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7-07 21:48:29
아름다움과 추함 그 너머
영화 <태풍 클럽> 리뷰
SYNOPSIS.
태풍이 불어 닥친 날, 미카미 쿄이치를 비롯한 6명의 중학생이 학교에 갇히고, 교이치의 절친 리에는 등교하던 중 홀연 방향을 바꿔 도쿄로 향한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 결핍과 욕망, 불안과 쾌락이 뒤섞인 이상야릇한 축제가 벌어진다.
POINT.
✔️ 1980년대 일본 영화계의 변화를 이끈 소마이 신지 감독의 대표작이 약 40년 만에 개봉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유명한 감독이라는데, 동양 영화를 일본 위주로 좁게 읽어온 경우가 많은 서구권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감독이에요.
✔️ 이와이 슌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류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관심을 가져보실 만합니다.
✔️ 1980년대의 현란한 음악과 음향이 매우 매력 있게 쓰인 영화
✔️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해요.

청춘은 늘 아름답게 혹은 위태롭게 혹은 둘 다로 그려진다. 소용돌이 치는 미완의 감정들이 어쩌지를 못하고 파들거리는 각자의 세계. 자기 자신만으로도 팽창하다 터져버릴 것 같지만 외부와 또 끊임 없이 잡음을 일으키는 일상. 차라리 태풍이라도 와서 이 모든 것이 깨쳐지길 바라게 되는 마음 같은 것들. 여기까지는 청춘을 아름답고 빛나는 시절로 미화하여 기억하는 사람조차도 쉬이 공감할 법하다.
이 영화도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영화 속 리에의 대사에서 표현되듯, 곧 올 거라는 태풍이 차라리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쩌다 학교에 남아 버린 아이들이 점점 거세지는 태풍 속에서도 굳이 집에 가거나 연락하려는 마음 없이, 교실에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청춘이라면... 저는 그냥 한평생 응애 할랍니다. 농담이지만 반은 진담이다.

아름다운 시네마의 힘
이 영화가 아름답지 않았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에너지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제각각의 이유로 학교에 남은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흔히 이 영화를 소개할 때 사용되는 불안이나 본능 같은 단어들 또한, 청춘이나 사춘기나 청소년기라는 단어들 또한, 이 영화 속 아이들이 표출하는 에너지를 적확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최선은 결코 최적에 닿지 못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말하고 쓰며 이 영화의 주변을 더듬거려 보고 싶다.
현란한 80년대 음악과 독특하게 사용된 음향, 공간 사용 하나하나 다, 영화를 잘 모르는 눈으로 보아도 잘 만들었구나 감탄하게 되기는 한다. 책상을 쌓아 올리고 종이학을 매달아 둔 교실의 풍경, 거기에 마치 아이돌 군무처럼 원자처럼 제각각 서 있는 아이들, 비를 맞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모습은, 그 장면이나 정서에 대한 이해를 떠나서 장면적으로 힘이 있다. 마치 온도가 높아지면 활발해지는 원자의 운동 같다. 전자와 충돌이 증가하고 비저항이 커지는 원자의 모습처럼, 아이들의 모습도 그렇다.
태풍 안에서 제각각의 이유로 끓어 오르는 아이들의, 탁구공처럼 튀어오르는 에너지는 분명히 힘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8명의 아이들이 마치 하나의 사회를 표현한 것처럼도, 한 인간 안의 복잡다단한 정서를 표현한 것처럼도 보인다는 지점이다. 하나의 물체 안의 원자들처럼.

아름답지 않은 원시의 폭력
특히나 이 영화 속 아이들의 세계를 하나의 사회라고 한다면, 내 눈에 그것은 태곳적 원시의 사회로 보였다. 인간보다는 짐승의 그것과 조금 더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낳은 이들은 보호자로 기능하지 않거나 아예 부재한다. 아이들이 쌓아올린 보호의 수단은 그다지 보호할 만큼 힘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책상을 바리케이드처럼 쌓아 올린 것은 물리적 충격을 막기 위함이고 종이학은 으레 소원의 상징이나, 둘 다 이 영화 속에서는 장난스러워 보인다고나 할까, 조개 껍데기 가면 정도의 선사 시대 주술 수준으로 무력해 보인다. 그 안에서 생의 감각은 통제되지 않는다. 노래와 춤, 웃음과 폭주, 그리고 폭력.
