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04 10:37:38
[BIFF 데일리]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
영화 <청설> 리뷰
[BIFF 데일리]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
영화 <청설> 리뷰
줄거리
손으로 설렘을 말하고 가슴으로 사랑을 느끼는, 청량한 설렘의 순간 대학생활은 끝났지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 고민하던 ‘용준’(홍경).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도시락 배달 알바를 간 ‘용준’은 완벽한 이상형 ‘여름’(노윤서)과 마주친다. 부끄러움은 뒷전, 첫눈에 반한 ‘여름’에게 ‘용준’은 서툴지만 솔직하게 다가가고 여름의 동생 ‘가을’(김민주)은 용준의 용기를 응원한다. 손으로 말하는 ‘여름’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더 잘 듣기보단 더 잘 보고 느끼려 노력하지만, 마침내 가까워졌다 생각하던 찰나 ‘여름’은 왜인지 자꾸 ‘용준’과 멀어지려 하는데…
감독: 조선호
출연: 홍경, 노윤서, 김민주
유난스러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길목. 영화 <청설>이 여름, 가을 자매. 용준과 함께 부산을 찾아왔다.
영화를 보기 전엔 ‘누가 봐도 여름에 딱 맞는 영화인데 왜 이 애매한 시기(정식 개봉은 11월)에 관객들을 찾아온 걸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싱그러운 여름과 배우들의 말간 얼굴은 이 아쉬움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걸로도 모자라 사뭇 차가워진 공기에 풋풋하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모든 청춘 배우들에게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데뷔 초 또는 20대에 꼭 풋풋한 청춘 로맨스를 찍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보기 부끄러울 만큼 오글거리는 청춘물도 좋고 올타임 레전드로 남을 로맨스를 찍어준다면 더 좋다.
올해 나이 29세로 (촬영 당시엔 28세)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홍경 배우는 <청설>을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20대 사랑 이야기’라고 하며 이 영화를 내보이게 된 게 굉장히 긴장되고 설렌다고 언급했다.
<청설>속 용준은 그의 긴장과 설렘을 그대로 안고 부드럽고 예쁘게 피어난다. 그리고 앞서 <20세기 소녀>로 부산을 찾았던 노윤서 배우와 첫 청춘 영화 필모그래피를 쌓은 김민주 배우는 여름, 가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해사한 웃음을 흩뿌리며 앞으로 두 배우가 보여줄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청설>은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떠오르는 젊은 배우들의 여름 청춘 로맨스라. 누구나 좋아할만 하지만 자칫하면 무색무취의 영화가 될 위험이 있는 소재를 선택한 이 영화의 차별점은 사랑을 뻔하게 전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의 주인공인 여름, 가을, 용준이 서로 수어를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말과 감정은 목소리가 아닌 손과 표정을 통해 표현되는데, 배우들의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은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 담백하고 진실하며 또 새롭다.
일렁일렁 찾아온 사랑
용준과 여름, 가을의 이야기는 텅 빈 자기소개서와 일렁이는 수영장 물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자기소개서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용준, 물속에 있는 동생 가을만을 생각하다가 물 밖에 있는 자신을 잊어버린 여름. 두 사람은 가을이 희망차게 물길을 가르고 있는 수영장에서 처음 만난다.
용준은 수영장 입구에 들어오는 순간 반대편에 서있는 여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일렁이는 수영장 물처럼 용준의 마음에도 일렁일렁 사랑이 찾아온다. 수영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용준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듯한 설렘을 느끼며 열심히 여름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가 담고 있는 관계, 소통에 대한 메시지 또한 중요하지만 가볍게 훑어만 보더라도 일단 <청설>은 정말 예쁘고 풋풋한 작품이다. 따사로운 여름 햇볕과 초록 잎에 둘러싸인 용준과 여름의 모습, 그들의 반짝이는 눈만 바라보더라도 ‘아, 청춘이다’ 싶은 감탄과 만족감이 자연히 차오른다.
사랑, 서로의 세상을 이해하는 것
용준은 외동아들, 여름은 떨어져사는 부모님을 대신해 수영 선수가 꿈인 동생 가을을 보살피는 언니다. 용준은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하고 여름은 손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소통한다.
