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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비됴2024-05-19 23:18:45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

<그녀가 죽었다> 리뷰

관음과 관종. SNS 중독 시대를 살아가면서 두 단어가 지니는 부정적 무게감은 더 커지고 있다.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두 단어로 촉발된 범죄 등 SNS의 폐해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사회관계망에 의존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SNS는 시간 낭비다”라는 명언을 남긴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말은 이제 무용지물. 이를 반영하듯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SNS 중독 시대 속 병든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을 그리고 있다. 과연 이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직업은 공인중개사 취미는 남의 일상 훔쳐보기. 심각한 관음증에 빠진 구정태(변요한)는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부동산 매물을 맡긴 이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사소한 물건을 가져오기까지 한다. 심지어 외딴 창고에 그 물건을 전시해 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레이더망에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걸려든다.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샐러드 이미지를 SNS에 올리는 소라의 모습을 본 정태는 반은 호기심, 반은 팬심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런 노력(?)에 하늘도 감동한 걸까? 집을 내놓기 위해 구정태의 공인중개사를 찾은 한소라는 고맙게도 그에게 키를 맡긴다. 더 활발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구정태. 하지만 여느 날처럼 소라의 집에 몰래 들어간 그는 흉기에 찔린 채 누워있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관음과 관종이 만연한 SNS 중독 시대의 병든 남과 여. 이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 <그녀는 죽었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 더 나아가 시선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강력해지는 권력의 폐해를 미스터리 장르로 보여준다. 정태가 소라의 실제 모습을 보기 위해 몰래 따라다니거나,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하는 등의 이상한 고군분투를 하는 것처럼, 관객 또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에 ‘좋아요’를 누르며 동참한다. 특히 소라의 시신을 본 이후 정태를 향한 협박과 이름 모를 범인의 출현 등 과연 진범은 누구인지 영화는 이 미스터리를 계속 지켜보게 한다. 

 

 

 

 


시선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큼, 영화는 정태의 시선만이 아닌 소라의 시선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퍼즐은 소라의 이야기가 보인 후에 맞춰진다. 

 


정상인이라 보기 힘든(정작 극 중 본인들은 정상이라 생각하는) 두 주인공은 각각 전, 후반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재미있는 건 각자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변론이 점점 궤변처럼 느껴지고, 자기합리화의 최대치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SNS 게시물 내 작위적 연출과 멋스러운 필터로 보이지 않던 오리저널 이미지가 명확히 보이고, 자칫 죄의 무게가 한 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을 미연의 방지한다. 여기에 감독은 오영주 형사(이엘)를 통해 윤리와 법에 입각한 시선을 관개에게 부여하며, 최대한 두 캐릭터를 미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만, 장르에 입각한 연출이 강하다 보니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활용도와 추리 과정에 대한 디테일은 아쉬움을 남긴다. SNS의 부정적 측면에 집중해 익명성에 기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에 맞춰 두 주인공이 전사는 깊이 있게 그려지진 않는다. 이는 전사로 인해 이들을 행위 자체가 용인되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연출이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캐릭터를 표면적으로만 보게 되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병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정태 보단 소라가 불우한 가정사 등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또한 빈약해 보인다.  

 

 

 

 


다행히 이 단점은 변요한, 신혜선의 연기가 채운다.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급변하는 상황에 맞게 두 얼굴의 모습을 연기로 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변요한은 관음증으로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다 그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소라는 소셜미디어와 현실의 모습, 결이 다른 내외면의 모습을 빠르고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 자체가 소셜미디어 세상 속 사람들의 표상까지는 아니지만 어두운 단면을 잘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다. 

 


관음을 소재로 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이 개봉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그녀가 죽었다>가 개봉하는 걸 보면,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관음의 포로인 셈이다. 영화 자체가 남의 삶을 보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보는 것은 물론, 소셜미디어에 이 영화를 보고 단평을 올리는 이들은 아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관음 자체가 문제라기 보단 그 지나친 행위 자체와 도덕과 윤리의 기준선을 모호하게 하는 자기 합리화가 문제다. 인간이라면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 기준선을 잘 지켜야 한다. <그녀가 죽었다>의 마지막 장면의 두 주인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사진제공: 콘텐츠 지오 

 

평점: 3.0 / 5.0
한줄평: SNS 중독 시대가 낳은 병든 이들의 웃지 못할 자화상

작성자 . 또또비됴

출처 . https://brunch.co.kr/@zzack0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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