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4-05-08 02:33:53
[JIFF 데일리] 여성, 실패시대
<비바! 바르다>, <울라>, <시대의 아이콘, 신디 로퍼>
이번,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생각한 특이점은, ‘아르헨티나’ 영화와 여성 스포츠 영화가 많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여성-창작자’와 더불어서 말이다.
올해는 총 세 번의 불면의 밤이 있었는데, 각 회차별로 주제의 핍진성이 좋았다. 영화의 통일된 연결고리가 있어 보다 더 흐름이 자연스러웠다고 할까. 심야상영 1은 <내 생의 마지막 파티>, <배아 애벌레 나비>, <헌팅 데이즈>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리듬감 있는 영화로 구성되었다. 심야상영 2는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그녀는 코난>,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로 부천영화제가 떠오르는 라인업인데, 장르적으로 두각이 나타나는 영화들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관람한 심야상영 3는 <울라>, <플라멩코의 여왕, 싱글라>, <시대의 아이콘, 신디 로퍼>로 여성 아티스트의 전기 영화들로 채워졌는데 특히나 음악과 관련된 영화들이라, 영화관에서 큰 사운드로 들을 수 있음에 참 좋았다.
그리고 시네필전주 섹션으로 “샹탈 아커만 + 아녜스 바르다, 영화로의 여행”을 관람하였는데, 여기서 ‘비바! 바르다’라는 작품과 심야상영에서는 ‘울라’, ‘시대의 아이콘, 신디 로퍼’ 이렇게 세 편이 갖고 있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어 하나로 묶어 소개하고 싶었다.
바로 ‘실패하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 (그것도 아주 많이). 그들의 성공에는 늘 수많은 실패가 따라왔고,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에 더욱 빛나는 사랑이 있다. 이것은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을 하겠다는 그들의 실패기이다. 실패가 낳은 성공보다는, 실패에도 꺾이지 않은 그 고집들에 용기를 얻는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닌, 실패로 향하는 길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함과 사랑이 미련함과 무모함이 얼마나 대단한 힘인지 보여준다.
<비바! 바르다>
-피에르 앙리 지베르
시놉시스
아녜스 바르다는 프랑스 뉴웨이브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영화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움을 발명했고, 확고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단번에 바르다표 영화임을 구분 짓게 하는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비바! 바르다”는 누벨바그란 낯설고,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아녜스 바르다 감독에 대하여 입문하고 싶다면 보기 딱 좋은 친절한 영화다.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아녜스 바르다의 전기 영화로, 바르다의 예술의 세계를 시대의 흐름대로 쫓아간다. 그의 사진작가 시절부터 ‘아녜스 바르다’라는 아이콘의 탄생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마치 ‘아녜스 바르다’라는 과목의 기본서를 보는 것 같다. 그가 어떤 계기로 예술을 시작했는지, 바르다가 고집하던 예술적 태도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사회에서 그의 존재가 희미해졌다가 뚜렷해지는 곡절까지 하여 바르다를 총망라한다.
나는 그저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로 알고 있었던 지라 그가 그렇게 많은 실패를 했는지 몰랐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이후 조명받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집밖을 나가기 더 힘들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집에 영화 사무소를 만든다. 영화 의뢰를 받는 사무소였는데, 생각보다 제작을 맞기거나 투자해주는 이가 없어 아녜스의 제작 스튜디오로 사용되었다. 그는 자신의 환경에 관해 멈추지 않고, 어떻게든 문제를 돌파한다. 또 그의 거침없는 입담까지 참 매력적이었다. 바르다의 주변인물의 말에 의하면 바르다는 권위적인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에게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는 것을 보면, 바르다의 권위는 통쾌한 구석이 있다. 늘 밑바닥부터 쳐다보고, 버린 감자일지라도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와 그의 창의력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그의 재기 넘치며, 독창적이고, 꺾이지 않는 태도가 우리가 생각조차 하지 않던 일상을 새로운 것으로 발굴한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바르다의 방식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한계마저도 창조적 영역의 확장을 이룬다. 이런 그에게 실패란 결국 또다른 창조물의 하나가 되는 셈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여 ‘아녜스 바르다’라는 아이콘까지 만들어냈다. 그의 방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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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라>
-아그네즈카 이반스카
시놉시스
<울라>는 슈퍼 8 카메라로 촬영한 재즈 러브 스토리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폴란드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우르줄라 두지악의 인생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폴란드의 작은 마을 스트라콘카에서 뉴욕 그리고 최고의 재즈 클럽으로 향하는 그녀의 여정을 그린다.
나는 ‘재즈’라는 장르에 관하여 잘 알지 못했는데, 어떤 즉흥적 연주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작품에서 보여준 우르줄라 두지악(이하 ‘울라’)의 재즈를 보고, 즉각적으로 변이하는 예술이라 느꼈다. 목소리부터 해서 음악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새로운 음악으로 창조해 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는 줄곧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런 과정에서 첫 번째 남자, 미하우를 만난다. 그와 함께 밴드를 꾸리고, 폴란드에서 덴마크 그리고 뉴욕으로 향한다. 울라의 재능은 당연 돋보였고 그 당시의 재즈스타들과 만남도 이어진다. 울라의 경력이 상공으로 향하고 있을 때 미하우와 이별하게 된다. 이후 울라는 ‘주변’이 사라진다. 늘 타인과 같이 섞이며 합을 맞추고 음악을 하였던 울라에게 아무 것도 없다시피 삶이 흘러가버린다. 이후 파트 타이머 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울라였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울라는 다시 자신의 주변인을 모은다. 그리고 동료가 없다 하여도 혼자서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여 그만의 재즈를 만들어낸다. 오로지 울라의 목소로만 가득 찬 재즈는 너무나 풍족했고, 알찼다.
