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4-06-13 08:50:25
오묘하게 맛난 영화
영화 <프렌치 수프> 리뷰
* 대략적인 줄거리 포함.
영화 <프렌치 수프>는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미식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연출은 베트남계 프랑스 영화감독 트란 안 홍이 맡았다. 트란 안 홍은 장편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씨클로>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 <프렌치 수프>로 감독상을 받아 칸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선택을 받았다.
영화는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리틀 포레스트>처럼 음식이 만들어지는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채소가 가득한 정원, 요리에 쓰일 재료를 솜씨 좋게 채취하는 장면, 보랏빛으로 무성한 들꽃과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숲, 넘실대는 물살에 햇빛을 반사하며 흐르는 강물......
줄리엣 비노쉬(외제니 역)와 브누아 마지멜(도댕 역)은 각각 당대 최고의 요리사와 미식 연구가로 출연한다. “맛있고 좋은 요리를 발견하는 일은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일보다 인류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음식을 향한 도댕의 자부심. 급이 다른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 준비부터 요리 과정까지 모든 절차를 섬세히 다루며 두 인물의 심리와 미묘한 관계를 영화는 세심하게 담아낸다.
20년간 최고의 요리를 함께 탄생시킨 외제니와 도댕. 그들은 함께 요리를 만들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키워나갔다.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두 사람. 도댕은 기어이 외제니에게 청혼을 한다. “결혼은 코스 요리 중 디저트를 먼저 먹는 거와 같다.”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자유를 누리며 온전히 두 사람의 사랑이 깃든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 외제니는 요리사가 아닌 아내가 되기를 거절한다.
그녀가 쓰러져 눕게 되자, 도댕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도댕은 모든 정성으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외제니에게 맛보게 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고민하여 만든 최상의 음식은 지극한 사랑의 풀코스 선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행위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보다 더 강렬한 시적 표현이었다.
실제 부부였고 칸 영화제에서 각각 남녀 주연상을 받은 두 사람의 연기 호흡과 존재감은 화면에 빨려 들어가게 했다. 다만, 대화 중에 나오는 19세기 후반의 갖가지 프랑스 요리나 다양한 와인 브랜드만으로 맛이나 향취를 상상하기 어려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이나 원작인 만화로 보았으면 구글을 검색했으리라.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의 원제가 ‘The Taste of Things’라는 게 가슴에 와닿았다. 사물, 혹은 인생의 맛이 달콤(sweet)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쓰라린(bitter) 고통을 주기도 하지 않는가. 두 남녀 주인공의 운명이 그랬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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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10월 신작!
넷플릭스 10월! 신작 추천5편
백스피릿
10월1일 시즌1 공개
장르: 토크쇼, 다큐
크리에이터: 박희연, 이은경, 곽청아
출연: 백종원 등
술을 마실 땐 누구와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이 술자리의 호스트는 무려 주방의 지휘자 백종원
그가 각계각층의 셀럽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인생, 음식, 술에 대한 이야기를 안주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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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네임
10월15일 시즌1 공개
장르: 액션, 스릴러
출연: 한소희, 박희순, 안보연, 김상호 등
아빠를 잃었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반드시 내손으로 복수하겠노라고 딸은 결심한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방법은 상관없다 마약 조직의 언더커버가 되어
경찰에 잠입하는 것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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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길티
10월1일 공개
장르: 스릴러, 수사
감독: 앤트완 퓨콰
출연: 제이크 질렌할 등
911 전화 교환원으로 좌천된 경찰관
심각한 위험에 처한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를 구하기 위한 추적에 매달린다
수화기 너머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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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에 누군가 있다
10월6일 공개
장르: 호러
감독: 패트릭 브라이스
출연: 시드니 박, 테오도르 펠르랭, 에이자 쿠퍼 등
오즈번 고등학교에 다니는 마카니와 친구들을 덮친 공포
누군가가 학생들의 비밀을 폭로하고 그들을 죽이려 한다
가면에 가린 정체를 밝혀야 하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아무도 살아서 나갈 수 없다
9월29일 공개
장르: 미스터리, 공포
감독: 산티아고 멩기니
출연: 크리스티나 로들로, 마크 멘차카, 데이비드 피글리올리 등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에 밀입국한 멕시코 여성
허름한 클리블랜드 하숙집에 묵으면서 섬뜩한 환영에 시달린다
수상한 집주인, 불길한 울음소리, 알 수 없는 형체까지
이곳엔 무언가 있다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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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찼네
이 글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미천한 창작자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진출처:매일경제 TV
버젓이 방송에 나와 전세사기를 고백하는 것이 덤덤해진 시대가 와버렸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모은 돈으로 계약을 했을 집이었기에. 피해자에게 주어질 보상금 정도로 그들의 다친 마음에 밴드 하나 못 붙여줄 것은 뻔하디 뻔하다. 잡혀야 할 사람들은 잡히지 않고. 피해자들은 이 모든 사태에 괴로워하며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생긴다. 그뿐인가. 인생으로는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다 은행에 저당을 잡히고 들어왔을 집인데, 반드시 박혀 있어야만 했을 철근조차도 제대로 박혀있지 않단다. 어째서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내 이야기는 아니고 뉴스에서 나오는 남의 이야기이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한숨을 몰래 내쉬어 보기도 한다.
