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9-09 21:46:38
[JIMFF 데일리] 젊은 음악가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당신의 모든 것> 리뷰
세상에는 정답 없는 일들이 많다. 영화와 음악도 그렇다. 일반적인 규칙이나 경향성의 갈래는 있지만, 단일한 규칙이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취향의 영역도 존재하니까. 이런
길을 가는 건 어렵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면밀히 살피며 가야 하는 길일 것이다.
영화 <당신의 모든 것> 주인공 서준(강찬희 분)은 아직 그 길의 초입에 서 있는 존재다. 명확하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 은정(김규리 분)이 가르치는 내용은 그에게 잘 흡수되지 않고, 클래식을 듣고 싶지
않아 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을 쓸 만큼 클래식에 짓눌려있는 동시에 클래식이 자신의 유일한 길이라 생각해 매달리고 있다. 재즈를 기계적으로 거부하지만 우연히 하게 된 친구들과의 합주는 처음부터 자기 옷처럼 들어맞는다.
이런 구도에서는
어느 한쪽을 정답처럼 바라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쉽게 올라온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재즈의 매력을
내세우고, 은정의 꼿꼿한 태도를 마치 클래식만 고수하는 콧대 높은 사람의 재수 없는 편견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몰아가는 낡은 해법이 아닌, 자기 길을 찾아가는 젊은이의 미욱하고 서툰 여정으로 풀어냈다.
한 음만 쳐도 곧바로 “다시.”라는 말로 서준의 연주를 잘라내며, 은정이 서준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은 명료하고 정확한 형식미 쪽이다. 웅얼거리지 말고 손가락에 바늘을 세운 듯 날카롭게 치라는 말은 마치 서준의 인생에 대해 던지는 일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은정의 이런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은정은 콩쿠르 무대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을 확실히 알고 있고, 서준의 장점과 단점도 명확히 알고 있다. 다만 서준이 스스로 생각하여 찾아내기를 요구하는 은정의 방식은 서준이 흡수하기엔 너무 다른 종류일 뿐.
은정이 몇 번이고 요구한 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서준은 계속해서 도구를 활용한다. 메트로놈은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도구라지만, 그 밖에도 끈으로 눈을 감아 가리거나 얼음 주머니를 손에 갖다 대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실패한다. 은정의 가르침을 내치지도 못하지만 수용하지도 못한 채,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이따금 과격하게 분출되어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러나 모든 젊은
이들은 성장해 간다. 서준의 성장 과정에는 ‘악보에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라’며 악보보다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친구와, 그 과정을 함께하며 서준 안의 음악을 끌어내고 서준에게 믿음을 이야기하는 든든한 연인이 있고, 분명한 기준을 갖고 꼿꼿한 등을 보이는 선생님이 있다. 아직은 피해의식
없이 라이벌을 바라보기도 어려워하고 자기 감정조차 주체하지 못할 만큼 서툰 모습이지만, 음악과 관계
안에서 그는 차차 자라갈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젊은 날의 미숙함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원석처럼 투박하게 빛나는 서준의
시간을 주변 사람들의 면면이 다정하게 다듬는데, 이는 배우들의 호연으로 훌륭하게 구현된다. 무대 위 아이돌의 모습부터 어두운 시절을 거친 캐릭터 연기까지, 그간
청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해온 배우 강찬희의 시간이 이 영화에서도 미숙한 청춘의 기쁨과 슬픔을 올올이 빛나게 한다. 은정을 맡은 배우 김규리가 진중한 발성과 단단한 눈빛으로 메트로놈처럼 딱딱 영화의 박자를 휘잡고, 지수 역할 배우 한성민 또한 서준보다 한 걸음 성숙하고 든든한 조력자로서 무게를 더한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클래식과 재즈 음악 또한 마치 각각의 등장인물처럼 서준의 성장을 자극하며, 관객의 귀도 즐겁게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후배 시인에게 쓴 편지 모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올렸다. 길을 찾아가는 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 영화가 그 책과 닮은 마음을 품고 있다고 느껴졌기에. 오늘도
영화와 음악처럼 정답 없는 세계를 유영하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주목하고 있을 젊은 이들에게,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 영화와 함께 전하고 싶다.
“당신은 젊고 출발선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인내로 대하십시오. 그 문제들 자체를 폐쇄된 방이나 알지 못하는 언어로 쓰인 책처럼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당신이 얻지 못한 답을 찾아내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당신은 아직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모든 것은 경험입니다.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살아보십시오.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새 해답 안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낼
것입니다.” (45p,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9월 7일
토요일 16:00 세명대 태양아트홀
9월 9일
월요일 10:00 세명대 태양아트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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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속에서 빛을 잃은 순수함과 그 순수함으로 상처를 치유하다
편견 속에서 빛을 잃은 순수함과 그 순수함으로 상처를 치유하다
영화 리뷰 <말없는 소녀>감독] Colm BAIRÉAD
출연] Catherine CLINCH, Carrie CROWLEY, Andrew BENNETT
시놉시스] 1981년,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 카이트는 가난으로 당장 그녀를 돌볼 수 없게 된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당분간 거의 남이라고 할 수 있는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지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생전 처음 본 부부와 함께 살게 된 카이트는 새로운 환경이 낯설기만 하다.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아내 에이블린과는 그런대로 잘 지내지만, 무뚝뚝한 남편 션은 이 모든게 못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션도 카이트의 순수함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어느새 이들 사이엔 떼어놓기 힘든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스포일러 유의#편견에 갇혀있던 것이 아닐까?
