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29 23:31:27
스멀스멀 머리를 집어삼키는 공포
영화 <롱레그스>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롱레그스 이름의 뜻
- 롱레그스가 뻐꾸기 소리를 내는 이유
- 사라진 트로피 머리의 의미. 사라진 무언가를 찾는 리
- 인형, 아래쪽 어디에나 사는 친구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롱레그스 (Longlegs, 2024)
스멀스멀 머리를 집어삼키는 공포
개봉일 : 2024.10.30.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 101분
감독 : 오즈 퍼킨스
출연 : 마이카 먼로, 니콜라스 케이지, 알리시아 위트, 블레어 언더우드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주인공인 FBI 요원 ‘리’는 오직 감에 의존해 범인이 어디 있는지, 어디에서 악의가 풍겨오는지 찾아내는 남다른 능력을 갖고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동료들은 여성 요원인 리를 존중하지 않는다. 리와 2인 1조가 된 남성 요원 피스크는 저 집에 용의자가 있다는 리의 말을 진지하게 믿지 않고 홀로 진입을 시도했다가 총을 맞고 사망한다. 살아남은 리는 용의자를 무사히 제압하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이후 리의 육감과 요원으로서의 능력을 눈여겨보게 된 카터 수사관은 리에게 미제로 남은 일가족 살인 사건. 일명 ‘롱레그스’ 사건의 조사를 맡기고 리는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긴 시간 매달린 결과 리는 피해자들의 공통점과 롱레그스의 알고리즘, 암호를 해독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엔 석연치 않은 타인의 개입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롱레그스가 직접 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롱레그스는 어떤 이유로 리를 찾아온 걸까. 리는 혼란에 빠지고 새로운 사건의 단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의 내면은 궁금증과 공포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롱레그스>는 이런 예상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을 암시하며 은밀하고 조용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옥죄는 공포영화다. (점프스케어 장면이 많은 공포영화라기보단 서서히 조여오는 심리 스릴러, 오컬트에 가까운 공포 영화다.)
영화는 리의 주변에 작은 단서들을 뿌리며 천천히 관객들을 유인한다. 그리고 한순간에 신선하고 소름 돋는 장면들을 선보이며 도망갈 틈을 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인물 뒤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사운드와 배경, 배우의 움직임은 그 공간에 충분한 공포감을 채워넣는다. 다면이 노출된 공간, 어둠 속에 유일한 빛, 시선의 높이차, 고요하고 정적인 공간 등을 다양하게 활용한 연출들은 매번 신선한 떨림과 다음 순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매 장면마다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공포와 불쾌감. <롱레그스>는 이것의 기원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바닥으로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완벽하게 의도된 찌그러진 결말을 들어 보인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롱레그스 이름의 의미와 롱레그스가 뻐꾸기 소리를 내는 이유
롱레그스. 긴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9-10살 사이의 소녀들만을 제물로 삼는 사탄 숭배자다. 성장을 마치지 않은 작은 소녀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다리와 상체 일부만 보인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롱레그스’인것이다. 롱레그스는 소녀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무릎을 접으며 불쑥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괴기하고 공포스럽다.
롱레그스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읊조리며 다닌다. 그리고 말 중간에 뻐꾸기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뻐꾸기와 비슷한 습성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를 빼앗아 알을 낳는 습성이 있는 새인데 롱레그스의 범행 방식이 딱 뻐꾸기와 닮아있다.
그는 직접 소녀를 죽여 제물로 바치지 않는다. 간호사였던 리의 엄마가 의심받지 않고 악마가 든 인형을 배달해 인형이 집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악마가 사람을 조종해 일가족을 몰살한다. 그는 둥지를 짓지 않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떠나는 뻐꾸기처럼 자신의 힘을 들이지 않고 악마를 풀어 손쉽게 한 가정을 파괴한다. 그 덕분에 롱레그스는 이름 외엔 이렇다 할 증거를 남기지 않고, 리는 이를 수사하며 ‘죽이긴 했지만 직접 죽인 건 아닌 사건’이라며 혼란에 빠진다.
사라진 무언가를 찾는 리와 리를 위해 무언가를 버린 엄마
머리가 부서진 트로피와 사라진 머리의 의미
리는 술을 마신 카터를 대신해 차를 몰고 그의 집으로 향한다. 카터 가족은 리를 살갑게 맞아주고 루비는 리를 자신의 방에 초대한다. 방을 둘러보던 리는 루비의 머리가 사라진 트로피를 발견한다. 루비는 트로피의 머리가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하고 리는 루비를 바라보며 “그런 게 내 일인데. 무언가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롱레그스>는 리가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진 머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리의 기억엔 구멍이 있다. 리의 9번째 생일 전날이었던 13일. 리는 롱레그스를 만났다. 하지만 리는 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엄마는 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그날 있었던 일을 알려주지 않는다. 생존자인 케리앤도 엄마도 모두 롱레그스와 어린 리를 기억하고 있지만 리에게만 그 기억이 없다.
