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02 16:33:14
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거인> 김태용 감독과 배우 최우식, 신작에서 재회

2014년에 개봉한 영화 <거인>으로 한국 영화계에 큰 돌풍을 일으켰던 김태용 감독이 신작 <넘버원>(가제)에서 당시 주연을 맡아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던 배우 최우식과 재회합니다.
추석 시즌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넘버원>은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을 때마다 눈앞에 카운트다운 숫자가 보이는 하민(최우식)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입니다.
<아쿠아맨> 제이슨 모모아, DCU 영화 복귀

<아쿠아맨>의 제이슨 모모아가 새로운 DCU 영화 <슈퍼걸: 우먼 오브 투모로우>에서 ‘로보’로 캐스팅되었습니다. ‘로보’는 Czarnia 행성 출신의 안티히어로로, 폭력적이고 괴짜 같은 성격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초인적인 힘과 재생 능력을 가진 현상금 사냥꾼이며 혼란과 파괴를 즐기는 캐릭터로 아직까지 대규모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적이 없어 관객의 기대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더 배트맨: 파트 II>, 2027년으로 개봉 연기

로버트 패틴슨의 <더 배트맨> 속편이 또다시 개봉 연기를 알렸습니다. 이미 2025년 10월 3일에서 2026년 10월 2일로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는 해당 속편은 최종적으로 2027년 10월 1일(북미 기준)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속편 역시 <더 배트맨>을 연출한 맷 리브스가 각본과 연출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으며, 1편에 출연했던 조 크라비츠, 앤디 서키스, 제프리 라이트, 콜린 파렐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존 윅> 제작 ‘라이온스게이트’ 매각되나

<존 윅>, <트와일라잇> 등 걸출한 작품을 다수 제작한 ‘라이온스게이트’가 현재 매각을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더 크로우>, <메가로폴리스> 등 2024년에 대형 실패작들을 다수 내놓은 ‘라이온스게이트’의 구체적인
구매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스튜디오 고위 관계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2025년 개봉예정작으로는 <발레리나>, <나우 유 씨 미3> 등이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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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예술
마이 뉴욕 다이어리
줄거리
1995년 뉴욕, 대학생인 조안나는 우연히 여행 온 뉴욕에 머물며 작가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당장 수입이 없어 작가 에이전시에 비서로 취업하게 된 조안나.
출근 첫날부터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인 샐린저의 팬레터에 정해진 양식으로 답장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는데…
'나'의 예술
숨은 의미 찾기
조안나의 곁에는 전남친 칼과 현남친 돈이 있다. 이들은 조안나의 삶의 방향을 바꿀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어느 사람의 곁에 있는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어떠한지에 따라 조안나가 나아가는 방향이 시시각각 틀어지기 때문이다.
현남친 돈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허세에 찌든 예술가라고 할 수 있겠다.
돈은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다. 그는 오랫동안 새로운 책을 출판하지 않는 샐린저를 두고 '진짜 작가가 아니다'라고 비난하거나, 유명 잡지사를 비꼰다거나 하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게다가 벌이가 시원찮으면서도 굳이 한 달에 500달러짜리 아파트를, 그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조안나 이름으로 계약하거나, 조안나가 쓴 글을 보며 비웃는 등 여자친구에게는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인이 제 글을 착실하게 쓸진 모르겠으나, 이런 모습들에서 그가 오랫동안 등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조안나는 그런 돈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 모습이 자신과 닮아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조안나는 뉴욕에 우연히 여행 왔다가 이곳에 반해서 정착했다. 자신의 글로 성공하겠다는 일련의 목표를 세웠지만 오래 머물수록 그 목표와는 멀어진다. 작가 에이전시에서 일하면 작가와 가까워질 줄 알았건만, 오히려 글 쓰는 시간만 줄었다.
"넌 글도 안 쓰고 있잖아."
"나도 안 쓰는 건 아니야."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결혼 때문에 뉴욕을 떠나겠다는 친구에게 '넌 진지하게 작가가 될 마음이 없었구나'라며 은근히 비난하는 말을 한다. 그 말에 발끈 한 친구는 '돈은 글을 쓰고라도 있지'라면서 손 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조안나에게 팩트 폭력을 때려버린다. 그러자 조안나는 변명한다. 자신도 팬 레터에 답장하기 위한 편지들을 쓰고 있다면서.
