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06-30 23:46:40
그녀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이렇게 재구성하다니
블론드
나는 마릴린 먼로를 좋아한다. 세상은 그녀를 백치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녀의 백치 캐릭터는 일종의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자신에 대한 편견에 그녀를 맞춘 영리한 여자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블론드는 좀 심각하게 그녀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영화라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섹스 심볼로서의 그녀의 외면적 모습을 세간에 알려진 그녀의 가정사에 대한 소문, 스캔들에 대한 내용들을 버무린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도 일말의 사실 조차 포함시키지 않고, 수많은 소문들만을 가지고 그녀에 대한 영화를 만든 건 인권유린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스토리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티비 속 모습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대중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걸까. 그녀의 죽음이 미스터리했기에, 진실은 저멀리에 있어 그녀에 대한 소문은 무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이 헐리우드의 섹스 심볼이라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유린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마치 연예인의 열애 소식을 전하는 파파라치 컷이 국민의 알권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걸까 생각한다.
대중이란 존재는 개인의 작은 몰매함이 모여 당연시되기 쉬운 집단이다. 집단 사회에서 소문이란 위험하고 낯선 요소를 제외시켜 집단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한 개인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후자와 관련된 영화라고 본다.
다만,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이었고, 그녀와의 싱크로율은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속 그녀는 영리하기보다는 사랑에 목을 매는 어리버리한 백치 이미지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것인가 싶은 장면도 많았다. 분명 자기 주장을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남자를 홀리는 섹스 심볼로서의 그녀를 강조하며 남자에 목을 매는 그녀의 모습은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병적인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고착화된 이미지에 갇혀 캐릭터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짐작도 결국 소문에서 비롯되었기에 이 영화는 한 영화 배우의 인생을 보고싶은대로 보고 멋대로 재단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픽션이라는 것은 이런 영화의 단점을 어떻게든 가려보려는 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존 인물의 삶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서 내용의 큰 줄기를 제외한 그녀의 삶 속 디테일들을 모두 픽션으로 채워넣은 것부터가 영화의 미흡한 점을 드러낸 것이다. 보통 실존 인물의 영화에서 픽션으로 처리할 때 실제 삶을 사료에 근거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되, 미스터리로 남은 부분들을 일부 부분들을 픽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대부분이 픽션이고 실제에 가까운 내용은 그녀의 영화 배우로서의 스코어밖에 없다. 그만큼 그녀의 인생이 미스터리로 가득하다는 뜻이겠지만 그 정도의 미스터리라면, 그녀의 얼굴을 앞세워 영화를 만들지 않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biography도 아니고 픽션으로만 봐주기에도 한계가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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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적 토대 위에 구축한 새로운 세계, <언컷 젬스>
1. 들어가며
조쉬 사프디와 베니 사프디는 근래 들어 가장 주목받는 뉴욕 출신의 영화 연출가들이다. 사프디 형제의 주요 작품들에선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프디 형제는 사실적 질료를 가공하여 영화를 만든다. 각본에 자전적인 경험을 반영하기도 하고, 현장감을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이들의 영화에선 존 카사베츠나 다르덴 형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와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프디 형제는 이처럼 사실주의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기초를 교란하는 형식주의적인 스타일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의 영화를 전형적이지 않게 만들어준다.
형제의 공동 연출작 중에서는 2014년 개봉한 <헤븐 노우즈 왓(Heaven Knows What)>부터 본격적으로 전자 음악의 과도한 배치, 다채로운 질감의 조명을 활용하는 미장센 등 특유의 접근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굿타임(Good Time)>(2017)의 놀이 공원 시퀀스, 극 전개를 보조하는 전자 음악의 활용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넷플릭스(Netflix)가 배급을 맡은 <언컷 젬스(Uncut Gems)>(2019)는 숱한 단편과 굵직한 장편 등을 통해 쌓아 온 사프디 형제의 연출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이 글은 <언컷 젬스>에서 독특하게 드러나는 사프디 형제의 접근법을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언컷 젬스>는 사실주의적인 토대에 기초한 영화다. 각본, 촬영 장소 등을 살피면 현실적 질료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사프디 형제는 이러한 영화 요소들을 전형적인 방법으로 활용하지 않고, 어딘가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에 활용한다. 이들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넘어 현실과 허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적 현실을 창조해냈다. 이 글은 그러한 작업들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피는 시도이다.
2. <언컷 젬스>의 사실적 영화 요소
우선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형제의 자전적 요소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사프디 형제는 유대계 혈통이고, 뉴욕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보석상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경력이 있다. 사프디 형제는 영화의 주인공인 뉴욕에 몸담은 유대인 보석상 하워드 래트너 역에 아담 샌들러를 내세운다. 자전적 경험을 각본에 녹여냈다는 점은 이 영화를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이 영화처럼 자전적 요소를 살려 영화적 소재로 활용하는 방식은 사실성을 강화하는 접근법이다.
