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1-04-11 15:09:25
아직도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
워낙 유명한 영화이기에 호화롭게 잘 사는 장면만 나와도 바로 '그 장면'이 나오는 영화. 영화를 보기 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아이리시 맨>처럼 메인 인물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영화일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초반은 개츠비의 외적인 매력에 빠지고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점점 그의 내적인 매력에 빠진다.
#사진 밑으로 스포가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당시 미국
누구나 자신의 꿈이 있지 않은가. 돈과 명예, 남들 부럽지 않은 재력과 행복한 나날들 같은 꿈 말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당시 미국에서 드리우는 '아메리카 드림'으로 엄청난 호황기를 누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희망찬 꿈과 포부를 안길 수 있는 시대에 개츠비 역시 그 꿈을 달성한다. 화려한 대저택과 신나는 파티, 언제나 밝은 그의 저택 조명은 개츠비의 능력을 과시하게 만든다. 개츠비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나오는 부자들의 파티 장면은 영화 중간마다 나오는 노동자들과 상당히 대비되어 나온다. 즉, 영화는 당시 1920년 호황기를 맞는 미국 사회에 따라 빚어지는 빈부격차와 계층 분화의 대립을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당시 갑작스러운 호황기에 따라 나날이 발전하는 물질의 변화에 맞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문화지체현상(culture lag)이 벌어진다. 영화는 이 현상을 역시 포커스를 맞혔는데 부패한 권력과 사치 넘치는 모습들, 거짓으로 꾸민 허상이 확장되가는 미국인의 모습을 드러내며 당시 미국 상황을 느낄 수 있다.
위대함
개츠비라는 사람이 왜 위대할까. 필자는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위대한'을 적은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의 시점 그리고 소설에서 말하는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츠비가 가지고 있는 진심 즉, 데이지(캐리 멀리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닉은 첫 장면부터 각종 정신병을 앓고 있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가 예전 만났던 개츠비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개츠비가 엄청난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는 5년 전 헤어졌던 데이지를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거나 오히려 그 꿈이 현실의 제안으로 메워버린다. 닉도 이 같은 과정으로 결국 정신병을 앓는 지경까지 이르러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츠비는 다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돈을 인식으로 삼지 않고 수단으로 이용해 데이지의 사랑을 얻고 싶어 한다. 현재도 이어지는 물질적 욕망과 욕망으로 만들어진 허상 된 세상 속에서 물질적 욕망을 이기는 진정한 사랑. 이 얼마나 위대한가. 닉이 왜 마지막에 '위대한'을 적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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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리뷰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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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솔루션 북'을 어제 영화관에서 보고 왔습니다.
대강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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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마크'는 에이전트에 자신의 새로운 필름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해고하려하고,
마크는 이에 맞서, 자신의 클립과 자료들을 챙겨 작은 마을로 도피합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영화를 감상한 사람의 의견을 먼저 드리자면, 일단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미셸 공드리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이 본인을 주인공 '마크'에 투영하여 만든 영화인만큼, 그의 기존 작품 스타일과 제작/연출 방식을 알고 보면 이 주인공 '마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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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는 '코미디'입니다.
그런만큼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재미요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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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이 영화는 한 사람이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가 아닌,
(물론 겉으로는 맞습니다만, 미시적으로 보았을때는 그게 포인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와 함께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위기와 갈등들을 통해 그가 한단계 성장하고, 새로운 사랑도 찾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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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톡톡 튀는 영화입니다.
연출도 마음에 들었고, 피에르 니니의 연기도 완벽했네요.
한국에서는 언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개봉하면 보러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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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시간 42분,, 정말 마음에 듭니다.
까이예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가 평점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지만...
저는 3.5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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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도 높은 영화가 완성되는 지점
SYNOPSIS.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집.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POINT.
✔️ 일단 이 영화를 보세요. 시놉시스만 아시는 상태로 그냥 다짜고짜 보시기를 권합니다.
음향이 중요하니 돌비(메가박스), 사운드X(CGV) 등 음향을 강조한 상영관에서 보시면 좋습니다.
