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7-07 21:48:29
아름다움과 추함 그 너머
영화 <태풍 클럽> 리뷰
SYNOPSIS.
태풍이 불어 닥친 날, 미카미 쿄이치를 비롯한 6명의 중학생이 학교에 갇히고, 교이치의 절친 리에는 등교하던 중 홀연 방향을 바꿔 도쿄로 향한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 결핍과 욕망, 불안과 쾌락이 뒤섞인 이상야릇한 축제가 벌어진다.
POINT.
✔️ 1980년대 일본 영화계의 변화를 이끈 소마이 신지 감독의 대표작이 약 40년 만에 개봉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유명한 감독이라는데, 동양 영화를 일본 위주로 좁게 읽어온 경우가 많은 서구권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감독이에요.
✔️ 이와이 슌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류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관심을 가져보실 만합니다.
✔️ 1980년대의 현란한 음악과 음향이 매우 매력 있게 쓰인 영화
✔️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해요.
청춘은 늘 아름답게 혹은 위태롭게 혹은 둘 다로 그려진다. 소용돌이 치는 미완의 감정들이 어쩌지를 못하고 파들거리는 각자의 세계. 자기 자신만으로도 팽창하다 터져버릴 것 같지만 외부와 또 끊임 없이 잡음을 일으키는 일상. 차라리 태풍이라도 와서 이 모든 것이 깨쳐지길 바라게 되는 마음 같은 것들. 여기까지는 청춘을 아름답고 빛나는 시절로 미화하여 기억하는 사람조차도 쉬이 공감할 법하다.
이 영화도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영화 속 리에의 대사에서 표현되듯, 곧 올 거라는 태풍이 차라리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쩌다 학교에 남아 버린 아이들이 점점 거세지는 태풍 속에서도 굳이 집에 가거나 연락하려는 마음 없이, 교실에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청춘이라면... 저는 그냥 한평생 응애 할랍니다. 농담이지만 반은 진담이다.
아름다운 시네마의 힘
이 영화가 아름답지 않았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에너지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제각각의 이유로 학교에 남은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흔히 이 영화를 소개할 때 사용되는 불안이나 본능 같은 단어들 또한, 청춘이나 사춘기나 청소년기라는 단어들 또한, 이 영화 속 아이들이 표출하는 에너지를 적확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최선은 결코 최적에 닿지 못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말하고 쓰며 이 영화의 주변을 더듬거려 보고 싶다.
현란한 80년대 음악과 독특하게 사용된 음향, 공간 사용 하나하나 다, 영화를 잘 모르는 눈으로 보아도 잘 만들었구나 감탄하게 되기는 한다. 책상을 쌓아 올리고 종이학을 매달아 둔 교실의 풍경, 거기에 마치 아이돌 군무처럼 원자처럼 제각각 서 있는 아이들, 비를 맞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모습은, 그 장면이나 정서에 대한 이해를 떠나서 장면적으로 힘이 있다. 마치 온도가 높아지면 활발해지는 원자의 운동 같다. 전자와 충돌이 증가하고 비저항이 커지는 원자의 모습처럼, 아이들의 모습도 그렇다.
태풍 안에서 제각각의 이유로 끓어 오르는 아이들의, 탁구공처럼 튀어오르는 에너지는 분명히 힘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8명의 아이들이 마치 하나의 사회를 표현한 것처럼도, 한 인간 안의 복잡다단한 정서를 표현한 것처럼도 보인다는 지점이다. 하나의 물체 안의 원자들처럼.
아름답지 않은 원시의 폭력
특히나 이 영화 속 아이들의 세계를 하나의 사회라고 한다면, 내 눈에 그것은 태곳적 원시의 사회로 보였다. 인간보다는 짐승의 그것과 조금 더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낳은 이들은 보호자로 기능하지 않거나 아예 부재한다. 아이들이 쌓아올린 보호의 수단은 그다지 보호할 만큼 힘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책상을 바리케이드처럼 쌓아 올린 것은 물리적 충격을 막기 위함이고 종이학은 으레 소원의 상징이나, 둘 다 이 영화 속에서는 장난스러워 보인다고나 할까, 조개 껍데기 가면 정도의 선사 시대 주술 수준으로 무력해 보인다. 그 안에서 생의 감각은 통제되지 않는다. 노래와 춤, 웃음과 폭주, 그리고 폭력.