<언컷 젬스>에서 하워드 역을 맡은 아담 샌들러. 그는 실제로도 유대인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미국의 유명 배우인 아담 샌들러는 여러 비전문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하워드의 내연녀 역의 줄리아 폭스(Julia Fox)는 <언컷 젬스>가 첫 연기 데뷔작이며, 극 중 이름 줄리아는 실제 배우의 본명이기도 하다. 하워드가 운영하는 보석상 직원 중에 여시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배역은 실제 주얼리 관련업에 종사했던 막수드 아가자니(Maksud Agadjani)가 연기한다. 실제 삶의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비전문 배우의 기용은 사프디 형제의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 영화에서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가 주고받는 호흡으로 빚어내는 전개 양상은 극을 효과적으로 지탱하기도 한다.
한편 사프디 형제는 현장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형제가 각각 대학 시절부터 연출한 단편부터, 공동 장편 데뷔작인 <아빠의 천국(Daddy Longlegs)>(2009) 등을 거쳐 <언컷 젬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현실 속 뉴욕을 무대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냈다. 현장 촬영이 불러오는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다. 생생한 현장감을 스크린으로 구현할 수 있고, 실제 삶의 단면과 맞닿은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도 적합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도 하다. <언컷 젬스>는 정밀하게 세트로 구현된 하워드의 보석 가게를 제외하면, 전부 현장 로케이션을 바탕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그마저도 형제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실제 점포를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세트를 활용하게 되었다.
3. <언컷 젬스>의 세계: 사실적 토대 위에 구축한 새로운 세계
<언컷 젬스>에서 사프디 형제가 구축한 세계는 현실을 재료로 하지만, 온전한 현실 세계가 재현되는 곳이 아닌,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중계되는 전 NBA 선수 케빈 가넷(Kevin Garnett)의 농구 경기는 사프디 형제가 지은 각본이나 촬영한 필름들과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 경기가 영화에 사용되면서 서사가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스크린 외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과거의 일(실제 농구 경기)이 스크린 내부에서 현존하는 영화적 세계와 호응하게 된다. 즉, 이런 연출은 사프디 형제가 실험적인 시도에 목말라 있다는 걸 드러내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가넷은 이 영화에서 본인 역을 맡아 연기한다. 즉, 영화의 배역을 맡아 본인을 연기하는 가넷과 실제 선수로서의 가넷, 중계 속의 가넷이 공존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기용된 배우는 가넷 외에도 몇 명 더 있다. 영화에는 미국의 알앤비(R&B) 가수 위켄드(The Weeknd)도 본인 역으로 출연한다. 위켄드 역시 극 중 DSLR 카메라에 찍힌 사진 속의 위켄드, 자신을 연기하는 위켄드와 실제 가수 위켄드 사이를 기묘하게 유영하는 존재다. 래퍼 캐시 아웃(Ca$h Out)도 본인을 연기하며 하워드의 가게에서 보석류를 구매하고자 한다. 한편 하워드가 줄리아와 살던 아파트에 아들과 함께 찾아가는 신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들을 데리고 하워드는 옆집을 찾아가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때 하워드가 아들에게 옆집 이웃을 왕년에 유명한 작품에 출연했던 코미디 배우라고 소개한다. 출연진 정보에는 33F의 이웃으로만 나오는, 존 아모스(John Amos)라는 배우는 실제로 하워드가 영화에서 언급한 작품에 출연했다.[1] 존 아모스도 본인을 연기한 셈이고, 하워드의 대사는 허구적인 각본이 실제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가 이렇게 독특한 형태로 허물어진다.
<언컷 젬스>에서 본인 역을 맡은 농구 선수 케빈 가넷
이제 사프디 형제가 뉴욕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는 사실이 영화 내적으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록 도입부에 ‘2012년의 뉴욕’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명시하는 문구가 삽입되기는 하지만, 영화 자체는 뉴욕을 배경으로 삼는 수많은 영화들(<스파이더맨> 시리즈, 우디 앨런의 작품이나 각종 로맨스 영화 등)과 비교했을 때 공간 특성을 전혀 살리지 않는다. <언컷 젬스>에선 맨해튼(Manhattan)의 다이아몬드 지구(Diamond District)가 뉴욕이라는 장소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는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접하는 관객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힘든 요소들이다. 뉴욕 맨해튼에 자주 갔거나 그곳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관객은 논외로 하자.
