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8-08 16:20:45
8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기생충> 제치고 네온 역대 흥행 1위로 오른 <롱레그스>
북미 인디영화 흥행 1위 등극한 <롱레그스>
영화는 한 FBI 요원이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연쇄살인범 롱 레그스를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역대급 살인마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평단의 찬사를
받고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피그>, <렌필드>, <드림 시나리오> 등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에 출연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니콜라스 케이지는 새로운 장르와 도전을 통해 관객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영화 <롱레그스>가 58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기생충>을 제치고 북미 독립 배급사 네온의 역대 흥행 1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이는 최근 10년간 북미 독립 호러 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기록한 것입니다. 제작비 1000만 달러로 제작된 <롱레그스>는 2억 3000만 달러가 투입된 <퓨리오사>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롱레그스> 줄거리
FBI 요원 리 하커는 찾기 힘든 연쇄 살인범의 미해결 사건에 배정된 재능 있는 신입 요원이다. 사건이 복잡하고, 오컬트 관습과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증거가 사라지면서, 하커는 무자비한 살인범과의 개인적 연관성을 발견하고, 그가 다시 공격하기 전에 그를 막기 위해 시간과 경주해야 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영화화 전효성 주연
전효성 배우가 영화 <악마가 될 수밖에> 주연 배우로 캐스팅되었습니다. 살해 협박에 시달리던 묻지마 폭행 피해자 ‘민아’가 보복 범죄를 응징하기 위해 악마로 살 수밖에 없었던 광기와 집념의 시간을 그린 액션 영화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김태곤 감독의 차기작 <더 웨이킹> 주연으로 캐스팅
배우 최우식이 김태곤 감독의 차기각 <더 웨이킹> 주연으로 낙점되었습니다.
<더 웨이킹>은 거인이 등장하는 크리처 물이며 냉동 창고를 정리하는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 거대한
힘을 주는 돌을 우연히 갖게 되고 사건에 휘말리는 준호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해당 작품은 내년 상반기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파일럿> 200만 관객 돌파
<파일럿>이 개봉 9일차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올여름 개봉 영화 중 최단기간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뜨거운 입소문으로 흥행 기록을 경신중입니다.
영화는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주인공 한정우가 파격 변신 이후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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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신과 죄책감을 거쳐… 마침내 ‘탄생’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이레’는 아이가 태어난 후 21일의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레(일곱 날)’가 세 번 이어진다는 의미다. 이 기간에는 아이가 부정不淨 탈 만한 것은 뭐든 거리 둬야 한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아이가 새로운 세상으로 무사히 진입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영화 〈세이레〉는 세이레 기간에 한 가족이 겪는 미스터리한 일을 담은 스릴러 영화다. 줄거리는 이렇다. 미신에 민감한 아내는 아이의 세이레가 지날 때까지 남편 우진에게 각별한 몸조심을 당부한다. 그런데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장례식장에 가야 할 일이 생긴다. 결혼 전 몇 년간 사귄 전 애인 세영의 부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진은 아내에게 누구의 장례식인지를 숨기고 가까스로 장례식 참석을 허락받는다.
그런데 우진이 장례식장을 다녀온 이후 갑자기 아이가 아프기 시작한다. 이에 아내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우진이 부정을 털어낼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제안한다. 가게에서, 사람에게서 물건을 훔치면 다른 사람에게 부정이 옮겨간다는 것. 우진은 미신에 집착하는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아이의 건강과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이를 따른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우진은 얼결에 옆집에 사는 임신한 처형에게서 물건을 훔치는데, 그 이후 처형이 유산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우진은 이제 더는 아내의 말을 귀찮은 말 정도로 취급할 수 없다. 우진은 결심한다. 죽은 전 애인 세영의 장례식 발인에 참석해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려야겠다고 말이다.
사실 세영은 우진의 아이를 임신한 후 유산한 적이 있다. 아이를 원치 않았던 우진은 겉으로는 세영을 위로했지만 속으로는 안도하는 듯한 기색을 보인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한껏 예민해진 감각으로, 세영은 우진의 위로가 거짓임을 간파하고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러고는 결국 우진과 헤어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른다.
