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2024-08-19 21:21:04
우리 숨바꼭질해, 그리고 다신 잡히지 마
알리체 로르바케르, <더 원더스> 리뷰
<행복한 라짜로>(2018)와 <키메라>(2024) 이후에야 우리에게 도달한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초기작 <더 원더스>(2014)는 어쩌면 그의 작품 중 가장 놀랍고도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키메라>까지 무르익어 간 로르바케르의 재능이란 주로 노골적이면서도 섬세한 대비를 활용하는 재주에 있었다. 이쪽과 저쪽, 차안과 피안, 도시와 시골, 빈자와 부자, 순수와 교활을 빈번히 오가며 비추는 데에 누구보다 능숙했던 로르바케르이기에, <더 원더스>의 모호하고 꿈과 같은 상징들은 더욱 예상 밖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의도된 침묵, 도망친 벌들과 낙타, 빛을 마시는 동작과 동굴에서의 춤 등은 메인 플롯인 고립된 아이들의 성장 서사에 불쑥불쑥 난입하며 알쏭달쏭한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면서도 관객을 속이기 위해 철저히 계산되었다거나 일부러 에둘러간다는 느낌 없이 순진하고 투명한 이야기를 전한다. 실증에서 출발해 환상을 얹은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임을 생각해보면 대개 직관적이고 거칠은 쪽에서 부드러운 은유 쪽으로 나아가는 게 많은 창작자들이 밟는 전철일진대,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처음이 가장 은유적이었고 지금이 가장 직설적인 화법을 발전시키면서 일종의 역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더 놀랍다.
<더 원더스>는 군견을 데리고 밤길 수색을 나온 군인들이 등장하는 이색적인 오프닝부터 ‘이야기’에 대한 집중력을 단번에 끌어올린다. 이 군인들은 나머지 서사의 진행과 전혀 무관하며 주연 인물들과 엮이지도 않는다. 이야기 바깥에 위치한 그들은 외딴 곳의 민가를 발견하고 “저런 곳에도 집이 있다”고 소리치기 위해서 아주 짧은 순간만 등장할 뿐이다. 눈이 침침한 어둠 속에서 불을 비춰 시작을 알리는 이들은 곧 우리에게 전해져 올 ‘이야기’를 낭독할 전기수의 바람잡이, 연극의 첫 막이 시작할 때 열리는 무대의 장막,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를 이끌어낼 동생 두냐자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도구다. 군인의 외침 덕에 우리는 “저런 곳”의 거주민인 주인공들을 마주하는 즉시 그들의 ‘이야기’가 해석될 수 없는 동화처럼 미완으로 남으리란 사실을 직감한다.
그 이야기란 이렇게 시작된다. 한밤중 군인들의 수색으로 집 밖이 훤해지자 여자아이들이 하나씩 깨어난다. 큰딸인 젤소미나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떼쓰는 동생 마리넬라를 단도리하고 더 어린 쌍둥이 동생들은 덩달아 깬 금발의 젊은 어머니에게 매달린다. 젤소미나는 동생들을 달래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거실의 하나뿐인 TV를 점령하고 소파에서 잠든 아버지를 익숙한 듯 일으켜 침실로 올려보낸다.
양봉업자인 아버지 볼프강은 문명과의 단절을 추구하는 기이한 라이프스타일을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강제하는 가부장이다. 장녀답게 눈치 빠른 젤소미나는 벌을 돌보고 채밀기 밑의 꿀 양동이를 한밤중에라도 갈아줘야 하는 큰 책임을 자연스레 지게 된다. 딸이라기보단 특급 일꾼을 대하는 듯한 아버지의 태도에서도 젤소미나는 부녀 간의 유대를 찾아내고 나름의 뿌듯함을 느낀다. 어머니 안젤리카(알바 로르바케르)는 대체로 다정하지만 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젤소미나에게 면밀히 신경써줄 겨를이 없고, 남편의 기행, 일방적인 통보, 대책 없는 금전 감각에 질리고 포기한 듯 대체로 반기를 들지 않는다.
양봉과 가사에 밀려 학교는 제대로 다니고 있을지 혹은 다녀본 적은 있을지 걱정스럽고, 직접적인 폭력이나 악의는 없더라도 정황상 아동학대와 노동 착취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에 불과 열두 살의 젤소미나는 덜렁 놓여있다. 종종 창고에서 젤소미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동생 마리넬라와는 살짝 터울이 지고, 또래 친구 조이아와는 많이 다른 가정환경 탓인지 살짝 어색한 거리감이 있기에, 그애는 너무나도 철저히 혼자다. 언제나 고독했 라짜로와 아르투처럼.
토스카나의 새파란 바다와 드넓은 평야는 무척 아름답지만 그것을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그 시점에 이미 불가했다는 걸 현대의 관객은 알고 있다. 그러나 볼프강은 아직 다가올 운명을 모르거나 모르는 체 하고 있다. 전통적 농법과 양봉을 고집하느라 늘 돈도 모자라고, 이웃들과도 척 지고, 아침마다 집 밖 침대에서 깨어나 사냥꾼의 총성에 미친듯이 화내며 모두를 쫓아내려 한다. 볼프강은 외부에서 밀려들어온 자본에 ‘농민끼리 단결해 맞서야 한다’고 펄펄 날뛰면서 거대한 흐름에 홀로 맞서고자 한다. 굳건한 반골의 의지만큼은 존경스러우나, 아직 미성년인 자식들마저 투쟁에 억지로 동원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외골수 아버지와 힘이 부친 어머니 사이, 과중한 노동과 외로움에 조용히 짓눌려가는 젤소미나에게 어느날 갑작스레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두 번이나 가해진다. 하나는 그 시골의 계곡까지 커머셜 쇼 프로그램 광고를 찍으러 온 인기 배우 ‘밀리’,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가족들과 상의 없이 데려온 독일 소년 ‘마틴’이다.