그녀는 엉뚱한 곳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팬 레터에 답장하는 것이 자신이 이 뉴욕에 정착한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이는 돈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작가 지망생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처럼 일종의 회피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직시하는 순간 무너져 내릴 것 같기 때문이다.
조안나는 변명은 점점 더 늘어난다. 글을 쓰고 있냐는 샐린저에게 그녀는 일이 바쁘다고 중얼거린다. 그렇지만 다 알고 있다. 자신이 변명할 뿐임을, 이미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와서 느꼈던 열정과 열의는 다 꺼져버렸음을.
그런 상황에서도 조안나가 돈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건, 지금이 안락해서이다.
경제적으로 시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피나는 노력을 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이때의 피나는 노력은 단순히 등단이라기보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예술을 제 안에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사실 조안나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조차 모른다. 그저 대학 공모전에 한 번 당선되었다는 것 외에 그녀에겐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도 없다. 도무지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자기 자신조차 모르기에, 차라리 변명하고 외면하는 지금 이 상황이 더 안심되는 것이다.
전남친 칼의 편지를 읽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와 같다.
잠깐 나오긴 하지만 칼은 플루트 연주자다. 자신만의 길을 확실하게 정해두고, 그 방향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조안나는 한때 그의 곁에 머물며 그에게 의존했다. 칼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일종의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른 사람들 글이나 읽으면서 분석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내 글을 쓰는 거야."
뉴욕에 머물기 전, 조안나는 제법 안정적인 길을 확보했으나 뉴욕에서 돈을 만난 후 마음이 바뀐다. 막상 불안정해도 자유로운 돈의 모습을 보니 그쪽에 속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돈에게 속한 이상, 이미 바뀌어버린 자신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명확한 방향을 정해 나아간다는 확신이 없으므로 칼에게 제대로 된 이별 통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중간 어디쯤 꽉 끼어버린다.
조안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드디어 샐린저의 책들을 접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다잡게 된다.
그녀는 칼과 돈에게 의존하던 마음을 바로 세운다. 그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하고자 했던 예술이 무엇이었는지 갈피를 잡게 된다. 그녀는 여태껏 왔던 팬 레터를 읽으며 수없이 많은 질문을 고민하고 그에 대해 한 글자, 한 글자 친절한 답장을 시로 써낸다.
타인과 소통하고 그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것.
위로와 격려를 또 다른 편지로 써서 세상에 부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진정 바라던 예술의 형태였던 것이다.
다 써낸 원고를 잡지사에 갖다주고 나서야 조안나는 샐린저의 주머니에 팬 레터를 넣게 된다. 이제 팬 레터가 제 주인을 찾아가야 하는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연 샐린저에게 들어간 편지는 또 어떤 예술이 되어 나타날까. 그것을 기대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내' 이야기?
감상평
한동안 멍했다. 상징을 뜯어내서 의미를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저 가만히 영화를 봤고, 영화를 보고 나오니 어떤 장면도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 자체가 컷편집이 너무 많은 탓에 뜨문뜨문 기억나는 탓도 있지만, 아마 너무 내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내용이라서 팩트 폭력 맞고 2000원 추가된 듯.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지금 당장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내가 멈춰있음을 인지하기도 힘들 만큼. 그럴 때면 어김없이 우울해졌다. 그리고 글이 좋으면서 싫었다. 애증을 품은 채 내 글을 읽으며, 나는 대체 왜 이러고 사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요즘은 일부러 리뷰나 에세이를 따박따박 날짜 맞추거나 분량 맞춰서 쓰지 않는다. 정말 쓰고 싶을 때만 한다. 이 영화도 내가 보고서 리뷰 쓰고 싶다고 생각해서 봤다. 애초에 리뷰와 에세이 모두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거긴 하지만, 최근 들어 의무적으로 느끼는 것 같길래. 우선순위로 의무를 가져야 하는 건 소설인데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는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인생에 정해둔 우선순위가 밀려나지 않게 항상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젊은 날을 낭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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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앵그리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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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레벤느망〉에서 주인공 안은 두 번의 임신중지를 시도한다. 뜨개질바늘을 사용해 혼자서 한 번, 불법 시술소에서 또 한 번. 〈레벤느망〉은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비껴가지 않는다. 안의 거친 호흡과 고통스러운 신음, 날카로운 시술 도구가 안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으로써 ‘불법’이라는 추상적 규범이 초래하는 위험과 이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수치심을 고발한다.
