떠올리면서 그 장면을 보았고, 엔지니어로서 시작점이 되었어야 할 스쿼헤이미쉬에선 기차역에서 기계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는 스쿼헤이미쉬에 주저앉은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떠나지도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과제를 했고, 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가려고 했다. 폴은 스스로 말했듯 소시지 레시피를 바꾸고 싶지만, 넷째 아들이라 운영할 순서도 아니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를 바꾸면 할머니,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표현하지 못했다. 애스터는 트리그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아버지가 트리그네 집과 결혼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결혼하게 된다 해도 받아들일 모양새였다. 이들이 있는 스쿼헤이미쉬는 닫힌 방의 온상이다.
하지만 도로의 표지판에 쓰여있었던 것처럼, 뭔가가 스쿼헤이미쉬에 일어나고 있다. 모두들 조금씩 달라졌다. 엘리는 그리넬 대학으로 가는 길에 질색팔색하던 파인애플, 부엉이, 안경 쓴 애벌레 이모지를 쓸 수 있게 됐고, 폴은 음식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자신만의 소시지 연구에 한창이다. 애스터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미술을 공부할 예정이다. 엘리의 아버지는 자신을 걱정해서 떠나지 못하는 딸을 대신해 그리넬 대학에 원서를 넣고, 가는 길에 든든히 먹으라고 만두도 빚어 넣었다. 이제는 멀끔하게 차려입고 기차역에서 쓰지 않던 기계를 작동하고 있다. 닫힌 방과 열린 문은 한 끗 차이다.
엘리와 폴이 영화를 본 어느 날, 엘리는 떠나는 기차를 쫓아오는 사람을 멍청이라고 말했다. 멍청하다고. 기차를 앞지르는 사람은 없다고. 그런 장면은 진부하다고. 하지만 그래서 바로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 건 맞지만, 겪어보면 멍청하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지. 엘리와 폴이 보던 영화에서는 모두 슬프게 울고 마는 이별이었지만 엘리의 이별은 슬프지 않았다. 엘리의 눈물은 슬프지 않았고 아버지, 애스터, 폴 역시 울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우리는 외로워하며,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놀랄 것도 없다. 외로움이 중력에 대한 물질의 반응이라면, 외로움은 이 지구 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는 걸 입증할 뿐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자체로 사랑하는 건 인류 역사를 관통한 영원한 숙제이니 엄두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겠나. 안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몸소 멍청이가 되는 것. 망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은 그림에 대범한 선을 그려 넣는 것. 언제든지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도 당신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힘껏 노력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반쪽은 채워질 조짐이 보인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아쉽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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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의 일주일 / A Week Away, 2021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그 여름의 일주일>은 나름의 기대를 걸었던 작품입니다. 점차 뮤지컬 영화가 보기 힘들어졌을 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볼 수 있었던 뮤지컬 영화들을 만나기 힘들어졌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종종 뮤지컬 영화를 제작해 주니, 비록 집에서 관람해야 하지만 경쾌한 음악이 곁들여진 신작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네요.
아무튼 기대를 품었지만 자세한 조사까지 하지는 않았던 터라 영화를 틀자마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포스터만 봤을 때는 우연히 만난 남녀의 풋풋하고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풀어낼 것처럼 보이는데, 갑자기 여름 캠프를 떠나더라구요. 이때 아차 싶었습니다. 영화의 관람 등급을 보면 알겠지만 <그 여름의 일주일>은 가족들이 모두 볼 수 있게 만들어진 가족 뮤지컬 영화입니다. 그래서 전체 관람가 등급이 가지고 있는 몇몇 한계점들을 자연스레 내포하고 있기도 하구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유치하게도 느껴지는 스토리는 물론, 아이들이 신경 쓰지 않을 캐릭터의 묘사부터 배경 설명, 그리고 급한 전개 등이 보인다는 점은 어쩔 수 없이 아쉽게 다가왔네요. 의미없는 행동들의 나열들도 상당히 거슬리기도 하구요. 하이틴 분위기의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구성 또한 상당히 애매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고, 가족 영화라는 큰 틀 안에 일단은 두루뭉술하게 맞춰둔 느낌이 강한 영화였습니다.
