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3 23:17:57
[BIFF 데일리]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영화 <하베스트> 리뷰
DIRECTOR.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
CAST. 케일럽 랜드리 존스, 해리 멜링 외
PROGRAM NOTE.
짐 크레이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티나 라켈 창가리의 <하베스트>는 폐쇄 위기에 처한 이름 없는 마을로 우리를 데려간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월터는 그의 젖 동무이자 마을 지주인 마스터 켄트와 함께 이 외딴 마을에 정착했으며, 배타적이고 미신에 집착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분별을 지닌 인물이다. 7일간에 걸쳐 마을은 화재를 겪고, 추수 잔치를 벌이며, 외지인들을 핍박하고, 새로운 지주를 맞이하더니 결국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된다. 감독은 하나의 마을이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과 한 시대의 고통스러운 종말, 그리고 삶의 방식이 비극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35mm 필름에 담아낸다. 신(新)국수주의가 떠오르는 가운데, <하베스트>는 추방과 강제 이주로 이어지는 지독한 외국인 혐오와 불관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강렬한 우화이다. (박가언)

디지털 기술이 계속 발전하지만, 필름 특유의 아름다움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하베스트>가 그렇다. 테두리가 거뭇거뭇하거나 불그스름한 흔적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올린 이 영화는, 필름을 통해 다소 중세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우화를 참 우화로 만드는 건 이런 검박해 보이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곡식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사람의 손이 올라온다. 이제 막 날개를 펴는 나비에게 후 숨을 불고, 까만 흙이 낀 손톱으로 이끼를 만지다 못해, 이끼를 베어 물고 나무 옹이에 혀를 넣기도 하다가 급기야 알몸으로 물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자연 속에 거하는, ‘인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흙 낀 손톱처럼 자연 그대로인 모습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은 화재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들판에 산들거리는 꽃이나, 쓰임새를 하나하나 일러주는 나무와 풀들, 거기서 양털을 꺾고 노동요 부르며 농사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얼핏 옛 유럽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사건들은 등락(登落)의 폭이 매우 크고, 그 낙차마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외지인은 누구인가
이 영화에는 여러 차례 외지인이 등장한다. 그중 절대다수가 트레일러에 등장하는데, 형틀에 묶여 있는 사람들과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인을 믿지 않으며,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합리적 판단보다는 익숙한 사람인지 아닌지의 잣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합리적 판단을 할 만큼의 시간조차 두지 않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남자이자 중간중간 서술자로서 내레이션을 하는 월터는 한편으로 주민들의 삶이 배부르고 취한 짐승들 같다고 자평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삶을 꾸려 가고 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에 비해 외지인에 열려 있는 사람이 그다.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 싶어하고, 이름을 묻고 싶어한다. 이 마음은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형틀에 묶인 사람들에게조차 조롱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belong”은 주요하게 반복되는 단어다. 마을의 아이들은 동네의 경계를 따라 걷다가 경계를 알리는 돌에 머리를 찧음으로써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똑똑히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외지인에게는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단단한 소속감은 기반 논리가 깊지 않다. 외지인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이들의 계급이나 상황이 계속해서 다양해짐에 따라,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도 자반 뒤집기 하듯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외지인의 말 또한 정답은 아니다. 동네를 “개선”하겠다며 소득 증대의 꿈을 꾸는 새로운 주인, 조단의 말은 아마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체의 소득이 증가하고 모든 게 좋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조단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토박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전통은 무조건적인 혁신으로 깨부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문을 닫아걸고 타인을 거부한다고 순수하게 계승할 수도 없다.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으로 넉넉한 사회만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계속되는 외지인들의 등장 앞에 우왕좌왕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식민지로 물들었던 20세기 어떤 국가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지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식한다. 지도 제작자 얼이 개인적으로 작업한 동심원형 지도를 보여주었을 때 “최고의 지도”라고 반가워한 것도 그래서다. 둥근 동심원형은 사방으로 잔잔한 파동을 퍼뜨리며, 설령 영역이 조금 겹쳐도 서로에게 뾰족하거나 유해하지 않다. 넉넉하고 너그럽고 부드럽다. 그러나 동심원형 제도는 얼의 개인 작업일 뿐, 그에게 의뢰되는 작업은 격자 무늬형 지도다.
네모반듯하게 구획을 자른 그 지도상에는 사람이나 나무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 지도에서 중요한 건 대략의 위치와 구획당 키울 수 있는 양의 수 정도일 것이다. 월터가 반박하듯 그 땅의 물과 흙, 심지어 땅을 돌아다니는 소의 특성까지도 확실히 알고서 그리는 동심원형 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월터는 단박에 본질을 꿰뚫어본다. 그건 우리를 납작하게(flatten) 만든다고. 동심원형을 강제로 격자 모양에 쑤셔 넣으려면, 원의 가장자리는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의 여백으로 밀려나는(marginalized) 사람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세계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다. 항해용으로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프리카가 너무 작게 표시되어 있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은 미국과 중국과 인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데, 실제로는 아프리카보다 훨씬 작은 그린란드가 더 커 보일 정도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어 활용한 도법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영국 같은 국가들이 좀더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많이 사용한 측면도 있다.
월터는 세계를 동심원형으로 인지하는 사람이기에, 외지인을 받아들인다. 그는 어찌 보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들과도 닮은 측면이 있다. 격자식으로 잘려 나가는 세계에서 한 줌 흙을 놓치지 않는,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는. 손가락질이 심긴 곳에서 비극이 피어난 곳을 보고도 흙에 씨앗을 심는 마음. 격자식 지도에 너무 익숙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마음 때문에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극장에서 두 시간씩 앉아 영화를 본다. 씨앗을 심고 거두듯이.

그 자리는 과연 영원한가
나그네는 영원히 나그네이고, 토박이는 영원히 토박이인가. 자리는 쉽게 뒤집힌다. 어쩌면 저기 저 사람의 어제는 나의 오늘과 비슷했을 수 있다. 나의 내일이 저 사람의 오늘이 되지 말란 보장은 없다. 격자식으로 횡과 종을 마구잡이로 갈라 서열화하는 지도를 떠나, 둥근 원형의 지도를 마음에 품어야 하는 이유다.