〈레벤느망〉의 배경은 1963년의 프랑스다. 〈앵그리 애니〉는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을 다룬다. 두 아이가 있는 엄마 애니는 임신중지가 가능한 곳을 수소문해 한 서점을 찾는다. 서점 직원은 찾는 책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혹시 모임에 온 것이라면 커튼 뒤쪽으로 가 보라고 말한다. 커튼 뒤에는 ‘불법이지만 비밀은 아닌’ 일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곳에 모인 여성들은 임신중지가 필요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들에게 사려 깊은 태도로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임신중지에 어떤 도구를 활용할지 하나하나 일러주고, 모든 궁금증에 상냥히 응대한다. 겁에 질려 그곳을 찾은 여성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그들은 MLAC, 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의 활동가다.
이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애니는 임신중지를 위해 침대에 눕는다. 의사 한 명과 활동가 둘이 애니 곁에 있다. 그들은 애니에게 거울로 자궁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자기 몸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기 위함이다. 의사는 애니가 불편함을 느끼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활동가는 애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내내 곁을 지킨다.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끝났다고요?” 임신중지가 마무리되자 애니가 깜짝 놀라 묻는다.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애니에게는 이토록 쉽고 간단하고 안전하게, 심지어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임신중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레벤느망〉의 임신중지 장면과 달리, 〈앵그리 애니〉의 임신중지 장면은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두 영화가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방식의 차이는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이 어떤 환경과 맥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MLAC 덕에 공포가 안도로 바뀐 애니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경험에 계속 잊히지 않는다. MLAC의 도움으로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은 안전하고 믿음직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기부금 형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됐다. 그들의 활동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커다란 평온에 감명받은 애니는 순수한 호기심이 인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불법 행위를, 심지어 비밀리에 진행하지도 않는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데, 애니는 그런 그들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던 중 애니에게도 각성의 순간이 온다. MLAC 조직이 여러 곳에서 활동하긴 했어도 임신중지를 원하는 모든 여성을 돕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즉, 여전히 많은 여성이 위험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이 이 과정에서 죽었다. 애니의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애니는 본격적으로 MLAC 활동을 시작한다. 활동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조금씩 수정해나가고, ‘생명 파괴’ ‘문란함’ 등의 낙인 때문에 여성들이 임신중지에 얼마나 큰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도 직접 대면한다.
애니가 MLAC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영화의 질문은 확장된다. 〈앵그리 애니〉는 그저 임신중지의 합법화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더 크고 깊은 질문이 담겼다. MLAC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활동가, 의사만으로는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오랫동안 단체에서 의사를 돕던 활동가들이 직접 임신중지 시술을 집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MLAC의 의사들이 반발한다.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전문가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의사 없이 임신중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출산을 인류의 탄생 때부터 서로 도우며 해왔고, 시술법이 발전한 덕에 임신중지의 절차가 비교적 간단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MLAC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들의 느끼는 공포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
이는 남성/국가/전문가 집단이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애니는 화를 내는데(‘앵그리 애니’), 그 이유도 이 때문이다. MLAC의 활동이 큰 이슈가 되어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었으나 합법화가 의료 기관이 그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MLAC에서 가능했던 여성들 간의 연대, 여성 경험의 가시화 등은 배제된 채(즉 MLAC에서 여성들이 쌓아 온 역량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채) 여성이 다시금 남성/국가/전문가의 수동적 객체로 위치지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애니는 화가 난다. 임신중지가 합법화된 후 병원에서의 임신중지는 위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여성을 다시금 외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MLAC 활동을 하며 애니가 가족에 ‘소홀해지는’ 과정과 이로 인한 가족 내 갈등을 통해서는 여성이 가사노동의 책무 때문에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는 상황을 짚기도 한다. 〈앵그리 애니〉는 단순히 낙태죄 폐지가 진보·정답이 아님을, 여기에는 이를 초과하는 다양한 결의 질문과 고민이 동반되어야 함을 보인다. 임신중지에 관한 단편적 이해와 서사를 넘어, 여기에 무수히 많은 이슈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이는 이 영화는 낙태죄가 페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런 후속 입법 조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무책임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임신중지 이슈에 관한 필람작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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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트릭트9> - '다른 것을 바라보는 잔혹한 시선'
디스트릭트9 (District 9)
개봉일 : 2009. 10. 15 (한국 기준)감독 : 닐 블롬캠프
출연 : 샬토 코플리, 바네사 헤이우드, 제이슨 코프, 데이빗 제임스
다른 것을 바라보는 잔혹한 시선
“디스트릭트9엔 비밀이 많죠.”평소와 같던 하루, 갑자기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커다란 우주선이 불시착한다. 우주선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으나 지구인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떠있는 우주선이 위협적이라며 닫혀있는 우주선 문을 연다.
