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10-01 18:15:28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트랜스포머 ONE>(2024)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의 첫 편이 나온 지 15년이 넘었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이야기의 초점은 흐려지고, 오로지 파괴적인 액션 장면들이 나열되는 느낌을 준다. 초기의 신선했던 감동은 점차 사라지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 시리즈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의 세계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 그들의 고향인 사이버트론이라는 행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애니메이션 영화 <트랜스포머 원>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사이버트론의 기원을 다루며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단순히 로봇 전투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들의 정치적 성장과 계급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정치적 함의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이제, 이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주요 캐릭터들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감정] 오라이온 팩스(옵티머스 프라임)의 자유
영화 <트랜스포머 원>에서 오라이온 팩스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 평범한 노동자 계층에 속하는 광부로 등장한다. 그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깊었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질서가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이버트론의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오라이온 팩스에게 큰 충격을 주며, 그는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진실을 알게된 그 순간은 그의 내면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오라이온 팩스는 시스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는 자유를 위해 싸우되, 과격한 방법 대신 온건한 접근을 택한다. 그의 목표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부패한 체계를 개선하고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비둘기파에 가까운 온건한 이상주의자적 태도이며, 사이버트론에서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영웅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오라이온 팩스가 선택하는 길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타협과 대화를 중시하는 방식이다. 그는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로 성장한다. 이는 그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단순한 전투영웅을 넘어선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이후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거듭나며 사이버트론의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 번째 감정] D-16(메가트론)의 분노
오라이온 팩스와 대조적으로 D-16, 즉 메가트론은 같은 노동자 계층에 속해 있지만, 그가 택한 길은 완전히 다르다. 메가트론은 처음에는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오라이온 팩스와 함께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메가트론은 체제의 틀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내면에서는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체제를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욕망으로 변모한다. 그는 현재의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고 믿는다. 메가트론의 이 파괴적인 성향은 그를 강경한 매파로 만든다. 그는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오직 새롭게 탄생할 세계를 꿈꾸며 폭력적인 혁명을 추진한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갈등하게 되는 핵심 원인이 된다.
하지만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파괴적 욕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며, 이 영화는 메가트론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더 깊이 파고들며 그의 폭력적 성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메가트론은 단순한 악역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로서 그의 캐릭터가 확립된다.
[세 번째 감정] 사이버트론 고대 조상들의 믿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에서 시작한 두 인물이 결국 각기 다른 정치적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이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들은 각 영웅들에게 지혜와 힘을 부여하며, 그들의 성장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흥미롭게도, 고대 조상들은 자유와 정의를 상징하는 오라이온 팩스, 즉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다. 그들은 사회를 파괴하기보다는 개선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개혁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러한 조상들의 믿음은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이 상징하는 두 가지 정치적 이념, 즉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을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는 결국 이 두 인물의 갈등을 통해 자유와 분노, 개혁과 혁명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들은 사이버트론의 미래를 두고 서로 대립하며, 그 과정에서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라는 두 영웅의 정치적 성장과 충돌을 보여준다.
