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1-04-11 14:53:45
외로움이 곧 공포
<나는 전설이다> ⭐⭐⭐
원래 짧게 보다가 잠을 청할 생각으로 볼 영화였지만, 다 보고 부족한 잠을 자게 만든 영화 <나는 전설이다>다. 등장인물도 적고, 깔끔한 배경 설명으로 단순하게 느껴지는 스토리 덕분에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이 홀로 도시에서 지내며 가진 고독감과 외로움을 보여주며 살아남기 위한 절실함과 처절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확장판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 꼭 봐야겠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전설이다> 네이버 스틸컷
고독
네빌(윌 스미스)은 뉴욕에서 유일한 면역자로 공기 중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혼자 뉴욕 도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말동무, 셰퍼드 '샘'과 함께 뉴욕에서 생존자들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그의 고독함과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익스트림 롱샷으로 거대한 뉴욕 건물들 사이로 혼자 서 있는 네빌의 모습을 비춘다든지 자신이 자주 가는 상가에 외롭지 않도록 마네킹을 세워두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그가 가진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사슴을 잡기 위해 나선 그 앞에 사자 가족을 보이게 함으로써 동물들도 가족들과 함께 있으나 인간인 네빌만이 혼자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비교하여 표현한다.
나비
영화에서 나비는 꽤 자주 등장한다. 영화에서 도시를 조사하는 과정 중 벽에 부착된 포스터 그림과 샘 곁에 맴도는 나비, 플래시백(flash back)으로 알려주는 과거 회상에서 네빌의 아들 말리(윌로우 스미스)가 손으로 나비 모양을 표현하며 나비를 언급하는 대사, 후반부에 안나 목에 있는 나비 문신, 대장으로 추측되는 좀비가 유리를 부시는 장면에서 갈라지는 유리 금이 나비 모양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나비가 등장하는 것일까. 나비는 밤에 활동하지 않는다. <나는 전설이다> 속 좀비와 다른 점이다. 그리고 주로 나비는 화려한 무늬 패턴과 날아다니는 곤충이기에 희망과 평화와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곤충이다. 따라서, 영화 속 나비의 상징을 통해 네빌이 활약하는 희생정신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희생이요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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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P.> - '갈 곳 없는 청춘을 쫓다.'
D.P. (D.P.,2021)
개봉일 : 2021.08.27 (넷플릭스 공개)
감독 : 한준희
출연 :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이준영, 신승호, 조현철
‘갈 곳 없는 청춘을 쫓다.’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D.P.>가 2021년 8월 27일, 높은 기대치와 많은 관심 속에 공개되었다. 주인공 안준호 이병과 한호열 상병 역을 맡은 정해인, 구교환 배우의 신선한 조합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높은 작품이었는데,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두 배우가 각자에게 꼭 알맞은 옷을 입고 내뿜는 케미가 상당해 이야기를 제외하고도 두 캐릭터의 파트너십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다. 정해인, 구교환 배우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이 시리즈를 보다 보면 두 배우가 흘리는 매력에 금세 빠져버릴지도 모르겠다. (난 이미 그전부터 허우적대고 있던지라 더 할 말이 없다...)
<D.P.>는 어려운 가정 사정을 뒤로한 채 입대한 후, 헌병대로 차출돼 특유의 눈썰미와 센스로 탈영한 군인을 쫓는 군인. 'D.P'가 된 안준호 이병과 그의 파트너 한호열 상병의 이야기다. '군인을 쫓는 군인'의 이야기라 하여 추격극이 주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D.P.>는 단순한 추격, 액션극이 아니었다.
20살 초반, 갓 성인이 된 우리나라 남자들은 좋든 싫든, 어떻게든 국방의 의무란 것을 지게 된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국방부의 시계에 맞춰 청춘의 일부를 헌납하게 되는데, 이 의무에 대해선 항상 논란이 많다. 말도 안 되게 적은 월급, 계급제 아래 잔혹하게 이어지는 가혹행위, 군사 비리, 인권문제, 병사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는 불합리한 판단 등등.. 군대란 것이 공개적이기보단 폐쇄적인 집단이다 보니 모두가 알면서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D.P.>는 이 문제들을 준호, 호열이 쫓는 탈영병들을 통해 비춰낸다. 그리고 준호와 호열이 가진 트라우마들과 그를 조금씩 극복하는 모습,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보여주며 안준호 이병과 한호열 상병이라는 인물에게 인간성과 입체감을 부여하며 몰입력을 끌어낸다.
탈영병들은 말한다. “더 이상 쫓아오지 마.” “내가 뭘 잘못했어.”
20대 초반의 남자들에겐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부대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 엄연한 군법 위반이다. 탈영병에겐 탈영이라는 죄가 있다. 하지만 탈영병에게만 죄가 있는 걸까?
호열은 이렇게 말한다.
“탈영병 잡아오면 뭐해. 안에서 이러는데 탈영을 안 하고 배겨?”
모두가 쉬쉬하는 가혹행위와 근절되지 않는 군사 비리, 병사들을 가족이라기보단 진급 수단의 하나로 보는 간부. 바뀌지 않는 현실들. 탈영병은 이 문제들에 떠밀려 벼랑 끝에 선, 연약하고 어린 청춘이다. 탈영병을 다시 군대로 끌어다 놓아도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다른 곳으로 전입될 뿐이고, 탈영병에겐 상처 위에 ’탈영병‘이라는 딱지가 붙을 뿐, 아무도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는다. 탈영의 결말은 탈영을 하게 만든 문제의 해결이 아닌, 탈영병이란 낙인과 영창뿐이다.