<디스트릭트9>는 SF의 옷을 입은 현 사회 비판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불공정 조약, 일부 인간들의 잔인함과 모든 생물들을 지배하고 그 위에 서야 한다는 폭력성까지. 외계인에게 붙인 이름 ‘프런’에서부터 그들이 외계인들을 얼마나 하찮게 보고 혐오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상공에 머물러있던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에게 공조의 손을 내밀지, 무기를 내밀지 조금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구인들은 선재적인 공격을 감행하며 외계인들을 우주선에서 끄집어내고 ‘구호한다’는 핑계를 대며 가두고 이용한다. 나보다 약한 존재 또는 나의 땅에 들어온 다른 존재에게 자비 없이 행해지는 폭력과 차별로 일궈진 지저분한 죽음의 땅. 그것이 외계인들의 구역 ‘디스트릭트9’이다.
사람들은 디스트릭트9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디스트릭트9을 넘어 말썽을 피우는 프런을 몰아내거나 죽여야 한다고 생각할 뿐, 그들이 왜 날뛰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디스트릭트9>의 주인공 비커스도 그런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디스트릭트9에 들어가 그들의 유기체를 맞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된다. 디스트릭트9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폭력의 힘. 그리고 새로운 생명체를 잔혹하게 학대하는 잔혹함. 유기체를 통해 프런들과 비슷한 존재가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커스는 변화한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있다면 돕고 싶지만 어딨는지도 모르는걸요.”라는 식으로 진실을 외면하고있다.
<디스트릭트9>을 보면서 프런을 이 세상에서 차별받고 있는 어떠한 존재로 대체해 생각해 보았다. 이 이야기는 아주 먼 어떤 미지의 땅에서 펼쳐지는 영화 한 편이 아니다. 어쩌면 바로 옆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디스트릭트9 시놉시스
남아공 상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요하네스버그 인근 지역 외계인 수용구역 ‘디스트릭트 9’에 임시 수용된 채 28년 동안 인간의 통제를 받게 된다. 외계인 관리국 MNU는 외계인들로 인해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디스트릭트 9’을 강제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 책임자 비커스가 외계물질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한다.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서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비커스. 정부는 비커스가 외계 신무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비밀리에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정부의 감시시스템이 조여오는 가운데, 비커스는 외계인 수용 구역 ‘디스트릭트 9’으로 숨어드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외계인들은 못 돌아갑니다.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나타난 우주선의 존재에 지구인들은 공포에 떤다. 우주선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지구인들은 머리 위에 드리운 그늘에 공포감을 느끼고 프런들을 통제한다. 처음엔 아사 직전인 외계인들을 구해주겠다는 명목이었지만, 지구인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그들에게 혐오와 실험 욕구를 느끼고 그들을 디스트릭트9에 가둔다.프런들은 지구인들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우리를 구해달라고, 우리와 함께하자고, 전쟁을 하자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이미 프런들을 지구인보다 낮은 등급에 깔아놓고 ‘도움을 준다.’ ‘관리를 한다.’고 말한다. 지구인에게 프런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외계인들의 무기 기술을 탐내면서도 그걸 배우고 공유하기보단 일방적으로 빼앗고 싶어하고 통조림 한 캔을 던져주며 조롱한다. 디스트릭트9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디스트릭트9>은 디스트릭트9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잔혹한 실험을 통해 우리의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디스트릭트9의 존재를 알면서도 진실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무관심한 시선을 꼬집는다. 외계인 관리과 사람들에 의해 외계인의 알이 불에 타고, 외계인들이 학대나 괄시를 받는 장면, 주인공 비커스가 외계인의 팔로 실험을 당하고 쫓겨나는 장면 등에서 CCTV 또는 TV 너머 다큐나 뉴스 속보로 그 순간을 지켜보는 관점을 사용한다. 어느 정도 궁금증이 있고 렌즈 너머로 지켜보고는 있으나 현장에 달려가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진 않는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추후에 푼디수와(비커스의 동료)의 고발로 MNU(외계인 관리과)의 추악한 행태가 세상에 밝혀지지만 비커스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은 “돕고야 싶지만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라며 그의 행방에 대해 더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비커스가 행방불명되고 집에 홀로 남은 아내 타냐는 남편의 물건과 어느 날 문앞에 놓여있던 쇠로 만든 꽃을 보며 그를 떠올린다.
