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4-11-14 15:38:30
내 이름은 리들리 스콧. 거장이죠
영화 [글래디에이터 2] 리뷰
이 글은 영화 [글래디에이터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결혼이나 승진 같은 이벤트일 수도 있고, 인생의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순간이 만약 배우에게 다가온다면. 당연히 자신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역할을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러셀 크로우라는 배우에게는 극 중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원수인 황제 앞에서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내뱉는 순간이 바로 그렇게도 기다리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검투사들 앞을 스쳐 지나가는 그의 모습은, 화면상에서 봤을 때 상대 배우들에 비해 비교적 작은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압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의 극 중 이름에도. 그리고 배우로서의 이름에도 남다른 무게감이 생긴 뒤에 느낄 수 있는 후광효과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후광 효과를 만들어 낸 위대한 감독 리들리 스콧에게도 [글래디에이터]는 매우 특별한 영화다. 24년이 지난 지금에도 막시무스의 이름을 들으면 전율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속편을 선보이며 자신의 이름값뿐만 아니라 영화의 이름값도. 게다가 불세출의 영웅 막시무스에게도 톡톡이 값을 치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님 개연성 어디 갔어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겨우 본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그 우려(?)는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들은 1편에서 따왔지만 안타깝게도 개연성과 임팩트는 24년 전 영화에서 신나게 써 버려 이미 멸종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는 루시우스(폴 메스칼)의 눈에 분노가 있다고 말한다. 전쟁 중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시민들을 잃었으니 분노의 계기는 명확하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과 깊이는 애처로울 정도로 얕아서 영화 상에서 주인공에게 몰입하기 힘들다. 그나마 쌓아 올린 나노단위의 분노조차도 결국 마르쿠스(페드로 파스칼)를 경기장에서 만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덕분에 영화의 초반부에는 이렇게 말 잘 듣는 전쟁노예가 있었던가.라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하게 한다.
초반부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한번 알게 된 각성한 주인공이 후반부에는 독자적으로 "로마황제 프로듀스 101"을 찍고 있는 마크리누스에게로 칼끝을 겨누는 과정도 그다지 인상적이라거나 매끄럽지 않다.
그 연결고리로 선택한 것은 쌍둥이 황제의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들이 잘못한 것이라 해봐야 화장을 무당처럼 하는 바람에 밤에 마주치면 무섭게 보이겠다 정도일 뿐. 인간성의 잔인함을 강조하는 것 외에 주인공과 크게 관련된 이벤트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황제의 존재 이유는 마크리누스의 귀걸이보다도 작고 하찮게 보이고, 그로 인해 과연 그만큼의 품을 들여서 이들을 없앨 이유가 있었던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진출처:다음 영화
또한 2편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인공의 태생적인 한계에서부터 온다.
주인공에게 고유함과 더불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막시무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루시우스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버지의 이름 덕에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등장하는 극초반부의 장면은 정말 많은 정보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것도 전장을 둘러보는 막시무스를 향해 인사하는 동료 병사들의 표정으로. 그를 향한 믿음과 존경. 전우애와 의지를 꽉꽉 채운 눈빛으로 말이다.
막시무스는 촉망받는 장군이었으며 분노를 장착한 정치게임의 패배자였고. 죽음이 그를 덮친다 해도 무릎 꿇기는커녕 어서 나를 갈기갈기 찢어보라며 포효할 인물이었다. 잔인한 전투 장면이 없이도 그의 걸음걸음마다 위엄이 느껴졌다.
그러나 루시우스에게 주어진 서사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너무도 옅은 데다 유약했고. 그 덕분에 루시우스는 아버지에게 그저 만담실력을 물려받은 호탕한 사람 정도로만 느껴진다.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그는 로마 제국의 단 하나 남은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핏줄을 아무리 영화라지만 살해할 리는 없다.
우리는 막시무스가 그토록 살아남기를 원했고. 화면 속에서 시간이 흐를 때마다 죽어가는 그를 보며 눈물과 안타까움을 삼켰지만. 아들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온 세상 인물이 다 죽는다 해도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테니. 믿는 구석이 애초에 있는 사람의 전투가 간절해 보일 리가 없다.
거장의 장기자랑 타임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장이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십분 살려내 화면과 남은 시간 가득 채워내는 것.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초반부가 지나고 나면 후반부에는 우리가 감독에게 기대했던 모든 장면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관객의 눈에 안긴다. 소위 "큰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가진 요소들인 거대한 스케일과 장엄한 장면에서 갖추어야 할 카타르시스들을 모조리 느낄 수 있다. 기존의 검투 장면들 역시도 작정한 듯 화려하게 준비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거의 장면들은 아름답다 못해 심장을 뛰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독은 지구상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 밖에 없을 것이며. 그의 존재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후반부 덕에 앞부분의 불쾌함이 조금은 날아간다.
물론 영화가 주는 장대함과 압도당하는 힘이 스토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자체가 주는 웅장 함이라는 것은 아쉽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보상은 완벽히 가능하고. 정해진 결말로 가는 그 길마저도 조금은 기대로 채울 수 있다.
마치면서
내가 존 스노우 시절(대충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뜻) 두려움이 너를 구할 것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내겐 미스터리와도 같았다.
한낱 평범한 사람인 나 조차도 두려움을 이토록 피하고 싶은데.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버린 작품의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얼마나 피하고 싶은 과제였을까.
두려움에서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거장은 스스로가 가진 모든 "치트키"를 활용했다. 주어진 두려움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한 덕에. 이 두려움의 바다에 빠졌을(?) 거장은 뭍까지는 떠밀려 올 수 있었다.
머금은 모래를 내뱉고 따끔거리는 바닷물이 코에서 흐르는 걸 느끼며 진절머리를 쳤겠지만. 비로소 폐 한가득 신선한 공기를 마실 때는 안심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결과 또한 아마도 조금은 매콤하지만 다행인 평이될 것이다.