용준은 이 환경과 소통 방법의 차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조금 다르면 어떤가. 똑같은 방법을 이용하면서도 소통이 안돼 싸우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한데! 용준은 중요한 건 진심이고 자신이 조금 더 배려하고 조심하면 이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름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용준, 여름. 그리고 가을과 그들의 가족들이 가진 고운 배려심은 소통의 부재와 오해를 낳기도 한다. 수어를 사용할 줄 아는 용준은 다른 이들보다 여름, 가을 자매를 더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용준과 여름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여름, 가을 자매 역시 서로를 위해 노력하지만 털어놓지 못할 부채감을 갖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진 진심과 온전한 이해라는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용준, 여름, 가을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의 세상으로 뛰어든다.
홍경 배우는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은 후 이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서로의 세상을 단단하게 구분 짓고,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수와 아픔이 넘치는 이 시대에 <청설> 같은 영화는 꼭 필요하다.
풋풋한 온기를 담은 영화 <청설>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만나볼 수 있으며 11월
6일 극장을 통해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상영 시간]
10월 4일(금)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0월 9일(수) 17: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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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눈으로 담아낸 모순의 그 날
아이의 눈으로 담아낸 모순의 그 날
영화 리뷰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감독] 마크 허만
출연] 에이사 버터필드, 잭 스캔론
시놉시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나치 장교의 아들이었던 소년 브루노가 아빠의 전근으로 베를린에서 폴란드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의 아빠는 그저 군인이 아닌 나치의 최고 엘리트 장교 중 한 명. 농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의 학대를 받은 아우슈비츠다. 숲 속을 거닐던 브루노는 철조망을 발견하게 되고 슈무얼이라는 동갑내기 유대인 소년을 만나 친구가 된다. 전쟁, 학살이라는 말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소년들의 우정은 끔찍한 결말을 가져오게 된다.
#스포일러 주의#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은 주인공 브루노와 슈무얼의 눈과 얼굴이다. 다른 영화였다면 짧은 컷 정도 할애되었을 장면일텐데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도 브루노와 슈무얼의 얼굴과 눈이 클로즈업 되면서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자신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해보려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은 어리고 모험심이 강한 브루노는 폐타이어 그네를 타고 놀다가 다치게 되고, 그 상처를 집에서 일하던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할아버지 파벨이 치료해준다. 파벨은 아우슈비츠에 끌려오기 전까지 유대인 의사였지만 이곳에서는 감자를 깎으며 지내고 있는데, 이런 파벨을 보면서 브루노는 할아버지에게 의사면서 왜 감자만 깎고 있냐며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이렇듯 브루노의 눈에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왜 그 옷을 입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들은 그들이 가졌던 직업이 아닌 농부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철장 밖을 나오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슈무엘 역시 자신이 왜 갇혀 있는지, 그리고 옆에 있었던 친구들, 그리고 아빠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도, 이유를 알 수도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특히, 나치의 모순적인 행동이나 대화가 오갈 때 브루노 혹은 슈무엘의 눈을 비추면서 그들의 대화나 행동을 듣게끔 화면이 구성되는데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관객들도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나치를 보게 된다. 이를 통해서 나치의 행동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지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독일인 사이에서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수용소라는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반인륜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린아이의 눈을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있었다.
교육과 사랑의 잘못된 시너지교육과 사랑이 과연 아이들의 가치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 대답을 단적으로 해줄 수 있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브루노의 누나 그레텔은 인형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우슈비츠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학교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없었고, 아버지는 그녀와 브루노에게 가정교사를 소개해준다. 그 가정교사는 뼈 속까지 나치로, 독일인이 얼마나 위대하고 현재의 나치가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 남매에게 가르쳤다. 어려운 책에 관심이 없었던 브루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레텔은 선생님이 가르친 내용을 온몸으로 흡수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집에 자주 방문하는 잘생긴 코틀러 중위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치즘 신봉자인 그에게 영향을 받은 그레텔은 교육과 사랑의 시너지로 완전히 변화한다. 방 한쪽을 가득 채웠던 인형들이 지하실로 다 옮겨지고, 그 자리에는 나치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포스터들이 가득 붙여진다.
