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05-19 16:55:12
평등한 사회라는 환상
-<더 에이트 쇼>
지난주 넷플릭스에 공개된 <더 에이트 쇼>는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다. 특정 공간으로 삶의 패배자들을 몰아넣고 벌어지는 쇼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더 에이트 쇼>에서의 죽음은 곧 쇼가 끝나는 것이고, 등장인물들이 더 이상 그 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다. 1층부터 8층까지를 등장인물들이 무작위로 부여받으며 시작되는 이 쇼는 우리 사회에 관해 꽤나 많은 메시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평등한 사회라는 환상
우린 계층 없는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만들고, 최대한 공평하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로, 어떤 사람들은 사업가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번다. 평등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그 시스템이 한참 돌아가고 나서 보면, 어느새 각자가 가진 돈은 모두 달라진다. 그리고 시간당 버는 돈의 양도 달라지고, 그 돈의 양에 따라 개개인이 가진 삶의 태도와 지위도 달라진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평등했던 사회는 점점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간다.
<더 에이트 쇼>는 패배자 8명을 모아 특정 공간으로 넣는 순간부터 기존 사회에서의 직업, 계급, 자본 등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다. 만약 기존에 부자였거나 힘이 있거나,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어도 그 쇼의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다. 여기에 한 가지 무작위로 자신이 지낼 공간을 선택하게 한다. 그리고 그 방은 1층부터 8층까지 각 층마다 자리한다. 각 방은 1분이 지나면 특정 금액만큼 쌓인다. 그리고 쇼가 끝나면 그 금액을 현실로 받아갈 수 있다. 그 쇼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선 평등함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절망으로 가득한 8명이 모였다. 이들은 돈이 없거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별다른 힘이 없는 이들이다. 쇼의 주최자들은 이들의 옷을 똑같이 입히고, 똑같은 밥을 준다. 그리고 똑같은 노동을 하게 만들었다. 단 각 층의 방에 차별점을 두었다. 1분이 지나면 1층은 1만 원, 2층은 2만 원, 3층은 3만 원, 4층은 5만 원씩 올라가고 8층은 34만 원이 1분당 더해진다. 파보나치의 수열이라는 규칙을 통해 각 층마다 올라가는 금액을 한정했고, 방의 크기도 8층으로 갈수록 더 커지게 만들어두었다. 그러니까 그 쇼의 공간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무작위로 정해져 있는 불평등을 만들어둔 것이다.
사실 이 설정은 우리가 사회에 태어나 얻게 된 자신의 가족이 가진 지위나 자본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나서 가지게 된 배경환경은 나에게 우연히 주어진 것이다. 그걸 다시 바꿀 수는 없다. 그냥 주어진 것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규칙에 적응해서 그냥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더 에이트 쇼>가 보여주는 쇼는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점점 커지는 불평등
다른 모든 것이 평등하지만, 그 공간에 처음 부여받은 부의 조건이 다르다. 모두가 신사 같은 젠틀함으로 관계를 시작하고 서로를 돌봐주지만, 맨꼭대기 층인 8층이 가진 힘이 그 평등함에 균열을 가한다. 8층에는 가장 많은 돈을 버는 방이다. 그리고 하루 한 번씩 제공되는 물과 도시락 10개가 그 방에 최초로 배달된다. 방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아래층으로 내려줘야 모두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마치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의 설정처럼 위에서 먹고 남은 음식이 밑에 내려가는 구조다. 그래서 층이 높을수록 더 많은 걸 가지게 된다.
꼭대기 층의 주인인 8층(천우희)은 예측불가능한 인물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식량을 내려보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다른 층의 사람들은 생사를 위협받게 된다. 그리고 방 안에서 해결하던 대변과 소변 봉투도 아래로 내려온다. 결국 최하층인 1층(배성우)이 그걸 도맡아 처리하지만, 위층에서 내려오는 부담을 아래층이 계속 나눠서 떠안아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방 안에서 원하는 물건을 인터폰으로 주문할 수 있는데, 지불해야 할 가격은 실제 금액의 100배 수준이다. 이건 결국 기존에 자본이 많았던 사람들에겐 더 많은 편리함을 누릴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8층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춘다. 총 8부작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에서 이 과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8층은 여왕이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아래층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물과 음식을 제공받는다. 이 쇼의 기본 룰에 누군가 죽음을 당하면 쇼가 끝난다. 그러니까 8층을 죽인다는 것은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끝내버리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기업이나 사회의 우두머리를 끝장내면 모두가 돈을 벌 수 없는 혼란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 쇼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춤으로서 이미 만들어진 계층 사회가 계속 지속되게 만든다.