군인이라는 신분에 발 묶인 채로 흔들림을 견디지 못해 탈영병이 된 이들. D.P가 된 준호와 파트너 호열은 탈영병들의 이야기를 파헤쳐 가며 문제를 통감하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성장한다. 반듯하고 거침없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숨기고 사는 인물 준호와 속옷 고무줄을 퉁-튕기며 극의 분위기를 띄우다가도 곧 색다른 얼굴로 돌변해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 호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진 두 인물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달린다. '도망간 군인을 잡는다.'
처음엔 '설렁설렁하다 만약 못잡으면? 또 나와서 잡으면 돼-'(해당 보직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시작된 탈영병 체포는 극이 진행될수록 죄책감, 책임감 같은 감정과 새로운 문제와 무게감이 더해지며 시즌 1의 마지막쯤엔 상당히 묵직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해도, 어떤 사고를 쳐도 결국 변하는 건 없는 시스템 속에서 끝까지 내몰린 청춘에 공감하며 눈물짓는 건 그들과 똑같이 아픈 청춘뿐이다. 예상보다 훨씬 무겁고 아픈 이야기였다. 이렇게 내쫓긴 탈영병들의 청춘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매화 반복되는 오프닝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울음을 토해내는 갓난 아이가 나오고, 아이가 자라나는 순간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아이(준호)가 입대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화면 너머에 앉아있는 우리를 바라보듯 뒤를 돌아 어딘가로 시선을 던진다. 그와 시선을 맞추고 있는 당신은 탈영병들과 같은 아픔을 가진 청춘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묵인하거나 그들을 괴롭힌 방관자 또는 가해자인가. 준호의 시선은 <D.P.>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군인입니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준호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 어머니와 동생을 사랑하고 동정하지만 이 가족을 떠나고 싶었기에 더 이상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준호는 가족들을 두고 홀로 연병장으로 향한다.
2014년 선진 병영이 도입되기 전, 지금보다 폭행과 가혹행위가 더욱 심했던 시절. 준호는 군인이 된다. 민간인이 아닌 군인. 민간인에게 'Touch My Body'가 즐거운 노래 가사라면 내무반에서 'Touch My Body'는 말 그대로 폭행 또는 몸을 더듬는 성추행을 의미한다.
준호가 머무는 내무반의 고참 황장수와 류이강은 가까운 기수 몇 명을 제외한 후임들을 심하게 괴롭히는 선임이다. 준호의 가장 가까운 선임 조석봉 일병은 황장수, 류이강과 다르게 후임인 준호를 챙기며 “우린 나중에 애들한테 잘해주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가혹행위와 성폭력은 봉디(석봉+간디)라는 별명을 가진 착한 청년마저 미치게 만든다.
모두 알고 있지만 쉬쉬하고 있는 가혹행위들. 석봉과 탈영병들은 이와 같은 이유로 점점 망가지고 끝내 넘어선 안될 선을 넘어 도주한다. 하지만 이들은 잡히면 안 되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옥 같은 군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대부분의 탈영병들은 집이 아닌 길거리 어딘가를 헤매다 다시 군대로 돌아간다. 무슨 짓을 해도 바뀌지 않을 지옥 같은 그곳으로.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앉아있으면서도 “여기가 편하다”고, “갈 곳이 없네요”라고 말하는 탈영병의 한마디에 그간 그가 겪었을 아픔과 고통이 묻어난다. 준호와 호열은 탈영병들을 잡으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젖어든다. 하지만 준호와 호열은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 탈영병을 다시 부대로 인도하는 순간, 이들의 영향력은 끝이 나고 윗선에서는 진급에 영향이 간다는 이유로 가혹행위를 최대한 쉬쉬하고 덮으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기심과 잔혹함은 석봉이 탈영한 후 더욱 여과 없이 드러난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던 전우를 가차 없이 쏘라 명령하는 부대장 앞에서 박범구 중사와 임지섭 대위는 서로에 대한 경쟁심을 내려놓고 석봉을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좁고 폐쇄적인 군대라는 사회에서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사람이 나에게 선을 넘는 행동과 가혹행위를 반복한다면, 계급제라 반항 한 번 할 수 없다면, 윗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방관하고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목숨을 끊는 것 또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하는 것밖에 없다. 뭐라도 바꾸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 탈영을 결심한 탈영병 신우석, 허기영, 허치도, 조석봉. 이들의 필사적인 탈출과 죽음은 과연 무엇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가혹 행위로 탈영을 했던 허기영 일병의 어머니가 답답해하며 묻는다. “어떻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 피해자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가해자도 분명한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그리고 수많은 피해자를 봐왔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썩은 부분들. 총을 든 석봉 앞에서 “우리가 바꾸면 되지”라고 말하던 호열의 대사가 무색할 만큼 이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석봉은 수통마저도 6.25 때 쓰던 것인데 어떻게 바뀌냐며,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선택한다. 착한 선생님이었던 석봉, 친하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던 석봉,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었던 석봉, 준호에겐 가장 의지가 되던 선임이었던 석봉이란 청년은 이제 없다. 그는 '선임을 납치한 뒤 자살 시도한 탈영병'으로 뉴스에 오르내릴 뿐이다. 사람 때리는 걸 못해서 유망주로 주목받던 유도마저 관뒀다는 선한 마음씨의 석봉이 칼을 휘두르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모습과 자살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르겠다. 칼과 총을 든 탈영병이기 이전에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어린 청년이었을 뿐인데.