결국, 피상적으로는 사프디 형제의 뉴욕이 현실을 옮겨놓은 듯한 현장감 있는 장소로 보일 수 있겠으나, 이들 영화의 뉴욕은 극도의 사실성 재현을 위한 공간보다는 극적 효과를 불러오는 서사적 도구로서 작용한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다. 게다가 잦은 비전문 배우의 기용 역시 얼핏 보기엔 영화를 통한 사실주의적 재현을 위한 노력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영화 속 비전문 배우는 앞서 언급했듯 대개 자신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연기에 활용할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각본에 구현된 캐릭터를 표현하는 작업을 수행 중인 셈이다. 이는 사프디 형제가 이전에 연출했던 <헤븐 노우즈 왓>의 홈즈(아리엘 홈즈)도, <굿타임>의 닉(베니 사프디)의 치료 의사도, <언컷 젬스>의 아가자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컷 젬스> 속 비전문 배우의 기용(특히 본인을 연기하게 하는 방식) 및 현실을 스크린에 재소환하는 방식을 다른 영화와 유사한 전형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언컷 젬스>의 가넷과 위켄드를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른 사람―예를 들어,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나 알앤비 가수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등―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극의 흐름이 달라지거나 영화를 지탱하는 요소가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결국, 저들은 본인을 연기할지라도, 영화적 허구에 구속된 캐릭터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2] 그런데 허구의 인물을 연기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이 본인을 연기한다는―일종의 정체성에 관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넷의 실제 경기나 카메라에 찍힌 위켄드의 모습은 허구적 특성을 살려 연기하는 인물과 같은 영화에서 공존한다. 즉, 영화에 현존하는 인물들은 영화를 통한 현실의 사실적 재현의 주체도 아니고 허구적으로 표현된 내러티브에 종속된 도구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발현된다.
4. 나가며
현실과 허구라는 이분법으로는 <언컷 젬스> 속 등장인물이 자리 잡은 뉴욕의 특성을 규정할 수 없다. 즉, 이런 모호한 인물들이 유영하는 사프디 형제의 뒤틀린 뉴욕은 전통적인 유형으로 범주화하기엔 상당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사프디 형제의 뉴욕은 뉴욕이지만 뉴욕의 특성이라고는 딱히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영화 서사를 위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가넷이나 위켄드는 본인을 연기하는데, 이는 실제 현실에서의 본인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지만, 이들이 각각 중계화면에서 경기를 뛰는 모습과 셀러브리티(Celebrity)로서 카메라에 찍힌 모습은 그 자체로 이들의 현실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사프디 형제는 영화 속 현실에 종종 허구적 요소를 첨가하여 스크린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전략을 보여준다. 단편 <검은 풍선(The Black Balloon)>(2012)에서 자의로 움직이는 풍선이 그러하고, <헤븐 노우즈 왓>에서 일리야(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던진 휴대폰이 폭죽이 되어 터지는 쇼트 편집을 예로 들 수 있다. <언컷 젬스>는 단순히 현실에 허구를 더하는 시도를 넘어선다. 사실적 요소들에 충실하고,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영화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은 현실과 허구를 모두 점유하는 기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사프디 형제는 활발히 작품 활동에 전념하는 재능 넘치는 젊은(두 사람 모두 아직 삼십 대 중반이다) 영화 연출자들이기 때문에, 추후 제작될 영화들에서 <언컷 젬스>의 독특한 접근을 어떤 방식으로 변주해나갈지 기대가 많이 된다. 이들의 영화 세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언컷 젬스>에 출연한 배우들의 모습. 좌측부터 줄리아 폭스, 케빈 가넷, 아담 샌들러, 위켄드
[1] 극 중 하워드는 코미디 영화 <구혼 작전(Coming To America)>(1988)과 텔레비전 시트콤 <굿 타임스(Good Times)>(1974-1979)를 언급한다.
[2]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오몽(J), 베르갈라(A), 마리(M), 베르네(M), 『영화미학』, 이용주 옮김, 동문선, 2003, pp.89-90.
사진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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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 혐오자의 로맨스 추천
우선 나란 사람의 성격을 1인칭 시점에서 묘사하자면, 본인은 로맨스가 스토리의 주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는 굳이 찾아서 보진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주 오글거리는 설정, 대사를 웬만하면 내 시간과 돈을 쓰면서 보진 않는다. 담백한 러브스토리는 가끔 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드문 케이스다. 그런데 간만에 굳이 찾아서 볼만한 로맨스 드라마를 찾은 것 같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후로 굳이 시간 내서 본 건 가히 오랜만이긴 하다. 그래서 써본다. 나같이 로맨스 문외한이 추천한다니 읽는 사람도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굉장히 신기하지만 뭐,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우선 써본다.
