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5-09 17:17:08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이 만났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로봇 드림(Robot Dreams), 2024
스페인 / 애니메이션 / 102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어두컴컴한 집 안, 맛없는 냉동 도시락이 전자레인지 안에서 빙빙 돌아간다. 2인용 게임을 혼자 하는 게 익숙한 도그의 저녁밥이다. 도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설렘이나 기쁨, 행복은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일상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간혹 찾아오는 새로움은 앞으로 다가올 지겨움으로 여겨질 뿐이다. 무엇 하나 즐겁고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도그는 오늘도 옆집 커플의 행복을 애써 외면하며 입에 숟가락을 집어넣는다. 무료한 하루가 또 이렇게 가나 싶었는데, 돌연 TV 광고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외로우신가요?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도그는 곧바로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존재가 등장하자 도그의 일상은 180도 바뀐다. 도그의 친구이자 가족,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가 된 로봇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반려 로봇이지만, 나의 짝을 의미하는 ‘반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로봇 역시 (도그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된다. 영화는 도그와 로봇의 존재를 특정한 종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한다. 우린 냉동 도시락이 데워질 때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 어떻게든 머무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로봇 드림>은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을 만나게 했다.

둘의 시너지는 순풍을 타고, 재미없던 삶은 무한한 행복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해수욕장에서 강제 종료된 로봇으로 인해 멈추고 만다. 로봇이 고장 난 이유는 언급되지 않는다. 바다를 헤엄치고 잠수까지 한 로봇이 고장 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영화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도그가 외로움에 빠진 이유나 로봇을 움직이는 주요 부품에 관한 설명, 로봇의 자연스러운 감정 및 이성 습득도 마찬가지다. 전부 영화의 몰입도를 깨트릴 수 있는 물음표지만 이야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전개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빈 곳에 별표를 붙이고 시간을 들여 메우려 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못해 주인과 더는 함께할 수 없는 로봇에 더 집중한다. 무엇보다, 도그와 로봇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직진하기 바쁘다. 일찍부터 작고 사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중요한 건 뒤가 아니라 앞에 있고,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이 될 오늘’이 더 가치 있다는 <로봇 드림>만의 심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폐장을 선언하고 여름 개장을 예고한 해수욕장 공고문 앞에서 도그는 절망한다.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반려 로봇을 샀는데 한순간에 외로움을 반납받게 된 상황이라니, 도그와 로봇에게 벌어진 첫 번째 위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둘의 첫 이별(위기)은 별다른 사건충돌 없이 영원한 이별로 남는다. 이야기는 도그와 로봇의 각자 입장으로 나눠 두 갈래로 진행된다. 역시 <로봇 드림>이 가진, 아주 능숙하고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로봇을 데려올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도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신문 광고에 또 반응한다. 설산에서 처음 본 동물들과 썰매를 타며 나름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눈사람에 눈코입을 선물하며 제2의 로봇을 만나고, 새해 기념으로 연을 날리다 멋진 선글라스를 낀 오리도 사귀지만, 역시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을 기준으로 한, 기울어진 저울을 가진 도그에게 다른 동물과의 관계 형성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해수욕장에 멈춰 있던 로봇은 꿈을 연속적으로 꾸며 진짜 세상을 경험한다. 꿈이 전부 악몽이지만,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로봇은 ‘성장’한다. 도그 없이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고, 관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영역임을 몸소 체험한다. 슬픔과 별개로 기존 관계가 깨지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인생의 아이러니한 흐름도 깨닫는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관계(삶)가 주는 진짜 교훈은, 전제를 잘 알고 있음에도 매번 다시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로봇은 해수욕장 개장 후 원숭이에게 구출되지만, 악어가 운영하는 철물점에 팔려 온몸이 산산이 조각난 후 전원이 꺼진다. 삶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순간, 너구리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외로움에 결국 굴복한 도그는 상점에 반값으로 나온 틴(로봇)을 산다. 한때 도그의 반려였던 로봇은 몸통 대신 달린 카세트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완전한 이별과 함께,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반려’가 또 등장한 순간이다.
너구리와 살기 시작한 로봇은 틴과 함께 걸어가는 도그를 우연히 발견한다. 둘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 로봇은 다시 한번 꿈꾼다. 도그는 몸이 바뀐 로봇을 단번에 알아보고, 둘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지만, 곧이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틴은 도그를, 너구리는 로봇만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로봇은 카세트 되감기 버튼을 눌러 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곤 도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인다. 도그는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로봇도 팔과 다리를 흔든다. 나란히 서서 같이 췄던 춤을 각자 다른 곳에서 추는 도그와 로봇. <로봇 드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이다음에 등장한다. 호텔 꼭대기 층에서 춤추던 로봇이 도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재빨리 숨는 장면이다. 로봇과의 추억에 젖어있던 도그는 돌아선다. 그렇게 틴과 손을 잡고 로봇과 영영 멀어진다.