그리고 이후 두 번째 남자를 만난다. 그는 작가였는데 유머러스함에 이끌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내가 있으며 그전에도 수많은 애인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울라는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중간에 그가 울라에게 ‘울라의 음악’을 받아드릴 수 없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는데, 여기에 더해서 울라에게 ‘평범함’을 강조한다. 어떻게 이리도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도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데 그런 음악만 하려고 하는 것인가. 얼핏보면 ‘칭찬’으로 볼 수 있겠다만, 울라의 음악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 생각했다. 그를 많이 사랑했던 만큼 울라의 마음은 참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울라는 자신의 음악을 선택한다.
울라에게 소중했던 인물들이 안겨준 상처들에 불구하고도 혼자서라도 해내고, 지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색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렇게 울라는 여전히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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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콘, 신디 로퍼>
-앨리슨 엘우드
시놉시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디 로퍼의 삶과 음악. 더불어 흔들리지 않는 페미니스트이자 지칠 줄 모르는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조명한다. 시대의 아이콘이자 선구적인 아티스트인 신디 로퍼. 그녀의 세계를 탐험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지금, 여기, 바로 시작한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활동가이자, 가수인 ‘신디 로퍼’ 그는 참 다양한 직업들이 있으며, 다양한 음악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그것은 그가 단순한 삶에 순응하지 않고 늘 반항하며 다양성을 추구했기에 그의 작업에서도 그 형태가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신디 로퍼는 폭력적인 새아버지에게 벗어나 먼저 독립하고 있던 언니와 생활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언니의 퀴어 친구들과도 어울려 지내며 더욱 더 다양성을 사랑하게 된다. 음악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겠던 신디는 음악으로 뛰어든다. 노래는 잘하나 목을 쓰는 법을 몰랐던 신디는 수없이 많은 모창을 하고 목이 나간 채로 보컬리스트를 찾거나 옷집에 가서 일을 도우며 자신의 코디를 찾고, 같이 음악을 할 수 있는 동료도 찾는다. 그는 늘 먼저 행동하고, 발굴하던 자였다. 이후 재능이 돋보이던 신디는 밴드가 아닌 솔로로 가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는데, 이때 냈던 첫 음악이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이다.
원래는 여자들이 너무나 놀고 싶어서 어쩔 수 없다는 남성의 시선으로 전개되던 노래였다. 하지만 여기서 신디는 자신의 스타일을 살려 남성보다는 여성의 시점으로 노래를 새로 만든다. 그렇게 재창조된 이 노래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이후에 나온 ‘Tine After Time'으로 흥행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후 계속 낙방하고 마는 신디. 연인과도 이별하고, 음악의 변주에 관한 불평과 과도한 미디어의 주목에 많은 걸림돌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신디의 친구가 에이즈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노래 ’True Colors'과 탄생한다. 이 노래는 당시 미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준 노래로 위치한다. 이후에도 자신이 관심있는 사회적 주제에 관해서도 끝임 없이 노래로 목소리를 냈다. 낙태죄 폐지와 성소수자 청소년의 홈리스 문제, 이외에도 많은 문제들을 신디의 장르로 끌고와서 선보인다.
그중 뮤지컬 ‘킨키 부츠’로 최초로 토니상을 여성이 되었다. 스타성이 많던 신디에게 좀 더 쉽게 길을 갈 수 없냐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비슷한 것을 다시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신디는 늘 색다른 것을 추구했다. 그리하여 신디의 다채로운 작품들이 탄생했고, 이는 신디를 배신하지 않는다. 이미 큰 성공을 맛보았던 신디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되는 낙방에도 늘 도전했다. 이에 거대한 신디의 세계가 탄생했다. 신디는 자신이란 장르를 만들어 냈다.
‘아녜스 바르다’, ‘우르줄라 두지악’, ‘신디 로퍼’. 이 세 명의 여성 아티스트는 수많은 실패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길을 닦는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소중한 사람이 싫어하더라도, 쉬운 길이 있더라도, 그리하여 실패를 낳는다 하여도 말이다. 그러나 실패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포용하는 고집은 자신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아녜스 바르다’라는 영화, ‘우르줄라 두지악’이라는 재즈, ‘신디 로퍼’라는 노래.
그들에게 실패는 성공을 낳게 된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의 결과물이자, 도전의 상징이었다. 결국, 실패시대란 차곡차곡 세계를 장악해 내가던 시기인 셈이다. 그러니, 실패하여도 문제 될 수 없다. 실패는 내가 세상을 맞설 수 있다는 증거이자 힘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나를 더 뚜렷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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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바르다>
5/3 19:30 (메가박스전주객사 1관)
5/6 10:30 (CGV전주고사 2관)
5/10 17:30 (CGV전주고사 2관)
<울라>
5/4 21:00 (메가박스전주객사 8관)
5/5 23:59 (메가박스전주객사 4관, 5관, 6관)
5/7 18:00 (CGV전주고사 3관)
<시대의 아이콘, 신디 로퍼>
5/4 21:00 (CGV3전주고사 2관)
5/5 23:59 (메가박스전주객사 4관, 5관, 6관)
5/6 13:3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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