착취로 이어지는 쇼
이 쇼에서 시간은 꽤 중요하다. 공용공간에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 전광판이 있다. 전광판의 시간이 0이 되면 쇼는 끝나고 각자 방에 있는 전광판에 적힌 금액만 가져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그 시간을 늘리려고 최대한 애쓴다. 맨 처음 하는 것은 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8층은 다른 사람들에게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오면 시간이 늘어난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몇 번하자 시간이 늘어난다. 이후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시간을 늘리는 노동을 시작한다.
노동 과정도 재밌다. 매일 모두가 하기 힘드니 4명씩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하고, 장애가 있는 1층을 도와 대신 노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힘든 과정 이후 분란이 생기고 팀이 갈라진다. 계단 노동 이후엔 시간을 늘리는 행위가 무언가 재미있는 상황을 보여줘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장기자랑부터 다양한 게임을 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중요한 전환점이다. 노동이 재미로 대체되어 버리게 되는 것인데, 애초에 노동은 모두가 같이 시작했지만 마지막엔 누군가를 위해 1층에서 4층까지의 인원이 대신 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니까 착취가 시작된 것이다.
노동 행위가 게임이라는 행위로 대체되면서 재미로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점점 더 잔혹하거나 선정성을 높여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폭력과 착취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각 층의 사람들은 서로를 속이고 배신을 한다. 7층(박정민)이 대표적이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상황판단이 좋은 엘리트로 보였던 그가 8층과 6층(박해준)의 지배행위에 협력하면서 1층, 2층(이주영), 3층(류준열)이 속한 집단은 계속 가학적인 게임에 참여해 폭력을 당한다. 7층은 이 시리즈에서 강남 좌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7층은 가진 것이 많은 것에 비해 하층인 1-4층의 편을 많이 들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시리즈에서 7층이 누구 편에 서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돈과 판단력을 가진 7층의 선택이 무엇인지에 따라 시리즈 내내 이야기의 온도를 차갑게 하기도 하고 뜨겁게 하기도 한다.
독재에 이어지는 혁명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3층이다. 가장 평범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면서, 겁도 많고 가진 능력도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생각을 독백으로 관객에게 던진다. 즉, 관객이 3층의 입장과 거의 비슷하게 눈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이야기 안에서 3층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많지 않았다. 그저 당하고 또 당할 뿐이다. 하지만 최상위 계층인 8층을 시작으로 7층, 6층에 의한 독재가 시작되면서 그는 계속 방법을 생각하고 생각한다. 3층이 끝까지 중심 화자인 건, 그가 절망 속에서도 계속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선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안다. 작은 욕심을 부릴 때도 다른 사람을 걱정한다. 마치 밟아도 일어나는 민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리즈의 이야기가 후반부로 달려가면 점점 독재의 경향성이 짙어진다. 8층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모두에게 고문까지 하는 지경까지 간다. 이 잔혹무도한 독재는 결국 혁명을 부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3층과 같은 힘없는 민초, 그리고 그를 돕는 여러 사람들. 그들이 부른 혁명이 후반부를 장식한다.
그 혁명은 화려하지 않다.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잔혹한 쇼를 어떤 방식으로든 끝을 낸다. 더 잔혹한 행위들이 나오고 같은 편을 배신하는 반전들은 쇼의 시간을 늘리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결국 쇼는 끝이 난다. 단지,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인원들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하고 어쩌면 그 불평등함을 그저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에이트 쇼>를 다 보고 나서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는 건, 그것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불평등해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미 높은 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이고, 높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더럽고 어려운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민주적이고 평등을 내세우고 있는 정치인들과 상위계층들은 표를 얻기 위해 좋은 말들로 나쁜 행위들을 포장한다. 보이지 않는 착취와 고문은 계속 이어진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쇼를 끝낼 수 있는 건, 결국은 평범한 민초들일 것이다.
이 시리즈를 연출한 한재림 감독은 <관상>, <더킹>, <비상선언> 연출 이후 이 시리즈를 만들었다. 잘 짜인 미장센과 독특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화면의 비율을 늘리고 줄이면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쇼의 축소판을 만들어냈다. 사회적인 문제로 해석할 수도 있고, 시청률에 매몰되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대중매체의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시리즈다. 또한 설정뿐 아니라 각 캐릭터에 대한 해석도 각기 다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배우들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나 8층 역할을 맡은 천우희는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가 얼마나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정민, 류준열, 박해준, 이주영, 이열음, 배성우, 문정희 배우들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연기를 보여준다.