우리는 알고 있다. 왜 로봇이 꿈을 꾸고, 도그가 왜 틴을 사고, 로봇이 마지막 순간에 왜 숨어버렸는지. 우린 모두 각자의 외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나를 위한, 오직 나만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두 배로 더 빨리 쓰기도 한다. <로봇 드림>은 이를 로봇(꿈)과 도그(외로움 탈피)로 보여줬다. 로봇이 겪은 불행과 도그가 겪는 슬픔은 형태만 다른 특별한 데칼코마니였다. 꿈(로봇)은 현실(도그)이고, 현실을 겪은 로봇은 다시 현재를 살기 위해 꿈을 꿨다. 도그도 멈추지 않고 로봇과 같은 모양을 찍어내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원하는 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세상에서 외로움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나아가 전반에 깔려있던 구멍에 과거가 돼버린 관계(기억)들을 채우게 하고, 불완전한 관계를 향한 갈망이 메마르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한다. 특히 도그와 로봇이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 속 엔딩과 연결되면서 짜릿한 쾌감을 선물한다(주인공도 삶에 허덕이다 마침내 자기만의 알코올 농도를 찾고, 엔딩 삽입곡 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에 맞춰 막춤을 춘다).

완벽하지 않고 때론 상식적으로나 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간관계 안에서 꿈을 꾸다 다시 꿈을 접고, 또다시 꿈꾸며 사는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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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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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톺아보기] 김혜수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현재 넷플릭스의 화제작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를 연기한 '김혜수' 배우를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인스타그램11살이었던 1980년도에 데뷔하여
2022년 현재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셨는데요.
이뿐만 아니라 진행 실력도 뛰어나 1993년부터 작년까지 약 28년 동안
청룡영화상 MC를 맡았습니다.
배우 김혜수는
국내 주요 영화·드라마 시상식인 MBC 연기대상, KBS 연기대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제, 대종상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한 몇 안 되는 배우입니다.
많은 영화·드라마 덕후들이 좋아하는 배우이자
연예인들의 연예인인 배우 김혜수!
그럼 지금부터 배우 김혜수 #톺아보기 시작하겠습니다!
출처 | 호두앤유ent 네이버 포스트출처 | 호두앤유ent 네이버 포스트
프로필
이름 | 김혜수 (金憓秀)
출생 | 1970년 9월 5일
소속사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데뷔 | 영화 <깜보> (1986)
별명 | 엣지녀, 혜순이, 장판선생 등
배우 '김혜수' 데뷔 과정
출처 | 호두앤유ent 네이버 포스트
배우 김혜수는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웠었습니다.
마일로 광고 속에 나오는 태권도 장면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던 CF 감독에 의해
첫 광고를 찍으며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 광고를 본 이황림 감독은 영화 <깜보>에 김혜수 배우를 캐스팅합니다.
이황림 감독은 이 영화에 김혜수 배우를 출연시키기 위해
시나리오 일부를 바꿨다고 합니다.
데뷔 이후, <사모곡>, <세노야>를 시작으로 <YMCA 야구단>, <타짜>, <소년심판> 등
다양한 영화·드라마에서 주연을 맡게 됩니다.
배우 '김혜수'의 대표작
<짝>
차해순 역
출처 | SBS 올클립, MBCentertainment
세 명의 과부와 이들을 보고 자란 탓에 남성 혐오증이 있는 처녀로
이뤄진 결손가정의 시끌벅적하면서 끈끈한 정이 넘쳐흐르는 가족애를 다루는 홈드라마.
김혜수는 박월례 여사의 세 명의 딸 중 막내딸이자,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차해순'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타짜>
정마담 역
출처 | 네이버 영화
재미로 잡은 화투패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각자의 원한과 욕망, 그리고 덧없는 희망, 이 모든 것이 뒤엉킨 한 판이 시작된다.
김혜수는 원하는 것은 언제나 꼭 손에 넣어야만 하고
자기 곁을 떠난 것들은 모두 다 파괴하고 싶어 하는
도박판의 설계자 '정 마담'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도둑들>
팹시 역
출처 | 네이버 영화
한국의 도둑 뽀빠이, 예니콜, 씹던껌, 잠파노, 팹시
그리고 중국의 도둑 첸, 앤드류, 쥴리, 조니.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모인 10인의 도둑은
서로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각자 자신만의 플랜을 세우기 시작한다.
김혜수는 사랑, 의리와 같은 소중한 감정을 중요시하는
전설의 금고 털이 '팹시'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관상>
연홍 역
출처 | 네이버 영화
천재 관상가 내경은 관상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으로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내경은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내경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고 시도한다.