세영과 결별한 후 가벼운 죄책감 혹은 말할 수 없는 홀가분함 정도의 감정만 갖고 있던 우진은 장례식 참석 후 심각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자, 그제야 과거의 사건을 본격적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영화는 우진이 끝내 죄책감을 뒤로 하고 아이가 무사히 세이레를 통과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여기서 발생하는 긴장을 굉장히 밀도 높게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미신은 죄책감, 윤리와 더해져 ‘근거 없는 믿음’ 그 이상으로 의미가 격상하고 축복받아 마땅한 생명이 사실은 다른 누군가의 생명에 빚진 상태일 수 있음이 드러난다. 그 모든 것이 끝난 후 평온히 잠자는 아이를 보며 오열하는 우진의 얼굴에는 그 모든 복잡다단함이 담겼다. 〈세이레〉는 배우들의 열연과 익숙한 소재인 미신을 스릴러와 연결하는 탄탄한 각본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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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배트맨]의 리들러, 폴 다노를 처음 접한 작품 [루비 스팍스 Ruby Sparks](2012)
"[500일의 썸머]를 봤다면 6.5, 안 봤다면 7.0, 난 봤으니까 6.5"
회사후배 추천으로 2016년에 봤으며, 사전 정보 전혀 없이 본 몇 안되는 영화로 네이버영화에 나와 있듯, 멜로/로맨스, 판타지, 코메디 영화다. 비중으로 보면 멜로/로맨스 60%, 판타지 30%, 코메디 15% 정도. 주연 배우인, 폴 다노Paul Dano 와 조 카잔Zoe Kazan 는 모두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영화 보고 검색하다고 알게 된 것은 이 둘이 진짜 부부라는 사실. 두 명의 비중이 앞도적으로 많으며, 그 외에는 조연이라기보다 필요한 역할만 하는 롤플레이어이다. 아네트 배닝, 안토니오 반데라스, 스티브 쿠건 등 얼굴이 익숙한 배우들이 은근히 나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주인공 형 역할을 크리스 메시나Chris Messina란 배우였는데, 이 배우 역시 처음 봄.
연인들의 심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500일의 썸머](2009)를 본 사람이라면 [루비 스팍스]의 방식이 그리 새롭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500일의 썸머]는 네이버에 코미디, 드라마, 멜로/로맨스로 되어 있는데, <루비>와 <썸머>의 차이는 판타지 요소가 있고 없고. <루비>는 작가인 남자주인공의 글(책) 속에서 나온 가상의 인물이다. 가상이던 실물이던 연인과의 아슬아슬한 감정의 관계는 똑같다. 다만, <루비>는 주인공의 가상인물이자 글을 쓰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특징.
판타지의 비중이 꽤나 되는 영화이나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편이다. 세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초반이 판타지성격이 강하고, 중반은 현실적, 후반부에는 공포도 조금 있다. 엔딩을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여운이 남을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에 <루비>가 아니지만 <루비>를 또 만나는 장면은 [500일의 썸머]와 유사한 듯. "멜로/로맨스는 그래도 해피엔딩 법칙을 따른 듯"
<루비>의 매력이 영화의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는데, 항상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약간의 단점이다. 옷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써서 입혀 놓았는데도 매력적이지가 않은 경우가 있다. <썸머>는 때때로 재수가 없는데도 항상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과의 차이. 이것이 조 카잔(루비)과 주이 드샤넬(썸머)이 지닌 여배우로서의 근본적인 매력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으나. 신기하게도 2022년 현재 조 카잔은 당시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멜로/로맨스 좋아하는 분에게는 강추하며, [500일의 썸머]와 비교해서 봐는 것도 흥미로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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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참으면 돼. 아니, 너만 참으면 돼.
*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뒤로 가셔도 됩니다.
시끌벅적한 시장 입구. 차를 타고 상견례장에 도착한다. 부모를 창피해하는 듯 아닌 듯하는 딸과 예비 사된 내외를 기다리고, 각자의 자녀를 칭찬하고, 조금은 위태해 보였던 상견례는 끝이 난다.
주인공 오복은 상견례를 위해서 입었던 예쁜 옷을 입고, 구 시장 철거 반대대책위의 술자리에 합석한다. 가방에는 딸에게 줄 큰돈을 넣어둔 상태였다. 영화의 배경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고 관람했던 터라 혹시 돈은 도둑맞는 것인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가방을 단단하게 메고 귀가하는 오복을 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아침의 오복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숙취 때문인가,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하던 찰나 지하철 계단에서 지나가던 학생이 말해준다.
"아주머니, 피..."