한 번 시작하면 단숨에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달려갈 수 있는 시리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고, 담긴 메시지도 다층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징어 게임> 이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최근 한국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사회적이고, 다층적이고, 흥미로운 시리즈가 등장했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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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8월 3주 개봉영화!
놉
NOPE , 2022
영화 "놉"은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현상을 그린 작픔으로
북미 개봉과 동시에 폭발적인 입소문을 자랑하며 박스오피스 1위 달성했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것’에 대한 공포심과 호기심!
은 올여름 그가 전할 메시지와 함께 관객들을 새로운 장르의 세계로 강렬하게 흡입 시킬 예정입니다
다니엘 칼루야가 '겟 아웃' 이후로 조던 필 감독과 다시 함께했는데요
그가 맡은 OJ 헤이우드는 말수는 적지만 기품 있는 행동을 하며 영화의 정신적인 중심을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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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주목한 조던 필 유니버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더 커진 스케일!
다양한 해석과 해설로 영화 세계를 뒤덮는
추천영화 "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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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국에서 홀로 자생하는 미나리들에게
다우징 로드를 들는 노인의 뒤를 제이콥(스티븐 연)과 데이빗(앨런 김)이 조용히 따른다. 수맥을 찾아 우물을 만들 예정인 제이콥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농장 경영을 위해 가족들과 아칸소로 이사를 결정했다. 병원을 가는데만 1시간이 넘는 변두리에 위치한 집을 본 모니카(한예리)는 심장이 약한 데이빗이 걱정이지만 제이콥은 농장일이 크게 성공할 거라 믿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던 마음속 앙금은 임계점을 맞아 폭발하게 되고 부부는 쌓인 감정을 서로를 향해 분출하기 시작한다. 부모의 싸움을 멈추고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이들이 화해의 비행기를 날려보지만 화산같이 폭발하는 감정들에 의해 좌초되고 만다. 치열한 공방이 있은 후 부부는 모니카의 어머니자 아이들의 외할머니(윤여정)를 집으로 모시기로 결정하면서 이야기는 변곡점과 마주하게 된다.
<미나리>와 <페어웰>
<미나리>는 수많은 이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낯선 타국의 땅으로 향했던 시절의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민과 가족 그리고 정체성이란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룰루 왕 감독의 <페어웰>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두 작품 모두 봉준호 감독의 호평을 받았다). <페어웰>의 빌리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정립된 정체성과 중국의 뿌리 깊은 관습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데이빗은 할머니가 가족을 찾게 되면서 생전 처음으로 한국의 냄새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들의 침투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할머니가 있었다.
작지만 강한 미나리
제이콥과 모니카는 열심히 일하면서 가족들을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인해 가족이란 공동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된다. 위기의 순간 찾아온 할머니에게 데이빗은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는 말을 한다.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이라 치부할 수 있는 말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한다. 데이빗은 미국에서 자란 아이지만 제이콥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의 정서를 주입받게 된다.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을 통해 세상을 보는 데이빗에겐 쿠키조차 굽지 못하는 할머니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데이빗은 자신 안에 점점 커져가는 할머니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하지만 연배 짙은 할머니의 노련함엔 대적할 길 없다. 그런 데이빗에게 할머니는 넌지시 미나리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미나리는 약이든 요리에든 어디에든 쓸 수 있는 쓸모 있는 존재라고...
<미나리>는 매일 우리 옆에 있는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세상에 자기를 증명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제이콥의 모습이 위선적 일지 모르나 공감 가는 이유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한국을 넘어 타국에서도 이어지는 현실이 우리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미나리>는 가족이란 개인의 능력을 증명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할머니가 뿌린 미나리 씨앗은 낯선 토양과 물에서도 자연스레 숲과 같이 큰 군락을 이룬다. 이렇게 큰 집단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씨 하나하나의 우수성보다 같은 공간에 다 같이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쓸모를 바라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 한다. 그리고 가족이란 때론 피가 섞이지 않는 우리들의 이웃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소소한 사실 또한 잊지 않는 배려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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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과 시선의 방향
SYNOPSIS.
1972년 뮌헨, 올림픽 생중계에 도전한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선수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음을 알고 이를 생중계로 보도한다. 솟구치는 시청률과 9억 명의 시청자까지,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단독 특종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들은 테러리스트들 역시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올림픽 사상 초유의 테러 인질극 생중계! 방송을 멈출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POINT.
✔️ 실화 기반이지만,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전개됩니다.
✔️ 그러나 잔인한 장면은 들어있지 않아요. 저는 이 지점이 좋았습니다.
✔️ 속도감 있는 전개 안에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의 책임감과 고민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 더불어 언론인들의 전문가다운 면모로 척척 손발이 맞는 장면들도 재미있었어요.
