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8-28 11:43:07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온라인상영관 오픈 안내 (9/5~9/10)
SICFF Online Screening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가
9/5(목) ~ 9/10(화), 총 6일간 개최되는데요,
이번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온라인상영을 저희 씨네랩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9/5(목) 오후 7시에 오픈되는 'Online Screening' 페이지에서
수상한 영화모음집, 거인의 작은 발자국
위 2개 부문의 상영작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상영작 리스트>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우수한 작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
그 외 온&오프라인, 야외 상영에 대한
자세한 사항 및 티켓 예매 안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티켓 안내 (바로가기)
감사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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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4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11월 3주 개봉영화!
올빼미 he Night Owl , 2022
영화 "올빼미"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입니다.
조선왕가의 의문사인 소현세자의 죽음에 새로운 캐릭터를 가미하여 완성한 영화입니다.
인조실록에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 로 기록된 역사적 미스터리에서 출발하여
'맹인 침술사'라는 신선한 설정을 결합해 색다른 재미를 안길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믿고 보는 배우 유해진과 류준열의 세번째 만남인데요
유해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 인생 처음으로 '왕' 역할에 도전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습니다
영화에서 처음 다뤄지는'주맹증'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소재 '맹인 침술사'
충무로 베테랑부터 블루칩까지 완벽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폭발적인 시너지 예고하는
이번 주 THIS WEEK MOVIE "올빼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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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새로운 조각들
스틸워터 (Stillwater, 2021)
개봉일 : 2021.10.06 (한국 기준)
감독 : 토마스 맥카시
출연 : 맷 데이먼, 아비게일 브레스린, 카일 코탄, 디애너 듀나건, 로버트 피터즈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새로운 조각들
올 10월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두근거리는 달이다. <듄>, <베놈>같은 많은 영화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와 함께 사랑하는 배우 맷 데이먼의 영화가 2편이나 개봉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린나이트>를 보며 시대극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개봉 소식이 들리자마자 쭈욱 기다렸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그리고 지금 후기를 쓸 이 영화 <스틸워터>가 2주의 텀을 두고 연달아 개봉하다니. 거의 한 달 내내 영화관에서 맷 데이먼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득 담고, <포드 V페라리> 이후로 거의 2년 만에! 스크린에서 맷 데이먼을 만났다.
<스틸워터>는 함께 사는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고향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의 교도소에 갇힌 딸의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실제로 유학 중 살인 혐의를 받아 4년간 복역했던 아만다 녹스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이 영화는 추리 영화이자 주름진 가족 영화, 그리고 아버지로서, 온전한 나로서 성장을 거듭하는 주인공의 성장 영화다.
진실을 쫓는 발걸음
마르세유라는 여유롭고 맑은 도시 속에 똑-떨어진,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빌 앨리슨은 딸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를 읽고, 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와 차가운 시선들에 맨몸으로 부딪힌다. 견고하게 짜여져있던 ‘유죄’라는 벽에 조금씩 금이 가는듯 보이더니, 언제부턴가 새로운 사건의 조각들이 빌의 머리위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언제나 내 딸은 무죄일 거라고 믿었지만 제대로 된 증거가 없어 교도소 안에 갇힌 딸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아버지 빌은 이제야 정말 아버지다운 일을 할 시점이라고 느꼈는지, 아니면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붙잡는다.
완전한 진실보단 나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스틸워터>는 앨리슨이 연루된 사건의 진실과 분명한 선과 악의 구분보다는 빌이 바라는 평화. 즉, 이 부녀 사이의 진전과 아버지의 원초적인 부성애에 집중한다.
고강도의 육체 노동직을 소화하며 어느새 거친 얼굴을 갖게 된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딸. 고된 하루를 다시 버티기 위해 손대선 안될 영역에 기댔던 아버지와 그런 그를 증오했던 딸.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와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던 딸.
앨리슨의 바람대로 두 사람은 미국에 있는 스틸워터(고향)와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각자의 이유로 발이 묶인 채 긴 시간을 보낸다. 빌은 지금껏 무력하게 딸의 죄를 함께 지고 살아왔지만, 이번엔 정말 딸을 구해내겠다고 이제는 무능력하고 믿지 못할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딸과 우리를 위해서라면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가야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뿐이다.
