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02 16:33:14
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거인> 김태용 감독과 배우 최우식, 신작에서 재회

2014년에 개봉한 영화 <거인>으로 한국 영화계에 큰 돌풍을 일으켰던 김태용 감독이 신작 <넘버원>(가제)에서 당시 주연을 맡아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던 배우 최우식과 재회합니다.
추석 시즌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넘버원>은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을 때마다 눈앞에 카운트다운 숫자가 보이는 하민(최우식)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입니다.
<아쿠아맨> 제이슨 모모아, DCU 영화 복귀

<아쿠아맨>의 제이슨 모모아가 새로운 DCU 영화 <슈퍼걸: 우먼 오브 투모로우>에서 ‘로보’로 캐스팅되었습니다. ‘로보’는 Czarnia 행성 출신의 안티히어로로, 폭력적이고 괴짜 같은 성격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초인적인 힘과 재생 능력을 가진 현상금 사냥꾼이며 혼란과 파괴를 즐기는 캐릭터로 아직까지 대규모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적이 없어 관객의 기대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더 배트맨: 파트 II>, 2027년으로 개봉 연기

로버트 패틴슨의 <더 배트맨> 속편이 또다시 개봉 연기를 알렸습니다. 이미 2025년 10월 3일에서 2026년 10월 2일로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는 해당 속편은 최종적으로 2027년 10월 1일(북미 기준)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속편 역시 <더 배트맨>을 연출한 맷 리브스가 각본과 연출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으며, 1편에 출연했던 조 크라비츠, 앤디 서키스, 제프리 라이트, 콜린 파렐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존 윅> 제작 ‘라이온스게이트’ 매각되나

<존 윅>, <트와일라잇> 등 걸출한 작품을 다수 제작한 ‘라이온스게이트’가 현재 매각을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더 크로우>, <메가로폴리스> 등 2024년에 대형 실패작들을 다수 내놓은 ‘라이온스게이트’의 구체적인
구매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스튜디오 고위 관계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2025년 개봉예정작으로는 <발레리나>, <나우 유 씨 미3> 등이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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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트 어웨이
캐스트 어웨이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과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흔히 말하듯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면서,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정 시간 잃어버린 남자가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페덱스(물류회사)에 근무하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화물을 싣고 이동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추락하면서 무인도에 떠밀려 살아난다. 그는 생존을 위해 거의 원시인 수준으로 활동하며 무인도에서 약 4년의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뗏목을 묶어 섬을 탈출해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온다.
모두 척 놀랜드가 죽은 줄 알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정작 척 놀랜드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좋아하는 한편, 죽은 사람이 살아온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한다. 척 놀랜드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여기서, 척 놀랜드가 홀로 무인도에서 살았던 4년의 시간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척 놀랜드가 깊은 우울증 또는 정신적 문제로 병원에 입원해 지냈다고 그려볼 수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인도의 생활은 척 놀랜드의 상상이거나 비유일 수 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상황은 보통의 사람에게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하지만 척 놀랜드는 무려 4년을 혼자 살아간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기에, 척 놀랜드는 바다에 떠내려온 화물에서 배구공을 발견하고, 배구공에 이름을 붙이고, 인격화한다. 배구공의 이름은 '윌슨'이다. 배구공을 만든 제조 회사의 이름이거나, 배구공 브랜드겠지만, 여기서 '윌슨'은 척 놀랜드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척 놀랜드는 항상 '윌슨'을 가까이 두고 생활한다. 그는 윌슨에게 다정하게 말하지만, 어느 때는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윌슨'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자신을 투사해 감정을 발산하지 않으면 진짜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일 수 있거나 이미 정신병 상태에 있는 척 놀랜드가 '윌슨'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현상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사람의 뇌 활동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면, 척 놀랜드가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매우 단순하면서 황량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척 놀랜드의 생활은 매우 단조로워서, 아침에 일어나 물을 찾아 마시고, 하루 두 끼 또는 세 끼를 위해 채집, 사냥하는 활동을 한다. 그에게는 '문명'에서 비롯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도구나 대상이 없는데, 그건 그의 뇌 활동 즉 정신의 상태가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암시 또는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4년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외부의 충격에 척 놀랜드는 깨어난다. 바닷가에 떠밀려온 것은 문명이 만든 흔적이었고, 그것은 무인도에 갇혀 있던 척 놀랜드에게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가한다. 섬에 갇힌 채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척 놀랜드는 문명의 조각을 보면서 탈출의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탈출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한다.