석봉의 자살시도와 함께 6화가 끝난 후 나오는 부가 영상은 이 먹먹한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석봉의 친구가 석봉처럼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고 말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선임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에서 선임들과 변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 원망이 가득 느껴진다. 결국 총기를 난사한 병사가 되고 자살한 탈영병이 되는 건 피해자들뿐이다. 가해자들은 무사 전역을 하거나 심해야 영창과 전입, 며칠간의 반성. 그게 죗값의 전부다. 돌아갈 곳 없는 지친 청년들의 마지막 선택지 탈영. 그리고 그를 쫓는 또 다른 청춘. 탈영과 일들은 벌어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피해자의 눈물과 죽음 앞에서 책임감을 느끼는 건 또 다른 청춘(준호,호열)이 유일하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조금 날카롭게 말하자면 <D.P.>를 보는 시청자들 중에서도 분명 황장수와 류이강처럼 군 시절 누군가에게 가혹행위를 하거나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오프닝 영상에서 시청자 쪽을 바라보는 준호의 눈빛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황장수처럼 자신의 죄를 전혀 알지 못하고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겠지?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줄이고, 이번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D.P.>의 주인공 안준호와 한호열은 겉으론 강하거나 유머러스해 보이지만 각자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준호는 대체적으로 ‘죄책감’과 연관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는 영창 근무를 서는 날, 영창 안에 갇힌 죄책감들과 마주한다. 첫 근무 날 구하지 못했던 탈영병 신우석의 환영,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어머니가 “왜 도와주지 않냐”며 묻는 환영과 같은 것들 말이다.
준호는 술 먹고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돈을 빼앗기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고 그래서인지 가정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준호는 3화에서 탈영병 정현민을 검거하며 만난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여자 ‘영옥’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녀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술 먹고 폭력을 일삼는 남자에게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팔아가며 돈을 바치는 영옥과 어머니. 준호는 영옥을 도우며 어머니를 돕지 못한 죄책감의 일부를 극복하고 뒤이어 ‘밥은 먹었냐’는 시답잖지만 따뜻한 인사를 담은 전화를 한다.
또 하나의 죄책감은 ‘탈영병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죄책감은 차후에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변한다. 준호는 석봉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석봉의 뒤를 쫓지만 석봉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고 자살한다. 석봉의 죽음 앞에서 가장 크게 비명과 울음을 토해내던 준호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그는 석봉의 죽음 이후 첫 근무 당시 구하지 못했던 탈영병 우석의 납골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누나를 보며 쓰린 표정을 짓는다. 열을 맞춰 걸어가는 병사들과 반대로 걸어가는 준호의 뒷모습엔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 속에서 죽어간 청춘들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
호열은 준호의 파트너이자 D.P 조장이다. 꽤 오래 D.P 생활을 한듯한 그는 내무반과 크게 엮이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영향력을 챙겨온 꽤 센스 있는 인물로 보인다. 국군 병원에서 흡연을 하는 다른 아저씨들에게 페브리즈를 팔며(?) PX 냉동을 뜯어내는 그의 능청스러운 장사 솜씨와 복귀가 결정되자마자 “얘네 담배 피웠어요”라며 모든 걸 폭로해버리는 한마디에서 그의 성격이 단박에 드러난다.
능청스럽고, 유연하면서도 선을 알고 내 몫은 확실하게 챙기는 인물. 굳어있는 준호에게 “네가 내 아들이구나?(아들 군번)”라고 물으며 자연스레 다가가는 모습과 황장수가 후임들을 말도 안 되게 갈구는 걸 발견했을 때, 중간에서 준호를 채간 후 황장수가 만든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따뜻하고 영리한 면을 볼 수 있었다.
호열이 가진 트라우마는 이전 활동에서 만난 칼을 휘두른 탈영병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무심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있겠다. 정현민을 잡으러 갈 때 호열은 준호에게 “칼침 놓는 탈영병도 있다”며 가볍게 말을 던지는데, 이후에 마주친 호열의 동기 ‘김규’를 통해 우리는 이 말이 호열의 경험담임을 알게 된다. 호열은 이런 트라우마를 겉으로 전혀 티 내지 않고 준호와 D.P 활동을 하고 있지만, 영화관에서 마주한 칼을 든 석봉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호열은 시리즈의 초반부에 ‘과호흡과 불안한 상태’ 때문에 병원에 검사를 하러 갔었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이 불안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호열의 다른 트라우마는 ‘무심한 부모님’이다.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호열은 꽤 잘 사는 집안의 외동아들로 보인다. (정현민을 잡을 때 쓴 김규의 300만 원을 바로 이체해 주는 걸 보면) 하지만 호열이 부모님과 통화를 하거나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호열과 준호가 함께 포상 휴가를 나왔을 때, 호열의 집엔 아무도 없었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다. 라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호열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게, 부모는 왜 나를 낳았을까?”
이 말과 사진 한 장으로 속단할 순 없지만 교복을 입은 호열과 부모님의 사진에선 왠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런 모습을 봐서일까, 호열이 연락을 받지 않는 준호의 집에 찾아가 준호의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는 장면에선 왠지 호열이 ‘이런 분위기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일 시즌 2가 제작된다면 한호열 상병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원작 웹툰을 보지 않고 바로 감상했는데, 시리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자연스레 원작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원작을 먼저 보고 시리즈를 감상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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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프랑스] 5시부터 7시까지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씨네랩 크리에이터 챌린지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프랑스>
많은 사람들에게 프랑스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키워드는 단연코 누벨바그(La Nouvelle Vague)일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를 비롯해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등의 걸출한 영화 감독들을 주축으로 일어난 프랑스 영화 사조를 지칭하는 누벨바그는, 영화 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를 주축으로 활동했던 영화인들에 의해 등장했다. 이들은 미국식 할리우드 영화의 범람과 고전적 기성 영화의 흐름에 저항하는 작가주의적이고 전위적인 촬영 기법들을 활용하며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씨네랩에서 보내주신 추천작 리스트에서 프랑스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등의 누벨바그 작품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어쩐지 샛길로 새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지라, 괜시리 리스트에 없는 감독들의 이름을 하나 둘 떠올리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활동한 감독들과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단편 영화와 기록 영화로 작품 활동을 이어간 좌안파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를 골라보았다.