✔️ 그 장면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양한 배우들의 협연입니다. <퍼스트 카우>, <쇼잉 업>에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존 마가로, <티처스 라운지>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준 레오니 베네쉬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 포스터만 보면 <스포트라이트>보다 10년 앞서 나온 영화처럼 보여요... 하지만 영화는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버거워하고, 영화라 해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테러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건 존 마가로의 얼굴이 궁금해서였다. <퍼스트 카우>에서 소처럼 순박한 눈망울을 보여주었고, <쇼잉 업>에서 불퉁하게 세상과 불화하는 동생의 표정을 보여주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얼굴을 보여줄까. 그리고 나는 존 마가로를 못 알아볼 뻔 했다. 아니 존 마가로를 궁금해 할 겨를이 없었다. 빠른 전개 안에서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느라.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영화관에 앉았지만, 극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언론의 생중계 현장을 담은 영화이다 보니 그들의 대화와 상황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정보가 전달되고, 방송을 만드는 과정을 척척 담아내어 그 설명이 늘어지는 법도 없다.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편집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것 같은 대목이다.
전개가 빠른 영화의 스토리라인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보고 나서 마음에 남은 생각들만 정리해 보고 싶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
영화 초반에 인물들이 서로의 국적을 인식하고 있음이 대사에서 수 차례 드러난다. 지네딘 수알렘이 연기한 캐릭터 자크의 경우, 자크라는 이름보다 프랑스인이라는 국적으로 더 많이 불리고 인지될 만큼 국적이 강조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조망한다.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세계, 세계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독일. 앙금은 남아있지만 이제 가장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이벤트가 펼쳐져야 한다. 국적에 따라 다른 입장은 개인의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 평화와 우호를 말하는 행사에서조차 국적을 고려하여 방영 우선순위를 결정할 만큼.
우리 각자의 자리는 과연 각자만의 자리인가.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관계 뿐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테러 사건 또한 국적에 따라 다른 입장과 감정이 뒤얽힌 사건이다. 테러리즘 사건 하나만 놓고 가타부타 판단하기엔 너무 많은 사건과 역사가 줄줄이 얽혀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맥마흔 선언과 밸푸어 선언의 발화자였던 영국을 비롯해 여기 얽힌 국가들이 더 많이 있다.
과거는 온전하게 과거로만 존재하지 못하고, 타자는 철저하게 타자로만 존재하지 못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무언가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가능한가? 언론인이라면 다르게 답할 수 있겠지만... 시민인 나로서는 그저 연결되어 있는 서로를 감각하며 나의 자리를 확인하고 내 시각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를 좀더 명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만큼을 감안하는 것, 어쩌면 그게 최선의 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밖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마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도 영화 바깥이 궁금했다. 그리고 보는 동안 혹시라도 이스라엘의 '피해자성'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올까봐 꽤나 긴장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감독과 제작진이 유대인인지 다급하게 찾아보게 될까봐 긴장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 영화의 안과 밖 또한 예외가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인질이 석방되고 군이 철수하고 있다. 그동안 사람을 말살할 것처럼 쏟아붓던 공격이 멈춘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 지구를 "장악"해서 "재개발"하곘다는 소리를 하고 있고, 휴전 협상 다음 단계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런 세상에서 팔레스타인 과격 단체가 이스라엘 대표단을 인질로 잡아 벌인 테러극을 담은 영화라면, 이 영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그리는지 민감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전혀 담지 않았고, 테러 사건의 전개는 전화와 전보를 비롯한 소식으로 전달되어 대사로 공유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본인 할 일을 하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주력한 영화다운 선택이다.
영화 속 언론인들은 이제 막 도입된 위성 생중계라는 신기술과, 자신들이 정통한 각종 기술을 펼쳐 보인다. 옛날 텔레비전에는 저런 식으로 자막을 깔았던 거구나, 사진을 저런 식으로 확대했구나, 스튜디오 연결은 저렇게 하는구나... 같은 생각들을 하며 본 그들의 능숙한 손놀림 뒤에는, 지금 어디와 연결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소식을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그때그때 선택해야 하는 언론인들의 본능이 있다. 역시나, 영화 밖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이다.