김혜수는 한양 최고의 기생이자, 눈치로 관상을 보는 '연홍'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국가부도의 날>
한시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 단 일주일.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김혜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장 '한시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시그널>
차수현 역
출처 | 티빙 홈페이지
무전기로 연결된 현재와 과거의 형사들이
오래된 미제 사건들을 다시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김혜수는 워커홀릭이자 15년 차 베테랑 형사인 '차수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하이에나>
정금자 역
머릿속엔 법을, 가슴속엔 돈을 품은 '똥묻겨묻' 변호사들의
물고 뜯고 찢는 하이에나식 생존기를 그린 드라마.
김혜수는 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 도덕과 부정, 그 경계를 넘나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여 돈을 좇는 변호사
'정금자'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쿠팡플레이
<소년심판>
심은석 역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이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소년범죄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김혜수는 소년범, 소년범죄를 냉철하게 바라보며 사건을 판결하는
연화지방법원 소년형사합의부 우배석 판사 '심은석'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이상으로 배우 '김혜수' #톺아보기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김혜수 배우의 대표작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참 어려웠는데요.
오늘 소개한 작품 외에도 좋은 작품이 많이 있으니
한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도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음 주에도 톺아보기 콘텐츠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٩( ᐛ )و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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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시린 겨울을 달랠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남겨진 사람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족 없이 독수공방 하는 역사 선생님 폴 허넘(폴 지아마티)이다.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이브. 폴이 소속한 고등학교는 이미 방학을 하고도 남았다. 텅텅 빈 학교. 학교가 비었다는 의미는 폴에게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바튼 아카데미’엔 남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영화의 다른 주인공 앵거스(도미닉 세사)였다. 당연히 앵거스 혼자만 남은 건 아니다. 여러 학생들이 있었다. 다른 학생과 걸핏하면 싸우는 앵거스. 앵거스는 여러모로 골칫덩어리였다. 크리스마스인데 내가 얘를 봐야 해? 폴에게 스트레스가 팍팍 쌓인다. 귀찮아 죽겠는 건 폴도 마찬가지지만 앵거스도 선생님이 좋진 않다. 학생들에게 있어 비호감덩어리인 폴 선생님. 귀찮은 사람 한명 더 추가다. 둘을 위해 일을 해야 했던 메리 선생님이 급식실에 있다. 메리 선생님도 딱히 방학 중에 일하고 싶지 않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데, 메리, 앵거스, 폴은 서로 보기만 해도 꼴 보기 싫다. 과연 세 사람의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느낌 알잖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서 맡아본 향기라는 점이다. 솔직히 이런 영화 어디서 본 것 같다. 버려진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 (아예 딴판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생각난다. <브로커>같은 영화들 대안가족에 대해 다루고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면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모여 나름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연대와 유머, 감동을 갖춘 영화는 뭐 비단 두 영화와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아주 많다(크리스마스로 국한 짓지 않아도 있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우리가 아는 맛 그 자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적절하게 터지는 유머와 영화의 톤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충분한 것이다.
그 이면을 꾹 눌러보면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견지해 온 필모그래피의 특성이 드러나는 듯하다. 그 특성은 깊숙한 인간관계 탐구다.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디센던트>가 생각났다. <디센던트>는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두고 세 명의 딸과 아버지가 펼치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부녀가 함께 힙을 합쳐 가족 간의 정을 교류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디센던트>가 마냥 연대만 강조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챙겼다.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이야기를 아이러니로 끌고 간다. <디센던트>와는 당연히 다른데, 대안가족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아이러니가 이 <바튼 아카데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의 엔딩이 묵직하게 다가가는 이유도 이 아이러니의 의미를 영화가 잘 고수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글쓴이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씨네랩 감사합니다!)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새로운 유형의 크리스마스 클래식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글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리 앞에서 파티를 여는 모습이 생각난다. 인스타그램 키면 친구들이 스토리에 자기 나름대로 그 파티 현장을 올리기도 하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이를 다루기도 했다. 영화는 그 두 가지를 다뤘다. 우선 전자, ‘우리 현실에서 맞이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점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기본 설정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친구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이 다수인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인간이라면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인스타그램과 틱톡이 그 외로움을 더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기본 설정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외로운 사람들의 내면을 다룬다. 그리고 폴과 앵거스가 이끄는 차의 뒷자리에 앉게 유도한다. 차에 동승함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건 캐릭터들이 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음들을 느끼고 있다는 공감과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안이다. 또 후자 ‘크리스마스 파티’도 다룬다. 이는 전자와는 반대되는 성격인데, 글쓴이는 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묘사하는 방식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파티에 관한 부분이 어떻게 반복되는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급식실 아주머니, 도시락 반찬 가득히