‘누벨바그의 대모’로 불리는 아녜스 바르다는 단편으로 시작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4), <방랑자>(1985),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해온 벨기에 출생의 프랑스 감독이다. 누벨바그의 흐름에 동참해 관습적인 영화 구조를 해체하고, 여성 감독으로서 주체화 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전면적으로 등장시켰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주인공 클레오 또한 주체성의 렌즈에 포착된 여성 캐릭터이다. 가수로서 활동을 이어가던 클레오가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리며 죽음의 불안을 경험한다는 내용의 영화는 그녀가 파리 시내를 배회하는 시간의 흐름을 러닝타임과 거의 일치시키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관객은 클레오와 함께 그녀가 경험하는 순간의 인상들을 흡수하고, 그녀의 불안을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클레오는 불길한 점괘 하나를 받는다. 병으로 죽음이 찾아온다는 뜻일까. 그녀가 마지막으로 뽑아든 타로 카드는 13번의 Death, 죽음이다. 절망한 클레오의 주변인들을 하나하나 거쳐 완전한 타인에게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을 영화는 13개의 장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클레오에게 죽음이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하는 공포와 두려움, 불운의 대상이지만 마지막 13번째 장을 지나서야 죽음(Death) 카드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영화의 색채 대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음의 대립쌍으로서의 삶, 그리고 흑백 영화의 검은색과 하얀색이라는 대립적 색채 구조는 노골적으로 삶과 죽음의 메타포를 형성해 나간다. 거기에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대립쌍 또한 중첩된다. 점괘를 받고 나서는 클레오는 ‘추함이야말로 죽음을 뜻하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한 난 살아있는거야.’라며 자신을 위안한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그녀가 상점에서 고른 모자는 검은색의 겨울용 털모자다. 죽음의 색과 계절. 고심 끝에 고른 모자를 쓰고 나서려던 그녀의 바람이 ‘화요일에 새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재수가 없다’는 알젱의 일축으로 무너진다. 그러나 정작 알젱이 고른 ‘재수가 좋은’ 택시의 번호는 새로 받은 번호라는 아이러니. 이후 그녀는 동료 작곡가들과 발매할 곡을 고르다, 장송곡과 같은 비장한 노래를 검은 배경으로 카메라를 또렷이 응시하고 부르게 된다. 관객과 마주치는 그녀의 시선과 고조되는 현악기의 배경음이 초현실로 우리를 이끈다.
<당신 없이는 Sans Toi>
아름다움은 황폐해지고
잔인한 겨울 속에 버려진 나는 빈 껍데기일 뿐이에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절망에 갇힌 채로 투명한 관 속에 누워 내 몸은 썩어가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당신이 오는 그 날 까지
나는 가만히 기다릴 거에요
나 홀로 창백하고 외롭게
노래가 끝나자마자 화면이 줌아웃되고, 클레오가 꿈에서 깨어난 듯 관객을 현실로 불러온다. 잠시 잊고 있었던 절망에 다시 사로잡힌 그녀는 온통 검은색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친구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친구에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순간, 카메라는 어둠이 가득한 다리 밑을 지나가는 클레오를 비춘다. 이렇게 클레오를 따라다니는 검정-겨울-어둠의 이미지는 7시를 향해 가며 중첩되고, 더욱 짙어진다.
전환은 흥미롭게도 친구의 애인이었던 라울이 보여준 영화를 통해 일어난다. 라울은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이라는 짧은 영화를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조심하시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영화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연인을 배웅하던 남성이 계단에서 넘어져 영구차에 실려가는 연인을 목격하고는 슬퍼하다, ‘선글라스 때문에 세상이 까맣게 보였던’ 것임을 깨닫고는 멀쩡한 모습의 연인에 안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을 찾아보는 것은 덤.) 영화를 보고 친구와 헤어지는 길, 클레오는 상점에서 샀던 검은 겨울용 모자를 친구에게 선물로 주어 보낸다. 클레오가 죽음의 불안에서부터 처음으로 도약하는 순간이다.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인간이 탈피하는 계기가 ‘영화’라는 감독의 연출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인간의 유한성을 망각하고 뛰어넘게 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한계 상황 앞에 클레오와 같이 인간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정작 죽음은 선글라스와 같이 한꺼풀 벗겨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뒤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결국 클레오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의 수용이었다. 앙투안느를 만나 두려움에 피하고만 있던 의사와의 면담을 가질 용기를 얻게 된 그녀는 의사로부터 두 달간 화학치료를 받으면 건강해 질 수 있다는 답변을 받는다. 완전히 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닌 조건부의 상태에 놓였음에도 그녀는 행복함을 느낀다. 우연히 의사를 만나기 전부터 의사로부터 죽음을 선고받는 대신 앙투안느와의 현재를 즐기기로 한 순간부터, 클레오는 플로랑스로 변화한다. 봄이라는 뜻의 그녀의 본명처럼, 겨울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시작. Death 카드의 진정한 의미이다.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의 이어짐을 의미한다.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을 인간이 이겨내는 법은 영원한 생이 아니라, 죽음의 수용으로 주어지는 남은 삶의 찬미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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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본 것'과 '있어 보이는 것'들의 조악한 조합