나치를 접하지 않았던 그레텔이 교육과 사랑을 통해 나치즘을 접하면서, 게다가 자신의 가치관이 자리잡을 청소년 시기에 접한 나치즘은 그녀에게 우상이 되고 말았다.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브루노를 챙겨주는 자상한 누나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거칠어져가면서 순진무구한 브루노를 못마땅해하고 무시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레텔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청소년 시기 교육과 사랑이 청소년의 가치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라 사람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죽일 줄은 몰랐지
영화는 마지막 클라이맥스 전까지는 굉장히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날 슈무엘은 자신의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브루노에게 알리고, 브루노는 슈무엘을 모른척해서 슈무엘이 곤란해졌던 과거의 일을 반성하는 의미로 그의 아버지를 함께 찾아주기로 약속한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었던 브루노와 슈무엘은 땅을 파서 브루노가 수용소 안으로 들어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보는 계획을 짜고, 결국 브루노는 이사를 가기로 한 날 몰래 집을 빠져나와 슈무엘을 만나러 간다. 그들의 계획대로 브루노는 땅을 파서 철조망 사이로 들어가고, 슈무엘이 준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수용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아버지를 찾아 들어간 막사에서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치면서 어디론가 다같이 끌려간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바로 샤워실. 샤워기를 통해 독가스를 뿌려 유대인들을 학살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브루노와 슈무엘은 ‘샤워를 시켜주나봐’라고 말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잠재운다. 어린아이들의 시각에서 샤워실에서 독가스가 나올 것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브루노와 슈무엘은 샤워실에 갇혀 죽고 만다.
브루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아빠와 엄마는 부리나케 수용소로 달려오고, 근처 철조망에 남겨진 브루노의 옷과 이미 가스실로 들어간 것을 알게 된 아빠와 엄마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오열을 한다. 단 한번도 샤워실에 널려진 옷들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아버지 랄프. 그는 처음으로 샤워실에서 죽어간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그동안 행해왔던 일들이 얼마나 반인륜적인 행동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던 공간에서 자신의 아들이 살아있길 바라는 랄프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나치가 모순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제목처럼 소년의 눈으로 모순적인 나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결말로 꽤나 충격을 안겨 주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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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황혼기를 지나니 새롭게 보였던 것에 대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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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보고 싶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어느 동네에 살던 주인공 마히토다. 안절부절못하는 마히토. 창가 반대편에 엄마가 누워있는 병원이 있다. 전쟁 중이었던 일본. 분위기가 어지럽다. 병원만 보고 있는 마히토. 평화가 깨졌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투기가 엄마가 누워있는 병원에 폭격을 가한 것이다. 불에 탄 병원. 엄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마히토의 마음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마히토의 아버지는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새어머니를 찾은 아버지. 새로운 어머니를 찾은 이 가족은 우츠노미야 시로 이사를 간다. 새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냉담한 마히토. 새어머니 나츠코는 친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차가운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마히토의 태도는 새어머니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학교도 가기 싫었고, 원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도망가고 싶은 마히토. 이 마히토에게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든다. 마히토는 이 왜가리와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다.
안 그랬던 적은 없어
이 영화는 미야자키 히야오가 기존 필모그래피에서 갖고 있던 특징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자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일례로 하야오의 수상이력은 아주 좋은 편이다. 2003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했다. 이 의미는 거대하다. 지금 현재 2023년에 아시아 영화가 세계에서 가지는 입지는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위상과는 큰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이를 순수한 작품성과 재미로 극복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시아 영화의 인재풀이 넓어지거나 시스템이 활성화되기 이전에, 또 미디어가 현재까지 발달하기 전에 달성한 업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성과는 다르게 그의 영화는 항상 난해했다. 대표적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부모님이 돼지가 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보면 신기한 일 투성이다. 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초반부의 부모님이 음식을 먹다가 돼지가 되는 장면이 있다. 돼지가 되는 거는 그냥 판타지 요소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돼지가 된다’라는 것이 1980년대의 일본 버블경제를 의미한다고 하면 좀 갑작스럽다. 엔딩을 통해 전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핵심은 한 소녀가 ‘잊던 것을 다시 되돌이킨다’라는 점, 그러니까 세상에 나갈 때 각자가 고유하게 갖던 오리지널리티를 잊지 말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둘은 상충된다. 비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뿐만 아니라 인지도가 덜한 영화 역시도 난해한 편이었다. <벼랑 위의 포뇨>도 그랬고, <모노노케 히메>도 그랬다.