아름다운 백금발에 여신 같은 차림의 밀리(모니카 벨루치). 그는 네 자매의 이름을 물어봐주고 가장 수줍어하는 젤소미나를 다정히 쳐다보며 예쁜 머리핀을 선물한다. 밀리와의 만남으로 인해 젤소미나는 바깥 세상과의 교류를 더욱 갈망하고 밀리가 홍보하던 ‘전원의 기적’ 쇼에 출연하고 싶다는 소망을 남몰래 품게 된다. 그 와중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들의 재사회화를 위한 위탁 가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틴이 이 가족에 배정되는데, 기관 담당자가 “어긋난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방화나 절도 전력이 있다고 태연하게 부연하자 엄마 안젤리카가 딸들이 걱정되지도 않냐며 볼프강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네 딸들은 커가는데 진정한 일꾼이 되어줄 ‘후계자’ 아들은 태어나지 않자 부족한 노동력에 초조해진 볼프강이 제멋대로 위탁(이라고 말하고 합법적 아동착취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을 신청해놓곤 당일이 되어서야 말하는 걸 잊었다며 실토한 것이다.
휘파람으로 노래할 줄 알지만, 이탈리아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불청객인 마틴. 마리넬라가 “잘생겼다”며 소근거릴 정도로 진한 외모로 소녀들에게 이상한 긴장을 불러일으킨 마틴. 로르바케르 영화 속 꾸준히 수수께끼의 존재로 그려지는 ‘이방의 남자’에 대한 아이디어가 여기서도 발견된다. 직계 가족이 아닌 성인 여성 코코 외에 한 사람의 군식구가 더 늘자 젤소미나 가족의 역학은 빠르게 변화한다. 키는 작지만 힘센 마틴을 보며 아버지가 흡족해하는 표정, 자기들을 보며 “계집애들이란!”하고 내뱉는 표정을 비교하며 젤소미나와 마리넬라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진다.
단박에 아버지의 신뢰를 뺏어간 마틴을 향한 젤소미나의 질투, 아버지를 향해 피어나는 반항심, 그런 딸을 두고 “쟤가 없으면 난…” 안될 거라며 친구에게 조용히 드러낸 볼프강의 진심, 마틴과 젤소미나처럼 외로운 이들끼리 필연적으로 품게 되는 서로를 향한 호감 어린 호기심, 잠깐씩 어그러지는 젤소미나와 마리넬라의 우애까지. 어지러이 뒤섞이는 감정들 속 아버지는 여전히 강경하게 젤소미나가 나가고 싶어하는 ‘전원의 기적’ 쇼에 신청하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아이는 이미 멈출 수 없는 격정에 몰래 신청서를 써낼 각오도 불사한 채다. 꿀을 팔러 나갔던 어느 날 시내에서 마주친 폭풍우는 잦아들지 않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몸으로 벌통을 꽉 누른 트럭 안에서 젤소미나는 돌연 “우리 거기 참가해요”라며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러니까 그건 더이상 삶의 고독과 혼란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진 아이의 몸을 뚫고 나온 절규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국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전원의 기적’ 쇼에 양봉업 대표로 출연하게 되긴 한다. 젤소미나가 몰래 신청하고 심사위원이 다녀갔단 걸 뒤늦게 알게 된 볼프강이 말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고 상처받긴 했지만. 여기서 알리체 로르바케르 특유의 아주 섬세한 터치가 정념을 제대로 건드린다. 아이들이 꿀을 엎고 마리넬라가 다치고 심사위원을 맞이하고 난장판을 수습하는 한나절 동안 볼프강이 시내에 나가 큰딸에게 선물할 낙타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감정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이때, 마틴의 등장 이후 소원해진 큰딸과의 사이를 풀고자 아버지가 기껏 드물게 다정을 발휘했는데 이 ‘선물’을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안젤리카는 힘겹게 모은 돈을 고작 낙타 따위에 다 써버린 남편에 분노하며 이번에야말로 헤어지겠다고 선포하고, 젤소미나는 아버지가 가장 싫어할 만한 유형의 외부인 - 지적 권위를 갖고 자본의 호위를 받는 남성 심사위원 -을 들였다며 고백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낙타를 갖고 싶어했던 큰딸은 이제 그게 ‘불법’이란 걸 알게 됐고, 아버지가 뭔가 이상한 사람이란 걸 의식하며 바깥 세계로의 탈주를 염원하게 됐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무엇이 됐든 분명 자신이 질 싸움이란 걸 차차 직감하고 있는 중이다. 코코가 볼프강에게 맞서며 젤소미나가 불쌍하다고 했을 때, 친구 에이드리언이 젤소미나를 밀라노로 데려가겠다고 농을 던지고 젤소미나가 수줍게 좋다고 할 때, 볼프강의 고집 센 얼굴 위로 스쳐가는 회한이나 자기의심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는다.
젤소미나의 반항에 볼프강은 망연자실 밖으로 나가 낙타를 끌어내려다 포기하고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혼자 노동을 계속한다. 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젤소미나의 표정 역시 말이 아니다. “아빠 제가 뭘 할까요? 저 뭘 하면 되나요?” 그렇게 받고 싶던 아버지의 사랑이 주어지던 바로 그 순간 그걸 단박에 기뻐하며 받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눈물 흘리며 외치지만 아버지는 “하지 마”라며 불퉁하게 거절할 뿐이다. 자기 쓸모를 증명해야만 부모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여기는 아이를 보며 서럽기도 하지만, 이 어른의 마음도 어렴풋이 짐작되는 우리가 과연 볼프강의 속좁음을 탓할 수 있으랴. 그도 안젤리카도 ‘바깥’의 세상에서 된통 두들겨맞고 자신들만의 낙원을 구축해보려다 실패한 어른들임을 영화는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더 원더스>는 아이의 혼란과 상처뿐 아니라 어른들의 상처도 조밀히 들여다보는데, 네 딸들의 부모만큼이나 코코라는 어른의 존재도 흥미롭게 다뤄진다. 처음에는 코코가 안젤리카의 사촌 혹은 먼 모계 친척인가 싶었지만, 에트루리아인의 흑발 흑안과 로마인의 도드라진 ‘금발’을 늘 코드화하는 로르바케르의 습관을 생각하면 아마 친척은 아닐 듯 싶다. 그렇다면 볼프강과 안젤리카, 코코와 에이드리언은 모두 원래 밀라노 출신의 소꿉친구였다가 각자의 방황 끝에 긴 사연을 안은 어른이 되어 토스카나 시골로 찾아들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얹혀살려면 밥값을 해야 한다’며 볼프강에게 싫은 소리를 듣던 군식구 코코는 분명 제대로 된 어른은 아니다. 젤소미나 편을 들며 “아이들을 그만 부려먹으라”며 이제는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볼프강에게 화를 내긴 하지만 정작 코코는 부모의 부재시 보호자 노릇을 젤소미나만큼도 해내지 못한다. 이상한 요가 동작에 심취하느라 마리넬라가 채밀기에 손을 베일 때에도 아이들 옆에 없었고, 병원이나 방송사 관계자 같은 ‘진짜 어른’들 앞에서는 당황한 나머지 변명도 못하는 식이다.