또한 다음번에 두려움의 바다에 빠졌을 때 무사할 행운이 다를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의 TMI]
1. 베이글 그만 먹고 싶은데 그게 안 됨
2. 아침 운동 너무 힘들다.
3. 너무 추워서 난로를 사고 싶은데 전기세가 걱정된다.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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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챔피언처럼 임하는 자세
아주 오랜만에 늦은밤까지 열정적으로 올림픽을 보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남자양궁 단체전에서 김우진 선수와 엘리슨 선수의 경기는 그야 말로 심장을 뛰게 하는 경기였다. ‘ 어? 대한민국이 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슛오프에서 4.9mm차이로 금메달을 딴 순간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영화관계자인 지인이 ‘이게 현실인데, 이렇게 시나리오 쓰면 욕먹을 것 같다.’ 고 말할 만큼 감동적이고 울컥한 순간이 많이 연출된 올림픽. 그래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올림픽의 스토리는 자주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은 국민적 무관심 속에 출전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인 최고의 핸드볼 선수 미숙, 그러나 온 몸을 바쳐 뛴 소속팀이 해체되자, 그녀는 인생의 전부였던 핸드볼을 접고 생계를 위해 대형 마트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일본 프로팀의 잘나가는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던 혜경은 위기에 처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대행으로 귀국한다. 팀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인 미숙을 비롯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노장 선수들을 하나 둘 불러모은다.
실제로 영화의 모티브였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소집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여자 핸드볼 실업팀은 5개, 국가대표 선수 일당은 2만 원에 불과했는데, 선수가 모자라 은퇴한 선수까지 불러들여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여자 핸드볼 감독으로 활약 중이던 임오경 선수 투입을 시작으로 오성옥, 오영란 선수 등이 합류해 훈련에 돌입했다고 한다.
혜경은 초반부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전력 강화에 힘쓰지만 그녀의 독선적인 스타일은 개성 강한 신진 선수들과 불화를 야기하고 급기야 노장 선수들과 신진 선수들간의 몸싸움으로까지 번진다. 이에 협회위원장은 선수들과의 불화와 여자라는 점을 문제 삼아 혜경을 감독대행에서 경질시키고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 안승필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한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중요했던 혜경이지만, 미숙의 만류와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감독이 아닌 선수로 팀에 복귀해 명예 회복에 나선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이제 감독으로의 성공적인 전향을 꿈꾸는 승필. 그는 선수들을 배려하지 않은 과학적인 프로그램과 유럽식 훈련 방식을 무리하게 도입해 한국형 핸드볼이 몸에 익은 노장 선수들과 갈등을 유발하고 오히려 대표팀의 전력마저 저하시킨다. 심지어 혜경과의 갈등으로 미숙 마저 태릉을 떠나버리고 대표팀은 남자고등학생 선수들과의 평가전에서도 졸전을 펼친다. 미숙의 무단이탈을 문제 삼아 엔트리에서 제외하겠다고 공표하는 승필. 안타까운 혜경은 불암산 등반 훈련에서 자신이 먼저 완주하면 미숙의 엔트리 자격 박탈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한다. 혜경은 미숙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승필은 그런 그녀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는데… 결국 혜경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의 노력으로 미숙은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고, 승필과 신진 선수들도 그녀들의 핸드볼에 대한 근성과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려는 투지를 인정하게 된다. 마침내 최고의 팀웍으로 뭉친 그들은 다시 한번 세계 재패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아테네로 향한다.
그렇게 출전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리 여자 배구 선수들은,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7경기에서 맹활약을 보여주며 마지막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는 19번의 동점과 2번의 연장전을 치르며 온 국민에게 투지를 보여줬고, 마지막 승부 던지기까지 숨 막히는 승부를 보여주며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이미 결말을 알고 보기 대부분이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으로는 호기심을 주기가 어렵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문소리, 김정은 등의 여배우들이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로 완벽하게 변신, 경기 장면을 역동적으로 재현해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어떤 메달을 받던지 색에 상관없이 축하하고, 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도,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묵묵히 견디며 지나온 시간을
응원하지만 예전에는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죄인이 된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당시 여자핸드볼 선수단의 은메달은 그 과정자체가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색이 무슨 차이가 있나. 무슨 소용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 파리 남자양궁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딴 엘리슨 선수의 인터뷰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슛오프에서 김우진이 간발의 차로 이겼다고 속상하지 않다. 오랫동안 꿈꾸던 경기였다. 김우진과 나는 챔피언처럼 쐈고 그게 중요하다.” 메달의 색으로 나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고, 기나긴 시간을 묵묵히 지나온 경쟁자이나 동료인 상대선수의 최선 또한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 진짜 챔피언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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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몇년 전, 이 영화를 보고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리뷰를 쓰지 않고 지나갔다. 엊그제 '다스뵈이다'에서 김어준 총수가 이 영화를 다시 언급했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분명 낮게 평가된 영화라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복남...'은 김기영 영화 세계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화를 만든 장철수 감독이 김기영 사단에서 조연출로 오래 일했고, '김복남..'으로 장편 데뷔를 했으니, 장철수 감독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면서, 그가 배운 김기영 영화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복남...'은 여성주의 영화, 여성영화,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근본으로 보면 이 영화는 '스팔타쿠스'와 같다. 폭력과 억압, 차별에 저항하는 노예의 반란처럼,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자의 분노가 마침내 권력자 - 이 영화에서는 남성들, 시고모, 동네 할머니들 - 의 피를 부르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영화의 함의는 다양하다. 주인공 복남은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섬에서 살아 온 여성이다. 반면 해원은 어려서 고향 섬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세련된 도시 여성으로 성장한다. 두 여성은 어려서 가장 가까운 동무로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30년 넘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다. 물론 해원은 복남의 편지를 무시하고, 고향에 관한 기억도 그리 애틋하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가 곤란하게 되면서 복남의 호소에 응답한다.