특히 미치코에 대한 켄의 폭력 장면은, 개인적으로 관객석에 앉아 있기 괴로울 정도였다. 너무 괴로워 속이 좋아지지 않았고, 주먹을 자꾸 불끈 쥐게 되었으며, '미치코 그렇게 밀어내면 네 코어가 흔들려... 코어를 다잡고, 있는 힘껏 한 대 치고 발로 차...'라고 생각하게 되는, 자꾸 극을 극으로 보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 장면에 얼마나 깊은 괴로움을 느끼냐에 따라서도 평가가 갈릴 지점이 있을 것이다. 유독 길고 집요했던 이 장면은, 명백히 성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가해자의 입장을 고려한다. 그가 가정에서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결여와 그로 인한 그의 정신적 불안정 상태, 좋아한다는 이유로 미치코에게 이미 저지른 일과, 그 일에 대한 면죄부의 의도로 해석될 자리까지 내어준다. (심지어 이 영화의 시놉시스에서 “소년은 짝사랑했던 소녀에게 마음을 고백“한다고 표현한 문장도 있다. 누가 썼는지 몰라도 이건 좀 많이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 원색적인 세계에 출구는 있는가? 도쿄에서 태풍 속을 뛰어다니는 리에와 강당 앞에서 춤을 추는 아이들이 노래하는 '만약의 내일'에는, 출구가 있을까. 원시 사회를 벗어난다면, 이 미완성의 시기를 벗어난 '어른'의 세계에는 대안이 있는가.
이 영화 내에는 없다. 대사 하나 없이 잠시 등장하지만 보호자 역할은커녕 스스로를 돌보는 일조차 버거워 보이는 켄의 아버지, 그의 함석지붕에 아들이 내리꽂는 돌멩이, 무책임하게 피하던 약혼녀의 가족과 함께 가라오케 노래를 부르며 무성의하고 무기력하게 술에 몸을 맡긴 교사, 문을 열어 몸을 적시는 이상으로 태풍을 맞이할 수 없는 그의 세계...
<일본산고>의 일침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원시 사회 같은 폭력을 보며 대문호 박경리 선생님의 <일본산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삶보다는 죽음, 희망보다는 절망을 향해 있다. 출구보다는 막다른 길처럼 느껴진다.
"비상을 꿈꿀 수 없는 사로잡힌 영혼에게 깃드는 것이 허무주의다. 그리고 쾌락이다. 남경 학살, 백주의 난행은 일본군의 전략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의 여실한 참극, 절망 없이 그 짓을 했을까.
일본 문학에서 탐미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썩어가는 육체, 괴기스러움에 대한 쾌락, 그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살의 미학도 실은 일그러진 사디즘을 포장해낸 것에 불과하고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산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또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추구야말로 문화의 시발점인 동시에,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박경리, <일본산고>. 이하 큰따옴표는 모두 같은 책 인용.)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원시적인 사회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로망 포르노 (다시 말해 포르노) 연출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소마이 신지라는 감독에게서도 박경리 작가가 비판한 지점이 느껴졌다. "감각만 살아나서, 마치 달팽이처럼 축소되고 밀폐된 채 끈적끈적한 점액을 남기며 기어다니는 이런 형국에 불어닥친 세계의 바람" 앞에서 "기능 면으로는 재빠르게 받아들여 전환할 수 있었겠지만 의식세계는 일대혼란"이었던 나라의, 말초신경만 남아 버린 허무주의.
이 영화에서의 청춘은 결국 허무주의로 치닫는다. 1985년 작품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에로·구로(그로테스크)·난센스·칼과 무의미, 그것은 칼의 세계에서는 필연적인 것으로 황무지와도 같은 의식을 여실하게 드러낸" 유행이 1920년대의 것이었다면, 일본 문화에서 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진 작품 쪽이 더 보고 싶다.
