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4-09-06 10:26:54
따뜻한 우정과 성장 이야기, 영화 <라스는 웃음폭탄>
영화 <라스는 웃음버튼>
영화 <라스는 웃음폭탄: Lars is LOL>은 제12회 서울국제 어린이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노르웨이 작품으로 유럽 어린이 영화연합에서 대상을 수상한 만큼 그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영화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라스가 아만다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아만다와 짝이 된 라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친구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우정과 갈등을 다루며, 학내 괴롭힘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영화는 우정과 배신, 분노와 용서, 갈등과 포용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이 영화는 특별한 드라마틱 요소 없이도 감동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아만다의 내적 성장과 라스의 불안과 고독,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라스는 웃음폭탄>은 따뜻한 감동과 유머가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부모와 청소년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진정한 우정과 성장의 이야기는, 보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깁니다.
Relative contents
-
- 차세대 조커라 불리던 '배리 케오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차세대 히스 레저로 꼽히기도 했던 배우 '배리 케오간'이 <이터널스> 개봉을 앞두고 피습을 당했다고 할리우드 통신 "The wrap"이 전했습니다.
배리 케오간은 아일랜드의 서부 도시인 골웨이에 방문했다가 변을 당했는데요. 아일랜드 신문사인 “Sunday World”에 따르면, 케오간은 골웨이의 한 호텔 앞에서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곧바로 골웨이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베인 상처 등을 치료한 뒤 퇴원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할리우드 배우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얼굴 부상에도, 그는 사건에 대해 별다른 기소 없이 넘어간다고 밝혀 화제 되고 있습니다.
배리 케오간은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각인시켰는데요. 최근,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A24 작품 <그린 나이트>에서 다시 한번 씬스틸러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케오간은 <그린 나이트> 이전까지 휴식기는 중요치 않다는 듯, 마블과 DC 영화에 동시에 캐스팅되며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는 ‘클로이 자오’ 감독이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더욱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MCU의 <이터널스>에서 드루이그 역을 맡아 ‘길가메쉬’ 역의 마동석 배우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며, 10년 만에 돌아온 배트맨 실사 영화 <더 배트맨>에서는 스탠리 머클 역을 맡아 블록버스터 양대산맥에 모두 출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배리 케오간 배우의 쾌유를 빌며,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10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 이후 은퇴 선언을 했던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스크린으로 돌아옵니다.
2025년 개봉을 앞둔 복귀작은 그의 아들인 로넌 데이 루이스의 감독 데뷔작인 <Anemone>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로넌 데이 루이스가 공동 집필한 이 작품은 아버지, 아들, 형제 간의 복잡한 관계와 가족 간의 유대에 관한 탐구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숀 빈, 사만다 모턴, 사무엘 버텀리, 사피아 오클리-그린이 출연 예정이며,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벤 포드스맨이 촬영 감독을 맡았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나의 왼발> (1989), <데어 윌 비 블러드> (2007), <링컨> (2012)에서의 연기로 세 차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메소드 연기'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첫 오스카를 수상한 <나의 왼발>에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일랜드 작가 크리스티 브라운을 연기할 당시, 촬영 중간에도 휠체어로 움직이며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여 달라고 요구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또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4)의 잘못된 IRA 폭탄 테러범으로 몰린 게리 콘론을 연기할 때는, 며칠 동안 추운 감방에서 최소한의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네이버 VOD 서비스 '시리즈온' 운영 종료 예정
네이버의 영화·방송 VOD 서비스 '시리즈온'이 오는 12월 18일에 운영을 종료할 예정입니다.
네이버는 최근 공지를 통해 "디지털 플랫폼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콘텐츠 판매를 종료하게 됐다"며, "구매한 콘텐츠는 보관함 기능을 통해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리즈온 이용권은 12월 12일 자정부터 사용이 불가하며, 개별 콘텐츠 구매는 12월 18일부터 종료됩니다.
<전, 란> 강동원, 영화 프로듀서로서의 활발한 활동 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로 프로듀서로서 첫 활동을 시작한 배우 강동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영화 프로듀서로서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연기를 더 하고 싶어요. 그래서 프로듀싱도 하고 있는 거죠. 저는 제 일이 너무 좋아요. 제 아이디어를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어서 제작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내년 촬영 예정인 판타지 사극 TV 시리즈는 2년 전에 본인이 시놉시스를 썼으며, 현재는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봉준호 감독에게 영화화 연출 요청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역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가 봉준호 감독과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공개했습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초기, 주연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는 봉준호 감독의 <도쿄!>(2009)에 출연한 인연으로 그에게 연출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비록 시간이 맞지 않아 어렵게 되었지만,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봉 감독의 말에 영화를 연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습니다.