비커스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프런들을 혐오하긴 했으나 생체 실험에 살아있는 프런이 동원되었을 때 “살아있는 프런을 쏠 순 없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비커스의 어머니, 아내, 동료들의 증언과 영상에 남아있는 그의 말과 웃음을 보면 절대로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프런들의 유기체를 맞게 된 게 비커스여서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일 프런들의 무기를 탐내던 갱단이 유기체를 맞았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똑같아요.
비커스는 유기체를 맞고 프런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마음도 조금씩 변화한다. 비커스는 프런으로 변하는 자신을 혐오하기도 하고 3년의 치료 기간에 눈이 돌아 크리스토퍼를 배신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크리스토퍼를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배신’을 감행한다. (누군가는 비커스의 행동을 배신이라 칭하기도 했다.)처음 프런의 팔을 갖고 디스트릭트9에 갔을 때, 크리스토퍼의 아들은 비커스의 팔을 보며 “우리 똑같아요.”라고 말하는데, 비커스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손가락을 자르고 꺼지라고 욕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커스는 다시 인간이 되는 치료를 받기 위해 크리스토퍼를 이용하려고 했으나 MNU의 생체 실험 사실을 알게 된 후 받게 된 충격과 더불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프런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프런들도 각자의 생각과 감정이 있는 소중한 생명체임을 느끼게 되고 그들을 돕게 된다. 팔과 눈, 등의 생김새가 프런과 동일해지고 DNA가 프런들과 비슷하게 변해가는 동안, 비커스의 혐오와 폭력성은 점점 사라진다.
<디스트릭트9>에서 외계인과 지구인은 다르지 않았다. 프런들은 지구인들과 같은 언어를 쓰며 소통할 수 있었고 비슷한 모양새로 걷고 행동했으며 가족애와 동료애, 고통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지구인과 달랐던 건 생김새뿐이었는데, 지구인들은 그걸 이유 삼아 프런들을 잔혹하게 학대하고 죽인다. 결국 프런으로 변한 비커스가 고철들을 주워 꽃을 만들고 아내에게 선물한 마지막 장면은 이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어필한다. 프런으로 변했음에도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담아 꽃을 만드는 비커스의 모습. 그들도 사랑을 하고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또 다른 생명체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 혹시 크리스토퍼도 먼 고향에서 “3년 후에 오겠다.”고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구인이지만.. 크리스토퍼가 다시 돌아와 디스트릭트10을 없애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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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텍 부당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
콜텍에서 30년간 기타 기능공으로 일한 임재춘씨는 사장인 박영호에게 부당 해고를 당한다. 시위 때문에 자신의 두 딸을 잘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8년간 계속된 투쟁 때문에 서울 대법원까지 가게 된다. 세계 1위의 기타 생산 업체인 콜텍에게 저항하는 임재춘씨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에 햄릿의 오필리아 역할을 맡게 되고 법의 테두리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억울함을 연극에서 표현함으로써 한을 조금이나마 풀기 시작한다. 자신의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을 조리 있게 못 하는 편이라 글을 쓰게 되면서 거센 저항을 하게 되고 해고된 노동자들도 농성장에 모여 자신들이 만든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법원 측은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게 되는데...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임재춘씨는 왜 끝까지 저항해야만 했을까?
부당 해고를 당한 임재춘씨의
저항은 계속된다.