1. 은근히 골때리는 캐릭터의 향연
우선 남자주인공.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이 사람은 그렇게 대화가 물흐르듯이 진행되는 상대는 아니다. 보통 처음에 로맨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다가도 중간에 보다가 포기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선 플롯과 캐릭터가 예상 가능한데, 거기다가 오글거리는 대사까지 곁들여지면 갑자기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갑자기 잃어버리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우선 1화를 꽤 문제없이 보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가 뭔가 생각해봤더니 남자주인공이 모든 대화를 상황에 맞추어 융통성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텍스트 그대로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통해 원칙주의적인 것 같다가도 어떤 상황에서는 눈치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눈치 없는 척하는 건지 사람 놀리는 건지 알수 없는 화법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남자주인공이 맞닥뜨리는 모든 인물들과 하고 있는 어이없는 티키타카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이 남자주인공과 말을 나누는 상대들이 이 남자의 목석같은 반응에 미쳐버리려고 하는 모습도 꽤나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이 남자주인공 실제로 만나면 진짜 답답해 죽을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사람을 은근히 대놓고 놀리면서 말하는 사람으로도 보였다가, 아닌 것도 같았다가, 참 요주의 인물이다. 하지만 2화까지 보다보니, 그저 모든 일에 크게 놀라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에 반해 여자주인공은 꽤나 클리셰스러운가 했는데, 보다보니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주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모습이 그렇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싫음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여주, 아주 호감이었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의 직업이 영화번역가여서 더 호기심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내가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직업을 가진 여자주인공인데, 거기다가 살짝 지랄맞은 여자주인공이라니. 여자주인공의 파이터기질, 꽤 마음에 들었다.
2. 어이없는 대사의 흐름과 티키타카 잼
그 외, 다른 조연 인물들을 그리는 건조하고, 위트있는 드라마 속의 톤 앤 매너 아주 인상적이었다. 남녀주인공과 조연들의 시크한 듯하면서 자조적이기도 하면서 은근히 웃기는 유머 코드도 취향에 잘 맞았다. 약간 개그 코드가 덜한 멜로가 체질을 보는 느낌이었다. 결이 다르다면 다를 수도 있지만 약간 건조하고, 시크하고, 인물들 간의 티키타카가 아주 적절한 것이 이런 대사가 잘 맞아떨어질 때의 통쾌함을 어디에서 느꼈는지 생각해보니, 멜로가 체질을 볼 때였던 것 같다. 멜로가 체질은 작정하고 연극적인 요소도 있는 개그 드라마로 만든 것 같았다면, 이 드라마는 개그 코드가 주가 아니고, 조금 더 흔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의 대사 합이 찰떡같이 잘 맞는다. 마치, 멜로가 체질을 볼 때, 대사의 신박함에 놀라던 그 때의 통쾌함을 느낀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꼰대 교수에게 사과의 의미로 홍삼 세트를 가져가면서 교수의 집문을 두드리는 여주와 집 안의 교수 와이프의 대화 중에서
"(애교 가득한 표정으로)문 좀 열어주시면 안될까요?"
"(까칠하게)바쁘다고 전해달래요!"
"홍삼으로라도 어떻게 안될까요?"
"(냉큼 이거다 라는 듯이) 들어오라네요!!!"
"(어이없어하며)좀팽이, 홍삼은 좋은가 보지?"
라는 대화가 있었는데, 이 대화 속 마지막 대사, 좀팽이, 홍삼은 좋은가 보지? 라는 대사가 너무 적절하고 웃겨서 푸핫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Naver 사진출처
그리고 남주와 여주의 대화 중에서도
"덕분에 제 총도 찾았네요."
"그 총 가짜인 건 맞아요?"
"아유, 진짜면 안되죠, 한국에서 총기소지 불법이잖아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변태들도 많아서요."
"저 변태아닌데"
"(덤덤하게)그 쪽이라고는 안했는데"
"그럼 가짜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달린 거예요?"
"지금 저를 심문하시는 걸까요? 그리고 왜 변태예요?"
"제가요?"
"(아오 말 좀 알아듣자 하는 표정으로) 제가요."
"변태에요?"
"(답답하다는 듯이)아니, 아까 불법 그거 있잖아요.... 아 됐어요."
하는 부분에서도 나도 여주처럼 남주를 한없이 답답해 하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남주 캐릭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전개야 하면서 인물들을 티키타카를 바라만 보다가 계속 끄지도 못하고 어이없게 2화를 다 보게 되었다. 기묘하게도.
3. 이 드라마를 완주할 가능성?