본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이번에도 (감독의 전작처럼) 사랑스러운 영화일 것이라고 기대한 분들이 있다면 무조건 실망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필모그래피 중 가장 위에 있을 매운맛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직선적인 이야기를 거부한다. 직선적인 이야기라고 함은 기-승-전-결의 이야기구조를 뜻한다. 얼마 전에 개봉한 <너와 나>를 생각해 보자. 세미가 불안해한다(기)- 세미가 하은이에게 찾아간다/그리고 하은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불안해한다(승)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본가들이 이야기를 구성할 때 염두하는 ‘욕망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너와 나>는 갖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다르다. 이 영화는 초반 30분을 전제로 이야기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이후를 각자의 키워드에 맞게 채색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애니메이션의 틀을 갖고 있지만 수채화 그림이나 에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다른 에세이 같은 영화들과 유사하게 주인공은 사실상 감독의 분신이다. 또 이 인물의 욕망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군수공장 집 아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주인공 마히토의 아버지가 군수공장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 설정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관객 분들도 많을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군수공장 사장 집안 아들이 주인공이라면 자칫 전쟁에 대해 합리화하는 것처럼 읽히기 쉽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군수공장 사장 아들이라는 설정을 반대로 읽었다. 우선 이 영화의 원작에 이 설정이 등장하는지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동안 반전이라는 키워드를 필모그래피 내내 새긴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이 전쟁에 대해 합리화하는 태도를 취한다? 과연 ‘군수공장 사장 아들과 세계 2차 대전’이 가져올 파급력을 과연 몰랐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군수공장 사장 아들’이라는 설정은 주인공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비유다. 이 영화의 핵심은 도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두 소재는 과거와 현재다.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어 과거의 자신 때문에 현재에서 도망친다. 특히 주인공 마히토가 흥미롭다. 마히토의 새어머니는 어린 주인공이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존재다. 가족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의 부적응으로 이어진다. 타인에 대한 분노가 자기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마히토를 기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향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주인공의 강력한 조력자로 나오는 인간 캐릭터, 왜가리, 새어머니, 심지어 흑막처럼 보이는 등장인물까지 마히토와 유사하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에 직면했다는 점이 공통점이 되는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면 이야기가 쉽게 느껴진다. 영화가 가지각색의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인생들 사이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는 영화가 이 작품이다. 자, 이를 염두하고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린다. 마히토는 사실상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을 암시하고 있다. <바람이 분다>로 본인의 전투기 덕력(?)을 고백한 마야자키 하야오. 하지만 그는 반전주의자다. 또 감독의 어머니는 그가 어린 시절에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가 흥미로웠던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기 자신을 돌이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기존 필모그래피를 오마주한 몇 장면이 있다. 새어머니와 마히토가 대화하는 신은 <모노노케 히메>에서 봤던 장면이 연상된다. 영화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생각나는 장면도 있다. 어떤 장면에선 <벼랑 위의 포뇨>를 상기시킨다. 우츠노미야 시의 집에서 일하는 할머니들, 그리고 동물과 유령들은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난다. 이 세 캐릭터들은 전적으로 하야오스러운 비주얼을 갖고 있다. 이 모든 오마주를 그냥 단순히 팬들 보기 좋으라고 넣은 건 아닐 것이다. 사실상 하야오의 분신인 주인공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경험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는 이야기에서 오마주가 차지하는 비중을 좀 더 쉽게 접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오마주가 하야오의 고백이자 반성처럼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의 악당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악당이 하는 일과 사는 곳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내면을 상징하면서 그동안 걸어온 길을 암시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예술가다. 그 긴 시간 동안 애니메이션 하나를 깎아 우리에게 풍부한 감동을 선사한 인물이다. 그럼 당연히 예술에 대한 의미가 깊을 것이다. 하야오가 긴 시간 동안 예술가로 살았기 때문에 이 예술이란 존재는 하야오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이 의미를 주인공 마히토가 천천히 되짚어보는 구조가 이 영화의 플롯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예술이라는 가치를 탐구하는 과정이 ‘나에게 어떻게 살 지를’ 설명해 줬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보인다.