-
-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 작품. 폴란드 유대인 슈필만의 생존기를 다룬 영화이면서 독일군이 유대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했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있던 유대인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혹독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들 가운데 수십만 명이 독일군이 운영하는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사건 또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지금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일본의 이익을 위해 거짓 논문을 써내는 램지어 같은 인간과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유대인 학살 문제는 매우 신중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역사적 사건으로, 비유대인 유럽인들은 독일의 만행에 대한 공분과 함께 비유대인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감을 느끼는 태도를 보인다. 즉, 자기들(독일인이 아닌 비유대인 유럽인)은 유대인 학살에 직접 책임은 없으나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히틀러와 독일사회민주당과 결별하면서 독일의 역사적 과오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피해자인 유대인에게 사죄한 바 있다. 또한 앞으로 히틀러의 나찌즘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극우 정당의 출현, 극우 집단의 발호를 근본에서 막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자서전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헐리우드의 영화자본을 쥐고 흔드는 유대인 집단은 헐리우드에서 유대인이 박해당하는 내용의 영화를 주기적으로 생산하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박해받던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곧바로 '이스라엘'을 건립했고, 미국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폭력으로 차지하고, 자기들이 당한 것 이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 과거 유대인 박해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건 옳지 않다. 유대인 박해 사건은 그 자체로 심각한 전쟁범죄이며, 보편적 인류의 자유, 평등, 존중의 정신을 말살한 최악의 사태였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은 그렇게 박해당한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유대인의 의지로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독일이 저지른 것보다 더 잔인한 행위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독일군에 의한 유대인 박해, 집단 살해 사건을 상업영화로 만들거나 다큐멘터리, 자서전, 역사책 등으로 만들어 꾸준히 알리는 것은 유대인의 권리다. 하지만 그 권리를 남용하면서 마구 휘두르면 그건 더 이상 권리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우리(한국인)는 유대인을 바라볼 때, 양가 감정을 갖는다. 유대인과 한국인은 역사적 피해자라는 사실에서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유대인은 가해자인 독일이 진심으로 참회하고, 공식적, 역사적으로 사죄했으며,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인을 가해한 일본은 전쟁에서 패한 이후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를 하며 피해국과 그 국민들에게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헌법을 바꿔 침략전쟁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는데, 일본은 패전 이후 지금까지 극우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피해국에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나라이기도 하다.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국가'가 없었지만, 전쟁 끝나고 '국가'를 세웠다. 유럽과 다른 대륙을 떠돌던 유대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물적 공간을 마련한 것이니 그들로서는 전쟁과 박해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끔찍한 경험을 한 유대인들이 가까이 사는 다른 민족을 야만적으로 학살, 학대하기 시작한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당한 박해와 학살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이어나가고 있으니, 세계 사람들은 유대인을 보면서 인지부조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유대인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유대인 '개인'이 당한 경험과 서사는 비극이다. 하지만 집단으로써의 유대인이 저지르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학살은 피해자 '개인'으로의 유대인까지 혐오하게 만드는 범죄이자 만행이다. 유대인 가운데도 노엄 촘스키처럼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비판적, 합리적 유대인도 많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주거지를 침략하며,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을 빼앗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서서히 말려죽이는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 지역에서 패권 국가로 행세하고 있다. 그들은 기고만장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즐거워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마치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자원을 수탈하고, 한국인을 학대하며, 농락했던 것과 똑같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대하고, 농락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런 만행과 오만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폭력으로 흥한 자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진리도 있듯이, 이스라엘은 폭력을 기반으로 서 있는 국가이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쾌락을 느끼고 있다. 그런 행동이 정신분석에서 '가해자와 동일시'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동 인근 국가들을 모두 적대적 관계로 만들고, 멀리 떨어진 미국과 유럽의 몇 나라들-그들이 지금은 가장 폭력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겠지만-을 등에 업고 폭력을 휘두르는 건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쥐고 휘두르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이다.