영화 말없는 소녀의 주인공 카이트는 다른 형제와 다르게 집안에서 말을 잘 하지 않는다. 혼자 수풀 속에 들어가서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밥 때를 지나치기 일쑤고, 부모가 묻는 말에도 대꾸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형제자매를 비롯해서 부모마저도 이상하게 바라본다. 부모는 아이 넷을 감당하기에는 재정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가장 겉도는 카이트부터 먼친척에게 보내버린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채 먼친척 에이블린과 션과 함께 살게된다. 그곳에서 카이트는 에이블린으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처음으로 겪는다. 항상 꾀죄죄한 옷을 입고 있었던 카이트에게 입던 옷이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옷을 입혀주고, 깨끗하게 씻겨주면서 카이트가 새로운 공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초반 션은 카이트에게 큰 환대를 보이진 않지만 카이트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쥐어주면서 이 집에서의 루틴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면서 점차 카이트는 에이블린과 션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시작한다. 말이 없어도 충분히 한 가족으로써 소통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음을 에이블린과 션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림 끝에 카이트는 자신이 안정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여느 아이와 다름 없이 말을 하며 더욱 활발한 아이로 거듭난다. 그저 아이처럼 해맑고 활발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극적이고, 말이 없는 아이로 낙인을 찍어버리기 보다는 그 상황을 인내하고 지켜보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아이가 스스로 그 문을 박차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영화 말없는 소녀는 잘 그려내고 있었다.어른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아이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되려 아이들이 어른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 말없는 소녀에서 에이블린과 션은 몇 년전 아들을 잃은 부부였다. 아들을 잃은 뒤 둘의 삶은 무미건조했고, 에이블린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이런 그들에게 카이트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환기시켜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션이 사실 카이트를 못마땅해한 이유는 카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내 에이블린이 카이트를 카이트로 바라보지 못하고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투영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애썼던 것이다. 에이블린은 자신이 카이트에게 아들을 투영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카이트에게는 큰 옷이지만 어떻게든 아들의 옷을 입히려고 하고, 카이트의 새옷을 사는 것에 있어서 주저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션은 에이블린에게 카이트는 아들이 아니며, 이런 행동은 되려 카이트에게 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카이트는 그런 에이블린을 꼭 껴안아 준다. 이 과정을 통해 에이블린은 카이트를 카이트로 받아들이면서 카이트와 에이블린, 그리고 션은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처럼 한 아이는 과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그 순수함으로 치유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말없는 소녀는 굉장히 따뜻한 색감으로 한 아이가 환경에 적응하며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한 가족이 과거의 슬픈 상처를 치유받는 가슴 따뜻한 힐링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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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4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5월 4주 개봉영화!
안녕하세요 Good morning , 2021
국민 배우 이순재와 신들린 아역배우 김환희의 만남
영화 "안녕하세요"는 세상에 혼자 남겨져 의지할 곳 없는 열아홉 수미가 죽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호스피스 병동 수간호사 서진을 만나
세상의 온기를 배워가는 애틋한 성장통을 휴먼 드라마 입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서진에게 죽음을 앞두고도 누구보다 활기차고 열심히 사는 호스피스 병원 사람들과 생활하며 마음이 점차 바뀌는 내용인데요
성년이 된 ‘천재 아역’ 출신 김환희와 ‘국민 배우’ 이순재가 만났습니다
'곡성'에서 '뭣이 중헌디'라고 악을 쓰며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김환희의 성인연기자 모습을 볼수 있는 첫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 말하기 위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풀었다는 차봉주 감독의 신작!
이번주 추천영화 "안녕하세요" 입니다.
첫번째 추천영화 "안녕하세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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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The Goblin , 2022
K-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
영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조직의 전설적인 해결사, 일명 도깨비였던 두현과 그런 두현을 동경했던 후배 영민의 지독한 악연을 담은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영화 입니다.
제1회 아산충무공 국제액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김희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드라마 '나쁜 녀석들' 제작진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조동현, 이완 그리고 임정은, 윤철형, 이천은, 최기섭, 최왕순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출동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더했습니다.
거친 액션과 섬세한 감정으로 철저히 무장한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
두번째 추천영화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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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 Hommage , 2021
1962~2022 시네마 시간여행
영화 "오마주"는 한국 1세대 여성영화감독의 작품 필름을 복원하게 된 중년 여성감독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네마 여행을 그리는데요
1962년과 2022년을 잇는 아트판타지버스터로 일상과 환상을 오가는 위트 있고 판타스틱한 여정을 담았습니다.