그러나 아기들과 함께 집에 남은 엄마 안젤리카를 대신해 섬에서 촬영하는 ‘전원의 기적’ 프로에 함께 참가한 코코는 바로 그곳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가난하고 힘 없는 목축업자, 양봉업자, 낙농업자 등등 가지각색의 가구를 불러다놓고 우스꽝스럽게 치장시킨 쇼 프로. 그 옛날 고래의 무덤으로 불렸다는 자연 동굴 안에서 인공적인 불빛과 스탭들의 말소리가 울려퍼지고, 마치 가장 무도회처럼 동물 탈이며 월계수 화관을 쓴 농민들은 얼빠진 채 긴장한 채 서있다. 사회자인 밀리는 시골 소녀들을 불러내곤 과장된 말투로 “귀여운 에트루리아인”이라 호명하더니, 정작 그 지역에서 평생 살아온 할머니들이 아름다운 전통 민요를 부를 때는 살며시 옆으로 빠져 피곤한 얼굴로 귀를 막아버린다.
또 가족들 사이에선 그토록 폭군 같던 볼프강은 십수 대의 카메라와 양복 입은 도시인들 앞에서 굳은 채로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더듬거리며 허망한 믿음을 역설한다. 몸으로 익힌 신념이, 무언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가장 천박한 자본이 가장 고귀한 노동을 파괴하는 것을 목격한 후 굳어진 “세상은 곧 멸망할 것”이라는 깨달음이, 그의 단단한 육체 안에서 부글거리고 있지만 비극적이게도 볼프강에겐 그것을 ‘제대로’ 설파할 만큼의 학식이 없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어 “보여줄 공연이 있다”며 젤소미나가 황급히 밀리를 불러세운다. 밀리를 다시 보길 몇 달 내내 바라온 젤소미나가 입안에서 벌을 꺼내 얼굴에서 춤추게 하는 자신의 특기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애의 진지한 예술은 아버지가 방금 전 기인 철학자처럼 더듬거린 신념과 함께 무참히 무시당한다. 부녀는 ‘수습’의 대상으로 격하될 뿐이다.
그 모든 기이한 난장판을 지켜본 코코는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다. ‘진짜 이탈리아인의 전원생활’을 조망하고 격려한다는 TV 쇼의 명분은 다 허울 뿐이고, 이제는 농민 개개인의 삶까지 (볼프강이 보던 TV 속 조잡한 재연 프로그램처럼) 서사화되어 도시인들의 한낱 유흥으로 무참히 착취되고 무시당할 거란 진실을. 그래서 코코는 돌연 울기 시작한다. 방금 전 밀리와 도시인들에게 민망하리만큼 외면당한 젤소미나를 바깥으로 끌고 나온 코코는 “넌 정말 예뻐,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어”를 몇 번이고 말해준다. 그 순간 코코는 진실을 먼저 깨닫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외마디를 외치는 선지자다. 그 외침은 젤소미나에 투사한 자기 젊은 시절에 보내는 위무이기도 하다. 곧이어 “나도 아름다워. 난 정말 아름다운 여자야”라고 발작적으로 반복하는 그를 보며, 관객은 코코 또한 정말이지 고단하고 외롭고 아픈 여자였단 걸 비로소 알게 된다.
코코는 젤소미나의 (가장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는 인물로서 존재한다는 게 이 장면에서 비로소 명확해진다. 동생 마리넬라, 루나, 카타리나처럼 엄마의 아름다운 금발을 물려받지 못한 큰딸이 계속 제 의지에 반해 유폐된다면 곧 맞이하게 될 운명을, 불쌍한 흑발의 미친 여자 코코가 대신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에트루리아인 이웃들에 찰싹 붙어 엮여있으면 먹고살 길이 열린다고 말하던 볼프강. 우리 ‘밀라노인’들은 누가 신경 써준 적 있냐는 볼프강의 서러운 고함에 에이드리언은 ‘밀라노인!’이라 곱씹으며 한 번도 그렇게 분류된 적 없다는 듯 낄낄 웃는다. 익숙지 않은 호명은 곧 그들이 표준화된 복지 체계 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지방/민족/인종 출신이란 의미다. 도시 생활과 자본의 침범에 상처 받고 그 어떤 ‘문명’의 덕도 보지 못한 어른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때론 애완견을 부르는 듯 ‘귀여운 에트루리아인’이란 모멸적 호칭을 빌려서라도 생계를 이어가려 한다.
섬에서 코코에게 기습적으로 키스 당한 마틴이 온 힘을 다해 도망친 다음 실종되자, 기관 담당자가 방문해 볼프강과 언쟁을 벌이다 “상식적인 규율이란 게 있는데 알기를 거부하시네요. 세상 물정도 모르시고요”라며 잔인한 선고를 내린다. 하지만 그는 바로 직전 자기 관리상의 허점을 숨기기 위해 “아이에 대한 기록은 싹 덮어서 지워버렸다”고 부끄럼없이 자료 조작과 공모 행위를 털어놓은 직후다. 위선자 같은 그가 잘 안다던 ‘세상 물정’이란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법칙일까.