'그래. 영화가 진행되려면 뭔가의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지.'라고 생각했고, 그 사건은 영락없이 오복이 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에 걸리면서 병원비에 드는 돈과 딸 결혼식에 드는 돈에 의해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가 보다 했다. 그런 일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술 마시고 가라며 잡아끌던 그 손을 '더럽다'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말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목욕탕에 가서 씻고, 속옷을 빨고, 병원을 가고, 집에 눕는다. 벌써 안 쓴 지 한참 된 생리대를 다시 사용한다. 가족들은 가게에 나가지 않는 오복을 걱정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나이가 있으니까 그냥 몸이 안 좋으니까 했다. 그러는 중에 가해자는 오복의 집에도 다녀갔다. 걱정하는 척, 상황을 염탐하러 간 것으로 보였다. 아니, 사실 가해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전혀 인식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속앓이를 하던 오복은 대책위의 가장 어른에게 '사과'를 받아다 달라고 했다. 대면하기 조차 싫은 그 마음과 '왜', '무엇 때문에'를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싫은지를 너무나 알고 있기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며칠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사과였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마 오복에게는 '나만 참으면'의 주문이 작용했으리라.
다만, 그런 인내와 용서에는 진심 어린 사과가 동반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강에 배 한 번 뜬 거라는 거지 같은 소리도 몸에 난 상처도 잘못했다는 사과 하나면 충분했을지 모른다. 오복도 그 시대의 사람이었기에, 그런 상황이 있을 때는 여자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온 세대였기에 더욱이.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과는 받아지지 않았고, 시장에는 누군가가 피해를 당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대책위의 중심에 있었던 가해자를 다들 필요로 했다. 지금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 공론화가 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될까 봐 다들 전전긍긍했다. 시장 안의 누구도 오복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물론 안 한 사람도 있었지만. 오복은 그가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에게 정의로의 소리를 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만 했다. 분명히 잘못한 사람인데 사람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그 상황을 오복은 지켜보아야만 했다.
결국 오복은 딸에게 이야기했고, 고소를 진행했다. 가해자는 오복을 직접 찾아왔다. 욕을 하고 물건을 발로 찼다. 오복은 바라지 않았던 '공론화'가 이뤄졌다. 이렇게 싸움이 끝날 줄 알았다. 피해자가 명확했고, 가해자가 명확했기에 그놈이 처벌받을 줄 알았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사정 모르는 남편 놈은 '그런 일은 여자가 응해주지 않으면 안 일어난다'는 소리나 해 댔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술에 잔뜩 취해서도 그랬다. 사과를 받아다 줄 생각도, 아내인 오복의 편에 서 줄 생각도 없었다. 다만 소유한 물건이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본인의 울분을 토해낼 뿐이었다.
증인을 해주기로 했던 사람도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딸의 결혼식 날, 하혈이 멈췄다. 몸의 상처는 아물었다. 몸의 상처가 아물었으니 없던 일로 하라는 징조 같았다. 그렇게 어디서나 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에피소드'의 하나로 끝나는 듯싶었다.
그러나, 오복은 호소문을 작성했다. 동생들을 가르치느라 자식들을 키우느라 배우지 못해 맞춤법을 틀려도 괜찮았다. 평생을 해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시위도 해 봤는데, 이런 건 못해볼까 싶었다. 이제 말 많고 탈 많던 첫째 딸의 결혼식도 끝이 났다. 오복은 목에 피켓을 걸고 가해자의 앞에 섰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왜 제목이 갈매기인가'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았다. 어떤 장르의 어떤 내용의 영화를 찍더라도 제목을 갈매기리고 했을 것이라는 감독님의 말에 웃음이 났다. 갈매기의 Gull과 소녀의 Girl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에도 의미가 조금은 있었는데 발음이 전혀 다르다고 해서 지금은 이야기하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영어 무지렁이가 들었을 때는 암만해도 비슷한 것 같지만.
질문의 기회가 있었다.
카메라가 움직임이 없이 바라보는 듯한 연출이 굉장히 많았는데,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많은 분들이 '핸드 헬드'기법을 추천했다고 한다. 오복의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보면 전혀 잔잔하지 않은 감정이지만) 스토리가 잔잔하게 보일 때는 그것만큼 잘 표현되는 것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개구리 기질이 있던 감독님은 그 얘기를 듣자 오히려 고정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정말 잘한 판단이라고 느꼈다.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야 '바라보는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복의 감정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고, 속에서 천불이 났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것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리고 극 중에서 오복을 제외한 모두가 다 '당사자'가 아니다. 결국 지켜보는 역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촬영기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음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오복이 겪을 일을 소문으로 만들어 버리고, 피해자가 오복인 것만 숨긴 채 그의 남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시장 사람들 그 자체를 표현한 것 같았다. 화두를 던지고, 반응이 어떻게 올지 기대하는 것 같은 그 사람들 말이다.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소재가 어려웠던 만큼 인터뷰나 사전 자료 모으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했는지 물었다.