해원은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지지만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해원이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는 상황은 한국노동자의 열악한 고용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여성노동자로서의 해원이 곧바로 사회적 약자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해원이 해고당하는 원인이 되는 사건을 보면, 해원은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냉정하고 모질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해원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겸손함,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것은 해원과 복남의 어린 시절 모습이 교차 편집되면서 보여주는 장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어려서의 해원은 복남과 사이좋은 친구이고, 서로에게 따뜻한 동무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성인 해원은 쌀쌀하고 냉정한 인물이다. 그는 전세금을 대출받으러 온 할머니 - 폐지 수레를 끌고 온 것으로 보아 혼자 가난하게 사는 할머니다 - 에게 3천만원이 아닌, 2천만원까지만 대출이 된다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해원의 옆자리에 있던 후배가 할머니가 바라는대로 3천만원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해원은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에 화장실에서 누군가 문을 잠그고 나가서 해원은 몹시 고생하며 화장실을 탈출하는데, 해원은 후배의 뺨을 때리지만, 정작 범인은 청소부 아주머니였다. 해원이 같은 여성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그녀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만, 해원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도시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 없이 홀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원은 여성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운전하다 보게 되는데, 사건의 목격자로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지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는 피해 여성이 남성 폭력배들에게 잔인하게 폭행당해 결국 살해당한 사진을 보면서도 끔찍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목격자로 지목된 것을 귀찮아 하고, 이런 사건에 엮이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경찰의 잘못으로 해원은 범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고, 협박을 받게 되면서 불안은 더욱 커진다. 그런 점에서 해원도 피해자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해원은 복남이 바라는대로 고향을 방문한다. 회사에서 사고를 친(?) 것 때문에 강제로 휴직을 하게 되고, 폭력배들이 찾아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기에, 한동안 서울을 떠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해원의 고향인 '무도'는 작은 섬이다. 하루에 배가 한 번만 들어오는 곳이고, 섬에 사는 사람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섬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이며 복남의 딸 연희가 유일한 어린이다.
무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배를 모는 선장도 알고 보니 해원의 어릴 때 친구였다. 해원과 복남의 고향이 '섬'이라는 건 그 자체로 상징이다. '섬'은 육지에서 떨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는 지리적 조건이며,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해원은 어려서 섬을 떠난 뒤, 처음 섬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으로 보면 약 20년 이상이 흐른 뒤로 보인다. 그럼에도 마을에 사는 노인 할머니들은 해원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섬에는 여섯 명 정도의 할머니와 복남, 복남의 딸 연희, 복남의 남편 만종, 시동생 철종, 노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고, 섬 사람들의 일상이지만, 이 섬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복남에게 지옥이다. 모든 사람들이 복남을 괴롭히고, 착취하며,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긴다. 복남의 남편은 만종이지만, 만종이 외출하면 시동생 철종이 복남을 성폭행하고, 육지에서 성매매 여성을 데려온 만종은 복남 앞에서 성관계를 하는 막장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드러나는 복남의 과거는 더욱 잔혹하다. 복남은 10년 전에 섬의 남자들 몇 명에게 윤간을 당하고, 연희를 낳았다. 따라서 연희가 어떤 남자의 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복남의 남편 만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복남이 매우 필요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만종은 복남을 아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노예이자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생각한다. 만종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남을 폭행하고, 욕설과 무시를 드러내놓고 한다. 게다가 딸 연희가 자기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만종은 딸까지도 성추행을 하고, 복남은 이걸 알고는 연희와 함께 섬을 탈출할 결심을 굳힌다.
서울에서 온 해원도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된다. 복남의 시동생 철종은 끊임없이 해원을 강간하려 한다. 섬의 남자들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성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동등한 인간이 아닌, 2등 인간, 하인, 노예, 불가촉천민으로 대하며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이자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으로만 상대한다.
복남은 딸 연희를 데리고 섬을 탈출하려 하지만, 배의 주인도 섬의 남자들과 한편이며, 과거 복남을 윤간한 남자 가운데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복남에게서 돈을 받고도 시간을 끌어 결국 복남이 만종에게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드려 맞고, 딸 연희는 만종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살해한다. 연희의 죽음을 두고도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경찰도 섬사람들과 친한 사람이고, 만종이 연희가 죽였다고 모함하면서 뇌물을 주고 사건을 수습한다.
복남은 사랑하는 딸 연희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걸 지켜봤고, 남편을 비롯해 섬의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며 복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경찰은 그런 섬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하는 걸 지켜보면서, 거짓과 위선,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의 행위에 절망하고 치를 떤다.
영화 후반으로 가면서, 복남이 변하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내용이 펼쳐진다. 뜨거운 한여름, 감자를 캐는 시기니까 '하지감자'라고 하면 6월 말에 해당한다. 햇볕이 뜨겁고, 온도도 높아서 그늘 없는 밭에서 일하다보면 탈진해서 쓰러질 지경인데, 마을 할머니들은 그늘에 앉아 쉬는데, 복남이는 혼자 감자를 부지런히 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새하얗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조선낫을 집어들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다가간다. 복남은 '해를 바라봤는데, 해가 말을 한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낫으로 할머니들을 찍어 살해한다. 복남이는 미친 것일까. 복남은 시고모를 벼랑으로 몰아 스스로 떨어져 죽게 만들고, 시동생 철종의 목을 잘라 나무에 얹어놓고, 육지에서 돌아온 만종과 배의 주인 득수를 차례로 살해한다. 해원은 겨우 육지로 탈출해 경찰을 찾아가는데, 복남이 배를 불러 육지로 해원을 따라온다. 흰색 원피스를 입고 화장까지 한 복남은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이 멀쩡하다. 복남이 해원을 끝까지 쫓아가 죽이려는 것은, 그렇게 믿었던 해원이 복남을 배신하고, 무시했으며, 섬사람들과 같은 입장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즉, 해원은 도시에서는 피해자였지만, 섬에서는 가해자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것도 한때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 복남조차도 이기적인 태도로 외면한 것이다.