또한 이 담당자는 앞서 마틴을 데려왔던 날, 허술한 농가를 한 차례 둘러보곤 제대로 된 교화를 위해 ‘체계성’ 있는 기록과 교육을 제공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즉 다시 요약하자면 <더 원더스>는 결국 재래성과 체계성의 대립에 관한 영화다. <키메라>를 제작하며 에트루리아의 유적과 무덤가에서 자매와 뛰놀던 유년기 기억을 참고했다고 밝힌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은, 초기부터 ‘발전’된 문명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어두운 구석의 시간에 깊이 천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그의 질문은 누가 어떻게 정상성을 정했는가부터 시작된다. 어떤 질서가 문제와 문제 아닌 것, 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 발전한 것과 낙후된 것, 문화재로 보존될 것과 쓰레기로 퇴거당할 것을 구분하고 있는지, 우리가 뭔가를 스스로 판단한다고 착각할 때 그 권위에 실은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더 원더스>는 농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기 직전, <행복한 라짜로>는 밀려나는 중, <키메라>는 밀려난 직후를 다루는 연작이라 해도 좋겠다. <키메라>의 톰바롤리들이 “일만 하다 돌아버린 노인”이라고 조롱하던 피로의 삼촌에게서 우리는 늙은 볼프강의 최후를 본다. ‘효과 좋은’ 최신 농약도 볼프강에겐 땅과 벌을 다 죽일 끔찍한 화학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들과 평온히 자족하는 생활을 추구하고 싶지만 세상은 아이들에게 자꾸만 화려하게 빛나는 것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은 부모의 질서로부터 탈주를 꿈꾼다. 피할 수 없는 결과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볼프강과 안젤리카의 강경한 자세에서 이상하게도 품위를 느낀다. 도시의 방송사 카메라로는 잡아낼 수 없었던 그것을.
바로 그래서 마틴이 젤소미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그 동굴에 남는 것이다. 여전히 포착되지 않고 언어화되지 않은 이탈리아 시골의 생동처럼, 도시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품위처럼, 끝까지 문명의 규칙에 포섭되지 않으려고 도망친 ‘밀라노인’ 가족처럼 마틴 역시 영원히 붙잡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과거의 언어나 노래 혹은 유적을 찾아내면/기록하면 필연적으로 도굴꾼의 돈벌이가 되고 부자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비되며(키메라) 믿는 자들의 맹목을 부른다는 것(라짜로)을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처음부터 알았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마틴을, 아이들을, 가족들을 잡히지 않는 유령으로 만들어버린다.
화내고 싸우고 경계하는 어른들의 말이 흘러넘칠 때 아이들은 오히려 한 마디 말도 없이 소통한다. 아이들의 대화는 아직 무음의 신체 언어 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젤소미나가 마틴에게 벌의 춤을 보여줄 때도, 두 아이가 동굴 안에서 고대인의 그림자잡기처럼 춤을 출 때도, 마리넬라가 젤소미나의 무반주 노래에 맞춰 춤을 출 때도, 젤소미나의 ‘빛을 마셔보라’는 아름다운 주문을 마리넬라가 순순히 따를 때도(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키메라>의 무덤 속 아르투가 맞이한 베니아미나의 빛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젤소미나는 어떻게 그 험한 바다를 서핑보드에 의존해 맨몸으로 다녀왔는지 별다른 설명 없이 들판에 놓인 가족의 침대로 파고든다. 모든 게 젤소미나의 꿈 같았던 시간. 엄마도 아무 질문 없이 그애가 잘 다녀올 줄로 믿었다며 따뜻이 안아주고, 처음으로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그제야 비로소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 젤소미나는 마틴처럼 속을 알 수 없이 그윽한 눈빛의 알파카를 바라보며 마틴의 휘파람을 따라한다.
이윽고 그들은 뼈대만 있는 침대를 남기고 증발한다. 그들을 지켜보던, 남루하지만 어딘지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집도 벽 몇 개만 남기고 낡아버린다. 언젠가 그 집은 흰수염고래의 무덤처럼 먼 과거의 시간을 상징하는 스펙타클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현대인’을 얌전히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거기 살던 사람들은 이제 다시는 탐욕스러운 카메라에 붙잡히지 않는다.
영화관을 나오며 <고스트 스토리> 또는 <퍼스트 카우>에서 보여준 탁월한 애도를 겹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서부를 개척한 이들의 유골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집의 잔해나 이를 지켜보는 지박령 같은 존재를 통해 억겁 같은 시간을 애처로이 붙잡아두고 재소환하려던 영화들. <더 원더스>는 조금 다른 쪽으로 애도의 개념을 확장한다. 이건 이탈리아에 마지막 남았던 순수를 영원히 해방시켜 영영 잡히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게 하는 선택을 감행한 영화다. 아마도 그것이 언제나 피안으로, 신성의 영역으로 인물을 숨게 했던 로르바케르 식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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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탄한 서스펜스로 빚은 올해 최고의 엔딩
외롭다. 씁쓸하다. 우울하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단어들은 글로 표현하기 참 어렵다. 그래서 그 어렵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 같은 예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분명하게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모호하니까 다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게 예술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거 아니겠어?
스릴러라는 장르는 참 든든하다. 서스펜스라는 영화의 요소가 있다. 긴장감을 부여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운 이 것. 참 어렵지만 장르적인 쾌감이라는 점에서 영화에 잘 넣으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알든 모르든 참 재미있는 범죄/스릴러 영화. 나의 취향이 이거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이제까지 본 영화 중 한 60%은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상영관이 없어 짜증이 났었다. 근데 vod가 일찍 풀려서 빠르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암튼 이번 6월에도 잘 만든 스릴러 영화가 만들어졌다. 끊임없이 질주하다 달성한 탁월한 엔딩으로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남을 수작이다. 탁구의 대명사가 될 영화 <실종>이다.
없어지니 보고 싶었던
어디론가 뛰어가는 주인공. 카에데는 어떤 연락을 받고 후다닥 달려가고 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빠가 좀 모자라서요. 아버지가 또 사고를 쳤다. 화가 난 카에데. 여러모로 밉상인 아빠에게 한번 시원하게 짜증을 냈다. 그래도 둘은 부녀관계다. 아빠와 딸 아니랄까 봐, 둘은 친구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아빠 하라다는 딸 카에데에게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그런데, 나 누구 본 적 있는 것 같아." "누구?" "연쇄살인마. 그 요즘 현상수배 걸린 그놈."
