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2024-08-19 21:13:35
내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당신께
임선애, <세기말의 사랑>
<헤어질 결심>과 <미쓰 홍당무> 그 사이 어드메를 노니는 영화가 2024년에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재소환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그 전에 그런 혼종적인 게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레 존재할 수 있을까?
포스터만 보고는 노인 성폭행 피해를 다룬 <69세>의 임선애 감독이 묵직하고 깔깔한 전작에 비해 산뜻하고 푸근한 사랑 영화를 만들려던 줄로만 알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당도한 것은 숨이 턱 막힐 만큼 밀도 높은 감정의 홍수다. 둘러가지 않고 변명하지도 않아서 선명도가 아주 높은 서사와 대사들, 박찬욱이나 이경미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한 스토리텔링, 천재적인 리듬감, 두 눈의 연기만으로 일렁이는 마음들에 함께 올라탈 수 있게 해주는 매력적인 배우들까지. <세기말의 사랑>은 정말이지 감탄밖에 안 나오는 영화다. 그리고 임선애 감독은 단순 '유망주'로만 불리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아깝다. 연차만 낮을 뿐 (한국에서 여성 감독의 권위가 아직 없다는 것은? '그런' 감독의 '이런' 영화에만 유독 젠체하고 가르치려 드는 이들의 저평가를 몇 년이고 버텨야 한다는 의미) 이미 한국 영화계 거장의 반열에 성큼 올라설 수 있는 포텐셜을 다 갖추었기 때문. 윤가은, 이옥섭, 김초희에 이어 이지은과 임선애를 차세대 한국 영화의 희망으로 믿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정말로 간만에 너무 좋은 사랑 영화였다(지금의 여성 관객에게 국내 제작+로맨스 영화가 좋게 다가오기란 거의 바늘구멍 뚫는 일에 가까운데도). 그리고 이때 사랑은 영미와 도영 사이 이상하고 풋풋한 긴장, 유진과 영미의 아웃사이더 연대를 거쳐와서, 기어이 도영과 유진의 눈물로 완성되는 삼각관계 속 연인 간의 애달픈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유전병 발현으로 목 아래 몸이 모두 굳어 혼자 힘만으론 꼼짝할 수도 없는 조유진에겐 친한 푼수떼기 동생 오준과 가출한 조카 미리와의 투닥대는 사랑이 있다. 못나고 외롭고 놀림받기 일쑤인 데다 튀어나온 앞니를 목도리 사이에 푹 파묻고 다녀 '미쓰 홍당무' 양미숙을 연상시키는 회계과장 '세기말 Miss Apocalypse' 김영미에겐... 원래는 아무도 없었다가, 유진과 오준 그리고 도영이 생긴다. 또 영미의 실패한 (줄 알았던) 사랑은 도영만을 향하지 않으며, 부모 잃은 그애가 평생 돌보았던 큰엄마와 그 큰엄마의 짝사랑이던 사촌오빠가 보답해주지 않은 가족 간의 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토록 다양한 사랑이 영화 내내 말 그대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며, 그 사랑들은 자주 내 눈과 뇌가 성급히 직조했던 적당한 상식선의 예상을 배반하기도 한다. 미리의 친아빠와 친엄마가 누구인지 너무나 갑작스럽게 툭 던져지던 씬처럼. 유진의 명품 구두가 왜 모두 '짭'이었는지, 누가 유진의 장애 '덕'을 봤는지, '지랄 1급'이라던 유진에게 들러붙어 있었던 처연한 체념의 그림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까지, 역시 예고도 없이 우르르 한 방에 깨닫게 해주던 오준의 미용대회 시퀀스의 폭풍우 같은 흐름처럼.
어쩌면 이런 예측 불가성을 즐기지 않는 이에게, 혹은 특정한 '부류'의 돌출성을 불편해하는 이에게 영화의 화려한 곁다리들은 일면 산만하거나 심지어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곁다리' 즉 삼각관계와 무관하면서도 구구절절 늘어지는 각 인물들의 사연은 모두 하나의 다정한 진리로 수렴한다.
타인에게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치러내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사랑(들)의 경중을 가리면서 너무 많은 인물의 너무 많은 이야기가 혼란스러우니 어떤 것은 받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복잡한 일이므로. 같은 남자를 사랑한 영미와 유진이 처음엔 너무 다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도영에게 부인이 있다는 형사의 말에 절망으로 물들던 영미의 표정과, 들들 볶이던 자원봉사자 학생의 “우리 엄마 죽었다 미친년아”에 남몰래 무너지던 유진의 표정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면 그 둘이 얼마나 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미리의 이기적인 가출과 카드 도용을 힐난하더니 실은 저도 유진의 장애 등급을 이용해 몰래 차를 샀다던 오준의 욕심과, "지금 누나한텐 나밖에 없으니까" 곁을 지켜야 한다는 오준의 강인한 책임감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처럼. 각자의 바닥은 다 너무 깜깜하고 처량해서 가끔 거기 떨어진 채로 만난 사람에겐 뭐든 다 말하고 날 내맡기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계하되 타인을 밀어내지 않을 수 있고, 이해하되 섣불리 다 안다고 말하지 않는 신중함을 발휘할 수 있다.