척 놀랜드가 죽음을 각오하고 거센 파도를 헤치며 섬을 탈출하는 과정은, 척 놀랜드의 정신이 놓인 상태 즉 우울증이나 정신병 처럼 현실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다시 정상의 현실로 돌아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도 바다 위에서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바다는 인간의 의식, 무의식을 상징한다-극적으로 구출된다. 척 놀랜드는 다시 문명사회이자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만, 과거의 척 놀랜드와 지금의 척 놀랜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애인, 친구, 동료들은 돌아온 그를 반겨주지만, 한편으로 그가 사라졌던 시간만큼 낯설고 당혹스러워한다. 깊이 사랑하던 애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동료들은 친절하지만 예전과는 사뭇 멀게만 느껴진다. 척 놀랜드가 그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시간과 공간이 그들과의 유대를 낯설게 하고, 어색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척 놀랜드라는 '인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척 놀랜드는 자신이 떠났던 '문명사회'로 다시 돌아왔지만, 스스로도 그 환경이 어색하고 낯설다. 불과 4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 이전과 앞으로도 결코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청년 남성이 군대, 특히 미국에서는 실제 전투에 참가하는 분쟁지역의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낯섦'에 대해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불과 2-3년의 짧은 군복무를 하지만, 그때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는 평생 남게 된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군복무 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척 놀랜드는 아마 정신적인 문제로 독방에 갇혀 있었을 수 있고, 그가 겪었던 4년의 시간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걸 바라보는 애인, 동료들의 시선을 척 놀랜드가 모를 수 없고, 그로 인해 감정적 단절과 소외를 느끼게 된 것이다.
결국 척 놀랜드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알던 모든 사람과 그가 살던 곳에서 멀리, 아무도 알지 못하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그리고 그 낯선 곳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이것은 척 놀랜드가 자신의 삶이 바뀐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언뜻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깊은 고통과 슬픔을 내재한 채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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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로 만들어낸 최상의 공포
누구나 삶을 이어가며 몇 번의 성장을 이루어낸다. 갓 태어나 숨을 쉬고 기어 다니다가 첫걸음을 떼면서 성장의 속도는 빨라진다. 말을 하고 또 다양한 것들에 대해 교육받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자신을 발전해나가는 모습 그 자체는 어쩌면 삶을 이어가는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장이라는 것이 꼭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앉아서 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혼자 깨닫게 되는 것 또한 사람을 한 단계 성장시킨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성장의 계단을 밟아 가는 것은 중요하다.
어찌 보면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생존에 필요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씩 개인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갔던 것은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었다. 전쟁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을 이루어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신체적 장애는 그들에게 절망을 안긴다. 하지만 그 제약 속에서도 그들 또한 나름의 성장을 이루어 낸다. 그렇게 다양한 개개인들이 성장을 해내는 과정들이 모여 전체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성장으로 만들어진 삶은 그다음 세대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것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는 또 그들만의 성장을 이루어낸다.
청각장애인 레건의 성장 서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성장에 대한 서사가 담겨있는 공포영화다. 영화 속 세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앞을 볼 수 없지만 소리를 예민하게 들을 수 있는 괴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런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한 가족이 한 시골 농장에서 그들의 삶을 이어가려다 벌어지는 이야기가 1편에 담겼었다. 1편은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는 과정을 그리면서 가족 중 막내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줬던 영화였다. 한 가족이 슬픔과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2편은 1편 바로 직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한 가족 중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딸 레건(밀리센트 시몬스)의 모험과 성장이 이야기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레건 때문인지 모든 가족들은 수화로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소리를 내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리에 예민한 괴수들에게 들키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서로 다독이며 한 동안 특정 공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레건에게도 영화 속 상황이 절망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작은 힘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1편의 마지막에 발견한 괴수의 약점은 그가 가진 장점을 좀 더 부각한다.