특히 미치코에 대한 켄의 폭력 장면은, 개인적으로 관객석에 앉아 있기 괴로울 정도였다. 너무 괴로워 속이 좋아지지 않았고, 주먹을 자꾸 불끈 쥐게 되었으며, '미치코 그렇게 밀어내면 네 코어가 흔들려... 코어를 다잡고, 있는 힘껏 한 대 치고 발로 차...'라고 생각하게 되는, 자꾸 극을 극으로 보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 장면에 얼마나 깊은 괴로움을 느끼냐에 따라서도 평가가 갈릴 지점이 있을 것이다. 유독 길고 집요했던 이 장면은, 명백히 성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가해자의 입장을 고려한다. 그가 가정에서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결여와 그로 인한 그의 정신적 불안정 상태, 좋아한다는 이유로 미치코에게 이미 저지른 일과, 그 일에 대한 면죄부의 의도로 해석될 자리까지 내어준다. (심지어 이 영화의 시놉시스에서 “소년은 짝사랑했던 소녀에게 마음을 고백“한다고 표현한 문장도 있다. 누가 썼는지 몰라도 이건 좀 많이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 원색적인 세계에 출구는 있는가? 도쿄에서 태풍 속을 뛰어다니는 리에와 강당 앞에서 춤을 추는 아이들이 노래하는 '만약의 내일'에는, 출구가 있을까. 원시 사회를 벗어난다면, 이 미완성의 시기를 벗어난 '어른'의 세계에는 대안이 있는가.
이 영화 내에는 없다. 대사 하나 없이 잠시 등장하지만 보호자 역할은커녕 스스로를 돌보는 일조차 버거워 보이는 켄의 아버지, 그의 함석지붕에 아들이 내리꽂는 돌멩이, 무책임하게 피하던 약혼녀의 가족과 함께 가라오케 노래를 부르며 무성의하고 무기력하게 술에 몸을 맡긴 교사, 문을 열어 몸을 적시는 이상으로 태풍을 맞이할 수 없는 그의 세계...

<일본산고>의 일침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원시 사회 같은 폭력을 보며 대문호 박경리 선생님의 <일본산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삶보다는 죽음, 희망보다는 절망을 향해 있다. 출구보다는 막다른 길처럼 느껴진다.
"비상을 꿈꿀 수 없는 사로잡힌 영혼에게 깃드는 것이 허무주의다. 그리고 쾌락이다. 남경 학살, 백주의 난행은 일본군의 전략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의 여실한 참극, 절망 없이 그 짓을 했을까.
일본 문학에서 탐미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썩어가는 육체, 괴기스러움에 대한 쾌락, 그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살의 미학도 실은 일그러진 사디즘을 포장해낸 것에 불과하고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산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또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추구야말로 문화의 시발점인 동시에,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박경리, <일본산고>. 이하 큰따옴표는 모두 같은 책 인용.)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원시적인 사회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로망 포르노 (다시 말해 포르노) 연출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소마이 신지라는 감독에게서도 박경리 작가가 비판한 지점이 느껴졌다. "감각만 살아나서, 마치 달팽이처럼 축소되고 밀폐된 채 끈적끈적한 점액을 남기며 기어다니는 이런 형국에 불어닥친 세계의 바람" 앞에서 "기능 면으로는 재빠르게 받아들여 전환할 수 있었겠지만 의식세계는 일대혼란"이었던 나라의, 말초신경만 남아 버린 허무주의.
이 영화에서의 청춘은 결국 허무주의로 치닫는다. 1985년 작품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에로·구로(그로테스크)·난센스·칼과 무의미, 그것은 칼의 세계에서는 필연적인 것으로 황무지와도 같은 의식을 여실하게 드러낸" 유행이 1920년대의 것이었다면, 일본 문화에서 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진 작품 쪽이 더 보고 싶다.