복남은 섬에 찾아왔던 경찰을 살해하고, 경찰서에 있던 해원까지 죽이려 한다. 이 과정에서 복남은 정신을 차린 경찰이 쏜 총을 맞고, 해원과 몸싸움을 하다 부러진 리코더에 목이 찔려 죽는다. 리코더는 해원과 복남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물로, 어렸을 때 해원과 복남은 리코더를 불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해원이 리코더를 더 잘 불었다. 리코더가 부러진 것, 부러진 리코더가 무기가 되어 결국 복남이 죽는 것은, 해원과 복남의 우정과 운명이 엇갈리는 것을 상징한다.
해원도 마음 속에 늘 잊지 않고 있는 사건이 있는데, 복남이 여러 남자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 죄의식이 있었다. 해원과 복남이 섬에서 생활할 때,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몰려다니며 해원을 성추행하고, 복남이 해원을 지키려고 남자아이들과 싸우는 틈에 해원은 혼자 도망한다. 그리고 다시 복남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보게 되는 장면은, 남자아이들이 복남이를 건드리는 장면이었고, 이 사건 이후 해원은 서울로 떠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복남은 결국 그 남자아이들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것이다.
복남은 단 한번도 해원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이 섬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도 외면하고 무시했던 해원이었지만, 섬을 찾아온 해원을 반갑게 맞이한 복남은, 해원을 여전히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해원은 복남이와의 추억은 있지만, 복남처럼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릴적 친구가 죽이고 싶은 대상으로 바뀌고, 처절한 몸싸움 끝에 한 친구가 죽는 결말을 보면, 이 영화는 '여성영화'나 '페미니즘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은, 전형적인 스릴러의 서사를 보여주며, 주인공이 여성인 것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면서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도 약하기에 극에서 처절한 설정을 이끌어가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이 학대당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단지 '영화'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 정치적 범위로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그런 면에서 '여성영화'로 봐도 좋다.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지만, 우리 사회에서 '복남'은 어디에나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많은 복남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남성들의 폭력과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성적 대상화로 상처받다가 어느 날,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이 말을 하는 걸 듣게 되는 순간, 가해자 남성들은 시퍼런 낫에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가까이 있는 '복남'이 고통당하고 있는지,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눈여겨 찾아보고,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가 '복남'을 만들고, 결국 남성들 자신의 목을 따게 만드는 역겨운 제도라는 걸 눈치채고 바꿔야 한다. 이 영화는 젠더의 문제이자 권력의 문제를 다룬 영화로,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내재한 영화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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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메라>의 아무도 없음과 누구도 아님
얼핏 <행복한 라짜로>에 비해 계급성에 대한 고찰은 덜 두드러지고 로맨스 / 로드 무비의 모험적 속성으로 약간의 노선 변경을 감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서늘하고 직관적인 대비는 여전히 빛난다. 예를 들면 감독의 언니 알바 로르바케르가 연기한 부자 수집가 스파르타코의 대사 같은 것들.
더러운 옷을 입고 도굴꾼인 척 하지만 당신 본질은 그게 아냐. 저들을 봐. 자기가 예술품을 밀매하는 약탈꾼인 줄 알지만 사실 거대한 기계의 부속일 뿐이야. 우리 몸종들이지. 언젠가 완전히 녹슬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거야.
도굴로 먹고 사는 가난한 시골의 톰바롤리 친구들은 우연찮게 찾은 ‘진짜 보물’로 부자들의 유람선에 오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스파르타코의 저주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피로의 삼촌이 괭이를 빌려갈 때 “일만 하다 돌아버렸다”며 노인을 조롱하고 박대한 바 있다. 이 장면은 도시로부터 침투한 자본과 공장의 오염에 밀려나고 자리를 뺏긴 채, 전통적인 육체노동을 경시하며 한 탕을 노리는 80년대 이탈리아 지방 청년들의 세태를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전 세대 노인들에 비해 훨씬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됐지만, 바라던 대로 졸부가 되는 데엔 결론적으로 실패하는 젊은이들(애초에 그것은 아르투가 찾아준 기회일 뿐이었으니). 결국 노인의 운명이나 자신의 운명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단 걸 검은 머리의 에트루리아 후손들은 모르고, 오만한 금발의 스파르타코는 알았다.
에트루리아의 동물, 풍요, 번성의 여신 키벨레 상으로 인해 톰바롤리도, 스파르타코도 일확천금의 기회를 쥐지만 돌연 환멸을 느낀 아르투는 “인간이 보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야“라며 상의 얼굴 부분을 바다로 던져버리고 만다. 과거에 얽매인 그는 잃어버린 연인 베니아미나와 곧 잃어버릴 키벨레의 얼굴을 동일시한지 이미 오래다. 한순간에 절망한 피로와 친구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아우성이지만 스파르타코만은 단말마처럼 숨을 들이킨 후 가라앉는 상을 바라보며 오히려 살며시 웃고 있다. 이천 년 넘게 땅 속에 있었고 이제 일부를 영영 유실한 여신상은 영원히 얼굴 없는 아무개, ‘누구도’ 될 수 있고 ‘아무도’ 아닌 상에 머무를 수 있다. 그 편이 ‘더 낫다’는 건 아르투에겐 고대의 예술을 향한 본능적 감각이었고, 스파르타코에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업가로서의 이성적 판단일 테다.
이쪽과 저쪽. 지상과 지하. 아르투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꿈속 저승과 그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이승. 배 위의 부자를 위해 일하는 큐레이터들과 산 아래 동굴의 도굴꾼들. 아르투가 수맥을 찾을 때 쓰는 Y자의 나뭇가지와, 이탈리아가 “사람이 머리부터 거꾸로 꽂힌 것 같다”고 웃어댄 나무의 수형(Y자를 반대로 꽂아둔 듯한).