아름다운 카메라의 움직임, 아름답지 않은 사상의 부재. 그곳에서 나는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임을 절감한다. 나는 "인생은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며 보다 고통스럽게 무량한 우주의 비밀을 헤치고 나가는 과정"이라는 박경리 선생님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저는 일본의 민족성을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스스로도 희생자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체제입니다. 체제가 뭐냐를 물어야지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누가 언제 청춘이 반짝반짝 솜사탕처럼 아름답기만 하다고 했나. 죽고 싶은 순간도 있고, 미완성의 감정들이 나를 추동해서 아주 기묘한 짓거리들을 하며 바보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지만... 이 정도의 귀결이 보편적 청춘인가? 나와 주변인의 청춘에 그런 허무주의가 없었음이 단순히 우리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래 뭐 그랬나보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비릿한 것만이 청춘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야말로 진짜 청춘이고 다른 반짝거리는 영화들은 마치 가짜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커팅된 보석의 일면처럼 다양한 청춘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중 하나를 너무나 잘 포착했을 뿐이다. 에너지는 아름다웠으나, 그 에너지 뒤에 어떤 사상의 결여가 있는가 생각하면 이 영화가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마지막 꼭 해두고 싶은 말은 결코 일본을 모델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라는 박경리 선생님의 말을 생각하며 역시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거 내 청춘 아니에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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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친구였던 적이 있을까
-파수꾼-
"우리의 10대는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입니다. 넘치는 에너지에 비해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필요한 절제와 자성은 부족하기 일쑤입니다. 보통의 10대는 성숙한 말과 행동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친구 관계에서의 다툼도 많고 즐거움도 많은 시기, 10대 남학생들의 관계에서는 때때로 '힘의 논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적당한 사과만 해도 되는 친구, 사과조차 필요없는 친구,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친구까지 친구마다 미묘하게 다른 관계의 차이는 대등하지 않은 힘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여기서 힘이란 무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공부 잘하는 것, 집에 돈이 많은 것, 부모님이나 형제가 권력자인 것 등 다양한 종류의 힘이 있습니다. '내가 더 힘이 세니 내 말에 따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와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영화 '파수꾼'의 기태(이제훈)처럼 말이죠. 영화 '파수꾼'은 10대의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이제훈과 박정민을 비롯한 주조연들의 뛰어난 연기, 시간의 순서를 뒤섞으며 미스터리와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정교한 플롯 등 높은 완성도를 갖춘 윤성현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파수꾼'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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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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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또SF [드니 빌뇌브 또 SF 라는 뜻]
'라마와의 랑데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sf 소설가이자미래학자 아서 C. 클라크가 1973년에 발표한 장편 SF 소설로 출판되자마자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모두 수상하면서 SF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입니다.
각본은 <플라워 킬링 문>의 에릭 로스, 연출은 <듄>시리즈, <블레이드러너 2049>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가 맡았다고 하는데요. 각 분야의 거장들의 손길로 탄생하는 영화라니! 정말 기대가됩니다.
4월 2주차 씨네뉴스 함께해요
영화 <브리짓 존스> 9년만에 속편 개봉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속편인 <브리짓 존스: 매드 어바웃 더 보이>가 약 9년 만에 나온다고 합니다.영화는 내년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 전 세계에서 개봉할 예정이며 그동안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아온 배우 러네이 젤위거와 영국 배우 휴 그랜트가 다시 호흡을 맞춘다고 합니다.