엄마인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은 갓 태어난 갓난아이까지 포함하여 레건, 마커스(노아 주프)까지 총 세 명의 아이를 혼자 보호해야 한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좀 더 레건과 마커스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마커스는 아직 너무 어리고 레건은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에블린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 좀 더 바쁘게 움직인다. 영화 내내 보이는 에블린의 모습은 그 상황이 너무나 공포스럽고 무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은 가족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보인다. 1편에서는 그나마 남편 리(존 크래신스키)가 그를 지켜주고 의지할 수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가 의지할 곳은 없어 보인다. 새롭게 등장하는 에밋(킬리언 머피)이 있지만 자신의 가족을 잃은 그는 그저 책임을 회피하고 혼자 지내고 싶어 하는 약한 인물일 뿐이다.
영화는 어른인 에블린이나 에밋의 서사에 주목하기보다는 사춘기를 막 지나간 딸 레건의 서사를 보여준다.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애초부터 그에게 혼자 모험을 하거나 성장하는 모습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1편에서 괴물의 약점을 발견해낸 것도 레건이었고, 2편에서 상황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도 레건이다. 어찌 보면 가장 약해 보이는 캐릭터인 그에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어준 셈이다. 레건이 혼자 길을 떠나고, 또다시 만나게 된 에밋을 설득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가족을 넘어 전 인류를 구하려는 영웅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침착하게 주변을 이용하고 자신을 돕는 인물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한 소녀의 성장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든다.
소리로 만들어내는 효과적인 공포와 스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소리가 중요한 영화다. 1편과 마찬가지로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소리를 내면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이 조용히 행동할 때 같이 숨을 죽였다가 의도치 않게 소리가 나는 순간 주인공들과 함께 입을 틀어막게 만든다. 레건이 보청기를 뺐을 때, 똑같이 무음으로 화면을 같이 보여주는 것을 통해 관객들을 그 상황 자체를 체험할 수 있게 구성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다른 어느 곳 보다 극장의 환경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운드가 좋고 어두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주인공들의 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괴물이 처음 등장했던 첫 날을 보여준다. 아빠 리와 에블린, 레건과 막내아들이 아들 마커스의 야구 경기를 보러 갔던 그날 겪었던 일을 하나의 시퀀스로 보여주는데, 무척 긴장감이 넘친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마을의 모습과 많은 괴수들의 출연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감독 존 크래신스키는 배우 출신으로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로 감독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영화의 첫 장면을 롱테이크 한 컷으로 촬영을 완료하면서 생동감 있는 재난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에블린을 맡은 에밀리 블런트는 1편에 이어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편으론 눈물을 흘리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을 다잡고 괴물을 때려잡는 모습은 배우가 가지고 있는 강인하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새로운 인물 에밋으로 등장하는 배우 킬리언 머피는 이번 영화에서 삶의 의지를 잃은 선한 가장을 연기했다. 악역을 많이 연기했던 그는 눈에서 힘을 뺀 연기로 레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레건 역할을 맡은 배우 밀리센트 시몬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는 실제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농아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다 배우로 데뷔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실제 그의 삶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가 포함된 연기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수화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영화 속 레건의 모습 그 자체로 보인다. 영화 속 레건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만의 성장을 이루어냈던 것처럼, 배우 밀리센트 시몬스도 자신의 연기 경력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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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플레이스 2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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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는 방법
그러니까, 안 가면 안돼? 웃는 얼굴에 농담투로 말했지만 사실 진심이 한 9할쯤 담겼다. 그러니까 며칠 전의 나는 여자 친구가 생겨도 안 할법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이것뿐일까? 난 갑자기 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런 말도 듣고 저런 말도 들었어. 아무 맥락도 없이 나는 내 장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 말의 이면에는 지질함이 배어있다. 너도 나랑 멀어지면 후회할걸?이라는 마음이 내 말 안에 담겨있는 것이다. 다 불안감 때문이다. 얘는 정말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친분이 있던 사람들 그 누구보다 얘는 잘해주고 싶은 사람에 가까웠다. 항상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에도 부합했다. 갑자기 문득 정신이 들어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안돼. 이러다간 내 장점도 다 가려질 만큼 추해질 것 같다고. 나는 내 체면을 내려놓을 만큼 나는 얘가 맘에 들었나 보다. 항상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길 바랬다. 왠지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난 아무 말이나 막 질렀다. 있던 일들이 생각났다. 오래간만에 일러스트도 켰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즐거웠다. 이 기간 동안 있던 일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분이 복잡했다. 3달이 금방 갔다.