영화는 정확히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한국 사람이라면 폭발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온갖 미묘한 생각들과 서러움을 영리하게 이용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아파트의 역사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동산의 가격이 폭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자신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영화의 상황 속으로 순순히 빨려 들어간다.
덕분에 영화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이 모든 아파트를 날려버리고, 덩그러니 황궁 아파트만을 중심에 남겼을 때도. 관객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황궁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근 뒤 이므로.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가 영리하다 못해 섬뜩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두 번째 지점은 바로 입주민회의다.
남은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마음. 어떻게 보면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을 뿐, 위기 상황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진다 해서 욕할 수 없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입주민 회의라는 형식으로 빌어 귀로 전달한다. 모든 아파트가 무너지고 달랑 자신들의 집만 남은 상황이지만. 이 무심하면서도 일상에 착 달라붙어 있는 상황 덕에. 여태껏 드림팰리스 주민들에게 받아왔던 차별들에서 오는 서러움을 얘기하는 장면들 조차 낯설지 않다.
자신들이 받았던 차별들을 오롯이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도. 입주민이 아닌 다른 이방인들을 바퀴벌레라고까지 부르며 소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오지 않는다. 영화는 너무도 정확히 한국 사회가 집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있고. 또한 쓸데없이 정의로운 인물을 대놓고 앞장 세워 교훈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경험들도 함께 끌어올려 저 말도 맞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게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바퀴벌레 소탕 작전을 시작한다. 본인들은 그것이 자정작용이라 믿었고 자신들은 이제 이곳에서 행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난리 법석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뚝 서 있는 황궁 아파트만큼. 자신들도 그렇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아파트와 자신의 존망(Johnna 망함 아님)을 동일시한다.
사진출처:다음
아파트 주민들의 은은한 광기에 팔에 돋은 소름이 겨우 가라앉을 때가 되어서야. 그들이 간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게 한다. 바로 모든 닫힌 시스템은 부패한다는 것.
이대로만 가면 남들이 죽건 말건 영원히 안전할 것만 같던 황궁 아파트는 고인 물이 되기를 자처하더니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천천히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파트 단지를 커다란 고름주머니로 만드는 것도, 그러면서도 가장 지키려 애쓰는 사람도.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는 황궁 주민의 DNA가 전혀 없으며, 극우뇌를 가진 사람도 아닌 일명 "바퀴벌레"에 불과했지만. 주민들의 집을 향한 열망에 올라타, 실컷 가짜이면서도 진짜인 행세를 한다. 그것도 꽤나 훌륭하고 성공적으로.
어리바리했던 영탁이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로 변화하기까지 겪는 아주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정말 점진적으로. 하지만 이질감 하나 없이 절묘하게 이뤄낸다. 그 어떤 주민의 욕망보다도 강렬하면서 그 어떤 바퀴벌레보다도 맹렬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 애쓰는 모든 모습을 보면서. 이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은 끝이 없겠구나. 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디스토피아적이지만 너무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들었던 영화 전체에 비해, 마지막 부분은 누가 보아도 희망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라고 말해준다는 점은 통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뻔하게 헬기를 타고 온 구조대에 의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나, 눈물파티를 하려는 시도조차 없다는 점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모든 껍데기들은 황궁아파트와 함께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한다.