비록 월터가 그 동심원을 실행한 방법이 (이 또한 정말 너무 한국 근대 소설의 무력한 농민 가장 같은) 무위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걸음의 방향에만큼은 고개를 끄덕여 본다.
10/03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상영코드 066)
10/08 20:00 CGV센텀시티 4관 (상영코드 395)
10/09 14: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상영코드 433)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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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
영화 <로스트 도터> 포스터
로스트 도터 (THE LOST DAUGHTER, 2021)
장르 : 미국·영국·이스라엘·그리스, 드라마 │ 감독 : 매기 질렌할
출연 : 올리비아 콜맨(레다), 다코타 존슨(니나), 제시 버클리(젊은 레다) 외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22분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모성을 잃은 여자, 레다.
왜 하필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기간에 이 영화를 보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갖기 전에 잘 생각해보라는 신의 경고였을까. 이 영화는 아이를 키우는 환희와 즐거움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희생’의 무게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것도 아주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말이다.
대학교수 ‘레다’는 혼자 휴가를 즐기러 그리스 해변에 왔다. 그녀는 모래사장에 책을 펴고 앉아 누구의 간섭도 없이 홀가분한 시간을 즐기려 하지만, 그곳에 놀러 온 또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대가족 단위의 시끄러운 어떤 가족들이다. 그 가족의 무리에는 한 젊은 여자가 있다. 서너 살쯤 된 딸을 키우는 듯한 그 여자의 이름은 ‘니나’. 어린 딸과 동행하는 젊은 니나에게, 레다는 자꾸만 시선을 빼앗긴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아름답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
레나에게도 니나와 같이 젊은 시절이 있었다. 이른 나이에 낳은 두 명의 딸도 있었다. 그러나 레다의 회상에서 그려지는 그녀의 젊은 시절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딸아이는 징징거리며 레다를 보채고, 레다는 그런 아이들이 지겹다. 유망한 대학원생이었으며 꿈이 있었던 레다에게 아이들은 축복보다는 힘겨운 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다 레다는 대학교수를 사랑하게 됐고, 그 길로 3년간 아이들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말이 통하는 지적이고 섹시한 대학교수, 아이로부터의 해방감. 그런 것들이 지친 레다를 유혹했고 환상을 갖게 만든 것이다. 물론 레다는 결국 아이들이 그리워져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일에 대한 죄책감까지 씻어지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일을 벌인 지 십수 년이 지난 레다는, 뭔가에 씐 듯 해변에서 니나의 어린 딸이 가지고 놀던 인형을 훔쳐서 숙소로 가지고 온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행복을 잃은 여자, 니나
휴가를 즐기는 동안 레다는 니나와 부딪힐 일이 많았다. 니나가 잠시 어린 딸을 잃어버렸을 때 레다가 찾아다 준 날도 있었고, 딸 때문에 힘들고 불행하다는 니나의 하소연을 듣는 날도 있었다. 그녀와 만나면 만날수록 영락없이 레다는 자신의 젊은 시절이 겹쳐 보인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숙소로 훔쳐온 인형에 대고 자신의 젊은 시절과 두 딸들을 투영시켰다.
그러던 중 레다는 니나가 남편을 두고 숙소 종업원과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레다가 편해진 니나는 불륜남과 거사를 치를 수 있도록 숙소를 빌려달라는 부탁까지 청해오는데. 레다는 그러기로 약속은 하지만 석연치 않고, 그걸 모르는 니나는 기쁜 마음으로 숙소의 키를 받으러 온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 지겨운 일상을 벗으려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려는, 자신과 너무도 닮은 니나를 꾸역꾸역 남처럼 대하려 했으나… 레다는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네가 겪고 있는 그건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 수도 있다고, 그 산물이 바로 나라고.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삶의 판도를 많이 바꾸어놓는 듯싶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이를 케어하기 위한 품이 들기에, 아이가 얼마나 예쁘냐 와는 상관없이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는 모든 엄마들의 소망이 ‘육퇴(육아 퇴근)’일 수가 없잖은가.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짓눌리는 것들
물론 젊은 시절 레나의 일탈과 방황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가보지 못한 자유의 길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가정을 저버리지는 않으니까. 다만 모성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 너무나 큰 인내와 희생이라는 요소가 있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하고 싶다. 레나에게도 니나에게도 그리고 모든 엄마들에게도 모두 비슷한 위기와 고비가 있었으리라 이해하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레나는 자신이 니나 딸의 인형을 훔쳤음을 고백한다. 다 큰 어른이 돼서 왜 아이의 인형을 훔치고 모른척했는지 니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관객인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아이를 버리고 3년간이나 외도를 했다가 돌아온 여자의 그 죄책감의 깊이를. 부디, 영원히 그 감정을 모르길 바라며 살 뿐이다.
* 해당 포스팅은, 씨네랩(CineLab)으로부터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언론 배급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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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왈로우 (Swallow, 2019) - '그녀가 피를 토해내며 삼켰던 것들'
스왈로우 (Swallow, 2019)
감독 :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출연 : 헤일리 베넷, 오스틴 스토웰, 데니스 오헤어, 엘리자베스 마벨
‘그녀가 피를 토해내며 삼켰던 것들’
2020 CGV CAV 전을 통해 선공개 된 후, 최근 왓챠에 공개된 영화 <스왈로우>. 여름에 그렇게 봐야지 봐야지~ 했지만 상황과 우선순위에 밀려 결국 보지 못하고 넘겼던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왓챠에 공개되었다.
<스왈로우>의 장르는 스릴러로 분리되어 있다. 근데, 이 영화의 공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릴러와는 조금 다르다.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장면이 나오거나,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간혹 몸에 난 상처와 혈흔을 보여주긴 하지만 눈을 찡그릴 만큼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밖으로 터져 나오는 피가 아닌, 억지로 삼키며 토해낸 몇 방울의 피로 만들어진다.