이 영화에서도 유대인들이 독일군의 폭력으로 서서히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웠다. 독일군의 만행은 끔찍하고, 말할 수 없이 잔인하며, 악랄했다. 유대인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스실로 끌려가야 했고, 강제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의 비참함에 감정이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까닭은, 현재의 유대인 '이스라엘'이 어떤 짓을 하는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 슈필만을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독일군을 이스라엘군으로 바꾸면 완벽하게 똑같은 그림이 나온다.
이미 너무 많은 '피해자 유대인'을 그린 영화가 나왔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이제 '피해자 유대인'을 다룬 영화는 더 이상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 유대인'은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되었고, 지금은 '가해자 유대인'의 이미지가 뚜렷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그동안 저지른 학살과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하고, 팔레스타인의 회복을 돕지 않는 이상, 유대인은 전쟁 때의 '독일군'과 같은 이미지로 오래도록 남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
- 상처로부터 '무민'을 그려내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쓴 글입니다.
*글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무민’ 캐릭터는 알고 있었지만, 책과 만화를 읽어 본 적은 없는 내게 무민 작가의 삶을 다룬 영화 〈토베 얀손 〉은 꽤 놀라웠다. 나는 캐릭터에 그를 창조한 작가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얗고 동그라며 귀여운 트롤인 무민을 그린 작가 역시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성품의 온화한 인물이었을 거라 막연히 짐작했다. 그러나 완벽한 편견이었다. 토베의 삶은 격정적이었고, 무민은 굴곡진 그녀 삶의 순간들을 오롯이 품은 넓고 깊은 캐릭터였다.
영화 〈토베 얀손〉은 토베가 삶의 가장 중요한 두 영역인 일(예술)과 사랑 모두에서 실패를 겪었다고 말한다. 먼저 예술이다. 누군가는 무민이 토베 사후에 인기를 얻은 것도 아닌데 왜 그녀가 예술 영역에서 실패했다고 말하는지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토베에게 예술적 성취는 유명세의 문제가 아니었다.
토베의 아버지는 핀란드의 유명한 조각가였다. 토베가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길 꿈꿨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만약 그랬다면 무민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토베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둘은 자주 갈등을 겪었다. 결국 토베는 집을 떠나 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엉망이 된 허름한 집을 구해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토베는 무민으로 성공을 거둘 때까지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무민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기뻐하지 않는다. 토베가 무민을 ‘본업(그림)’에 방해되는 시시한 낙서, 제대로 된 예술이 아닌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무민은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자신에게 사인을 받은 후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는 씁쓸한 토베의 표정은 그녀가 무민에 느끼는 거리감을 잘 보여준다.
그다음은 사랑이다. 영화 마지막에 토베가 평생을 함께할 레즈비언 파트너 투티키를 만났다는 언급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영화가 비추는 생애 기간에 토베는 늘 사랑의 실패자였다. 토베의 사랑이 향하는 첫 번째 대상은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유부남 국회의원 아토스다. 그는 다정하고 사려 깊으며 토베를 이해해준다. 그런데 토베가 아토스를 사랑하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토베의 두 번째 사랑은 헬싱키 시장의 딸, 연극 연출가, 레즈비언인 비비카다. 비비카는 저돌적으로 토베를 유혹하여 사로잡는다. 아토스는 비비카에게 마음을 빼앗긴 토베를 보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그는 토베와 비비카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걸 견디기 어렵다. 한 명의 마음속에 두 명을 향한 마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에게 생경하다. 아토스와 토베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진다.
문제는 비비카와의 관계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데 있다. 바람둥이인 비비카는 속박받는 관계를 싫어한다. 욕망이 이끄는 곳을 따라다니는 그녀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런 비비카에게 상처 받은 토베는 충동적으로 아토스에게 청혼하기도 한다. 동성애 사랑 실패의 보상으로써 이성애 결혼으로 도피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토베의 양심은 이러한 도피가 오래도록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청혼에 행복해하는 아토스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아토스는 또 한 번 좌절한다. 둘이 한 때 사랑하는 사이였기에, 아토스의 좌절은 토베의 좌절이기도 하다. 사랑의 실패는 쌓여만 간다.