황궁 아파트는 망했지만(?) 영화 자체는 마치 황궁 아파트와 같았다. 건축물로 치자면 아낌없이 들어갔어야 할 철근들이 제자리에 굳건하게 박혀있고. 모든 것이 설계도대로 맞아떨어져서 자아내는 탄성도 영화 중간중간 가감 없이 흘러나올 만큼 훌륭했다. 모조리 쓰러진다 해도, 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듬직하게 제자리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이 영화만큼은,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차 있는 셈이다.
[이 글의 TMI]
1.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도 시간이 된다면 한국영화 빅 4에 관한 이야기를 쓸 것 같다.
2. 다음 주부터 휴가 아아아악!!!!
3. 휴가비 받은 걸로 일단 책부터 사봅니다.
#콘크리트유토피아 #엄태화 #최신영화 #영화리뷰 #브런치작가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 #김선영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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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고뇌와 성장
*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2022)
감독: 라이언 쿠글러
출연: 레티티아 라이트, 루피타 뇽오, 다나이 구리라, 안젤라 바셋, 윈스턴 듀크 등
장르: 액션, SF, 드라마
상영시간: 161분
개봉일: 2022.11.09
‘바스트 신이시여, 시간이 없어요.’
‘트찰라’의 병세가 악화되자 와칸다는 비상 국면을 맞이한다.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는 하나 뿐인 오빠를 살리고자 애쓰지만 엄마 ‘라몬다(안젤라 바셋)’는 ‘트찰라’가 선조들의 곁으로 떠났다는 말을 슬픔과 함께 전한다. 와칸다 국민들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가족을 잃은 ‘슈리’와 ‘라몬다’는 슬픔에 젖는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라몬다’가 여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강한 통치자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외부에서는 와칸다의 자원을 호시탐탐 노린다. 미국 정부는 비브라늄 채굴선을 보내 이를 탐하지만 탈로칸의 공격으로 제지 당하고, 이를 계기로 탈로칸의 국왕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비브라늄을 지키기 위해 와칸다에게 협력을 강요한다. ‘슈리’는 정부의 비브라늄 탐지기를 만든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손)’를 찾아 상황을 해결해 보려 하지만 탈로칸과의 오해가 불거지면서 와칸다는 다시 한 번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채드윅 보즈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블랙팬서’는 시리즈의 중심이 되어야 할 주인공을 잃었다. ‘채드윅 보즈먼’은 후속작 출연을 앞두고 있었지만 병세가 악화 되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제작진은 급히 각본을 전부 수정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주연 없이 조연들로만 구성된 작품으로 보일 가능성이 컸다. ‘슈리’와 ‘오코예’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캐릭터가 많지 않고,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등장하는 ‘아이언 하트’나 ‘네이머’는 아직 서사조차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블랙팬서’라는 타이틀을 걸고 가는 작품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블랙팬서’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그의 빈 자리를 느낄 새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선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죽음과 함께 시리즈에서 퇴장한 ‘채드윅 보즈먼’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속편이다. <블랙 위도우>나 <호크 아이> 같은 최근의 MCU 작품들이 전임자의 노고를 기리기는 커녕 세대교체만을 부각하면서 골수 팬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왔는데, 본작만큼은 전임자의 흔적을 빠르게 지우려 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트찰라’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슬픔의 감정을 끌고 간다. ‘트찰라’의 크나큰 존재감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셈이다. 누군가는 오프닝 시퀀스의 장례식 장면 이후 정적이 나올 때 그에 대한 추모를 마칠 수도 있고, 혹자는 ‘라몬다’가 ‘트찰라’의 상복을 태울 때, 그도 아니라면 모든 고뇌와 성장의 과정을 끝마친 후에 비로소 오빠를 보내줄 수 있게 된 ‘슈리’처럼 영화의 마지막까지 상실감을 끌어안은 채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극중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추모를 마치고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관객도 자유롭게 각자의 속도에 따라 천천히 그의 존재를 떠올리기도 하고, 추억 속으로 떠나 보내게 만든다. 중간중간 갑작스레 등장하는 개그 신들이 억지스럽게 흐름을 깨는 경향이 있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이 작품 전반을 감싸고 있어 ‘트찰라’에게 바치는 헌정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다.