신뢰의 연기자인 이정은 배우가 첫 단독 주연을 맡아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의 색다른 연기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삶과 예술을 사랑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보여주는데요
도쿄국제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호주시드니영화제, 영국글래스고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워싱턴한국영화제 초청과 함께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중년의 여성감독이 '여판사'를 복원하는 액자식 구성과 시간여행이 흥미를 자아내는 ‘오마주’는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은원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국의 모든 여성 영화감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수원감독은 우리가 모르는 여성감독들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모험적으로 살아온 분들의 기운을 ‘오마주’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여성영화인뿐만 아니라 영화인과 예술인, 그리고 세상의 모든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가 될
세번째 추천영화 "오마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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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조국 The Red Herring , 2022
내 주변의 누군가가 조국이 될수있다
영화 "그대가 조국"은 조국이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직을 사퇴한 10월 14일까지 67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정의를 잃어버린 검찰이 무참한 사냥을 벌이던 그때,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지를 다루는데요
그대가 조국은 언젠가는 ‘내’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조국’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달팽이의 별’로 아시아 최초이자 한국 최초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경쟁부문 대상 수상과
‘부재의 기억’으로 한국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다큐멘터리상 노미네이트와 뉴욕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승준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조국사태의 비밀!
네번째 추천영화 "그대가 조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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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그라운드 UN MONDE , PLAYGROUND , 2021
전 세계 영화제 30개 트로피 휩쓴, 올해의 무비
영화 "플레이그라운드"는 일곱 살 ‘노라’와 오빠 ‘아벨’이 맞닥뜨리게 된 ‘학교’라는 세상을
아이의 눈높이와 심리 상태에 초밀착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담은 영화입니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수상한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 영화제 30개의 트로피를 휩쓸었고, 지난 3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벨기에 출품작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학교’라는 집단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데요
플레이그라운드는 오빠가 당하는 괴롭힘을 통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동생 ‘노라’의 시선과 감정을 통해 폭력의 내밀한 전이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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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 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에 대한 믿음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뻔하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늘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플레이 리스트에는 왜 예전에 즐겨보던 작품들뿐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해주었던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이제는 장르적 쇠퇴를 맞이한 것일까?
할리우드 또한 시대별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1930년대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스크루 볼 코미디를 시작으로, 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앞세운 관습적인 역할을 지나 90~2000년대 전문직 여성까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점도 있는데,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업적 경력에도 언제나 실수를 남발하고 꼭 위기 상황에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며, 사회적 성공과 반대로 연애의 부재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자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언제나 파트너의 행동에 맞춘 쿨한 매력을 겸비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를 이상적으로 그려나갔으니 양산형 영화가 쏟아지는 흐름에 갈피를 잃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PC 요소들의 대두되며 더욱 괴리감이 생겼으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일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사랑과 운명을 믿고 싶다면 꼭 기억해 달라고 언급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뉴욕 타임스와 에스콰이어의 기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했고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며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노라 에프론이다. 인간의 소통에서 비롯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 이끌림을 통해 사랑의 힘을 전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시대가 흐르며 여타 장르들과의 혼재를 통해 다양한 변주로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로맨스가 유행되었지만, 그때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판타지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어쩌면 남녀 관계와 사랑에 대해 가벼워진 사회 분위기에 운명은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스 코미디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즐거운 무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에 대해 노라 에프론이 남긴 한마디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정확하게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지만,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정작 본인의 카피는 언제쯤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대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할 남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설렘을 다루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멜로/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말장난 섞인 가벼운 하위 장르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에서 알면서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을 통한 하나의 형식적 법칙으로 정립하며 시대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파워우먼으로 꼽히게 된다.
대체로 뻔하고 명확한 형태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과정에도 오히려 관객이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환시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매력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통해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이 같은 전개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과도 같은 맥락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비틀며 시대상을 반영한 노라 에프론식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다. 운명에 대한 믿음을 유쾌하면서도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가며 아직도 그녀의 작품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될 근사한 낭만으로 가득 찬 사랑의 기억을 머물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를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추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①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년 발표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대화들이 즐비한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타일인 동시에 노라 에프론이라 각본가로서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정립한 첫 히트작이다.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고,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제2의 연인’ 속 결혼 전을 보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1977년 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졸업과 함께 직장이 있는 뉴욕으로 우연히 동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이 날 수 없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서로를 별종이라 칭하며 헤어진다. 몇 년 뒤, 각자의 이별과 이혼을 통보받은 시기에 운명처럼 재회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은 늘 해리와 샐리 주변을 맴돌았고, 그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선을 긋고 다가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스킨쉽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첨예하고 장황한 설명은 지칠 법도 한데, 결국 헤어지기 싫다는 애증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재치 있는 각본과 별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로맨스는 아니지만,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따뜻하고 포근한 케미스트리는 설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견고히 하고, 사소한 단점 하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오랜 친구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연인이 된다는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가 5년 공백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노부부(연기자들) 이야기들이 들어간 부분은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처음 만났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말해주며 각자의 사연들을 통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는 현실을 입힌다. 마치 해리와 샐리에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인생의 평범함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노라 에프론은 보편적인 삶 속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들과 운명적인 상황들로 극적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관객에게 영화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카츠 델리’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장면은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당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스탠 바이 미’로 명장 반열에 오른 로브 라이너의 창의적인 연출력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빅’ 등의 촬영 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 등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베리 소넨필드가 의기투합해 빛났던 재능꾼들의 젊은 시절이리라 생각된다.