✔️ 이외의 다른 모든 이야기는, 영화를 다 보신 후에 찾아보셔요. 이 글 같은 리뷰는 물론, 평론가 해설 또한 영화를 보신 후에! 찾아보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꼭 영화를 이미 보신 분만 읽어주세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종이 한 장을 꺼내든다. 길지 않은 한 마디지만, 손을 떨면서 하는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주연을 맡은 산드라 휠러 배우가 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shorts/D0v0WRqqVso
"... All our choices were made to reflect and confront us in the present, not to say 'look what they did then!', rather 'look what we do now!'. Our film shows where de-humanization leads at its worst. It shaped all about past and present. Right now we stand here as men who refuse their jewishness and the Halocaust being hijacked by an occupation which has led to conflict for so many innocent people... (applause)
... whether the victims of October the 7th in Israel or the ongoing attack on Gaza all the victims of this de-humanization, how do we resist? (applause)
Alexandra Bystroń-Kołdziejczyk, the girl who glows in the film as she did in life chose to, I dedicate this to her memory and her resistance. Thank you.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 우리 자신을 반영하고 대면하게 합니다 '그때 그들이 한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보라는 의미죠. 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으로 치닫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유대인 정체성과 홀로코스트가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키는 점령에 오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수)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희생자든 가자 지구에서 자행 중인 학살의 희생자든...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요? (박수)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 클로지치크, 영화에서 만큼이나 실제도 빛났던 소녀의 삶과 저항 정신에 이 상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이 발언은 이 영화를 완성했다.
아니, 이 영화는 나의 마음에 닿아서 완성되는 영화일 것이다.
소리는 당신을 상상하게 한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오감, 아니 육감 중 가장 큰 부분을 시각에 의지한다. 철저하게 계산되어 고증된 공간과 의상, 내면에 깊은 두레박을 수도 없이 드리워 완성하는 배우의 연기, 그 장면 그 순간을 위한 깊은 노력 대부분이 시각에 의존한다. 영화 음악은 많은 경우 그 '시각'이 주는 감정을 보조하기 위해, 그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청각으로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시각이 보조한다. 붉고 불길하게 타오르는 꽃잎의 모양은 그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청각이 전달하는 불길한 느낌, 구역질 나는 느낌을 보조한다. 이건 대체 뭐지. 관객은 충격에 빠진다.
소리가 잔인한 이유는 당신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각이 아무리 충격적인 양상을 들이대도 당신의 상상보다 잔인할 수는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카피는 사실 불가능한 카피이다. 언제나 각자의 상상이 각자의 최대치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당신이 상상하는 가장 최악의 아우슈비츠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성립시킨다. 간혹 들리는 비명 소리, 구타가 아닐까 싶은 소리, 총... 같은 느낌이 드는 소리, 동시에 우리의 식민지적 경험이 주는 그 총소리에 대한 의문, (일본군은 당시 총알이 아깝다며 한국과 중국에서 총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총의 개머리판으로 때리거나 총검으로 찌르거나... 그 행위는 그들에게 유희처럼 여겨졌고, 사체의 일부분을 손에 든 채 히죽히죽 웃는 사진도 여러 장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내겐 ‘수용소에서 총 소리가 이렇게 자주 들리나?’ 하는 의문이 들면서, 우리 선조들이 한반도 전역과 731부대에서 겪은 일들에 대한 괴로움과, 서방에서 아우슈비츠가 갖는 의미 대비 그 괴로움이 서술된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서 오는 자괴감... 나의 직접/간접 경험이 주는 가장 끔찍한 지옥도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파고든, 보는 내내 궁금했던, 마치 기계가 작동되는 듯한 소리. 마침내 그 소리의 정체가 밝혀질 때에, 한편으로는 안심한다. 역사는 언제나 눈을 치켜뜨고 있다. 비록 소리가 상상하게 한 최악의 지옥도가 우리 마음에 펼쳐지지만, 그들은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나일 가능성은 없을까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악이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근원에서 나온(16p)"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단순히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일원들이 그저 일상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뜻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바라보며 그에게서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곧 판단의 무능성(20p)"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를 무너뜨려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21p)"고, "전쟁을 일상적인 인간의 삶의 한 측면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임으로써(42p)"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이 된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뼈 아픈 부분이, 이 영화에서도 지적된다. 과연 나는 영화 속 헤스 부부를 보며 단순히 그들을 절대악으로 지정하고 마음 편하게 영화관을 벗어날 수 있는가? 없다. 아이히만은 내 안에 있고, 헤스 부부 또한 그렇다. 17살 때부터 꿈꿔 온 이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헤트비히의 말은... 과연 이 사회에서 자기의 안위를 위해 '각자도생'해야 함을 배운 우리의 말과 얼마나 다른가?