어느 날의 대한민국. 진샤(판빙빙)는 인천 보안검색대에서 근무 중이다. 어느 날 초록머리의 여자(이주영)가 등장한다. 소심한 진샤.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초록머리 여자가 마냥 싫지는 않다. 운명처럼 이끌리는 둘. 티격태격 다투다 둘은 진샤의 집으로 간다. 초록머리 여자는 스스로를 ‘남자친구의 마약 밀수를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직장 상사에게 “초록머리 여자 이상하다”라고 알리는 진샤. 하지만 진샤의 마음은 냉담한 시선을 거부하고 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에게 끌린다. 위험한 사건까지 휘말리는 둘. 이제 둘은 눈앞에 들이닥친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
당황스럽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 진샤가 ‘어쩌다 보니’ 초록머리 여자를 만나거나, ‘하필이면 거기에’ 어떤 물건이나 누군가가 있다. 영화적 허용이라기엔 그 우연이 내포하는 바가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그렇다고 로맨스/여성/범죄영화로서 장르적인 장점을 잘 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녹야>에서 로맨스는 두 사람의 키스신 말고는 잘 느껴지지 않고, 범죄영화로 보기엔 공권력의 집행이 모호하며, 여성영화로 보기엔 노골적이고 작위적인 화법이 아쉽다. 각본이 독특하지도 않다. 이 영화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 <델마와 루이스>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단점들 중에서 빛을 반짝이는 것은 한국 도시들의 황량함이다. 인천항의 건조함이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 깔려있는 그림자들이 인물의 고립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주영 배우의 팬들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하긴 어렵다. 이 배우가 갖고 있는 고유한 개성인 중성적인 매력이 톡톡 튀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극을 산만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이주영, 김영호 배우의 연기는 연극적이면서 판빙빙은 과잉된 감정연기를 보여준다. <야구소녀>와 <메기>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던 그녀의 매력이 영화와 어울리던 것과 정반대다. 하지만 판빙빙과 이주영이라는 신선한 조합이 영화 외적으로 충분한 이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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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로 지은 에덴동산
이 글은
넷플릭스 [수리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한국 영화계에는 금기(taboo, banned)가 많았다.
그러나 그 고정관념이 뭐라 하던 상관없이 금기의 선을 넘는 작품들은 조금씩 영화계의 한계를 저만치 뒤로 밀어놓곤 했다.
그 셀 수 없는 수많은 시도들은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한국 영화에서도 이런 게 되네.라는 수준을 너머 세상의 중심에서도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목소리에 조금 더 확신을 싣기 위해. 윤종빈 사단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마약 사범에 대한 이야기로 넷플릭스를 다시 한번 한국 작품으로 장악하려 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하반기 작품들 중 최고의 기대작이라 불린 이 작품에는. 이미 윤종빈 감독과 수많은 작품을 함께 한 배우들은 물론 "진짜" 장첸까지 합류해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6부작에 걸쳐 쏟아지는 배우들의 열연이 낯선 수리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습은, 아쉬운 추석 연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제격이 될 수 있을까?
인구, 불행의 냄새를 좇아가다.;홍어와 업어치기
사진출처:여성 조선
친구 응수(현봉식)가 홍어로 돈을 벌어보자는 제안을 했을 때. 인구(하정우)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홍어를 먹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등을 보이며 덤덤하게 냄새나는 살덩이를 씹어 삼키던 아버지를 향한 서운함 만큼이나, 홍어는 인구에게 빌어먹을 생선에 가까웠건만. 지금의 인구는. 자신이 들이키고 있는 술만큼이나 아버지가 그때 비웠던 잔도. 그리고 아버지 당신의 인생도 쓰디썼을 것이라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죽어야만 먹을 수 있는 홍어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귀한 생선이란 뜻이었고. 알게 모르게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와 홍어에 대한 악감정을 뒤집으면. 어쩌면 행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인구를 저 멀고 먼 수리남에서 풍겨오는 홍어 빛깔 돈 냄새에 후각이 마비되게 만들었다.
유도에서도 그렇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상대방이 인구를 향해 달려오는 힘을 역이용해 그대로 업어치면. 그 기세만큼이나 빠르고 힘차게 패대기 쳐진 채로 하늘이나 멍하게 보고 있는 상대방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허망한 경쟁자의 눈을 내려다보는 희열은 자신의 것으로 남긴 채.
별다른 도구도 필요 없이. 체급이 비슷하다면 맨몸으로 구르는 건 자신 있었으니. 인구는 인생도 그렇게 업어쳐서 불행을 땅에 붙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그래 내가 졌다.라고 외치는 순간을 기대하듯이.
그러나 홍어도. 홍어 뒤에 숨어 있는 돈도. 인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홍어와 돈의 냄새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가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 시켰지만. 이 상대는 옷깃을 쥐어볼만하면 뒤로 물러서고. 잡았다 싶으면 교묘히 인구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인구는 애가 타기 시작했고. 결국 업어치기를 위해서는 상대를 잠자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결국 한판승은 홍어의 것이 되고야 말았다.
온몸을 감싸는 고통에 반해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하기만 한 하늘을 보며. 끝도 없이 몰려오는 서글픔을 느꼈을 인구는. 그 절망을 지렛대 삼아 다시 몸을 일으켰을 것이다.
수리남에서 돌아온 인구의 모습은 예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인생에는 한판은커녕 절반도 없으니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썩 다 못해 들큼한 냄새를 두른 불행에게 패대기를 당했던 뒤통수가 아직도 아프기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요환, 모래로 지은 에덴동산의 주인;무법 지대에서 법이 되고자 하다+야구공
사진출처:경기신문
사탄은 어째서 내게만 이런 공을 날리는가.