플로라 부인은 폐쇄된 기차역에서 “이쪽은 시골, 저쪽은 도시”라고 반대 방향을 가리켰지만, 실상 불행과 빈곤은 언제라도 구분 없이 공평하게 찾아들며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는 않다. <행복한 라짜로>의 귀족 부인이 과거에 가둬둔 자기 소유의 소작농들을 바라보며 “나는 저들을 착취하고 저들은 가장 약한 소년(라짜로)을 착취한다”고 말했듯이. 반세기 후 그의 아들 탄크레디 역시 귀족 집안의 부와 명예를 이어받지 못하고 문서 몇 장에 집안 땅을 모두 뺏겨 도시 빈민이 되었듯이.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패전했으며 기원전부터 이어진 에트루리아 문명도 로마에 흡수됐다. 파비아나가 장난스레 부르짖은 “통일 이탈리아”를 구축하기 위해 지역 특색의 문화와 언어는 통제되고 소실되며 가치를 잃는다. 과거의 영광은 빛바래고 외부 자본에 의해 싸구려 ’평민의 일상품‘이라며 멸시받는다. 아르투 일생의 마지막 도굴에서 먼저 사금을 찾아낸 젊은이가 이탈리아인이 아니라 아르투와 같은 이방인(아마도 동유럽의 언어를 쓰는)이었던 것처럼, 주인 아닌 자들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더 빨리 알아보고 정작 주인된 이탈리아 인들은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해 외부의 도움을 빌려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이것이 에트루리아인들이 남긴 무덤 위에서 뛰놀며 자랐다는 알리체 로르와커가 애수를 품고 조망한 이야기의 첫 번째 골자다.
여기저기 평을 읽다가 이탈리아라는 인물 자체를 그냥 싫어하거나, (그렇게 말하긴 아무래도 너무 여혐적이었는지) 아르투가 이탈리아와 호감을 나누는 관계가 되는 게 거부감이 든다는 반응을 꽤 많이 보았다. 나도 첫 관람 때는 이입하기 힘든 인물이란 인상 정도는 받았지만,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싫어했단 점에서 오히려 갑자기 흥미가 생기고 복잡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아르투가 가진 매력의 대부분은 삶에 전혀 집착하지 않는 듯한, 덤덤하고 버석버석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이 범상치 않은 초연함에 자꾸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삶의 미련과 생동감을 불어넣고야 마는 이탈리아를 대번에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베니아미아란 과거의 사랑이 너무 선명히 버티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강력한 순정을 가진 아르투에게도 거리낌 없이 성큼성큼 접근하는 (아이 둘 둔) 여자라는 점, 푼수 같기도 당돌하기도 한 성격과 눈치 보지 않는 제멋대로인 면까지. 누군가는 이탈리아를 무척 피하고 싶은 여자, 대책 없이 해맑은 사람으로 기억할 게 뻔하다.
하지만 이 실패한 사랑의 시작을 이탈리아의 시점에서 다시 쓴다면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초목이 우거진 걸 빼곤 좋아할 수 없었던 고향을 떠나, 아버지가 다를지도 모르는 두 아이를 낳고, 그다지 잘할 생각도 없는 노래를 배우는 체하며 딸을 잃고 정신 나간 늙은 여자의 집에 입성해 아이들을 숨겨 키우고, 결국 들켜서 쫓겨났지만 굴하지 않고 같은 마을의 버려진 역을 고치고 꾸며 제 살 곳을 마련하고 같은 처지의 여자들을 불러 모은다. 이 영화는 아르투의 입장에서 보면 방황하고 회피하며 끝내 치유받지 못하는 여정에 관한 비극적 로드무비지만, 이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태어난 고향으로부터 유리된/쫓겨난 이가 끝끝내 자기만의 새 집, 새 고향을 일구어내고 새 가족을 만드는 일종의 개척자 영웅 서사다.
고향에 자카란다 나무가 많았다는 언급이나, 라틴 또는 아프리칸계 혼혈로 추정되는 외모의 아이들 콜롬비나와 치릴로의 외모로 미루어보아 그가 떠나온 고향도 어쩌면 타국일지 모른다. 혹은 포르투갈, 멀게는 남미까지도 떠돌며 살아온 (아르투 못지않은) 방황의 시절이 있었을지도.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근거는 이탈리아가 확실히 ‘이방’의 인물에 끌려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음악 선생의 죽은 딸의 남자친구라는 영국인 - 보다도 그가 이방인이라는 점 그 자체, 그가 움막을 살기 좋게 꾸미는 능력, 언어적 소통에 서툴다는 점 등등 -을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그 남자는 짜증스럽게도 돌아왔다가 떠나고 찾아왔다가 버리고 가기를 반복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내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뿐인데도 이탈리아는 평정과 긍정을 유지하는 드문 사람이다. 아르투를 비롯한 톰바롤리 남자들이 별다른 직업도 없이 스파르타코의 탐욕에 기생하며 과거에 속박된 도굴꾼에 머무르고, 플로라 부인이 페르세포네를 잃은 데메테르처럼 정신을 놓고 딸에 집착할 때, 이탈리아는 홀로 현실을 책임지고 미래를 도모한다. 누구 못지않게 신산한 삶을 산 것처럼 보이는데 그에겐 과거가 별로 중요치 않은 듯도 하다.
영화 중반부쯤, 스파르타코의 조카 멜로디에가 돌연 제4의벽을 뚫고 나와 관객에게 “에트루리아 인들이 로마 제국에 흡수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엔 마초가 없었을 거래요”라고 말하고 에트루리아 민족은 모계 사회였다는 점을 피로에게 일러주는 재미난 순간이 있다.
이 서술은 영화 전반에 존재감을 행사하려 애쓰는 피로의 분투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 그처럼 마초가 되려 하는 근현대 이탈리아 남성들의 폭력적 문화를 - “여자가 오줌 눴을 때 모양이 동그랗다면 결혼하라고 했다”는 말에서 즉각 감지되는 ‘처녀성’에의 집착, 카니발에서 춤추는 이탈리아의 모습에 동해 ‘발가벗기자’고 달려드는 관습적 성희롱 등등 - 야릇한 방식으로 조롱하고 있다. 영화가 그 대신 가만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은 시끄럽고 하찮은 남성 조연들에 비해 훨씬 인상적인 방식으로 ’힘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여성 조연들이다.