<조커: 폴리 아 되> 1차 예고편 공개
영화 <조커: 폴리 아 되>가 11일 티저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조커: 폴리 아 되>는 2019년 개봉하여 전 세계 10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달성했으며 국내에서도 525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조커>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다시 조커 역을 맡았고 팝가수 레이디가가가 할리퀸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기생수: 더 그레이>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비영어 부문 1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가 글로벌 톱10 시리즈 비영어권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일본 만화 <기생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든 스핀오프로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라인업으로 전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류준열 X 유해진 <올빼미> 중국에서 리메이크, 판권료 역대 최고가액
배우 류준열, 유해진 주연 <올빼미>가 중국에서 리메이크 된다고 합니다. NEW에 따르면 이번 판권 계약은 중국에 판매된 한국 영화 리메이크 판권료 중 역대 최고가액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2년도에 개봉한 영화 <올빼미>는 류준열, 유해진의 압도적인 열연과 안태진 감독의 밀도 있는 연출로 33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인조와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가미한 ‘팩션’영화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 차기작 ‘라마와의 랑데부’ 연출
<듄> 시리즈를 제작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차기작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감독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낙원의 샘’등 아서 C. 클라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SF 소설 ‘라마와의 랑데부’의 연출을 맡았으며 2130년대를 배경으로 태양계로 진입하는 원통형 외계 우주선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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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자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개봉전 시사에서 영화 관람 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살면서 가까운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다. 나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어 전달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감정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시킨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자식을 이해하려 애쓴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가 무엇을 원해서 우는지 이해하려 애쓰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내뱉는 말에 따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추측한다. 아이가 크면 더 이해하기가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이가 10대가 되면서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서로 대화는 적어지고 그에 따라 서로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간다. 부모는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어렵고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자식을 이해하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영화 <더 썬>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주인공 피터(휴 잭맨)는 전처인 케이트(로라 던)와 이혼 후 베스(바네사 커비)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케이트가 피터의 집에 찾아와 두 사람의 아들인 니콜라스(젠 맥그라스)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엄마인 케이트와 살고 있는 니콜라스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케이트는 자신이 니콜라스를 바로잡으려 애쓰다 잘 되지 않아 전남편인 피터를 찾아간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전아내를 보는 피터의 모습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마치 착한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초반에 등장한 피터와 케이트의 모습을 보면 케이트의 육아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고, 피터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피터는 자신의 집으로 아들 니콜라스를 데려와 생활하게 한다. 새로운 학교에 등록도 해주고 최선을 다해 새로운 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현재 아내인 베스를 설득하기도 한다.
피터가 아들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아버지로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모든 면에서 피터는 아들 니콜라스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 준다. 그리고 니콜라스도 그런 아버지의 노력에 따라 학교도 다시 다니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모습 속에서 니콜라스는 왠지 불안해 보인다. 그가 지금 정말 안정이 된 건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지를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이야기 내내 한편으로는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찝찝함을 준다. 그러니까 아버지 피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무언가 해결된다는 느낌을 주지만, 니콜라스가 혼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불안해 보이는 아들 옆 좋은 아버지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 중 가장 부정적인 일은 바로 피터와 케이트의 이혼일 것이다. 부모의 이혼을 직접적으로 겪은 아들 니콜라스도 그 과정에서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스는 아버지가 없을 때, 아버지와 재혼한 베스에게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 가까운 베스에겐 그런 니콜라스의 모습에서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니콜라스는 아버지 피터 앞에서는 안정적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타인인 베스 앞에서는 조금씩 진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부모 피터와 케이트가 진짜 니콜라스를 이해하고 있는지 영화 내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는 아버지 피터를 중심인물로 내세우면서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위험함을 훌륭하게 화면에 담고 있다. 실제로 처음 케이트가 등장했을 때 그는 부모 노릇을 잘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아들의 입장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보호자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피터의 모습은 점점 케이트와 비슷해진다. 피터가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피터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피터는 그 자신도 권위적이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아들 니콜라스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자신이 맞는다고 생각한 해결방법을 니콜라스에게 강요할 뿐이다. 니콜라스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 근원적인 상처는 하나도 치유되지 못한다.
피터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아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 애쓴다. 제 3자인 관객이 보기에 그는 다른 어떤 부모보다 좋은 아버지다. 단지 그가 전처와 사이가 멀어지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과거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한순간의 상처를 좋은 아버지가, 좋은 어머니가 모두 치유해 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초반 니콜라스가 피터의 집으로 가게 되는 과정에서 영화는 케이트와 니콜라스, 피터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통해 교차로 보여준다. 세 사람의 얼굴에 담긴 고민은 하나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의 도착점은 모두 다르다. 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생각은 영화 내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영화 속 피터는 재혼 한 이후 갓 태어난 아들이 하나 더 있다. 그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이지만 니콜라스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두 번째 아들과는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 너무나 좋은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결과는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비극
우리는 니콜라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부모님 피터와 케이트는 니콜라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에 대한 표현도 하지만 니콜라스는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영화를 본 누군가는 그런 예측불가능한 니콜라스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부모의 사랑과 관심보다는 전문적인 치료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연출한 직전작인 <더 파더>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 <더 썬>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자식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사랑만으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치유될 수 있는지를 긴장감 있게 담고 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훌륭하다. 피터 역을 맡은 휴 잭맨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만 의도하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가면서 아들을 이해할 기회를 놓쳐 무너지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이미 무너진 어머니 케이트를 연기한 로라 던의 연기도 훌륭하고, 어떤 심리 상태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니콜라스 역의 젠 맥그라스의 연기가 특히 눈에 띈다.