널찍하고 예쁜 집, 최연소 상무이사가 된 남편, 새로 잉태한 생명. 넉넉한 집안과 충분한 능력을 가진 남편 리처드를 만난 주인공 헌터는 이제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꿈을 좇을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출근한 후 커다란 집에 남겨진 그녀는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드넓게 펼쳐진 숲과 맑은 하늘. 헌터는 그림을 그리다가 이내 북북 지워낸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터는 여유로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이 출근한 사이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삽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하지 않고도 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일명 ‘사모님’의 삶인 것이다. 헌터도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운이 좋았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가짜 행복은 천천히 헌터를 옥죄고 있었다. 그녀는 리처드와 결혼한 순간부터 남편의 가족들 덕에 행복해진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들 앞에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습관처럼, 주문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쓸모없는 말이다. 헌터는 서슬 퍼런 눈빛들 앞에서 새빨간 말들을 속으로 삼킨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녀를 물들인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역할과 비밀을 숨기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헌터를 더욱 강하게 비튼다. 이러한 강박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헌터의 행동을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만큼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아플지도 모르겠다.
스왈로우 시놉시스
완벽한 남편과 함께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사랑스러운 아내 ‘헌터’. 그러던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먹어서는 안 될 금지된 것을 삼키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되는데…
"우리 아들 만나서 신세폈네"
회사를 운영하는 시부모님과 최연소 상무이사가 된 남편 리처드. 시부모님이 사준 집엔 넓은 마당과 수영장, 아름다운 풍경, 고급 가구가 그득하다. 누가 봐도 부잣집이다. 헌터는 그 집안의 며느리가 된다. 리처드와 결혼하기 전 욕실용품을 판매하던 그녀는 이제 진짜 꿈인 삽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릴 시간도 얻었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리처드가 출근하고 나면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휴대폰 게임을 한다. 그리고 리처드가 오기 전에 저녁을 준비하고 그와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면 된다. 여유로운 일상이다. 하지만 헌터의 마음은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헌터를 집으로 부른 시어머니는 헌터에게 "우리 아들 만나서 신세폈네"라고 말한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헌터는 리처드를 만나면서 자유시간을 얻었고, 든든한 경제적 지원군이 생겼으니 말이다. 헌터는 습관처럼 나는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리처드의 가족을 만나며 행복을 얻었다고 말이다. 근데, 이 행복은 그들과 진정한 가족이 되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헌터는 리처드의 가족이 아니다. 이건 영화를 오래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리처드의 상무이사 취임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 리처드는 헌터를 언급하며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아내라고 칭하고, 시어머니는 임신을 한 헌터에게 기쁨을 얻는 재능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선물한다. 리처드 가족에게 헌터는 헌신적인 아내이자 타인(리처드 가족)에게서 행복을 얻어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리처드는 헌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넥타이를 잘못 다리는 사소한 실수에 화를 내고, 정성껏 차린 저녁 식탁 앞에서 헌터가 아닌 휴대폰을 바라본다. 헌터의 임신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에서조차 그녀는 완전히 배제된다. 인사치레처럼 나누는 아기에 대한 몇 마디 대화가 지나가고, 리처드의 부탁으로 시작된 헌터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잘려버린다. 리처드 가족에겐 헌터의 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저 헌신적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긴 머리를 가져야 하는 아내일 뿐이다.
"매일 새로운 것을 시도해라"
임신을 했지만 행복하지만은 않다. 헌터의 시간은 매일 의미 없이 흘러간다. 아내로서의 의미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준 '기쁨을 얻는 재능'을 읽는다. 그 책엔 기쁨을 얻기 위해선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헌터는 책을 읽고 구슬을 먹는다. 그리고 내가 삼켰던 그 동그랗고 매끈한 것이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 걸 본 순간, 기쁨을 느낀다.
헌터의 이식증 증상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매끈한 구슬을 시작으로 뾰족한 핀, 배터리, 매트리스 충전재, 못, 반지, 여러 금속들. 몸의 작은 곳들에서 피가 비치고 고통이 찾아오지만, 헌터는 작은 물건들을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느끼며 고통을 잊는다.
"내가 괴물이라 미안해"
헌터는 리처드에게 자신이 괴물이라 미안하다고 말한다. 헌터에게 직접적으로 괴물이라 칭한 사람은 없었지만 헌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헌터를 괴물이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터는 강간 피해자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이다. 어머니는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고, 헌터에겐 배다른 동생들이 있다. 상담사 앨리스는 헌터에게 여러 번 어머니와 가족에 대해 묻지만 헌터는 "평범한 가족이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다 홧김에 뱉어버린 어머니와 문제가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헌터는 앨리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리처드도 몰랐던 깊은 상처와 고민들. 괴물 같던 범죄자 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자신. 헌터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엔 생기가 없다.
범죄로 인해 태어난 아이. 세상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헌터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리처드를 만나 드디어 행복한 삶을 살아보나 했는데, 헌터는 여전히 행복할 수 없다. 무신경한 남편과 며느리를 아이의 엄마 정도로만 생각하는 시부모님. 리처드의 아버지는 임신했다는 헌터를 만나자마자 "미래의 CEO가 여기 있다"라고 말할 뿐, 헌터에 대한 축하와 존중의 말은 하지 않는다.
헌터는 여전히 외로운 사람이다. 리처드 가족 사이에 불편하게 끼인 듯 앉아있는 그녀는 온전하고 따듯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헌터는 그저 안정적인 삶 속에서 행복하다고 반복해 말하고 있는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일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헌터에게 위로가 되는 인물은 남편도 그의 부모님도, 헌터의 어머니도 아닌, 헌터와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들뿐이다.
리처드가 야밤에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집에 왔던 날. 혈흔을 지우는 헌터를 발견한 건 리처드가 아닌, 그의 직장동료 에런이었다. 에런은 헌터에게 외로우니 포옹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헌터는 에런을 안아주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살짝 묻어본다. 포옹을 끝내고 헌터는 에런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어째 부탁한 사람과 부탁을 들어준 사람의 입장이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헌터가 외롭다고 말하는 에런을 안아주는 순간,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외로움을 다시 느끼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헌터에게 위로가 된 또 다른 사람은 간병인 루아이다. 헌터의 이식증을 알게 된 리처드 가족은 아직 몸이 안 좋은 헌터를 위해 고용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간병인을 루아이를 집에 상주시킨다. 루아이는 고용인 리처드를 위해 헌터를 감시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헌터를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는 침대 밑으로 들어간 헌터의 옆에 따라 들어가 "여긴 안전해요"라고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인다. 그리고 헌터가 정신병원에 입소하기로 한 날, 헌터의 도망을 돕는다.