맷 데이먼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 빌
주인공 ‘빌’을 맡은 맷 데이먼의 우직한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거칠지만 그렇다고 투박하지 않게 깊은 감정선을 파내려 가는 그의 연기와 감정의 흐름을 든든히 떠받쳐주는 멋진 목소리에 완전히 홀려버렸던 시간이었다.
130여 분의 러닝타임과 앨리슨의 사건, 마르세유에서 만난 버지니와 마야와의 에피소드를 숭덩숭덩 썰어놓은 이야기의 흐름에 다소 지루함을 느꼈다는 후기도 있었지만, 빌의 심경 변화와 앨리슨의 사건을 함께 풀어가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앨리슨의 사건만을 다뤘다면 ‘빌’이라는 캐릭터가 이만큼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와 후회를 잔뜩 쌓은 아버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그 밖엔 믿을 사람이 없는 딸. 그리고 낯선 나라에 떨어진 두 사람의 조력자가 되는 소중한 인연들과 이방인을 차갑게 비웃는 차별적인 시선들.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거리를 넓히고 싶었던 부녀의 틀어진 사이, 잘못된 사회의 차별과 시선, 잘못된 사랑과 극단적인 선택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사건의 전말, 빌과 앨리슨이 앞서 풀어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함께 풀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힘차게 파보길 추천한다.
스틸워터 시놉시스
진실을 파고들수록, 비밀은 깊어진다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딸의 무죄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를 위해 나서는 아빠 '빌'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버지의 조금 늦은 부성애
빌은 아내가 자살한 후 일과 술, 약에 홀려 긴 세월을 보낸다. 앨리슨을 보살펴준 건 빌의 어머니 샤론이었고, 그는 약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경찰에 한 번 잡혀갔던, 그리 아름답지 못한 과거도 갖고 있다. 빌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하자 샤론과 앨리슨은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냐고 묻는다. 지금껏 빌이 이들에게 어떤 가족이었는지, 이 대사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빌도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아니란 걸 안다. 그래서 계속 일자리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술을 끊고,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 마르세유까지 앨리슨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아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딸의 진심을 아주 직관적으로 듣게 된다. 그는 그간의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하지만 계속 꼬여버리는 사건 앞에서 짧은 절망을 느낀다. 하지만 아버지를 제외하면 기댈 곳이 없는 딸 앨리슨과 자신을 마치 아버지처럼 따르는 마야를 보살피며 조금 늦게 발현된 부성애를 불태운다. 빌은 앨리슨이 좋아하는 색과 옷 스타일 같은 작은 정보 하나조차 모르고 있는 아버지였지만, 그가 늦게나마 태워낸 부성애는 거짓이 아니었다.
간절함에 밀려 틀어진 방향성
‘어떤 방식을 써서든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게 빌의 최종적인 목표다. 빌은 버지니의 도움을 받아 파티가 있었던 바의 사장과 전직 경찰을 만나고, 위험한 동네인 칼리스테를 휘젓는다. 그리고 끝내 범인으로 추정되는 아킴을 지하실에 가두게 된다.
버지니는 아무 아랍인이나 잡아넣으라는 바 사장을 보고는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몸서리를 치며 빌과 잠깐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그 상황에서도 빌은 ”그저 내 딸을 위한 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빌이 칼리스테에서 좌절을 한 번 맛보고 버지니와 마야의 집에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결과만을 향해 돌진하던 걸음을 좀 늦췄나 싶었는데, 그는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아킴을 보자마자 다시 방향성을 꺾어 맹렬한 추적을 시작한다.
온전한 해결법이 아닌 걸 알면서도,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앨리슨의 무죄는 입증되었지만 잘못된 방향성을 선택한 빌은 다시 하나의 사랑을 잃고 만다. (사실 내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이니 그의 선택을 질타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래도 내 자식은 지켰으니까..?)
가난한 학생과 부자 학생
<스틸워터>는 딸의 무죄를 향해 달리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중심에 두고, 사건의 일부 조건들을 겉으로 떼어내 사회에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적 행동들과 편견들을 이야기한다.