노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단 노래의 멜로디 자체는 좋았습니다. 딱히 꽂히거나 중독성 있는 넘버는 없지만, 어느 정도 신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노래였네요. 다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는 확 다가오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참 아쉽게 다가옵니다. <더 프롬>도 그랬지만 보통 뮤지컬 영화하면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 두고두고 듣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한 방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노래 가사도 뭔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그 순간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에 그친다는 점도 조금은 아쉽게 다가옵니다. 뭐 이것 또한 가족 영화라는 틀에 맞춰 쉽게 쓴 탓도 있겠지만, 뭔가 뮤지컬 영화임에도 노래는 사이드 메뉴에 불과한 느낌이랄까요. 중요한 연결고리에 노래들을 집어넣어 그 효과를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무조건 신날 때 넣고 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노래가 여운이 남지도 않고 휘발성이 강하네요.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점은 대놓고 기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더 프롬>에서 줄기차게 까댔던 게 기독교였던 것 같은데,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기독교를 찬양하는 내용이 나오니 참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뭐 제작자 마음이지만, 개인적으로 조금은 아쉽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일단 정통 기독교적인 착하디착한 내용은 조금 낡아 보이기도 하거든요. 또한 영화의 메인 스토리에 너무 뜬금없이 끼어있는 느낌이 강하기도 하구요. 한계가 있었겠지만 어차피 다룰 소재면 조금 다듬어서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구요.
나름의 장점도 보였는데, 디테일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느낌이 강해서 안타까웠네요. 나름 캐릭터 간의 케미도 좋아서 짧지만 즐거웠던 어느 여름날의 기억을 상기시켜주기도 하지만 너무 순간적인 흥분으로만 다루고 있어서 허전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상당하구요. 여러모로 아쉽게 다가온 영화였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팬서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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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인 Free city의 유저들에게 새로이 강자로 자리매김한 플레이어가 있다. 그의 ID는 블루 셔츠 가이. 그는 과도한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중2병 게임으로 치부되던 프리시티, 그리고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이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들에게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캐릭터로 각인되어, 게임 규칙과는 달리, 선행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된 그는 게임 유저들 못지않게, 게임회사 직원들도 그의 정체에 대해 추적하는데, 알 길이 없다. 당연하다. 이 남자는 게임 유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리시티의 배경 캐릭터 NPC이다.
게임 제작자들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그들이 설정해놓은 행동 패턴으로 매일 쳇바퀴같은 삶을 살아가는데도 참 해맑게 살고 있는 이 남자, Guy. 이 남자의 정해진 루틴과도 같은 삶이 한 여자를 만나고 나서 균열이 생기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하나의 게임 세상임을 자각하고, 그가 프로그래밍된 언어와는 달리, 그의 행동에 자유 의지가 생겨나며, 게임 속 플레이어들과 대등하게 게임을 펼치면서 살아간다. 게임 제작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그에게 닥친 위기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1.사람이 아닌데, 사람 같은, 수많은 군종 속의 한 사람,guy.
자신의 행동과 말이 인간이 설정한 기계어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가이는 자신의 행동의 진정성을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의 삶은 가끔 누군가의 삶의 들러리가 될 때도 있고, 자신의 의지대로 결과가 녹록치 않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자기 자신의 쓸모없음에 필요 이상으로 절망하고,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끊임없이 파고들곤 한다. 그런 게임 캐릭터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이 항상 주인공이 될 수 없음에 너무 절망하는 자존감이 현저히 낮은 현대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일개 npc를 통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투영하게 되다니, 정말 기묘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가이가 하는 행동에는 자유의지가 있어서는 안된다. 인간이 창조해낸 캐릭터이고, 게임 세상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에 상관없이 특정 행동만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결국 인간 손아귀에 의해 놀아날 뿐이다. 그에게 자유의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면, 짜임새있게 설계된 세상 속에서 그냥 생각없이 살아가도 행복했을 삶인데, 자유의지가 생기면, 자신의 의지와 현실 간의 간극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에 항상 직면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의지로 행해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방황을 보면서 우리네 삶이 우리 의도대로 흘러가지 못해 좌절하는 무수한 청춘들이 눈에 그려졌다. 그렇다. 가이, 영어로 하면, Guy, 또다른 의로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이 게임 캐릭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현실 속의 우리들을 반영하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한 것이다.