조상들의 역할은 단순히 전설 속의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가 현대의 갈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남긴 유산은 두 인물의 행동에 방향성을 제시하며, 영화 속에서 사회적 진화와 혁신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제공한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이 갈등의 심오한 철학적 배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깊이
<트랜스포머 원>은 단순한 액션 애니메이션 이상의 깊이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는 사이버트론의 계급 갈등과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성장 과정을 그리며, 자유와 정의, 분노와 혁명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의 대립은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각기 다른 정치적 이념이 충돌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 영화는 특히 사이버트론이라는 세계의 기원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을 세밀하게 다룬 점에서 주목받는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로봇들의 전투 장면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인물들의 정치적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되는 정치적 주제들을 트랜스포머 세계를 통해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영화의 감독은 애니메이션계에서 유명한 조시 쿨리다. 그는 <토이 스토리 4>를 통해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은 감독으로, <트랜스포머 원>을 통해 트랜스포머 세계관의 깊이를 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이클 베이가 이끌었던 실사판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달리, 조시 쿨리는 이번 애니메이션에서 서사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특히 캐릭터들의 내면을 탐구하며 그들의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옵티머스 프라임, 즉 오라이온 팩스의 목소리를 맡은 크리스 햄스워스는 특유의 남성적이고 강렬한 목소리로 프라임의 리더십과 결단력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메가트론의 목소리를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그의 분노와 카리스마를 잘 전달하며 메가트론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두 배우의 목소리 연기는 영화의 감정선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트랜스포머 원>은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서사적으로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단순한 로봇 전투를 넘어, 정치적 성장을 그린 이 영화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기원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랜스포머 팬뿐만 아니라, 정치적 서사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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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뮬란, 뮬란 (2020) - 같은 제목, 다른 완성도
파씨 가문의 외동딸 파 뮬란은 어느 날, 훈족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인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뮬란은 아버지의 갑옷과 칼, 그리고 남장을 하여 대신 전장에 참가한다. 그런데 파씨 가문의 조상들이 수호신 무슈를 불러 뮬란과 동행하게 만들고 귀뚜라미 복동이까지 뮬란과 함께 하게 된다. 그렇게 뮬란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자인 것을 숨기고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크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1시간 20분 동안 굉장히 몰입을 하면서 관람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매우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적 관점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결국 [뮬란]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운명은 뿌리쳐라.'라고 본다. 작중에서 그저 신붓감으로 취급받았던 뮬란이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전장에 나가는 모습은 현대에서도 자존감이 낮은 탓에 쉽게 거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해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라딘]의 자파나 [라이온 킹]의 스카와는 다르게 큰 매력이 없는 빌런 산유와 다른 디즈니 영화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뮤지컬 넘버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는 중반부까지는 잘 나오다가 후반부에는 아예 없다시피 해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파씨 가문의 외동딸 파 뮬란은 어느 날, 훈족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인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뮬란은 아버지의 갑옷과 칼, 그리고 남장을 하여 대신 전장에 참가한다. 그러나 뮬란의 곁에는 말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사조가 전부였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힘을 숨기며 생존해 간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실사화 리메이크다.
일단 굉장히 실망하면서 봤다. 재미가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장점을 찾기 힘든 망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영화가 매우 실망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작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뮬란의 설정부터가 영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뮬란이 중국 무협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를 써버린다... 심지어 뮬란이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지 않고 기 하나로 모든 걸 끝내버린다. 이렇다 보니 원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성장 스토리가 사라졌고, 개연성마저 증발한 망작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감초 역할을 해주었던 무슈와 복동이가 사라졌고, 액션신은 형편없고 연기도 똥이어서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물론 디즈니답게 비주얼과 최소한의 재미는 전달한다. 하지만 원작을 모욕하고, 완성도마저 형편없는 이 영화를 왜 봐줘야 할까? 그나마 [라이온 킹] 같은 재탕은 아니었다는 게 유일한 장점.
* 본 콘텐츠는 네이버블로거 콩까기의 종이씹기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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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드 레드 스카이 / Blood Red Sk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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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를 보려고 해도 러닝타임이 2시간이 훌쩍 넘으니 이래저래 부담만 느끼는데요. 그럼에도 해당 영화를 선택한다는 건 그만큼 영화가 재밌거나 혹은 예고편을 기깔나게 찍었다는 의미일 거고요.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전자보다 후자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납치범들이 비행기를 탈취했는데 하필이면, 그곳의 승객 하나가 "흡혈귀"로 역으로 당하는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대개, 이런 영화들이 90분 내외의 오락 영화로 진행되는 반면에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121분인 만큼 그 이상의 재미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과연, 어떤 영화이었는지?' - <블러드 레드 스카이>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의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여자는 아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별 탈 없이 비행기는 도착지를 향해 날아가지만, 납치범들에게 의해 점령되고 아들에게 위협을 가하는데요.
이에 여자는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본 모습을 테러리스트들에게 드러내는데...기대했던 것만 보여주면 안 될까요?
1. 안 어울리지만, 괜찮은 조합?
앞서 말했듯이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시놉만 본다면, B급 영화의 느낌이 나는데요.