리는 의심스러운 그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기억과 어릴 적 살았던 집을 뒤진다. 엄마는 계속해서 그날에 대해 묻는 리에게 “네 모든 건 네 방 안에 있단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엄마의 말대로 방 안을 살펴보던 리는 오래된 박스 속에서 자신이 찍은 롱레그스의 사진을 찾는다. 덕분에 롱레그스가 체포되고 리는 그날의 기억을 어느 정도 되찾는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가 얼핏 느꼈던 검은 형체. 롱레그스가 심어둔 악마가 아직 리의 머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에게 악마가 있다는 단서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꾸준히 제시된다. 리는 검은 악마의 형체를 보고, 생존자 케리앤은 리가 우리 집에 왔었다고 말하다 나중엔 리를 ‘더럽고 늙어빠진 천사년(다른 제물들과 다르게 9-10살을 훨씬 넘겼기 때문에)’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리는 엄마가 “요즘 기도는 하니?”라고 묻자 “기도한 적 한 번도 없어. 기도가 무서웠거든.”이라고 답한다. ‘모든 프레임에 악마의 단서가 심어져 있는 영화’라는 홍보 문구 그대로 정말 대부분의 프레임에 단서가 있었던 것이다.
리의 엄마는 악마의 단서와 자신의 머리를 찾아가는 딸과 반대로 악마의 단서를 열심히 지우고 자신의 머리를 버린다. 롱레그스라는 뻐꾸기가 리의 가족이라는 둥지에 낳고 간 악의 알은 둥지 주인인 엄마를 전부 갉아먹는다. 엄마는 리를 살리기 위해 사탄 숭배자 롱레그스와 한패가 되어 리처럼 14일에 태어난 소녀들을 죽인다. 리가 엄마의 집을 찾아갔을 때, 엄마는 벌써 리의 생일이 되었다며 14일을 ‘피를 흘리고 흘리던 날들이었다’고 회상한다. 리를 살리기 위해 14일 생일을 맞은 소녀들을 죽이고 또 죽였으니 그날을 피로 기억할 수밖에.
리의 엄마는 롱레그스와 함께 많은 소녀들을 죽이고 리와 닮은 인형을 돌려받는다. 그리고 엄마가 그 인형의 머리를 쏘자 리는 마침내 자신의 머리를 완벽히 되찾는다. 그 순간 쓰러진 리가 다시 침대에서 눈을 뜰 때, 카메라는 180도 뒤집어진 앵글로 시작되며 리가 이전과 다른 세상에서 다시 눈을 떴음을 알려준다.
엄마는 자신의 머리를 버리고 딸의 머리를 되찾는다. 그런데 이 희생은 전혀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엄마는 다른 소녀들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지옥에서 영원히 뒤틀리게 될 거라며 절규한다. 그래서 수많은 소녀들을 죽인 결과 리와 자신의 인생이 안전해졌나? 그것도 아니다. 엄마는 리의 손에 죽었고 리는 머리를 되찾긴 했으나 그의 인생은 이미 제대로 뒤틀린 후다. 악을 따른 결과는 절대 아름다울 수 없다.
여전히 어디에나 존재하는 악. 엔딩 해석
부수지 못한 루비 인형
롱레그스의 말처럼 사탄과 악은 여전히 ‘아래쪽 어디에나 사는 친구’다. 악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닥칠지 알 수 없다. <롱레그스>는 우리와 위아래로 마주 서있는 이 영악하고 소리 없는 악을 땅 위로 끌어올려 눈앞에 들이민다. 속지 말라고, 잊지 말라고 하는 듯이.