로맨스 드라마를 보다가 시청자가 이탈하게 되는 경우는 남주와 여주가 외부적 상황 때문에 이어지지 못하고 갈등 상황에 처해 있는 고구마 상황을 견디다 못해서 스토리 감상을 하다가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고구마 상황이 아주 길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전개가 로맨스 드라마 치고 빠르게 이어진다면, 아마 꾸준히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초반 이야기는 꽤나 만족스럽게 봤기 때문에 기대를 걸어봄직한 드라마를 찾은 것 같아서 현재로서는 기분이 나쁘진 않다.
우선, 신세경, 임시완 배우에 대해서 호감이 있으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것 같다. 배우들 연기가 연기 1도 모르는 일반인이 봐도 자연스러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선정할 때, 대사를 중요시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보셔도 좋을 것 같다. 꽤 잔잔하게 티키타카가 찰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오글거리지 않으면서 잔잔한 드라마, 추리물처럼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감성적인 드라마 찾고 계신 분들이라면 정주행을 시도해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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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이 담은 세 가지 감정
종종 우리와 잘 모르는 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고 배우지만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일반 사람의 입장에서 그 변화를 크게 체감하기는 어렵다. 당장 먹고살기 바쁜 일상에 정치나 경제 소식이 중요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게 된다. 그런 역사의 변동 한가운데 있던 사람들이나 그 일을 알고 적극적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은 분노와 절망감 같은 감정을 느낀다.
영화 <서울의 봄>은 한국 역사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 담겼다. 1979년 12월 12일에 벌어진 군사 반란을 모티브로 그날 9시간에 걸쳐 벌어진 일을 보여주는 영화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다.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수장인 전두광(황정민)과 그의 동기 노태건(박해준)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한 그날 권력의 빈틈을 파고들어 나라의 통제권을 잡으려 한다. 그들은 참모총장인 정상호(이성민)에게 누명을 씌워 체포하려는 계획을 하면서 최대한 합법적인 절차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합법적 절차에 꼭 필요한 대통령 재가가 늦어지면서 참모총장을 먼저 체포하게 되고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날 밤에 벌어진 일들을 보여주며 여러 감정을 전달한다.
첫 번째 감정 - 전두광의 탐욕
이 영화 속 전두광은 욕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자신이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고 자신만의 조직을 꾸리게 되면서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탐욕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하나회라는 군내의 사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자신의 집에서 불을 끄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군사 반란의 방향으로 이끄는 장면은 그늘진 그의 얼굴이 주는 느낌처럼 서늘하게 느껴진다. 영화 내내 그의 행동엔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이 하려는 모든 일에 안될 것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그가 얼마나 권력을 탐했는지를 완전히 드러낸다.
전두광은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의 공백을 눈치채고 그 틈을 하나회 일원들로 채워나간다. 참모총장을 체포하고 대통령 최한규(정동환)의 재가를 받는 행위를 통해 그 체포 정당성을 얻으려는 과정에서 전두광은 그 하루 밤에 세 번이나 대통령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세 번째 방문 때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군인들을 모두 데려가 이제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대로 되어 갈 것임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가 가장 자신의 탐욕을 내세우는 장면이고, 심지어는 막 얻은 권력을 뽐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은 실제 전두환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긴 시간 분장을 하고 나서 연기를 했다. 이미지 자체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외모적인 부분을 비슷하게 하면서 실제 인물과 가까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권력욕을 드러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연기에서는 그 악독함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황정민 특유의 악한연기가 실제 인물과 닮은 외모와 합쳐지면서 보는 관객들에게도 분노를 치밀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감정 - 이태신의 분노
영화에는 전두광의 반란에 대항하는 군인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수도경비사령관인 이태신(정우성)이다. 이 인물은 영화 속에서 특별한 권력욕이 없는 충직한 군인으로 그려진다. 이 인물의 성향은 참모총장인 정상호가 이태신에게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기려 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러 차례 참모총장이 해당 직위로 보직 변경하는 것을 제안하지만 이태신은 계속 거절한다. 수도경비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자신이 맡기에는 너무 큰 보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런 이태신의 모습은 탐욕적인 전두광과 대비되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게 된 이태신의 분노가 계속 표출된다. 전두광의 지시로 전방 병력까지 서울로 들어오려고 할 때, 유일하게 분노하며 막았던 이태신은 계속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인물들을 하나둘씩 잃는다. 그렇게 쌓인 분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한다. 그는 전두광과 자신 사이의 장애물을 헤치면서 힘들게 전두광에게 다가가지만 큰 소리로 분노를 표하는 것뿐, 전두광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태신의 마지막 일갈은 시원하지만 공허한 느낌을 준다.