돌봄노동에 최적화된 영미의 성실한 다정과 경청 그리고 손길이 필요했던 거면서 오로지 돈 때문에 같이 있는 거라고 처음부터 스스로를 속이던 유진이의 위악을 나는 알고,
“끝까지 버텨보는 거 나쁘지 않던데요. 그래서 저는 감옥엘 갔지만. 후회는 안 해요.”라며 이상하리만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충동을 참지 않는 영미의 달콤한 자포자기도 나는 알지.
그래서 내겐 유진의 영미를 향한 “화상이 맨드라미 닮았네”가 이 시대 최고의 인류애를 함축한 대사 같았다. “그 화상 만져본 적 있어? 내가 한 번 만져봐도 돼?”라는 유진의 묘한 요청. 물렁한 영미의 수락에 유진이 상처를 보듬으며 "생각보다 부드럽네"라고 말하자 영미는 설핏 웃으며 “하여튼 이상해”로 화답한다. 그 욕조 옆에서, 또 미용대회 대기실에서 넘어진 유진의 휠체어 옆에서, 영미는 몸을 낮추어 유진과 시야의 높이를 맞춘다. 제 몸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여자가 멸시받던 여자를 똑바로 바라볼 때, 그늘진 유진의 앞에 놓인 건 환히 쏟아지는 빛처럼 다가오는 영미의 옅은 눈동자와 상냥한 미소다.
회사 돈을 빼돌리는 남자가 제게 조금 다정했단 이유만으로 지구가 망하기 전날 밤에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상하고 대책 없는 외로운 여자. 그런 여자를 두고 맨드라미의 꽃말이 '치정'인 걸 아느냐고 놀려대던 역시 이상하고 화가 많아진 외로운 여자. 소시지 반찬, 모기 물린 자국 위의 십자가, 그게 뭐라고. 그게 다 뭐라고, 사랑하는 이를 구하지도 못하는 내가 나인 게 너무 싫었을 여자들이 서로를 죽어라 질투하면서도 그 '구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줄 유일한 상대를 마음 속으론 악착같이 갈구한다.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사의하고 어려운 일인지, 결국 영미의 '저 사람 나 아니면 어떡하나'가 유진의 짐을 덜고 유진은 도영에게 "그 여자 보니까 처음으로 네가 마음 놓이더라"라고 말한다. "저는 아직 유진 씨가 마음 놓이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도영의 말은 온라인 접견 시간 종료로 뚝 끊기고 말지만, 그 이후로 유진은 완전히 퇴장하고 도영과 영미가 꾸준히 재회해 채무 관계를 핑계로 '다시' 친해지는 에필로그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도영과 영미처럼 유진은 잘 살아갈 것이다 꿋꿋하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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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볼륨의 숫자는 더 높아질 수 있는데...
국내에서의 "스페이스 오페라", 즉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다.
단적인 예시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014-23>만 하더라도, 그렇다!
14년에 개봉한 1편은 134만명에 그쳤으며, 17년 2편은 273만명으로 2배로 늘어났지만 400-500만명을 국내에서의 통상적인 마블 성적임을 감안한다면...
그럼에도, "기라성"과 같은 선배들과 나란히 어깨를 하는 이유엔 신나는 볼륨 믹스가 있다! - "Redbone"의 "Come and Get Your Love"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마블"을 떠나 역대 최고 시작이다.여전히, 온 우주 수호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앞에 새로운 적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로켓"이 크게 다치고 만다.
이에 술로 식음을 전폐했던 "피터"는 "로켓"을 살리기 위해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던 "로켓"의 과거를 알게 되는데...1. 완벽해질 수 있을까?
이번 3편을 말하기 앞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014-23>시리즈는 "마블(MCU)"내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이다. - 음악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이런 이유에는 이들의 출신 성분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등의 주인공들이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던 것과 다르게, 해당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전과들이 수두룩하다.
어찌 보면, "피카레스크(악당들만 나오는 장르)"에 해당되나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성공적인 사례와 앞서 언급한 "POP"으로 차별화를 할 수 있던 게 아닐까? - 그리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이들의 모습이 친숙하기도 하거니와...여기에 화려한 비주얼까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23>시리즈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간단하게 설득되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인류에게 불을 전달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신들에게 받은 선물을 동물들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인간"의 차례가 다가오자 전달해 줄 선물이 떨어진다. - 이게,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전달해 주는 계기가 되고 만다!
'한낱 신들조차 실수를 범하는데, 인간이라고 실수를 안 할 수가 없다'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본다면, 동물보다 인간이 더 결격 사유가 많은 존재가 아닐까?그런 점에서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는 바를 투영하는 메인 빌런들의 존재가 의미심장하다.