그냥 일반적인 코미디, 가족영화로 읽어도 충분히 좋은 영화인 <바튼 아카데미>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바로 197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이다. 메리라는 인물의 아들과 관련한 설정을 제외하면 '그냥 2022년'이라고 하고 밖에서 마스크 끼는 인물들로 배경을 설정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근데 왜 하필 1970년대로 설정했을까? 바로 이 영화의 화면의 질감과 음향 연출을 통한 고전적인 향취 때문이다. 글쓴이는 보면서 왜 <황무지>와 <졸업>, <택시 드라이버>가 생각났을까? 그 이유는 화면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식에 있다. CG로 사람도 딥페이크로 구현하는 현세대에서 인간관계성을 탐구하는 것도 아날로그틱한데 영화의 형식까지 그 형태를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예고만 봐도 고전적인 향기가 짙은데 실제 작품 안에서도 이를 충분히 구현한다. 어떤 장면에서? 글쓴이는 이 영화 안의 눈밭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인물들이 눈밭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1970년대 할리우드의 향기 그 자체다. 이렇게 영화가 이야기와 장면의 형식을 일치하게 연출한 것이 이 <바튼 아카데미>를 두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하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룬 성취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 거기 서라
이렇게 감독이 영화의 장면 연출과 촬영, 편집을 딱 맞게 만들었다는 뜻은 이 영화를 확실하게 통제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크다. 글쓴이는 영화라고 하는 것이 감독이 만든 세계 하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이 <바튼 아카데미>가 시네마의 의미 그 정확한 지점을 찔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오펜하이머>에서 봤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에서 볼 수 있던 것이었다. 규모의 관점에서 판이한 두 영화가 어떻게 공통점을 갖냐고? 바로 결과물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오펜하이머>에서 컬러로 된 이야기 / 흑백으로 된 이야기가 별개로 전개되다가 하나의 사건으로 부딪혀서 쾅 터지는 지점이 있지 않나? 이런 것들은 <오펜하이머>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연출이었다.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판타지물이 많은 현대에 인간관계를 강조한다. 그것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오리지널 한 인간의 감정들을 이야기로 삼겠다는 것이 영화의 포맷이다. 그러려면 1970년대 이야기를 갖고 오는 게 좋겠지? 이왕 아날로그를 다룬다면? 이에 대한 결론이 모인 집합체가 <바튼 아카데미>다. 이게 단순히 <오펜하이머>가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철저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바튼 아카데미> 최고야’라고 주장하는 걸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아쉬웠던 영화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더 필요한 게 있지 않았을까? <바튼 아카데미>나 <오펜하이머>는 그런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모순(<오펜하이머>)과 사람 사이의 연대(<바튼 아카데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뿐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아카데미가 이 <바튼 아카데미>를 수많은 후보군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편집/각본상에 노미가 됐는데 뭐 모든 부분에서 시상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바튼 아카데미>가 받는다고 해도 절대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난 대이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총 다섯 가지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작품/편집/각본이 아닌 두 분야는 남주/여조다. 각각 폴 지아마티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인데, 이 두 사람 중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 여우주연상 후보인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다. 당장 강력한 상대는(글쓴이가 생각하기에)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의 조디 포스터다. 하지만 그나마 뽑자면 그런 거지 사실 거의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는 이 영화에서 든든한 버팀목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왜 유달리 든든할까'라는 점을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설득력이라고 답하고 싶다. 이 인물이 보여주는 행보에 주목해서 영화를 본다면 큰 감동을 느끼실 것 같다. 남우주연상 후보인 폴 지아마티도 상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BAFTA(영국 아카데미)와 SAGA(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킬리언 머피가 상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그렇게 높진 않다. 폴 지아마티의 연기는 어떻게 해야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연기다. 앵거스 역을 맡은 도미닉 세사와 시시건건 충돌해야 강조되는 것을 잘 체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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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롱 리브 더 퀸!
6★/10★
1952년 여왕의 자리에 올라 2022년 사망까지 70년간 영연방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첫 번째는 여왕이 영연방의 상징으로서 품위와 위엄을 갖추어 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 사회의 어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때때로 품위와 위엄이 과해 여왕이 권위적이고 폐쇄적으로 왕실을 운영했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각각의 사례에 대한 영화적 레퍼런스를 갖고 있다. 전자는 〈더 퀸〉(2007), 후자는 〈스펜서〉(2022)다. 한편 여왕에 대한 평가는 단지 여왕 개인의 인격에 대한 판단에 그치지 않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입헌 군주제의 병립 가능성(혹은 필요성)에 대한 논의와도 쉽게 연계되는 것이다. 어쨌든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기간 내내 영연방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이의 추모를 받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녀는 분명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퀸 엘리자베스〉는 그런 여왕을 위한 애정 어린 헌사다. 즉위 후부터 재위 말기까지 여왕의 연설과 인터뷰, 일상 등이 기록된 영상을 콜라주해 오랜 세월 사랑받고 존경받은 여왕의 생애와 임기를 톺는다. 중요 변곡점이나 굴곡을 깊이 있게 조명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조감하는 방식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비판 의식보다는 옅은 미소를 곁들인 회고에 가깝다. 영화 말미에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이 야기한 혼란과 위기, 최근에 불거진 해리 왕자의 인종 차별 폭로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왕이 이 모든 논란을 잘 갈무리했다는 점을 부각한다. 여왕이 ‘21세기의 군주’라는, 정치적 기반이 쉬이 흔들릴 수 있는 자리에서 놀라운 균형감과 예민한 정치력으로 그 모든 긴장을 조율하고 관리해왔다는 데 더 무게를 둔다.