‘트찰라’가 와칸다의 통치자로서 어깨에 지고 있던 무게는 ‘슈리’와 ‘라몬다’, ‘오코예’, ‘나키아’ 등 그의 곁을 지키던 여성 캐릭터들에게 자연스레 배분되었다. 여왕으로서 위기의 와칸다를 통치하게 된 ‘라몬다’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중으로 등장하며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연기해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다. 특히 국제 회의장에서 강경한 연설로 모두를 압도하는 장면과 ‘슈리’를 지키지 못한 ‘오코예’에게 울분을 터뜨리는 감정 연기는 압권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슈리’가 납치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오코예’의 눈물 또한 인상적이다. 우리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당시 핑거 스냅으로 ‘트찰라’가 사라지던 순간 눈앞에서 주군을 잃은 ‘오코예’의 처참한 표정을 기억한다. ‘폐하’를 연신 외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오코예’는 이제 ‘슈리’마저 보호하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에 왕실을 수호하는 장군으로서 자괴감과 패배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작품의 핵심이 되는 캐릭터는 ‘트찰라’의 유일한 여동생 ‘슈리’다. ‘슈리’는 오빠가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장난기와 유쾌함이 가득한 영락 없는 십 대 소녀였고, 어린 천재 과학자로서 전장의 뒤편에서 와칸다의 기술을 책임 지는 존재였다. 자신의 기술로 오빠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끝내 살려내지 못했고, 아들의 상복을 태우며 슬픔을 털어내고자 했던 엄마와 달리 상실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놓인 ‘슈리’는 더욱 벼랑 끝으로 몰린다. 미국 정부로부터 비브라늄을 지키기 위해 협력을 요구하는 ‘네이머’의 압박, 자신 때문에 쫓기는 신세에 처한 ‘리리 윌리엄스’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결국 탈로칸이 와칸다를 치는 바람에 벌어진 어머니의 참극까지. 심해에 숨겨진 탈로칸의 아름다운 광경을 본 뒤로 탈로칸에 대한 마음이 우호적으로 변하던 찰나 눈앞에서 ‘라몬다’를 수장시킨 ‘네이머’에게 극한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네이머’에 의해 각성한 ‘슈리’의 행보는 여러 편에 걸쳐 ‘트찰라’가 보여주었던 성장 서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폭탄 테러로 아버지를 잃고 ‘버키’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며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던 ‘트찰라’의 모습은 어머니를 잃은 울분으로 탈로칸과의 전쟁을 단행하는 ‘슈리’의 거침없는 태도는 굉장히 비슷하다. ‘네이머’를 쓰러뜨리기 위해 인공 허브를 만들어 스스로 ‘블랙팬서’가 되는 ‘슈리’는 의식을 통해 어머니나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눈앞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에릭 킬몽거’였다. 복수심에 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에릭 킬몽거’처럼 ‘슈리’ 역시 ‘네이머’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에 ‘블랙팬서’가 되었기에 그의 모습에서 한때 오빠의 자리를 위협했던 자가 비춰졌다는 방증이었다. 처음부터 좋은 통치자가 되고자 했던 ‘트찰라’와 달리 ‘슈리’는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하지만 끝내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며 오빠와 같은 선택을 내린다. ‘블랙팬서’가 되고자 했던 목적은 ‘트찰라’와 달랐으나 결과적으로 동일한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에서 남매의 성장 서사는 닮았으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슈리’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 놓이지만 고뇌 끝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감정적인 극복을 이뤄내는 과정을 그리며 그의 성장사를 심도 있게 표현했다.
‘트찰라’의 빈 자리가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단지 그의 공백만으로 작품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비해 액션의 비중이 부족하고, 액션 연출 스케일이 작고 미흡한 부분이 많다. 탈로칸과 와칸다의 전쟁이라는 소재만으로 충분히 스릴감 넘치는 장면을 그릴 만도 한데, 역대 마블 영화 중 손꼽힐 정도로 전투신의 재미가 떨어진다. 특히 해상에서 펼쳐지는 후반부 액션신은 근접샷 위주로 구성된 탓인지 긴장감이 떨어지고, 감탄을 자아낼 만한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내년에 공개될 마블의 드라마 ‘아이언하트’를 위한 끼워팔기가 의심되는 ‘리리 윌리엄스’의 등장도 뜬금없기만 하다. 억지스럽게 등장 명분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이언하트’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이 진행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리리 윌리엄스’가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개그신은 특히 엄숙한 분위기를 끌고 가던 작품의 흐름을 해치기만 했다. 제2의 ‘아이언맨’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중요한 캐릭터이지만 액션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뚜렷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훌륭한 치고 빠지기를 보여주었던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데뷔전과 크게 비교가 되었다.