②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1992년 ‘행복찾기’로 감독까지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를 발표한다. 극 중 여주인공 애니가 매일 밤 보며 대사까지 외우는 1957년 ‘러브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각본을 바탕으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으시나요?’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헤친다. 이후 ‘유브 갓 메일’에서도 빛나지만, 남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대한 설정에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감성을 품고 있다. 지금은 앱으로 간소화까지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천 마일이 떨어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실의 빠져있는 아버지 샘을 위로하려는 아들 조나의 발칙한 사연으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진심이 담긴 그의 행복한 추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애니의 마음을 강타해 공감 어린 눈물을 흘리게 하며 결혼을 앞둔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운명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별과 상처가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해리와 샐리가 서로에 대해 고민한 많은 시간만큼 여기에서도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는 세 번의 장면들로 에프론은 운명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 같은 장치는 마지막 엠파이어 빌딩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으로 감독의 확신에 찬 답변으로 보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실제 마주하지 않기에 오롯이 배우들이 홀로 표현하는 감정선에 집중한 채 과거 50~60년대 로맨스 드라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소통으로 인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애틋함을 더한다. 라디오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사연을 주고받고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느리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향수들이 불현듯 찾아온 운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싶은 마음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운명의 사랑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는 듯하다. 1990년 ‘볼케이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을 보고 캐스팅한 것이겠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확신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연기는 마법과 같은 사랑을 향한 9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을 짙게 한다. 셀린 디온과 클리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When I Fall In Love’,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또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준다.
③ 1998년 <유브 갓 메일>
전작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애틋함에 안타까웠던 것인지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 컷에 담아 1998년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로 찾아온다.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독립서점처럼 보이는 길모퉁이 서점과 웹서핑 초기 시절의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사랑스러운 상황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학과 뉴욕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뉴요커 조와 캐슬린이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친분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앙숙인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과 길모퉁이 서점의 사장으로 빚어지는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담는다. 동생 델리아와 함께 집필한 이번 작품에서 자매의 문학적 소양 차이를 두 캐릭터에 녹여낸 듯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조지 버나드 쇼의 ‘캠벨 여사와의 서신 교환’, 영화 대부 등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향과 성격임을 남녀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작지만 예쁜 서점을 지키려는 감성적인 캐슬린과 따뜻한 마음에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차갑게 비치는 조의 설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쫄깃한 밀당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익명에 숨긴 채 서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동과 매번 울리는 ‘You've Got Mail!’의 알림은 그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미워하지만 깨닫지 못했다는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결말에 이르러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전환된다. 서로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들이 쌓여 그들이 마주한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감독의 운명론적 이야기는 컴퓨터를 켰을 때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던 ‘You've Got Mail’ 알림음과 ‘당신이길 바랐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다시 한번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소소한 일상, 누구나 해보는 고민들, 사람들 간의 따뜻한 대화들이 담긴 섬세한 묘사들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중간에 놓인 감독만의 감성을 품는다. 늦게 데뷔해 단숨에 최전성기에 오른 감독으로서 뉴욕을 향한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장 뉴욕다운 풍경으로 담아낸 실력,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 꿈같은 사랑이 전하는 특유의 안락함은 이 작품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명작으로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운명과 뉴욕을 사랑한 뉴요커
우리가 사랑한 노라 에프론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적으로 뉴욕이 배경에 꼭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로 운명을 믿는 마음을 담아낸다. 조금 지나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명 ‘자만추’라는 정해진 소개팅이나 맞선이 아닌 남녀 주인공 모두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추구한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끝에 다다른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 N, S로 분리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말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도 일어날 수 있는 남녀의 스파크를 캐치해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스스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시나리오 데뷔작 ‘실크우드’에서는 진실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조 대표를, ‘제2의 연인’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처를 빗대어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커리어 우먼을, 첫 연출 데뷔작 ‘행복찾기’(1992)에서는 판타지 속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던 공주가 아닌 세상과 타협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믿음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과 이에 얽힌 운명적 상대를 그린다. 보수적인 90년대의 분위기에서 억압되었던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행동의 제약을 깨부수며 신여성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가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맥 라이언의 등장이다. 