그래서 예상하기로는 90분 내외의 짧고 굵은 임팩트를 기대하겠지만,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121분으로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라고 관객들에게 어필합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설정한 "흡혈귀"와 "엄마"라는 상충된 설정은 흥미로운 부분으로 보였습니다.사랑했지만?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인용하듯이 '흔히, 연인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낌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데 이는 아기가 엄마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절은 '비대면'과 '비접촉'입니다. 좀비 영화에서도 깨무는 것을 비롯해 침과 피와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과 감염도 한 끗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서 사랑과 감염의 차이는 한 끗 차이로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블러드 레드 스카이>에서의 "흡혈귀"와 "엄마"라는 설정이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이 일맥상통하게 바라볼 수 있거든요.2. 행동에 앞서 말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에게는 저런 의미보다는 앞서 언급한 납치범들이 역으로 당하는 이야기일겁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빠르게 이야기에 들어가야 하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속도와 다르게 느리게 진입합니다.
대다수의 오락 영화라면, 납치범들에게 아이을 빠르게 위협하는 단계로 넘어가겠지만 해당 영화는 "왜, 흡혈귀가 되었는지?", "남편은 어떻게 죽었는지? 등의 설명을 해주는데요.
보여주니 보면서도 드는 생각은 '납치범들이 역으로 당하는데, 꼭 필요한가?'라는 물음표가 생기더군요.물론, 이해는 합니다만...
물론, 이런 장면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는 충분히 압니다.
"괴수"가 출연하는 영화들에는 "어떻게 변하는지?"와 "무엇에 약한지?" 등의 일종의 규칙들을 세우고 이를 지켜야만 합니다.
이는 해당 영화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보여주는 장치로 만약에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로 자꾸만 번복된다면 이야기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겠죠.
그런 점에서 해당 규칙을 설명하는 목적에서 보는 과거 에피소드는 맞지만, 이를 굳이 시간을 더 내어주고 해야 하는 필요성에는 의문이 생깁니다.3. 제발, 이렇게 애원합니다...
애당초 관객들이 바라는 <블러드 레드 스카이>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대개, 90분 내외의 오락 영화는 다소 전개에 있어 일부 개연성에 문제가 생김에도 정선 없이 몰아붙이며 관객들을 압도하는데요.
야구로 예시를 들면, 투구를 하는데 빠른 퀵모션으로 타석에 서있는 관객들은 자세도 갖추기에 앞서 헛돌기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121분으로 콘셉트에 비해서 넉넉하다 보니 관객들이 예상했던 위력이 나와주지 않는데요.
이에 대한 원인으로 "플래시백"인데, 자연스레 설명이 많아져 정작 관객들이 바라는 것에는 가장 늦게 도착하니 예상했던 장면에 대한 피로감은 더 느껴질 겁니다.하지 말라는 건 다하네.
그리고 무엇보다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에는 캐릭터들의 행동에도 있습니다.
영화 <스크림>이 공포 영화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들을 비꽜던 것처럼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의 캐릭터들은 이런 행동들을 빠짐없이 해냅니다.
특히, 아들내미가 문젠데 엄마랑 어른들 말 안 듣고 뛰쳐나가는 모습처럼 "발암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데요.(물론,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 진행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외에도 주식 중개인의 격리실 공개 등 121분임에도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정당성을 입증해 주지 못한 영화의 많은 분량이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습니다.4. 그렇게 했는데도 못하면...
앞서 말했듯이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가 바라는 목표는 사랑과 감염의 차이가 한 끗 차이임을 말해주려 했을 겁니다.
과연, 영화가 그 목적에 맞게 설명했는지를 관찰해해보면 실패로 보입니다.
결국, "모성"과 "본능"에 망설이는 엄마와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리 묘사에 그 성과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은 가차없다고 느껴졌거든요.
이처럼 연출자가 의도한 목표가 실패했다면, 다음 목표로 잡은 오락 영화로서의 목적은 제대로 수행했을까요? - 그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앞부분만 잘 읽으셨다면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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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모양의 사랑
어제는 아빠의 일흔 일곱번째 생일이었다. 지난주말에 부모님을 뵈러 대구에 다녀왔는데…불과 몇달만에 갑자기 기력이 쇠한 느낌이 들어 코 끝이 시큰해졌다. 아빠는 요즘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쓸고, 아빠의 작은 이발소 문을 연다. 성실히 하루 하루를 꾸려 가는 분이고, 늘 일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갑자기 늙으신 것 같은 얼굴을 마주 하는게 믿기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아빠는 나에게 특별한 분이다. 40년대에 태어나셨는데…요즘 MZ같은 마인드로 80년대생인 나를 키웠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감정적인 결핍이 없도록 나를 키웠다. 엄마 뿐 아니라 아빠에게도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를 믿어주셨다.