아킴이 살고 있는 동네 칼리스테는 마약거래가 빈번히 일어나는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아킴은 조금 포장하자면 거친 동네, 나쁘게 말하자면 버려진 동네에 가까운 그곳에서 살아온 아랍인 청년이다. 아킴을 찾기 위해 방문했던 바의 사장은 아랍인 학생들을 보고 원숭이 놈들이라 칭하고, 누구를 감옥에 잡아넣든 어차피 언젠가 죄를 지었을 것이라며 차별적인 말들을 뱉어낸다.
앨리슨의 주변인이었던 교수 또한 앨리슨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살아온, 교육받은 학생이라 생각하고 앨리슨의 연인이었던 아랍계 학생 리나를 가난한 학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둘의 사이를 애초에 어울릴 수 없었던 사이라 단정 짓는다.
빌은 시추기의 등장으로 당장 밥벌이가 어려워진 상황에 처해있으며, 앨리슨이 어렸을 때 또한 항상 땅굴을 파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왔다. 미국 출신 백인이라는 딱지에 따라붙는 카우보이라는 조롱과 혼자 잘 살아온 이기적인 놈이라는 편견은 칼리스테에 방문한 빌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여러 인물들의 대사 속에 은근하게 녹아있던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요소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이 꽤나 많았다.
”진실은 없어요. 이야기뿐이죠.“
결국 이 사건의 마무리에 진실은 없이 떠도는 이야기와 결과만 있을 뿐이다. 리나는 살해당했다. 하지만 앨리슨이 죽인 건 아니다. 앨리슨은 벗어나고 싶다고만 이야기했지 리나를 살해한 적은 없다. 이 말들은 진실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진실의 조각들은 조용히 묻혀버린다.
뒤이어 어떤 이의 흔적이 나왔다. 앨리슨은 진범이 아니다. 등등 여러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뿐.
스틸워터로 돌아온 빌은 스틸워터의 모든 게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사실 변한 건 없는데, 그의 눈엔 모든 게 달라 보이는거다. 묻혀있던 진실이 전부 밝혀진 건 아니지만 앨리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얼핏 모든 게 뒤바뀐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처럼 말이다.
바뀐 건 없지만 바뀌어버린 사건. 무거운 사건을 겨우 들어옮겨 맞이한 이 결말이 마냥 시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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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을 대하는 자본의 위선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고통의 연속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 모인 동네라도 자기 신념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은 간사한 존재라서 차라리 무관심하면 나은데, 나와 생각이 다를 때 끊임없이 찍어누르며 자신이 정답이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여기 한창 전쟁 중이었던 유럽에서 막 망명한 건축가 라즐로도 이런 편견을 견뎌내었다. 그의 인생이었던 건축이 미국 상류층 사회에 미친 영향과 반대로 상류층이 그의 삶에 미친 영향을 관객으로서 바라보며 몰입하게 된다. 이 영화는 자유를 외치는 예술 조차 돈과 힘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라즐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1. 예술가와 자본가의 논리의 차이
라즐로는 전쟁이 망친 건축계의 천재였다. 하지만 천재도 세상의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파시스트가 판치는 세상에선 능력보다는 인종, 피만으로 사람이 평가받던 시기였기에 라즐로는 그저 하등한 출신의 예술가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온 미국에서도 그는 그저 이민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적 능력은 한 부자의 책장을 리모델링해주면서 분출된다. 그렇게 해리슨과 라즐로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들의 인연은 파탄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자명했다. 해리슨은 자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바꾸었다는 이유로 라즐로를 욕보여 놓고 세상의 주목을 받으니 그제서야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라즐로의 능력을 첫 눈에 알아본 사람이 아니고, 세상이 알아주니 그제서야 그를 치켜올렸다. 고로 해리슨은 대단한 예술적 취향이 있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한 사람임이 처음부터 드러난다. 하지만 지출은 줄여가며 명성은 유지하고 싶어하는 자본가적 속성은 라즐로의 예술성은 돈 먹는 하마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라즐로의 예술성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이 그의 예술성에 가려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돈으로 괴롭혔던 것 같다. 돈은 없지만 어디서든지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가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기쁘다가도 그의 재능이 자신을 하찮게 만든다고 생각이 들 땐, 유일하게 가진 그의 재능인 돈으로 그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이 천재들을 후원하는데, 그 후원은 순수할 수가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보여준다. 예술은 예술가들의 미학인 것 같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자본가들의 미학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돈많은 예술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돈이 없어 자신의 재능을 미끼삼아 후원해줄 자본가를 찾아온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도 메디치 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라즐로의 예술도 결국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라즐로 또한 자신의 재능에 취해, 해리슨을 친구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라즐로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리라. 해리슨은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일 뿐 친구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다. 그런 라즐로의 세상 물정 모르는 모습은 그의 예술가적 순수함으로 발현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예술성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그의 건축은 남의 돈에서 비롯되어 결국 자본가의 논리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2. 세상은 가끔 천재를 동경하다가도 질투한다.