이야기 외적으로는 분명 단점들이 존재하지만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담긴 스토리만큼은 훌륭하다. ‘트찰라’는 떠났지만 그럼에도 와칸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직 남아있다. 탈로칸과 와칸다의 전쟁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마야 문명을 대표하는 ‘탈로칸’과 아프리카 문명에서 비롯된 ‘와칸다’의 뿌리에는 분명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의 핍박이 존재한다. ‘네이머’는 어머니의 터전을 빼앗은 서구 세력을, 와칸다의 여왕 ‘라몬다’는 비브라늄을 강탈해 더 강한 무기를 만들 생각 밖에 없는 미국 정부를 증오한다. 즉, 와칸다와 탈로칸은 같은 적을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량한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을 치른 것은 같은 상대에 맞서 협력해야 할 와칸다와 탈로칸이다. 이는 서양의 강대국이 약소국을 멋대로 휘젓는 사이 소수자 문명 내에서 각종 분쟁이 벌어지는 역사와 크게 닮았다. 피해를 준 대상은 따로 있지만, 다치고 피를 흘리는 것은 결국 약자들이다. ‘네이머’와 ‘탈로칸’의 등장은 단순히 ‘와칸다’의 반동 인물로서 존재하기 위함이 아닌 서구 문명 사이에 끼인 소수자 문명의 국가들이 불필요한 싸움으로 고통받았다는 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오락적인 면모는 줄어들었을 지 몰라도 마블은 ‘블랙팬서’ 시리즈를 통해 ‘트찰라’를 추모하는 것은 물론 연작이 진행되어야 할 당위성을 메시지를 통해 전파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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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과 매국 사이 애매한 줄타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국 군벌, 마적, 일본군과 일본 경관, 조선인과 독립군이 엉켜 살아가는 1920년대 간도. 그곳에 한 남자가 도착한다. 일본 군복을 벗고 죽기 위해 간도로 향한 '이윤'(김남길). 10여 년 전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전했던 그는 작전 당시 자기 때문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의병장 '최충수'(유재명)를 만나 목숨으로 사죄하려 한다. 유일한 사랑 '남희신(서현)'도, 친구이자 한때 주인님 '이광일'(이현욱)과의 인연도 뒤로 한 채.
하지만 이윤은 조금씩 생각을 고쳐 먹는다. 경성에서 볼 때는 기회의 땅이었던 간도가 무법천지의 땅이었기 때문. 자기를 죽이러 온 총잡이 '언년이'(이호정)를 만나고, 마적 떼의 습격을 받아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는 조선인을 보면서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생겼음을 깨닫는다. 독립군도, 마적도 아닌 도적이 되어 어떻게든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만주 웨스턴의 부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웨스턴은 할리우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돼 관객과 만났기 때문.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은 미국 정통 서부극을 대신할 정도로 인기였다. 원주민과 개척지라는 조건이 미국과 같은 호주에서는 '미트파이 웨스턴'이 제작됐다. 심지어 소련에서도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레드 웨스턴'이 냉전 동안 인기를 모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 만주를 배경으로 중국군, 일본군, 독립군, 마적, 그리고 조선인이 얽힌 만주 웨스턴이 있다. 물론 본고장 미국에서도 서부극 인기가 시든만큼 만주 웨스턴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로 보기는 어렵다. 김지운 감독의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 이후 흥행한 사례도 많지 않다. 그나마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가 사극과 스파게티 웨스턴의 퓨전을 선보인 정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는 이처럼 보기 드문 만주 웨스턴의 명맥을 잇겠다고 선포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적: 칼의 소리>가 만주 웨스턴의 부흥을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장르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부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분에 충실한 액션
<도적: 칼의 소리>는 분명 반갑다. 본분에 충실하다. 만주 웨스턴은 철저히 오락적인 이유로 등장한 장르다. 국내에서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총격전과 기마 추격전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낳은 장르이기 때문. 즉, 황량한 배경에서 화끈한 액션과 볼거리만 보여주면 만주 웨스턴은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놈놈놈>만 해도 일제 강점기 간도라는 시공간을 빌려 주인공 3명의 캐릭터쇼로 승부를 보는 액션 활극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좋은 선례를 착실히 따라간다. 우선 각 인물별로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서부극에서 기대하는 볼거리를 충실히 보여준다. 일본군 출신 총잡이, 궁수, 호랑이 잡던 포수, 도끼 든 광대, 괴력의 거한, 암살자까지. 특징이 확실한 이들이 팀을 이뤄 싸우는 액션은 꽤 인상적이다. 물론 캐릭터 설정이 신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수위가 높고 각자의 역할이 잘 살아있다 보니 액션 보는 맛은 확실하다.