사실 내가 겪었던 일과 오버랩이 되었다. 타임라인이 상당히 유사했다. 아마 많은 피해자들의 타임라인이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 사실을 말해줬을까 싶었다. 특히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은, 우리의 어머니 세대들은 그런 말을 더욱 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한참 준비하시던 시기에 서지현 검사의 피해사실 고백 등의 타임라인을 많이 참고하였다고 했다. 피해를 받으신 분이 아니더라도 그 세대 분들의 생각을 담으려고도 많이 노력하셨다고 한다.
그랬다. 공론화가 되었든 아니든 세상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피해를 받고 있었고,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직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피해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해를 받은 후에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가 증인이 될 수 있고, 어디까지가 증거가 될 수 있으며, 피해자가 어디까지 자신의 피해를 되돌아보고 파헤쳐야 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묘사하지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성'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님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런 피해를 당했다고 말을 하는 순간 피해자가 날아드는 화살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조연으로 많이 봐왔던 '정애화' 배우님의 오복 연기도 매우 좋았고, 모든 배우들이 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분들 같은 느낌이라 더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셋째 딸 역할을 맡으셨던 김가빈 배우님이 감독님의 친언니였다는 것에는 실제로 막내딸인 감독님이 친언니가 철없는 막내딸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땠을까 싶어서 괜히 웃음이 났다.
성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갈매기>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을 보고 나올 때면 가해자에게도 이유와 변명과 서사가 있고, 피해자는 너무 처절하게 나와서 찝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갈매기>는 다르다. 어떤 이는 다큐멘터리 같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너무 잔잔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어쩌면 열린 결말 같아서 속 시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찝찝하지 않다. 사실 모든 피해자에게는 결론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간다. 참으라고 배워왔고, 참으라고 들어왔고, 참으라는 말로 스스로를 죽여왔지만 이제는 그러하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의 오복이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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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마니아들도 보긴 할까?
이번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연출을 맡은 "페이튼 리드"는 "MCU"로서는 처음으로 3부작을 완성시킨 감독이 되었다. - 물론, 이번 5월에 개봉하는 <가오갤>의 "제임스 건"도 있지만...
이만해도, 그의 능력을 알 수 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바뀌지 않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있다.
근데, 이를 온전하게 그의 영화로만 볼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1편은 "에드가 라이트"의 각본이었고 감독 본인이 하차를 요구해 "떔빵(?)"으로 들어갔으며, 무엇보다 "세계관(MCU)"에 맞춰졌으니 말이다.양자 영역으로 신호를 보내는 기계를 발명한 "스콧"의 딸 "캐시"의 행동에 "재닛"은 '얼른 기계를 꺼라'라고 말하지만, 이내 사고가 일어난다.
그렇게,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간 이들은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나 이곳을 포함해 향후 지구에 위험을 줄 악당 정복자 "캉"을 만나는데...1. 따라 하지 말라고 했잖아!
흥행으로만 따져본다면, <앤트맨>시리즈는 "MCU" 영화들 가운데 저조한 측면에 속한다. - 제목처럼 "개미 똥구멍"만 한...
그럼에도, 개성만큼은 뚜렷했던 작품이다.
"배스킨라빈스는 항상 알아내지"라는 대사를 시작으로 "루이스"의 떠버리 장면, "커트 - 데이브"까지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은 계속해서 이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3편에서 이들의 부재 소식으로 <앤트맨>도 "세계관"에 맞춰야 하는 눈치를 본다는 게 가장 안타까운 소식이었다.결국,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평범한 블록버스터로 전락한다.
어느 블로거의 말마따나 <스타워즈> 시리즈 혹은 같은 회사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스페이스 오페라"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나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이는 앞선 작품들이 지우기엔 이번 <퀀텀매니아>만의 장면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무엇보다 '이게, 양자역학과 무슨 연관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이런 모호함은 캐릭터들 소개에서도 이어지는데, 이번 이야기의 빌미는 만드는 "캐시"는 아버지 "스캇"과 갈등을 빚어내는 인물이다.
도움을 주는 데에 선과 악을 바라보는 기준을 얇게만 설명하다 보니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기에도 앞서 관계가 빠르게 해결된다.