비비카를 향한 토베의 마음은 그 이후로도 오래 이어진다. 토베가 최종적으로 비비카를 단념하는 건 그녀가 영원히 자기 손에 잡히지 않을 사람이란 걸 분명히 깨달은 후다. 토베는 비비카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여러 파트너 중 한 명으로 머무는 것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은 아니다. 토베가 평생을 함께할 연인 투티키를 만나는 건 이 모든 혼란과 상처가 지나간 후다.
요컨대, 토베 얀손은 예술가를 지향했으나 도달하지 못했고, 사랑을 갈구했으나 안착하지 못했다. 이중의 실패는 경제적 윤택과 그녀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게 만들었다.
무민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토베는 좌절과 고난의 순간에 틈틈이 무민을 그렸다. 스너프킨은 아토스, 토프슬란과 비프슬란은 각각 토베 자신과 비비카를 형상화한 캐릭터라고 한다. 항상 파이프를 물고 있는 스너프킨과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토프슬란·비프슬란은 모두 토베가 가장 깊게 사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착안한 캐릭터였다. 무민은 토베 삶의 모든 순간에 깃들어 있다.
무민이 끝내 토베와 세상을 화해시킨다는 점이 흥미롭다. 늘 세상에 거부당했던 토베는 자기 내면의 분노, 좌절, 고집, 사랑, 행복의 감정을 쏟아 무민을 창조했다. 얄궂게도 그런 무민은 토베를 밀어낸 세계에서 환대받는다. 토베가 열렬히 갈망했던 대상은 토베를 외면했지만, 자신이 부정당했다는 마음을 담아 먹고살기 위해 만든 캐릭터는 토베에게 오래도록 지속될 명예를 선물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토베로부터 삶이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임을 배운다. 이처럼, 때때로 ‘실패한 삶’은 예술이 된다. 생애사의 중요한 대목을 전부 담아내야 한다는 전기 영화의 의무감이 헐거운 감정선으로 이어진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옹호하고 싶은 이유다.
-
- [킬링 이브 1,2,3]: 싸이코패스 살인마와 MI6 요원의 추격전, 그리고 러브스토리
▶싸이코패스 살인마와 MI6 요원의 추격전, 그리고 러브스토리
서로 다른 조직에서, 서로 다른 목표로 일하지만 소름 끼치게 닮은 이브와 빌라넬. 이브는 MI6 요원이고, 빌라넬은 싸이코패스 살인마다. 점차 서로를 알아가는 둘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 분노가 아닌 사랑이다. 동료를 죽이고 가족을 해친 살인마에게 끌린다는 것, 자신을 좇는 요원에게 끌린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설정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일을 어렵지 않게 해낸다.
핵심은 파괴적 여성 욕망이다. 젠더에 따라 굴절된 불평등한 욕망 구조로 인해 여자들의 솔직한 욕망은 늘 파괴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자들의 욕망이 기존 질서를 뚫고 나오기 때문이다. 순종하지 않는 여성 욕망, 남자가 아닌 여자를 향하는 여성 욕망이 용납되지 않은 이유다.
살인은 파괴적 여성 욕망의 은유다. 빌라넬은 〈킬 빌〉의 우마 서먼처럼, 애초부터 사회에 순순히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없는 ‘여왕벌’이다. 여왕벌이 여왕벌로서 존재하려면 자신을 옥죄는 주변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이브만이 빌라넬의 파괴를 다르게 독해한다. 이브는 빌라넬의 파괴에서 해방감, 흥분, 전율을 느낀다. 기존의 도덕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빌라넬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대신,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남편 대신 빌라넬을 선택한다.
다만 시즌이 지날수록 드라마의 전개가 처진다는 게 아쉬웠다. 이브와 빌라넬의 서로를 향한 ‘기괴한’ 욕망은 어느 순간부터 질질 끌린다. 둘 사이의 강렬함이 소진되니, 불필요한 캐릭터 설명과 개연성 없는 인물이 늘어난다. 시즌제 드라마의 어쩔 수 없는 한계기도 하겠지만 조금 짧더라도, 압축적으로 둘의 사랑을 진득하게 감상하고 싶었다는 아쉬움은 떨쳐지지 않는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률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무엇이 비극을 기적으로 바꿨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이 안데스 산맥에 충돌해 추락한다. 비행기 동체는 두 동강 나고, 안데스 설원에 불시착한 승객들은 꼼짝없이 구조만 기다린다. 그러나 영하 40도에 이르는 추위와 눈보라, 굶주림 때문에 생존자들은 하나 둘 죽어간다.