역시 신은 모든 것을 주시진 않는 것 같다. 라즐로가 세상 이치에 밝았다면 자신의 돈으로 자신만의 건축을 하는 예술가로 살 수 있었겠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이 자본가의 논리에 휘둘렸던 역사를 보고 있자면, 신은 생각보다 공평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 있는 자에게 실리적 관점을 주지 않고, 실리만 있는 사람에겐 예술적인 안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로를 끊임없이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신은 어쩌면 장난이 과하신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리슨의 예술에 대한 동경, 라즐로에 대한 질투는 미국의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로 남았지만 후대의 평가는 확실히 갈리는 듯하다. 깊은 내면의 애로사항을 알 리 없는 후손들은 그의 작품을 수용소를 형상화했다고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어쩌고 하기도 한다. 과거의 예술작품을 후대가 해석할 때 어쩔수 없이 주관이 개입하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을 내가 해석을 해본다면 그는 그저 모더니즘의 경도되었던 예술가였고 모더니즘의 본질이 군더더기없는 표현을 통해 정확한 메시지의 전달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저 예배당으로서의 기능,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족시켰던 것이 아닐까. 특히 건축물을 해석할 때 건축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제 3자가 가치판단을 할 순 없는 것 같아서 더 이렇게 해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기능에 대한 관점에서 해석하게 되었다.
총평
예술은 자본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기에 자본가의 입맛에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자본가가 예술가를 질투까지 해버리면 그 관계는 파탄이다. 영화는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사람의 파탄을 보여주니 후대가 보는 라즐로의 작품은 어디까지가 그의 의도인지를 알 수가 없다, 중간에 자본가 집단이 어떻게 장난질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 세기의 천재들이 남긴 작품들의 이면들을 대부분 알 수 없기 때문에 후대는 일부만 알고 떠드는 것일수도 있겠다. 우리가 뭘 안다고 떠들 수 있을까.
과연 해리슨은 어디로 숨었을까. 엘리자벳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리슨에게 죽음이란 사회에서의 망신살을 당하는 것이라는 걸,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보단 사회에서의 매장이 그에게 곧 죽음이라는 것을. 라즐로의 예술성을 부러워하다 못해 탐한 것이 온 세상에 알려졌기에 그는 더 이상 미국 필라델피아에 공식적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살아있대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 것이다.
덧붙여 현대 건축에 대한 헌사를 아낌없이 표현하는 작품이다. 긴 러닝타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매 장면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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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서 미웠을 법한 인물을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의 힘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로스트 도터>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그런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극중 인물에 이입하며 느낀 복잡한 감정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영화를 보며, 그리고 보고 난 후 느낀 감정이 마구 요동쳐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이 복잡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어 극장을 떠난 후에도 내 머릿속과 마음 속을 사로잡고 있는.
<로스트 도터>가 내겐 그런 영화였다.
영화관을 떠난 뒤에도 영화 속 주인공인 레다와 니나라는 인물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로스트 도터>는 참 복잡한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각자 얻어가는, 생각하게 되는,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다를 것이다.