경상북도 깊은 시골에서, 자주 술에 취하고 폭력적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도망 나와 서울로 간 게 중학교쯤이었다 하니, 아빠의 학력도 아마 그 즈음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수성가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당장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족을 떠난 사람.“아빠 그렇게 어렸는데…어떻게 혼자 살았어?” 겨우 열몇 살이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면. 아빠는 “ 뭐어. 잘 먹고 잘 살았어.” 하고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아빠는 그랬다. ‘오늘 뭐 하고 놀았니? 무슨 책을 읽었어? 기분은 어때?’ 학교를 다녀와 이발소로 뛰어 들어오는 나에게 백가지 질문을 퍼붓고, 온갖 수다를 받아주고, 장난을 걸고, 대화를 하면서도 ‘아빠가 옛날에는 말이야…’하는 영웅담이라던가,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같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당신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자식이 알아 주지 않아도 상관없이 온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
꽤나 이기적으로 살아온 터라 아이를 낳기 전엔 잘 몰랐다. 나의 마음 보다,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일.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마음이 쓰여서 때때로 나의 일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것을. 그런 일은 거의 대부분 모두 내 배에서 탯줄을 끊고 태어난 아이 때문이었다. 배 속에 품어 낳은 것이 아닌 아이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내어 주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모든 가정은 다르기에 ‘아빠의 사랑’ 역시 수십만 개의 모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기쁨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애틋하거나, 적당한 무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장난기가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여자로 태어난 나는 결코 알지 못할 다른 모양의 사랑을 늘 궁금해 왔다. 이런 영화의 좋은 점은 내가 아빠가 될 수 없기에 과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담담하게 지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혹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서 내내 마음을 아리게 했던 아빠의 영화들 중 많은 영화가 평범하기 보다는 조금 부족한 아빠에서 시작한다. 영화<아이엠 샘>에서 샘은 지적장애로 7살의 지능을 가진 아빠로 나온다. <파더 앤 도터>의 제이크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사고 이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설가이며, <더 웨일>의 찰리는 아내와 이혼 후 동성연인의 죽음을 겪고 그로 인해 270kg의 거구의 몸집으로 살아가고 있다. <애프터 썬>의 캘럼은 어린 나이에 소피의 아빠가 되었지만 이혼을 했다. 딸과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떠나왔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슬픈 감정에 쌓여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언급한 영화들의 자녀는 모두 딸이다. 영화 속 아빠는 경제적으로 부족하거나, 정신적으로 부족하거나,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이런 결핍과 상황이 딸을 지키는 못하는 일이 될까 두려움을 느끼는 일들이 생긴다. 영화는 아빠의 지능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사랑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돈과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한한 사랑이라고. 아빠들은 입양을 보내는 쪽보다 끝까지 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찰리는 죽음이 가까워 왔음을 느끼며,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캘럼은 위태로운 마음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화가 딸의 시선이라 짐작만 할 뿐이지만) 딸에게 즐거운 시간이라는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일지…혹은 작고 연약한 존재를 지켜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이 더 큰 위로가 되기 마련이다.
이토록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때로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아빠는 딸을 살게 하고, 딸은 아빠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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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우먼1984](2020) - 신발에 주목하라!
최근 이하늬 주연의 SBS 드라마 [원더우먼](2021)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글은 드라마가 아닌 영화 이야기라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패티 젠킨스(女) 감독의 2번째 원더우먼 영화인 [원더우먼 1984](2020)는 일반적으로 아주 재밌다라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1편인 [원더우먼](2017)에서는 조연급의 갤 가돗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동시에 포텐이 터지면서 내세우며 재미를 봤었죠. [원더우먼]이 절대적으로 잘 만들었다기보다, DC 영화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그나마 나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시리즈의 2번째에서, 너무나 빨리진짜 실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1편에서는 여러모로 운이 많이 작용했던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만약, 내용에서 큰 재미를 못 보신 분이라면, 신발에 주목하여 다시 한 번 보세요! 거의 신발영화거든요.[원더우먼 1984]에는, 신발에 클로즈업 되는 장면들을 모아봤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스토리를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함께 한 번 보시죠.