탁구장을 운영했던 사토시 가족. 사업에 실패하고 여러모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탁구장을 재개하기 위해 드는 돈은 그 연쇄살인마의 현상금으로 충분했다. 신고하고 포상금을 타겠다는 하라다. 뭔 소린가 싶은 카에데. 그러나, 그다음 날에 일이 벌어졌다. 아빠 하라다가 사라졌다. 아무 흔적도 없이. 카에데는 사라진 아빠를 찾기 위해 추적에 나선다. 아버지가 일했던 공사장에 가 본 딸. 거기서 하라다가 봤다던 연쇄살인마 야마구치 테루미를 보게 된다. 처음엔 아닌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남자는 살인마가 맞았다. 딸은 사라진 아빠의 행적을 찾기 위해 연쇄살인마를 쫓는다. 숨겨져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정통파 스릴러
이 영화는 근본이 탄탄한 스릴러다. 범죄 수법 잔혹하고. 범인 캐릭터 확실하고. 추격극 서스펜스 꼼꼼하고. 정말 범죄/스릴러/미스터리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탄탄히 짜여있는 영화다. 일단 범죄 수법이다. 어디선가 본 범죄 방식일 수도 있다. 약간 애니메이션 코난 시리즈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긴 한다. 근데 기시감이 들어도 그 방식이 특이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중반부쯤에 굉장히 중요한 살인 장면이 있다. 이 살인 장면 자체의 수위가 그렇게까지 세진 않다. 근데 엄청 자극적이다. 순수 연출 방식으로 끌어낸 잔혹함이다. 아마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살인사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살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 전후의 살인사건 수위는 세다. 근데 이 수위가 센 것만으로 이 영화의 서스펜스가 유지되지 않는다. 전반부의 추격전이 후반부의 어떤 갈등구조로 이어지는 방식은 이야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전반부의 추격전에는 인물의 특성을 경제적으로 활용한 느낌이다. 츤데레인 카에데. 겉으로는 아빠에게 툴툴대지만 아빠에게 의지하고 있다. 근데 여자 중학생쯤 되는 나이다. 여자 중학생이면 사춘기다. 이성에 눈을 뜬 시기다.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스멀스멀 접근하는 동급생 친구와의 로맨스 코드가 재밌기도 하고 긴장감도 유발하며 극을 이끈다. 또 물리적으로 이 사람은 성인에게 이길 수 없다. 정면대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여러 수를 둔다. 이 수를 둔 방식이 후반부에게도 작용하며 경제적인 효과를 낸다.
후반부는 잔혹한 살인극이 벌어진다. 악역의 시점에서 극을 이끈다. 이때 앞에서 썼던 살인 장면을 위시로 악역의 인물 설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 당위성이다. 이 당위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적으면 스포일러다. 다만 확실한 건 전반부의 추격극과는 다른 방식의 정통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추격하는 사람이 누구고, 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바꾼 시점 전환은 탁월했다. 아직도 후반부의 장면이 기억난다. 과연 내가 어느 쪽을 응원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나다.
이런 영화의 구성은 왠지 모르게 <셔터 아일랜드>와 <세븐>, <사이코>가 생각난다. 히치콕과 핀처, 스콜세지의 손맛이다. 물 흐르듯이 샤샤삭 지나가는 각본의 몰입감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왠지 모르게 잘 안 보이는 것 같은 정통파 스릴러다. 근데 이 영화는 뭔가 잊히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부처 아저씨
이 사람을 예전에서 짤로 본 적 있다. 바로 사토 지로다. 시트콤에서 부처로 분장해서 웃기는 역할을 했었다. 이게 일본 특유의 유머 감성이 있다. 이 유머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 톤과 비주얼이다; 한국인인 나는 일본 영화를 그렇게 자주 볼 일이 없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던 나. 이 영화에서 아마 선명하게 이 캐릭터가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이 인물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그렇게 보이지?'다. 사실 아닌 거 같지만 이 인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끊임없이 감독이 연출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소화해야 하는 인물의 내면을 복사+붙여 넣기 하듯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번 <큐어>에서 야쿠로 쇼지를 일본 송강호라고 했듯 이 아저씨는 과연 일본 최민식인 것 같은 느낌이다. 연쇄살인마 역을 맡은 배우보다 더 개성이 강한 역할을 보여주는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준다.
또 카에데 역을 맡은 배우도 귀여웠다. 초중반부에 이걸 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신이 있다. 이때 은근슬쩍 넘어가는 영화의 연출을 살리는 좋은 표정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면 연기를 잘 소화했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과 잘 맞는 것 같았다. 또 액션부터 감정연기까지 폭발하는 연기를 잘 이행한다. 그리고, 엔딩 신에서 이 배우의 잠재력은 폭발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엔딩
엔딩에 대한 해석을 어느 정도 써도 크게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이 예상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글쓴이가 보고 나서 헉? 싶었다. 예상하지 못한 급부를 찔렀다. 그리고 설마 그게 아닐 거야 생각했다. 엔딩으로 신이 전환된다. 두 인물을 보여주고 엔딩으로 마무리짓는다.
이 엔딩을 묘사해보자면 텅 비었다. 이 텅 빈 의사표현을 이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으로 성사시켰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지나치면 지치다는 느낌이 든다. 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치밀하게 쌓아 올린 이야기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현재 일본의 세태는 비어버린 영화의 정서를 느끼기 충분하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다시 합치고 싶었던 가족. 가본 적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 방법이 없는 일본 사회가 융합되어 웰메이드 스릴러의 저력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아마 올해 개봉된 외국영화들 중에서 손 꼽힐 것 같다. 얼마 없던 상영관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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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관습이여,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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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찾아온 영화관은 주말임에도 한적한 분위기가 감돈다. 다섯 살 때부터 단골이었던 영화관에서 풍기는 한적함은 낯설기만 하다.
오늘 볼 영화는 크레이그 길레피스 감독의 <크루엘라>다. 사실 감독보단 엠마 스톤이 연기해 관심을 갖고 있던 작품이다. 나는 그녀가 좋다. 뭔가 장난기 가득한 모습만 있는 거 같은데 특유의 시니컬함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라라랜드>의 미아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라라랜드>에서도 좋은 역할을 보여줬지만 개인적으론 <버드맨>의 샘이 좋다.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버지(마이클 키튼)는 인정받는 배우로 거듭난다. 이때 샘(엠마 스톤)이 아버지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내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그녀는 분명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지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이 나를 그녀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만들었다. 여전히 나는 그녀의 표정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한다.