이 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헌터에게 진실된 위로와 사랑을 전하지 않는다. 리처드와 가족들은 리처드의 평범한 삶을 위해 헌터의 이식증을 고치려 했고, 리처드의 직장동료는 이식증 사실을 안다며 형식적인 응원과 위로를 전할 뿐이다. 상담을 진행했던 앨리스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열쇠가 될 수도 있다며 헌터의 과거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관심 있는 척하지만 상담 시간 끝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상담을 정리해버린다. 집을 뛰쳐나와 갈 곳이 없어진 헌터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헌터의 어머니는 언제 와도 반갑다며 반겨주는듯하더니, 동생이 아이를 낳아야 해서 방이 없다며 딸의 방문을 거절한다.
"내가 당신을 닮았나요?"
헌터가 갈 곳은 이제 한 곳뿐이다. 남편도, 시부모님도, 어머니도 나를 외면했으니 남은 건 아버지의 집뿐이다. 어머니를 강간했던 남자이자 아버지인 윌리엄 어윈. 헌터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마주한다. 헌터는 묻는다. 내가 당신과 닮았냐고. 어윈은 답한다. 닮지 않은 것 같다고, 당신(헌터)은 내가 아니라고.
"당신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헌터는 이 말을 듣고 싶어 어윈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범죄에 의해 태어난 존재. 그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헌터는 자연스레 자신의 출생 비화를 숨겼고, 그렇게 평생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아왔다. 헌터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 범죄자 아버지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원망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에 난 아버지의 사진을 오려 지갑 속에 넣어둔 그녀는 그렇게 깊고 가깝게 자신의 존재를 미워하고 있었다.
"내가 있어서 행복해?"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아내로, 상류층 집안을 만나 자유로워진 며느리로, 어머니에게 사랑받으며 자란 딸로. 헌터는 리처드의 행복을 위해 살았고, 남편의 집안에 의해 행복해진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리처드의 집안은 그런 헌터의 존재를 괄시한다. 그들에게 헌터는 잘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내 애를 가진 여자였다. 헌터는 항상 불안과 공허함에 떨고 있었다. 반복해서 내가 있어 행복하냐고 묻고,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냐며 묻는다. 리처드는 당연하다는 듯 "넌 잘못하려 해도 못할 거야"라고 답한다.
이식증은 보통 만 1세에서 2세 사이에 나타난다고 한다. 흔히 아동들이 많이 겪는다고 하며 빈곤이나 아동학대, 가족의 혼란과 같은 상처들이 이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헌터는 위와 같은 상처들을 모두 겪은 어른이다. 그녀는 이식증 증세를 처음 겪는다고 말한다. 왜 어릴 적이 아닌 지금 이 증상이 나타난 걸까?
그건 아마도 헌터가 지금껏 자신의 모든 상처를 외면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걸 인식할 여유조차 없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리처드와의 결혼, 시부모님의 압박, 그리고 임신 등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겪으며 지금껏 덮어두었던 상처가 곪기 시작한 건 아니었을까. 유년시절에 생긴 상처는 사라진 것이 아닌, 그 자리에 그대로 덮여있었을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리처드 가족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헌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저녁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말을 꺼내볼까-하면 리처드는 문자 답장을 하기에 바빴고, 리처드의 부모는 망설이며 시작한 헌터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그녀의 말은 항상 쓸모없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헌터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말들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켜 넣는다. 그리고 쓸모없는 잡동사니들로 취급받는 것들도 함께 삼킨다. 고통을 주고, 혈흔을 남긴다 해도 그녀는 행복하기 위해 그것들을 다시 삼킨다.
음식이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속성을 가진 물건들이 헌터의 혀에 닿을 때, 헌터는 그 느낌이, 그것을 넘길 때 차오르는 자신감이 좋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리처드 집안에 들어온 여자가 아닌 나도 삼켰던 것을 다시 내뱉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생동감.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헌터는 리처드의 집에서 도망치기 전까지, 온전한 나의 모습을 담은 거울을 본 적이 없다. 거울을 보는 리처드의 옆에 서있거나, 리처드와 동료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비치는 유리창을 바라보거나, 리처드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된 나를 보거나.
영화의 마지막, 화장실에서 약을 먹고 하혈을 한 헌터는 가방을 다시 메고 거울을 바라본다. 전보다 길어진 머리를 편하게 묶고, 여성스러운 원피스가 아닌 편안한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고, 진한 눈 화장이 아닌 자연스러운 눈매를 가진 헌터의 모습. 온전한 나로서의 모습이 담긴 거울. 이제 그녀는 할 줄 아는 것 없는 누군가의 아내, 아이를 가진 엄마가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된다. 이제 여유로운 부잣집 사모님의 모습은 없지만 헌터는 한결 편안해 보인다.
헌터가 화장실에서 나가고, 수많은 여성들이 화장실에 들어오고 나간다. 여성들만이 들어오는 공간인 여자 화장실에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헌터가 서있던 자리에서 거울을 보고, 같은 출구를 향해 나가는 수많은 여성들. 그들도 헌터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가진 사람을 서슬 퍼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세상 속에서 헌터는 말을 삼킨다. 모든 것은 비밀이 되어야 했고, 비밀과 함께 삼킨 물건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때. 그녀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히던 강박과 억압을 끊어내기까지 헌터는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수도 없이 삼켰고, 그것들은 혈흔이 되어 그녀의 창가에 들러붙는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은 붉은빛으로 바뀌어 방을 가득 채운다. 그게 그녀가 바라보던 세상이었다.
* 본 콘텐츠는 네이버 블로그 Kyung film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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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무관심했고, 난 절박했지."
"넌 무관심했고, 난 절박했지."