영화 <더 썬>은 자식이 가진 트라우마를 부모가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부모가 그런 자식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진짜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 아이를 위한 좋은 육아가 정말 아이의 심리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던져준다는 측면에서 무척 훌륭하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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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담 웹 |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코마에 빠뜨리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위험에 빠진 시민을 구하기 위해 뉴욕 시내를 바쁘게 가로지르는 구급대원 '캐시 웹'(다코타 존슨). 여느 때처럼 교통사고 때문에 다친 시민을 돕던 그녀는 강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동료 '벤 파커'(아담 스콧)의 도움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그날 이후 캐시는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먼저 보는 환영에 시달리고, 미래의 사고와 비극을 먼저 알았지만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든다.
그러던 중 그녀는 거미처럼 천장을 기어 다니는 적 '이지키얼 심스'(타하르 라힘)가 세 여학생 '줄리아'(시드니 스위니), '아냐'(이사벨라 메르세드), '매티'(셀레스터 오코너)를 죽이는 미래를 목격한다. 그들을 구하려다가 싸움에 말려든 캐시는 미처 몰랐던 이지키얼과의 악연을 발견하고, 그를 막기 위해 '마담 웹'으로 각성한다.
<마담 웹>, SSU 최악의 자충수
<아이언맨>과 <어벤져스>로 슈퍼 히어로 영화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MCU. 이에 다른 스튜디오들은 MCU의 성공 방정식을 허겁지겁 벤치마킹했다. 그 결과 2010년대 할리우드에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열풍이 불었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을 앞세운 DCEU, 고질라와 킹콩을 내세운 몬스터버스,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 같은 고전 괴물을 엮어 만든 유니버셜의 다크 유니버스 등이 연달아 출범했다.
SSU(소니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도 후발주자 중 하나다. 소니 픽처스는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MCU에 출연하는 상황을 활용해 스파이더맨의 빌런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꾸렸다. 시작은 좋았다. 톰 하디의 <베놈>이 월드와이드 8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다. <베놈 2>와 <모비우스>로 MCU와의 연계를 시도하며 세계관도 확장했다.
하지만 SSU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았다. <베놈> 시리즈와 <모비우스>의 경우 비주얼은 화려하나 서사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또 MCU와의 연계에만 목을 맬 뿐, 스파이더맨을 언제 어떻게 등장시킬지 확실한 로드맵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개된 신작 <마담 웹>은 끝내 SSU를 혼수상태에 빠트렸다. 히어로 영화로서도, SSU의 일원으로서도 무엇 하나 확실한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보호자를 꿈꾸다
히어로 영화의 구성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영웅으로 거듭나는 서사, 빌런과의 대립, 액션을 비롯한 볼거리. 안타깝게도 <마담 웹>은 셋 중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우선 <마담 웹>은 새 히어로의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히어로 영화로서의 콘셉트는 존재한다. 모성애를 중심으로 여성 서사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콘셉트의 설득력이 부족했다.
입양아로 자라난 캐시는 평생 친엄마를 원망했다. 그녀가 아마존에서 만삭의 몸으로 거미 연구를 진행하다가 출산 직후 사망했기 때문. 하지만 캐시는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의 기원을 파헤치던 중 미처 몰랐던 진실을 발견한다. 엄마가 자기 희귀병을 고치기 위해 거미 연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는 사실을. 이에 그녀는 엄마의 모성애와 희생정신을 본받고, 거미에게서 받은 예지 능력을 활용하기로 결심한다.