빼앗긴 힘의 자리로 가장 먼저 소환되는 건 베니아미아의 어머니 플로라 부인의 기이한 권위다. 플로라는 딸 뿐인 집안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며 딸들과 제자를 함부로 대한다. 딸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낡은 집을 팔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지만 그는 집과 가구들을 팔지 못하게 하며 죽은 막내딸(베니아미나란 이름은 야곱이 요셉만큼 사랑한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인 베냐민에서 따왔을 게 분명하다)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버티기 위해 건강과 경제권 그리고 정신을 놓지 않는 것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막내딸의 연인이었던 아르투는 오페라 가수였던 플로라 앞에서 감히 담배를 피워도 되는 유일한 사람인데, 딸들은 ‘남자만/남자라서 가능하다’며 차별 대우에 대놓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사실 아르투가 대접받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베니아미나가 죽은 것을 부정하려는 플로라의 절박함에 군말 없이 동조하는 체라도 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후 스파르타코가 자기 직원들을 손짓 하나로 몸종처럼 부리는 모습에서도 플로라와 유사한 권위가 발견된다. 스파르타코란 이름을 여성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주로 이탈리아 남성형 이름에 붙이는 어미(-co)로 끝나는 점, 그 유명한 투쟁가 스파르타쿠스 또는 아테네를 이긴 스파르타의 군인들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란 점도 그의 특수한 위치성을 짐작케 한다. 그와 친지, 직원들이 전원 새하얀 금발 벽안을 가진 것은 그들이 토종 에트루리아 혈통이 아닌 역사적 침략자의 혈통이리란 사실을 의도적으로 암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가 일군 대안 가족의 그림을 통해 에트루리아의 모계 사회는 다시 한번 불려 나온다. 이탈리아가 ‘누구의 것도 아니며 모두의 것이기도 한’ (유적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의) 공간을 쓸만한 집으로 만들어내자 그처럼 아비 없는 자식들을 홀로 키우는 젊은 여자 친구들이 모여 거대한 양육 공동체를 이룬다. 아이도 남편도 없는 파비아나가 “짜증만 내고 지시만 하며 부려먹었“던 피로와 남자들을 떠나 여성과 아이뿐인 집에 합류한 결정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아서 집을 고치고 먹을 것을 구하고 자급자족 노동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탈리아의 모습은 앞서 ”가서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내. 뭐라도 하면서 노래를 불러“라며 온갖 가사노동을 시킨 플로라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만든다. 클래식하고 권위 있는 음악을 가르치면서도 육체가 깨어 있어야 소리가 잘 나온다고 강조하는 것은 젊은 시절 그가 직접 몸으로 배운 교훈 때문일 것이다. 플로라와 이탈리아에게 예술과 생활, 음악과 노동은 분리된 것이 아니며 이는 inestimable한 것을 기어이 estimate하겠다는 외지의 자본, 남성들이 추구하는 협소한 의미의 성공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미학이다. 버려진 기찻길 옆에서 일정한 소음을 만들어내는 노동은 그 자체로 저항 예술의 성격을 띠게 된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르투는 톰바롤리와 플로라 대신 이탈리아의 집을 찾아가며 처음으로 ‘다른 미래’를 꿈꾸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베니아미아의 망령을 그리워하며, 사람 대신 새 떼가 노니는 명계의 꿈과 망자들의 부름에 강렬히 사로잡혀 있는 운명이라 이탈리아가 마련해 준 현실 세계의 유토피아에 편히 머물지 못하고 떠나간다. 결국 부장품 하나 없이 제 발로 들어간 무덤에서 그는 비로소 진짜 웃음을 짓고 마음 저린 행복을 찾는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 도굴꾼의 재능이 발견되기 전까지 측정될 수 없는 것, 훼손할 수 없는 것들은 영영 보존될 것이다.
그가 묻힌 땅 위에서 플로라는 계속 베니아미나와 아르투를 기다릴 테지만, 이탈리아는 계속 꿋꿋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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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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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불안하다. '나'밖에 없던 세상에 갑자기 '세계'가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나와 세계의 간극을 인지하는 동시에 타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무언가가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거나, 친구와 나를 일치시키기도 한다.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어떤 감성을 가진 어른이 될지를 좌우한다.
학교폭력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가장 마음이 아픈 건 자아가 형성되는 이 시기에 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렸고, 그것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 뒤에는 트라우마가 남는다.
노래며 영화며 유행처럼 제목이 길다.
직관적이어서 한번에 이해할 수 있긴 하나 이제 사람들이 은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는 직관적인 듯 보이지만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하기는 어려웠다.
원제인 <All the Bright Places>를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로 번역한 건 <보니 앤 클라이드>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번역한 것과 비슷하겠다.
전형적인 하이틴 영화는 아니다.
하이틴 영화라 하면 축제 같은 데서 우연히 만난 청소년들이ㅡ이때 여학생이 모범생이고 남자에게 관심이 없거나, 남학생이 찐따 캐릭터로 무리에서 서열이 낮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ㅡ 어쩌다 보니 사랑에 빠지고, 어쩌다 보니 주변에서 모함하고, 어쩌다 보니 극복하지만, 대입이 그들을 가로막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난관을 다 극복한 후 해피엔딩.
매일 조깅을 하는 시어도어 핀치는 같은 학교 학생인 바이올렛 마키를 만난다.
바이올렛은 다리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기세다.
시어도어는 바이올렛을 잘 구슬려 다리에서 내려오게 한다.
바이올렛이 궁금해진 시어도어는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친해질 구상을 한다.
하이틴 영화의 상큼하고 기분좋은 부분들이다. 어른들에게서 보이는 질퍽한 욕망 같은 게 보이지 않으니까.
시어도어는 바이올렛의 상처를 본다. 교통사고로 언니를 잃고, 생존자에게서 보이는 죄책감 같은 것들.
시어도어는 마이애미의 아름다운 곳을 소개하는 숙제를 빌미로 바이올렛과 함께 한다.
