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다. 그럴 때 없냐고.
끊임없이 자극적인 걸 찾아다니는, 멈추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 새롭다는 건 다 해보고, '요즘 이게 유행이래' 하면 뭔지 보지도 않고 '그래? 얼마나 재미있기에?' 하면서 일단 기웃거려 보는 나를 발견할 때.
물론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즐겁지 않다는 건 아닌데... 사실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즐거워서 움직이기보다, 그렇게 끊임없이 따라다니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이 더 큰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심지어 그 실패감조차 콘텐츠로 뽑아내야 한다는 ("유튜브를 해! 유튜브를!") 목소리 틈바구니에서, 부단히 발버둥 치는 기분이 들 때.
그러다 문득 깨달을 때. 그 모든 발버둥은 결국 내 마음 하나와 싸우는 거였구나. 단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 그 하나가 필요했구나. 그걸 놓쳐서 자꾸 이렇게 허덕이면서 사는구나. 안정이란 인간의 환상이 아닐까?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놓치는 균형 같은 것, 공중그네 타는 유니콘이나 외줄타기를 하는 인어공주 같은 것. 그 환상을 찾아 허우적거리는 내가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닌가? 그냥 이게 환상임을 인정하고 불안정을 받아들이면 될 것을.
이 두 가지 느낌이 은유적으로 완벽하게 들어간 영화가 있다. 더없는 혼돈으로 키치하게 반짝거리는 정신없는 세상, 그 안에서도 묵직한 돌처럼 단단하게 나를 붙들어주는 무언가까지 다 들어 있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영화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제목만큼이나 얼핏 복잡해 보이는 영화다. 양자경이 분한 주인공 에블린은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살고 있다. 모셔야 하는 아버지, 기대기엔 너무 나약해 보이는 남편, 자꾸 엇나가면서 멀어진다고만 느껴지는 딸, 빡빡하게 숨통을 죄어 오는 세무의 늪... 에블린은 하루하루를 지친 표정으로 살고 있던,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그러나 세무 조사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멀티버스를 맞닥뜨리게 된다. 멀티버스라는 단어도 들어보지 않고 살았을 에블린에게, 세상은 너무 갑작스러운 속도로 무한 확장된다. 살아오면서 무수한 가능성으로만 존재했던 모든 선택의 가지들이, 내가 내리지 않은 그 선택을 했다면...으로 시작되는 수백만 개의 평행 우주로 존재한다. 그 다른 에블린들은 쿵푸 고수가 되기도 하고, 결혼을 포기한 대신 근사한 커리어를 이루기도 했으며, 심지어 손가락이 핫도그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세계에서 지금과는 다른 사랑을 하며 살고 있기도 하다.
우왕좌왕하다가 갑자기 쿵푸 고수의 일면을 보이고, 괴로워하며 세파에 지친 얼굴을 드러내다가도 새로 들은 정보들을 척척 얽어내는 에블린의 모습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중년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그러나 세상이 흔히 측정하지 않는 가치들을 품은 사람들을. 그들이 가지 않은 길, 지금과 많이 달랐을 수도 있는 다양한 삶의 가닥들, 거기서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 외에 그들이 받았을 호칭들을.
여기서 때로는 능청스럽게 코믹하고, 때로는 자차분한 얼굴로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양자경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원래 성룡을 주인공으로, 양자경은 아내이자 조력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세우려 했다던데 좋은 변경이었던 것 같다. 유려한 무술을 펼치는 성룡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역시나 빼어난 무술 배우이자 오랜 세월 '조력자'의 위치에 놓여 있던 그가 할리우드에서 첫 주연작을 맡았다는 사실 또한, 세상에서 측정되지 않았던 어떤 가치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세계관에 대한 정보 값이 0인 것인 에블린이나 관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에블린의 세상을 둘러싼 갈등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딸과 아버지, 아내와 남편, 어머니와 딸로서 존재하면서 그 사이에 놓여 있던 각양각색의 갈등과, 이를 우선시하느라 덮어두었던 자신의 존재까지 떠오른다. 멀티버스까지 가져와 엄청 거대한 이야기로 펼쳐지는, 수백만의 우주를 건너 이루어지는 그 갈등은 결국 가장 가깝고 내밀한 충돌과 닮았다.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아연실색해지는 그 충돌의 모습은 가히 불꽃놀이를 방불케 할 만큼 다채롭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충돌(심리적 충돌이든 물리적 충돌이든)의 양상을 보고 있더라면 어이가 없어서 자꾸 웃음이 비실비실 나오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이 영화의 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듦새가 매우 좋은 영화이고, 엔딩 크레딧에 어떤 동물도 촬영 과정에서 다치지 않았다는 문구를 보기는 했지만, 하루가 멀다고 잔혹한 동물 학대 소식이 들려오는 땅에서 비록 허구일지언정 강아지가 이리저리 휘둘리는 장면을 보는 것은 편치 않았다. 픽션이고, 만들어낸 장면이고, 실제 강아지가 다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영화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밟고 선 땅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밟고 선 땅을 인식하면서 볼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국세청의 악명이 높은 미국에서는 세무 조사 장면이 강력한 기능을 했다고 들었다. <나이브스 아웃> 린다의 깔끔한 표정을 싹 감춘 제이미 리 커티스가 국세청 직원 데어드리 역할을 맡았는데, 타성에 젖은 얼굴로 서류를 꼼꼼히 보며 날카로운 눈빛을 쏘는 모습도 충격적이고, 이후로 멀티버스에서 그가 보이는 모습 또한 어마어마하다. 에블린 못지않게 다채로운 평행우주를 가졌을 것 같은 인물로, 개인적으로는 에블린의 거울 너머 또 다른 주연이 아닐까 싶을 만큼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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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단조롭고 관성적인 일상을 한 꺼풀 벗긴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한다. 에블린과 데어드리, 남편 웨이먼드와 딸 조이, 할아버지 공공까지 모두 '가지 않은 길'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들이었고,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 존재들이었다.
더불어 이들과 맺는 관계, 때로는 남편이 구운 쿠키나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힘있게 사람을 잡아주는지 깨닫게 한다. 결국 사람을 구하는 건 사람을 통해 나오는 무언가 아닐까. 마셔도 마셔도 목마른,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의무감이 세대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처럼.
반짝이지 않는 소박한 모습으로, 우직한 돌처럼 항상 옆에 있는 그 어떤 마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수백만의 우주를 건넌 충돌이 무엇이든, 어디서든, 단번에 가르고 들어올 것이다.
ㅁ '씨네랩'에서 시사회 티켓을 제공받아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일은 10월 12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