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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2025-09-23 19:33:41

[30th BIFF 데일리] 사육곰, 곰 돌봄 활동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

영화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리뷰

 

 

Program Note

청주동물원 사람들을 그린 <동물, 원>(2018)과 야생동물구조센터 사람들을 다룬 <생츄어리>(2022)에 이은 왕민철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이번에는 반달가슴곰 생츄어리다. 곰 농장을 인수받아 곰 생츄어리로 바꿔놓으려는 ‘프로젝트 문 베어’ 팀의 이야기는 소재에서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 보이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르다.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육 곰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 노동인지를 알아챌 즈음, 우리의 시선은 그 일을 자원한 이들에게로 옮겨진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강원도 화천에서 열세 마리의 곰을 돌보며 사는 90년대생 여자 넷의 이야기다. 아마도 이 청춘들은 여기 단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것이다. “곰을 돌보는 경험이 내 삶에서 필요할까?” 그렇게 한 사람이 떠나니 다른 사람이 온다. 최단 코스를 검색하는 대신 멀리 돌아가고 때론 멈추어 주변을 둘러보는, 좀 다른 청춘들이 긴 사색을 불러온다. (강소원)  (©부산국제영화제)

감독: 왕민철

출연: 강지윤, 구시연, 김민재, 도지예, 이세림, 조아라,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사육곰들을 구조해 곰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보금자리(생츄어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사육곰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리산 방사 반달가슴곰과는 좀 다른 사정을 안고 있다. 이들 곰은 웅담 채취 등 가축 목적으로 들여 온 짐승들이다. 이들의 삶은 예전에도 끔찍하기 그지 없었지만, '멸종위기 종인 곰들을 학대한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한 한국 정부가 슬그머니 곰들의 거래, 그리고 동물원 등 전문 시설 밖에서의 사육을 전면 금지하면서 더욱 열악해졌다. 정부가 그 동안 눈 감아온 곰 사육에 대한 이렇다 할 뾰족한 대책도 없이 규제부터 내놓기 시작하자, 곰들은 농장주들에게 이제 돈도 되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자본주의적 목적으로 들여온 곰들은 물질주의적 가치를 상실했다 판단됨과 동시에 방치되었다. 이렇다 할 바닥도 없는 뜬장에서, 차마 먹이라 할 수 없는 것들로 배를 채우면서. 어디 하나 성치 않은 몸으로, 그 한 평 남짓한 그 좁은 곳을 끝없이 빙빙 돌면서. 그들을 구한 것이 바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육곰들이 아니다. 스크린 너머에 곰 보금자리와, 거기 사는 곰들의 삶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영화가 좀 더 조명하는 것은, 연고도 없는 강원도 화천에 머물며 곰을 돌보는 사람들이다.

 

곰을 돌보는 사람들

 

 

곰을 돌보려면 품이 많이 든다. 곰들의 먹이를 챙기고, 건강을 관리하는 것말고도 신경 쓸 것이 많다. 곰 돌봄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3마리 곰이 사는 강원도 화천의 곰 생츄어리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많은 비영리단체가 안고 있는 것처럼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이상적인 곰의 삶을 충족시키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제한된 환경과 재정 안에서 곰의 삶을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합사 과정을 통해 곰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겨울이 오면 몸 덮을 짚단을, 봄이 오면 노란 개나리를 한아름 베어다 준다. 곰들의 방에 놓인 욕조와 행동 풍부화용 장난감들. 그 중 어느것도 곰 돌봄 활동가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렇듯 곰을 돌본다는 것은, 그것도 동물 복지의 사각 지대에 있던 사육곰들을 돌본다는 건, 대단히 세심하고, 또 아주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 고된 노동의 현장을 지켜보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야, 저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대체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난 저렇게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다른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나는 감히 엄두도 못낼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로구나."라고. 마치 그들이 우리의 평범한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특별하고, 비현실적인 영웅들일 거라고 섣부르게 넘겨 짚으면서. (내가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접어두자. 조금 더 스크린 너머를 바라보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기대와는 좀 다른 평범한 삶들을 발견하게 된다.

 

 

"화이팅 넘치지 않아. 그래도 그냥 하는 거야."

 

 

영화는 특별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비춘다. 각자의 사정으로 이리저리 화천으로 흘러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원해서 하는 곰 돌봄은 분명 숭고한 일이고, 실제로 활동가들이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늘 보람과 기쁨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무거운 짚단을 나르고, 곰 우리를 청소하고, 곰을 돌보기 위해 연고도 없는 산골에 머무는 것은 현대 사회에 적응한 2, 30대들에게 썩 녹록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꺼이 감내한다고 해도, 고민할 문제들은 산더미다. 비영리 단체가 돈이 되지 않는다거나, 그곳에서 한 활동을 이력서에 어떻게 써 내려가야할지, 혹은 내가 정말로 이 일에 맞는 사람인지에 대해서까지, 당장 해결되지 못할 골치 아픈 문제들이 이들을 괴롭힌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 앞에 놓인 일을 한다. 곰을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면서. 동료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름대로의 '합사 과정'을 거치면서.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가고, 또 누군가는 또 다른 이유로 이곳 화천을 찾는다. 곰을 돌본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들은 여느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야, 그들도 자기 삶을 사는 평범한 2, 30대 여성들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사육곰 생츄어리에 대한 이야기는 2018년부터 어렴풋이 들은 바 있다. 이런저런 굿즈가 탐난다는 불순한 이유로 몇 번인가 단발성 후원을 감행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거기서 곰을 돌본다는 것 이외에는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다. 아주 막연하게, 비겁한 변명해 왔던 것 같다.

 

"나는 환경과 동물권을 중시하면서도 고기를 좋아하고, 플라스틱이 자연에 끔찍하다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신다. 그런 내가 감히 환경 보호와 동물권을 논해도 되는 것일까? 이것이 무단횡단 하면서 쓰레기 줍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그런 것은 정말로 뜻 깊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라고.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의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바를 실현하는 데에 있다. 좋은 일을 하는 데에는 언제나 많은 품과 노력이 든다. 그러니 숟가락만 얹는 기분이 들지언정 뭐라도 해 보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몇 백 배 낫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 바쁜 중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종의 부채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땠냐고? 정말 좋았다. 연고도 없는 곰을 돌보는, 그런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아주 평범한 청년들이라는 걸 알고나니 무모한 용기마저 샘솟았다. "그래, 무단횡단을 한들 어떠냐. 어쨌든 누군가는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면, 내가 줍는 것도 좋지 않나." 하는 뻔뻔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고, 여러분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신이 이 사회를 살며 온갖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이라면, 곰 보금자리에 관심을 가졌거나, 동물권, 지속 가능한 삶에 흥미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나처럼 '무단횡단하며 쓰레기 줍는 일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꼭 감상해보길 바란다. 곰 돌보는 저 청년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단지,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꿈꿀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게 되리라.

 

<곰 보금 자리 프로젝트> (일시 후원, 정기 후원을 할 수 있다.)

https://projectmoonbear.org/


 

상영 스케줄

09-21 12:30 CGV 센텀시티 4관

09-22 09:10 CGV 센텀시티 3관

09-23 12:00 CGV 센텀시티 2관

 

부산국제영화제

09월 17일 ~ 09월 26일

 

작성자 . 토리

출처 . https://brunch.co.kr/@heatherjorules/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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