기대 속에 영화를 보고 나온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대만족이었다. 크루엘라는 <101마리 강아지>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캐릭터다. 오래된 악당을 소비한 채로 방치하지 않고 재해석해 현재로 불러들이는 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본다. 과거 디즈니의 관습에 의해 제한된 역할로 남았던 캐릭터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쟈스민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왕국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에게 기대야만 했던 수동적인 과거를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능동적으로 변화시켜 입체적인 캐릭터가 완성됐다.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관습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작품이다. 일단 크루엘라는 영웅이 아닌 악당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마녀를 주연으로 한 <말레피센트>도 악당을 재해석한 영화지만 영웅적인 요소가 가미된 악당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천성 악당이다. 에스텔라와 크루엘라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크루엘라의 손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순 없다. 결국 진정한 악당의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악당을 좌시했던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디즈니의 꽃인 뮤지컬적인 요소를 배제했다. 물론 뮤지컬을 매력적으로 느껴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뮤지컬을 기대하고 관람하게 되면 아쉽게도 실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대신 뮤지컬을 대신해 70년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명곡들이 영화를 채우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존 주인공들의 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101마리 강아지>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로 인해 기존 주인공들이 작중에 등장하는데 원래 알던 모습으로 그들을 찾는다면 결코 쉽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그들의 변화한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힌트는 그들의 이름에 있으니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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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당신의 가족에게 ‘티끌만 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엄마의 왕국/한국경쟁
시놉시스
타인에게 희망을 주는 자기계발서 『진실의 힘』 작가 도지욱과 이웃에게 정을 주는 '왕국 미용실' 미용사 주경희는 모자(母子)지간이다. 어느 날, 평화로운 왕국에 침입자들이 쳐들어온다. 갑작스러운 주경희의 치매. 비밀을 파헤치려는 목사 도중명. 엄마와 아들은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가족이 품은 모순, 기괴함을 다루는 영화는 거칠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족이라는 단어를 내파하는 영화. 그리고 온갖 난리법석 후에도 모든 가족이 으레 그렇다는 듯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영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상영작 〈엄마의 왕국〉은 후자에 가깝다.
한 가족의 비밀을 하나둘씩 파헤치는 이 스릴러 영화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헤쳐야만 했던 아이러니를 좇는다. 엄마 주경희는 동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아들 도지욱은 자기계발서 몇 권을 출간한 작가다. 그러던 어느 날 경희에게 치매가 찾아온다. 지욱은 치매 걸린 엄마를 돌보는 일은 능숙하게 해낸다. 심지어 이를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는 듯하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문득 던진 말에는 아찔해진다. 바로 “내가 네 아빠를 죽였다”는 말이다.
경희의 남편이자 지욱의 아버지는 지욱이 어렸을 때 ‘실종’되었다. 이후 모자는 둘이서 생활을 꾸려왔다. 그런데 지욱의 아버지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살해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욱의 삼촌이자 목사인 도중명이다.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명은 떠나기 전에 진실을 알고 싶다며 형수인 경희에게 진실을 캐묻는다.
극이 전개되며 경희, 지욱, 중명 모두에게 ‘실종’ 혹은 ‘살해’된 남자를 해칠 동기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경희는 자신과 지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미웠고, 지욱 역시 어려서부터 자신을 미워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지욱의 머리에는 지금까지도 큰 땜빵이 있는데 이는 울며 보채는 지욱을 아버지가 던져서 생긴 상처다. 한편 한때 형수인 경희에게 감정을 품었던 중명 역시 자기 사랑을 가로막는 형의 존재를 마뜩치 않아 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결국 진실은 뭘까? 범인은 도지욱이다. 어린 지욱이 아버지를 죽였다. 지욱의 아버지는 지욱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동생인 중명의 아들이라는 점을 알았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욱을 지독히 미워했다. 어린 지욱은 영문 모를 미움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끝내 엄마와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살해했다. 경희는 죄 많은 사랑의 결과물인 지욱을 지켜야만 했기에 이 사건을 자신이 벌인 일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중명 몰래 남편의 시신을 벽 안에 은폐하고 지욱에게도 ‘네 아버지를 죽인 건 나’라고 내내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욱은 결코 이 문제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엄마가 아빠를 죽인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이것은 절대적인 ‘엄마의 규칙’이었다. 지욱이 장성한 후에도 결코 어길 수 없는, 지금의 가족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규칙 말이다.
엄마가 만든 강력한 금기를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한 채 억눌려 있던 지욱은 경희의 치매 이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가족을 구성하는 ‘거짓의 힘’을 확인한다. 이전에 지욱이 쓴 《진실의 힘》이란 책은 그저 그런 뻔한 책으로 많은 독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금기를 정면으로 다시 마주한 지욱이 새로이 쓴 책 《거짓의 힘》은 수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는다. 그렇다. 적어도 경희와 지욱 모자에게 가족을 지키는 힘은 진실이 아닌 거짓에서 나왔다. 거짓을 걷어내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중명)는 죽음으로 응징당한다.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는 ‘실종’과 ‘살인’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마다의 비밀이 있는 법이다. 티끌만 한 잘못도 없이 그저 번듯하게만 사는 가족?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그리 흔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에서 ‘실종’과 ‘살인’은 모든 가족이 가족의 테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감춰야하는 진실의 가장 극단적 형태일 뿐이다. 모든 가족은 크고 작은 거짓을 토대로 현재를 영위한다. ‘티끌만 한’ 가족의 잘못이라도 떠올리며 이 영화를 감상해보자.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영화를 넘어 우리 가족의 테두리에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엄마의 왕국〉 상영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영화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2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111)
-5월 4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312)
-5월 8일 10:30 CGV전주고사 6관(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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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마음을 위로할 4월, 극장가를 찾은 3편의 영화들! <더 파더>, <노매드랜드>, <타인의 친절>
당신의 마음을 위로할 4월,
극장가를 찾은 3편의 영화들!