2편의 "에고"와 이번 3편의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던 캐릭터들로 완벽을 요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방법과 과정에 있어 자신들의 결함을 노출시켜 이미, 자신들의 결점을 인정한 "가디언즈"와의 대결 레퍼토리를 구축시킨다.2. 늘어져도 좋다!
무엇보다 대결에 있어 힘과 힘의 대결도 좋으나 그에 걸맞은 "동기", 즉 "프로모"는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물론, "플래시백"으로 교차되는 형식으로 늘어지기도 하나 이번 3편에서의 "로켓"의 과거담은 관객들의 마음을 동요케 만든다.
여기,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악독함까지 단순한 모습들이나 벌써부터 이들의 대결을 기대하게 만든다.
근데, 이런 메인들에 비해 기대했던 "아담 워록"의 부진함은 마음에 걸린다.지난 2편에서 "복수"를 다짐한 "아이샤"의 비밀 병기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캐릭터이나 진정한 흑막으로 등장하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위상에 희생된다.
물론, "일찍 나와서 완성이 덜 되었다"라는 설명을 덧붙여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려 하나 "빌드업"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에 걸린다.
결국, "로켓"이라는 박힌 돌을 빼내기엔...· tmi. 1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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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애거사 짓이야 | 작품성도 세계관도 챙긴 스핀오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완다에게 모든 마력을 빼앗긴 후, 기억마저 삭제되어 웨스트뷰에 남겨진 '애거사 하크니스'(캐서린 한). 스스로를 형사라고 착각하며 참견쟁이 이웃으로 살아가던 애거사 앞에 난데없이 소년 마법사 '틴'(조 로크)이 나타난다. 애거사를 감싸고 있던 봉인을 해제한 틴은 애거사에게 '마녀의 길'로 데려가 달라 애원하고, 원치 않던 애거사도 잃어버린 마력을 되찾기 위해 함께 '마녀의 길'을 걸을 다른 마녀들을 찾아 나선다.
애거사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릴리아'(패티 루폰)와 '제니퍼'(사쉬어 자마타), '앨리스'(알리 안)와 '샤론'(데브라 조 럽)까지 마녀들을 모으는 데 성공한 애거사와 틴. 하지만 '마녀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목숨을 건 장애물을 마주치며 위기에 빠진다. 심지어 애거사와 악연인 죽음의 여신 '데스'(오브리 플라자)가 나타나고, 미지의 마법사였던 '틴'이 완다의 아들 '빌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애거사의 집회는 자중지란에 휩싸인다.
마침내 주인공이 돋보이는 멀티버스 사가
개국공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멀티버스 사가의 최종 빌런인 '닥터 둠'으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메가폰을 잡았던 루소 형제를 <어벤져스: 둠즈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의 감독으로 복귀시킨 MCU.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지만, 마냥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간 멀티버스 사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 MCU에서 은퇴했던 영웅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멀티버스 사가의 영화 11편과 드라마 10개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새 캐릭터를 소개하느라 바쁜 나머지 본래 주인공이 잘 안 보인다는 것. <닥터 스트레인지: 광기의 멀티버스>만 보더라도 새로운 캐릭터인 아메리카 차베즈가 주동인물이었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녀의 성장을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에 그쳤다. 그 결과 멀티버스 사가에서는 인피니티 사가 속 아이언맨과 같이 관객들의 이입을 도와줄 길잡이를 찾을 수 없었다.
<완다비전>의 스핀오프 <전부 애거사 짓이야>도 겉보기에는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완다에게 마력을 봉인당한 마녀 애거사의 후일담을 보여준다. 완다의 쌍둥이 아들 중 하나인 '빌리', 죽음의 여신인 '데스' 같은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하지만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다행히도 멀티버스 사가의 문제를 피해 가는 데 성공했다. 본편의 메시지를 영리하게 확장하면서 스핀오프 역할에 충실한 결과 주인공이 가려지지 않았으니까.
보이는 것과 봐야 하는 것
<전부 애거사 짓이야>에서는 시나리오가 가장 눈에 띈다. 본편인 <완다비전>의 작법을 똑 닮았기 때문. 특히 반전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완다비전>보다 진일보한 듯 보인다. <완다비전>은 겉과 속이 다른 드라마였다. 겉으로는 완다와 비전의 일상을 다룬 시트콤이었다. 그들이 이웃들과 시간을 보내고, 두 쌍둥이 형제를 낳으며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미국 시트콤 형식을 빌려 보여줬다.
하지만 <완다비전>의 진짜 이야기는 달랐다. 마녀와 로봇 부부의 시트콤은 완다가 마법 장벽 '헥스' 안에서 꾸며낸 환상에 불과했다. 마지막 가족이었던 비전을 잃은 슬픔과 절망을 외면하려는 그녀의 피난처였다. <완다비전>은 이 겉과 속의 괴리를 완다의 환상 속에 침투한 마녀 애거사의 음모를 비롯한 여러 복선을 통해 암시했다. 그렇기에 이 모든 복선을 회수하며 진상을 보여주는 반전의 충격도 그 어떤 MCU 작품보다 강렬했다.
