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2024-10-01 17:07:19
[DMZ Docs] 한국경쟁 단편4
광합성하는 죽음, 도트 유니버스의 어느 분신사바, 현위치
광합성하는 죽음
영화는 불교에서 그리는 불화 중 하나인 ‘구상도’를 모티브로 한다. 구상도란, 시신을 들에 방치하여 들짐승으로 하 여금 쪼아먹게 하는 풍장을 지낼 때,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9단계에 나눠서 그리는 그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구상도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화면에 드러나는 것은 미술관을 연상케하는 유리관 속에서 썩어가는 과실의 모습이다. 의도적 비노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오히려 구상도를 상상케 한다.
모든 것이 푹푹 썩어가는 여름, 채소와 과일이 천천히 곪는 과정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지만 잔혹하지 않다. 흩뿌려진 죽음에 대한 생각들은 하나의 직관적 이미지로서 전달된다. 해당 이미지는 인간과 과실의방대한 간극을 이겨내며, 구상도를 보지 않아도 죽음의 과정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역설을 이룬다.
우리들은 수많은 죽음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관객은 흔한 대상을 통해 현존하는 모습에서 일반적인부패의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구상도를 연구하는 인물들 간의 편지는 계속해서 죽음의 형상을 상기시키고, 곰팡이와 날벌레들로 표현되는 강렬한 소멸의 이미지를 부각한다.
도트 유니버스의 어느 분신사바
한 차원표류자가 디지털 우주에 도달한다. 그는 비현실적 방식을 통해 차원을 초월하고자 한다. 회상과돌이킴을 불러오는 나레이션은 이를 가능케 한다. 실존과 디지털을 넘나드는 음성과 AI 자아들의 겹침이 인상적이다.
현위치
축구장 40개 규모의 경기 광주 물류센터. 하지만 창고는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주문한 상품의 동태를 궁금해하지만, 매일 수십 톤의 물류가 모이는 창고의 존재는 금기시되다니 모순적인 일이다.
영화는 노동자의 흔적은 가려지고 상품의 ‘현위치’ 만을 주목하는 물질 중심적 현상의 이면을 조망한다. 아니, 조망하려 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물류 창고의 촬영은 금지당하고, 배달 노동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 물류와 유통의 세계에서 인간의 노동은 시스템화 된 과정 속하나의 부품일 뿐이다. 노동자가 상품에 부착된 바코드를 스캔하면 상품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이처럼 GPS 장치는 분명한 지점을 알려주지만,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그가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바코드 중 하나로 존재한다.
배달 노동자는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함께하지만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누구도 이들의 ‘현위치’를 궁금하지 않기 때문일까. 좌표와 천체 지도를 통해 표현한 공간적 연출이 인상적이다.
2024.09.27 (금) 16:30 메가박스 킨텍스 7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6일 - 10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