이런 문제는 메인 빌런 "캉"에게도 해당되는데, 드라마 <로키>에서 소개했다고 하나 해당 작품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는 "복수"와 "탈출"만을 반복할 뿐이다. - 설정상. 멀티버스마다 성격이 다른데, 이마저도 "쿠키 영상"과 드라마 <로키>에서 소개된다!2. 예고된 실패였을까?
이런 번잡스러운 부분은 더더욱 이전의 빌런 "타노스"와 비교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지구를 비롯한 온 우주의 절반에 대한 철학을 내세웠던 "타노스"의 모습은 영화에만 국한되었기에 "드라마"까지 확장된 현재의 "MCU"를 더 곱씹게 한다.
물론, 120분 내외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최근에 나온 영화들 가운데 적은 분량에 속한다.
하나 정해진 "MCU"의 노선을 생각하면 자신만의 개성도 뽐낼 수도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근데, 이런 문제들을 건너뛰고 의문스러운 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게, 몇 세기나 진보된 기술에도 "앤트맨"의 줄었다 늘었다 하는 "핌입자"는 만들지 못한 점(옆에 그 녀석도 있는데...)과 "타노스" 다음으로 지목되는 강한 캐릭터의 마무리가 영 좋지 않다.어찌 보면, 계속해 지적되는 설명의 부족은 "추리 소설"을 좀 읽어본 독자들에겐 익숙하지 않을까?
대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데에 "치정 - 복수 - 돈"까지 이 3개의 조건이 많이 언급되는 앞서 언급한 "치정 - 복수"는 단어 자체로 감정인데 "돈"은 감정이 아니다.
결국,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돈을 벌어야 하는 영화가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 예정된 실망이다!· tmi. 1 - 1편과 2편에서 "커트"를 맡았던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은 이번 양자 영역에서 나오는 "베브"로 출연하며, 시리즈 개근을 챙겼다! - 다음에는 사람으로 나와줘...
· tmi. 2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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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를 털고 능숙하게 벼려 밝힌 영화라는 여명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21 | 스티븐 스필버그 | 156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파크,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를 옆에 낀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는 미국 역사의 곡절이 담겨있다.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기 노동 계급의 거처, 20세기 전쟁의 풍파로부터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혹은 생활고를 피해 희망을 찾고자 정착한 이민자의 터전으로 발전한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자본과 사람이 유입해 문화와 예술이 발흥하는 뉴욕을 대표하는 부촌이 되었다. 지금의 멀끔하고 반듯한 건물과 거리, 햇볕을 쬐고자 바깥에 나온 느긋한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약 60여 년 전 도시 재개발로 링컨 센터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막 뜬 그때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은 떠나야 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백인 하층 노동 계급 지역 할렘 Harlem과 중남미 이민자의 거리 산 후안 힐 San Juan Hill을 배경으로 생존과 반목을 넘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뮤지컬을 영화화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61년 동명의 작품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이 영화를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영화 애호가들은 기대와 (주로는) 우려가 엇갈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첫 뮤지컬 장르라는 관심과 함께, 우리는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시 선보일 것인가에 관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잘 돼야 본전, 망치면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실망만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노련한 거장은 결국 고전의 향수와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현재의 시선에서 영화 매체에 마침맞은 재구성을 이루어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벌 간의 갈등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인 이 뮤지컬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제리 라비노비츠)의 안무가 결합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의 기술력이나 연출을 고려하더라도, 원작의 배우와 무대, 소품이라는 세트피스가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유명한 오프닝 씬이나 체육관의 댄스파티 속 뮤지컬 넘버와 안무의 조화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장면이지만,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 시선과 배우들의 대사 처리 등 뮤지컬 실황에 영화적 기법을 첨가한, 60년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적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과 영화의 차이가 시각 매체로써 특히 공간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유무에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영화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라는 한 지구地區를 통째로 배경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America〉는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거리를 누비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인 〈Gee, Officer Krupke〉에서는 경찰서의 소품들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거기에 〈Cool〉에서의 부서진 폐건물을 중심으로 ‘토니’(안셀 엘고트)와 ‘리프’(마이크 파이스트), 제트파 사이의 갈등과 신경전, 체육관에서의 댄스파티 등 뮤지컬 넘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일조한 카메라 워킹도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발레와 라틴댄스 기반의 춤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공들인 정교한 합과 역동적인 집단 군무가 스크린 앞 관객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면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다. 관객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날 선 갈등과 비극을 춤과 노래를 통해 어느 정도 희석된 버전의 모습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음악만큼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극적 상황을 조성하는 장치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체육관 뒤편에서 토니와 마리아(레이철 지글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건너편 틈 사이로 빛이 스며오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장면이 사랑에 빠진 몽롱한 분위기를 더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소금창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며 겹치면서 발생하는 명암의 대비로 두 파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원작이 주차장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발레 대결이라면 리메이크된 작품에서는 훨씬 실감 나는 대전이 벌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모자이크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빛의 분위기도 눈여겨보게 된다. 연출을 위한 소품의 적절한 사용도 눈에 띈다. 앞서 제트파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퀀스에서 주변 소품을 활용한 앙상블은 재기 발랄하며 맹랑한 캐릭터에 잘 들어맞는다. 