제작자의 마음과 시청자의 마음
능숙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그때그때 판단을 내리는 언론인들의 모습은, 전문가처럼 보여 한편으로는 멋있으면서도... 동시에 징그럽다. 선택을 내릴 때 그들은 인간성을 우선순위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이 미칠 파장을, 그 경우의 수를 일일이 계산한다면 방송은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이 영화처럼 급박하게 굴러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뉴스 보도국이 아니라 스포츠국이지만 지금 상황을 곧바로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사명감과, 방송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과, 갑작스럽게 굴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따라가는 데 분주한 마음은 이리저리 뒤엉킨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윤리 준칙이 무너지기 너무 쉬워 보이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제작자의 마음보다 더 징그러운 것을 발견하는데, 내 안에서 발견한 시청자의 마음이다. 사건 전개를 궁금해 하면서 상황이 전개되기를 기다리는 기자의 마음, 또 나의 마음. 그건 어디를 향하고 있나. 심지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모두가 각자의 스크린을 각자의 알고리즘 안에서 보고 있는 세상이다. 더블체크되지 않은 정보 채널이 마구 난립하는 세상.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언론인들이 서로 논의하며 갈등하여 적정선을 찾아가는 결과물조차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칠 수 있는데, 그 과정조차 생략된 '가짜 뉴스 채널'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실시간으로 본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한때 실시간으로 보면서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렸다. 거대한 참사가 일어나는 장면을 몇날며칠 우리가 가만히 보고 있었던 순간들. 정제되고 편집된 뉴스 영상이 아닌, 마구잡이로 찍힌 사고 현장을 조용한 방에서 핸드폰으로 들여다 보면서 '이걸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맞아?' 싶었던 순간들. 가슴이 쿵쾅거려 잠들기 어려웠던 밤들로 이어졌지만, 이런 날들이 길어지고 아득해지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지난 15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 얼추 추산하기로도 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이 중 70% 가량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UN의 분석이 있었다.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추측이, 카더라 통신이 아닌 의학 학술지에 실렸다. 병원과 학교는 의례적으로 마지막 안전지대지만, 전쟁 규칙을 무시하고 조준 폭격하기도 했다. 하루에 몇 명씩 죽었다더라, 그 중 아이들이 몇이라더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끔찍한 소식을 무수히 들으며 나는 이미 무뎌졌다.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을 미치게 괴롭게 하거나 무뎌지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의 수순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불 꺼진 스튜디오에서 제프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 그곳은 유일하게 희미한 빛이 드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는 게시판이다.
우리의 시선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상황 전개 소식을 듣고 복도에 선 언론인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렸듯. 물론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잡겠지만, 언론인도 흔들린다. (흔들렸을 때의 결과가 너무 끔찍하기에, 그들에게 남다른 균형 감각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지만.) 시청자도 흔들린다. 시청자는 숫자가 되어 언론인에게 영향을 주고, 언론인들은 또 다른 숫자를 창조해낸다. 우리는 순환한다.
그러나 흔들림 끝에 우리의 시선이 희미한 빛 아래 사람의 얼굴에 머물 수 있다면. 결국 시선은 마음 가는 곳을 향하게 되어 있다. 95분을 빼곡하게 채우는 영화적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동시에 영화 바깥 나의 시선을 가다듬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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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분노로 품은 실화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이 이끄는 대학생들, '애비 호프먼(사챠 바론 코헨)'과 함께 움직이는 히피들이 시작한 반전 시위는 경찰 및 주 방위군과 대치하는 폭력 시위로 이어진다. 이를 닉슨 행정부가 반전 분위기를 잠재울 기회로 삼은 결과, 미국 법무부 장관의 특별지시를 받은 연방검사 '리처드 슐츠(조셉 고든 래빗)'는 마지못해 주요 운동가를 공모 혐의로 기소한다. 그 결과 톰, 애비, 제리와 시위에 참가한 적도 없는 흑표당원 '바비 실(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을 포함해 총 7명의 운동가들은 모의죄를 저질렀다고 지목되어 재판에 넘겨진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윌리엄(마크 라일런스)'은 '전직 법무부 장관(마이클 키튼)'을 증인으로 세우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이미 각본이 짜인 재판의 흐름을 뒤바꾸지는 못하고, '시카고 7인'도 톰과 애비를 중심으로 정치적 신념 차이로 인해 점점 분열되기 시작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배급사가 파라마운트에서 넷플릭스로 변경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제목에 포함된 '트라이얼(trial)'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법정 드라마다. 