초창기 두 작품의 시나리오로 연달아 만난 메릴 스트립도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연인’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 ‘행복찾기’에서 싱글맘 코미디언을 연기한 줄리 카브너 역시 큰 전환점을 만들지만, 노라 에프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연달아 흥행한 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아 완벽한 페르소나로 거듭나며 배우와 감독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시절 맥 라이언은 지금도 정석이라 불리는 숏단발컷을 유행시켰고 헐렁한 오버사이즈의 놈코어 룩으로 편안함과 러블리함, 커리어 우먼의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맥 라이언이 노라 에프론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 패러디가 생겼을 만큼 그저 귀엽기만 했던 한 여배우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열었다. 지금의 애인이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늘 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왠지 모를 나약함과 몽상적인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귀여움은 많은 이들을 판타지에만 존재할 것 같은 운명으로 초대했고 감독이 원하는 사랑은 인생이고, 인생은 판타지라는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고전 로맨스에 대한 적절하고 탁월한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카사블랑카’와 우디 앨런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유브 갓 메일’에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보이는 허영심에 비친 비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짜이지만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첫 작품 ‘실크우드’에서는 기자였던 과거 시절처럼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었고, 이혼 문제를 다룬 ‘제2의 연인’에서는 사회적인 시선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 프레임을 씌우고 언제나 자신을 반영시킨 캐릭터를 통해 희망적 판타지의 결론을 통해 웃음과 설렘을 선사한 것이다. 남녀의 성격묘사에서 서로를 공격해 무너뜨리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묘미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이 작용해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감독에 이르러 공통적으로 내세운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주인공의 만남에 마법 같은 느낌을 부여해 대중을 만족시키는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클래식 할리우드의 느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요즘이다. 주인공 커플들이 재미를 선사하려고 온갖 멜랑꼴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로맨틱 홀리데이’,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노트북’,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정확히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 지었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성과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지만, 지금 영화 업계에서 슈퍼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 등 속편, 스핀오프, 리부트라는 명명하에 흥행하면 좋다는 식으로 찍어내는 제작사의 방식도 현실적 어려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현실과 DM으로 고백과 이별을 전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 로맨틱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스러운 운명의 만남으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감정을 이입시켰던 전형적인 로맨스 방식은 이제 꿈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이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라는 문화를 이끌며 다양해진 OTT 서비스를 통해 고전 멜로/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난 믿고 있어’라는 명대사처럼 시대가 변하며 뻔한 로맨스라 여겨지는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고 저장되며 로맨스 하면 TOP 10에 꼽히는 건 희망적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로맨스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첫사랑처럼 다가온 운명의 두근거림과 가슴 뛰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와 세대의 취향은 시시각각 바뀌어 갈지 몰라도 최소한 낭만은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또 다른 노라 에프론의 등장을 희망하며 사라지지 않을 로맨틱 코미디의 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지 모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칼럼식으로 써봤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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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2019/ 미국)
- (이미지 출처: 구글이미지)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4월6일. 노란 들꽃으로 가득한 어느 아름다운 들판. 나무에 기대어 영국 병사 둘이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영국 육군 제8보병연대 소속 톰 블레이크 병장과 윌리엄 스코필드 병장이다. 블레이크에게 한 중사가 다가와 병사 한 명과 함께 사령부로 가보라는 명령을 전하면서 이들의 꿈 같은 휴식은 끝이 난다.
블레이크는 별것 아닌 명령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옆에 있던 스코필드와 함께 사령부에 도착하나 사령관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매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독일군의 계략에 빠져 다음날 아침 총공격을 할 데번셔연대 지휘관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중지 명령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데번셔연대 군인 1,600명의 목숨이 걸린 임무였다. 더욱이 그 연대엔 톰 블레이크의 형, 조셉이 소속되어 있는 형편. 장군은 진지 건너편 독일군이 작전상 후퇴를 한 상황이어서 저항이나 공격은 없을 것이니 즉시 떠나라고 명령한다.
신중한 스코필드는 장군의 정보가 틀린 것이라면 적에게 노출될 지도 모르니 밤에 출발하자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형을 구해야만 한다는 급한 마음에 블레이크는 당장 출발하라는 명령과 적은 없다는 정보를 강조하며 그 자리에서 임무에 나선다.
아군 진지의 좁은 참호밖으로 나가는 것부터가 난관. 최전선의 지휘관이 일러준대로 아군 철조망, 무너진 청음초, 적군 철조망까지의 길은 정확했으나 그 뒤부터는 오직 둘이 지도에 의지해 나아가야만 했다. 장군의 말대로 독일군은 철수한 후여서 공격은 없었지만 철수하면서 설치한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바람에 죽을 뻔한 스코필드를 블레이크가 간신히 구한다.
위기를 넘기며 전진하다가 영국과 독일의 공중전에 노출되고 마는 두 사람. 추락한 독일군 비행기가 폭발하기 직전, 블레이크는 적군이 편히 죽게 그냥 두고 가자는 스코필드의 의견에 맞서 독일군을 구하나 그의 칼에 찔려 전사하고 만다.
반사적으로 독일군을 사살한 뒤 블레이크의 죽음으로 망연자실한 스코필드. 정신을 차리고 전사한 친구의 반지와 인식표를 챙기며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데 그의 앞에 다른 연대 소속 아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지휘관인 스미스 대위는 스코필드의 목적지에서 가까운 에쿠스트까지 차를 태워주겠다며 호의를 베푼다.
우여곡절 끝에 에쿠스트에 이르는 다리 앞에 도달했으나 독일군의 폭파로 다리가 두 동강이 나 차로는 건널 수가 없었다. 스코필드는 스미스 중위와 헤어져 무너진 다리를 간신히 건너는 중에 매복 중이던 독일군의 저격을 받는다. 한 건물의 2층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안 그는 혼자 남은 독일군을 사살하나 적군이 쏜 총에 철모가 날아가면서 받은 충격으로 쓰러져 계단을 굴러 잠시 의식을 잃는다.
어둔 밤. 떨어지는 빗물에 눈을 뜬 스코필드는 조명탄이 터지는 가운데 에쿠스트 마을로 진입하던 중 적의 추격을 받는다. 그곳은 이미 적에게 점령 된 상태. 도망하다가 간신히 몸을 피한 곳에서 숨어지내고 있는 한 프랑스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버려진 갓난 아기를 기르고 있었다.
서툰 프랑스어와 영어를 교환한 끝에 데번셔연대가 있는 숲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된 스코필드는 여성과 아기에게 음식이 없음을 알고 그가 지니고 있던 식량 모두와 우유를 남긴다. 이제 곧 날이 밝아 총공격 명령이 떨어질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
적들이 사방에 포진해 있을 것이지만 스코필드는 장군의 명령과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명탄과 총알을 헤치고 전진해야만 한다.