토니가 싸움을 말리러 갔지만 결국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를 죽인 후 마리아의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의 장막을 사이에 둔 만남이나, 사랑을 위해 토니를 감싸주는 마리아에게 분노하는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의 듀엣에서 집에 걸어 둔 천으로 흔들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의 장면들은 원작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작을 관람하기 전 관객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뮤지컬을 어떤 방식의 영화로 만들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링컨 센터 공사를 위해 곳곳이 헐린 5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가 담겨있다. 오히려 원작의 멀끔한 세트보다 이 불안한 10대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한 2021년의 영화는 기존의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원작에 담긴 불쾌한 지점, 혹은 지나쳤던 지점을 부각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한다. 시나리오와 노래에는 십 대 청소년의 일탈과 사회 갈등,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빈곤, 재개발 문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당대 인식의 기반에 깔린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갈등의 중심부에 두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원형을 일부 유지한 채 스코어의 가사들을 윤색함과 동시에 넘버를 일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효과를 준다. 감독은 원작에서 지나쳤던 미국 사회(이지만 사실 모든 사회에 통용될)에 고착된 차별과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프나 브릿지로 만들어 시의성을 높인다. 원작에서는 ‘우리의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을 별종 혹은 외부 집단으로 설정해 그들의 유입으로 두 파벌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갈등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조차 백인 소년들의 편에 서서 이민자들을 향해 차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리메이크작에서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역사의 흐름에서 자본에 밀려 탈락한 백인 하층 노동자 집단과 중남미 이민자 집단이라는 두 비주류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을 명시한다. 경찰로 상징되는 기존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눈에는 두 파벌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 정치 지형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정했음은 스페인어에 따로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가 제1 언어인 미국이나. 두 언어에 익숙지 않아 그들의 자막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한국의 관객 관점에서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그만큼 확고히 보여주는 설정도 없다. 이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주류 사회 분위기에 편입하려는 당시 이민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식과도 같다.
주인공인 토니와 마리아를 중심에 두면 영화는 대립적인 집단 간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외곽으로 내모는 사회에 눈을 돌린다면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이들의 파국에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은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두 파벌의 중립지대인 가게(약국)의 주인인 ‘독’을 대신해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를 추가한 점은 익숙하며 낡아 버린 서사에 새로운 결을 터 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발렌티나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어른 캐릭터이자 아직 어린 청년들의 치기와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설정상 독과 사별한 부인이며 유대인이자 코카시안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에게 복합적인 감정선과 서사를 부여한다. 인종과 문화 등 다층적인 차별과 분노가 폭발하는 공간에서 발렌티나는 인종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위치하기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다. 배신자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아픔에도 이 이야기 속 유일한 ‘어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지점은 발렌티나가 1961년 원작에서 아니타 역할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원작 속 아니타의 넘버였던 〈Somewhere〉를 사실상 원곡자인 발렌티나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이 넘버는 61년 작품의 아니타의 감정과는 다른, 한 노인이 끝내 안온한 삶을 바랐으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을 향한 회한의 노래이자, 분열로 극한 대립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향한 기약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이뤄야 하는 목표의식으로 변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하나의 배역을 넘어 원작과의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타는 제트파에게 마리아의 전언을 일러주려 발렌티나의 약국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원작은 이 상황을 극화된 리듬과 안무를 부여해 단지 서사의 변곡점 역할로 넘어갔지만, 정황상 아니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독은 상황을 종결시키며 충동적인 청년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넘어간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니타에게 누구도 사과와 위로는 없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과거의 악몽이 그때의 아니타이자, 지금 발렌티나의 눈앞에 재현된다. 영화는 과거 리드미컬한 연출로 재현된 끔찍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도 상황의 극화 없이 정확히 직시하는 연출로 기이하며 끔찍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지금의 상황이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또한 원작과 달리 제트파와 함께 있던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아니타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인종 혐오가 아닌 더 큰 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황을 발견한 발렌티나는 제트파를 제재하고 아니타를 내보낸 뒤 범죄를 저지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너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결국 60년 전 어린 아니타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건과 가해자들을 기억하며, 자신은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일갈하는 장면이다. 그는 60년 전 그 날에 갇힌 피해자에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남성들을 단호히 ‘강간범’이라고 호명하며 여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대변하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밖에도 영화는 원작의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를 피상적인 톰보이 캐릭터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설정해 제노포비아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서사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배제된 소수자에서 결국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애니바디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제트파가 마련한 권총이 치노(조쉬 안드레스 리베라)로 이어져 발생하는 결말에 비중을 두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논쟁인 총기 규제 문제를 다루는 모습도 보인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미숙한 총기 사용으로 노출되는 범죄의 양상은 작품 중후반에 꽤 자세히 다뤄진다.