2. 절망 속을 살고 있다면, 현재에 집중할 것.
난 여기 앉아서 내 절친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돕고 있어
그게 진짜가 아니면 뭐가 진짜겠어?
하지만 자신의 현실이 가짜라는 사실에 충격받은 가이는 친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그 때, 친구가 한 말이그에게 경종을 울렸는데, 설사 자신의 현실이 가짜라는 사실이 맞을지언정, 자신이 지금 맞닥뜨린, 현재 상황까지 부정해버리면, 진짜 현실 세계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가이가 상황적인 요소이든, 내면적인 요소이든 절망적인 감정에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가이 친구의 대사는 당신이 만들어낸 성과가 허무하게도 의미없는 일이었음이 확실하게 증명되었을지라도 아직 우리에게는 현재의 삶이 남아있음을 잊지 않아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그의 대사를 통해 자존감이 낮은 수많은 현실 속 Guy들은 너무 과거에 매여있지도 말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환상, 두려움에 대해 신경쓰지 말기를, 더불어, 당신에게 닥친 현실 속 퀘스트를 하나하나 뚫어가야 함을 깨닫게 될 수 있었다.
현실 속 우리들은 생각보다 겁이 많다. 나이가 하나하나 들어갈수록 도전하기를 두려워하고, 과거의 패기넘치던 모습에서 점점 남들의 말에 위축되기도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게 될 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닥치고, 지금 해야하는 일이 뭐지? 나는 지금 누굴 신경써야 하지?"
그러면, 자신이 처한 현실이 가짜처럼 느껴질만큼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당신 옆에 있을 사람들은 계속 존재해 줄 것이고, 당신이 지금 당장 해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나 하나 챙기면서 살기도 버거운 이 세상에서 우리 그냥 오지랖 넓은 소리들 다 개무시하고, 그냥 우리만의 속도로, 내 사람들이라도 철저히 챙겨가면서 그리고 조금만 덜 절망하면서 살아가자. 당신이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한 당신은 이미 주인공이니까.
3.총평
여태까지 나름 심각한 영화리뷰하는 것처럼 글을 썼지만 사실 이 영화는 오락 영화이다. 굉장히 오락 장르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아주 솔직한 영화이다. 그리고 조금 유치한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살짝 스포를 하자면, 이 영화에는 표면적인 로맨스와 영화를 끝까지 봐야만 알 수 있는 로맨스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대놓고 오락 영화라고 해서 작품성이 없는 영화라고 평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게임 속 캐릭터이긴 하지만 인간이라면 한 번 정도는 느껴봤을 법한 혼란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가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네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만한 영화라고 본다. 또한,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 모두의 입장에서 게임 산업의 이면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을 열어줄 영화가 탄생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오락성과 작품성 모두 평균 이상인 영화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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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흩어진 밤> 메인 예고편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갑자기 집에 찾아드는 낯선 사람들.
엄마와 함께 공부에 집중하는 오빠.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그리고 원치 않게 떠맡게 된 힘든 선택.
어둠 속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는 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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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핑업> 예고편
카이트 서핑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빌리는 코치의 지원으로 꿈의 대회, 윈드보이저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여자친구 사라는 제대로된 직장을 구하는 대신 서핑 대회로 떠나는 그가 탐탁치 않고, 결국 둘은 크게 싸우고 만다.
한편 대회로 길을 떠난 빌리는 도중 사연이 많은 스카이를 만나고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마침내 도착한 서핑 대회에서 그는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선발전에 나선다.
과연 빌리는 이 대회에서 서핑과 사랑, 둘 다 거머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