엘리자베스는 영국인의 여왕이자 영연방의 여왕이었다. 턱시도를 입은 기득권 남성부터 흑인 이민자와 펑크 스타일의 뮤지션까지, 모두의 여왕이기도 했다. 영연방에 속하지 않는 나라에서, 여왕의 전성기가 지났을 때 태어난 내가 〈퀸 엘리자베스〉와 같은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생경함과 부러움이다. 먼저 생경함은 도대체 군주의 권위가 어떻게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는지에서 나온다. ‘왕’을 전근대적 권력관계의 상징이자 정점이라고 인식하는 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모두가 자연스레 그 권위를 인정하는 절대적 존재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경함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문화, 역사, 제도 등의 차이를 간략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정작 중요한 건 부러움이다.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지도자 혹은 어른이 있다는 데에 대한 부러움 말이다. 민주 공화제 국가에서는 정치 지도자를 투표로 뽑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전 사회적 어른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품위와 도덕의 화신으로 존재하는 군주는 ‘품위 없고 부도덕한’ 존재를 비난하는 근거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모두의 상처를 보듬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회적 참사가 나도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날로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는 한국에 엘리자베스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그 문제에서만큼은 우리나라가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다. 나이브하고 근거 없는 기대라는 점을 안다. 입헌 군주제가 필요하다는 (한국이 맥락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끔은 매우 ‘불온한’ 사람까지도 아주 조금이나마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를 떨치기는 어려웠다.
영화를 보면 숱한 위기와 끊이지 않는 비판에도 영국민들의 마음속에 결코 훼손되지 않는 여왕의 위엄과 권위가 분명 존재했다는 감상이 자연히 솟는다. 아마도 입헌 군주제 자체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엘리자베스 2세가 비상한 감각과 타고난 영국적 고귀함으로 쟁취한 결과물일 테다.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The crown is a idea more than a person.” 영화의 정확한 자막은 기억나지 않는데, 직역하자면 왕위라는 관념이 개별 인간보다 더 무겁다는 의미다. 여왕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을 그녀가 느낀 왕관의 무게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어른이 부재한 사회에서 ‘여왕 폐하 만세(Long Live the Queen)!’라고 외치는 듯한 〈퀸 엘리자베스〉가 부러웠던 이유 말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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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툰 사랑을 알려줄 내 첫사랑
나만 그런가? 갑자기 아무 맥락도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가령 오늘 꿈의 내용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에게 두들겨 맞은 것이다. 오늘 일을 하며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딱히 선생님에게 대들거나 한 적이 없어 맞을 일이 없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자체가 애초에 머릿속에 없었다. 또 꿈에서 맞은 정도의 수위는 거의 조선시대 곤장 때리기와 유사할 정도였다. 무슨 선생님의 부모님 욕을 한 게 아닌 한 그렇게 맞을 일 자체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맞은 이유도 '바닥에 오줌 싸서'였다. 난 바닥에 오줌을 싸 본 적이 없어서 역시 기억에 남지 않았다. 어째 꿈도 나같이 꾼다. 당연히 다들 그렇겠지만 내일 바닥에 오줌 싸서 곤장 맞는 꿈을 꿀 거라고 생각 못했다.
사실 이건 당연하다. 우리 보편적인 인류에게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란 없으니 필연적으로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 없다. 그래서 다들 '이랬으면 좋겠다' 식의 바람을 자주 남기곤 한다. 그런데 이거랑 미래를 예측해서 정확히 맞춘다는 건 완전 별개의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삶에 운명이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다른 무언가가 한 교차로에서 만난다'라는 건 정말 아무리 봐도 놀랄 일이다. 학교생활 동안 크게 선생님들에게 대들지 않았던 내가 그런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기회가 나에게 오다니. 사실 올 만 해서 오는 건데 나를 지나가는 수많은 것들 사이에 그가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런 특이한 경험이 사람의 인생에 딱 한 번만 오지 않는 것 같다. 난 오늘 그런 꿈을 꾸고 어느 날 느닷없이 교실 유리창을 망치로 두들기는 꿈을 꿀 수도 있다. 또 오늘 먹었던 자장면 vs볶음밥의 기로가 내일 모래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이게 된다고?'싶은 순간은 나이를 들면 들수록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또 선택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중 한 명이 바닥에 오줌 쌀 확률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인간의 모습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는 딜레마에 관한 영화가 있다. 첫눈에 반한 한 남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첫사랑이 사라지고
여주인공 아사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쪼리 질질 끌며 길을 걷던 여름의 어느 날. 더벅머리의 한 남자가 물끄러미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낀다. 거짓말같이 시선이 이끌린 두 사람. 남자는 느닷없이 여자와 입을 맞춘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둘은 연인이 된다. 첫 번째 남자 친구의 이름은 바쿠다. 바쿠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자기 맘에 든다고 여자에게 입을 맞추는 게 뭐 보통 정적인 남자라면 불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 떠나서 확실히 개성이 강한 영혼이었던 것 같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아사코의 마음을 훔친 바쿠. 사랑이 깊어진 둘은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사랑이 사라졌다. 아무 언질도 없이.