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놓친 것들이 몇 있어. 이런 나를 두고 너희들은 어떻게 살래?'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대중성이 뭐죠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글로 썼다고 해서 글쓴이가 이 영화를 쉽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영화처럼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본인 내면의 단면을 잘라서 영화화했기 때문에, 우리 같은 3자는 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난해하고 지루하다’라는 평에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 점에 있다. 특히 초중반부 40분까지의 전개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부러 기괴하게 연출한 장면도 몇 보인다. 이렇게 대중성과는 저 멀리 떨어진 이 영화.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긴 어렵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역시 예술의 순기능 중 하나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하는 일이고, 예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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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이와 이경의 눈부신 성장 로맨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였다”
태생적인 갈색톤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로 놀림을 당해 온 평범한 고등학생 이경이 우연하게 날아온 축구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지며 축구선수 수이와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미안한 마음에 수이가 매일 같이 이경을 찾아 딸기우유를 건네며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묘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 나간다. 시간은 흘러 고3의 여름, 둘은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지만 수이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경은 평범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로 상경한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며 사랑을 지속하지만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리는 관계에 이별을 맞이한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동명 소설을 원작을 옮긴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수이와 이경이라는 두 여고생의 뜨거운 여름날에 시작된 반짝이는 청춘의 순간을 전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과 뒤이어 따르는 성장이라는 주제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관객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끄는 형식으로 강렬하기보단 천천히 젖어드는 작은 떨림이 존재했다.
애초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정보만을 인식한 채 시사회에 간 거라 예상치 않은 퀴어(LGBT) 장르가 한국, 그것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 나왔다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앞서 언급한 잔잔한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대중들의 공감을 일으킨다는 건 이미 해외의 여러 수작들로 증명된 바이고 특히 첫사랑은 늘 설렘과 두근거림을 상기시켜주지 않는가? 묘한 눈빛과 감정, 소소한 손길이 닿는 베스트셀러 바탕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러한 강점들을 잘 살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를 만큼 인물, 시골과 서울 등을 묘사한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발전된 그림체는 학창 시절부터 20대 초반을 지나치는 시간을 담은 빛바랜 사진첩처럼 추억을 선사하며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더욱 그럴싸하게 꾸며준다. 여기에 메인 테마곡 정우의 ‘그 여름’,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브론즈 with 미노이의 ‘HARU’ 등의 노래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두 사람의 상황과 이어지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섬세한 작화만큼이나 감성적 터치로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그렇게 성장과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소녀의 풋풋한 감정을 시작으로 20대의 이별까지 그린다. 시종일관 담담한 기조는 격렬한 감정의 파고보다 한 방울로 시작된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평범했을지도 모르고, 혹자에게는 특별했을지도 모를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듯 말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연출과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본 듯한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슬픔을 억누르고 상대방의 행복을 빌며 애써 웃음 짓는 이별의 순간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60분가량의 짧은 분량에서 후반부 이별을 맞이하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여 비싸진 티켓값에 관객이 선뜻 선택할지 의문이 남는다. 멋지게 표현된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으테니 말이다.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학생 '이경' 여름의 햇살을 닮은 고교 축구선수 '수이' 열여덟 살의 여름, 예기치 못한 사랑에 빠진 '이경'과 '수이'는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스무 살을 맞이한다. 대학에 진학한 '이경'과 달리 '수이'는 바로 사회에 뛰어들고, 낯선 행복과 사소한 오해 속에서 둘은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게 된다.