3달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런 시간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안 하던 짓도 하게 되는 게 사람이구만. 한 200번째 느낀 교훈이지만 오늘은 더 선명히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추한 내 모습을 지우려 또 다른 깊은 생각에 빠진다. 뇌 비우고 잘해주기만 하고 싶은 사람을 참 오랜만에 만났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그분을 처음 봤을 땐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 선택은 옳았다. 근데 난 이것 빼고 나머지의 모든 걸 다 후회한다. 어렸던 시간이 자랑스럽다면 그건 소시오패스에 가까울 것이다. 난 더 행복할 수 있었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 그런데 난 자의건 타의건 그걸 고르지 못해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았다. 이것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이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고맙다. 돌아오지 않는 화양연화를 한번 더 만들고 싶었던 게 원인이 되어 즐거운 추억이 또 생겼으니 말이다. 이 기억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화양연화>는 시간에 대한 영화다. 2000년대 가장 위대한 영화 손 들어보세요! 하면 대표적으로 뽑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덕인지 코로나19로 인한 왕가위 특별전이 기회가 되어 이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다. 감독 특별전이 나올 만큼 왕가위라는 이름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하다. 난 홍콩과 단 1도 관련이 없는 사람임에도 왕가위라는 이름은 알았으니 말이다. 이 덕인지 기대를 잔뜩 하고 극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꾸벅꾸벅 졸았다. '왕가위 하면 미장센'이라는 말도 사실 잘 체감하지 못했다. 이런 심심함에는 영화의 내용도 한몫한다. 서로 이어져선 안 되는 남녀 둘이 만나 잊힐 수 없는 추억을 만든다. 이게 끝이다. 결말 부도 이 영화의 도입부만 봐도 사실 예측 가능하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왓챠피디아에 들어가 '화양연화' 탭에 들어가면 '다들 위대하다고 칭찬하는 영화인데 나는 못 느낀다'라고 답한 글이 베스트 댓글에 올라가 있다. 이 영화는 심심한 영화가 맞다. 왕가위는 다른 영화보다들보다 진중한 화법으로 과묵하게 관객들에게 접근한다. 과연 <화양연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관객에게 물으면서.
이 질문의 답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예시를 들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감독이 생각하는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이 작품과 <화양연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이 <해피 투게더>를 한 20번 가까이 돌려보며 느낀 게 있다. 조금 과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가령 엔딩신의 이름 모를 후련함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잘 못 느낄 것 같다. 또 폭포라는 공간 설정 때문에 작은 화면에서만 보면 실감이 잘 안 날 것 같다. 이건 공간 설정의 측면을 벗어나서도 말이 된다. 시각적으로도 폭포 엔딩신의 색이 진한 느낌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큰 패드나 모니터로 보면 이 느낌이 오롯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큰 스크린에 압도되는 기분이 무엇인지 OTT로 보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뜻이다. 이 왕가위 영화 감상 포인트의 중요 지점인 '왜 극장에서 봐야 할까'는 그의 작품을 볼 때 굉장히 중요하다. 극장의 큰 미장센이 영화에 몰입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쉬운 몰입은 왕가위가 잘 다루는 외로움이란 감정과도 닿아있다. 이 감독이 다루는 주요 정서는 단연 외로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해피 투게더>에서는 군데군데 낡은 식당 조리실에서 춤만 춰도 이 감정이 잘 드러난다. 아무것도 없는 부엌에서 하는 행동이니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잘 부각되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극장에서 보면 보다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이니 감정의 전달이 더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해피 투게더>처럼 오직 영화만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을 마지막 지하철 엔딩으로 터트릴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요되는 부분이 있었다. <타락천사>에서 감정을 표현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감독이 적절한 선을 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아비정전>을 보면 발 없는 새라는 모티프가 영화 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날개도 아니고 발이 없는 새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이게 영화의 엔딩부를 비롯해 주인공 아비의 행동으로 이어지며 결말부와 시너지를 낸다.