관객은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알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만드는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 감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소수자성과 대립에 주목하며 기존의 작품 속에 감춰있던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랑과 생존 중 더 중요한 것을 묻는 발렌티나의 질문에 토니는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존엄한 삶의 소중함은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몫은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지속한다. 서로 같은 달빛 아래 다른 마음으로 밤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원작의 마지막에 2021년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로하듯 새벽이 밝아 오는 맨해튼의 도시를 보여준다. 비극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한 빛은 찾아온다는 사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 사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말하던 이 명제를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여러 우려를 감수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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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요리사>가 흥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밤새워가며 봤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서 끊어버리는 미친 편집력, 한 회 한 회 새롭고 다채로운 미션들로 채워진 기획력. 정말이지 1화부터 12화까지 ‘뭐야 왜 벌써 끝나’를 외치며 정주행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요리사들을 경쟁시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정말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흑백요리사>는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을까. 물론 앞서 말한 쫄깃한 기획과 편집이 한몫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결정적 트리거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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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볼 때, 또는 소설책을 볼 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취약하고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더 잘나고 누가 봐도 힘센 경쟁자와 붙을 때가 아닌가. 이 프로그램은 다윗과 골리앗이 붙었을 때 다윗을 더 응원할 수밖에 없는 관객의 마음을 정확히 저격한 것이다. 심지어 제 이름 석 자조차 밝힐 수 없는 흑수저 셰프들은, 관객의 응원 본능에 더 활활 불씨를 지폈더랬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흥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흑수저를 응원하려면 골리앗이 미워야 하는데, 잘나고 다 가진 백수저 셰프들이 무조건 밉고 싫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백수저들이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그 지위를 얻기까지 십수 년을 노력하고 땀 흘린 인간적인 존재들임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역시 진정한 스토리텔링은 악역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법. 거기에 2차적 열광 포인트가 있었다.
백수저, 괜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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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 다시 심판대에 서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많게는 50년부터 적게는 19년의 요리 경력을 가진 백수저 셰프들은 소위 말해 돈과 명성 모두를 거머쥔 성공한 직업인이다. 다들 서너 개씩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거나 누구나 아는 굵직한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니까. 다시 말해 그들은 이미 요리 실력 최강자이며,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셀럽인 상태였다.
그런 그들이 까마득한 후배들과 겨뤄서 자칫 지기라도 하면 망신살일 뿐인데도 ‘굳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그건 가진 걸 잃고 싶지 않은 방어의 마음보다, 자신의 한계와 매너리즘을 깨고 싶은 용기가 더 크다는 뜻일 테다. 나는 거기서 이미 그들이 평범한 백수저가 아니며, 매력적인 골리앗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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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들은 서로 의견이 달라 싸우는 일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겸손했다. 그 점이 너무도 놀라워 보는 내내 인간적으로 감탄했을 정도였다.
세계대회를 심사하는 50년 경력의 ‘여경래’ 셰프는 학벌도 화려한 이력도 없는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에게 지고도 분개하기는커녕, “저보다 그 후배가 잘했으니까 이긴 거죠”라며 인자한 미소를 보였고, ‘최현석’ 셰프는 자신보다 후배 격인 안성재 셰프의 다소 날카로운 피드백에도 오히려 자신의 오만함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셰프들의 셰프로 꼽힐 만큼 대단한 입지의 인물이다)
다른 셰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후배들의 요리 실력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그들의 모습에서 퇴색됐던 초심을 되찾아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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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은 멋있지만, 그보다 더 멋진 사람은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세를 낮춰 더 배우려는 사람임을, 백수저 셰프들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흑수저, 이름은 없어도 실력은 있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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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흑수저 셰프들을 바라보는 재미는 그들의 열정과 순수성, 그리고 참신한 요리실력이 아니었나 싶다. 경력으로 치자면 백셰프들에 비해 하염없이 아래지만, 흑수저 셰프들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 흑수저 참가자의 말처럼 전혀 ‘짜치지 않는’ 요리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던 것.