더 나아가 캐시는 자기처럼 가족 문제로 고통받는 소녀들을 보살피고, 그들이 히어로로 거듭나는 길을 알려주는 멘토로 거듭난다. 그렇게 그녀는 엄마가 정신병원에 갇힌 줄리, 부모가 불법이민자라 추방당한 아냐, 사업가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매티와 한 가족이 된다. 이러한 여성 서사를 강조하는 장치도 여럿이다. 캐시의 아버지에 관한 언급이 전무한 점, 이지키얼 심스와 벤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여성인 점이 대표적이다.
설득력 없는 시나리오
하지만 <마담 웹>의 헐거운 각본은 영화의 콘셉트와 히어로의 신념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캐시와 나머지 세 캐릭터가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순전히 우연이다. 캐시는 미래에 히어로가 될 세 캐릭터가 이지키얼 심스에게 살해될 미래를 '우연히' 목격하고, 이에 그녀들을 구해준다. 도망치던 중 캐시는 셋 모두와 '우연히' 마주친 인연이 있고, '우연히도' 셋 모두 가족 무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계속되는 우연 외에 캐시가 이들에게 그토록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 세 소녀가 캐시를 엄마처럼 신뢰하는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들이 서로 유대감을 쌓는 서사도 얕다. 식당에서 다른 남자애들과 눈이 맞아 노는 장면, 캐시가 CPR를 알려주는 장면 정도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유지, 희생정신울 계승하겠다는 결심은 공허해진다.
그 결과 <마담 웹>은 러닝타임 116분 중 첫 20분만 흥미롭다. 캐시가 예지 능력을 처음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플래시백과 포워드를 오가는 편집 덕분에 꽤 신선하다. 그녀가 예견한 비극을 못 막았다며 자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캐시와 벤 파커의 티키타카도 다른 세 소녀와의 대화에 비하면 합이 잘 맞는다. 기승전결 중 기가 가장 눈길을 끄는 부작용이 발생한 셈이다.
역할이 없는 빌런
이에 더해 빌런 이지키얼은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은 히어로를 위기에 빠트린다. 그는 히어로를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히어로는 빌런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더 굳은 신념을 지닌 영웅이 된다. 배트맨이 조커를 만난 후에 다크나이트가 되듯이. MCU의 스파이더맨이 그린 고블린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사람들의 선함을 믿고 싸웠듯이.
이지키얼의 경우 마담 웹의 아치 에너미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예지 능력을 갖고 있는 마담 웹은 자기 능력을 활용해 미래를 바꾼다. 반면에 이지키얼은 예지 된 미래를 바꾸려고 발버둥치지만 끝내 실패한다. 즉, 그들의 운명과 자유 의지의 차이점을 대조하는 식으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물론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히어로 영화에서 신선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데드풀 2>,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 모두 같은 문제를 다뤘기 때문.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지키얼 때문에 캐시의 엄마가 죽었으니, 둘의 대립을 감정적으로 격화시킬 수도 있었다. 자유와 통제라는 가치의 충돌을 배경으로 우정 싸움을 다뤘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처럼.
하지만 <마담 웹>은 이지키얼에게 이렇다 할 플롯을 전혀 부어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왜 캐시의 엄마에게 접근해서 거미를 훔쳤는지, 훔친 거미를 어떻게 활용해서 뉴욕을 주름잡는 거물이 됐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이 모든 이야기를 관객이 직접 추측하고, 유추해야 한다. 이처럼 빌런이 평면적이고, 플롯 상의 도구로만 느껴지다 보니 <마담 웹>은 긴장감이 현저히 부족하다.
볼품없는 액션
심지어 세 번째 구성 요소인 볼거리도 미흡하다. 히어로 영화에서 액션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 단지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액션은 히어로와 빌런의 대립이 절정에 달했음을 암시하고, 또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영화와 관객이 맺은 암묵적이고 장르적인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액션 대신 원더우먼의 일장연설로 클라이맥스를 채운 <원더우먼 1984>가 당혹스럽다고 실망스럽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던 이유기도 했다.