<전부 애거사 짓이야>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와 실제로 진행시키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자는 애거사가 주인공이다. 완다에 의해 모든 마력을 봉인당했던 그녀는 기억을 되찾은 후 자신만 아는 '마녀의 길'을 통과해 힘을 되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완다의 아들 중 하나인 빌리가 사실 생존했고, 그가 애거사의 봉인을 풀어 이용했다는 것. 쌍둥이 형 토미를 찾기 위해서.
그러나 '마녀의 길'의 끝에서 토미를 되살리는 데 성공한 빌리는 놀라운 진실을 깨닫는다. '마녀의 길'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장소였고, 단지 본인이 마법으로 만든 가상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이처럼 빌리의 시점에서 모든 복선이 맞아떨어지는 전개는 <완다비전>의 반전을 연상시키에 충분하다. 아니, 그 이상처럼도 보인다. <완다비전>에 비해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명확한 복선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사랑과 마법
본편 <완다비전>처럼 가족애와 마법의 비틀린 관계를 강조하기에 반전은 더욱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애거사와 아들 니콜라스가 있다. 애거사는 니콜라스를 출산한 직후에 그들 앞에 나타난 데스를 만나고, 데스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아들과의 시간을 추가로 얻어낸다. 이후 애거사와 니콜라스는 마녀들을 유인해 그들의 힘을 빼앗는 삶을 살았고, 니콜라스는 그들의 일상에 멜로디를 붙여서 '마녀의 길'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녀의 길' 노래를 완성한 그날 새벽에 데스가 니콜라스를 데려가자, 애거사는 이별의 아픔이 담긴 아들의 마지막 선물을 악용하기 결심한다. 마녀의 길 끝에서 힘을 얻으려면 마녀의 집회를 모아야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뒤, 집회에 모인 마녀들의 마력을 강탈하면서 더 강한 마녀로 거듭난 것. 멀티버스를 엉망으로 만든 완다만큼이나 삐뚤어진 방식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처한 셈이다.
사랑이 남긴 아픔을 잘못된 마법으로써 극복하는 이야기는 빌리의 서사에서도 반복된다. 완다가 헥스를 닫을 때 유대인 고등학생인 윌리엄의 몸에 깃들어서 홀로 생존한 빌리. 가족을 포기한 엄마에 대한 원망과 형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현실 조작 능력을 활용해 토미를 되살려 낸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다른 마녀들을 희생한 만큼, 빌리의 여정도 사랑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물이나 다름없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아픔을 극복한다. 죽을 위기에 처한 빌리와 아들을 겹쳐 본 애거사는 자신을 희생해 그를 구한다. 완다를 원망하던 빌리는 아들을 만나기가 두려워 죽어서도 유령이 된 애거사를 보면서 모성애의 힘을 배운다. 그렇게 아들을 잃은 마녀와 부모를 잃은 마법사는 둘만의 집회를 만들고 토미를 찾아 나선다. 이는 <완다비전>에서 끝내 혼자가 된 완다와 절묘한 대비를 이루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다양성이라는 잔을 반만 채우다
이처럼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본편을 성공적으로 계승한, 착실한 스핀오프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완성도가 만점에 가깝지만, 만점이라고 할 수 없다. 인종, 문화, 성적 지향성 등과 같은 다양성 관련 코드를 다소 편의적으로, 또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MCU에서는 백인 남성이 아닌 히어로나 조력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여성 히어로의 수도 늘었고, 중국이나 파키스탄 등 여러 문화적 배경을 활용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나 장애인 히어로도 하나둘씩 조명받고 있다. <전부 애거사 짓이야>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애거사의 집회' 구성원만 보더라도 백인, 흑인, 동양인 마녀가 모두 포함됐다. 애거사와 데스, 빌리와 그의 애인처럼 동성애자 커플도 전면에 등장한다.
문제는 <전부 애거사 짓이야>가 다양성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번 드라마는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신호는 보내고 있지만, 그 신호를 작품 속에 온전히 녹여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상적인 지점이 없지는 않다. 일례로 애거사와 데스를 레즈비언 커플로 설정한 선택은 효과적이었다.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극적 긴장감을 고조하고, 애거사와 아들의 서사를 비극적으로 만드는 역할과 기능이 분명했다.