이태신을 연기한 정우성은 그가 가지고 있는 바른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가 가진 욕심 없는 선한 이미지가 탐욕적인 전두광과 교차되면서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더욱 크게 만든다. 그가 가진 그런 특성은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대비되어 이태신이라는 인물이 더욱 돋보여 보인다. 아마도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연기와 이미지의 장점이 이태신이라는 인물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같이 분노의 감정을 느끼며 지켜보게 만든다.
세 번째 감정 - 국민들의 허탈감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은 극장에서 제대로 확인하게 되었다. 과거에 여러 차례 라디오 드라마나 TV드라마로 제작된 적이 있지만 영화에서 12.12를 제대로 다룬 적은 없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벌였던 하루 동안의 극적인 사건을 담은 영화는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는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79년 겨울을 지나 1980년의 봄은 따뜻하지 않았다.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광은 그 이후 자신들 편에 섰던 인물들에게 자신의 힘을 나눠주었다. 영화 맨 마지막에 반란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이후 어떤 권력을 누렸는지를 자막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허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 당시 그 모든 권력 이동을 지켜보던 국민들 역시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무척 실감 나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전두광, 현실의 전두환이 재판에서 심판을 받긴 했지만 우리는 그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그가 저지른 탐욕스러운 만행에 비해서 편안한 노년의 삶을 살다 저세상으로 간 그를 향한 분노는, 영화 <서울의 봄>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역사적 사건을 훌륭하게 극적으로 구성했다. 또한 복잡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자막을 달아 모든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용이하게 했다. 이런 훌륭한 연출은 영화 속에 담긴 감정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우리의 역사와 그 안에 있던 진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주는 허탈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전두환과 그의 세력들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분노와 마음의 심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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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러브 앤 아나키> : 자본주의 사회 속 대안적 삶의 방안
<러브 앤 아나키>는 출판사의 경영 컨설턴트로 부임한 소피와 사회 초년생 IT 기사 막스가 엉뚱한 내기를 하며 사랑에 빠지는이야기이다. 이들의 러브 스토리 이외에도 주인공 소피의 성장기, 디지털화 되어가는 사회 속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출판사직원들의 이야기 또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소피와 막스의 로맨스가 조금 더 주축을 이루는 시즌 1과 달리 시즌 2는 소피의 개인적 성장과 출판사 직원들의 관계 변화에 집중하므로 로맨스를 기대하고 시즌 2를 펼친 사람은 조금 실망할 수 있다.
<러브 앤 아나키> 는 ‘당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라’ 는 로맨스의 명제 뿐이 아닌 스웨덴의 사회문화, 디지털화되는 세상과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사회 드라마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효율과 합리를 규율로 한다. 그 규율과 맞는 성정을 타고나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있다. 소피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소피의 딸 이사벨은 그런 사람이다. 겉치레, 물질주의와 순이익이라는 자본주의의 주판을 굴리는 것과는 영 맞지 않는 사람.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과 조금 어긋난 본성을 지닌 이들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속이거나,미쳐버리기 쉽다. 주인공 소피 또한 지속적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다. 아버지를 닮기 싫은 마음과 남편을 비롯한 주변의 억압 때문이다. 사회적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춘 채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소피는 틈틈이 포르노를 보며 자신의 욕구를 해소한다. 막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즌 초반 노동 계급의 사회 초년생으로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그 역시 아무나 만나 원나잇을 하며 공허함을 해소한다. 두 사람의 비틀어진 욕구 해소는 화면에 병치되어 막스와 소피가 비슷한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식물을 기르고, 친구들과 함께 문 없는 아파트에 살며 소득에 따라 집세를 재분배하는 막스의 삶에 비해 소피의 삶은 훨씬 자본주의의 안쪽에 존재한다. 소피는 유명 광고 감독인 남편을 따라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고, 동료 부부와 함께 스파나 피부과를 들락거린다. 오가는 대화의 주제는 단 두 개. 남들이 보기에 어떻게 더 정상일 수 있는지,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어떻게 더멋들어지게 살 수 있는지 이다. 소피는 늘 묘하게 대화에서 겉돈다.
소피가 유일하게 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막스와 괴상한 내기를 할 때이다. ‘신디 로퍼처럼 입기’, ‘하루 종일 뒤로 걷기’ 처럼 사회의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번갈아 하며 막스는 억눌러온 소피의 반사회적인 면을 일깨운다. 그들의 일탈은 회사룬드&라게스트에 크고 작은 소동을 초래하고, 결국 첫 시즌의 말미 회사의 투자자가 투자를 철회하는 대형 소동으로 이어진다.소피를 둘러싼 상황이 점점 무질서 해질수록 소피가 겨우내 지켜오던 자본주의적 가치관 또한 무너진다. 소피의 내면은 점점 아나키의 상태를 향해가며, 원하는 것과 원해야 하는 것(또는 원하길 원하는 것)의 간극 또한 점점 커진다.