각종 어려움에 봉착하나, 시어도어는 끈질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어도어는 굉장히 밝고 에너제틱한 친구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시어도어의 방에는 온갖 문구로 채워진 포스트잇이 가득하다.
학교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고 있지만 불성실하며, 학교에서는 '괴물'이라 불린다.
가끔 사라졌다 나타나는데, 시어도어의 친구들은 '원래 그렇다. 곧 돌아온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바이올렛도 시어도어의 어두운 면들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는 별일 아니라고 할 뿐이다.
이들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영상미에 빠지게 된다.
처음으로 갔던 '마이애미에서 가장 높은 곳'. 해발 300미터가 조금 넘는 언덕과 낡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 꽃과 호수, 낡은 오두막.
내가 선생이라면 그런 곳을 찾으라고 숙제를 내어주었을 것 같다.
아주 가까워진 두 사람. 하지만 학교에서 시어도어 핀치는 여전히 괴물이다.
바이올렛에게 핀치를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 남자애를 핀치가 패버리고, 또 숨어들어간다.
바이올렛은 핀치를 찾아 그의 집에 갔다가, 벽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을 본다.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버린 핀치.
바이올렛은 핀치로부터 위로를 받고 상처를 조금씩 치유했던 것처럼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핀치는 집안 살림을 다 부술 듯이 던지고는 집을 나가버린다. 그리고 또 사라진다.
그가 발견된 곳은 둘이 함께 뛰어들었던 호수.
지구 반대편으로 이어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그 호수에서 시어도어의 운동화와 옷이 발견된다.
말할 수 있는 상처들은 이미 어느 정도 극복한 상처일 것이다.
너무 아픈 것들은 차마 꺼내어 볼 수도 없어서 마음 속 어딘가에 숨겨두고 꽁꽁 얼려버린다. 다시는 꺼낼 수도 없게.
그래서 별 거 아닌 걸로 치부하기도 쉽다.
때로는 상처 많은 사람들이 더 밝아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의 상처를 돌보는 것이 두려워 남의 상처들을 대신 어루만진다.
그리고 우연히 타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였을 때 전속력으로 도주한다.
시어도어는 그런 인물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도 시어도어의 서사가 부족하다.
그의 우울과 불안과 폭력성을 대변해 줄 이야기가 없다.
시어도어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이제 나도 준비되었으니,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10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내내 위태하고 불안했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건 폭력적이다.
이런 이유로 우울하고, 혹은 이런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서사가 없을 때, 사회는 우울증 환자를 비난한다.
의지가 부족하다, 남들도 다 그만큼 힘들다, 너만 유난이다, 예민하다.
"깨어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시어도어는 깨어 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깨어 있는 게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저 깨어 있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진 힘을 다 쓰기도 한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하면, 친구의 자살 후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자살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빠지지 않고, 바이올렛은 시어도어와 함께 했던 여행을 발표하며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그와 함께한 여행의 궤적을 다시 한 번, 그것도 스스로 운전하여 따라간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눈부신 세상 끝까지, 너와 내가 함께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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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았지만 너무 아파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들이 있다.
아마 나는 다시 이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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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희생하는 엄마는 그만!
레다는 자식들을 두고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다. 그리스 휴양지에서 친절하게 맞이해주는 펜션 주인인 라일을 만나고 평온한 휴가를 보내려는데 그때 니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어디서 왔고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레다는 이탈리어 비교 문학 교수이면서 보스턴에서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니나의 딸이 실종이 되고 니나와 그녀의 가족은 큰 슬픔에 빠지지만 레타가 니나의 딸을 찾아 니나에게 데려다준다. 그리고 레타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의 레타는 두 딸에게도 놀아주지도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하느라 잘 챙겨주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을 회상하고 난 뒤 레타에게는 두 딸의 의미가 어떻게 다가왔을까?
레타에게 두 딸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게 아니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살아온 희생적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자식 상팔자라더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레타는 오로지 자신이 인정받는 논문을 쓰느라 두 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고 상처를 주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비교 문학 교수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녀가 쓴 논문이 인정을 받자 두 딸에게 사랑을 주지만 자신에게는 내연남이 있었고 남편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로 집을 나오면서 속이 시원했다고 한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 같이 느껴진 레타는 자유를 찾은 것이다. 그래도 두 딸은 20대 초 중반이 되었고 해수욕장에서 니나의 딸이 잃어버린 인형을 자신이 가져가면서 숨겨놓고 가끔씩 꺼내면서 인형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왠지 모르게 내가 느꼈던 것은 부모로서 자식들을 지키려고 하는 모성애가 없는 것을 인형을 통해 대리만족을 했었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인생을 자식들에게 바치지 않는 부모였던 레타에게 두 딸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자식들에게 희생하고 싶지 않은
레타의 심정을 보여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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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주말은 건강히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2월의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영화 <언차티드>의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콘텐츠'도 같이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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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언차티드>(NEW)
▶<언차티드>가 새롭게 2월 3주차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2월 18일~20일) 관객 수 25만 234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6만 5112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오랫동안 국내 박스오피스를 지켰던 '톰 홀랜드' 배우 주연의 차기작품입니다.
'스파이더맨'을 능가하는 새로운 액션연기로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인데요.
영화 <언차티드>는 세상을 바꿀 미지의 트레져를 제일 먼저 찾아야 하는 미션을 받은 '네이선'(톰 홀랜드 분)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위험천만한 새로운 도전과 선택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물입니다.
2위. <극장판 주술회전0>(▲9)
▶이번 주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극장판 주술회전0>입니다.
주말동안 (18일~20일) 주말 관객 수 9만 400명을 동원했고, 총 누적 관객 수는 14만 9843명입니다.
애니메이션 <극장판 주술회전0>의 개봉 이후 초반 흥행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평일 에는 영화 <언차티드>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했었는데요. 그만큼 할리우드의 대작과 견줄만큼의 흥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해 국내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켰던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처럼 흥행을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극장판 주술회전0>은 일본의 총 18부작의 연재 만화로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생기는 저주와 그것을 없애는 주술사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원작의 만화는 일본 현지에서 일본 코믹북 판매량 1위, 시리즈 누계 6000만부 판매를 돌파한 엄청난 인기 만화인만큼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만화입니다.