그에 반해 빌리와 그의 애인을 등장시킨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빌리의 동성애 성향이 강조되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 빌리가 애거사를 이용해 토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전개에 빌리의 애인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빌리의 이야기와 애거사의 서사는 완성도의 깊이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전부 애거사 짓이야> 속의 다양성이 절반 가량은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세계관도 챙기는 일석이조
그렇지만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여전히 멀티버스 사가에서 오랜만에 접한 성공작이다. 본편에서 등장했던 주인공의 과거사와 후일담, 새로운 캐릭터의 성장 서사를 한 묶음으로 유려하게 풀어냈으니 그 자격은 충분하다. 이에 더해 MCU의 미래를 기대케 하는 여러 암시도 효과적으로 보여줬기에 이번 성공은 더 뜻깊다.
우선 빌리의 본격적인 데뷔는 캐시 랭, 케이트 비숍, 미즈 마블 등이 모일 <영 어벤져스>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데스'의 등장도 인상적이다. 초월적 존재로 묘사된 그녀는 <어벤져스> 쿠키 영상에서는 대사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토르: 러브 앤 썬더> 등에서는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런 그녀가 전면에 나서면서 <이터널스>처럼 더 초월적인 존재가 엮이는 큰 스케일의 이야기의 발판도 마련된 듯 보인다.
마지막으로 MCU 작품이나 세계관 외적으로도 기대할 만한 변화도 흥미롭다. 사실 MCU는 <전부 애거사 짓이야>를 시작으로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모든 실사 드라마에 '마블 텔레비전'이라는 별도 레이블을 사용할 예정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수년간 만족감이 낮아진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지켜보는 새로운 재미가 생긴 셈이다. 확실한 것은 <전부 애거사 짓이야>가 그 초석을 단단히 다졌다는 사실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닥터 스트레인지의 멀티버스보다 흥미롭고 애절한 마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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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지옥의 화원(2021)> 리뷰
작년 이맘때의 나는 옛 홍콩 영화를 탐닉했다.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전성기가 자신의 찬란했던 시절과 맞닿아 있던 아버지는 이 소식을 꽤 반겼으나, 곧 반가움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깔깔거리며 보고 있던 영화는 아버지의 취향과 완전히 다른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와호장룡(2000)>이나 <영웅본색(1986)>, <아비정전(1990)>도 인상깊게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꽂힌’ 건 <소림축구(2001)>는 물론, <도성(1990)>, <도학위룡(1991)>부터 <007 북경특급(1994)>, <홍콩 레옹(1995)>과 같은 영화들, 그러니까 주성치의 손이 닿은 코미디물이었다. 나는 러닝타임 내내 과장된 현실을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이어나가는 그 특유의 우직함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병맛 액션 영화’라고 소개하는 <지옥의 화원(2021)>은 내게 있어, 102분이 10분처럼 느껴진 영화였다.
세키 카즈아키 감독의 <지옥의 화원(2021)>은 앞서 말한 코미디 특유의 뻔뻔함을 이어나가면서도, 미묘하게 제 4의 벽을 뚫을 듯 말 듯 한 대사를 시도한다. 짧게 말하자면 클리셰를 비트는 시도를 간간히 하는, 코미디/액션 장르 영화란 소리다. 기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소위 ‘일진 만화’의 뼈대를 고스란히 답습한다. 오죽하면 등장인물들조차 너무나 만화 같은 상황이지 않냐고 투덜댈 정도이니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각본가는 <지옥의 화원>이 기존 장르 영화와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요 인물의 성별과 무대를 혁신적으로 바꿨다. 그렇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시비를 걸고 상대방의 ‘구역(회사)’을 차지하기 위해 피가 터지도록 싸우는 이들은 모두 여성 회사원, 그러니까 ‘OL’ 이다. 잠깐,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일단 현실에서 사용하는 이성은 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 잠시 내려놓는 편이 좋다.
※ 스포일러 주의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보자. 나오코(나가노 메이)가 근무하는 미츠후지 상사는 언뜻 우리네 회사처럼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어디든 ‘파벌’이 존재한다는 나오코의 말마따나, 이곳은 군웅할거 시대를 맞이했다. 미츠후지 내부엔 타케 시오리(카와에이 리나)가 이끄는 영업부의 광견파, 안도 슈리(나나오)가 이끄는 개발부의 악마파, 그리고 칸다 에츠코(오오시마 미유키)가 이끄는 제조부의 대괴수파가 존재하는데, 한 하늘에 세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인지라 격투와 혼란이 계속되는 실정인 거다. 이 혼란을 잠재우려면 압도적인 강자가 필요했고, 정의로운 싸움꾼인 란(히로세 아리스)이 입사한 순간 평화가 찾아온 듯 했다. 그런데 아뿔싸. 란이 그 근방에서 최강자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다른 도전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주인공 나오코는 란과 친해진 상황이었던지라 자꾸만 ‘그쪽 세계’와 조금씩 연루되기 시작한다. 특히 지상 최고의 여직원이라는 오니마루 레이나(코에키 에이코)가 있는 톰슨과의 싸움이 붙었을 때 나오코는 인질이 되고야 마는데, 이 지점에서 나오코는 마치 만화처럼 ‘등장인물의 친한 친구’정도의 입지에서 벗어나 ‘숨은 실력자’로 각성한다. 이러한 줄거리를 듣다 보면 <지옥의 화원>이 전반적으로 대단히 신선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야망이나 목표가 있지 않은 회사원의 피 튀기는 싸움, 좁았던 여성 코미디의 입지를 넓히는 발상, 경계를 넘나드는 대립 구조와 같이 클리셰를 비틀며 따라가는 특유의 우스꽝스러움이 끝내, 폭소를 자아낸다.