이에 더해 웨스턴 영화로서 갖출 것도 다 갖췄다. 총격전, 기마 추격전은 당연히 등장한다. 말 탄 도적이 기차를 쫓거나 총잡이들끼리 일 대 일로 총을 겨누는 클리셰도 빼먹지 않는다. 일본군과 독립군, 도적과 일본군, 도적과 마적 등 믿을 사람 없이 서로 싸우는 장면도 만주 웨스턴답다. 만주 웨스턴은 기본적으로 군상극인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액션 활극이기 때문.
나라가 아닌 사람을 지키다
시공간적 배경을 적극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눈길을 끈다. 사실 1920년대 간도는 피카레스크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최적화된 혼돈의 공간이자 시대다. 1920년대에 일제는 문화 통치를 통해 일본과 조선의 물지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추구했다. 자연히 해방 대신 자치를 요구하는 조선인이 늘었다. 간도라는 공간도 혼란스럽다. 중국 군벌, 일본군, 조선인과 독립군까지. 누구 하나 실질적인 행정력과 통제력을 지닌 주체가 없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변절자가 늘고 선악 구분이 무의미한 시공간적 배경에 걸맞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역사적 당위성에 회의감을 표한다. 한국인이라면 일제의 침탈을 막고, 일제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명제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다. 노비나 백정이었던 사람이 조선과 독립운동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나 구동매가 그러했듯이.
그래서 <도적: 칼의 소리>는 나라를 구한다는 추상적인 대의 대신 눈앞의 목표에 일신을 던진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대한 독립 대신 개인, 가족, 친구의 생존이 우선순위인 이들을 비춘다. 이윤이 대표적이다. 그는 시대적 대의와 개인의 욕망 중 항상 후자를 고른다. 그가 희신을 돕는 이유도 그저 사랑 때문이다.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여한 후 일본군에서 전역한 것도 민족 감정이 아닌 개인적인 죄책감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는 의병장이었던 최충수가 독립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언년이가 시니컬한 암살자가 된 이유, 더 나아가 그들이 도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독립군 대신 '도적(刀嚁)', 칼 휘두르는 소리로서 지켜야 할 사람들만 보호하자는 것. 또 이광일이 메인 빌런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영달을 위해 숙부도, 약혼자도, 오랜 친구도 일제에 팔아넘기거나 죽일 각오가 된 인물이니까. 이윤과는 정반대로.
장르와 역사의 충돌
하지만 <도적: 칼의 소리>의 스토리텔링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만주 웨스턴의 기본적인 한계를 깨려는 시도가 없기 때문이다. 대의 대신 생존을 택한 도적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만주 웨스턴의 묘미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만주 웨스턴의 선조 격인 스파게티 웨스턴은 선악 구분이 확실한 정통 서부극과 달리 군상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택지도 많았다. 도적을 독립군과 차별화하고, 난세에서 살아남는 민초로 그리고 싶었다면 굳이 독립군이 완벽한 선일 필요도 없었다. 독립군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인을 탄압한 '빈주 사건'처럼 독립군과 도적 간의 갈등을 강조할 수도 있었다. 마적과의 갈등, 이윤과 이광일의 개인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상상력을 펼칠 기회를 포기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타란티노가 보여준 배짱과 비슷한 용기는 없다. 독립군 대 일본군의 전형적인 구도를 답습한다. '십오만원탈취 사건', '간도참변', '훈춘 사건', '미쓰야 협정', '길회 철도 부설 반대 투쟁' 등 실제 사건을 변용한 대목은 선악구도를 강화한다. 마치 <봉오동 전투>를 보는 듯하다. 생존을 위한 사투도 알게 모르게 독립군 정신과 합쳐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도적들이 독립군보다 더 독립군스럽고, 일본군에게도 더 많은 피해를 준다.