수십 채나 되는 집을 소유하며 도시를 공허하게 만드는 사람들, '영끌'하는 자기만을 과하게 연민하며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법을 잊은 사람들, 소비로 존재를 대신하려는 사람들...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이 끔찍한 재능은 죽음의 순간에도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113p)"던 아이히만과 우리는 의외로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영화 속, 아우슈비츠 코앞에서, 연기와 비명 소리와 (아마도 존재했을) 사람'이었던' 것들이 타는 냄새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꽃을 심고 집안을 가꾸는 헤스 부부... 내 집 마련의 꿈을 중요시하지만 사회의 모든 모순은 무시하는 우리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이 영화가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들과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라는, 인류사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평가되는 이 사건조차도, 단순히 그 사건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아우슈비츠의 최대 희생자였던 유대인들은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어떤 행위를 가하고 있나. 그들 안에는 아이히만이 없는가?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따르면 힘러가, 즉 나치가 사용한 책략은 우리의 "동물적인 동정심"을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174p)" 된 것이었다. 과연 작금의 유대인들은 여기서 얼마나 다른가. 자기 연민과 비뚤어진 자기애로 인류애를 대체하고, 타인의 상황에는 ‘누칼협’ 같은 소리나 들이대고 있는 우리는 또 얼마나 다른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게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님을, 그러므로 나와 무관하고 그냥 스크린 안에서만 일어나는 그런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나를 뒤집을 수밖에 없다. 시오니즘을 신봉하는 프로듀서 앞에서, 실제로 이후 그의 발언이 공식 입장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프로듀서 앞에서, 다시 말해 커리어가 끊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손을 떨면서 1분 남짓의 짧은 말을 이어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같은 유대인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아이히만의 이야기가 단순히 아이히만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영화를 보고 그냥 '미학적으로 좋은 영화군...' 하고 단순하게 돌아설 수 없도록 나와 당신을 막는 힘 또한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어쩌면 그냥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그 갈망이 우리를 비인간적인 자리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느니 배 부른 돼지가 되겠다는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가. 이 영화는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밍크코트에 이어, 이미 죽었거나 그 근처에 이르렀을 여자의 립스틱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입술에 바르는 헤트비히의 모습에서도, 알고 지내던 유대인 여자가 끌려갔어도 그 커튼을 갖지 못한 것이나 아쉬워하는 대화에서도.
실제 헤트비히 헤스의 말에서 따왔다는 "너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불에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과격한 대사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좀 더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형태의 '인간'이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를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이 영화는 소름 끼치게 보여준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누군가는 시대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의외로 선택지가 있었다.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걸 보여주는 존재는 한 소녀다. 감독에게 매우 의미 깊었던 듯한, 영화 속에도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의미심장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감독의 아카데미 소감에도 등장하는, 알렉산드라라는 인물이 있다. 알렉산드라 비스트론 콜로지치크. 그는 영화 속에서 유대인들을 위해, 유대인들이 일하는 곳을 밤에 몰래 찾아가 과일을 하나씩 박아 놓고 사라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밤에 뛰어다니는 그곳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다. 굳이 어설픈 직역을 하자면 "이득 지역"인데, "Interessengebiet"라는 독일어 단어를 그대로 옮긴 영어 단어이다. 나치가 아우슈비츠 인근을 부르던 단어로, 실제로 그들이 아우슈비츠 행정을 위해서라며 이득을 취하던 지역을 부르던 말이다. 1941년 나치는 폴란드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이들을 몰아낸 다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동원하여 농사를 짓고 그 이득을 챙긴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교류를 막았음은 물론이다. 말발굽 아래 너무 쉽게 짓밟히던 과일을, 가방에 소중하게 담아 하나하나 배치해 두는 소녀의 존재는, 처음에는 '뭐지?' 싶게 낯선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이내 그 존재 자체로 어둠 속의 빛임을 느낄 수 있다.
그토록 열심히 가꾸는 헤스 부부의 집에는 한 번도 직통으로 내리쬔 적 없는 햇살이, 소녀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집안으로는 부드럽고 강하게 들어온다. 실제로 알렉산드라가 2016년 9월 사망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에서 촬영했다는 장면에서, 소녀가 피아노로 연주한 곡은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감자가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제목도 <햇살>. 심지어 옷과 자전거 또한 실제로 알렉산드라가 사용했던 물건이라니 그 의미가 한층 두텁게 느껴진다.
실제 알렉산드라는 1940년 나치가 폴란드에 침공하면서 아버지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두는 비극을 겪었고, 친구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내부와 접점을 가지고 음식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1941년부터는 무장투쟁연맹의 일원으로 연락망을 담당하고, 1943년에는 나치에 의해 노역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우슈비츠에 음식을 전하는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헤스 작전'으로 소개된, 헝가리의 유대인을 '소거'하는 작전을 앞두고, 전출되었던 자리에서 다시 아우슈비츠에 돌아갈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통화하는 부부의 전화로 끝을 맺다시피 한다. 원하는 모든 바가 다 이루어졌지만 내려오면서 어쩐지 구토의 심경을 느끼는 루돌프의 모습이 영화의 사실상 마지막 장면인데, 이 장면은 매우 역겹다.