결국 적군들의 일제사격을 받게 되자 이를 피해 강물로 뛰어들어 생사를 수 차례 오간 후에 프랑스 여성이 알려준대로 강을 따라 가다가 강둑으로 헤엄쳐 나가 숲에 이른다.
죽을 고비를 너무 많이 넘긴데다 총도 군장도 모두 잃어버리고 기진맥진한 스코필드는 숲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린 듯 끌려간다. 소리를 따라가니 숲속에 빼곡히 들어찬 사병들 가운데서 한 사내가 찬송가를 부르고 나머지 병사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데번셔연대였다. 그러나 이들은 후발대이고 선발대는 이미 출격한 후였으며 블레이크의 형은 선발대였다.
일각을 다투는 형편에 참호 속을 누비다가는 매켄지 중령의 공격명령을 도저히 중지시키지 못할 것임을 즉각 깨달은 스코필드는 참호 밖으로 뛰쳐나와, 적진을 향해 순차적으로 돌격하는 병사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내달려 사령부로 향한다.
드디어 공격명령 30초 전에 매켄지 중령에게 장군의 친서를 전달하는 스코필드. 간신히 공격은 중지시켰지만 이제는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킬 차례.
조셉 블레이크를 찾아 이리저리 뛰던 그는 톰이 알려준대로 그와 닮은 블레이크 중위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의 두 가지 약속도 지키게 된다.
<1917>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촬영상,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거머쥐었던 화제작이어서 꼭 보려고 아껴두었었다. 그리고 소문대로 롱테이크는 볼만했다.
우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지 내러티브에 힘이 있다. 전장에 있어 보지 못했거나 치열한 전투를 여러 차례 겪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지 못할 대사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차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하나 없이 이 영화를 대작으로 느껴지게 한 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여겨지게 하는 롱테이크 촬영기술에 돌려야 할 것이다. 영화 공부를 하며 수 천 편의 작품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촬영한 영화는 처음 보았다. 카메라도 등장인물들도-전방과 후방 모두에서-움직이게 동선을 배치하여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긴박감을 유지한다. 콘티를 도대체 어떻게 짰을까.
스코필드가 정신을 잃는 장면에서 암전이 있던 것 빼고는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테이크로 진행되는데 편집은 또 어떻게 한 것일까.
요즘 영화들이 리얼리티를 기치로 내세우며 특별한 촬영기법이나 편집방법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나 TV드라마처럼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는데 정말 오랫만에 영화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철조망에 걸려 있거나 땅에 파묻히거나 물 위에 떠 있는 시체들의 모습은 폭력적인 교전 장면을 대신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허망함을 충분히 전달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분노하게 만든다.
백미는 스코필드가 매켄지 중령을 만나기 위해, 돌격하는 전우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뛰는 광경이다. 그가 카메라 앞으로 전력을 다해 계속 달려 오는데도 카메라와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목적지에 쉽게 닿지 못하는 답답함과 저러다 끝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하는 장면. 이는 또 국가와 국가 사이의 치열한 전쟁 가운데 한 개인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만 하는 또 하나의 전쟁이 동시에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장면이기도 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슴에 사랑하는 이들의 사진 두어 장을 품은 채 생명을 걸고 전투에 나서는 젊은 군인들과, 그들의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을 제물로 삼아야만 얻어지는 국가의 위신과 이익의 대비가 관객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어찌 생각하면 롱테이크의 촬영기법이 관객의 시선을 제한하는 듯하여 다소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무에서 시작하여 나무로 끝나는 마무리가 진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영화 전체를 마치 편집하지 않은 한 장면처럼 만들어 두 시간 가량을 신속하게 지나게 한 샘 멘데스 감독의 실험적인 연출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인류 역사를 통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무수한 젊은이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지켜보며 만약 정치인들이 군인들만큼이나 사리사욕 없이 그들의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해 왔다면 우리나라는, 세상은 좀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하릴없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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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는 왜 다시 돌아와야만 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있다. 이 균형은 사실 평등하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열악한 조건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만족스러운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느 정도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무언의 동의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시스템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조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규약과 법률을 만들어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가끔 그 평화가 깨지고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도 있었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그 평화는 대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그 평화와 균형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완전한 해결을 위해 저항하고 평화를 위해 그대로 머무르자는 자들을 설득하려 무던하게 애쓴다. 그런 과정에서 사회는 조금씩 변해간다. 어쩌면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업데이트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선악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시스템 내부에 갈등은 다음 세대의 나은 삶을 보장하고, 사회의 암적인 어떤 존재를 제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또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그 사회적 평화와 균형이 유지되기도 한다.