아름다운 카메라의 움직임, 아름답지 않은 사상의 부재. 그곳에서 나는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임을 절감한다. 나는 "인생은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며 보다 고통스럽게 무량한 우주의 비밀을 헤치고 나가는 과정"이라는 박경리 선생님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저는 일본의 민족성을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스스로도 희생자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체제입니다. 체제가 뭐냐를 물어야지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누가 언제 청춘이 반짝반짝 솜사탕처럼 아름답기만 하다고 했나. 죽고 싶은 순간도 있고, 미완성의 감정들이 나를 추동해서 아주 기묘한 짓거리들을 하며 바보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지만... 이 정도의 귀결이 보편적 청춘인가? 나와 주변인의 청춘에 그런 허무주의가 없었음이 단순히 우리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래 뭐 그랬나보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비릿한 것만이 청춘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야말로 진짜 청춘이고 다른 반짝거리는 영화들은 마치 가짜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커팅된 보석의 일면처럼 다양한 청춘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중 하나를 너무나 잘 포착했을 뿐이다. 에너지는 아름다웠으나, 그 에너지 뒤에 어떤 사상의 결여가 있는가 생각하면 이 영화가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마지막 꼭 해두고 싶은 말은 결코 일본을 모델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라는 박경리 선생님의 말을 생각하며 역시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거 내 청춘 아니에요.
Relative contents
-
-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갑작스레 들이닥친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멈추는데 충분했습니다.
관객들은 극장에 오는 것을 멈췄지만, 영화 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이에 맞춰 배급사들도 개봉일을 연기하거나 방식을 바꾸는 등 다양한 방법들로 관객들에게 영화를 공급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가 않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네요.
그런 점에서 제목에 버젓이 쓰여있는 '분노'라는 글자는 관객을 비롯하여 관계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쓰여있는 '질주'라는 단어는 어르신들이 말하는 '성질 값한다'라는 말씀처럼 훌륭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고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현재 국내 박스오피스 1위임과 동시에 626,240명(05.21 기준)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2021년 국내 극장가 기준으로 5위에 해당하는 성적입니다.
그리고 개봉 첫날에 기록한 400,307명은 2021년 국내 박스오피스 최다 일일 관객 수로 이전 <크루즈 패밀리: 뉴 에이지>가 기록한 102,927명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만큼 "코로나19"를 느낄 수도 없는 반응 때문이라도 이번 <분노의 질주>에 거는 기대는 어떤 편보다 가장 컸는데요.
'과연,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어땠는지?' - 영화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세계를 돌면서, 뜻하지 않게 지구를 몇 번이나 구했던 "돔"과 "레티"는 어느 한적한 곳에서 평화롭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테즈"와 "로만", "램지"는 "미스터 노바디"에게 온 메시지를 보여주며 "싸이퍼"가 풀렸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에 동생 "제이콥"이 깊게 연관되었음을 확인하고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다시 한번 패밀리를 모으는데...
점점 속도감에 익숙해지는데???
1.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건데?
영화의 부제가 <더 얼티메이트>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번 영화는 9편에 속할 만큼 장수 시리즈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를 보려는 팬들은 학습지처럼 쌓인 영화들을 봐야 하는 부담감이 몰려들 겁니다.
물론, 이번 9편 <더 얼티메이트>보다 <분노의 질주>를 생각하면 안 보셔도 즐기는데 큰 문제는 없겠지만 저는 보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립니다.
이런 이유에는 이야기의 연속성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의 관계들이 가장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이콥"의 배후에 전편의 "싸이퍼"가 등장하고, "한"을 비롯하여 <도쿄 드리프트>의 캐릭터들이 출연해 모르고 봤다가는 '나만 모르나?'하는 소외감을 극장에서 느낄게 뻔하니까요.
근데, 이걸로 시작할 거라면서?
그리고 "돔"의 여동생 "미아"와 "쇼 형제"의 어머니 역으로 등장하는 "헬렌 미렌"까지 동창회를 연상시키는 이 분위기로 봐서는 꼭 봐야겠죠?
그렇게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들의 속편처럼 전보다 커지고 많아지고 더욱 화려해진 외관을 거림낌 없이 보여줍니다.
극 중 "타잔"을 연상시키는 자동차 프리폴 장면, 전작에서 선보였던 "좀비카"장면을 이번에는 "자석"을 활용하는 자동차 액션은 <분노의 질주>라는 타이틀을 기대한 만큼 보여주는데 성공합니다.
근데, 이번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번역된 제목보다 원제를 살펴봐야 합니다.
"THE FAST SAGA"로 알 수 있듯이 이번 <더 얼티메이트>는 <분노의 질주>의 새로운 프로젝트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2. 초심마저 사라진 제대로 움켜쥐지 못하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번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서 이런 새로움을 바라기는 어렵습니다.