본 리뷰에서는 내가 유독 깊이 생각하고 집중했던 점들에 주력해볼 예정이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레다(올리비아 콜먼)'의 그리스 휴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레다는 이전에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고 키우다가 '엄마'로서 요구되는 모성애가 깃든 역할들을 견디기 어려워서(혹은 견뎌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녀는 남편과 어린 두 딸을 두고 몇 년 간 집을 떠나 있었고, 그리고 바람도 폈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레다는 휴가로 온 그리스에서 어린 딸을 가진 젊은 여자 '니나(다코타 존슨)'를 보고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린다.
레다는 자신의 과거(제시 버클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그리고 닮은 모습을 보이는 니나를 보고 휴가 내내 자유롭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죄책감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보인다.
- 자식들은 끔찍한 부담이에요.
영화의 초반부에 그녀가 자신의 딸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첫째 딸은 자신을 흡수해버리고, 둘째 딸은 자신이 예쁜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두 딸을 소개하는 레다의 모습에서는 왜인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레다는 '나는 내 자식들이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예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니까.' 라는 말을 남긴다.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나를 안 닮은 것이니까, 즉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니까.
영화 속에서 꾸준히 교차되어 보여지는 어린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젊은 레다는 가족보다 '나 자신의 삶'을 더 중요시여겼던 사람이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요구되는 역할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나의 꿈', '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로서 요구되는 희생을 견뎌내지 못한다. 혹은, 그 희생을 견뎌내는 것을 포기한다.
영화의 주요 사건은 레다가 니나가 잃어버린 딸을 찾으면서, 그리고 니나의 딸의 인형을 훔치면서 시작된다.
레다는 니나의 딸의 인형을 보고 젊은 시절, 첫째 딸 비앙카에게 건넨 자신이 아끼던 인형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의 레다는 자신이 아끼던 인형에 비앙카가 낙서를 하자 욱해서 그 인형을 창문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젊은 시절의 레다는 딸에게 종종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녀에게 자꾸 말을 걸고 장난을 치는 딸의 행동이 거슬린다고 느끼곤 했다.
과거에 욱해서 딸이 보는 앞에서 인형을 냅다 던져버린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아끼던 인형에 대한 미련에서 비롯된 것인지, 정신을 차린 순간 레다는 자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니나의 딸의 인형을 가져왔음을 깨달았다.
니나는 레다의 젊은 시절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자식의 보챔을 거슬려 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종종 우울해 보이고, 그리고 바람을 피고.
자유와 사랑을 찾아 3년간 자식과 남편을 떠나 있던 레다가 잠시 집에 돌아오자 첫째 딸 비앙카는 이전처럼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장난을 치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과일껍질로 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과일껍질을 끊기지 않게 길게 잘라서 뱀 모양을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레다가 자주 해주던 것이었다.
레다는 과일껍질을 다 자르고 슬픈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황급히 떠난다.
아마도 비앙카가 조심스레 건넨 이 말은 과일껍질로 뱀을 만드는 그 긴 시간 동안 엄마가 떠나지 않았음 싶어서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직 어리지만 또 엄마가 떠날 것을 알아버렸기에 최대한 그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
니나와 니나의 딸, 그리고 그녀의 남편, 그녀의 지인들은 영화 내내 (레다가 가져간) 니나의 딸의 인형을 찾는데 온 신경을 쓴다.
레다는 그 인형을 돌려주려다가도 자꾸 타이밍을 놓치고, 선반에 넣어둔 인형이 잠시 없어져서 혼자 전전긍긍하곤 한다.
레다가 인형을 가져간 것을 들킬 것 같은 마음에 스크린 너머의 관객인 나도 계속 불안하곤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리스를 떠나기 전 레다는 니나에게 인형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이 인형을 가져갔다고 말한다.
왜 인형을 가져갔냐는 니나의 질문에
나는 버릇없는 엄마니까.
라고 대답한다.
이전까지는 계속 자신이 인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자꾸 상황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던 레다는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변명을 하지 않았다.
휴가 내내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들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고, 공허해보였던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인지했다.
그리스를 떠나던 중, 해변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레다는 잠에서 깬 뒤 비앙카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과 함께 있던 비앙카는 그녀의 엄마에게 이런저런 일상을 이야기한다.