※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내가 빠져든 건 네 찬란함일까, 젊음일까"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에서 도망친 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작가 리. 함께할 수 있는 상대라면 누구든 상관없었던 리는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태워내며 타오르는 오후에 아름다운 청년 유진을 만나 첫눈에 빠져든다. 노골적인 관심과 구애 끝에 유진과 특별한 밤을 보낸 리. 하지만 마음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유진의 태도에 리는 점점 더 그를 갈망하며 집착하게 되는데...
- 네이버 <퀴어> 소개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제작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퀴어>가 오는 20일 개봉 예정이다. <퀴어>는 1950년대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중년 남성 리가 청년 유진을 우연히 만나 첫눈에 빠져들게 되면서 생기는 일을 담은 영화이다.
리는 미국이 아닌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술, 마약 그리고 하룻밤을 같이 지낼 상대와의 만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외로움의 크기만큼 술과 마약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던 중 우연히 유진을 만나게 된다. 리는 첫눈에 유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그의 주위에 맴돌며 유진에 대해 알아가고자 한다. 마침내 리와 유진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지만 리와 다르게 유진은 이후 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 리는 유진을 더더욱 갈망하며 그에게 집착한다.
유진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발전해 나가고 싶었던 리는 유진에게 여행을 제안하게 된다. 여행의 목적은 바로 식물 "야헤"를 찾는 것. 텔레파시 즉, 사람과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을 연결해 주고 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야헤"라는 식물을 원한 리는 유진과 그 여정을 함께 떠난다. 수소문한 결과 "야헤"에 대해 연구하는 박사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 리는 울창한 정글 속에서 그가 그토록 원하던 "야헤"를 얻게 된다. 리는 유진과 함께 "야헤"를 먹고 텔레파시를 얻길 기대하지만,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을 유진에게서 듣게 된다.
<퀴어> 포스터 속 문구인 "넌 무관심했고, 난 절박했지."는 리와 유진의 관게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한다. 외로움에 잠식되어 마약과 술 그리고 하룻밤 상대를 만나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던 리의 삶에 등장한 유진은 리에게 오랜 외로움을 없애 줄 구세주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별한 밤을 하루 보낸 이후 유진에게 더욱 집착하는 리와 달리 유진은 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리는 마약과 술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나아가 자신을 상대방과 영원히 연결해 줄 매개체를 찾게 된다. 그 매개체가 바로 "야헤"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서 보여주듯 "야헤"도 리가 그의 외로움을 달래 줄 것이라고 믿었던 여러 가지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루카 구아디노 감독의 이전 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비슷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한 <퀴어>는 생각과 다르게 굉장히 실험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하고 배경 음악 또한 여러 올드팝을 삽입하여 잔잔하고 고요하기보다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영화가 흘러간다. 이러한 실험적인 장면은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리의 외로움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 주며 유진과의 관계 흐름에서 리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돕는다.
루카 구아디노 감독의 아름다운 영상미 무엇보다도 그가 그려낸 리와 유진이라는 인물의 관계성에 대해 궁금하다면 20일 극장에서 영화 <퀴어>를 관람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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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도를 희생해 시리즈의 초석을 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개발하려던 RDA의 공격을 물리친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 그들은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로아크(브리튼 달튼)', '투크티리(트리니티 블리스)'를 낳고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의 딸 '키리(시고니 위버)'와 인간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언)'를 입양해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크는 밤하늘에 낯선 불빛을 발견하고 RDA와 인간들이 판도라에 귀환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가진 무기와 자원을 총동원해 인간들을 공격하나, 도리어 아바타로 되살아난 '쿼리치 (스티븐 랭)' 대령의 기습에 가족을 잃을 뻔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에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위기를 피하고자 '로날(케이트 윈슬레)'과 '토노와리(클리프 커티스)'의 도움을 받아 온 가족을 데리고 바닷가에 사는 멧카이나 부족 사이로 피신한다. 그러나 포기를 모른 채 복수심에 불타는 쿼리치의 추격은 제이크의 가족에 새로운 시련을 선사한다.
<아바타: 물의 길>은 올해 개봉한 작품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이었다. 이유는 많았다. 역대 월드와이드 흥행 1위 영화이자 3D 혁명을 일으킨 <아바타>의 속편이라는 점, 개봉일이 숱하게 연기되어 13년 만에 공개된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라는 점, 제임스 카메론 감독 본인이 가장 비경제적인 영화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이라는 점 빼놓을 수 없다. 전편의 주역인 샘 워딩턴과 조 샐다나는 물론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고니 위버와 스티븐 랭이 복귀했고, 케이트 윈슬렛 등이 새로이 합류한 배우들의 면면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감독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에이리언 2>와 <터미네이터 2>로 속편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는 제임스 카메론도 이번에는 자기 장기를 온전히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13년간의 준비 기간 때문이다. 카메론 감독은 5편까지 이어질 시리즈를 모두 계획하기 위해 13년이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각본을 모두 완성하고, 모든 캐릭터와 생물을 미리 만들며,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사전에 구축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이번 속편이 큰 그림의 일부라는 의미이며, 바로 이 대목이 양날의 검이다. 앞으로의 로드맵이 확실하다 보니 <아바타: 물의 길>이 암시하는 향후 시리즈의 내용이나 전편으로부터 더욱 발전한 주제 의식과 메시지는 화려한 영상미 못지않게 흥미롭다. 반면에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시리즈의 초석을 놓는 데 열중한 나머지 무엇 하나 온전히 완결 짓지 못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캐릭터 '로아크' & '키리'가 암시하는 시리즈의 길