애니메이션을 답습한 스토리텔링과 일본식 만담
영화 내 주인공이 만화책을 독파하며 자랐다는 설정 때문일까. <지옥의 화원>은 일본이 강세를 보이는 애니메이션풍 스토리텔링과 액션, 캐릭터 설정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캐릭터는 입체적 인물형이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개는 평면적이되, 각자의 특성을 크게 부풀린 성격을 띤다. 이러한 설정의 연장선으로, 많은 캐릭터가 당연한 상식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듯 보인다. 카페에서 다짜고짜 싸움을 걸고, 지상 최고의 여직원이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며 산에서 수련을 하는 것처럼. 드라마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철저하게 도식화된 캐릭터성은 코믹 장르 영화와 성공적으로 결합하며 웃음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영화 내에선 싸움이 계속되어도 각각의 갈등이 가진 깊이는 놀라우리만큼 얕고 가벼워,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대단한 기능을 하는 위기나 전환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성장은 102분에 걸쳐 탄탄히 다져진 서사를 통해 이루어진다기보단, 몇 개의 계기를 기준점으로 폭발할 뿐이다.
또한 <지옥의 화원>은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2021)>나 애니메이션 짱구 시리즈 등을 비롯한, 일본 문화산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담’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만담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엉뚱한 한 명과, 그 한 사람에게 바른 상식으로 딴지를 거는 스탠딩 개그의 일종인데, 한국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고 알고있는 일본식 개그의 한 형태이다. 예컨대 란이 음료수 캔을 찌그러뜨리고 탕비실을 떠났을 때, 시오리나 아츠키가 란의 손이 끈적해지진 않았을까 걱정하거나, 캔을 제대로 분리수거하지 않은 사실을 걱정하는 모습 등이 해당될 터다. 여러 변형을 주며 고조되는 분위기를 잠시 꺾어주는 일본식 만담은 영화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긴장을 한 풀 꺾는 개그 스타일은 취향을 심하게 타고, 이따금은 사회적 맥락을 알아야 더 크게 웃을 수 있어 추천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지옥의 화원>에 등장하는 만담은 동아시아의 보편적 정서 내에서라면 쉽게 웃을 수 있을 듯 했다.
코미디가 그려내는 사회의 단면
코미디 장르가 다른 장르에 비해 가볍게 여겨지긴 하지만, 문화를 담아내는 하나의 장르이기에 본질적으로 삶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블랙 코미디 등을 통해 사회나 권력자를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저 웃음을 전달할 뿐이라는 편견을 매개로 삼아 작가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했을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을 통해 소피스트를 풍자하지 않았나.
어쨌든 이는 코미디에서도 해당 문화권의 사회를 살필 충분한 단서가 마련되어있다는 뜻이다.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지옥의 화원>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가 수많은 여성이 등장해 코믹 액션을 벌이는 활극임에도 우리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역추적할 수 있다. 란이 최고의 OL이 되겠다며 수련하는 장면에서 무수히 연습하는 것은 복합기 사용법과 전화를 받는 것이고, 지상 최고의 OL이라는 호칭을 가진 여성조차 C레벨에 이르지 못한다. 회사에서 혈투를 벌이는 여성을 그린 영화조차 OL의 성취에 대해선 별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화려한 색감을 통해 란과 나오코의 삶이 어떻게 교차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나오코가 꿈꾸던 ‘평범한 삶’ – 즉 싸움 없는 삶과 평범한 사랑의 획득으로 귀결되는 엔딩을 ‘승리’라고 못박는 모습은 영화 내내 힘으로 대표되던, 어떠한 전복적 가능성을 말소시킨다. 이수현(2018)은 여성 코미디에 대해 인용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 위반적인 여성들의 반란은 단순히 젠더 간 가부장적인 관계를 도치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남녀의 구분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Rowe, Kathleen).” 그저 ‘웃고 끝내면 되는’ 코믹 액션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 전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에서의 ‘코미디’가 무엇을 대상화하며 웃었고, 사회적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창작물이 담아낸 웃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것이 정말 가볍게 다뤄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서는 사회적/창작 윤리 형성에 대해 논의할 수 없지 않을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옥의 화원>은 한 해가 저무는 연말, 연이은 약속으로 지쳐가는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웃음 종합선물세트였던 것 같다. 작품 외적으로는 자막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한들, 말도 안되는 세계에 빠졌다 돌아올 수 있었던 102분이 어디 쉽게 구해지던가? 소년만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10대의 내가 이런 열정으로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괜스레 생각하며 더 웃었다. 엄동설한 속, 일상을 잊을 만큼 뜨거운 웃음을 원한다면 정말이지 꼭 봐야 하는 영화.