비행기 잔해에서 간신히 찾은 라디오를 틀어보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실종 후 10일이 지나 수색작업을 포기했다는 절망적인 뉴스뿐. 이에 '난도'(아구스틴 파델라)와 '안토니오'(아구스틴 델라 코르테), '로베르트(마티아스 레칼트)', '누마(엔조 보그린칙)'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외부에 자기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입에 담기 힘든 일을 저지르면서까지.
같은 실화, 다른 영화
<더 임파서블>과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으로 이름을 알린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그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5년 만에 돌아왔다. 그의 신작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우루과이 공군 571편 추락사고를 다룬 파블로 비에르시의 논픽션 '눈의 사회'를 영상화했다. 1993년 <얼라이브> 개봉 이후 20년 만에 같은 실화를 다루는 작품이 공개됐다.
같은 사건을 다룬 작품이 있기 때문일까?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극적 요소가 두드러졌던 <얼라이브>와 달리 담백하고 사실적이다. 100시간이 넘는 생존자 인터뷰를 녹음하며 초기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 사진과 영상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이륙 전 비행장에서 웃는 사진, 조난당한 이들이 카메라로 추억을 남기는 장면, 극적인 구조 당시 영상 등은 안타까움과 환희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착실한 재현에서 그쳤다면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와 시상식이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을 초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의 특이점은 둘이다. 하나는 체험이다. 마치 안데스 설원 한가운데에서 같이 지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다른 하나는 도전이다. 생존물의 클리셰를 따르는 대신 비극을 기적으로 바꾼 원동력에 주목한다. 이 도전은 사실적인 체험 덕분에 더욱 빛난다.
안데스 설원의 늪에 함께 빠져들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의 초반부는 압도적이다. 추락하는 비행기 속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인력이 무시무시하다. 전적으로 바요나 감독의 역량 덕분이다. 그가 전작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보여준 능력이 이번에도 가감 없이 발현됐다. <폴른 킹덤>에서는 '보는 재미'를 위한 반면,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서는 '체감하는 재미'를 위해 활용됐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폴른 킹덤>에서 바요나 감독은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줬다. 인도미누스 렉스의 유해를 발굴하는 탐사정과 모사사우루스가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 본편의 어두운 분위기를 완벽히 축약해 보여줬다. 주인공과 인도랩터의 숨바꼭질이 펼쳐지는 후반부는 마치 고전 호러 영화를 보는 듯한 극도의 긴장감을 뽐냈다. 많은 영화감독이 블록버스터에서 자기 색깔을 잃곤 하는데, 바요나는 달랐다.
그의 색깔은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추락 장면은 간결하나 충격적이다. 비행기 고도가 갑자기 낮아지자 통로에 서 있던 승객은 무중력 상태가 됐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카메라는 돌연 산에 충돌해 쪼개지는 기체를 비춘다. 그 순간 승객들은 일제히 앞으로 쏠리고, 다리가 꺾이고, 코에서 피가 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묘한 리듬 속에서 톱니바퀴 같은 짧은 컷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비극과 기적 사이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역량도 탁월하다. 기적을 한 방울씩 맛보게 하면서 절망감을 극대화한다.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고 흥분했다가 좌절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오래간만에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찰나 눈사태에 갇히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유달리 많은 얼굴 클로즈업 덕분에 그 간극은 더 극대화된다. 안데스 설원이 마치 생존자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하얀 늪처럼 보일 정도다.