이렇게 왕가위는 연출 지점과 플롯, 내고자 하는 분위기를 잘 어우러지게 연출한 감독이었다. 전작을 통한 감독의 말하기 방식은 미니멀하기보단 극대화의 화법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줬다. <화양연화>는 이 지점에서의 화려함이 좀 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절제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영화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연기한 두 캐릭터를 틀에 가둔다. 누군가와 통화할 때나 친구와 대화할 때 항상 주위에 뭔가가 있다. 피사체가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혼자의 모습이 세상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를 참고 있다는 뜻과도 닮아있다. 이는 주인공들은 욕망을 스스로 표현할 수 없고 항상 타인이 규정한 무언가 때문에 자기 혼자서 오롯이 서있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출에 의한 두 사람의 처지를 암시하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 과정 역시 좀 심심하게 보일 수 있다. 좁은 틈으로 서로 걸어 다니는 모습. 참깨죽을 먹고 싶어 한다는 남자의 말. 왜 오늘은 전화하지 않았냐는 애정 어린 투정까지. 이런 소소한 장면 하나하나를 왕가위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으로 그렸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은 <화양연화>다. 이 과정이 주인공들의 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뜻이다. 또 엔딩부에 자막으로 처리되듯 남자는 이 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두 주인공의 들끓는 감정에 비해서 인생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오히려 소박했다는 뜻이 된다. 이 두 가지 연출법은 결국 '화양연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이뤄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됐던 사랑이었다. 이런 처지를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누군가를 깊게 생각해봤다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 것이다. 이 뿐일까?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것도 사실 둘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돌이켜본다고 하는 건 거의 대부분 소망이 소망으로 그칠 때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성공했으면 그냥 현재를 즐기면 되니까 굳이 과거를 회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화양연화는 이 상황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왕가위의 <화양연화>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추억하는 모든 순간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지만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될 비밀이 됐고, 또 과거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이 행복이 다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이 시간들이 나에게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웃기는 일이다.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니.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이것이 생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인간이라서 모든 걸 다 잃기보다는 그런 소소한 무언가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이 오냐고? 근본적으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무엇이든 행복한 엔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의 끝은 좋게 끝나야 <라라랜드>였고, 초극한으로 나쁘게 끝나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다. 이건 사랑으로 국한 지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매사가 그렇다. 근데 우리는 이걸 뻔히 다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면 어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게 뭐 어때. 우리는 즐거웠기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고, 이것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걸 모두 다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평생 동안 그리워한다. 근본적으로 절대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자학하며 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없다면 우린 진짜 별게 아닐지도 모르거든. 다른 화양연화가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거든. 비밀이라고 치부하기에 우리 인생 각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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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크라이스트 / Antichrist
/ 감상 /
본격적인 감상을 말하기 전..
라스 폰 트리에 영화는 언제나 보기 힘들다..
보고나면 기운이 쭉 빠지고, 그냥 지친다.
이번 영화도 그랬다.
줄거리는
아들대신 격정적인 사랑을 택한 주인공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불안과 고통을 겪는데, 이를 극복시켜주기 위해 남편이 아내가 가장 두려워한 '에덴동산'에 아내를 데리고 가서 두려움을 마주시키는 내용이다.
솔직히 이 영화는 상징성으로 범벅되어 있는 영화라 한번에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나같이 크리스천이 아니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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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 주인공은 아들대신 본인의 쾌락을 택한 이기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저 주인공뿐만아니라 이 영화에 부분부분 등장하는 모든것들이 다 이기적존재이다.
정확히 말하면 본성에 따라 하는 행동들이지만 그것들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악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 예로는 남편의 팔에 들러붙어 있던 진드기, 힘없이 쓰러진 아기새한테 몰려드는 벌레들이나 여우들을 들 수 있다.
그렇다.
인간뿐만아니라 이 대자연 자체가 악한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남편.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주인공.
결국 본인의 이기적 과거를 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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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간의 악 → 대자연의 악 → 크라이스트는 악?
의 과정을 거치며 영화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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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어려운 영화다..
위에서 말한 '대자연의 악함' 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크리스처니즘을 사용하는데..
상당히 어렵다.
친구가 알려주기전까지 남편이 예수를 상징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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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누군가가 이거 어때? 하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긴 하지만..
성악설을 믿고 있는 라스 폰 트리에의 주장을 엿보고 싶다면
봐도 괜찮을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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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점..이라고 할 만한 건 없다..
느낀점... 음.. 거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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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즈/Close, 2023>
루카스 돈트 감독의 신작인 <클로즈>를 시사회로 먼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관람하고 왔습니다. 루카스 돈트의 전작인 <걸>도 인상적으로 봤는데, <클로즈>도 좋은 영화였습니다.