사회적 평화와 균형을 이야기하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후속편
영화 <매트릭스:리저렉션>은 사회적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그 평화를 깨더라도 좀 더 나은 조건의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견 대립을 담은 영화다. 과거 1999년에 시작된 <매트릭스> 시리즈는 3편까지 진행되면서 영화의 이야기를 완전히 종결시킨 듯 보였다. 기계가 지배하는 지구에 시온이라는 소수의 인간사회가 대립하는 구도였고, 인간은 거의 기계에 종속되어 살거나 의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구원자라고 불리는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등장과 그의 희생으로 시온은 기계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되었고 둘 간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실 이전 세 편의 영화의 결말만 놓고 보면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는 여전히 기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은 소수만을 제외하면 인큐베이터에서 전기 생산으로 소비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 평화는 기계와 소수의 인류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대다수 인류의 온기는 기계에 의해 그들이 인지하지도 못한 채 착취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 시리즈의 결말은 시리즈의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결말이지만, 좀 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결말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 틈을 좀 더 파고들어 4편이 기획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매트릭스:리저렉션>은 과거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60-7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야기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건 벅스(제시카 헨윅)와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다. <매트릭스 1>의 맨 처음 장면을 살짝 비틀어 보여 주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이후 과거의 기억을 잃은 네오를 등장시키면서 시리즈 1편의 주요 장면들을 비슷하지만 다르게 바꿔 보여준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은 과거 시리즈의 초반 주요 내용을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기 때문에 4편을 보면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상기시키거나 이해하면서 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런 이야기 전개는 새로운 팬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기존 팬들에게는 자칫 지루한 동어반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패치처럼 구성된 이야기
이런 식의 이야기 구성은 기계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이야기도 추가 패치를 하여 새롭게 구성되는 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적으로 매트릭스와 살아있는 인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와 인류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존재였던 네오는 여전히 그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가진 한계도 드러난다. <매트릭스:리저렉션>에서의 네오는 다시 기억 찾지만 그에게 던져진 화두를 완전히 풀어낼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 보다 진취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벅스다. 그는 그의 팀원들과 함께 인류가 좀 더 대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평화 주의자 이자 리더인 니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대립한다. 그는 아주 작은 기회이고, 평화를 깨더라도 대다수 인류가 기계에 착취당하고 있는 그 상황을 깨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네오를 찾아내고 그를 다시 논쟁의 중심으로 불러내게 되는데, 네오에게 중요한 존재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도 현실로 다시 불러들이면서 인류와 기계의 상황을 바꾸게 된다.
기계와 매트릭스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이제 바뀌었다. 애널리스트(닐 패트릭 해리스)라는 프로그램의 우두머리가 등장하고, 그는 네오와 스미스 요원(조나단 그로프)의 기억을 지우고 모달이라는 시뮬레이션 매트릭스 프로그램에 같이 넣어두고 운영해왔다. 그건 벅스 일행에 의해 깨지게 되고 네오와 스미스의 대립과 이어진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인 애널리스트는 과거의 메인 프로그램이었던 아키텍트에 비해서 똑똑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운영방식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서 온 작은 구멍은 그가 유지해온 평화와 시스템을 다시 한번 혼란 속에 밀어 넣는다.
새로운 화두를 던짐에도 많이 아쉬운 영화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한 환상을 택할 것이냐, 아픈 현실을 택할 것이냐를 질문으로 먼저 던진다. 거기에 더해서 소수와 시스템을 위한 평화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기계에 종속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느냐는 질문을 추가로 던진다. 앞의 질문에 영화가 어떤 선택을 택하는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각자가 가진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평화 주의자인 니오베의 논리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보는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틀림없다.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리저렉션>의 러닝타임은 147분이다. 영화 초반 시리즈의 이해와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장황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늘어졌다. 또한 과거 센세이셔널하게 보였던 액션과 CG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미 많은 세월 동안 더 뛰어나고 발전된 액션을 우리는 많이 접해왔다. 그래서 이번 신작에 포함된 액션 장면들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후반부에 피치를 높여 속도감을 높이지만 그 속도감이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되지는 못한다.
여러 가지 사회적, 철학적 논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새롭고 혁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순 없다. 또한 너무 복잡한 이야기 구조 상 이전 시리즈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번 신작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아쉬운 점이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네오와 트리니티를 제외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벅스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스미스 요원이나 모피어스는 배우가 바뀌어 동일한 캐릭터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두 캐릭터 모두 이야기 속에서 겉도는 느낌이 많이 나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는 점도 아쉽다.
영화를 연출한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과거 시리즈를 릴리 워쇼스키와 함께 연출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라나 워쇼스키 혼자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그러니까 자매가 만든 이야기에 라나 한 명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후속편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러 가지 전편에 대한 오마주나 대사들, 액션 장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리즈만큼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오히려 속편을 만들기보다 리부트로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은 안타깝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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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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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분위기 속 경쾌한 액션
성장기에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다. 부모이기에 앞서 여러 가지 행동과 선택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스승 같은 존재로 그가 걸어가는 삶의 모습은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준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일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비슷한 직업을 갖게 되거나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일을 찾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보호자로서 가장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인 엄마는 아이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아이 옆에서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보호자이면서 스승이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아이는 굉장한 혼란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간 엄마가 해주었던 모든 일들을 받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절망 속에 보내다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청소년 정도의 나이라면 아이는 엄마에게 배웠던 것을 이용해 자신의 다음 삶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했던 일들, 행동들을 떠올리며 자신 만의 커리어를 만들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간다.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잠적해 버린 엄마를 잊고 스스로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사라진 엄마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샘(카렌 길런)은 킬러 생활을 하는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을 보며 성장기를 보냈다. 성장기의 어느 시점, 스칼렛은 갑자기 샘을 떠나 잠적해버린다. 그 후 샘은 떠난 엄마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하면서 성인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사라진 엄마에게 엄청난 서운함과 무수한 질문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와 똑같은 일을 택해 같은 길을 걸어간다. 그의 차가운 말투와 넘치는 에너지는 스칼렛이 가지고 있던 모습이다. 자신의 일을 할 때, 그에겐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한 편으론 여전히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소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샘을 돕는 회사의 간부인 네이선(폴 지아마티)은 과거 스칼렛을 도와줬고, 이제는 샘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일하는 지금의 샘에게 네이선의 도움은 필요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회사라고 불리는 청부살인 업체의 간부는 모두 남자가 중심이 된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대표자 격인 네이선은 선한 의도를 가진 듯 보이고 마치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샘이 가야 할 길을 지정해 알려준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네이선이 가진 의도가 회사라는 시스템 보호라는 것이 천천히 드러난다.