비극이 기적이 되는 길
특히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서는 늪에서 발버둥 치는 생존자들을 다루는 태도가 퍽 흥미롭다. '파리대왕'이나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일반적인 생존물과 전개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고립된 생존자들은 작은 사회를 이룬다. 나름대로 경제, 사회 체계를 구축해 생존을 도모한다. 그 과정에서 생존자 사이에도 권력이 나눠지고, 계급이 생기고, 갈등이 터져 나온다. 잔인함, 이기심, 본능도 이성을 꺾는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다르다. 물론 상황은 비슷하다. 생존과 인간성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 자체는 생존물에서 뺄 수 없는 재료니까. 극 중 생존자들은 생존을 위해 식인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보다 입체적으로 변한다. 그전까지는 그저 추위와 눈보라에 맞서는 이야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삶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딜레마를 풀어가는 방식이 예상 외다. 극한의 대립은 없다. 마냥 이기적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존중과 배려를 실천에 옮긴다. 로베르트는 거부감을 느낄 모든 이들을 배려해 가장 먼저 칼을 집어든다. 끝내 인육을 거부한 누마도 식인을 한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들 선택에 당위를 부여하고, 삶을 향한 의지도 입체적으로 부각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을 떠날 수 없는 죄책감도 드러낸다. 오랜만에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진 생존자들. 그들 머리 위로 돌연 눈사태가 덮친다. 인간성을 포기한 이들에게 신이 형벌을 내린 게 아닌가 싶은 타이밍이다. 가장 먼저 탈출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인육을 안 먹은 누마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장기 기증 서약처럼 자기 시신을 먹어도 된다는 의사를 밝히는 장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복잡 미묘하다.
죽은 자가 말하는 이유
여기에 의외의 포인트가 하나 더 추가된다. 내레이션이다.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화자는 깊은 곳에서 흔들리는 생존자들의 속내를 꺼내 놓는다. 서서히 웃음이 깃들며 평화를 누리는 생존자들 사이에서 엄습하는 비극을 암시하기도 한다. 특히 화자가 누마라는 점이 흥미롭다. 실화를 다룬 영화의 화자는 보통 생존자다. 그가 회고록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반면에 누마는 사망자 29명 중 마지막 사망자다.
그러면 자연히 궁금해진다. 왜 바요나 감독은 생존자가 아닌 죽은 자에게 발언권을 준 걸까? 그 답은 누마의 행적에서 엿볼 수 있다. 누마는 생존자 중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인육을 거부한 인물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누마를 내레이션 화자로 삼은 것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펼치려는 선택이라 유추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사망자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보통 생존물에서 사망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그들은 생존자의 무용담을 포장하는 양념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바요나 감독은 사망자들에게도 역할과 의지가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점점 죽어가는 와중에 누마가 자기 시신을 기증하며 친구들의 생환을 염원하듯이. 이렇게 영화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공동체 의식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전하려 한다.
그 덕분에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의 끝은 일반적인 궤를 따르지 않는다. 구조되는 순간까지는 환희로 가득했던 생존자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돌아오자 그들은 먼저 죽어간 친구, 가족을 생각하며 밀려오는 착잡함에 빠져든다. 그렇게 영화는 생존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내어준 이들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며 끝난다. 극 중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그들의 이름과 나이를 자막으로 모두 표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넷플릭스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및 폐막작으로 공개됐고, 제38회 고야상에서는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지난 7일에 열린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출품됐을 뿐만 아니라, 3월에 열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에 스페인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수상 여부를 미리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게 쏟아진 호평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것. 익숙하지는 않을 스페인어 영화라는 약간의 장벽만 넘어선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펼치는 사투와 안데스 설원의 장대함에 눈과 마음을 뺏기지 않기는 어려워 보인다.
Exce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같이 떨고, 함께 좌절하고, 어울려 기뻐하고, 끝내 숙연해지는 145분
-
- [Movielog #7] 정말 우리 엄마 맞아? 엄마와 딸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 런
Rabbitgumi 입니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런을 보고 왔습니다.
배우 사라폴슨이 주연을 맡은 스릴러에요.
영화 서치를 연출했던 아니쉬 차칸티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영화입니다.
굉장히 스릴있고 재미있는 영화에요.
집이라는 공간과 장애인으로 가지는 제약을 잘 활용하고 있죠.
엄마와 독립직전 딸과의 관계를 풀어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왓챠 2022년 1월 1주 신작 영화
[WEEKEND CHOICE MOVIE] #왓챠#왓챠신작 #왓챠영화#왓챠2022
#브로드처치 #니시아적영요 #월광변주곡 #나의직장상사는코미디언 #러덜리스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
- 영화 <타인의 친절> 메인 예고편
모두가 꿈을 안고 찾아오지만,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는 뉴욕.
그곳에서 서로를 발견한 여섯 사람의 이야기
-
-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오싹한 뉴욕> 티저 예고편
한 여름, 뉴욕이 얼어붙었다! 공포로 얼어버린 세상을 구하라! ? [고스트버스터즈: 오싹한 뉴욕] 4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