전작인 <걸>에서도 느껴졌지만, 루카스 돈트는 주인공의 심리와 감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이렇게 섬세한 터치는 극의 상황에 쉽게 몰입하고 주인공의 감정에 강력하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클로즈>에서도 마찬가지로 끈끈했던 우정 사이에 생긴 거대한 벽을 마주한 주인공 레오의 감정선을 찬찬히 짚어내는데 성공하면서 상실의 고통을 딛고 한층 성장하는 성장 영화로서의 면모도 훌륭합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저지른 잘못을 자신이 스스로 고백하는 장면에 도달하는 순간, 착실히 쌓아 올린 감정이 마음을 흔듭니다.
촬영이 훌륭한 영화입니다.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시골이 굉장히 유려하면서도 아련하고 쓸쓸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어떠한 사랑이나 우정이 타인에 의해 정의되지 않은 세계를 담아내는 것 같은데, 그 세계에 타인의 시선이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을 잘 그려냅니다. 그리고 클로즈업을 굉장히 영리하게 사용하는데, 감정의 변화를 잘 담아내는 카메라가 인상적입니다.
두 소년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가 실로 대단합니다. 에덴 담브린과 구스타브 드 와엘이 보여주는 연기의 합이 단단합니다. <로제타>의 에밀리 드켄도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는데, 좋은 연기를 선보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레오 홀로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이 많은데,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이용한다면 조금 더 흥미로워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달까요. 그리고 담백한 연출이 인상적이긴 하나 이야기 자체가 독특하지 않고 다소 예상이 가능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인만큼 좋은 영화고, 전작인 <걸>만큼 주인공의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어린 날의 상실과 성장을 꼿꼿하게 응시해 내는 영화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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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리는 가족이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돌아왔다. 스토커는 관객의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최근 영화 '괴물'을 다시 보면서 떠올랐던 그의 영화, 서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보고자 한다.
1. 담백한 이야기의 매력
그의 이야기에 빠진 이유는 담백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울어달라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게 한다. 관객을 말 그대로 관찰자로서 기능하게 한다.
그의 영화의 인물들은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소소한 행복들을 추구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들의 행복은 이질적으로 비춰진다. 어느 가족에서는 훔친 물건으로 한 가족의 밥상을 차려내 하하호호 웃음짓고 있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자매들도 복잡한 가정사를 가졌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밥상을 함께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담백하게, 하지만 밝게 서로의 상태를 살필 뿐이다. 그들이 가진 특유의 멋이라고나 할까.
2. 그들과 대비되는 사회의 무심함
그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주류 사회의 허망함을 느낀다. 사회 속에 속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 사회의 일원이 되면 누군가는 낙오되는 생존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난 이긴 자라는 오만 아래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그들은 주류 사회에서 낙오되었지만 행복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류 사회는 여전히 중요하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야 가장 최악이 상황에서 구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배다른 여동생과 오래 함께하려면 호적이 중요하고, 나의 가족 속 가짜 가족들도 그들을 증명할 호적이 없어 사회에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사회에 속해있다는 호적의 존재,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내리는 인간의 무정함도 알 수 있다. 그의 영화들은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지못하는 현대인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류의 관점에서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타인의 관심이 가있지 않는 것을 미끼로 범죄자가 되어 있거나 어딘가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걸 보고 있자면 혈육이라는 개념의 무의미함을 그의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가족이라고 할 수 없고 타인이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가 그의 작품 세계 속 공통 키워드이다. 가족은 피가 아니라 관계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게 그의 영화가 가진 무심함 속 따뜻함이다. 주류 사회가 혈연 중심의 가족을 외칠 경우, 가족 안의 관계성이 모두 좋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가식적인 가족애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관계성이 빛나는 경우 나이, 직업, 사회적 위치에 관계없이 진실된 가족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서도,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어느 가족', 그리고 기타 다른 영화에서도 그가 그리는 가족이 그렇게 따뜻해 보였던 게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 그래서 요란하지 않지만 보고나면 힐링이 되는 그의 영화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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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지구는 3단계 인류 재앙을 이겨내는 영화 [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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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신이 아닌 신념을 가지고 불속에 뛰어느는 사내들 [영화리뷰/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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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캐롤> 메인 예고편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나의 첫사랑, 마지막 사랑 올겨울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물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