우선 <아바타: 물의 길>은 새로운 캐릭터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앞으로 <아바타>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로맨스가 가족 드라마로 확장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에 끼워 넣고 동시에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제격이므로. 실제로 영화의 내용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양육 방향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의 충돌, 형제자매 간의 다툼 등으로 가득하다. 특히 둘째 아들 로아크과 양녀 키리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들의 서사에 담긴 비유와 클리셰는 시리즈의 지향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일단 로아크는 신약 성경 속 '돌아온 탕자'의 판도라 버전으로 보인다. 로아크는 나비족의 영웅이자 위대한 전사인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 들끓지만, 동시에 아바타의 특징이 강한 외모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아버지처럼 강한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완벽한 아들이자 형인 네테이얌처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자격지심이 공존한다. 그 때문에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 몫만큼의 유산을 받아 집을 나선 '탕자'가 된다. 그는 만용을 부리다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해 가족과 동료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고, 좀처럼 가족들과 융화되지 못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자신만의 여정을 겪는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숙해진다. 자신처럼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툴쿤 파야칸을 만나 안정을 찾고,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아버지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로아크가 물속은 물론 인생의 길까지 찾는 이야기인 셈이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신비한 캐릭터 키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아바타에서 태어난 아기이자, 그 누구도 아버지의 정체를 모르는 존재인 그녀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유달리 에이와와 강하게 교감할 뿐만 아니라, 따로 훈련하지 않고도 물속에서 능숙하게 잠수할 줄 안다. 또 온갖 동식물과 소통하고 그들을 뜻대로 조종하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는 그녀가 마치 판도라 버전의 예수와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간과 나비족의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구세주 메시아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본래 '아바타(avatar)'라는 단어가 지상에 내려온 신의 분신을 의미하는 만큼, 키리가 에이와의 아바타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로아크와 키리의 서사가 중심이 될 <아바타> 시리즈는 제임스 카메론이 써 내려가는 신약 성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시점 알려진 시리즈의 4편과 5편의 부제가 각각 <툴쿤의 기수(The Tulkun Rider)>와 <에이와를 찾아서(The Quest for Eywa)>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편으로부터 진일보한 생태학적 메시지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개발에 반대하며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도 더욱 깊어졌다. <아바타>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판도라의 모든 생명체는 에이와의 자식으로서 동등한 존재다. 따라서 그들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대신 그들과 소통하며 허락을 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는 제이크가 이크란을 탈 때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했던 이유였고, 또 사냥할 때마다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라고 말하며 명복을 빌었던 이유였다. 판도라의 모든 나무가 마치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인간처럼 의사소통할 줄 안다는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설정이었다. 다만 이러한 묘사에도 한계는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설정과 설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판도라의 신기한 생태계와 삶의 방식을 관찰할 뿐, 다른 생명과 존재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아바타: 물의 길>은 한발 더 나아간다. 지구의 고래를 닮은 생명체, 툴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작중 툴쿤은 멧카이나 부족의 형제자매, 외관만 다른 부족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멧카이나 부족과 툴쿤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추석이나 설날에 만나 수다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단지 멧카이나 부족이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툴쿤들도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영화는 로아크와 파야칸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툴쿤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파야칸의 시점에서 로아크가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주고, 친분을 맺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결과 동등한 두 주체가 진정으로 우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에는 설득력이 더해진다. 또 인간과 멧카이나 부족이 결국 전투를 벌이는 결정적인 계기도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주제 의식
즉, 전편이 인간도 자연계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속편은 인간 이외의 주체를 강조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이며,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들도 툴쿤 사냥선을 급습하는 파야칸처럼 인간 행위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능동적인 반응에 따라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 RDA의 목적이 망가진 지구를 대신해 판도라를 개척하고 이주를 도모하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자연과의 공존을 더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층 깊어진 주제 의식은 <아바타: 물의 길>이 선보이는 화려한 영상미가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작품의 CG 효과는 전편 수준의 충격적인 영상미를 재현하지 못한다. 3D 효과도 익숙해졌고, 판도라 행성의 경관도 한 차례 맛을 봤기에 13년 전만큼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판도라를 체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마치 지구의 바다를 촬영하듯이 다른 세상에 있을법한 바다의 상세한 모습을 그래픽과 상상력으로 표현한 결과, 주인공들과 함께 판도라의 바다를 진짜로 경험하고 경이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본의 고래잡이를 비판하는 듯 보이는 툴쿤 사냥 시퀀스도 마냥 교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은 해당 장면에 심정적으로 몰입하고, 영화의 메시지도 자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시리즈의 부속품에 가까워진 결과물
그러나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아바타: 물의 길>은 전편에 비하기 어려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전반적인 스토리의 구성과 흐름, 캐릭터의 구축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전편과 달리 몰입도가 떨어진다. 1편은 인간과 아바타(나비족) 중 한 정체성을 골라야 하는 제이크의 고뇌를 그려냈다. 이러한 존재론적인 내적 갈등은 누구나 자신의 성장 경험과 사회적 위치를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반면에 이번 작품은 내적 갈등을 사회적인 이야기로 다양하게 확장한다. 일례로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은 혼혈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심적으로도 괴로워하고 멧카니아 부족의 아이들과도 충돌한다. 이는 현실 속 인종 차별이나 다문화 청소년들이 겪는 집단 따돌림 등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이는 수용자의 경험과 태도에 따라 공감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화제이고, 결국 그 때문에 직관적인 몰입도도 덜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수많은 캐릭터의 활용법도 최선은 아닌 듯 보인다. 다음 세 편을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 보니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간신히 시작될 뿐 진행되는 내용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제이크의 서사만 해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사전 작업에 머무르고 있다. 줄곧 인간을 피해 도망치던 그가 인간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 3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스파이더의 활용도 애매하다. 인간과 나비 양쪽을 오가면서 비극적인 개인사와 가족사를 지닌 인물인 만큼 그는 분명히 향후 시리즈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정작 이 중요한 캐릭터가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는 나비족의 습관과 정서를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는 캐릭터에서, 말 몇 마디에 쿼리치의 제이크 추적을 돕는 등 소극적으로 협력하는 캐릭터로 변해 버린다. 이렇게 일관성 없이 플롯의 필요에 따라 캐릭터성이 달라지다 보니 그는 자연히 극의 흐름에 녹아들지 못한다.