3위. <해적: 도깨비 깃발>(▼1)
▶주말 박스오피스 3위는 <해적: 도깨비 깃발>입니다.
같은 기간(18~20일)동안 주말 관객 수 3만 2775명을 동원했으며, 충 누적 관객 수는 127만 5109명입니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은 누적 관객 수 120만명을 돌파하며 서서히 박스오피스 순위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주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피그>등 유명 기대작들이 개봉 예정인만큼 박스오피스 상위권 유지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예상되네요.
▶씨네픽의 이번 주 88회 예측 이벤트는 2월 3주 차 박스오피스 스코어(관객 수)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언차티드> 박스오피스 스코어 결과는 어땠는지 다같이 확인해보도록 할게요!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영화 <언차티드>의 실제 관람객 연령과 성별에 따른 관람추이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실제 연령별/성별 관람추이를 참고하시면 30대의 남성 관객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제88회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언차티드>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한 주동안 참여한 씨네픽 유저들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 주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언차티드>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건 30대 남성(280,031명)과 20대 남성층(279,592명)이었습니다. 또한 <언차티드>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15%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언차티드>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과 우승 상금을 수상한 분에게 모두 축하와 감사의 말씀 전해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 89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위. <나일 강의 죽음>(▼3)
▶주말 박스오피스 4위는 <나일 강의 죽음>입니다.
주말동안 주말 관객 수 2만 9866명을 기록, 총 누적 관객 수는 20만 4764명을 기록했습니다.
전작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흥행(86만명)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스코어인데요. 아직 시간은 더 남아있지만 최총 스코어는 30만명쯤에서 그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5위. <킹메이커>(▼2)
▶ 주말 박스오피스 5위는 설경구, 이선균 주연의 <킹메이커>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2만 1402여명의 관객 수, 총 누적 관객 수는 75만 195명을 기록했습니다.
영화 <킹메이커> 또한 이번 주 할리우드 기대작들이 개봉함에 따라 박스오피스 상위권 유지는 힘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종 스코어는 80만명쯤에서 끝나지 않을까 예상이 되는데요. 과연 이번 주 박스오피스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북미박스오피스 1위. <언차티드(Uncharted)>
▶ 북미 박스오피스 1위 또한 <언차티드>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18~20일) 북미기준 $44,155,000 (한화 약 528억)의 엄청난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배우 '톰 홀랜드'는 북미박스오피스 3위에 오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나란히 북미박스오피스 1위와 3위의 작품의 주연배우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인기가 식지 않은 시점에서 이제는 할리우드의 엄청난 티켓파워를 보유한 '톰 홀랜드'의 <언차티드>의 흥행행보가 기대됩니다.
북미박스오피스 2위. <도그(Dog)>
▶ 북미 박스오피스 2위는 채닝 테이텀 주연의 영화 <Dog>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18~20일) 북미기준 $15,135,000 (한화 약 180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영화 <Dog>는 채닝 테이텀이 주연 배우이자 제작은 물론 공동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입니다.
'룰루'라는 군견을 죽은 조련사의 장례식에 제 날짜에 맞춰 데려가라는 임무를 받은 육군 레인저 대원과의 여행을 담은 로드무비 형식의 장르인데요. 영화는 참전의 후유증으로 PTSD를 겪는 주인공과 그의 곁을 동반하는 군견과의 우정과 코미디, 드라마를 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직 국내는 개봉일 미예정입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10> (2022년 2월 18일 ~ 2022년 2월 20일)
1. <언차티드> 4415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2. <도그> 1513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3.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720만 달러 (누적 7억 7014만 달러)
4. <나일 강의 죽음> 625만 달러 (누적 2498만 달러)
5. <잭에스 포에버> 524만 달러 (누적 4678만 달러)
6. <매리 미> 368만 달러 (누적 1680만 달러)
7. <씽2게더> 284만 달러 (누적 1억 4735만 달러)
8. <스크림> 195만 달러 (누적 7701만 달러)
9. <블랙라이트> 177만 달러 (누적 707만 달러)
10. <커스드> 172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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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씨네픽은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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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 다시 돌아올 필요가 있었을까?
매트릭스 시리즈의 4편인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개봉했습니다.
마지막 3편이 나오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들어지게 된건데요.
거의 완벽히 이야기의 결말이 지어진 시리즈에 더 할말이 있었을까요?
센세이셔널한 액션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과거 시리즈의 영광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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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ix Resurrection, the fourth part of the Matrix series, has been released.
After a long time, the last three films were released, and it was made again.
Was there anything else to say about the series that almost perfectly ended the story?
Can we continue the glory of the past series, where sensational action scenes were impressive?
Please check out the video for detailed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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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 메인 예고편
새끼 낳은 소도 돌보고, 지붕에 널어둔 도루묵도 걷어야 하고,
나무에 올라 감도 따고, 택시 타고 한글 배우러 시내도 나가야 하고.
강원도 삼척 어느 산속에서 혼자 사는 선녀님은 앉아서 쉴 틈이 없다.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한 선녀님이 또 한번 일을 냈다.
평생 산 하나 밖에 못 넘어 본 그녀가,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새집 짓기를 결심하는데…
또박또박 뚝딱뚝딱 오늘도 바쁜 선녀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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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드 가이즈 2> 1차 예고편
누가 배드 가이즈보다 BAD할까요? 바로 배드 걸즈입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2022년 액션 코미디 히트작 '배드 가이즈'의 새로운 챕터에서는, 한때 범죄의 달인이었던 동물 악당들이 '굿 가이즈'로 거듭난 후, 새로운 삶에서 신뢰와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은퇴 후 조용히 지내던 이들이, 여성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팀에 의해 '마지막 임무'에 끌려나오면서 새로운 모험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