레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렌지 껍질로 뱀을 만들며 전화기 너머에서 두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레다를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레다'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비난적이지 않다.
100%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을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레다에게 그저 담담하고 심심한 위로 한 마디를 전하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라고.
레다를 바라보는 주된 시선이 비난적이지 않아서 관객들도, 나도 마냥 그녀를 질책하지 않을 수 있던 것 같다.
참 많은 생각이 복합적으로 드는 영화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남편과 두 아이에게 상처를 준 레다는 이기적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자유와 사랑을 찾아 떠난 것이라는 자신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그녀를 마냥 칭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또 마냥 질책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내가 부모라면, 부모로서 주어지는 그 역할들을 성실히 이행해낼 수 있을까?
희생을 감수하면서 꾹 참고 그 책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까지는 '아니오'이다.
나 자신을 향하지 않는 맹목적인 희생이란 마냥 쉬운 것이 아니다.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특히 나의 역할이 '부모'라는 것은 더더욱.
그래서 아직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레다를 더 질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책감과 아픔을 뒤늦게 절실히 느낀 레다를 향한 이 영화의 위로 어린, 담담한 시선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다.
현실에서 마주했다면 마냥 미웠을 인물도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을 마냥 비난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영화가 그런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 그녀의 행동을, 그리고 그녀가 느낀 죄책감과 고통을 이 영화는 보듬어준다. 그녀를 토닥여준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그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스트 도터>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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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북미에서 57일간 박스오피스 10위권을 꾸준히 자치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국내 개봉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에놀라 홈즈의 2번째 시리즈인 <에놀라 홈즈 2>의 공개까지!
그럼 11월 첫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25분
감독: 올리비아 뉴먼
출연: 데이지 에드가 존스, 테일러 존 스미스 등
개봉: 2022.11.02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줄거리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 카야가 자신이 자라온 공간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감성 드라마
관전 포인트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성장과 치유를 담은 웰메이드 영화로
1억 불에 가까운 오프닝 수익을 달성했으며, 로튼토마토 관객 지수 96%를 달성하였다.
고속도로 가족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29분
감독: 이상문
출연: 라미란, 정일우, 김슬기 등
개봉: 2022.11.02
배급: CJ CGV줄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를 따라 캠핑 같은 노숙생활을 하는 한 가족과 우연히 그들의 손을 잡게 된
부부의 만남과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관전 포인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와 함께 흥미로운 전개와 강한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상영 직후 많은 호평을 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
알카라스의 여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스페인 | 120분
감독: 카를라 시몬배우: 조르디 푸홀 돌체트, 안나 오틴 등
개봉: 2022.11.03
배급: 영화사 진진줄거리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서 3대에 걸쳐 복숭아 농사를 짓는
솔레 가족의 찬란한 여름을 그린 영화
관전 포인트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이견 없이 황금곰상 수상이 확정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알카라스의 여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초청되었으며,
3번의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하기까지 하였다.
탑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8분
감독: 홍상수배우: 권해효, 이혜영, 송선미 등
개봉: 2022.11.03
배급: (주)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줄거리
중년의 영화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그의 딸과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여자의 건물을 찾는다.
딸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해서 그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는 직접 고친 그 4층 건물의 소유주이고,
자기가 어떻게 고쳤는지 보여주고 싶어 한 층씩 두 사람을 데리고 올라간다.
각층의 방을 다 열고 들어가 보는 세 사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밑에서부터 한 층씩 올라온다.
관전 포인트
홍상수 감독의 28번째 작품으로 한 건물을 주 무대로 촬영된 흑백 영화이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긴 롱테이크 씬을 볼 수 있으며, 그 안에 배우들의 열연과 홍상수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볼 수 있다.
분노의 추격자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96분
감독: 브라이언 굿맨배우: 제라드 버틀러, 제이미 알렉산더 등
개봉: 2022.11.03
배급: 와이드 릴리즈(주)줄거리
평소와 다를 바 없던 귀갓길, ‘윌’이 주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 ‘리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소한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한 ‘리사’
‘윌’이 그녀를 찾기 위해 분투할수록
드러나는 증거들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관전 포인트
영화 <오페라의 유령> <300> <드래곤 길들이기>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제라드 버틀러가
영화 <분노의 추격자>에서 주연을 맡았다.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영화이다.