[1] 여성슈즈
1. 아이언맨 시그니쳐 컬러를 가진 글래디에이터 타입 신발을 장착한 원더우먼 첫 등장
2. 나중에 빌런이 되는 바바라(크리스틴 위그) 첫 등장. 이 때는 단정한 신발.
3. 호피무늬 킬힐 (원더우먼): 이때부터, 신발에 집중하며 봤는데, 진짜 신발에 클로즈업을 많이 하더라구요. 이 신발을 보고, 바바라는 치타가 되기를 결심한 듯
4. 점점 화려해지는 스타일을 싡는 바바라. 민트색 오픈 토
5. 완전 각성한 바바라 (수수한 신발에서 화려한 발목 스트랩 금장 초고가 신발로)
6. 니하이 부츠 (바바라): 이 스타일은 정말 패피들도 평상시에 입고 다니기 힘듭니다.
[2] 남성슈즈
1. 남자 빌런인 맥스(페드로 파스칼)의 어린시절의 가난함을 찢어진 신발로 표현. 여기까지 신발이 등장하더라구요.
2.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 맥스의 발목에 채찍을 휘감은 원더우먼. 역시 신발 부분. 이것을 위해서 시종일관 신발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릅니다.
[3] 나이키
1. 대 놓고 나이키 광고 : 나이키 운동화가 신기한 남우조연(크리스 파인).
2. 나이키(바바라)
정말 다양한 신발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미 보신 분이라면 신발에 주목하여 다시 한 번 보시고, 보실 분 역시 신발에 주목해 보세요!
전, 패티 젠킨스 감독이 신발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거 뿐만 아니라 액션과 갤 가돗의 연기에도 신경을 썼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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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와 클리셰가 합쳐진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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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는 사실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는 것을 무서워 하는 편이어서 영화관에 잘 안가는 편인데, 의도치 않게 영화관에서 보게 된 영화 <변신>.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으나 생각과는 다르게 클리셰 덩어리어서 실망감이 컸던 작품이었다.
영화 <변신> 시놉시스“어제 밤에는 아빠가 두 명이었어요”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악마가 우리 가족 안에 숨어들면서 기이하고 섬뜩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서로 의심하고 증오하고 분노하는 가운데 구마 사제인 삼촌 '중수'가 예고없이 찾아온다. 절대 믿지도 듣지도 마라.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변신>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무섭긴 했던 영화 <변신>
무서운 걸 좋아하지만 무서운 걸 잘 못보는 사람으로서,,, 옷으로 다 가리면서도 영화 <변신>을 꾸역꾸역 봤다. 청각적인 요소도 정말 잘 이용했고, 갑자기 악령에 빙의된 사람이 등장을 한다던지 아니면 피가 막 천장에서 비처럼 쏟아진다던지 그로테스크한 지점도 꽤나 있어서 무서움이 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장면
그 무서움 속에서도 영화를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한 군데가 있었다. 바로 강구의 집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이상한 남자의 죽음이다. 십자가가 거꾸로 메달려 있고, 염소의 사체와 각종 동물들이 사체가 집안에 널부러져 있는 아주 기괴한 집의 주인이었다.
그 이상한 남자는 중수가 방문을 했을 때 이미 죽어 구더기들의 밥이 되고 있었다. 그 순간 플래시백이 되면서 그 남자를 아내가 죽인 것처럼 보여주다가 다시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이웃집 남자가 나온다. 본인이 본인을 죽인 것인지,, 아니면 살해를 당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가족들의 내면 심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면 명작이 되지 않았을까?