<마담 웹>의 액션은 일단 분량이 부족하다. 기차역, 식당, 뉴욕 시내와 부두에서 펼쳐지는 시퀀스 4개가 전부다. 액션의 구성도 인상적이지 않다. 캐시가 먼저 본 미래를 피하는 전개가 되풀이되기 때문에 긴장감이 없다. 캐시를 제외한 나머지 세 주인공이 히어로로 각성해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고, 전작인 <베놈>과 <모비우스>에 비해 CG도 어색하다. 종합하면, 히어로 영화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액션도 보여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 대목이야말로 <마담 웹>의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SSU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으니까. 사실 <베놈> 시리즈나 <모비우스>에서도 영웅이나 안티 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빌런과 싸워야 하는 동기나 원인도 뚜렷하지 않았다. 배우들의 열연과 CG에 힘입은 액션과 비주얼만이 강점이었다. 그런데 <마담 웹>은 SSU의 마지막 미덕조차도 갖추지 못했다.
SSU에 비수를 꽂다
더 나아가 <마담 웹>은 존재 의의조차 의문이다. 쿠키 영상조차 없기 때문. <베놈 2>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홈>과 연결되는 쿠키 영상으로 기대감을 키우며 실망스러운 완성도를 상쇄한 바 있었다. <모비우스>도 벌쳐와 모비우스의 만남을 보여주며 SSU의 미래를 궁금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마담 웹>에서는 쿠키 영상도 없고, 극 중에서도 스파이더맨이나 다른 빌런을 암시하려는 시도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소니가 극장 개봉을 선택한 이유도 의문이며, 자연히 SSU가 치러야 할 대가도 꽤나 가혹해 보인다. SSU를 향한 얼마 안 되는 신뢰와 기대치마저 무너뜨렸으니, 다음 주자인 <크레이븐 더 헌터>와 <베놈 3>의 전망은 밝으래야 밝을 수가 없다.
Dreadful 끔찍한
지금이야말로 OTT를 활용할 타이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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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오랜기간 사랑받아온 애니메이션 <쿵푸팬더>가 8년만의 신작 <쿵푸팬더4>로 돌아왔습니다.
<파묘>는 장기흥행을 멈추고 2위로 내려왔는데요. 이번주 박스오피스 함께해요[국내박스오피스]
<쿵푸팬더4>는 지난 주말 40만여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영화는 3편 이후 8년 만에 나온 신작으로, 용의 전사로 거듭나 포가 스승 마스터 시푸의 명에 따라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 나서면서 겪는 모험을 그렸습니다. <파묘>는 12만여 명을 동원하며 2위, 일본 멜로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5만여 명을 모아 3위에 올랐습니다.
[북미박스오피스]
미국 독립영화사 A24가 제작과 배급을 맡은 <시빌 워>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내전이 벌어진 미국 사회의 전시 상황을 종군기자의 시점에서 담으며 커스틴 던스트를 비롯하여 와그너 모라, 스티븐 맥킨리 헨더슨, 케일리 스패니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엑스 마키나>로 알려진 알렉스 가랜드가 연출을 맡았으며 제작비 5,000만 달러가 들어간 A24의 역대 최고 제작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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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적인 연대의 꿈틀거림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4번째로 다가간 작품이다. 두 작품 역시 굉장히 재밌게 본 영화이고, <아가씨> 역시 기대하며 봤다. 결과는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꼈다. 아직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앞서 두 작품과 비교를 한다면 <아가씨>가 조금 더 위트 있는 재미를 던진다. 그러나 반대로 퀴어 요소와 귀족 남성의 모순을 꼬집는 주제, 어두운 필름 촬영기법으로 영화를 다 본 후 여운을 남긴다. 달콤한 막대사탕 같은 영화 같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가씨> 스틸컷
제작진
영화는 칭찬할 게 많다. 시나리오도 시나리오 이거니와, 시나리오 배경인 1930년대 일제시대 건축 양식과 실내 장식, 귀족 의상과 장신구 등 미술팀과 의상, 분장팀의 노력과 준비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촬영도 뛰어났다. 히데코(김민희)를 씻겨주는 장면에서 숙희(김태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히데코의 모습과 같이 등장인물 시선으로 바라보는 촬영으로 영화를 흥미 있고 몰입도 있게 볼 수 있다. 카메라 렌즈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해 고풍스럽고 고급진 귀족 느낌을 내며 영화가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편집은 또 어떠한가. 제1부는 숙희의 시점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제2부는 히데코, 제3부에서 이 두 시선이 통일되어 현재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이 둘의 시선을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영화는 몽타주 기법으로 편집한다. 덕분에 우리는 복잡해 보일 수 있는 인물 관계도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황, 문제점들을 단번에 이해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종합예술의 마술이지 않는가!