하니엘의 영화 미리 보고 느낌
부당 해고를 당했지만 끝까지 시위를 포기하지 않는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임춘재씨의 콜텍 부당 해고에 대한 서러움을 이야기하다.
콜텍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임춘재씨와 노동자들은 어느 날 사장인 박영호에게 정리 해고를 받는다. 그 이후로 임재춘씨와 해고된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복직을 요청했지만 실패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자본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 의해 배척받는 약자들을 다루는데 오직 영화 장면들을 흑백으로 처리함으로써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꽹과리와 징과 북을 이용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한다. 또한 자신들이 만든 기타를 가지고 연주를 하며 노래를 만드는 데 노래의 내용은 부당 해고와 관련되어 있다. 부당 해고를 받은 이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영화의 후반부쯤에 자신들이 못 배우고 가난하다는 자학적인 표현을 하는데 아마도 힘든 처지를 같이 보낸 사람들이기에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역시 힘들고 고된 세상에서 약자들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끝까지
투쟁을 벌인 콜텍의 부당 해고 노동자들과 임재춘씨의 비극스러운 이야기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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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씹어야 할 대상은 전두환이 아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군사반란이 발생했다.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이 자기 휘하 사조직 하나회를 이용해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를 체포하고, 정국을 장악하려 한 것. 하지만 반란은 전두광의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대통령은 협조하지 않고, 정 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반란 계획이 들통난 것. 이에 전두광은 절친 '노태건'(박태준)을 통해 최전선 전방 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반란군은 쉽사리 승기를 잡지 못한다. 비록 육군 본부는 패닉에 빠지고, 국방부 장관도 행방불명이 되었지만 최후의 보루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 그는 서울 근방 전 부대에 반란 진압 명령을 내리고,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등과 진압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고 전두광과 전면전을 펼치기 위해.
<서울의 봄>, 박제가 아닌 거울이 되다
한국 영화 속 전두환은 공공의 적이다. <26년>, <1987>, <택시운전사>, <헌트> 등에서 그는 직간접적으로 타도의 대상, 응징해야 할 목표물로 등장했다. 영화라는 집단적 환상에서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일종의 영화적 징벌인 셈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나치와 히틀러가 고통받는 것처럼.
다만 이 '환상'을 삐딱하게 볼 수도 있다.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35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는 민주화 신화를 박제할 뿐이라고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민주화 운동 에피소드를 담거나, 전두환을 처단하는 내용이면 더 그렇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끝났기 때문.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에 민주적 정당성이 전무했다는 사실은 부정하면 안 되는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즉, 당연한 일에 영화적 심판이 필요한 당위성도 약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서울의 봄>의 위치는 퍽 흥미롭다. 물론 여전히 관성적인 대목이 있다. 총 쏘듯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전두환 정권의 비정상성을 비판한다. 자연히 민주화 항쟁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결정적인 순간 다르다.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아픔에 주목한다. 전두환을 막으려고 몸을 던진 이들과 그들의 실패에 초점을 맞춘다. 달리 말해 <서울의 봄>은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거울에 가깝다.
실화를 전격적으로 공략하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사실 어렵다.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사죄를 못 받은 만큼, 전두환에 대한 앙심은 불처럼 뜨거울 테니. 이에 <서울의 봄>은 일단 관객의 혼을 빼놓은 후, 서서히 관점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그래서인지 초중반부는 마치 전격전을 보는 듯하다. 좋은 의미로 정신이 없다.
<서울의 봄>은 우직하다. 별다른 설명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선다. 전두광과 노태건, 그들에 맞서는 이태신과 정상호의 존재감만 보여준 후 바로 쿠데타 현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진행 과정도 명쾌하다. 복잡한 작전 설명은 없다. 주요 군부대 한 두 개와 지휘관의 현황만 콕 집어 보여주고, 간단한 그래픽으로 상황을 다시 인지시킨다. 컷 전환도 망설임이 없다. 필요한 장면을 보여주면 곧장 다음 씬으로 넘어간다.
이는 실화가 스포일러라는 근본적인 약점을 역이용한 각본, 연출, 그리고 편집이라 할 수 있다. 12.12 군사반란은 결과보다 과정이 낯선 사건이다. 학교에서 현대사를 배울 때 이 쿠데타의 결과와 영향은 외워도, 구체적인 과정은 시험에 잘 나오지 않으니까.