사실 영화 <변신>은 가족 내면의 심리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서운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말하지 못한 것을 변신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지점을 조금 더 심도 있게 그려냈더라면 가족 스릴러로 굉장히 밀도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가족 간에도 말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그저 소재로만 이용을 하고 악령에 빙의되어서 그 악령만 없앤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린다는 방책은 굉장히 아쉬웠다. 그리고 그 해결에 있어서 삼촌이자 구마사제인 중수가 십자가에 찔리면서 굉장히,,, 틀에 바긴 클리셰로 끝이 나는데 이 장면 역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막판의 클리셰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내면 심리를 제대로 표현했더라면 한국 공포영화의 걸작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던 영화 <변신>.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공포영화의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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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숨 쉬는 과거를 딛고 새 미래를 꿈꾸는 <스펜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스펜서>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여느 때처럼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복싱데이까지 삼일 간의 연휴를 보내기로 한 영국 왕실. '다이애나 왕세자비(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왕실의 일원으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별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시작부터 편안하지 않다. 새롭게 별장을 담당하게 된 지배인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의 눈을 빌린 시어머니와 남편의 집요한 감시 속에서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였던 앤 불린의 환영을 볼 정도로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다이애나. 그녀는 유일한 말벗인 의상 담당자 '매기(샐리 호킨스)'와 두 아들에게 의지하며 간신히 예정된 행사들을 버텨내지만, 과거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기억은 그녀의 답답한 현재와 상충하며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힌다.
다이애나 스펜서. 20세기의 신데렐라로서 전 세계의 눈이 집중되었고, 대인지뢰 제거 운동과 같은 수많은 선행으로도 기억되었던 그녀. 동시에 그녀는 보수적이고 비밀스러운 영국 왕실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로서 수많은 가십을 만들어 냈기에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재현되고 있기도 하다. 당장 최근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의 네 번째 시즌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사실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소재로 한 작품은 신선함을 담보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이에 파블로 라라인 감독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만난 <스펜서>는 역사가 되어버린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다양한 상징을 토대로 15년에 걸친 왕실 속 그녀의 삶을 단 삼일 내에 농축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특히 영화는 작중 다이애나의 대사처럼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서로 다른 타임라인을 스크린에서 교차시키며 그녀의 삶을 요약한다. 이를 토대로 <스펜서>는 새로운 미래를 그려내기 위해 살아 숨 쉬는 과거에 맞서 싸우는 현재를 살았던 한 개인의 고통을 생생히 전달한다.
<스펜서> 속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의 불륜을 묵과하고 오히려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을 압박하는 영국 왕실과 맞서 싸운다.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을 개인과 과거라는 시간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영국 왕실이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과거이자 숨 쉬고 움직이는 의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에밀 뒤르켐에 따르면 의례는 종교의 내용에 깊은 의미와 활력을 주며, 종교가 목적하는 바를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행위다. 의례는 믿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신앙을 창조하고, 또 주기적으로 재창조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례는 역사적으로 권위가 인정된 행동 양식을 반복하며 종교의 의미와 상징성을 표현하고 강화한다.
영국 왕실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군주제는 과거 영국의 영화를 기억하게 해주는 상징이자 영국인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며 자신의 상징성을 유지하려 하고, 일원들 개개인의 개성과 삶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보수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처럼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현존하는 과거인 영국 왕실의 본질을 왕실의 일원들을 통해 영리하게 포착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엘리자베스 2세가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 단적인 예시다. 카메라 앞에 모인 가족 중에 다이애나와 그녀가 두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표정의 변화조차 전혀 없이 마치 인형처럼 보인다. 대화 중에 다이애나를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이나 예법에 따라 불편하고 복잡한 식사 시간에 다이애나가 강한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것 역시 존재 자체가 의례인 영국 왕실을 잘 보여준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스펜서>가 영국 왕실이라는 액션보다는 그에 대한 다이애나의 리액션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보다 희망찬 미래를 위해 사투를 펼치는 그녀의 고통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당장 엘리자베스 2세와 찰스 왕세자와 같은 중요한 인물들이 초반부에 등장하지 않는다. 또 설령 등장하더라도 영화는 그들을 상당히 원거리에서, 뒷모습 위주로 비춘다. 이야기의 전개나 다이애나의 감정선 변화를 위한 최소한의 순간을 빼면 왕실 관련 인물은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식사 시간이 되었거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족들이 다 같이 열어보는 시간이 되었을 때, 행사의 순간은 건너뛰고 곧장 다이애나의 반응을 보여주는 식이다. 대신 영화는 오히려 의상 담당자나 셰프처럼 그 외의 인물들과 그녀 사이의 대화에 집중한다.