참고문헌
유양근 "일본 코미디영화의 웃음 코드와 기능 ―2013~2014 흥행작을 중심으로―" 日本學硏究 53 pp.171-194 (2018) : 171.
이수현 "장르로서의 한국 코미디영화와 코미디 감수성/관객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박선영, 『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 (소명출판, 2018)" 한국극예술연구 61 pp.371-381 (2018) : 371.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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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이 찾은 작은 희망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과도 같다. 아주 가까운 자식은 그런 돌봄을 받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다. 아이를 키우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챙겨준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을 쌓아간다. 그 모든 과정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끝이 나는 듯 하지만 그 아이가 또 다른 가정을 만들면서 다시 비슷하면서 다른 과정이 시작된다. 세대와 세대를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이 과정은 아마도 모든 동물들이 자라면서 교류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키고 돌보려고 하는 존재가 밥을 먹고 자신과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떤 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계속 그 어떤 존재를 돌본다. 아이가 자라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우거나 식물을 키우며 무언가와 끊임없이 교류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돌보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가진 하나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 큰 자식이 자신의 품을 떠나 독립할 때, 약간의 허무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 것이다.
오존 파괴로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 핀치와 로봇 제프의 이야기
영화 <핀치> 속 주인공 핀치(톰 행크스)는 지구 오존 파괴로 거의 파괴된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이다. 영화 초반 화면 속의 핀치는 낮에 특수한 장비를 입고 밖에서 활동을 하고, 밤에는 그나마 안전한 실내에서 생활한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작은 로봇과 개 한 마리가 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개발자였던 그는 제프(칼레 랜드리 존스)라는 새로운 로봇을 개발한다. 그 외에 등장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구 종말의 상황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핀치의 생활이 영화에 담긴다.
새로운 로봇인 제프는 많은 지식을 전송받긴 했지만 실제로 걷고, 활동하는 것에 아직 교육이 필요한 존재다. 핀치는 제프를 교육시키고 알려주면서 폐허가 된 세계에서 그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그러니까 제프는 핀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개를 돌보면서 남은 삶을 겨우 살아내고 있다.
핀치가 키우는 개는 '굿이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굿이어는 우리가 아는 여느 개처럼 정이 넘치고 인간 주변을 맴돌며 온기를 만든다. 핀치는 그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핀치가 로봇 제프를 만들어낸 궁극적인 이유 자체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굿이어를 돌볼 수 있는 존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제프는 그런 핀치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지만, 핀치는 자신이 만든 로봇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돌본다. 그저 바보 같은 인공지능 로봇에 불과했던 제프의 변화과정이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담긴다.
사실 영화 <핀치>의 중심인물은 핀치가 맞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핀치보다 제프의 영화로 보인다. 제프의 탄생부터 그가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하나씩 보여주는 영화 속에서 제프는 그저 감정 없는 로봇이라기보다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가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또 실수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자 서사이다. 제프는 뭘 해도 서툴러 보인다. 실수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욱 인간미가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면 그건 모두 제프의 서툴고 어색해하는 그 모습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로봇 제프의 따뜻한 성장기
이 영화에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보호막이 사라진 지구의 환경이다. 환경이 만들어낸 토네이도와 폭풍은 아주 짧은 시간 이어지지만 아주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악당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보다는 핀치가 그토록 보살피고 지키려는 노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좀 더 관심이 있다. 마치 부자 관계처럼 보이는 핀치와 제프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들이 조금은 척박한 화면과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주인공 핀치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인물을 다시 한번 연기한다. 과거 <캐스트 어웨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등장해 개와 로봇과 벌이는 그의 연기는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번엔 로봇 제프라는 존재가 있어 어느 정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유머도 포함되어 있어 시종일관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영화를 연출한 미구엘 사포크닉 감독은 과거에 <리포맨>(2010)이라는 SF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다. 또한 <얼터드 카본> 같은 드라마 에피소드 연출하는 등 SF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핀치>는 지구 종말의 분위기 속에서 따뜻함을 담았는데 그 따뜻함이 누구도 아닌 차가운 이미지의 로봇에게서 느껴진다는 점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영화 속 핀치가 돌봐주었던 굿이어를 위해 만든 로봇 제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 되어간다. 그가 핀치에게 배운 것처럼 그는 어떤 존재를 똑같이 돌보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가 과연 굿이어와 교류를 하게 될지, 굿이어가 로봇이라는 차가운 존재를 받아들일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 <핀치>는 애플 TV에 공개되어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IMDB]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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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이 바라보는 이효리, 대중이 바라는 이효리
꾹 참았던 숨을 몰아쉬듯 담배 연기를 뱉어내는 영화는 우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표정만이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코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지만 생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코피로 살아간다. 사소한 꿈으로 살아가지만 노란 텐트만이 그들을 반긴다. 그러던 중 그들은 이효리의 혈서 요청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효리의 집으로 들어간다. 곳곳에 피를 묻히며 들어가는 교환, 그 뒤를 따라가는 달기와 시영은 사람 냄새나는 이효리를 집 안에서 직접 마주한다. 그리곤 혈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된다. ‘코피’를 말하지만 달기는 ‘커피’로 알아듣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복선은 과거의 효리가 햄스터라는 손을 보여주는 그런 장면에서 이어지는 것이 모든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의미까지 전달한다.