요환(황정민)의 원망은 한 달에 두 번씩은 보자고 말하는 안기부 직원의 목을 조르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을 향해 쉴 새 없이 몸 쪽 꽉 찬 변화구를 던져대던 사탄이 요환의 손에서 비로소 숨을 멈추었을 때. 이제 요환은 사탄이 아닌 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투수석에 갈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 생기를 잃은 사탄처럼 이제 그 어떤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널브러진 방망이를 그저 흘낏 쳐다보며. 요환은 텅 빈 투수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부터 요환은. 지지 않는 게임을 했다.
마운드 위에 홀로 서 있는 삶은 외롭지 않았다. 요환이 던지는 모든 공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타자석에 들어서는 것이 누구이던. 삼진 아웃 당한 채 흙빛으로 자리를 떠나는 모습은 요환을 점점 더 자신감 만큼이나 난폭한 투수로 만들었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겁에 질린 채 괜히 방망이를 좀 더 그러잡는(그러잡다:무언가를 가까이 잡다) 타자들의 모습에서. 요환은 희열을 느꼈다. 자신을 옥좨오던 사탄의 눈빛과 자신의 눈빛이 이미 같아졌음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공(Ball, contribution)은 온전히 요환의 것이었고. 누구에게도 넘겨줄 마음이 없었다. 오롯이.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 게임은 참 이상했다.
그동안 보아온 초식동물의 눈을 가지지 않은 인구는. 몇 번이고 데드볼을 맞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더니, 기어코 요환의 공을 멋들어지게 쳐 버렸다.
자신이 던진 공이 스스로가 보는 앞에서 저만큼 작아져서 날아갈 수가 있었던가. 요환은 공을 좇아 고개를 난생처음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했다. 공은 그렇게 열심히. 자신이 던진 속도만큼이나 사나운 포물선을 그리며 기어코 담장을 넘어버렸다.
늘 요환에게 돌아왔던 공은.
이번만큼은 돌아오지 못했다. 덤덤함 밑에 숨겨진 알 수 없는 비웃음이 인구의 입가에 번지는 것을 보며. 요환은 글러브를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무법지대에서 스스로가 법이 되고자 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룬 에덴동산마저도 모래더미에 불과했음을. 요환은 그제 서라도 깨달았을까. 아니면 인구에게서 또 다른 사탄의 향기를 느끼며 치를 떨었을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아래 문단에는 [수리남]의 가장 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고했어요.
믿음에 관하여.;황정민 아이러니
사진출처:경기 뉴스
총 6부작인 드라마는 정확하게 절반을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결이 바뀐다. 3부까지 장점이었던 점들이 나머지 후반부에서는 모조리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 단점의 중심에는 그 어떤 사람도 "믿지 말라"라는 시리즈의 (메인) 슬로건에 있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스스로 가진 믿음에 잠식당하는 것을 후반부에서 보아야만 한다.
전반 3부 까지는 자신의 사업 확장에 갑자기 등장한 인물인 인구와 상만(최창호, 넷플릭스 공무원 박해수)을 의심하는 요환의 의심이 살벌할 정도로 펼쳐진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배우 황정민 아이러니가 발동된다.
신세계에서도 그랬듯. 이 배우의 가장 최측근에는 배신자가 숨어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변기수(조우진, 이 작품에서 연기 미침)는 조금씩 그 의심의 상위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 그렇다고 요환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기 보다 조금은 "도구"처럼 쓰이는 사람에 가깝기에. 이런 부조화는 변기수가 후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임을 오히려 드러내 버린다. 그러니 죽을 고비 한 번 "제대로" 넘기지 않은 그가 갑자기 멀쩡하게 표준어를 쓰며 국정원 직원임을 알게 되는 장면의 임팩트는 매우 약할 수밖에.
또한 최창호(상만이 형, 상만이 형 연기 정말 대단함)가 초반부에 인구를 미끼로 사용했기에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후반부에서 바보 같을 정도로 연신 사과와 보상을 약속하며 인구의 대답을 기다리는 인류애를 보이는 것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믿음이 결국 뒤통수를 치는 장면은 지구 방위대 미국의 등장으로 급물살을 탄다.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라서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힘든 역할을 도맡아서 해 왔을 국정원 직원들의 무게감이 미국이 띄운 헬기보다도. 혹은 최창호의 가짜 신분인 상만이형의 연기보다도 약한 것은 아쉽다.
마치면서
사진출처:노컷 뉴스
정확하게 시리즈의 절반까지만 괜찮았다.
첸진(장첸)의 역할이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와 요환 사이를 제대로 줄타면서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생각이나 명령에 의해 너무 크게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점도 매우 아쉬웠다.
또한 유연석을 가장 똑똑한(혹은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는) 캐릭터로 설정했으나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희생시킨 것도 안타깝다. 조금 더 잘 썼다면 심리(두뇌) 싸움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을 텐데.
반전도 너무 알기 쉬웠다.
언제나 적을 숨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적의 심장부에 심어 놓는 것이므로.
한국에서 마약 소재를 다룬 드라마 중에서 "스케일"의 확장은 확실히 이뤄진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엉성한 이야기의 전개가 하필이면 후반부에 왔다는 것은 매우 큰 보완점으로 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구는 요환과의 싸움에선 이겼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배우들을 가지고 여기까지가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함께 겹쳐 많이 씁쓸해지는 결말이었다.
[이 글의 TMI]
1.추석 연휴 동안 고향 왔다 갔다 할 때 봤음
2.졸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흥미진진하지는 않았음.
3.황정민 배우는 성경 책 들고 다니는데 이렇게 무서울 일인가.
4.상만이 형+변기수=이 시리즈의 모든 것.
5.돼지고기는 변기수가 구워주는대로 먹자.