구토하지 못하면서도 구토 비슷한 것을 느끼는 그 모습이, 마치 가해자가 되어야만 했던 자신을 연민하는 액션처럼 느껴져서,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는 것(178p)"이었다는 아이히만의 사고와 동일하게 느껴져서. 가스실을 만들고, "효율적인" 시체 처리법을 고안한 것이 "업적"이었던 그들의 사고방식. 자신의 알량한 삶을 위해 타인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그 방식과 체계와 행정이나 고민하고 있었던, 무뎌지고 마비되었던 두뇌들. 구토하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구토로 자신이 인간인 것처럼 호소하던, '비인간화'의 결과물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소개된, 매우 예외적인, 그래서 독특한 이야기 하나를 나눈다. 이 영화의 ‘헤스 작전' 회의 장면에서도 언급되듯 나치에 진작 동의했던 헝가리 정부와 달리, 끝까지 나치의 유대인 소탕에 반대한 나라가 있었다.
덴마크 국왕은 자신이 자진해서 유대인의 별을 달겠다고 했으며, (왕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굳이) 대신들은 혹시라도 왕이 반유대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자진 사퇴하겠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안전하게 운송'되었으며, 그 과정에 필요한 자금은 덴마크 부유층이 댔다. 결국 덴마크 출신의 유대인들 중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은 상대적으로 극소수였고, 이들은 대부분 순순히 문을 열어줄 만큼... 노쇠하였거나 가난에 치이느라 현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다시 말해 사회적 최약자들이었다. 이들을 위해 덴마크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란'을 피웠고, 그 결과 이들은 수용소에서도 남다른 지위를 누렸다고 한다.
읽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거였다. 이럴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도 있었다는 것. 어쩌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아우슈비츠와 '악의 평범성'을 타자의 위치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아이히만이 가리키는 지점을 묻고, 그 지점과 싸울 의지가 있는지 묻는 것과도 같다. 이미 시체마저 썩어버린 과거의 나치에게 섀도복싱을 하는 대신, 진짜 내가 싸워야 할 상대에 맞설 마음이 있는지 묻는다. 우리 시대의 나치는 무엇이며, 그 앞에서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질문에 무거운 마음을 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답이 있는 곳이, 완성도 높은 이 영화가 완성되는 지점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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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립 투 그리스> 오디세우스의 두 발자국을 쫓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국 유명 배우 '스티브(스티브 쿠건)'와 '롭(롭 브라이든)'은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으로 6일 동안의 그리스 여행에 나선다. 터키 아소스를 시작으로 이타카에 이르기까지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둘은 동시에 레스보스 섬에서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의 유래, 델포이 신전에서는 신탁을 받는 방법,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그리스 비극과 희극의 차이 등 온갖 주제로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해 토론과 농담을 나눈다. 이처럼 유쾌하던 여행은 스티브가 아들의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고 롭이 아내의 빈자리를 절실히 느끼는 찰나에 뭉클한 인생 여정으로 변모한다.
2010년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트립 투 이탈리아>와 <트립 투 스페인>을 거쳐 2021년 <트립 투 그리스>로 이어지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시리즈는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작품이 아니다. 마치 <꽃보다 청년> 시리즈를 영화관에서 보는 듯한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보는 풍광과 즐기는 음식,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그들 바로 옆에서 함께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인 <트립 투 그리스>도 다르지 않다. 여름날 에게 해의 바다를 수영하는 행복, 다 무너져가는 델포이 신전에서 안개 낀 그리스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벅참과 허무함, 그리스의 자랑인 꿀술에 곁들인 다양한 해산물과 육류 요리의 향연은 당장 영화관을 박차고 그리스로 날아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여행지에서의 로맨스와 예상치 못한 만남은 이 모든 경험을 더욱 화려하고 다채롭게 즐기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국적인 도시와 매력적인 레스토랑, 맛있는 음식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의 향연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알쓸신잡> 마냥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스워즈,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셸리,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와 같이 특정 인물을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전작들처럼, <트립 투 그리스> 역시 터키 아소스에 위치한 트로이 유적지로부터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를 대표할 수 있는 수많은 인물들과 영웅들 중 굳이 오디세우스를 여행의 나침반으로 선정한 것은 <트립 투 그리스>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타공인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와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의 시조 테세우스를 비롯해 아르고 호의 원정을 이끈 이아손의 행적을 따라가더라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부분의 장소를 둘러보는 데 사실 아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두 주인공이 겪는 서로 다른 모습의 삶에 담겨 있다.