직접적인 피해를 준 건 아니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펼칠 수 있는 친절이 대중의 입장으로 옮겨 갔을 땐,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 방송에 나간 후에 펼쳐진 현실에 고통받아야 했던 삼 남매는 원망을 바탕으로 과거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효리는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과한 친절과 위선에서 조금은 벗어나 진정으로 ‘사람 냄새 이효리’가 된다. 축축한데, 서늘하기까지 한 영화의 연출과 의도적인 관찰자적 시점을 통해 영화의 의미를 극대화한다. ‘연예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사람’으로서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을 후회 없이 영화에 쏟아낸 것 같아서 참 인상 깊었다. 자신이 행한 잘못이 아님에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단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하는 감정이 조금 더 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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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즈가 돌아왔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이 지난 2019년 1월 '비틀즈' 공식 SNS에 '비틀즈'의 음반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결국 북미 배급사였던 '디즈니'와의 협의 끝에 극장용 영화가 아닌 TV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공개하기로 결정하였는데요.
피터 잭슨 감독이 다룬 영상은 비틀즈의 Let It Be/Get Back 제작 과정을 담은 21일 간의 미공개 영상과 현장의 음성이 담긴 영상이기에, 전 세계 비틀즈 팬들은 당초 예상되었던 2시간 짜리 편집본보다 더 긴 영상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신이 난 모습인데요. 이 앨범이 제작되었을 당시는 '비틀즈' 멤버 간의 불화가 극에 달한 시점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난해 피터 잭슨 감독이 공개한 클립을 통해 팬들이 알지 못했던 멤버들의 관계가 드러나 기대감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10월 13일 (북미 기준) <비틀즈: 겟 백>의 새로운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공개된 예고편은 전무후무한 최고의 그룹 비틀즈가 곡을 써내려가는 과정은 물론, 녹음부터 콘서트로 이어지는 장면까지 말그래도 비틀즈의 한 앨범의 제작부터 활동 과정까지가 모두 담겨있는데요. 원체 곡을 빠르게 쓰는 것으로 유명한 그룹이기에, 이 여정이 3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놀랍습니다. 하지만, 이 서사 안에는 그들이 불안, 초조함을 느끼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최고의 합을 보여준 이 앨범 이후 그들이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기에 관객 입장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더 와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2시간 가량의 영화에서 그 3배에 달하는 TV 시리즈로 커진 <비틀즈: 겟 백>은 비틀즈 역사의 마지막 장을 돌아보는 거대한 회고의 일환으로, 비틀즈의 1969년 1월을 돌아볼 수 있는 영상입니다. 이는 전 세계 비틀즈 팬들에게 특히 큰 선물일텐데요. 그저 다큐멘터리를 즐기는 영화 혹은 드라마 팬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회고는 단순히 '작품성'만을 논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피터 잭슨 감독이 다듬은 '비틀즈'의 "Get Back"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3일에 걸쳐 공개될 예정인데요. 2021년 11월 25~27일로 공개일을 픽스한 만큼, 11월 국내 출시되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국내 팬들 역시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금은 볼 수 없어 더욱 소중한 장면들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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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영화리뷰/반전리뷰]
#반전영화#추리영화#탐정영화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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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이호현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메이드 인 제천 #오늘의장내 의 #이호현 배우님 본격 탐구! ?♀️ #하이스트레인저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메이드 인 제천 [오늘의 장내]의 이호현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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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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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의 별빛 아래> 메인 예고편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만큼
수많은 이들이 홀로 어둠을 견디고 있단다"
홈리스와 난민 소년, 소외된 그들이 만든 파리의 기적!남모를 상처와 사연으로 홈리스의 삶을 살게 된 '크리스틴'
세상의 외면과 냉대 속에서 삶을 이어가던 크리스틴 앞에
머물 곳도 엄마도 잃은 아프리카 난민 소년 '술리'가 나타난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지만 크리스틴은 술리의 엄마를 찾기 위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자신이 꾸려 온 모든 걸 던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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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팸 & 토미> 공식 예고편
"만약.. 이게 세상에 공개된다면?" 1995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벌어졌다! 디즈니+ STAR 오리지널 시리즈 [팸 & 토미] 4월 20일 단독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