사실 네이선은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안정감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켜나갔던 인물인지 모른다. 그가 만든 그 안정감은 한순간에 엄마가 사라진 샘에게 어느 정도 의지할 구석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형성된 안정감은 샘에게도 실력 있는 킬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그 회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에게 가진 신뢰는 깨지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샘이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어떤 사건은 회사의 안정적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다시 그 안정을 찾기 위해 네이선은 샘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기반성 없는 보수적 시스템과 철저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조직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다르게 보면 시스템의 안정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조직과 대결을 벌이는 여성들에 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회사로 명칭 되는 조직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안정을 깨트려 부도덕을 드러내고 대결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렇게 이 영화를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도 볼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시스템과 진보적인 사람들 간의 대결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보수적인 시스템은 영화 속에서 한 순간도 반성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정화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반면 시스템과 대항하는 입장에 있는 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하며 반성한다.
샘의 반성을 이끄는 건 그가 죽인 어떤 인물의 딸인 에밀리(클로에 콜맨)이다. 실수로 에밀리의 아빠를 죽였지만 그 이후 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갑자기 혼자 남겨진 에밀리를 보며 그를 지키기 위해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또한 후반부에 샘을 돕는 조력자로 다시 등장하는 엄마 스칼렛, 애나(안젤라 바셋), 플로렌스(양자경), 매들린(칼라 구기노)은 그들의 위치와 지위를 정확히 인지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시스템에 대항해 싸운다.
영화의 전반적인 등장인물과 구성을 보면 영화 <존 윅> 시리즈가 떠오른다. <존 윅>에서 킬러들이 도움을 받는 호텔은 이 영화에서 도서관이 되고, 킬러들에게 임무를 주고 대가를 주는 회사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존 윅>은 개인과 시스템의 대결이 좀 더 강조된다면,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시스템에 반기를 든 작은 조직이 대결을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존 윅>에는 꽤 유능한 킬러들이 존 윅을 죽이기 위해 대결을 자처했다. 하지만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조직에서는 그런 유능한 킬러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위기를 맞은 시스템을 지켜줄 유능한 존재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샘과 친구들을 제거하려 하는 건 시스템의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경쟁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다. 이런 무능한 시스템은 영화의 전반적인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구성이 어떠하든 이 영화는 액션 영화다. 배우 카렌 길런이 보여주는 액션은 꽤 다채롭고 사실감이 넘친다.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해 격투 액션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꽤 빠르고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액션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그의 액션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액션 장면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샘을 도와주는 애나, 플로렌스, 매들린과 스칼렛은 총기나 도구를 활용한 액션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로 근접 액션을 보여주는 샘의 액션 장면과는 다른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레트로 한 액션과 분위기, 그럼에도 떨어지는 긴장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2,000년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등장하는 음악과 레트로 감성이 듬뿍 담긴 화면은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이미지들은 영화의 액션이 벌어지는 볼링장이나 작은 식당의 이미지와 융합되며 꽤 근사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음에도 액션만큼은 돋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샘과 에밀리가 유사 모녀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샘은 자신의 엄마 스칼렛이 범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의 실수를 바로잡고, 또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반성하면서 에밀리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과 상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에밀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시스템에 대항하는 용기로 전환된다. 샘은 자신이 엄마에게 받지 못한 신뢰와 믿음을 에밀리에게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아마도 에밀리도 샘이 하는 일과 행동을 따라가겠지만 적어도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겪었던 혼란과 아픔을 에밀리가 겪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샘은 그렇게 엄마에 의지하고 신경쓰던 삶 뿐만아니라 자신이 얽매고 있었던 조직에서도 독립함으로써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나봇 파푸샤도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스릴러나 공포 영화들을 주로 연출해 왔다. 특히 그가 2013년 연출한 영화 <늑대들>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연출작인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첫 장편 영화다. 그가 가진 감각과 연출 스타일을 그대로 뽐냈는데 여러 가지 좋은 이미지와 액션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진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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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6] 주눅들어있는 평범한 가장의 본 모습, 노바디
존윅의 각본가가 존윅 시리즈를 기획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영화 노바디 입니다.
전반적으로 존윅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집에 침투하는 적을 제압하는 액션 장면도 그렇고,
다양한 격투장면은 존윅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확실히 이 제작진의 인장이 확실히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조금 다른 점은 가족과 아빠의 가정 내 위치에서 소외당하는 모습을 넣어서 가족적인 감정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고 가족에게도 그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죠.
다른 것 보다 액션이 좋습니다.
존윅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려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물론 있는 영화죠.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끝까지 봐주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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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졸트> 메인 예고편
사랑하는 남친을 잃은 그녀.
더 이상의 통제는 필요 없다.
제대로 돌아버린 자.
그녀의 숨은 능력이 깨어난다!
백만 볼트 짜릿한 액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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