#수리남 #윤종빈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상만이형 #한국영화 #액션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영화망상쌉가능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넷플릭스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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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판타지로 그려내다
제목이 신기했던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나무가 어째서 임신을 했을까? 이 도깨비는 뭘까? 판타지 영화인가? 궁금증이 넘실됐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대해 큰 정보를 알지 못하고 보러갔는데, 생각보다 다크하면서도 코믹했던 신기한 작품이었다.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시놉시스
마침내 죽음이 찾아왔다. 한 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 ‘뺏벌’. 그곳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 인순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뱃벌의 유령들을 데려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순은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미군 위안부이 존재를 드러내다
사실 위안부라는 말은 그간 많이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위안부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며서 등장인물이자 실존인물인 박인순님이 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위안부의 존재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 같은 위안부 문제지만 일제강점기 시기 있었던 위안부 문제보다 대한민국 정부 시기의 미군 위안부 문제는 왜 부각이 되지 않았을까? 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작품이었다.
구술사의 중요성에 대하여
대학원에서 기억연구를 전공하면서 구술사의 중요서이 얼마나 큰지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론적으로 그 중요성에 대해 연구를 하다보니 이것이 실제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에 대해서는 크게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간혹가다가 나의 연구가 이 세상에 어떤 쓰임이 있는가?하고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보면서 구술사를 채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깨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간 역사에서는 외면받던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정말 그 시대의 민중은 어떻게 살았고, 영화 속 미군 위안부의 실태를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구술사의 역할이고, 그 중요성을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 작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며 임신을 한 달에 한 번 꼬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겠는가? 직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기록하는 것이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판타지를 접목한 실화이야기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박씨부인전>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소설 <박씨부인전>이 호란을 겪고 청나라에 소설에서만이라도 복수를 성공해서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이야기였는데, 이 작품 역시 실제로 미군에 대한 복수를 직접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미군의 머리를 잘라 복수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울분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꽤나 나오고,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사실과 판타지적인 장면이 조금 명확하게 구분되면서 이 작품에서 그려지지 않은 다른 사실들은 또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차올랐고, 이 호기심과 궁금증은 미군 위안부에 대한 정보 탐색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구술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역할에 대해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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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나에게, <태어나길 잘했어>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태어나길 잘했어>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몸과 마음이 커 버린 지금,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한 그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특히 유난히 더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시기의 나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중, 때마침 이 영화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 '춘희(강진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춘희는 어릴 때부터 다한증이 있어서 손에 땀 마를 날이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외삼촌과 외숙모의 집에서 살게 된 춘희는 발을 편히 뻗을 수도 없는 좁은 공간인 '다락방'에서 지낸다. 그곳에서 춘희는 조금은 외롭지만 씩씩하게 커 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른 춘희'의 몸과 마음은 모두 컸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옛 기억들이 남아 있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자꾸 어린 춘희에게 눈치를 주던 것, 자신을 이 집에서 외지인으로 취급하는 친척들, 땀이 많은 춘희의 손을 구박하던 학교 선생님 등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렇게 마음 속에 꾹꾹 숨어 있던 기억들은 '어른 춘희'가 '어린 춘희'를 마주한 후,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영화는 뜨거운 불에 손을 갖다 대는 어린 춘희(박혜진)로 시작한다.
다한증을 갖고 있던 춘희는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손과 발에 땀이 많아서 학교 선생님과 손을 잡고 춤연습을 하다가 땀이 많다는 이유로 구박받기도 하고, 땀으로 인해 집안 곳곳에 발자국이 찍혔을 때에는 외삼촌과 외숙모, 외사촌에게 한소리 듣기도 했다. 춘희는 그런 자신의 손에 스스로 상처를 낸다.
- 우리는 이 집에서 외지인이잖아.
춘희는 외숙모에게서 직접적으로 외지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 집에서 춘희에게 구박과 눈치를 주지 않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방바닥에 찍힌 춘희의 발자국을 아무 말 없이 닦아주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항상 부모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 이 집에서 외지인 취급을 받는 춘희를 안쓰럽게 바라보곤 했다.
마늘을 까서 사촌 오빠에게 갖다 주며 돈을 벌던 춘희는 어느 날, '주황(홍상표)'을 만나게 된다.
- 저는 좀 쩔어 있어요.
땀에.
춘희가 주황을 만난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한편, 주황 역시 춘희처럼 어린 시절에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주황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주 폭력을 행사하여 말까지 더듬게 되었다.
훗날 춘희가 주황에게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면 어떻게 했을 거냐는 질문에 주황은 어린 자신을 꼭 안아주었을 거라고, 그리고 폭력을 쓰던 아버지에게 한 번쯤은 대들었을 거라고 대답한다.
춘희와 주황은 이렇게 상처를 지니고 있는 서로를 보듬어주며 따뜻하게, 조금은 유치하게 연애를 시작한다.
- 춘희 씨 손에 꽃이 폈네요.
주황은 춘희 그 자체를 사랑해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안 좋아한다고, 어쩐지 최근에 답지 않게 행복한 일들만 일어났다고 말하는 춘희를 주황은 사랑한다.
춘희의 손에 있는 상처도 그에게는 예쁜 꽃이다.
주황은 이렇게 춘희에게 봄날에 핀 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춘희 역시 주황에게 봄처럼 따뜻한, 봄날에 핀 꽃처럼 화사한 사람이었다.
한편, 길을 걷다 벼락을 맞은 뒤로 춘희에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다.
바로 '어린 시절의 춘희'.
어린 춘희를 마주한 '어른 춘희'는 외삼촌 집에서 눈치보며 외지인처럼 살던 옛날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이 감정들을 넣어두고 지내던 춘희는 어느 날, 어린 춘희에게 말한다.