2001년에 선보였던 1편을 생각하면, 영화의 주된 정체성은 '뒷골목'을 배경 삼아 '스트리트 레이싱'으로 남자들의 우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던 영화가 이제는 우주로 발사되니 더 이상 초심을 기대하기는 힘든데요.
그렇기에 영화는 변치 않았던 "가족"이라는 테마를 다시금 만지작거릴 뿐이고, 이에 "제이콥"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킵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안전한 걸까?, 불안한 건가?
역대 <분노의 질주>를 생각하면, 빌런으로 성공한 캐릭터는 "싸이퍼"를 제외하고는 못 보았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역할이 <분노의 질주>에서 악당을 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제이콥"은 "싸이퍼"의 노선대로 가질 못합니다.
이런 이유에는 "제이콥"이라는 캐릭터가 "가족"에 기반해 정서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이를 소개하는데 "플래시백"을 활용했다는 것이 큽니다.
흔히, 영상 매체에서 캐릭터의 얼굴을 보여주는 건 말과 다르게 감정을 먼저 보게 해 똑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그렇기에 논리로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읍소하는 느낌이라 추후 "제이콥"의 처리까지 연결 지어 본다면, 더더욱 아쉬운 소개 방식입니다.
3. 이럴 거면, 쿠키만 했어도?
무엇보다 이번 <더 얼티메이트>의 러닝 타임이 142분으로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분량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캐릭터의 소개가 미흡하다는 건 아쉬움이 남는데요.
여기에 장수 시리즈라면, 가장 경계해야 하는 배경 "우주"를 도입한 건 <제이슨 X>라는 괴작을 연상시키는데 충분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이 우주에서 부활한다는 내용의 영화로 좋지 않은 평가와 흥행을 기록했는데요.
그만큼 <분노의 질주>가 자동차로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은 다 보여주었다는 것인데, 새삼 손뼉 칠 때 떠날 수는 있을지 걱정마저 들었습니다.
그럼, 이번 영화는 뭐가 남았던 걸까?
이렇게 본다면, 실망만 가득하나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팬들의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키는 영화입니다.
앞서 언급한 "타잔"을 연상시키는 자동차 프리폴 장면이나 전작에서 선보였던 "좀비카"장면을 "자석"을 활용하여 새로이 선보인 자동차 액션들은 <분노의 질주>라는 타이틀이 전혀 부끄럽지 않는 활약들이거든요.
하지만 <더 얼티메이트>가 <분노의 질주>라는 시리즈에서 남긴 족적이나 앞서 언급한 향후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할 영화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냥 그 두 가지를 "데커드 쇼"와 "한"의 만남이라는 쿠키 영상으로 충분했으니까요.
※ 이런 이유에는 <도쿄 드리프트>에서 "한"을 죽인 캐릭터가 "데커트 쇼"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도미닉 패밀리"와도 대결한 건데...
-
- 북으로 간 남한 스파이
보통 첩보물이라고 하면 어디에 몰래 숨어 들어가 주인공 버프로 100명이 총을 쏴도 치명상을 입지 않는 무적으로 많이 묘사가 되곤 하는데, 이번 영화 공작의 경우 총성 없이 쫄깃함을 선사하고 있어요. 이 영화의 경우 북으로 간 남한 스파이 흑금성을 실화를 담고 있어서 더욱더 쫄깃하고 몰입하며 볼 수 있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럼 영화 공작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첩보, 스릴러, 시대극
감독 : 윤종빈
각본 : 권성휘
출연진 :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개봉일 : 2018년 8월 8일
평점 : 7.86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웨이브, 왓챠
기획 의도
1993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서 스카우트된 박석영(황정민)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안기부 해외 실장 최학성(조진웅)과 대통령 외에는 가족조차도 그의 실체를 모르는 가운데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한 흑금성.
조국을 위해 굳은 신념으로 모든 것을 걸고 공작을 수행했던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강등에 휩싸이는데...