성공에 대한 야망이 가득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던 스티브는 어느새 성인이 된 아들로부터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한다. 즐거운 여행과 로맨스를 즐기다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빠진 스티브에게 이제 그리스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저승세계의 입구로 여겼다는 동굴 안에서 그는 자신이 마치 아버지 대신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이 모는 나룻배를 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받고, 밤에는 영혼들이 영원히 떠돌아다닌다는 아스포델 들판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악몽까지 꾼다. 결국 마지막 목적지인 이타카로 향하던 중 부고를 접한 스티브는 급히 아들이 있는, 20년 전에 이혼한 아내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돌아간다.
한편 편안한 여행을 추구하는 롭은 일주일 간 여행을 떠난 것에 불과한데도 끊임없이 가족을 그리워한다. 낮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딸에게 영상통화를 거는 그는 자신만이 그리스의 미를 즐기는 것이 불편하고, 잠시 집을 떠난 사이 더욱 커지는 아내의 빈자리를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스티브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아내를 마지막 목적지였던 이타카로 불러 멋진 재회를 즐기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며 그토록 바라던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한다.
이러한 스티브와 롭의 이야기는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를 구성하는 두 모티브를 각각 나누어 재해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집으로 가고 싶은 지친 여행자이면서 호기심 가득한 열정적인 여행자라는 두 개의 모티브가 겹쳐진 영웅이고, 그래서 선역도 아니고 악역도 아니며 매우 입체적이고 인간적이기에 가능한 해석이다. 우선 오디세우스는 지친 여행자다. 단순히 트로이에서 10년을 보내고, 바다에서 10년을 떠돌았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 끝에 다다른 항해 중 잠시 들른 저승에서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을 만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깊은 슬픔에 빠지기 때문이며, 갓난아기 이후로 보지 못한 아들 텔레마코스가 자신을 대신해 가족을 지탱해야 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중 스티브는 이러한 오디세우스를 닮았다.
동시에 오디세우스는 열정적인 여행자다. 그는 키르케와 칼립소가 제안하는 안정적이고 죽지 않는 삶을 마다하고 바다로, 이타카로, 아내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한다. 어떤 괴물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리워하던 아내 페넬로페를 만나고,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구혼자들을 죽이고 행복을 누릴 때까지 결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탐구함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이 오디세우스는 유머와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스티브의 여행까지 이어받은 롭의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중요한 것은 스티브와 롭의 서사로 나뉜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하나로 합쳐서 들여다볼 때, <트립 투 그리스> 속 주인공들이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그리스의 모든 영웅들과 가장 다른 삶을 추구한 영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그를 그리스인 중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이고, 그렇기에 그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삶을 일주일 간의 여행으로 축약시키는 이 영화가 본보기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그리스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그가 다른 그리스 영웅들과 목표가 다르다는 사실은 아킬레우스와의 만남과 이후 그의 행동에서 엿볼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저승에서 만난 아킬레우스에게 살아생전에 가장 위대한 전사였고 그 이름은 죽은 후에도 세상에서 영원히 빛난다고 위로를 건넨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디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라고 답한다. 이러한 아킬레우스의 한탄을 들은 후 오디세우스는 옛 전우의 말대로 살아간다. 칼립소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며 인간으로서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귀향하여 페넬로페와 함께 이승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고 값지게 살아나간다.
이때 '칼립소(kalupso)'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감추는 자'라는 뜻임을 고려하면, 오디세우스가 영원히 살되 세상에서 잊히고 자신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거부했음을, 대신 아킬레우스가 말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삶의 의미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불멸의 명성을 추구하던 그리스 영웅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의 삶의 아름다움에 주목했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발버둥 친 영웅인 것이다. 그 결과 오디세우스는 완전무결해 보이는 신화 속 인물들과 달리 인간적이고 소박한 면모를 가졌고, 그 어떤 영웅들보다 현대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두 주인공이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여행 중 현재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여행의 끝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며, 결국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가장 먼저 경험한 그리스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트립 투 그리스>는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삶을 답습하는 것을 벗어나서 그의 여행을 현실적인 범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스티브가 영화 촬영 당시 자신을 도왔던 스태프를 만나 난민 캠프로 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머나먼 남의 땅에 와서 기약 없는 생활을 지속하고, 지중해 온갖 곳을 표류하며 집 없이 전전긍긍하며, 정착할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난민들의 모습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한 남자를 닮았다. 이때 대본 없이 실제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현지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원터바텀 감독의 연출은 그리스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영화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 스며들도록 유도하면서 더 크고 짠한 울림을 남긴다.