<서울의 밤>은 이를 이용해 스포일러로 향하는 과정을 전부 물음표로 바꾼다. 그 덕분에 작전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막을 수 있을 듯 없을 듯하는 일련의 과정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도대체 이 작전이 어떻게 성공한 거지?'라는 의문이 강력한 서스펜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울의 밤>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국군과 반란군의 역사적인 밤을 생중계한다.
무리수까지 역이용하다
사실 전격전은 여러 무리수를 낳는다. 일단 캐릭터가 하나같이 평면적으로 묘사되고, 그저 장기짝으로 이용된다. 전두광의 경우 앞뒤 가리지 않고 권력만 좇는 악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태신은 대쪽같이 원리 원칙만 쫓는 인물이다. 그들은 두 진영의 충돌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똑같이 패배하는 역사를 다뤘고, 두 인물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남한산성>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명백하다.
또 전두광, 노태돈, 이태신, 김준엽, 공수혁 다섯 캐릭터를 빼면 반군이든 국군이든 수동적이다. 도망치기 바빠서 직무를 유기한 국방부 장관, 전두광의 영도 없이는 아무런 대책도 못 내놓는 반군 장성, 상황 파악도 못하고 선제 조치를 못 취하는 국군 장성, 국군 통수권자로서 군을 통솔할 생각조차 안 하는 대통령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그러니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억지로 고구마를 입에 쑤셔 넣는 느낌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울의 봄>은 쌓아 올린 긴장감과 분위기를 한 순간도 무너뜨리지 않는다. 답답하고,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지지만 작위적이라거나 과하다는 인상은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조연 캐릭터의 무능은 실화를 묘사했다는 변호가 가능하다. 국방부 장관 '오국상'(김의성) 등의 행적은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의 행적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 오히려 이 대목은 블랙 코미디로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기능도 맡는다.
곱씹을 대상은 전두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의도적인 빌드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두광이 악마처럼 보일수록 이채신의 선과 정의의 화신이 되고, 장성들의 무능함은 탄식을 자아낸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상황에서 탄식은 헛웃음으로, 이내 분노로 변한다. 이채신과 전두광이 경복궁 앞에서 대치할 때 국방부 장관이 재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울의 봄>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로소 풀어놓는다. 단순히 전두환을 비난하는 대신, 왜 마침내 찾아온 봄을 잡지 못했는지 되묻는다. 개인의 권력욕과 일탈을 막을 시스템이 있었는데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질문한다. 규칙을 깬 사람에게는 이미 돌을 던졌으니, 실패한 원인을 되짚어보자고 말한다.
<서울의 봄>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는 특정한 이미지를 통해 나름대로 그 답을 내놓는다. 답은 시민이다. 특히 자기 책무를 저버린 시민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군인이 권력을 탐내 반란을 일으켰지만, 군인 역할을 맡은 시민 개개인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한 시대를 상징하는 군인의 이미지 안에서 절망과 희망이 크게 충돌할수록 영화의 울림은 커진다.
이채신이 행주대교에서 반란군의 서울 진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가 총까지 겨눈 부관의 만류도 무시하고 소규모 병력과 무기를 모아 결사적으로 전투에 나서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정만식, 정해인, 이준혁 같은 카메오를 활용해 반군에 맞서다가 쓰러진 군인에게 짧게라도 강렬한 임팩트를 준 이유이기도 하다.
제목이 '서울의 봄'이어야 하는 이유
이렇게 보면 영화 말미에 군가 '전선을 간다'가 삽입된 이유도 유추할 수 있다. 노래 속 "상처 입은 노송"과 "이끼 낀 바위"라는 가사는 죽어간 전우를 추억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라는 후렴은 과거 장병들이 사투를 벌인 후 죽은 자리에서 그들을 잊지 말자는 노래로 들리기도 한다.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군가 속 전장에 비유한다. 설령 군사 정권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이채신의 패배를 되풀이자지 말자고 노래하는 셈이다. 또 열의를 고취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누군가 어떤 방식으로든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침해하려 들면, 시민 개개인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저항하자고.