비유와 상징
영화가 재밌었던 이유는 대사의 농담도 있었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 상징물들과 비유 표현들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가령, 백작이 히데코를 다 넘어왔다는 신호로 "다 익은 거 같다"라는 대사와 함께 먹은 복숭아의 과즙은 백작이 히데코를 유혹해서 둘의 관계를 붙게 하겠다는 의미가 있다. 또, 숙희가 히데코 몰래 방을 뒤지면서 발견한 밧줄은 히데코를 챙겨줬던 죽은 이모를 히데코가 기억하게 하는 기억의 매개체이자 히데코가 이모와 똑같이 자살할 것이라는 앞으로의 예측, 실제로 자살하려고 끈을 묶었지만 숙희가 히데코를 붙잡으며 죽지 말라고 애원하는 장면에서는 숙희와 진실과 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연인이 되는 사랑의 매개체로 추측할 수 있다.
모순
<아가씨>는 크고 작은 모순으로 나뉘어 있다. 큰 모순은 당시 귀족 남성 사회의 모순이다. 귀족이라면 귀품 있고 매너와 지성이 풍부한 사람일 거 같지만 그들은 히데코(김민희)가 읽어 주는 야한 소설의 내용을 듣고 흥분하며 야한 소설을 사기 위한 경매장에 들락날락 거리는 불순한 존재들로 나온다. 특히 경매장을 운영하는 코우즈키(조진웅)는 어린 히데코를 협박하고, 추행하여 그녀가 강제로 야한 소설을 낭독하도록 만들게 한다. 그들의 모습들은 그저 발정 난 개처럼 야한 것밖에 모르는 불순한 귀족 남성들이기에 일반적인 귀족에 대한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작은 모순은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이다. 히데코 인생을 망치러 온 그녀의 구원자인 숙희는 히데코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백작(하정우)과 함께 히데코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워 히데코 하녀로 곁에 있는다. 하지만 점차 히데코와 숙희는 사랑에 빠지고 둘은 백작과 코우즈키를 피하여 사랑의 도피를 한다. 퀴어 요소는 이성애라는 범위에서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건 모순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건 죄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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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영화에서 생략된 세계관 및 스토리가 있습니다 | 듄 리뷰 | 듄 영화리뷰 | 듄 설명 | 듄 분석 | 듄 해석 | 듄 스토리 | EBS |
? 듄 영화리뷰 - 영화 세계관 스토리 요약정리(*스포없음)
- 베네 게세리트, 초암공사, 퀴사츠 헤더락 등
- 수정을 통한 재업로드 버전입니다
-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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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VS. 콩 영화 후기 / 몬스터 세계의 통합 / 새로운 몬스터버스의 탄생 / 고질라와 콩의 역대급 맞짱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고질라 VS. 콩”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있을법한데, 쿠키영상이 없더라구요~#고질라, #콩, #몬스터버스, #블록버스터, #액션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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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라이스 스피릿> 메인 예고편
죽은 아내가 살아 돌아왔다?!
뮤즈였던 전처 ’엘비라’의 죽음 이후
슬럼프에 빠진 작가 ‘찰스’는
영감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 ‘루스’와 함께
심령술사 ‘마담 아카티’를 찾아가 강령회를 제안한다
‘마담 아카티’의 진지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들 코웃음 쳤지만
그 날 밤, ‘찰스’ 앞에 죽은 ‘엘비라’가 나타나는데…
목숨 건 살벌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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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우먼 인 윈도>
[2021년 5월 14일, 넷플릭스 공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세상은 창문 너머로 바라봐야 안전하다. 광장 공포증이 있는 정신과 의사 애나 폭스(에이미 애덤스). 그녀가 건넛집에 이사 온 러셀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목격한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지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광장 공포증으로 집에서만 지내는 정신과 의사. 그녀는 건넛집에 이사한 가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창문 너머 잔혹한 범죄를 목격한다. 진실을 찾으려는 그녀의 집착, 그 끝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