예고편│Trailer
원제: The Summer│감독: 한지원│원작: 최은영 작가의 동명 단편 소설
출연진: 윤아영, 송하림 외 多
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61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제작: (주)레드독컬처하우스│배급: 판씨네마(주)
평점: 평론가 7.0
개봉일: 2023년 6월 7일
한 줄 평 : 비로소 깨닫는 첫 사랑이 남긴 계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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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직원’이 〈드래곤볼〉, 〈원피스〉의 주인공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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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옥의 화원〉은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했고 관객 사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의 OL(Office Lady) 장르와 액션 만화의 문법을 코믹하게 조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OL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장르다. 아무래도 액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지옥의 화원〉에서는 이들 여직원이 ‘주먹’으로 서열을 정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린다. 〈드래곤볼〉, 〈원피스〉 같은 만화처럼 말이다. 괴상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신선하다.
여직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 근무하는 회사가 있다. 모든 회사가 그러하듯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싸움 실력이다. 부서별로 대장이 있는데 대장을 위시한 직원들은 폭력 조직처럼 행동한다. 상대 부서에 찾아가 대장끼리 맞붙고 이긴 부서가 상대 부서를 접수하는 식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건달처럼 꾸미고 다니는 여직원들도 있는 반면 주먹 세계와 거리를 둔 채 평범하게 회사 생활하는 직원도 있다. 나오코는 후자다. 나오코는 회사 내 주먹 서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소소한 일상을 만족스레 살아간다. 그러던 중 나오코는 우연한 계기로 혈혈단신으로 회사 내 조직을 모두 평정한 란과 친구가 된다. 란의 싸움 실력과 명성을 견제하는 다른 회사 조직원에게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
반전이 있다. 사실 나오코는 싸움 DNA를 타고난 실력자다. 다만 주먹 세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산 것뿐이다. 여왕벌로 태어난 운명을 억지로 거부했으나 결국에는 마주하고야 마는 나오코와 늘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했으나 사실 조연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좌절하는 란. 이 둘 중 누군가는 여직원 주먹 세계를 평정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2인자가 되어야만 한다.
회사에서 싸움으로 서열을 결정한다는 설정은 황당하다. 하지만 그럴듯한 구석도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지표를 들이대며 성과를 평가하고, 고루한 직급으로만 서열을 정하는 회사보다 싸움 실력으로 서열을 정하는 회사가 차라리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모든 주요 캐릭터가 ‘여직원’, 즉 여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지옥의 화원〉은 여성이 주인공인 장르(OL)에 남성이 주인공인 장르(액션)를 더해 여자들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남성 캐릭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철저히 여직원들이 구축한 세계의 바깥에 있다. 여직원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싸움 얘기를 하다가도 남직원이 들어오면 방긋 웃으며 친절히 인사한다. 이 장면은 여직원이 기존 성별 위계 따위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남자들이 주인공인 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여직원에게는 자신을 합당하게 평가하는 세계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더불어 복사, 전화 응대, 휴게실 청소 등 여직원들이 담당하는 ‘잡무’를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한 수련으로 재현해 일과 젠더에 관한 기존 위계를 유쾌하게 뒤집기도 한다. 배우들의 능숙한 코믹 연기와 장르 문법의 재치 있는 차용은 이 모든 쾌감을 한층 더 증폭한다. 〈지옥의 화원〉은 ‘여직원이 사무실에서 손오공과 루피가 되는 이야기’, 즉 듣도 보도 못한(심지어 의미까지 갖춘!) 오피스 코믹 액션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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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민보다 매력적인 캐릭터 토베 얀손
무민의 정확한 이름은 무민 트롤로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트롤을 원형으로 삼고 있다. 처음 보면 하마로 종종 착각하는 무민 캐릭터를 만든 작가가 바로 토베 얀손이다. 이 영화는 토베 얀손의 전기영화로 그가 무민 캐릭터를 탄생시킨 과정도 보여준다. 회화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던 욕망의 좌절 속에서 토베는 나를 닮은 무민 캐릭터로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낸다.