시간이 지났다. 아사코는 여전히 사랑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렇게 지난 일에 신음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 왠지 본 얼굴이다. 바쿠다. 일하다가 바쿠를 발견했다. 말을 걸어보는 아사코. 그런데 바쿠는 자기가 바쿠가 아니라고 한다. 바쿠를 똑 닮은 남자의 이름은 료헤이다. 얼굴은 똑같은데 아무튼 바쿠가 아니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쿠와 료헤이는 얼굴만 똑같지 직업도 성격도 다르다. 그냥 바쿠가 다른 척한다기엔 360도 다른 사람이라 '아니구나' 싶기 충분하다. 그러나, 바쿠 닮은 사람을 봐서 안녕하고 끝나지 않는다. 아사코는 료헤이와도 사랑에 빠진다. 그러니까 여주인공은 얼굴은 같은데 성격과 직업은 딴판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때 겪는 아사코가 겪는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복을 반복하다
우리 인생은 사실 같은 순간의 반복이다. 4월의 어느 일요일에 이 글을 쓰는 나도 사실 저번 주의 반복이다. 또한 돈이 없는 지금 이 상황도 6개월 동안 반복되어 지금 7번째다. 이런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가지각색의 반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영화를 만든 것도 반복이다. 마스크 쓰고 돌아다니는 것도 반복의 일종이다.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반복되며 선택을 내려야 한다. <아사코>는 이 반복에 대해 다룬 영화다. 물론 정확하게 딱 딱 맞아떨어지는 반복인 건 아니다. 영화에서 조금씩만 변형된 채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극은 이 디테일을 굉장히 잘 살렸는데, 예를 들어 바쿠와의 데이트 장소였던 사진전이 료헤이와의 만남에서도 반복된다. 다른 것으로는 바쿠의 실종이다. 바쿠는 실종을 두 번 한다. 또 다음. 아사코도 연락을 끊고 료헤이와 거리를 둔다. 이것 역시 사랑에 실패하는 과정을 두 번 반복한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디테일을 꼼꼼히 구현해서 반복되는 인생의 과정을 묘사했다.
또 반대로 접근한 지점도 있다. 어떤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삶의 반복을 구현반 부분도 있다. 구체적으로 바쿠와의 사랑이 빠지는 과정을 보면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보자마자 키스한다. 그냥 운명인 것이다. (사랑의 운명을 비유하듯 바쿠와 아사코가 오토바이 사고가 나는 신도 있다.) 반대로 료헤이와의 사랑은 썸을 타는 기간이 몇 번 있다.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근데 그 사랑에 빠졌던 근거가 뭐냐? 첫 번째 남자와 지금 두 번째가 비슷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동적이었던 아사코의 연장선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계속해서 나라는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때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아사코가 조금씩 선택을 바꾸는데, 이 선택의 차이점에 대해 눈을 부릅뜨고 본다면 감상이 깊어질 것이다. 아마 극본을 쓴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어느 정도 넣은 듯 보인다.
하마구치 류스케 월드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의 필모그래피를 전부 다 본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 개봉했던 <해피 아워>, <드라이브 마이 카>, 또 이 <아사코>만 봤다. 그런데 이 세 작품을 보면 이 사람 취향이 느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확실히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급의 당연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감독의 접근법은 확실히 다르다. <해피 아워>에서는 제목에 해피가 있지만 318분 중 300분이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인물들이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꿈꾸냐? 에 대한 질문은 가장 마지막 대사에서 볼 수 있다. 불행한 건 너무 복잡해서 풀 수조차 없는데 행복감은 그 친구들끼리의 모임 하나로도 예상할 수 있다.
또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이런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제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건조한 느낌이었다. 영화에서는 다카츠키, 미사키 둘과 가후쿠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된다. 같이 술도 먹고 차도 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미사키의 경우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미사키와의 관계성이 아예 안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극보다는 확실히 적다. 각색까지 하며 구상했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하마구치 류스케는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왜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자아를 탐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내렸던 무언가가 나를 투영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가 아닐까'라는 메시지가 세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이 <아사코>에서도 아사코에서도 바쿠와의 사랑이 료헤이에게도 영향이 간다. <해피 아워>에서도 앞에서 썼듯 그냥 주인공들이 재밌어하는 일로 행복을 예상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그냥 대놓고 대사에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만 하고 마느냐? 아니다. 이걸 굉장히 신선하게 전개한다. <아사코> 역시 상상을 뛰어넘는 전개로 관계성과 자아에 대해 탐구하는 영화다.