시즌 2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진심’ 이다. 출판사의 정통파 프리드리시는 진심이 담긴 문학을 추구하겠다며 레이블을 차려독립하고, 현실파였던 데니스마저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소피의 경영 방침에 반기를 들며 진심이 없다 비판한다. 막스는자신을 붙잡는 소피에게 “당신의 진심을 모르겠다” 며 진심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아버지의 상실로 인하여 헤메이던 소피는반복되는 ‘진심’에 대한 질문으로 점점 혼란에 빠진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순간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린 후에야 찾아온다. ‘사랑’과 같은 진심은 효율도, 규칙도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를 움직일 만큼 강한 진심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아나키의 상태로 이끈다. 소피의 방황과 막스의 내기, 그리고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사회주의적 담론은 시청자들에게 자본주의 사회 속 나의 진심과 가치를, 즉 ‘나 자신’ 을 지키는 대안적 삶을 제시한다. 두 시즌을 꽉 채운 혼란을 이기고 드디어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운 소피처럼, 우리도 사랑과 아나키를 통해 ‘씨앗에서 새싹으로, 새싹에서 블루벨로, 블루벨에서 나무로’, 궁극적으로는 우리 스스로 발 딛을 땅을 찾은 숲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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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이와 이경의 눈부신 성장 로맨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였다”
태생적인 갈색톤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로 놀림을 당해 온 평범한 고등학생 이경이 우연하게 날아온 축구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지며 축구선수 수이와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미안한 마음에 수이가 매일 같이 이경을 찾아 딸기우유를 건네며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묘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 나간다. 시간은 흘러 고3의 여름, 둘은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지만 수이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경은 평범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로 상경한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며 사랑을 지속하지만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리는 관계에 이별을 맞이한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동명 소설을 원작을 옮긴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수이와 이경이라는 두 여고생의 뜨거운 여름날에 시작된 반짝이는 청춘의 순간을 전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과 뒤이어 따르는 성장이라는 주제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관객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끄는 형식으로 강렬하기보단 천천히 젖어드는 작은 떨림이 존재했다.
애초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정보만을 인식한 채 시사회에 간 거라 예상치 않은 퀴어(LGBT) 장르가 한국, 그것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 나왔다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앞서 언급한 잔잔한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대중들의 공감을 일으킨다는 건 이미 해외의 여러 수작들로 증명된 바이고 특히 첫사랑은 늘 설렘과 두근거림을 상기시켜주지 않는가? 묘한 눈빛과 감정, 소소한 손길이 닿는 베스트셀러 바탕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러한 강점들을 잘 살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를 만큼 인물, 시골과 서울 등을 묘사한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발전된 그림체는 학창 시절부터 20대 초반을 지나치는 시간을 담은 빛바랜 사진첩처럼 추억을 선사하며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더욱 그럴싸하게 꾸며준다. 여기에 메인 테마곡 정우의 ‘그 여름’,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브론즈 with 미노이의 ‘HARU’ 등의 노래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두 사람의 상황과 이어지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섬세한 작화만큼이나 감성적 터치로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그렇게 성장과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소녀의 풋풋한 감정을 시작으로 20대의 이별까지 그린다. 시종일관 담담한 기조는 격렬한 감정의 파고보다 한 방울로 시작된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평범했을지도 모르고, 혹자에게는 특별했을지도 모를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듯 말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연출과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본 듯한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슬픔을 억누르고 상대방의 행복을 빌며 애써 웃음 짓는 이별의 순간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60분가량의 짧은 분량에서 후반부 이별을 맞이하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여 비싸진 티켓값에 관객이 선뜻 선택할지 의문이 남는다. 멋지게 표현된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으테니 말이다.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학생 '이경' 여름의 햇살을 닮은 고교 축구선수 '수이' 열여덟 살의 여름, 예기치 못한 사랑에 빠진 '이경'과 '수이'는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스무 살을 맞이한다. 대학에 진학한 '이경'과 달리 '수이'는 바로 사회에 뛰어들고, 낯선 행복과 사소한 오해 속에서 둘은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게 된다.