여담
영화 공작은 첩보물에 흔히 사용되는 총격 신이 없음에도, 연출과 디테일 덕분에 완성도가 매우 높아 몰입하며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공작은 실제 흑금성을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내용의 절반 이상은 사실이라고 해서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공작의 결말을 살펴보자면
안기부에서는 박석영의 꼬리를 자르기 위해 언론사에 흑금성의 정체를 폭로하게 되면서 위기에 놓은 박성영은
호연지기를 맺은 리명훈 덕분에 박석영을 살려주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성영은 납북 합작 광고를 통해 리명훈과 재회하게 되며 예전에 서로에게 선물로 줬던 시계와 넥타이핀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인사를 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쫄깃함을 선사해 줬는데, 이 장면들이 대부분 실제라고 생각이 되니 이 당시 흑금성은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공작을 펼쳤을지 상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한줄평 : 총성 없는 쫄깃한 첩보물
-
-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현실감'이란?
〈여름날 우리〉는 2018년 개봉해 호평을 받았던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난 요우 용츠와 저우 샤오치가 서로 엇갈리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여름날 우리〉 역시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같고 다름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다.
〈너의 결혼식〉, 〈여름날 우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랑에 실패한다. 누구보다도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주변 상황과 내면의 혼란으로 해피엔딩에 다다르지 못한다. 〈너의 결혼식〉이 제목 그대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첫사랑의 결혼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으로 끝나듯, 〈여름날 우리〉 역시 가을이 오면 과거가 될 수밖에 없는 여름의 비애를 주인공들의 서사와 연결 지어 첫사랑의 실패를 그린다.
사실, 사랑의 실패를 다루는 웰메이드 로맨스 영화는 이전부터 있었다. 해외 영화 중에서는 〈500일의 썸머〉, 〈라라랜드〉, 국내 영화로는 〈건축학개론〉 등을 꼽을 수 있다. 관객들이 이 영화들을 좋은 로맨스 영화로 꼽은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사람이 앞의 영화가 사랑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운명적으로 만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 후, 위기를 겪다가, 끝내 행복하게 산다는 로맨스 영화의 공식을 거부하는 ‘리얼함’을 무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왜 실패한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를 향한 찬사에는 언제나 ‘현실적’이라는 말이 따라다닐까? 기존 로맨스 영화가 다루던 낭만적 사랑이 불가능해졌다는 감각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여성들이 젠더 ‘갈등’이라 표현되는 성별 간 권력 격차에 민감해졌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평등한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남성 권력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공론화될수록, 무턱대고 낭만적이기만 한 로맨스 영화의 각본은 현실성을 잃는다. 엉망인 사랑을 아름답게만 묘사하는 로맨스 영화는 '판타지 영화'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로맨스 영화가 사랑의 실패를 다루는 것은 여성들이 행복한 사랑이라는 기존 로맨스 영화의 공식이 거짓말임을 자각한 이후에 등장한 자구책이다. 이제 여성들은 현실을 미화하는 로맨스 영화에 더 이상 자신의 환상을 투사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경제적 조건의 파탄으로 사랑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에는 경제적 결핍에 시달리는 남자와 경제활동을 시작한 여자의 간극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더 활발해질수록 남자는 더 의기소침해진다. 괜히 마음에 없는 못된 말을 하며 여자를 괴롭힌다. ‘능력’ 있는 다른 남자가 여자 주위에 어슬렁거릴 때면 이런 일은 더 잦아진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점점 지쳐가고, 결국 그를 떠난다.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못나게 굴었는지를 깨닫지만, 여자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사랑을 시작한 후다.
남자는 호소한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지,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를. 하지만 여자는 조금은 슬퍼 보이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그를 거절한다. ‘찌질한 남자’와 ‘이해할 수 없는 여자/비밀을 품고 있는 여자’라는 구도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해하지 못함’의 주체가 남자라는 게 중요하다. 경제력 파탄으로 사랑할 수 없게 된 청년 세대의 아픔이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혼란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로맨스 영화는 청년의 고통을 남자의 고통으로 만들었다.