영상미가 좋아요
이 영화 영상미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후반부에 강물을 비추는 신이 있는데 이때 그 무미건조한 카메라 렌즈와의 시너지가 기억에 남는다. 또 초반부 바쿠와 아사코의 사고 신에서도 넘어진 형태(?)를 잘 잡았다. 뭐 사실 영화 자체 비주얼도 괜찮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이라 할 수 있는 얼굴 클로즈업에서 전체적인 배경 색감이 괜찮았다. 촬영감독이 카메라 종류를 잘 고른 느낌이다. 뭐 단순히 미장센도 좋았지만 일단 두 남녀 주인공이 잘생겼다. 특히 카라타 에리카 진짜 미인이다.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여주인공의 미모였다. 수수하게 예쁜 사람 중 가장 최대치의 미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밖에서 카라타 에리카와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너무 선남선녀라 좀 문제가 있긴 한 거 같지만 예쁜 건 예쁜 거다.(물론 남자 주인공 히가시데 마사히로도 잘생겼다.) 뭐 남자는 또 다른 문제가 있고 카라타 에리카는 복귀를 준비한다는 것 같은데 상처를 준 이들에게 충분히 뉘우쳤길 바란다. 좋은 작품으로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에도 관심이 많은 여배우로 알고 있는데 살짝 김이 새 버렸다. 데뷔작으로 칸에 입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근데 이 배우의 잠재 가능성을 떠나서 연기는... ㅎㅎ..
어떤 걸 받아들일 것인가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2020년 4월이었다. 아직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던 과거. 더 큰일이 많았는데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웅웅 맴돌던 사건이 있었다. 난 어쩌면 성장하지 못한 걸까?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고 싶어서 내 자신을 더 성장시켜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제까지의 일들이 다 허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반문하던 때 이 영화를 봤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정말 뒤통수 한 대 후려치고 싶었던 과거의 나. 세상에서 내가 내 자신을 가장 싫어해야 면죄부가 생기는 것 같았다. 영화는 이런 나(내지는 우리)에게 단적으로 뾰족한 해결책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인생의 과정을 긍정한 느낌이다. 당신은 더 나아진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격려한 느낌이 들었다. 나같이 여러번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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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필름에는 무엇이 담기는가
사라진 필름에는 무엇이 담기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셔커스 Shirkers>
우리는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동영상, 사진, 그림, 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이 담겨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록 이상의 가치가 생긴다. 우리가 붙잡으려 하는 것은 비단 당시의 풍경, 소리, 감정 같은 것뿐만이 아니다. 그 순간의 '나'와 '나의 에너지'다.
창작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유형의 형태에 담아내는 전문가다. 모든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영혼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창작물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셔커스 Shirkers>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18살의 '샌디 탄'은 영화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샌디는 미국에서 온 '조지 카도나'라는 묘한 카리스마를 가진 남자의 영화 제작 수업을 듣게 된다. 재스민과 소피 그리고 조지는 각별한 사이가 된다. 샌디와 친구들은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조지는 싱가포르에 남는다. 조지의 제안으로 샌디는 그와 단둘이 미국 로드 트립을 다녀오게 된다. 그 후 싱가포르의 로드 무비를 찍기로 결심하고 대본을 쓴다. 조지가 감독을 맡고 재스민과 소피가 주요 스태프가 되어 영화 <셔커스>이 제작이 진행된다. 촬영이 모두 끝난 뒤 조지는 영화 <셔커스>의 필름을 가지고 종적을 감춘다. 25년 후 조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샌디는 잃어버렸던 필름을 되찾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가야 했다”
소꿉친구인 샌디 탄과 재스민 응은 세상에 저항하는 반골 기질이 다분한 학생들이었다. 당시 싱가포르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자유분방함과 열정은 더더욱 빛났다. 그리고 이 열정은 조지 카도나로 인해 더욱 커진다.
'조지 카도나'라는 사람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비밀스럽고 묘한 구석이 있다. 그에게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발산됐고, 이 이야기는 젊은 창작자들의 꿈을 부추겼다. 편지나 메일이 아닌 본인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보내는 것도 자신의 힘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지의 제자들은 그를 좋아했고 그에게 끌렸다.
