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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to2024-04-29 21:50:39

바깥은 죄다 비 내리는 전쟁통이지만

<미지수> 리뷰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6년을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멋대로 들어와 있다. 게다가 자신이 실수로 친구를 죽였고 시체가 여기 있으니 도와 달라 청한다면 어떨까. 지수는 황당하고 무섭고 짜증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미지수>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절박한 심정으로 일을 어쩌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미지수> 이렇게 담담한 같으면서도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로 문을 연다. 사람을 죽여 놓고는 사건을 직면하기 두려워 여자친구의 집으로 도망쳐 남자, 배달원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어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미 포장을 마친 음식을 팔겠다며, 밑도 끝도 없는 고집을 부리는 남자와 기를 쓰고 그를 회유해 보려는 여자. 헛웃음도 나고, 이들이 이런 고집을 부리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하기도 하다. 심지어 영화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도 못하게, 욕조 안에서 몸을 늘어뜨린 죽어 있던 친구를 다시 살려내기도 하고 남자가 뜻밖의 인물을 다시 죽이는 황당한 사건을 늘어놓기도 한다. 지수는 언제 잠에 빠져들었는지 수도 없게, 같은 사건 사이사이에서 잠을 깨기만 한다. 그리고는 일을 수습하고 인물을 달래 가면서 조금씩 이유를 드러낸다. 꼼짝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아주 느리게 소화하듯이, 아주 천천히 진실과 조우할 준비를 하는 듯이.

 

 

 

 <미지수> 연출한 이돈구 감독은 이별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는 특이하게도 갑작스러운 사건, 폭발하는 감정, 그리고 이어지는 치유나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그대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들이 겪은 이별,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죄책감 같은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정확한 전말을 아주 조금씩 알게 된다. 친절함과 편안함으로 무장한 작품에 자석처럼 이끌리는 동시대 관객들 앞에 내어 놓은 용감한 서술 방식은, 영화 후반부를 목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앞선 장면들을 되짚어 보게 한다. 그리고 극장 밖까지 따라 나와 오래 기억에 남게 한다.

 

 

 

 진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폭발하는 감정을 목격하고 나면 비로소 영화 초반의 갑작스러운 사건이 지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헤아리게 된다. 상실감에서 비롯된 환영은 자신이 사람에게 필요한 순간을 만들어내서라도 만나고 싶은 욕망이자 염치 없고 구차해 보이더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그리고 못되게 굴었던 것을 속죄하기라도 하고 싶다는 지수의 소망이다. 죄다 전쟁통인 바깥으로 자식을 쫓아 것만 같은 어머니의 절망이고,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매뉴얼은 작은 위반이 불러 사고에 대한 죄책감이다.

 

 

 

<미지수> 지난 몇십 한국인들이 겪고 겪고 나서도 대가를 치르듯 겪는 모든 죽음과 이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죄책감, 충격, 통곡하는 이미지 같은 연출이 아니라 관객이 인물과 함께 꿈꾸게 함으로써 스스로 이야기를 되짚어 보게 한다는 점이 매력이자 영리함이다. 그렇게 영화는 극장 밖으로 관객을 따라 나와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결코 헤아릴 없을 정도로 깊은 상흔 옆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음을 말한다. 터무니없이 완벽한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아주 작은 걸음을 내딛는다. 당신 없는, 전쟁통 같은 세상은 미지수이더라도 우리는 살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이별한다. 그리고는 떠난 이의 책장에 남은 세이건의 책이 그러하듯이, 그가 드넓은 우주를 모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다시 살아가 볼까, 하고 중얼거린다.



작성자 . ri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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