너무 많은 참가자들이 눈부셨고, 다재다능했지만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세 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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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나의 원픽이기도 했던 ‘트리플스타’. 그는 거의 기계나 다름없는 칼질에서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야채 하나하나 일정한 크기로 써는 그 정확함은 그가 완성도 있는 음식을 위해 몇천 번 몇만 번을 노력했는지 느끼게 했다. 맛은 말해 뭐할까. 요리사의 재능과 노력이 만나면 어떤 음식을 꽃피우는지 매회 감탄하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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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이모카세’. 파인 다이닝 참가자들이 우세한 프로그램에서 한식, 그것도 누구나 아는 집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최종 8인에까지 들었던 그녀는 엄마의 손맛 그 자체였다. 부모님의 병세로 인해 음식장사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던 이모카세는 하루에 천 그릇씩 안동국수를 말았단다. 그 시간만큼 쌓인 손맛은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했을지. 잘 구운 김 한 장으로 시식단을 홀려버리는 연륜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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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우승자인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역시 당연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우승 소감에서 “10년간 집과 주방만 왔다 갔다 하면서 이렇게 답답하게 사는 게 맞나 싶었는데, 그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라고 밝혔는데, 그 한마디 안에 그가 흘렸을 피땀눈물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참가자들 중 유독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도, 그렇게 10년간 매일매일 단련한 내공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를 보면 요리사에게 중요한 자질이 비단 흘러넘치는 열정뿐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실력을 다져나가는 지구력이란 걸 여실히 느낀다.
그리고, 안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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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의 수많은 눈부신 참가자들만큼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던 인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심사위원 ‘안성재’가 아닐까 싶다. 그로 말하자면, ‘채소의 익힘 정도’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븐하게 익지 않은 고기’는 가차 없이 탈락시키는, 엄청나게 엄격하고 정확한 셰프다. 오죽 칼 같았으면 대한민국에 딱 하나 있다는 미슐랭 3스타가 그의 레스토랑 ‘모수’일까.
방송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대중들에게는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번 방송을 통해 그의 매력은 가히 초신성처럼 폭발했다. 너무도 멋진 셰프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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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재미난 유행어가 되었지만, 그가 프로그램에서 남긴 여러 말을 곱씹다 보면 대한민국 유일 3스타 셰프로서 지닌 단단한 철학과 신념이 느껴진다. 음식의 본질과 멀어진 난해한 요리를 지양하며, 비비지 않은 밥에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꽃잎을 단순히 예뻐 보이기 위해 디시에 올리지 않는 그 마인드.
셰프란 자신의 창작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오롯이 고객에게 공감과 만족을 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서버라는 것을 그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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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가 더 맛있게 요리하나. 그 대결 현장만을 비췄던 게 기존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에서는 셰프가 보였다. 이름이 있든 없든, 몇 개의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건 아니건, 그저 맛있는 음식을 정교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진정한 셰프들의 모습.
간절히 우승하길 바랐던 나의 원픽 트리플스타가 떨어져 아쉬웠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한 접시에 담긴 노력과 재능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리고 이제 와 보니, 백수저와 흑수저로 치사하게 나눈 듯했던 것도, 사실은 계급장 떼고 누가 요리를 잘하나 보여준 가장 공평한 시스템이 아니었나 싶다.
아, 시즌2는 언제 나오지?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PDF 인간관계 비법서 『오늘보다 내일 나은 인간관계』 ■ CONTACT 인스타그램 @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작업 문의 deum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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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 누구나와요? 그 사람들 나오나요?
큰 스포일러는 없지만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상이나 글은 영화 관람 후 읽어주세요! :)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기존 마블 영화의 팬이시거나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을 좋아하셨던 분들에게는 선물같은 영화입니다.
그동안 모든 시리즈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그동안의 추억과 영화의 장면, 대사들이 많이 떠오르실 거에요.
마블이 작정하고 팬서비스를 해주는 영화 같기도 합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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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아우터뱅크스 2> 티저 예고편
다시 빠져든다. 금괴는 우리가 접수한다! 《아우터뱅크스》 시즌 2 올여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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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치명적인 사랑의 서사시" "연우진 X 지안, 파격적이고 아름답다!" 21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빚은 파격 멜로 ?#인민을위해복무하라 리뷰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