예고편│Trailer
원제: The Summer│감독: 한지원│원작: 최은영 작가의 동명 단편 소설
출연진: 윤아영, 송하림 외 多
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61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제작: (주)레드독컬처하우스│배급: 판씨네마(주)
평점: 평론가 7.0
개봉일: 2023년 6월 7일
한 줄 평 : 비로소 깨닫는 첫 사랑이 남긴 계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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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위대한 작가 이전에 어머니가 되어가는 한 여성의 성장기
20세기 가장 유명한 아동문학 작가 중에 한 명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인생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10대 시절 성장기를 그리면서 집필한 작품의 기반이 된 모습을 비추는 실화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보단 일부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한 여성이 어머니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보여주는데, 아마 이런 부분은 연출을 맡은 여성 감독 크리스텐센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점일 것입니다. 여기에 주연을 맡은 알바 어거스트 배우의 완벽한 내면 연기는 그 섬세함에 힘을 실어주는데, 이제 막 연기를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무안할 정도로 극의 무게 중심을 잘 이끌어줍니다. 그럼, 본격적인 영화의 후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10대 소녀의 세상 살아가기
1920년대 초, 스웨덴 시골 마을에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애정 어린 대가족의 구성원인 16살 아스트리드. 그녀가 쓴 에세이는 지역에서 꽤 알려지게 되고 아버지의 소개로 지역 신문사에서 인턴 기자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신문사에서 일하며 기자로서의 역량을 꽃피우려던 때, 아내와 이혼 소송 중인 신문사의 편집장 레인홀드 블롬버그와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덴마크로 건너가 아이를 낳은 후 위탁 가정에 아이를 맡기고 스웨덴과 덴마크를 오가는 생활을 이어가게 되는데...
예고편│Trailer
감독 : 페르닐레 피셔 크리스텐센
각본 : 킴 풉즈 아케손, 페르닐레 피셔 크리스텐센
출연진 : 알바 어거스트, 마리아 보네비, 트린 디어홈 외 다수
장르 : 드라마, 전기
상영 시간 : 123분
개봉일 : 국내 2021년 5월 12일
국가 : 스웨덴
등급 : 15세 관람가
평점 : 관람객 6.0, 네티즌 8.67, 기자ㆍ평론가 6.0, 로톤 토마토 프레시 96% 팝콘 80%, IMDB 7.1
어머니가 되어가는 그녀의 삶
영화를 오롯이 혼자서 이끌고 가는 아스트리드 역을 맡은 알바 어거스트 배우의 연기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인물의 전기를 그리고 있음에도 그녀의 10대부터 20대까지의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그녀가 쓴 삐삐 롱스타킹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짐작이 갈 만큼 주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가부장적 당시 시대상을 탈피하며, 사랑에 대한 솔직함, 아들에 대한 사랑, 블롬버그와 가족과의 갈등까지 그녀가 헤쳐나가는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삶의 여정을 멋지게 표현해 줍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치우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성이 중심이 되기보다 소녀가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곁에는 사랑했던 블롬버그도 있었고, 묵묵히 바라봐 준 아버지 사무엘, 어머니 한나도 있습니다. 그리고 추후에 인연이 될 스투레도 있지만, 이야기는 아들 라세와 아스트리드의 관계, 모성애를 보여주는 데 치중하고 있고 그 속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성숙해가는 그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들을 맡아준 마리가 더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현대 여성에게 전해주는 메시지
전 세계적으로 수십 년간 수많은 구독자가 이어진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는 그녀가 힘들었던 청년기를 보고 있습니다. 시작점에 아이들이 보내준 생일 편지와 엽서를 보며 그 안에 적힌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보여주는 데, 아마도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이 영화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겪었던 개인적, 사회적 문제가 밑바탕 되어 쓰였다고 말입니다. 이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위대한 작가의 모습이라기보단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으로 더욱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가 지금 같은 시기에도 잘 어울린다 생각 듭니다. 제가 너무 감상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중심에서 보이는 깊은 모성애와 더불어 한 여성의 성장, 그 캐릭터의 눈빛, 미소는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와 줍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이 과거의 여성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 과정에서 보이는 메시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이입되게끔 만들어져 충분히 만족하고 관람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불필요해 보이는 노출이나 따뜻함을 강조하며 늘어지는 전개는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보여줘야 할 한 인물의 일부분은 착실히 전달되었다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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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 예고편에 1초 등장한 이상한 영화 발견..??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예고편 리뷰 프리뷰 | 바운드 결말포함 영화리뷰 | 워쇼스키 감독 입봉작
?《매트릭스4》(2021) 영화 예고편에 1초 등장한
워쇼스키 감독의 입봉작 《바운드》(1996) 결말포함 영화리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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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메인 예고편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광기 어린 악녀이자 디즈니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빌런 ‘크루엘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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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 티저 예고편
"미스 프랑스에 나갈 거예요"
동네 복싱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지긋지긋한 매일을 보내던 알렉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자신의 오랜 꿈을 기억해낸다.
좌충우돌 미스 프랑스 도전기!
한계를 뛰어넘은 당당한 발걸음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