갈등의 규모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전편보다 더욱 커진 전쟁을 그려내는 듯하다. RDA가 아예 실거주 목적으로 판도라 행성에 귀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다음 편을 위한 복선에 불과하다. 정작 종족의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과 나비족의 결전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이크, 네이티리, 그리고 쿼리치 대령 간의 오래된 악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쿼리치 대령은 개인적인 복수심을 이유로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추격하며, 그저 도망치기에 급급하던 제이크와 네이티리 역시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쿼리치의 도발에 응수하기로 한다.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전편에 비해 다소 맥 빠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액션의 스케일이나 전투 시퀀스의 규모도 줄어들었고, 싸움에 임하는 비장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두 작품이 있다. 바로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와 <호빗: 뜻밖의 여정>다. <아바타>를 일종의 프롤로그였다고 친다면, <아바타: 물의 길>의 목표는 <반지 원정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리즈의 세계관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거대한 전쟁에 앞서 선악을 대표하는 인물들 간의 추격전을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각각의 인물이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편을 정한 후 본격적인 전쟁에 나서기로 하는 흐름도 유사하다.
그러나 목표와 달리 <아바타: 물의 길>은 정작 <호빗> 1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만다. 시리즈의 진행에 필요한 복선을 깔아 두는 데 지나치게 열중할 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으며, 많은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했지만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유사한 문제점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내용의 부실함을 전편에 비해 화려해진 시각 효과로 벌충하는 것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장단점이 명확히 갈리는 가운데 향후 시리즈의 향방에 따라 재평가의 여지를 남겨두는 작품인 셈이다. 대서사시를 위한 완벽한 가교이거나, 시리즈의 진행을 위해 소비되어 버린 평범한 속편이거나. 2년 내지는 3년 안에 나올 것이라 공언한 <아바타 3>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재평가는 속편들의 몫으로 남겨둔, 흠잡을 데 없는 시리즈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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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 영화 '남매의 여름밤'
“빨리 내 방으로 와 봐! 급해!”
“왜?”
“불 좀 꺼줘^-^”
남매들의 밤은 항상 치열하다. 서로 아웅다웅 괴롭히고 못 살게 군다. 사실 남매라는 관계는 형제나 자매에 비해 훨씬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해님 달님' 속 오누이 같이 다정한 사이가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게 달라서 서먹서먹하거나 얼굴만 봐도 으르렁 거리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남매보다 ‘엄마 아들’ 혹은 ‘아빠 딸’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릴 때도 있다. 제목부터 이렇게 복잡한 단어를 넣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그들을 어떤 관계로 그리고 있을까?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아빠(양흥주)와 함께 작은 지하방에서 살던 남매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는 할아버지(김상동)가 계시는 2층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고모(박현영)까지 같이 지내게 되며 한 지붕 아래 두 남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제24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감독 조합상, 시민 평론가상, 넷팩상, KTH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후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밝은 미래상 수상,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 수상, 제8회 무주 산골영화제의 대상으로 불리는 뉴비전상을 연이어 휩쓸었다. 평론가의 선택이 반드시 관람할 이유가 되지 않지만,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관객들이 공감할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 흠칫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느 집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법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가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를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아빠, 가출한 고모,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된 ‘옥주’, 세상 물정 모르고 해맑은 막내 동주’까지 서로 다른 인물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대화하고 행동한다.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밥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수저를 건네는 모습이나 ‘콩국수 동주한테 덜어줘.’, ‘이거 맛있다,’ ‘포도가 햇빛을 많이 받아서 달아요.’ 등의 대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 위주가 아닌 식사 장면 전체를 촬영해서 실제 가정의 식사시간을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사용된 할아버지의 생신 축하 장면은 핵심 장면으로 꼽힐 만큼 가족 간의 소중한 순간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은 영화의 첫 시사회에서 식사 장면에 대한 질문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말 그대로 가장 일상적인 식사 장면을 담고 싶었다. 옥주의 가족이 처음 할아버지의 양옥집에 왔을 때는 주방에서 고모가 왔을 때는 거실에서, 동주와 옥주는 2층에서 식사를 하는데 가족들이 어떤 위치에서 식사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답했다.
영화의 배경인 할아버지의 2층 집도 현실적이다. 담금주와 각종 살림살이가 쌓여서 창고가 된 작은 방과 오래된 재봉틀은 그곳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인천에서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빌려 촬영했으며, 영화의 시나리오도 집에 맞춰 일부 수정했다고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할아버지 집 마당은 관리 안 된 텃밭이 있는 걸로 설정했지만, 촬영 장소에 맞춰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추억을 쌓는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시간적 설정인 ‘여름’의 분위기가 한층 강조되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14살 ‘옥주’
영화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극적이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처럼 영화의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정리된다. 화면도 감성적인 색감을 사용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담담하게 그린 가족의 일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고 잔잔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이 담백한 표현 방식에는 주인공 ‘옥주’의 영향이 크다. 주요섭 작가의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른들의 복잡한 관계를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담아낸 것처럼 ‘남매의 여름밤’도 마찬가지다. 14살 ‘옥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어른들의 현실적 어려움이나 불편한 상황이 많은 부분 생략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옥주’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다.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마냥 즐거운 아이이자 또래 친구들처럼 외모와 이성에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춘기 소녀다. 하지만 어른들의 미묘한 관계를 눈치채고 그들의 대화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옥주’는 어른의 세계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몰랐던 진실이 밝혀지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겪으며 관계와 감정에 혼란을 느낀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도 ‘옥주’네 가족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옥주’와 ‘동주’는 계속 싸울 거고 아빠와 고모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껄끄러운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러면서 괜한 자존심과 미안함에 부끄러운 모습을 숨길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그들은 같은 식탁에 앉아 별 거 아닌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내면의 민낯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지내던 여름밤처럼 말이다. 어느 가족의 현재이자 추억할 과거, 견뎌야 할 미래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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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병에 걸린 인물들의 허무한 결말