굳이 왕실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그려내지 않고 그녀의 리액션만을 보여줌으로써 <스펜서>는 절제된 방식으로 그녀의 아픔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영화는 고통스럽다. 영화 포스터처럼 드레스를 입은 채 구토하는 언밸런스한 그녀의 모습만 보더라도 느껴진다. 찰스가 다이애나에게 선물한 진주 목걸이에는 이 모든 고통이 함축되어 있다. 다이애나는 그 목걸이를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오래전 헨리 8세에게 버림받은 천일의 여인인 앤 불린에게서도 본다. 즉, 이 목걸이에는 과거를 갱신하기 위해 정해진 역할에만 충실할 수 없는 이들이 퇴출되어 오는 역사가 담겨 있다. 앤 불린만 하더라도 왕실에 걸맞은 왕비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사형에까지 처해졌으며, 이는 영화에서 앤 불린의 유령이 시간을 넘나들어 나타나며 다이애나를 만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스펜서>는 생명력을 잃고 의례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격렬히 거부하는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화는 다양한 연출과 상징을 통해 과거에 억눌리는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알려준다. 왕실 별장으로 가던 중 어릴 적 자신이 자란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버린 다이애나. 아무도 그녀를 돕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에게는 과거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허수아비와 들판만이 위안이 된다. 어린 시절의 다이애나는 발레리나를 꿈꾸던 자유로운 존재였지만 지금은 왕실이란 공간에 묶인 채 그 압박을 견뎌야 한다. 그렇기에 허수아비에게 다가가 옛날에 입혀줬던 옷을 벗기는 그녀를 지켜보다 보면 허수아비는 다이애나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한편 영화는 왕실의 강한 법도로 인해 다이애나가 느꼈던 압박감을 관객들이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군인과 요리사들의 모습이 그 중심에 있다. 언제나 왕실과 함께 움직이는 그들은 강한 규율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도입부에서 이들이 교차로 주방을 향하는 모습은 살아있는 과거이자 의례를 눈앞에 만날 수 있는 순간이고, 항상 숨 막힌 채로 지내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는 저택에 들어간 다이애나가 몸무게를 재는 장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재미로 시작된 왕실의 규칙이라는 몸무게 재기에 다이애나는 강한 반감을 표한다. 그러다 보니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녀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스펜서>는 단지 다이애나의 아픔과 고통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희망을 노래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현존하는 과거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과거다. 저택을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고자 하는 다이애나의 투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펜서 가문의 옛 집과 앤 불린을 통해 완성된다. 폐가가 된 옛 집에서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을 본다.
그 순간 영화는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현재의 다이애나가 번갈아 등장하며 들판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간 과거를 통해 현재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미래를 암시한다. 앤 불린의 불린 가문과 혈연적으로 이어진 '스펜서' 가문의 과거,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되기 전에 한 개인으로 살 수 있었던 '스펜서'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다이애나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준다. 왕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기로 결심한 다이애나 스펜서를 비춘다. 그래서 자신처럼 왕실 안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구하는, 억지로 꿩 사냥에 나선 아이들을 구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희망찬 후반부는 영화의 첫 장면과 대비를 이루며 영화의 균형을 잡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당장 첫 장면에서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교차시키면서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을 강조한다. 영국 왕실의 별장으로 향하는 차들이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데, 그 차들이 지나갈 때 도로에 떨어져 죽어 있는 한 꿩의 높이에서 차들을 포착한다. 이 장면에서 현재는 차들이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간신히 차들에게 치이지 않는 꿩의 모습은 영국 왕실 내에서 고통받던 다이애나의 과거를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동시에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고 있다면 도로에 누워 있는 꿩 한 마리는 마치 미래의 다이애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스펜서>의 후반부는 과거를 이겨내고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다이애나를 비춘다. 이러한 대비는 수미상관의 구조 안에서 극적인 안정감을 추구하고, 동시에 그녀의 삶으로부터 비극과 희망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즉, <스펜서>는 희망을 노래하며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한 여성의 삶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비극을 영화적으로 기억하는 장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살아있는 죽음, 현존하는 과거에서 피어나는 다이애나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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