OTT 공개 영화
에놀라 홈즈 2
ⓒ 넷플릭스
개요: 모험 | 영국 | 129분
감독: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밀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헬란 본햄 카터 등
공개: 2022.11.04
스트리밍: 넷플릭스줄거리
날카로운 추리력과 당찬 의지로 가득한 셜록 홈즈의 막내 여동생 에놀라가 탐정 사무소를 열고
맡게 된 첫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가득한 모험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
관전 포인트
1편 공개 당시 공개 후 28일간 7,600만 가구에서 시청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에놀라 홈즈의 2편이 공개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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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과 행운은 동전 앞 뒷면 차이
루비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농인이라 듣고 말하지 못하는 가족들 대신 일도 도와야 하고, 생선 냄새 난다는 친구들의 따돌림도 견뎌내야 한다. 그런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인생에도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학교 음악 선생님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아 그녀를 버클리 음대에 보낼 목적으로 개인 과외를 시켜준 것이다. 답답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간신히 지탱해주던 음악, 그 음악이 그녀의 암울한 삶을 구원시켜 줄 수 있을까?
1. 소리가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루비는 가족과 대화할 수 없다. 그녀의 가족은 농인이기 때문이다. 수어로 대화를 하긴 하지만 집 안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그렇게 안팎으로 외로운 루비는 음악을 벗삼아 살아간다. 가족들은 그녀가 아무리 크게 소리지르며 노래를 불러도 모르기에.
하지만 가족들은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렇게 참석한 딸의 음악회에서 그들은 한없이 연기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딸이 노래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소리는 무음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적절한 타이밍에 박수를 치지만 그들 가족만은 모두의 눈치를 보고 한 템포 늦게 박수를 쳐야 한다. 루비의 듀엣 무대씬 중에서 루비의 노래가 음소거되는 연출을 통해 그들의 무음만 가득한 세상에 대해 체감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루비가 열심히 연습한 노래를 못 듣는 것보다 가족들이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감정적인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루비의 아빠가 루비에게 한 번 더 노래를 부르게 하고서는 그녀의 성대를 만지며, 노래를 느끼는 장면에서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비로소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이었다.
2. 독립은 서로를 강하게 만든다
가족은 우애있게 언제나 함께해야 한다는 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족 간에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인간은 평생 가족만을 위해 살아갈 순 없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까지 희생하는 것은 폭력에 굴복하는 것과 같은 패배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정도껏이어야 가족과의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루비가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선택한 것은 루비 본인을 위해서도 가족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루비가 없는 삶도 익숙해져야 그들도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닌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을 도맡아 희생할 순 없는 일이다. 가족들 앞에서 더 냉정해져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오래 지키려면 언제나 그들이 영원토록 함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떠날 시기를 잘 정해야 한다.
3. 총평
장애를 가진 이들을 잘 이해하고 만드는 영화가 많아져서 기분이 너무 좋다. 코다라는 제목은 농인 가족에서 태어난 청 인 자녀라는 뜻이던데, 루비가 가족을 위해 오디션장에서 수화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코다라는 사실은 그 그녀가 가려야 할 맹점이 아니라 되려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청인 뿐만 아니라 농인 팬덤까지 구축할 만한 예술 인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은 나쁜 일만 주지 않는다. 동전을 뒤집으면, 불운은 어느 순간 운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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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임> 예고편
1984년 불가리아 정부는 소수 민족을 탄압에 나선다.
세계 기록을 보유한 역도 챔피언 `나임 슐레이마늘루`는 호주에서의 전지훈련이 끝나 불가리아로
귀국하자마자 터키식 이름이 적힌 여권을 빼앗기고
불가리아식 `나음 슐레이마노프`가 적힌 새여권을 받게된다.
고민 끝에 호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탈해 터키로의 망명을 성공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불가리아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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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부바> 메인 예고편
웃고 즐기고~ 행복 만선이데이~♥♡ 찡하고 유쾌한 혈육 코미디 [어부바] 5월 11일 개봉확정! 온가족 극장으로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