누군가를 무척 좋아하고 의지할 때가 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이거나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좋아하는 마음은 그 마음의 크기만큼 진심을 다해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의 반응을 살핀다. 이런 구도는 사랑을 하는 연인, 직장 생활의 인간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서로에게 감정적인 접점이 있다면 서로 기대하고 의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적정한 선을 넘어가면 그것은 집착이 된다. 상대방의 대단한 점을 보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 정도라면 괜찮지만,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고 오로지 자신만의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것은 그 상대방에게 만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오로지 한 사람만 보고 가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줄인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런 위험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좁아진 시야는 자신에게 불행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영화
영화 <독전 2>는 많은 인물들이 한 인물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이야기다. 사실 몇 년 전 개봉한 <독전> 1편 속의 인물들도 이선생이라는 미스터리 한 인물에 집착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선생이 누구인지라는 미스터리를 관객에게 던지면서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이선생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게 구성했었다. 마약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선생은 경찰에게는 소탕하고 싶은 갱단의 두목이고, 다른 범죄자들에게는 한 몫챙길 수 있는 기회를 줄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다. 이번 2편에서는 전편의 인물들이 대부분 재등장하면서 이선생을 향한 집착이 엄청난 광기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1편과 마찬가지로 형사 원호(조진웅)와 락(오승훈)이다. 여기에 브라이언(차승원)이 다시 등장하고, 큰 칼(한효주)이 새롭게 소개되면서 영화에 긴장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이 중심인물 네 명의 공통점은 모두 이선생을 찾는다는 것이다. 사실 1편은 형사 원호의 수사로 시작되어 이선생은 누군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는 이야기다.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섞이면서 벌어지는 난장 같은 상황들이 영화 끝까지 시선을 끌었고, 약간 모호하게 끝나는 결말부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의미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번 속편은 1편의 클라이맥스가 정리되고 꽤 시간이 흘러 보이는 마지막 결말 장면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호는 여전히 진짜 이선생을 찾고, 락과 브라이언 그리고 큰 칼까지 합류하면서 이선생을 찾는 모든 인물이 서로 속고 속이는 대결을 벌인다. 이 정도면 도대체 이선생이 뭐길래 그렇게 모든 인물들이 매달리는지 질문을 하게 된다. 전편에서는 집착이라는 느낌보다는 집요한 추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속편으로 이어지면서 각 인물들이 모두 이선생에 너무 집착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선생이 그렇게 전지전능한 인물일까. 원호가 이선생을 잡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인물 락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이선생을 찾는다. 반면에 이 영화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언과 큰 칼은 이선생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마약에 대한 사업권이나 부의 축적이라고 하기엔 그 동기가 너무 약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선생을 찾으려 애를 쓰는 인물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썬생은 누구인가
영화는 진짜 이선생을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시킨다. 하지만 그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다. 영화는 그를 마치 특별한 인물인 것처럼 보여주려 하지만 그에겐 어떤 카리스마나 능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의 긴장이 가장 고조되어야 하는 부분에서 가장 긴장감이 떨어진다. 주요 인물인 락과 이선생의 대면은 분명 특별한 장면이겠지만 복수의 통쾌함이나 시원함을 느낄 수 없다. 이건 이선생을 추적하는 각 인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각 인물들은 적당히 무능하고 과하게 집착한다.
<독전 2>가 가장 실패한 부분은 새로운 악당인 큰 칼의 이미지다. 1편의 진하림(김주혁)이나 보령(진서연) 같은 강렬한 캐릭터를 추가하려 투입했지만, 큰 칼을 연기한 한효주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고 그저 이선생에 집착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소비되고 만다. 그는 브라이언이나 락, 원호를 위협하긴 하지만 크게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퇴장하고 만다. 이선생과 직접적인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빌런치고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이썬생은 실제로 많은 사람을 돕는다. 새로운 마약을 만드는데 돈과 사람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이선생은 그를 궁금하고 추종하는 수많은 범죄자들을 양산했다. 그들은 이선생을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 마음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선생의 뒤를 따라가 집착의 모습으로 변했다. <독전 2>는 그렇게 집착하다 망가져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는 영화다.
영화는 1편에서 어느 정도 열어두었던 결말을 완전히 닫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이선생에 집착하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그 수많은 희생을 했을까. 그들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아무도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뒷맛도 그렇게 좋지 않게 되어버렸다. 1편이 끝나고 나서 많은 살람들이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만들었고 여러 번 관람하면서 추가적인 흥행을 할 수 있었지만 이번 속편은 그렇지 못했다.
영화 <독전 2>는 1편의 박해영 감독 대신, 백종열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1편을 보고 나서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를 새롭게 채워 넣었지만 오히려 각 인물들을 모두 집착병에 걸린 사람들로 만들었다. 또한 실제 이선생을 공개하는 강수를 뒀지만 그마저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극적인 긴장감도 전편에 비해 많이 떨어지면서 스타일리시한 영상만이 유일한 장점이 되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적정한 선을 넘는다. 이선생을 애타게 찾던 인물들은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면서 전편에서 보여줬던 매력을 대부분 잃는다. 무엇보다 1편의 락 역을 맡은 류준열이 오승훈으로 교체되면서 배우가 만들어냈던 특유의 아우라가 많이 사라져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이는 점도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유일하게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점은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영화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큰 손실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1편의 성공을 생각하면 무척 아쉬운 결과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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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포함 스토리 요약 그리고 영화 속 메시지, 속편 정보- 킬러의 보디가드 영화정보
감독: 패트릭 휴즈
제작: 마크 길, 데이나 골드버그, 매튜 오툴, 존 톰슨, 레스 웰던
각본: 톰 오코너
출연:라이언 레이놀즈, 새뮤얼 L. 잭슨 외
장르: 액션, 코미디
음악: 아틀리 외르바르손
제작사: 밀레니엄 픽처스, 크리스털 픽처스
배급사: 라이언스게이트, JNC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2017년 8월 18일 한국 2017년 8월 30일
상영 시간: 118분
제작비: $30,000,000
북미 박스오피스: $75,468,583 (최종)
월드 박스오피스: $176,586,701 (최종)
대한민국 총 관객수: 1,721,757명 (최종)- 킬러의 아내의 보디가드(킬러의 보디가드2) 영화정보
장르: 액션, 코미디
감독: 패트릭 휴즈
각본: 톰 오코너
제작: 크리스타 캠벨, 라티 그로브맨, 매튜 오툴
주연: 라이언 레이놀즈, 새뮤얼 L. 잭슨, 셀마 헤이엑 외
촬영: 테리 스테이시
음악: 아틀리 외르바르손
제작사: 밀레니엄 미디어, 서밋 엔터테인먼트, 캠벨 그로브맨 필름
배급사: 라이언스게이트
개봉일 미국 2021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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