특히 피고(인)의 유무죄와 사건의 진상을 가리는 수싸움에 주목하기보다는 <변호인>과 <도가니>처럼 재판받는 사건을 통해 사회의 문제와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목적의 법정 드라마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종종 진실을 알리고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겠다는 분노에만 주목해 주인공들을 지나치게 도구화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와 <스티브 잡스>의 각본가로 이름을 떨친 애런 소킨이 각본, 연출을 맡은 결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위의 함정을 무사히 피한 법정 드라마이자 사회 고발 영화로 완성되었다.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과 흑백차별 반대 시위로 혼란했던 미국을 배경으로 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뜨겁다. 영화는 실제 연설 장면과 시위 사진으로 문을 열면서 당시 사회적 분노에 사실성과 구체성을 더한다. 더 나아가 순전히 반전 운동의 열기를 끌어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재판을 조작하는 미국 연방 검찰과 법무부의 모습을 초반부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 대목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명분도 없고, 인권도 무시하며, 국민의 뜻에도 반하는 전쟁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그들의 분노에 강력한 정당함을 안긴다. 그 결과 시카고 7인이 공통적으로 지닌 뜨겁게 불타오르는 정당한 분노에 관객들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자연히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는 익숙하지만 아주 효과적인 검증된 방식으로 타오르는 감정선에 장작을 더한다. 검찰, 경찰, FBI가 한 몸이 되어 수많은 거짓 증언을 늘어놓으며, 판사는 변호인과 피고인들의 이의 제기는 모두 묵살한 채 철저히 연방 검찰의 편에서 재판을 진행한다. 힘겹게 찾아낸 증인의 증언도 판사의 자의적인 판단 아래에서 소멸되어 버리며, 재판 도중 인종차별도 자행된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동력이었던 분노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향한 분노, 기득권층을 향한 분노, 정당한 제도와 법률을 지키지 않는 위악자들을 향한 분노로 확장된다. 물론 이러한 전개는 <변호인>에서도 위와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듯이 분명 법정 드라마의 클리셰지만, 이번만큼은 충분히 그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법정 드라마와 별개로 영화는 7명의 피고인 중 특히 톰과 애비 그리고 바비에게 집중하며 다른 맥락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에도 주목한다. 학생운동의 리더인 톰과 히피들을 이끄는 애비는 반전 운동의 지향점과 시위 방식을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톰이 제도 안에서의 투쟁을 주장하는 반면, 애비는 제도 자체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제도권 밖에서의 저항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저항과 투쟁의 과정에서 모든 진보 세력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방법론의 아이러니로부터 비롯한 또 다른 결의 뜨거움도 함께 묘사한다.
이때 시카고 7인 중 가장 이질적이고 시위와의 관련성도 약한 바비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가장 동떨어져 있기에 서로 다른 측면의 분노를 연결하는 데 있어 역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변호인이 없는 상황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미 중립성을 잃은 판사는 재판을 강행하면서 그의 발언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톰과 애비가 서로 싸우는 동안, 그는 재갈 물리고 손을 포박당하는 와중에도 억울함을 토로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스스로를 희생해 흑백차별이 부조리를 온몸으로 고발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문제에 분노하고 사회에 끊임없이 고함치는 것 그 자체가 변화를 위한 투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손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결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7명의 피고인이 선고받은 형량과 유무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끝내 서로의 신념과 방식을 이해한 톰과 애비를 비춘다. 애비는 자신들이 왜 반전 운동을 하고, 징집에 반대하는지에 대해서, 자신들의 재판이 얼마나 불공정한 지에 대해서 피고인이자 증인으로 자격으로 재판장 안에서 주장한다. 톰은 시위대를 거리로 이끈 주역이었음이, 신념을 위해 제도와 법률을 가장 먼저 위반한 반골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톰은 7명의 피고인을 대변하는 최후 발언권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정당함을 잃은 사법제도에 저항한다. 마치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과 화해를 보는 듯한 결말은 이렇게 서로 다른 결의 분노를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낸다.