이채신의 퇴장 장면에서도 그 함의를 읽을 수 있다. 이채신이 체포되어 서빙고 분실로 끌려갈 때, 러닝타임 내내 칼같이 전환되던 화면이 그 순간만큼은 천천히 페이드 아웃되며 그의 퇴장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제목으로도 '12.12 군사 반란'이 아니라 '서울의 봄'이 더 적절해 보인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만 원망할 게 아니라, 봄이 떠나간 이유를 곱씹어야 봄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 테니.
마지막 스타일만 좋았다면
다만 <서울의 봄>은 용의 눈동자까지 그려 넣지는 못했다. 2시간 넘게 쌓아 올린 감흥을 마지막 순간 날려버린다. 영화는 하나회 기념사진을 보여주고, 하나회 일원이 각각 역임한 직책을 알려주며 막을 내린다.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내린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마무리는 다소 교조적이라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감독의 말을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는, 시대를 역행하는 프로포간다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제작자나 감독이 관객을 믿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담긴 처연함과 답답함을 곱씹어 볼 여유만 챙겨 줬어도 <서울의 봄>은 더 오래, 은은하게 뇌리에 남았을 테니까. <서울의 봄>은 그럴 자격이 충분한 영화고, 2023년은 관객이 역사 속 선악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대이므로.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눈 내리는 겨울날, 봄이 떠나간 이유를 되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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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섹시한 자동차 강도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제가 오늘은 조금 신나고 빠른 음악과 스피드의 환상의 콜라보를 가진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가지고 왔어요!~
요즘 추워서 집에 꽁꽁 싸매고 있을 때 경쾌한 음악과 드라이브를 대신 만족할 수 있는
대리만족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스토리는 별로이지만, 음악과 액션이 적절하게 잘 어우러져 많은 분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한번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줄거리부터 결말까지! 살펴볼게요~
기본정보장르 : 액션, 범죄, 코미디, 스릴러, 로맨스감독 / 각본 : 에드가 라이트출연진 : 안셀 엘고트, 릴리 제임스, 케빈 스페이시개봉일 : 2017.09.14평점 : 8.41스트리밍 :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기획의도애틀랜타의 은행과 공공기간들을 연쇄적으로 털고 있는 어느 강도단.전속 도주 운전수로 일하고 있는 베이비(안셀 엘고트). 어릴 적 사고로 생긴 청각 장애 때문에생기는 이명을 없애기 위해 항상 아이팟과 이어폰을 가지고 다니며 음악에 심취해 있는 베이비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드라이버다.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강도단을 나오려고 하지만, 강도단의 수간인 박사가베이비의 천재적인 능력을 이용하고자 다시 팀으로 합류하는데...여담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는 개봉 직후 토마토 신선도 100%를 한동안 유지하면서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성공적인 실적을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화끈한 카레이싱에 어울리는 음악이 훌륭했다는 점이다. 음악을 적절한 장면에 잘 활용하면서 호흡이 딱딱 맞아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후기 및 결말일단 베이비 드라이버결말 부터 살펴보자면...베이비는 경찰과 무기 밀매 조직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며 힘들게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마음이 그래도 착했던 박사는 차와 돈을 건네받고 박사는 죽었습니다. 베이비는 가까스로 도망치지만, 결국에는 붙잡혀 25년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5년 후 가석방을 받은 베이비는 교도소에 나와있는 데보라를 만나며 오픈카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이 영화는 엄청 단순하지만! 음악과 액션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음악 액션 영화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영화였다.영화는 내용을 중점을 두기보단 액션, 음악, 카레이싱! 이 3가지의 조합에 포커스를 두면 참 좋은 영화이며 여기서 스토리를 깊게 살펴보면... 보지 마! 눈 감아~ 그래도 평점 8점대로 정말 준수한 영화를 가진 베이비 드라이버 영화!~신나는 드라이브 떠나고 싶을 때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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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 헤어져본 사람...? 연애할 때 찌질해지는 순간들 (500일의 썸머, 연애의 온도) 연애 영화 현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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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썸머 #건축학개론 #연애의온도 #에이투식스 #ATO6 #현우 #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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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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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강력계 형사 '택록'의 마지막 반격?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형사록 시즌2] 7월 5일, 오직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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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미래는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족과 연인, 국가는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의 십개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