그렇게 웨스턴 장르의 매력은 급감한다. 피카레스크적인 요소가 곁들여진 장르적 쾌감도,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서사의 매력과 개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스토리는 다른 길로 흘러 버린다. 이윤-이광일-남희신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윤과 희신의 사랑이 싹피는 멜로드라마가 메인 요리가 된다. 액션도 쾌감을 잃는다. 시퀀스만 떼어 놓고 보면 즐기기 충분하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미묘하게 어색함이 느껴진다.
틈으로 새어 나오는 완성도
장르와 스토리의 지향점이 충돌하는 사이로 부족한 짜임새도 노출된다. 우선 전반적으로 루즈하다. 액션 시퀀스와 대본에 문제가 있다. 액션씬의 경우 과하게 분량을 차지한다는 인상이 짙다. 장르 특성상 이해할 수 있지만, 흐름을 끊는 것은 사실이다. 대본의 경우 동어반복인 대사가 많다. 조금 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냈다면 1시간에 육박하는 각 에피소드 분량을 줄여서 긴장감을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도적: 칼의 소리>는 많은 넷플릭스 작품처럼 도전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 데서 만족해야 할 작품처럼 보인다. <고요의 바다>, <택배기사>, <승리호>처럼 과감한 장르 영화가 많아지는 가운데, 시도라는 의의를 넘어서서 어떻게 열매까지 딸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Poor 형편없음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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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호러영화야 서부영화야
각자의 머릿속에 믿고 보는 배우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김윤석 배우가 그에 속한다. <추격자>부터 <암수살인>까지 그 중후한 목소리가 너무 멋있다. 그리고 연기를 조금만 잘하나? 북한 사람부터 연변, 또 도박꾼에 액션 영화까지 가지각색으로 잘하니 그야말로 만능 배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김윤석 배우는 잘생겼지만, 할리우드에 마찬가지의 맥락을 가진 배우가 있으니 그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액션부터 멜로, 탐정까지 연기를 고루 잘하니 과연 할리우드의 김윤석이 어색하지 않다.
이런 그가 <모리타니안>에 이어 신작을 발표했다. 내가 좋아하는 커스틴 더스트와 제시 플레몬스와 합작해 서부극 영화에 출연했다. 올해만 해도 <더 스파이>에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까지 개봉 예정이거나 이미 했었어서 그야말로 소처럼 일한 셈이다. 내년에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온 매드니스>까지 나온다고 한다. 아마 그의 팬이라면 아마 눈호강 대잔치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 특히 이 작품에 대해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4편의 개봉 예정 및 이미 상영한 작품 중 가장 탁월한 것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아카데미나 칸의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윤석 배우의 필모그래피로 치면 <추격자>와도 같은, 그야말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작품이 된 것이다. 12월 1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하니 모바일 환경에서 볼 수 있는 분들의 시청을 권한다.
1) 진짜 호러영화인가요?
제목에 호러라고 적긴 했지만 사실 서부극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감독 제인 캠피온이 그동안 여성 서사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와 이 작품도 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이 작품엔 그런 것 없다. 완전 상마초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 영화라는 문화예술 매개체의 근본은 서부극 아닌가? '서부극'과 '마초'의 이미지로 연상되는 플롯이 어느 정도는 딱 알맞게 전개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완벽하게 전복된다.
2)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난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 생각한다. 전반부에 필의 동생 조지와 로즈가 결혼한다. 로즈에게는 어쩐지 병약한 아들이 있다. 피터다. 피터는 병약한 존재다. 필은 미망인이었던 로즈뿐만 아니라 피터까지 별로 안 좋아한다. 잘 씻지도, 꾸미지도 않는 필. 1)에서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르시스트인 필에게 여성이 끼어들 틈이란 없다. 근데 이런 성격이 나머지 세 인물과 잘 맞냐? 아니다. 이 인물의 부정교합에서 오는 성격 안 맞음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좌지우지한다.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시네마에 익숙한 사람들이 봤을 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졸릴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극장보다 태블릿 PC로 보는 쪽을 더 추천한다. 또 여러 떡밥을 점점 쫓아가며 하나하나 해소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놓치면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재생 바를 옮겼다 내렸다 할 수 있으니 극장보다 집에서 보는 게 이해가 더 될 거라고 생각한다.