애런 소킨의 각본은 이처럼 서로 다른 분노의 감정이 한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데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다. 여태 그가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실화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데 능하다. 또한 긴 시간 동안 쌓여 있었던 긴 이야기의 시공간 배경을 마음껏 섞은 뒤에 특정 사건과 시점에서 빠른 템포로 전개시키며 긴장감과 반전을 조성하는 재주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동업자들이 마주 앉은 조정 협상 테이블 위에서 그들의 개인사와 양면성을 낱낱이 드러낸다. <스티브 잡스> 역시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짧은 순간의 잡스를 포착해 가족사와 대인관계 등 업적에 가려진 그의 인간적인 흠결을 가차 없이 스크린으로 불러온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애런 소킨은 서로 다른 배경과 개인사를 지닌 채 시카고에 모인 주인공을 재판 대기실이나 재판 준비 사무실 같은 한 테이블에 모아 놓는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해 그는 캐릭터들의 성격, 이념, 소신 등 상이한 화학물을 한데 섞어서 터뜨려 버린다. 시위 동기나 시위 진행 등 과거 시간대의 사건을 대화 중간마다 적절히 삽입시키며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덤이다. 그 결과 주된 플롯이 법정에서 진행되는 와중에도 영화는 짧은 순간 안에 개개인의 서브플롯을 전달하고, 멋진 반전을 선보이며 사회고발적 메시지와 주제의식에 깊이를 더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특별한 작가를 만날 때 실화가 얼마나 강력한 감정적 힘을 지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남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대와 상황, 쟁점은 달라져도 그 안에 담긴 갈등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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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스 패틴슨의 더 배트맨(The Batman) 리뷰
지난 화요일 더 배트맨(The Batman)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리뷰를 써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벌써 3일이나 지나서 허겁지겁 리뷰를 쓰고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쓰는 영화 리뷰라 글이 잘 안 써지네요. 이번 리뷰는 배트맨 영화의 팬으로서 느낀 바를 간략하게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장기의 배트맨
지금껏 배트맨 주연의 영화 또는 출연한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더 배트맨으로 처음 배트맨을 접하셨다면 배트맨의 본래 분위기와 차이점을 잘 못 느끼실 텐데요. 적어도 제가 느낀 바로는 지금까지의 배트맨과 로버스 패틴슨의 더 배트맨은 조금 다른 느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중 나오는 로버스 패틴슨의 모습은 히어로라기엔 많이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배트맨 활동을 하는 목적은 복수였으며, 부모님의 죽음을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마침내 자신의 사명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은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서였습니다. 즉, 이 영화는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이 한 명의 배트맨이자 히어로로 성장하는 모습이 핵심이었다고 할까요. 그런 면에서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배트맨의 싸움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다
복수라는 어두운 면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영화는 시종일관 굉장히 어둡고 우울해 보였습니다. 복수에 미쳐 부모님의 유산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고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배트맨. 그리고 시장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패했으며 배트맨 혼자서는 역부족일 만큼 시의 치안이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탈인간 빌런이 아닌 마피아 두목 팔코네였죠.
작중 빌런으로 나오는 팔코네와 그의 부하로 나오는 펭귄은 모두 배트맨 시리즈 초기에 나왔던 빌런들입니다. 배트맨의 특성은 탈인간들과 싸우는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배트맨은 지능형 또는 경제적, 정치적 능력이 있는 빌런들과 대립하고, 그런 빌런들을 법의 밖에서 싸워 이기고 죽이지 않은 채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건데요. 배트맨과 대립한 팔코네는 결국 리들러의 손에 죽고 말았으나 리들러는 붙잡혀 아캄 교도소에 구속되게 됩니다.
영화는 리들러와 배트맨의 머리싸움이 주를 이루었는데, 리들러가 수수께끼나 자신의 범죄를 사전에 알려 머리싸움을 좋아하는 빌런임은 맞으나 너무 조커를 의식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조커의 광기를 리들러를 통해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리들러라는 캐릭터와 맞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리들러가 아캄에 수감되면서 다른 수감자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 인물이 분명 조커임이 틀림없다고 느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조커가 나올 텐데 리들러도 조커와 같은 느낌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은 아쉬운 마음이었어요.
다크 히어로의 느낌을 살리려 했지만
초반 배트맨은 어둠 어디에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다크 히어로라는 면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 같으나 작중 배트맨의 모습은 탐정에 더 가까웠습니다. 경찰 조사를 따라다닌다는 것도 놀랍지만 고든과 짝을 이뤄 리들러의 단서를 추리하고 쫓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는 탐정 만화 속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인명구조를 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장면에서도 조금 아쉬웠던 점은 웨인이라는 점을 살려서 아캄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인명구조도 좋지만 배트맨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돈입니다. 아캄시의 웨인하면 손꼽히는 부자 집안이며, 영화에서 팔코네가 웨인 부부를 죽인 이유도 돈 때문인 만큼 웨인가는 돈이 많습니다. 브루스 웨인으로서 그 돈을 사용해 피해를 입은 아캄시에 지원을 하는 내용이 나오면 좀 더 배트맨스럽지 않았을까 하네요. 아마 후속작이 나오게 되면 그런 내용을 초반에 넣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배트맨은 어둠 속에서, 세상의 뒷면에서 사람들을 돕고 범죄를 소탕하고 활동하는 다크 히어로의 성격이 강합니다. 놀란의 다크나이트는 그런 부분을 참 잘 각색했고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었기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죠.