왜 자꾸 나타나서 옛 생각나게 만드냐고.
왜 눈치 없어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널 싫어하게 하냐고.
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같이 안 죽고 살았냐고. 부모님이랑 같이 죽었어야 했다고.
모진 말을 들은 어린 춘희는 그렇게 떠난다.
떠나서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스멀스멀 떠올라 춘희를 계속 외로움 속에 살게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춘희가 사촌오빠에게 울분을 토함으로써 세상 밖으로 완전히 나오게 된다.
외삼촌네 가족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집에 어린 춘희를 두고 아파트로 이사갔다.
어릴 때 춘희에게 자신들이 이사가면 이 집은 춘희 네 꺼야, 라고 말하던 그들은 훗날 '어른 춘희'에게 이 집을 내놓았으니 나가서 다른 집을 구하라고 얘기한다.
이 집에서 살며 꿋꿋이 집을 지키고 있던 춘희가 열쇠를 바꾸자 다른 집에서 살고 있는 사촌오빠가 오히려 열쇠를 왜 바꿨냐고 화내기도 한다.
이런 일들로 인해 감정들이 쌓이고 쌓였던 춘희가 마침내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 집은 내가 지켰다고. 그 집은 우리 엄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고.
왜 자신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었냐고. 좀 더 잘해줄 수 있었지 않냐고.
왜 (맘껏 발을 뻗을 수도 없는) 다락방을 줬냐고. 다른 방 줄 수도 있었지 않냐고.
그리고 영화는 뜨거운 불에 손을 갖다 대려는 어린 춘희를 막고, 네 잘못이 아니라며 꼭 안아주는 춘희로 끝난다.
둘은 서로를 꼭 안아준다.
-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어른 춘희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듬어준다.
외로운 기억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상처들을 버텨내고 있는 어린 자신을 안아준다.
- 생일인 봄에 하얀 눈이 내렸지.
그 눈처럼 앞으로 하얗고 반짝거리는 일만 일어날 거라고 했잖아.
그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그래도 너를 통해 세상에는 하얗고 빛나는 것보다 더 많은 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앞으로 우리가 서로 꼭 안아줬던 걸 기억하면서 다양한 색깔로 살아갈 거야.
이 영화를 모두 보고, 춘희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을 즈음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어린 춘희가 나타난 이유는 맘 속 한구석에 계속 응어리 져 있던 어른 춘희의 답답함과 외롭고 아픈 기억을 해소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어느 생일날 반짝이는 눈을 본 어린 춘희처럼
반짝이는 벼락이 갑자기 어른 춘희에게.
따라서 마지막에 춘희와 춘희가 서로를 꼭 안아준 것도 쌍방향의 위로가 아닐까.
'어른 춘희'는 어린 춘희에게 네 잘못, 우리 잘못이 아니라면서 토닥여 주었고,
'어린 춘희'는 어릴 적 기억을 안고 살아가던 어른 춘희가 앞으로 이 감정을 조금은 해소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춘희의 이름은 원래 '기쁠 희'이어야 하는데 잘못 등록해서 '계집 희'가 되었다고 한다.
춘희는, 아마 그녀는 잘 모르겠지만, 스크린 너머의 관객에게도 미소와 기쁨을 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선물 받은 신발을 자신이 신지 않고 노숙자에게 선뜻 건네는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다.
행복해야 마땅한 사람이다.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미워하곤 했다.
어릴 때는 왜 그렇게 답답했어 가지고. 왜 그렇게 바보 같았어 가지고.
그래서 춘희가 어린 춘희에게 왜 그랬냐고 질책하는 장면을 보며 마냥 미워했던 어린 내 자신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의 어린 춘희의 얼굴에 어린 시절의 내 얼굴이 겹쳐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미워하면 안됐는데. 어린 나는 그 상황을 견디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영화 속의 춘희처럼 나도 속으로 어린 나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어릴 적 맘 속에서 바래왔던 멋진 어른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나 자신도 어린 나를 답답해해서 미안하다고.
어렸잖아. 그리고 그 상황이 너무 혹독했는걸.
이 글의 초반에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할 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뒤 내가 내린 답은 그냥 같이 놀아주고 싶다, 였다.
그냥 그 외로운 순간을 견뎌내는 것을 벅차하던 어린 내가 힘든 시간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같이 즐겁게 놀아주고 싶다.
잠깐이라도 아무 걱정 없이 웃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
나는 작은 기억으로도 유독 오랜 시간을 사는 아이였다. 그리고 지금 역시 그렇다.
만약 내가 영화 속의 춘희처럼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한다면 그냥 같이 놀아주고,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너의 말과 행동, 너의 모습에서 상황의 그릇됨을 찾지 말라고.
그냥 조금 날이 서 있고, 위태롭고, 절실한 그런 세상 속에 던져졌던 것뿐이라고.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헤어지기 직전, 영화 속의 춘희처럼 꼭 안아주지 않을까 싶다.
잠시라도 만나서 반가웠다고.
이 영화의 포스터 뒷면에는 최진영 감독님의 인삿말이 적혀 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한없이 외로웠던 춘희에게 손을 내미시고, 기꺼이 곁을 내어주신, 춘희의 소중한 친구가 되신 겁니다.
그러니깐 행여 외롭고 지치더라도 춘희 역시 어디선가 그대들을 응원하는 친구로 존재할테니 너무 슬퍼 말아요.
잘 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태어나길 잘했어요!!'
이 봄이 떠나기 전, 모두들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해주는 따스한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를 꼭 관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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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2차 예고편
점점 강력해지는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를 막기 위한 덤블도어의 특별한 미션, 뉴트와 친구들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