어쨌든 핵심은 사랑의 실패가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남녀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로맨스 영화는 이제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새로운 로맨스 영화는 기존 장르물의 공백을 섬세한 감정으로 메꾼다. 정통 멜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섬세한 감정 묘사가 로코물에도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현실적인’ 재현을 위해 로맨틱 코미디가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장르 내부로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낭만적으로 채색된다. 이제 낭만적인 건 행복한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사랑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사랑의 성공에 행복해하는 대신, 실패했더라도 여전히 내 마음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무언가를 상기하며 위로받는다. 이것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불가능해진'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다. 사랑에 실패했음에도, 너의 감정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
이런 류의 로맨스 영화는 애틋한 첫사랑이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는 아릿한 달달함을 자아낸다. 하지만 사랑이 불가능해진 조건(젠더,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문제적이다. 과도기에 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앞으로 어떻게 자기 영역을 만들어 갈지는 아직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로맨틱 코미디물이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어떻게 비틀고 조정해 나갈지 궁금하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배우들의 앙상블로 이끄는 대환장 축제 한마당
“망진이랑 이거 하나만 하고 빠이 할 거야?”
개최 일주일 전 갑자기 정종 문화제에서 연산군 문화제로 바뀐 망진의 지역 축제를 성공적으로, 그리고 무사히 끝마치려는 축제대행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와 어쩌다 팀원들이 된 그들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예고편│Trailer
영제: Extreme Festival│감독·각본: 김홍기
출연진: 김재화, 조민재, 박강섭, 장세림 외 多
장르: 코미디, 드라마│상영 시간: 94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평론가 6.8
제작: 비리프, 실버라이닝 스튜디오│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개봉일: 2023년 6월 7일
“난장판 축제 현장으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역 축제를 맡아 어떻게든 현생을 이어가려 고군분투하는 대행사 대표 혜수의 하드캐리는 눈물겹다. 함께할 직원 하나 없는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연명하는 작가인 애인 상민은 능청스러운 한량짓에 여념이 없다. 퇴직한 직원 래오를 알바로 데려오는가 하면, 설상가상으로 알바로 뽑은 처음 본 은채를 인턴으로 채용하는 대 환장할 짓까지 벌이고 초대가수는 사기를 당한다. 이 정도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망하게 하겠다는 건지 의심을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혜수에겐 다음 밴댕이젓 축제의 칼날을 쥐고 있는 군수의 비위를 맞춰 어떻게든 잘 마무리해야 하는 궁극적이고 초단기적인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익스트림 페스티벌’이라는 영화 제목 그대로 가상의 지역 문화축제를 진행하며 생기는 별의별 일들을 그린 한국 코미디 드라마였다. 망할 망을 뜻하는 건 아니겠지만 지역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망진군의 아주 소규모 축제를 진행하는 대행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를 통해 고달픈 K-직장인과 자영업의 현실도 관객의 뼈를 때린다. 등장인물 개개인이 가진 작은 문제부터 지방행정의 탁상공론식 실태는 물론, 마지막엔 소규모 연극집단이 가지는 예술적 고뇌까지 수렴한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극본에 참여했던 김홍기 감독인 만큼 축제를 진행함에 있어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채워나가며 젊은 감독의 패기 넘치는 풍자와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작은 에피소드들이 계속 연계되며 다소 산만할 수도 있지만, 축제라는 큰 틀안에서 소소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역할을 망론하고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내뿜는 김재화는 인턴보다 더 눈물 나는 대표 혜수를 미친듯한 원맨쇼로 채우고, 사고뭉치 월급루팡 이사 상민을 맡은 조민재는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잔망스러움을 선보인다. 그나마 멀쩡해 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 발언으로 막장드라마를 만들어버린 래오의 박강섭은 강렬한 한방을 남기고, 인 서울을 꿈꾸며 지른 인턴 지원 생활이 물거품 된 은채의 장세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더불어 기자처럼, 간호사처럼, 불륜처럼, 뭐 하는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의문의 커플도 매 장면마다 등장해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리프레시는 물론, 소소한 웃음을 전한다. 이처럼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진짜 지역축제의 하루를 진행하고 참여하며 체험하는 여러 인물들을 교차시키면서 현실 공감적 상황을 이끌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그들의 말이 씁쓸하지만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 줄 평 : 정신없지만 공감가는 재기 발랄한 풍자
-
- <프레디의 피자가게> 리뷰 - 무섭지 않은 공포 영화 추천
스포일러 주의!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남동생을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여동생 애비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마이크 슈미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자신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남동생이 납치를 당하는 사건을 겪고 난 후 어른이 된 마이크는 동생 또래의 아이가 어른에게 강제로 붙잡혀 가는 듯한 낌새만 보여도 곧장 달려들 만큼 폭력적인 성향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러한 성향 때문에 마이크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되고 애비의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마이크는 자신과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은 애비의 소망에 따라 어떻게든 양육권을 지켜내기 위해 유일하게 남은 직장인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며 졸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형들이 이상한 낌새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신과 지인을 해치려고까지 하자 마이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프레디와 인형들을 막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과정을 그린 엠마 타미 감독의 호러 영화다.