<더 파더>, <노매드랜드>, <타인의 친절>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웰메이드 영화들이 극장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 듦에 관한 진중한 통찰을 담은 <더 파더>, 대자연을 집으로 삼은 아름다운 미장센이 돋보이는 <노매드랜드>, 뉴욕에서 만난 여섯 남녀가 서로를 채워가는 이야기 <타인의 친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베를린 국제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등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 영화들로 4월 극장가를 각양각색의 매력으로 풍성하게 꾸며줄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4월 7일 개봉 예정인 <더 파더>는 안소니 홉킨스의 60년 연기 인생을 총망라하는 최고의 연기라 극찬 받고 있는 영화로, 완벽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믿은 노인 ‘안소니’가 기억에 혼란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여, 원작의 작가 플로리안 젤러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노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묘사하여 관객들에게 치매 노인과 동일한 혼란을 느끼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해 심리적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딸 ‘앤’ 역의 올리비아 콜맨은 <더 파더>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4월 15일 개봉 예정인 <노매드랜드>는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으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유력 후보로 떠오른 작품이다. 하나의 기업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한 후 그 곳에 살던 여성 ‘펀’이 평범한 보통의 삶을 뒤로하고 홀로 밴을 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광활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끝없이 펼쳐지는 길의 여정을 우아한 영상미로 담아내 놀라운 시네마틱 경험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4월 7일 개봉 예정인 <타인의 친절>은 낯선 뉴욕에서 저마다 길을 잃은 여섯 남녀가 오래된 러시아 식당에서 만나 각자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아름다운 미장센과 독보적인 감성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론 쉐르픽 감독의 신작이다. <언 애듀케이션>, <원 데이>로 국내 관객들에게 촉촉히 젖어드는 우아한 감성 드라마를 선사했던 론 쉐르픽이 6년만에 국내 극장가로 귀환한 작품이라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매력적인 배우들의 환상적인 앙상블로 더욱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관으로 나들이 가기에 좋은 4월,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와 어울리는 3편의 웰메이드 영화들의 개봉으로 앞으로의 극장가가 더욱 활기를 띌 전망이다.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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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보다, 돌아보다
8월 26일 (목), 바로 어제 '돌보다, 돌아보다'라는 슬로건 아래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그 스물세 번째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7대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문가영'이 사회자로 나서며, 핫펠트(예은)의 축하공연과 개막작 <토베 얀손>의 상영으로 그 문을 연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6일(목)부터 9월 1일(수)까지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에서 7일간 개최되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일상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온 사람들의 품으로 느리지만 차근차근 많은 작품들이 돌아오고 있고, 이와 함께 앞으로를 위한 '영화제'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칸 영화제가 2년 만에 다시 개최되었으며, 2021년 7월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필두로 국내 많은 영화제 역시 하반기에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 하반기! 철저한 방역수칙 아래 개최될 영화제 목록을 지금부터 같이 알아볼까요?
잇츠 CINE PICK!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대사 문가영 (출처 : 키이스트) /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 포스터 / 뮤지션 핫펠트 (출처 : 아메바컬쳐)
일시 : 2021.08.26(목) ~ 2021.09.01(수), 총 7일간
장소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문화비축기지
규모 : 27개국 119편 영화 상영 (장편 74편, 단편 45편) / 온라인 : 66편 (장편 44편, 단편 22편)
슬로건 : '돌보다, 돌아보다 (A Caring Reflection)'
올해 공식 슬로건 ‘돌보다, 돌아보다’는 ‘누군가를 관심 가지고 보살핀다’는 뜻의 ‘돌보다’와 ‘내 주변과 지난 일을 되돌아본다’는 ‘돌아보다’를 나란히 배치해, 팬데믹 상황의 장기화를 잘 버텨온 서로를 응원하고 주변과 일상을 돌아보는 성찰을 통해 단단하게 함께 나아가기를 제안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함께 영화 보기를 통해 영화제가 창출해 온 가치를 안전한 방법으로 이어가면서도, 오프라인 영화제의 제약을 뛰어넘어 온라인으로 영화제의 영역을 확장시켰습니다. 상영작의 절반이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상영되고, 프로그램 이벤트는 사전녹화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면 무관중,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요. “발견”과 “아시아단편”, “아이틴즈” 등 경쟁섹션의 영화와 신작, 고전 영화 등 다양하게 구성된 온라인 상영작 66편 (장편 44편, 단편 22편)은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ONFIFN’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배두나, 김아중X변영주, 문가영의 스타토크,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스페셜 토크, “안부를 묻다: 여성영화제의 친구들에게”, 감독 대 감독, 쟁점포럼 등의 행사는 온라인으로 생중계 될 예정이며, 스페셜 토크와 해외 감독들의 GV는 사전녹화되어 송출된다고 합니다.
개막작 - <토베 얀손> (Tove)
핀란드, 스웨덴 | 2020 | 100min | Fiction
감독 : 차이다 베리로트 | 출연 : 알마 포이스티, 크리스타 코소넨PROGRAM NOTE : <토베 얀손>은 ‘무민’ 시리즈의 창조자, 퀴어 예술가 토베 얀손의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시기부터 10여 년간 삶을 그리고 있다. 관객들이 가장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춤을 추듯 몽환적으로 또는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토베의 모습이다. 그리고 곧 2차 세계 대전 한가운데 방공호에서 무민 캐릭터의 원형을 스케치하는 토베의 모습이 이어진다. 무민 시리즈의 탄생과 성공에 안착하기까지 토베 얀손의 작가적 경력이 영화의 원경이라면, 전경에는 여성 퀴어 예술가 토베 개인이 맺는 개인적 관계들과 그로 인한 불안과 긴장, 자아의 발견과 성장,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과하며 발산되는 토베의 에너지와 얼굴 표정이 내세워진다. 거의 항상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 있으며 시종일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카메라는 이러한 영화적 구조를 뒷받침하며, 아버지와의 갈등, 비비카 반들레르와의 연애, 평생의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레와의 만남이 어떻게 토베의 작품 세계에 불가분의 영감을 주는지 보여 준다. 린다 바스베리의 16mm 촬영은 투박함과 온화함을 동시에 전달하며, 영화의 엔딩에 삽입된 8mm 푸티지는 영화 내내 토베가 보여 준 자유로운 움직임과 활력, 생동감의 원천을 확인시켜 준다. [황미요조]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공식 포스터
일시 : 2021.09.09(목) ~ 2021.09.16(목), 총 8일간
장소 : 메가박스 백석, 고양아람누리
규모 : 39개국 126여편 영화 상영
비전 : 평화, 소통,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아시아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도약이번 영화제의 메인 포스터로 선정된 사진은 노순택 작가의 작품 '백기완의 주먹'입니다. 올 2월 타계한 사회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불끈 쥔 주먹을 담은 사진으로, 약자와 소수자가 있는 곳에서 함께 투쟁하고 활동한 백기완 선생의 모습처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역시 관객, 영화인과 함께하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진실하게 비춰갈 것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이 사진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하여 전세계가 어려운 시기임에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변함없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믿으며, 코로나로 위축된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있기에, 영화제 역시 '좋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는 영화제 본연의 역할을 이어가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영화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극장 상영은 이어가되, 이와 함께 자체 개발한 스트리밍 서비스 VoDA(보다)를 통해 온라인 상영을 병행해 관객들이 영화제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고 하는데요. 영화제는 앞으로도 관객과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만남을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 전했습니다.개막작 - <수프와 이데올로기> (Soup and Ideology)
일본, 한국 | 2021 | 118min | Documentary
감독 : 양영희 (YANG Yong-hi)
SYNOPSIS :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일본에 남은 것은 어머니와 딸 뿐이었다. 혼자 사는 노모가 걱정된 딸은 매달 도쿄에서 오사카의 본가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러한 딸에게 어머니는, 문득 당신이 제주 4.3의 체험자라는 말을 꺼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기억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어머니는 자신이 제주 4.3에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제17회 인디애니페스트
일시 : 2021.09.09(목) ~ 2021.09.14(화), 총 6일간
장소 :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인사아트센터
온라인 상영 : 2021.09.10(금) 10:00 ~ 2021.09.24(금) 17:00 [Vimeo]
슬로건 : 人비트人1. (형용사) 개재하는, 중간의
2. (애니메이션 용어) 키프레임 사이에 들어가는 프레임
3. (영화제 슬로건) 또 한번 보고 듣고 말하는 우리들의 사이를 이어 주는, 인디애니페스트!