물론 <트립 투 그리스>의 모든 점이 좋지는 않다. 차 안에서 서로 자신이 가성을 더 잘 쓴다면서 '그리스'의 테마곡 'Grease is the word'를 부르는 장면처럼 두 배우의 상황극이나 농담이 과하게 길어지는 순간에는 극본 없이 배우들의 역량을 믿는 윈터바텀 감독의 스타일이 성공과 실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듯 보인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는 하지만, 또 그렇기에 안정된 형식의 부재가 낳는 태생적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그리스 신화나 비극, 역사 등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의 차이에 따라 만족도가 널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점들이 그리스 여행이라는 코스 요리를 즐기는 것 그 자체의 즐거움을 가리지는 못하기 때문에, 두 배우의 여행과 대화가 선사하는 낭만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그리스 최초의 현대인을 따라 걷는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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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정신의 유효함을 되묻는 팽팽한 범죄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던 '강인구(하정우)'. 그는 막무가내로 '혜진(추자현)'과 결혼한 후 여러 사업을 벌여 가정을 지탱하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한다. 그런 인구에게 학교 동창 '응수(현봉식)'는 한 가지 사업 아이디어를 준다. 수리남에서 버려지는 홍어를 국내로 공급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 이에 곧장 수리남으로 넘어간 인구는 나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간다. 어느 날, '첸진(장첸)'이 이끄는 중국 삼합회와 갈등을 빚게 된 그는 한인 교회 목사 '전요환(황정민)'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다. 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이 인구는 그의 홍어에 코카인을 숨겼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로부터 전요환이 그의 사업을 마약 거래에 이용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에 국정원의 전요환 체포 작전에 협력하기로 한 인구는 다시금 수리남으로 향한다.
사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언제나 거대한 적을 마주하고 있다. 이야기의 끝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끝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를 두고 등장인물과 관객들이 눈치 싸움을 벌이는 그런 긴장감은 효과가 크지 않다. 오로지 결말이 이르는 과정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에 팔 한쪽을 쓸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항상 단점이지는 않다.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이 민간인의 도움을 받아 퇴각한다는 것,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일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결말을 안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흥미가 없다는 평을 듣지는 않는다. 핵심은 그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어 모두가 아는 결말에 '어떤 감정과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윤종빈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화를 각본을 바꾸는 재주다. 드라마는 수리남에서 마약 사업을 펼치던 조봉행 검거 작전과 작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민간인 K 씨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데,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좋다. "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정 대목을 길게 늘어놓다가도 한 순간에 감정을 집약시켜 분출시키는 솜씨는 (그 자체로도 극적이지만) 실화를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1화를 보자. 1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홍어다. 홍어에는 인구 아버지의 부성애가 담겨 있고, 그 가족애를 물려받은 인구 역시 홍어를 즐겨 먹는다. 더 나아가 홍어는 인구 부자가 공유하는 삶의 의지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아내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홍어회를 먹듯이, 가족과 함께 더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며 인구는 홍어를 잡으러 수리남으로 떠난다. 그래서 1화는 예상과 달리 전반적으로 꽤나 밝다. 전요환 목사의 등장이 거슬리기는 하나 인구의 꿈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사업이 더 커지고 한 층 더 잘 살 수 있게 되려는 찰나에 홍어는 절망의 원천이 된다. 홍어에서 마약이 검출되자 밑바닥에 시작해 빛을 보는 듯했던 인구의 삶은 구렁텅이로 떨어진다. 마치 순간적인 킬패스로 상대팀의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다소 길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찰나에 1화의 결말은 곧장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게 만든다. 능수능란한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연출적 특징은 다른 대목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작중 전요환이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그가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힘을 준다. '변기태(조우진)'을 비롯한 전요환의 측근들 중에 누가 국정원의 언더커버일지 시청자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인다. '데이빗(유연석)'이 화장실에서 들어오거나 핸드폰을 사용하는 장면 등은 짧은 힌트가 진짜 힌트일지 아닐지를 고민하게 만들면서 자연히 반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수리남>의 화법은 그 내용 덕분에 더 인상적이다. 특히 캐릭터들의 믿음을 다루는 대목이 흥미롭다. 인구는 노력하고 열심히 산다면 더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희망만을 붙잡은 채 지구 반대편 수리남으로 향했다. 이 믿음은 인구만의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 인구 아버지를 지탱했던 힘이었고, 국정원 요원으로 임무에 충실하면 세상을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창호의 신념이었다. 