만약 누군가가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잠깐 망설이고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 가지 전제를 반드시 달고 말이다. 원작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원작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즐겁게 시청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게임 속 존재들을 영화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원작을 좋아해야만 가능한 이야기일 뿐, 영화 자체로는 억지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호러 영화로서의 완성도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일단 무섭지가 않다. 소위 무서운 영화로 꼽히는 <컨저링>, <유전> 같은 영화에는 어림도 없고 굳이 따지자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보다는 아주 살짝 나은 정도의 호러다. (근데 이건 애초에 호러 영화가 아닌지라...) 애비와 폭시의 숨바꼭질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애초에 영화가 긴장감을 끌어올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찰나의 점프 스케어에만 의존한 채 관객이 깜짝 놀라기를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원작의 숨 막히는 긴장감 같은 건 도저히 느낄 수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어린이들도 볼 수 있는 호러 영화를 지향점으로 삼았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낮은 호러 강도는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를 보게 되면 내용도 뻔하디뻔한 가족 드라마고,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중간에 인형들과 함께 테이블과 의자를 활용하여 간이집을 만드는 장면은 호러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신나고 귀엽게 연출되었다. 다른 부분의 완성도는 낮은데 유독 인형 애니매트로닉스의 퀄리티만 신기하게 높은 것까지, 애초에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저연령층과 게임의 팬들을 주 타깃으로 삼았음을 대놓고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영화가 얄팍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는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저연령층과 팬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서 작품의 질까지 낮으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마이크의 트라우마가 형상화되는 꿈 장면은 너무 많이 반복돼서 지루함을 준다. 프레디가 여성의 허리를 깨물어서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키는 장면이나 컵케이크에 의해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저연령층을 노리겠다는 의도가 무색할 만큼 수위가 높다. 후반부에 스프링 보니를 등장시키는 선택은 오히려 프레디의 존재감을 옅어지게 만들고, 아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고 그에 따른 원한이 생기는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복하기에 썩 좋은 선택이라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중반까지의 신선함마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어차피 3부작인데 이후에 나와도 괜찮지 않았을까?) 직업상담사인 스티브 래글런이 사실 모든 일의 원흉인 윌리엄 애프튼이라는 반전 역시 호러 장르에서 너무 많이 쓰인 트릭인데다가 초반 이후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라 반전의 황당함은 더욱 커진다. 그나마 스프링 보니의 첫 등장 장면은 굉장히 강렬하게 연출된 덕분에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는 게 위안거리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그럭저럭 즐겁게 볼만한 작품이지만 그 외에 관객에게는 만족을 주기 힘든 영화다. 심지어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호러의 약한 강도, 지루한 드라마, 뻔한 엔딩 등에서 불호를 느낄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 많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고 오히려 애정이 가는 지점도 있었으나 상업성에 눈이 먼 탓인지, 감독 고용을 잘못한 건지는 몰라도 결국 낮은 완성도로 무너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더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였는데 여러모로 많이 아쉽고 아깝다.
별점: ★★
-
- 새로운 디스토피아 스릴러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의 현실 이야기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일찌감치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고 다수의 수상을 한 작품이다. 대표적으로는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초청과 제4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스 부문에 초청되어 많은 영화관계자들에게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2022 캐나다 스크린 어워즈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다시 한번 그 위엄을 달성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미국 할리우드, 아카데미 수상 출신 감독인 <조조 래빗>, <토르: 라그나로크> 등을 연출하고 최근에는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연출을 맡게 된 '타이타 와이티티' 가 총괄 프로듀서로 작품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또한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켈리 라이카트', '제인 캠피온' 등에 이어 차세대 여성 감독으로 촉망받는 '다니스 고렛'이다. 이미 이 작품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7회 수상을 했다고 하니,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한 것이 아닐까! 작품의 흥행요소에서 프로덕션의 힘과 제작진의 라인업 또한 영향을 미치는만큼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로 작용할 듯 하다.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서기 2043년 독재국가 '에머슨'의 인간병기로 길러지는 딸 '와시즈'를 되찾기위한 엄마 '니스카'의 사투를 그린 디스토피아 스릴러이다. 영화 초반 황량하고 외딴 숲에서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는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와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숲을 나섰다가 사고로 인해서 와시즈는 발을 다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떼로 지어다니는 마치 벌과 같은 모양새의 드론(독재국가의 CCTV, 감시자 역할을 한다)들의 습격을 받으면서 숲 속을 벗어나 도심부의 마을로 향하게 된다. 니스카의 오랜 친구 '로베트라'의 도움을 받아 친구의 집에 머무르게 되지만, 와시즈의 상처는 점차 깊어만가고 치료제를 구할 수 없는 니스카의 절망은 깊어만간다.