<토베를 비추는 무민>
영화 <토베 얀손> 포스터
토베 얀손이 멋진 모험을 하는 와중에 그리는 그림은 곧 그 자신이 된다. 포스터를 보면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토베를 보여주는 프레임이 무민 캐릭터의 형상을 하고 있고, 자유롭게 춤추는 토베의 그림자가 무민으로 보인다. 무민은 집과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줄무늬 앞치마를 입은 무민의 엄마는 무민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며, 검은색 모자를 쓴 무민의 아빠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잘 생각해낸다. 무민 가족의 안정된 사랑 속에서 무민은 모험을 떠나는 용기를 키웠고, 사람을 비롯해 다양한 동물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때로는 겁이 많아 소심해질 때도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회화와 만화 그 사이>
담배 피우는 여인과 무민 캐릭터
청춘의 질풍노도 시기에 전쟁과 여성이라는 제약을 업고 그는 정통 회화와 캐릭터 중심의 만화 작업 사이에서 지독한 혼란을 겪는다. 회화 작가로 성공해 조각가인 아버지와 우표 일러스트레이터인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신문 만화 연재가 성공을 가져다주지만,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 회화는 유부남이자 국회의원인 아토스와의 사랑과 닮았다. 그는 부인과 이혼하고 토베에게 청혼을 하여 안정된 결혼 생활을 만들어주려고 하지만, 토베는 그 시간을 겪으며 자신이 얼마나 비비카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또한 만화는 연극 연출가인 비비카와의 사랑으로 표현되었다. 토베 자신 또는 토베의 어머니보다 토베의 영혼을 먼저 읽어주는 비비카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비카는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더 자유롭게 살자고 말했지만, 토베는 그럴 수 없었다. 토베는 무민을 만들고 사랑했지만, 남동생에게 넘겨 작업을 이어나가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를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
토베는 툴리키라는 다른 여성을 만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하였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두 가지 모두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것이 토베와 가장 가까웠다. 실제로 토베는 회화와 만화를 비롯하여 소설, 연극, 시, 노래, 무대미술, 벽화,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이어나갔다.
<불안과 흔들리는 카메라>
아토스와 비비카 그리고 토베
무언가 정해지지 않은 시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불안하고 정착하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성공 서사가 이어지기 전까지 일종의 흑역사를 담은 전기영화 <토베 얀손>의 카메라는 영화 속에서 자주 흔들린다. 거치하지 않고 몸에 둘러맨 채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앵글은 토베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영화 색감을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캐롤, 2015>이 떠오르는데, 16mm 필름 촬영 방식을 채택한 동일한 카메라로 인공조명 대신 주변 사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활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토베의 생전 영상은 청춘 그 자체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고전 명곡들이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익숙한 곡이지만, 막상 들으려고 하면 검색어를 찾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 생길 독자들을 위하여 곡명을 몇 가지 적어두고자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토베처럼 춤을 춰보자.
- 카를로스 가르델 'Por Una Cabeza'(1935)
- 에디프 피아프 'C'est Merveilleux'(1946)
- 베니 굿 맨 'Sing Sing Sing'(1936)
- 글렌 밀러 'In the Mood'(1939)
- 맘보 누아르 트리오 'City'(2019)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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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자각하기까지의 시간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호감을 갖게 되고 서서히 물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사랑이라고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고 그 상대방을 관찰하게 된다.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게 멀리서 상대방을 보다 이내 가까운 위치로 가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관계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연인관계가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상대방이 잘 받아서 그것을 다시 그 신호를 보냈던 사람에게 돌려보내는 과정을 거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연인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동시에 그 감정이 시작되는 사랑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그것을 알아내는데 시차가 있다. 한 사람이 호감으로 사랑을 시작하면 그걸 바라보는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 신호가 잘 전달되고 또 잘 맞을 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 자각의 시점이 맞지 않을 때면 서로 어긋나고 그 사랑은 이루어지는데 한참 걸리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는 아름답지 않지만 그 사랑의 확인 과정 속에는 꽤 아름답고 가슴 아픈 순간도 포함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를 담은 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감정의 시차를 담은 영화다. 베테랑 형사인 해준(박해일)이 산에서 추락사한 남자를 수사하게 되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죽은 남자의 아내인 중국인 서래(탕웨이)가 용의자가 되면서 형사와 용의자 관계로 만난 해준과 서래는 처음 만나는 순간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특히 해준이 느끼는 사소한 행동들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해준이 먼저 느낀 감정은 바로 용의자로서의 의심이다. 상대방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했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묘한 분위기를 가진 서래를 본 해준은 좋은 음식을 시켜주는 것처럼 최대한 예의를 다해 그를 대한다. 그때부터 해준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의심 때문인지 상대방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를 혼란스러워한다.