심지어 전요환도 비틀린 방식으로나마 같은 희망을 공유한다. 그간 축적한 자본을 고스란히 재투자해 마약의 생산, 제조, 유통을 단번에 처리할 낙원은 그 믿음의 현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 가득한 믿음의 알맹이는 다르다. 특히 믿음을 실천에 옮길 수단이 분기점이다. 믿음을 현실로 불러올 때 그 수단이 될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일견 동일해 보이는 희망을 두 부류로 나누어 대비시킨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구의 믿음은 창호의 신념, 요환의 희망과는 결이 다르다. 국정원과 전요환은 기본적으로 인구를 수단적으로 이용한다. 작전을 위해 인구의 사업을 파괴하고 그의 목숨이나 처지에도 부주의했던 국정원이나 첸진과 그를 저울 위에 놓고 무게를 재던 전요환의 모습은 목적 만을 우선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아무리 돈을 최우선으로 좇는다 하더라도 죽은 친구의 가족과 기일을 먼저 챙기는 인구와의 결정적 차이다. 더 나아가 세 인물 간의 관계 변화를 설명하는 기제이다. 인구와 국정원이 결국 다시 협력하게 된 계기는 창호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인구를 한낱 장기판의 말이 아니라 파트너로 대하기로 합의한 이후부터다. 반면에 전요환은 설령 인구를 마약 사업의 파트너로 삼겠다던 말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인구에게 그가 체스판 위의 졸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 마약으로 통제되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 그리고 어린아이까지 붙잡아 두는 잔악함 때문에 인구는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 이처럼 드라마는 믿음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구와 요환의 대립뿐만 아니라 인구와 창호의 갈등도 부각해 자칫 평면적일 뻔했던 이야기의 흐름에 변주를 주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서로 다른 믿음 간의 충돌이 그저 개인의 욕심과 열망의 충돌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정신에 대한 메타포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례로 전요환은 자신의 교회, 자신의 종교가 마약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작중 수리남으로 향한 한국인들은 요환이나 인구처럼 본국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를 기어코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이들에게 요환의 존재는 한국에서의 실패로 믿음이 약해진 세계에 침투하는 새로운 형태의 희망이다. 사업 초기에 인구가 요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곧장 그에게 도움을 청했듯이. 달리 말해 요환은 목표 지상주의라는 종교의 화신인 셈이며, 또 시대정신의 무용함을 맛보고도 이를 왜곡된 방식으로 반복하는 실패의 굴레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 사이비 종교의 작동 메커니즘과도 유사하다. 그래서 요환은 종교가 마약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인구와 요환의 갈등, 창호의 변화와 요환의 파멸은 그저 두 개인의 갈등 이상으로 읽힌다.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고, 동행과 상생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향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일 대 일 승부로 끝이 나는 본작의 결말은 기대만큼 쾌감이 강렬하지는 않으나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비인간적으로 통제당하는 여성과 아이들에게서 가족을 겹쳐 보며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인구에게 목사를 사칭하는 전요환이 직접 붙잡히는 이미지가 필요한 이유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수리남>의 마지막 디테일 때문에 새로운 시대정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메시지가 부정당하는 듯한 인상이 남는 것이다. 요환이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인구는 동두천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끝은 핵심 삼인방, 인구, 요환, 창호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데에 열중한다. 정작 그 결말을 가능케 한 결정적 계기인 요환 휘하 교회 신도,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행방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이 구출이 되었는지 아니면 수리남에서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예전 아버지들의 모습을 빼닮은 인구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는 목적을 위해 여성과 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저 수단으로 소비되어 버린다. 영화의 장르나 실화적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여성 캐릭터의 절대적 수가 부족한 것보다는 그들을 활용하는 태도가 일관성 있던 메시지의 설득력을 마지막 순간에 떨어뜨리며 발목을 잡는 셈이다. 그렇게 윤종빈 감독과 넷플릭스의 첫 만남도 숱한 짤과 밈을 남기는 임팩트와는 별개로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만다.
A(Acceptable, 무난함)
재미와 서스펜스, 메시지까지도 전부 잡았다. 그저 블론세이브가 찝찝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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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원작의 주인공들과 소름돋는 싱크로율로 큰 이슈를 모았던 <마스크걸>이 한국에서1위, 전세계 2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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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주차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강동원 가짜 퇴마사 캐릭터, 무당 유튜브 보며 연구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귀신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가짜 퇴마사 ‘천박사’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빙의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로 강동원은 “사기꾼에 가까운 캐릭터다. 주문을 랩처럼 외우면 재밌을 것 같아서 준비했고 무당 유튜브를 많이 봤다”라고 밝혔습니다.