2005년부터 매년 주목할 만한 해외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 국내외 애니메이션계의 긴밀한 네트워킹을 이어오며 매년 전 세계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해온 '인디애니페스트'는 국내 유일의 독립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에서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영화제입니다. 인디애니페스트는 지난해 여타 영화제들이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온라인 개최 등의 형식 변경과 축소 개최로 행사를 치른데 반해 기존 오프라인 개최 방식을 고수하며 성황리 영화제를 마무리해 크게 주목받은 바 있는데요. 영화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12년째 이어온 국제 협업 프로젝트 '릴레이 애니메이션' 등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개막작 - <죽이고 떠나라> (Kill It and Leave This Town)
폴란드 | 2020 | 88min | Animation
감독 : 마리우스 발친스키 (Mariusz Wilczynski)
PROGRAM NOTE : 마리우스 빌친스키 감독은 다양한 형태의 상실과 절망을 겪는 주인공들의 정신적으로의 불안한 여정을 과거와 현재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종종 외설적인 묘사로 가득 채워 놓는다. 작품의 스타일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 서사의 문법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결로 다가온다. 절제된 흑백의 선과 거친 얼룩의 색채가 스며든 우울한 판타지는 파편화된 몽상들과 뒤엉켜 낯선 거리감까지 드러낸다. 그러니 굳이 해석하려 애쓰지 말고 감독이 미처 전하지 못해 나지막이 읊조리는 독백에 감각을 기울이며 잠시나마 감정의 전이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추혜진]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영화 그리고 영화제와 함께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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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고 못 살던 남자가 죽어도, 여자들은 산다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여자가 있다. 한 명은 아이를 낳아 정상가족을 이루는 게 인생의 목표인 주디다. 또 한 명은 뺑소니 사고로 남편을 잃은 젠이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서로의 불행에 공감하며 친구가 된다.
문제는 주디와 젠이 서로의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젠의 남편을 죽인 뺑소니범은 주디고, 주디가 애착을 끊어내지 못하는 전 애인 스티브를 죽인 건 젠이다. 하지만 주디와 젠은 끔찍한 진실을 안 이후에도 우정을 깨지 않는다. 그 남자들의 죽음으로 또 다른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데드 투 미〉 스틸컷 ⓒ넷플릭스
젠의 남편은 그녀가 유방암 예방을 위해 가슴 절제술을 한 이후로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젠은 더 이상 남편에게 '여자'로 인식되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파탄난 관계를 이어간다. 젠은 남편이 죽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된 곳에 에너지를 쏟아왔음을 알게 된다. 물론 슬픔도 크고 현실적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젠은 주디와 함께하는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주디는 아이를 낳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으나 다섯 번이나 유산했다. 게다가 의사로부터 임신은 불가능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도 듣는다. 무너지기 직전이다. 그런데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전 애인 스티브가 죽은 이후 다른 세계를 만난다. 자신을 존중하며 사랑해주는 레즈비언도 만났고, 젠의 두 아들은 주디를 믿고 의지한다. 이제 주디에게 중요한 건 '정상가족' 아니라 젠과의 우정에 기반한 '대안가족'이다. 그것이 주디의 새로운 토대가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데드 투 미〉 스틸컷 ⓒ넷플릭스
그래서 젠과 주디는 자신의 남자를 죽인 서로와 계속 같이 산다. 서로의 존재가 기존의 문제적 욕망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젠과 주디의 살인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지만, 동시에 이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으로 그들을 인도해주기도 했다. 남자들의 죽음은 지금껏 현재를 몽땅 투자한 대상이 오히려 불행의 근원이었음을 깨닫게 해줬다. 즉 젠과 주디는 서로의 살인을 매개로 자기 욕망과 에너지를 투여할 새로운 대상을 찾는다. 두 번째 욕망의 대상은 이전처럼 그들의 존재를 갉아먹지 않는다.
죽고 못 살던 남자가 죽어도(사라져도), 여자들은 산다. 젠과 주디처럼 때로는 더 좋은 삶을 산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불평등한 젠더 권력에 놓인 이성애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지지해주는 관계였다. 범죄, 스릴러, 코미디 요소가 절묘하게 섞인 드라마 〈데드 투 미〉의 다음 시즌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ewr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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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주 최신개봉영화(특송, 하우스 오브 구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청춘적니,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WEEKEND CHOICE MOVIE] 2022년 1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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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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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8] 아동학대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
영화 고백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아동학대를 다루도 있는 영화여서 어둡고 슬픈 영화인데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사회 제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면서
주변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긎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박하선 배우의 연기와 하윤경 배우의 연기가 좋아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영화여서 많은 분들이 불편하겠지만 꼭 보면 좋을 것 같아요,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 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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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공식 예고편
대원들이 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