그럼에도 제법 괜찮았던 더 배트맨
그럼에도 더 배트맨을 제법 괜찮게 본 이유는 이전과는 다른 배트맨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가장 유약해 보이며 가장 인간적인 배트맨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배트맨의 배트맨이 어둡기만 했으며 심적으로 불안정했다면 다음 편부터는 더 성숙하게 빌런들과 싸우며 배트맨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후속편이 나온다고 한다면 아직 해결하지 못한 펭귄, 리들러와 만난 조커와 대립하는 장면이 기대되며 가장 캣우먼과 유사하게 뽑힌 조 크라비츠의 캣우먼이 조력자로 나온다면 볼거리도 풍부해질 것 같습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더 배트맨이지만 색다른 배트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 많은 인물들이 나왔음에도 나름 정리가 잘 되고 보는데 불편함이 없었다는 점 등 제법 괜찮게 본 배트맨이네요.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리뷰까지 쓰는 거라 횡설수설한 것 같네요. 앞으로는 영화를 좀 더 자주보고 좀 더 기록으로 남겨야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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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8월 다섯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오늘과 내일 태풍 소식이 있으니 다들 외출은 최대한 자제하시고조심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9월 첫째 주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육사오> (▲1)▶ 지난 번에 2위를 차지했던 <육사오>가 주말 동안 많은 관객을 동원하면 1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주말 박스오피스에서도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SNS에 입소문을 타며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40만 6,99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13만 478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헌트> (▼1)▶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헌트>가 9월 첫째 주에는 아쉽게 2위로 하락하였습니다.
지루할 틈이 없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짜릿한 액션까지 선보이며 관객을 이끌었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20만 3,50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11만 6,629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한산: 용의 출현> (-)▶ 2주 연속 3위를 차지한 <한산: 용의 출현>. 지난 번과 비교했을 때 주말 관객 수가 10만에서 1만 대로 하락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7만 7,00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15만 9,66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16회 예측 이벤트는 9월 첫째 주 주말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9월 1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1,2,3위를 모두 비슷한 비율로 맞춰주셨는데요. 순위를 예측하기 조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육사오>를 1위로 예상하신 유저 분들이 35%를 차지했으며, 2위는 38%, 3위 24%였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118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탑건: 매버릭> (-)▶ 순위 변동 없이 4위만 계속 유지하고 있는 <탑건: 매버릭>! 6월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N차 관람이 많았던 영화인만큼
여전히 그 현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말 동안 (9월 2일~9월 4일) 관객 수 5만 404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806만 5,87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리미트> (NEW)▶ 주연부터 조연까지 최고의 연기자로 꽉꽉 채워진 <리미트>.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로,
이들이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궁금증에 이끌린 관객이 많을 것 같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2만 7,494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만 8,96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
피해자 엄마 대역을 맡게 된 경찰 ‘소은’(이정현).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도중
‘소은’은 누군가로부터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범인은 대역이 아닌 ‘소은’과의 협상을 요구하는데…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주말 동안(9월 2일- 9월 4일) <Spider-Man: No Way Home>의 매출액은 6,000,000 (한화 약 82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8월 5일 ~ 2022년 8월 7일)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600만 달러 (누적 600만 달러)2. <탑건: 매버릭> 560만 달러 (누적 6억 9,882만 달러)3. <DC 리그 오브 슈퍼 펫> 545만 달러 (누적 8,080만 달러)4. <불릿 트레인> 540만 달러 (누적 8,593만 달러)5. <더 인비테이션> 470만 달러 (누적 1,374만 달러)...씨네픽의 9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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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면 후회하는 몰입도 최강의 공포영화 입니다.[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트렁크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넷플릭스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수많은 영화와 시리즈를 즐기세요!
영화에취한다 채널에서 결말까지 볼 수 있는 영화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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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더하이츠 영화 후기 / 브로드웨이 뮤지컬 원작 / 남미의 정열이 담긴 흥폭발 띵작 뮤지컬 / 올여름 이 영화는 꼭 봐야해!!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인더하이츠”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있으니 꼭 보고 오세요~^^#뮤지컬, #브로드웨이, #존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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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수퍼 소닉2> 메인 예고편
때가 왔다! 초특급 히어로 소닉과 친구들? 소닉&테일즈 VS 너클즈&로보트닉의 대결로 2배 업그레이드 된 어드벤처 4월 6일 극장에서 만나소-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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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스타트는 지금부터> 메인 예고편
도쿄의 직장을 그만두고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미츠오미’는
대를 이어 가구점 후계자가 되겠다는 다짐과 달리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츠오미’는 구마이 할아버지의 양아들 ‘야마토’와 농원 일을 돕게 된다.
동갑내기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미츠오미’는 밝아 보이지만 아픈 상처를 지닌 ‘야마토’에게 점점 마음이 쓰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