<오펜하이머> 일주일 연속 1위
<오펜하이머>가 200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개봉 6일만에 150만 관객에 돌파한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명작으로 꼽히는 <인셉션><다크 나이트>보다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내년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미국 아카데미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내년 3월 열리는 제 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에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별에 필요한>넷플릭스 첫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은 우주인 난영과 뮤지션 제이의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의 롱디 로맨스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로 넷플릭스의 한국 첫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배우 김태리와 홍경이 목소리 연기를 맡아 기대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마스크걸> 전 세계 2위 출발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이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시청 시간 순위 2위에 올랐습니다. 또 공개 후 3일 만에 280만 뷰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14개 국가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고합니다.
미국에서 재개봉한 <올드보이>
미국에서 20년만에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 <올드보이>가 첫 개봉당시 거둔 누적 수입을 넘어서면서 흥행하고 있어 미국 매체에서는“매우 드문 사례”라고 밝혔습니다.박찬욱 감독의 대표작 <올드보이>는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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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의 일주일 / A Week Away, 2021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그 여름의 일주일>은 나름의 기대를 걸었던 작품입니다. 점차 뮤지컬 영화가 보기 힘들어졌을 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볼 수 있었던 뮤지컬 영화들을 만나기 힘들어졌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종종 뮤지컬 영화를 제작해 주니, 비록 집에서 관람해야 하지만 경쾌한 음악이 곁들여진 신작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네요.
아무튼 기대를 품었지만 자세한 조사까지 하지는 않았던 터라 영화를 틀자마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포스터만 봤을 때는 우연히 만난 남녀의 풋풋하고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풀어낼 것처럼 보이는데, 갑자기 여름 캠프를 떠나더라구요. 이때 아차 싶었습니다. 영화의 관람 등급을 보면 알겠지만 <그 여름의 일주일>은 가족들이 모두 볼 수 있게 만들어진 가족 뮤지컬 영화입니다. 그래서 전체 관람가 등급이 가지고 있는 몇몇 한계점들을 자연스레 내포하고 있기도 하구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유치하게도 느껴지는 스토리는 물론, 아이들이 신경 쓰지 않을 캐릭터의 묘사부터 배경 설명, 그리고 급한 전개 등이 보인다는 점은 어쩔 수 없이 아쉽게 다가왔네요. 의미없는 행동들의 나열들도 상당히 거슬리기도 하구요. 하이틴 분위기의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구성 또한 상당히 애매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고, 가족 영화라는 큰 틀 안에 일단은 두루뭉술하게 맞춰둔 느낌이 강한 영화였습니다.
노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단 노래의 멜로디 자체는 좋았습니다. 딱히 꽂히거나 중독성 있는 넘버는 없지만, 어느 정도 신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노래였네요. 다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는 확 다가오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참 아쉽게 다가옵니다. <더 프롬>도 그랬지만 보통 뮤지컬 영화하면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 두고두고 듣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한 방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노래 가사도 뭔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그 순간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에 그친다는 점도 조금은 아쉽게 다가옵니다. 뭐 이것 또한 가족 영화라는 틀에 맞춰 쉽게 쓴 탓도 있겠지만, 뭔가 뮤지컬 영화임에도 노래는 사이드 메뉴에 불과한 느낌이랄까요. 중요한 연결고리에 노래들을 집어넣어 그 효과를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무조건 신날 때 넣고 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노래가 여운이 남지도 않고 휘발성이 강하네요.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점은 대놓고 기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더 프롬>에서 줄기차게 까댔던 게 기독교였던 것 같은데,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기독교를 찬양하는 내용이 나오니 참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뭐 제작자 마음이지만, 개인적으로 조금은 아쉽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일단 정통 기독교적인 착하디착한 내용은 조금 낡아 보이기도 하거든요. 또한 영화의 메인 스토리에 너무 뜬금없이 끼어있는 느낌이 강하기도 하구요. 한계가 있었겠지만 어차피 다룰 소재면 조금 다듬어서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구요.
나름의 장점도 보였는데, 디테일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느낌이 강해서 안타까웠네요. 나름 캐릭터 간의 케미도 좋아서 짧지만 즐거웠던 어느 여름날의 기억을 상기시켜주기도 하지만 너무 순간적인 흥분으로만 다루고 있어서 허전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상당하구요. 여러모로 아쉽게 다가온 영화였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팬서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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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도 없이]리뷰:단편영화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영화
#소리도없이#유아인#유재명
악은 변하지 않으며 항상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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