중국인인 서래는 어렵게 한국으로 건너와 정착하기 위해 남편과 결혼을 택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배운 한국어가 조금은 서툴다.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나 문장이 아닌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단어를 선택해 이야기하면서 서래의 분위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런 묘한 분위기 때문에 해준이 더욱 서래를 의심하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호감으로 변해갔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해준과 서래는 조금씩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때 해준은 호감의 감정을 조금씩 전달했겠지만 그게 사랑이라는 진짜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서래는 한참이나 지나서 깨닫는다. 그건 해준이 죽은 남편 사건에 대한 어떤 이야기 때문에 한 말이었지만 그건 서래에게 진짜 사랑으로 다가온다.
그 이후 영화는 몇 개월 후로 시점을 건너뛴다. 그리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해준과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하여 생활하고 있는 서래가 우연히 만난다. 그때 해준은 서래의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서래는 피하지 않는다. 이때 서래의 남편이 다시 죽음을 맞이하면서 해준의 의심은 커지고 그에 따른 분노도 커진다. 그러니까 해준의 의심이 커질수록 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높아지게 된다. 영화에서 서래의 진심은 거의 말미에나 드러난다. 그래서 서래가 진짜 범인인지, 그가 해준을 바라보는 감정이 무엇인지가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영화 안에는 '사랑' 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등장인물들은 상대방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가 모호하게 보이기도 한다.
파도 앞의 서래, 파도 속의 서래
영화 중에 서래가 파도처럼 보이는 벽지 앞에 서있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래는 실제 바다 모래사장 위에서 파도의 앞에 선다. 그 파도는 서서히 서래 쪽으로 스며들듯 다가온다. 해준의 사랑이 다가오면서 서래의 마음을 조금씩 적신 것처럼 그 사랑의 파도 역시 서서히 다가온다. 그리고 파도 벽지 앞에 서있던 서래의 모습처럼, 서래는 사랑의 파도 속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렇게 진짜 사랑의 감정을 시작한 그는 해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두 사람의 호감과 사랑은 두 가지의 시차가 있다. 일단 둘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한국어를 쓰지만 중국어를 모르는 해준은 서래가 하는 한국어도 조금 어색하게 느끼지만 서래가 하는 중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영화 중반 서래는 보다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먼저 말을 하고, 그것이 번역된 한국어가 해준에게 들려진다. 적어도 서래가 중국어로 해준에게 말할 때는 둘 사이에 즉각적인 의사 전달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언어적인 시차가 둘 사이에는 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감정의 시차다. 해준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그가 시작한 사랑의 감정은 서래에게 단번에 전달되지는 못한다. 첫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은연중에 전달되지만 서래는 그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그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래가 시작한 사람의 감정은 두 번째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해준에게 전달되지만, 그것 역시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그 마음이 해준에게 전달된다. 정말 안타까운 건 그 마지막은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수면 위로 확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돌출된 사랑은 상대방의 감정을 뒤흔든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시점 전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과거작들에서도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전환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담은 화면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이 이번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영화의 초반 영화의 제목이 뜨는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수사가 이루어지는 산속으로 전환되는 화면부터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영화 중반 해준이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하며 망원경으로 집 안을 보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넘나들며 해준이 느끼는 호기심과 감정을 한 번에 전달한다. 박찬욱 감독이 아니라면 그런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서래라는 인물이 눈에 띈다. 영화에서 가장 늦게 진심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고, 가장 많이 의심당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서래 역을 맡은 배우 탕웨이는 꼼꼼하게 그의 감정을 모두 표현해낸다. 그가 해준의 사랑을 확인하고 좋아하는 모습과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그의 연기에서 볼 수 있다. 해준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의심스러운 용의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하고 그것에 다가갈 수도 없고 물러서지도 못하는 캐릭터를 잘 담아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아름다운 사랑 영화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줄었다. 대신에 천천히 두 인물이 가지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담아낸다. 그들이 엇갈리는 과정과 느끼는 감정이 아름다운 화면에 표현되면서 과거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쉬운 영화로 보인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두 인물의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겪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가 무척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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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u-QsIoOJg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헤어질 결심>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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