결국 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니스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딸은 독재국가 '에머슨'에 끌려가게 된다. 독재국가 '에머슨'은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미성년자들을 강제소집하는 무자비한 국가이다. 그리고 미성년자들은 '아카데미'에 들어가 군사교육을 받게되고 인간병기로 세뇌당하고 길러지게 된다.
딸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절망감에 빠져 삶을 살아가는 니스카는 우연히 숲의 소유지를 지키며 독재국가에 대항하던 한 무리의 캐나다 북부의 토착민 '크리족'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니스카가 예언 속의 구원자라 믿는 부족이다. 그리고 니스카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아카데미에 있는 딸을 구하기 위한 계획을 결심하게 된다.
영화는 서기 2043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세상을 배경으로한 디스토피아를 내세우고 있다. 먼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시대속에는 여전히 자신들의 거주지,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토착민(원주민) 크리족들이 있다. 실제로 영화를 연출한 감독 '다니스 고렛'은 캐나다 토착민 크리족의 혼혈이며 제작에 참여한 '타이타 와이티티' 또한 뉴질랜드 원주민인 아버지를 둔 혼혈인이다. 여기서 느낀점은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배경은 수십년이 지난 미래이지만 감독은 원주민, 토착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싶은 점이다.
독재국가 '에머슨'은 원주민을 내쫓고 몰아세운 역사 속의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유할 수 있고, 그들의 감시자가 되는 수많은 드론들은 결국은 원주민을 감시하는 수많은 제국주의 사람들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 시대의 미래가 되는 미성년자(아이들)를 착취하고 그들에게 획일화된 군사교육과 정신교육을 주입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라는 일종의 애국강령을 날마다 반복하게 하여 외우게 하는 등의 모습은 물론 영화 속에서는 독재국가의 인간병기로 길러내기 위한 군사교육의 일환이지만 일찌감치 토착민 아이들의 역사를 배제하고 새로운 제국주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우리 역사 속의 식민지 침략자, 제국주의 모습들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화 속의 크리족과 그들이 구원자라고 믿는 니스카와 힘을 합쳐 독재국가 '에머슨'에 대항하고 아카데미의 딸과 입소된 모든 아이들을 구출해낸다. 이는 한 어머니의 딸을 구해내는 동시에 미래시대 주역인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이고 또한 토착민들의 삶은 지켜내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디스토피아 배경 속에 일어나는 화려한 액션과 CG가 있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캐릭터의 드라마와 세심한 감정선들이 주는 영화적 희열과 긴장, 스릴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SF 디스토피아 영화로 추천드리고 싶다.
씨네랩 에디터 ria
-
-
-
- 영화 <학교 가는 길> 메인 예고편
전국 특수학교 재학생의 절반은
매일 왕복 1~4시간 거리를 통학하며
전쟁 같은 아침을 맞이한다
장애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수학교
아이를 위해 거리로 나선 엄마들은
무릎까지 꿇는 강단으로 맞서는데…
세상을 바꾼 사진 한 장,
엄마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시작된다!
-
- 넷플릭스 <쿵푸팬더 : 용의 기사> 공식 예고편
수상한 족제비 한 쌍이 위험천만한 네 개의 무기를 노리자, 포는 집을 떠나 지구를 누비는 여정에 나선다. 구원과 정의를 위해! 그 와중에 고지식한 영국 기사 '방랑자 블레이드'와 파트너가 되는 포.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전사는 마법의 무기를 찾아 위험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대모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