조지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할 수 있었다. 조지는 꿈꾸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만든 뒤 성취가 가까워져 오면 방해했다. 조지의 제자이자 피해자 중 한 명은 스티브는 '조지가 영적 지도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스스로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남자의 민낯은 열등감과 허풍으로 똘똘 뭉친 도둑이었다. 꿈과 영혼이 담긴 물리적인 뭔가를 취해 종적을 감추는 악랄한 도둑 말이다. 조지는 자신이 되고자 했던 인물상에 닿지 못했다. 존경받고, 천재적인 인물이 되고 싶은 욕망은 자신보다 빛나는 젊은이들의 꿈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우린 다시 만나야 했다”
샌디는 2011년 조지가 죽고 25년 만에 <셔커스>의 필름을 되찾게 된다. 70통의 필름에서 사운드가 전부 사라진 채 무성영화가 되어 돌아왔다. 25년 전에 사라진 <셔커스>는 싱가포르의 타임캡슐과 같았다. 소리는 없지만 25년 전의 풍경, 사라진 건물과 거리 그리고 사람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샌디가 쓴 영화 <셔커스>의 주인공 S는 16살의 살인자다. S는 다른 세상으로 데려갈 사람을 구한다. 죽일 만큼 좋아하는 사람으로. 샌디의 세계관에는 행동하는 자와 흔드는 자 그리고 도망자인 셔커스가 있다. <셔커스>를 만드는 동안 샌디는 열정으로 앞만 보고 내달렸다. 현장에서 대부분의 일을 책임졌던 소피와 재스민은 조지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셔커스>의 세계관은 현실 세계에서 그들이 겪은 일로 확장된다. 행동하는 자 샌디, 흔드는 자 소피와 재스민, 그리고 도망자 셔커스인 조지. 보기에 따라 조지는 샌디의 세계관을 완성시켜 준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 S의 카메라에는 필름이 들어 있지 않다. S는 카메라를 통해 보고, 셔터를 누르면 마음으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조지가 대본에 없는 장면을 필름이 없는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던 상황을 생각하며 샌디는 S의 대사를 떠올린다.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필름이 아닌 행동이다. 조지는 S의 대사를 그대로 실현해 보였다.
조지와 <셔커스>는 함께 사라졌다. 삶의 거대한 부분을 잃어버렸다는 감각은 샌디와 친구들을 감쌌다. 하지만 <셔커스>는 각자의 머리와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 다시 샌디가 카메라를 들어 완성해 낸 동명의 다큐멘터리인 <셔커스>는 이 오래된 프로젝트의 마침표다. 어떻게든 찍어야 했던 이 마침표는 사라진 <셔커스>를 기리며 동시에 새로운 <셔커스>를 완성해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코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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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래비티에 담긴 주제와 흥미로운 이야기들 #8
환몽(幻夢) CINE 리뷰 8화_ 영화 그래비티 해석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이번엔 왓챠 회원님들의 멋진 한줄평과 함께 했습니다!
이전까지 이런 우주영화가 없었기에, 개봉했을 당시 평단의 극찬이 엄청났었는데요.
있는 그대로 느끼고 체험해도 엄청나면서, 숨겨진 비유와 상징, 알고 보면 재미난 이야기까지 모두 준비해봤습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래비티'
- 압도적인 오프닝
- 영화의 주제 : 중력과 삶의 의지에 관하여
- 영화 속 비유와 상징
- 알쓸신잡 : 과학적 고증 오류와 아닌강(?)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환줄평 / 몽줄평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래비티 #그래비티해석 #알폰소쿠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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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겨울에 보면 좋을 영화 5편
‘몽글몽글 심야영화’ Ep.02 당신의 겨울에 감성 이불을 덮어줄 영화 5편
크리스마스도,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겨울에, 어두운 방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며 보면 좋을 영화 5편을 소개해드립니다.
렛미인 / 룸 / 브리짓존스의 일기 / 캐롤 / 러브레터
** 강한 스포일러는 없으나, 콘텐츠 특성상 일부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 소개 순서는 영화의 선호도와 무관합니다.
** '몽글몽글 심야영화'는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영화를 켜는 '환몽씨네'의 상명이가, 심야에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입니다. 자기 전, 혹은 적적한 밤과 새벽에 한번씩 꺼내 먹는 조그마한 야식처럼 들어 주세요 :)
** 시간 관계상 아쉽게 소개해드리지 못한 영화 5선 (라라랜드 / 인사이드 르윈 / 헤이트풀8 / 물랑루즈 / 이터널 선샤인)
** 제 영화 평점, 100자 코멘트는 왓챠 개인계정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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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미드나이트> 메인 예고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목격자, 연쇄살인마의 타겟이 되다!"
청각장애를 가진 '경미'는 귀가하던 길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소정'을 목격하고,
그녀를 도와주려다 연쇄살인마 '도식'의 새로운 타겟이 된다.
살고 싶다는 의지로 미친듯이 도망치는 '경미' 하지만 살인마의 발소리조차 들을 수 없고,
'도식'은 또 다른 얼굴로 나타나 경미를 위협하는데...
한밤중,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연쇄살인마와 그의 타겟이 된 '경미'의 멈출 수 없는 추격전!
극강의 음소거 추격 스릴러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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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대무가> 1차 예고편
"쇼타임" 힙머니즘 엔터테이닝 무비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