3)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어떤가요?
훌륭하다. 일단 제시 플레먼스와 커스틴 던스트가 부부 역할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이 둘은 연인이라고 한다. 여기서 오는 리얼리티(?) 때문인지 형과 부인 사이에서 영리하게 줄 타는 동생 조지의 모습을 잘 살렸다. 또 커스틴 던스트도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극에서 필이 대놓고 로즈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근데 점점 로즈의 정신과 신체가 피폐해져 가는데 이를 보여주는 호연을 펼친다. 완전히 상상력에 의존한 고통 내면 연기인데,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값을 한다. 또 아들 피터 역을 맡은 배우도 후반부에서 내용이 뒤집히는데 주요한 키포인트가 되는 역할을 한다. 이 네 명의 기본적인 특색 외에 네 가지 인물이 각자 던지는 떡밥에서 온 부조화가 극의 서스펜스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를 구현할 만큼 치열한 기싸움을 연출한다.
4)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나는 혐오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필은 과부인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를 혐오하는 인물이다. 대놓고 싫어하는 것도 맞는데 한 가지로 일반화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혐오도 적용된다. 마초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여성 혐오와 피터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필. 이렇게 혐오를 내포하는 마음의 기제에 어떤 것이 깔려있는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후반부에 영화가 전복된다고 썼던 부분이 이 이유인데, 필이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가 '마초스러움'을 강요하는 시대에 대한 자격지심에서 왔다는 걸 이해한다면 필의 심리상태와 왜 네 인물이 끊임없이 어그러짐에도 한 가지 키워드로 밧줄처럼 엮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블랙 위도우>같이 약자에 위치에 있는 인물이 누군가를 구원해주는 줄거리도 아니고, <그린 북>같이 연대를 통해서 극복하는 스토리도 아니다. 그런데 제인 캠피온은 이 작품을 혐오의 비틀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은근하게 비꼬고 있다.
5) 플롯 외의 부분은 어떠한가요?
일단 영상미가 뛰어나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잘 어울리게 찍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시너지가 되는 부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의 설정상 야생동물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야 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음향은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너던 그린우드가 연출했는데 첼로를 통해서 극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1줄 요약 : 예술영화 축에 속하기 때문에 스릴러 장르영화 팬은 살짝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예술영화 맛만 보고 싶다면 좋은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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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은 킥, 영화는 후킹!
음식에서 킥(kick)은 기본적인 맛에 자극을 더해주면서 전체적인 요리의 풍미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영화에서 후킹(hooking)은 초반에 관객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는것을 의미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킥'이 중요하고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후킹'이 중요하죠.
오늘은 킥과 후킹 모두를 잡은 맛도리 영화들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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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을 목격한 맹인 침술사가 등장하는 스릴러
?Rabbitgumi 입니다!
오랜만에 개봉한 웰메이드 사극 올빼미가 개봉했어요.
다들 요즘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실텐데,
제 리뷰를 보시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해보세요!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스릴로 가득찬 사극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영상에서 알려드릴게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서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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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꼭 봐야 합니다. 연기파 배우 총출동. 미친 반전 [영화리뷰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영화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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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유니언> 메인 예고편
고대 흑마술을 연구하는 학자 '엘리'는 출산 준비를 위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 '아이비'는 딸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뭔지 모를 무거운 기류가 흐른다. 시간이 멈춘 듯 낡은 집은 봉인된 기억을 깨우고, '엘리' 앞에 죽은 자매 '카라'가 나타나면서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난다.
"우리, 이번엔 진짜 가족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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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 메인 예고편
INFORMATION 제목: 끝없음에 관하여(About Endlessness) 감독: 로이 안데르손 장르: 포에틱 시네마 수입/배급: 찬란 공동 제공: 소지섭, 51k 러닝타임: 76분 개봉: 2021년 12월 STORY 한 커플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도시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폐허가 된 도시다. 또 믿음을 잃은 한 남자가 있다. 춤을 추는 여자가 있다 그리고…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위로이자 인간이라는 우주에 관한 아름다운 연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