엄마의 뒤틀린 희생 덕에 리는 머리를 찾고 루비를 무사히 구해내긴 했지만 그는 총알이 부족해 루비의 인형을 부수지 못했고 악의 주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박멸되지 않은 이 악은 앞으로도 롱레그스 같은 뻐꾸기를 통해 여러 둥지를 옮겨 다니며 둥지의 주인과 가족들의 머리를 앗아갈 것이다. 상상만 해도 불쾌함과 공포감이 끓어오르는 엔딩이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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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종인 인간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진화한 유인원(Ape)과 퇴화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디스토피아 행성. 유인원은 세상의 지배종이 되었고 인간들은 사냥의 대상에 불과하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웨스 볼 감독이 연출하고, <아바타: 물의 길> 조쉬 프리드먼이 각본을 썼다. 제작비는 1억 6천만 달러, 한화로 약 2200억 원이다. 평균제작비 약 100억(홍보비 추가 총제작비는 약 125억)이 드는 한국 상업 영화를 20개 이상 만들 수 있는 대작이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리부트(Reboot)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리부트 영화의 유행을 가져왔다. 놀런 감독은 오래되어 폐기 수준에 있던 배트맨의 캐릭터에 새롭게 스토리를 입혀 대박 흥행을 가져왔다. 이후 많은 리부트 영화 시리즈가 시도되었고 혹성탈출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혹성탈출 시리즈처럼 한국에서도 마동석의 <범죄도시> 성공으로 시리즈 영화에 관심이 많아졌다. 개별 독립된 영화는 유명감독의 대작 영화일지라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시리즈 영화의 장점은 예측가능성이다. 경험을 토대로 제작비 규모와 개봉 시기를 정하기가 쉽다.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명하는 시간 등 영화 초반의 빌드업 과정을 과감하게 줄이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 관객을 몰입하게 할 수 있다. 충성도 높은 팬덤이 형성되면 흥행의 강력한 엔진이 된다. 시리즈 영화는 스핀오프(번외 편)와 프리퀄(전사)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할 수 있어 확장성도 크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인간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망할 수 있는 지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태양계 행성의 지배종이 된 유한한 존재인 인간.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교만으로 결국 문명을 잃어버리게 될 디스토피아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화면 크기가 감동을 다르게 한다.’는 아내의 말에 동의한다. 영화를 방구석 1열이 아닌 극장에서 보는 주된 이유다. 우리는 용산 CGV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마치 실제 유인원들이 영화에 출연한 듯 얼굴에 나타나는 섬세한 감정표현, 거대한 숲이 된 고층 빌딩, 프록시무스 군단의 거처인 폐기된 크루즈선 등을 큰 화면에서 실감 나는 영상으로 즐겼다.
러닝타임은 다소 긴 145분이다. 이 정도의 상영시간이라면 놀라운 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야기(Story)와 서사(Narrative)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관객이 중간에 피로도를 느끼게 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옥에 티를 찾자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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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봉준호의 자화상, 영화적 선언
Bong Joon Ho · <Mickey 17>(2005) · 137min
"나를 왜 구해준거야?“ 마마크리퍼 에게 묻는 복제인간 미키. 눈보라치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우리가 아무 이유없이 반짝하고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미키는 블랙스톤이 실린 트럭에 나란히 타고 본부로 복귀한다) 그냥 돌덩이일 뿐인 블랙스톤에 위대한 업적을 새기려는 마샬처럼. 이렇듯 인간이라는 무의미한 생체기계안에 의미를 새기는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다.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 시작하는가, 출생하는 순간 시작하는가, 아니면 그 사이 어느 시점에서 시작하는가…,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과 북극의 이누이트 집단에 따르면, 인간의 생명은 이름이 지어진 뒤에야 시작한다.’(호모데우스 p.271)
일관된 메세지를 담는 봉준호의 영화들. 미키가 계속 죽고 다시 태어나도 자기 자신의 기억을 유지하는 것 처럼 봉준호의 영화도 계속 새로워지지만 본질은 유지되는 것은, 복제인간 미키라는 설정으로 하여금 <미키17>을 그의 자전적 영화로 집대성하기 위해서다.
”너도 나랑 같은 사람이라는 거지“ 라는 마샬의 냉소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미키18’은 머뭇거리지만, 끝내 다른 미키들과는 달리 자폭하며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다. 어쩌면 <미키17>에서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미키18’의 희생은 이 영화가 대중성과 특유의 메세지 전달방식간의 충돌을 의식한 설정일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미키17>이 그의 8번째 영화이기 때문이다. 원작인 [미키7]의 제목을 10번 더 죽여 <미키17>로 변경한 것에 대해 봉준호는 “미키를 7번 죽이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 답하였는데, 은유적 거리감을 두며 동시에 그의 영화적 생명력과 지속성을 강조한 일종의 영화적 선언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영화가 기대된다)
가만히 보고있자면, <미키17>에서는 거슬릴정도로 카메라에 대한 직,간접적 은유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어린시절 차에서 누른 빨간버튼, 동그랗게 고인 피(그리고 소스), 자폭버튼같은 것들은 마치 카메라의 빨간 녹화버튼 처럼 보인다.
영화 속 자동차 안의 5살 미키는 그의 인생에서 빨간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봉준호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로 한 것 이다. 그 순간, 아름다운 햇살과 따스한 어머니의 품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부조리한 사회와 기괴한 생체기계들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감상주의와 이데올로기로의 탈피다. 먹음직한 식탁 위, 크리퍼의 꼬리를 갈아 만든 선홍빛 소스의 달콤한 맛을 치우고 우리 앞에 남은 것은 익히지 않은 날것의 배양육 스테이크라는 것 이다.
영화가 아닌 실재는 어떤 모양인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극장에 앉은 지금은 영화를 통해서다. 전기톱으로 신체를 자르는 스너프필름은 32k카메라로 선명히 담으려는 티모와는 다르게 본부 밖을 향하는 감시카메라는 놀라우리만치 흐릿하며 좋지 않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 설계된 본부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온전하고 바르게 보고 있는 걸까?
인류가 갈고닦아 온 우리의 뛰어난 기술력은 괴물 크리퍼와 대화까지 가능한 통역기를 발명할 수 있었다. 비록 아직 테스트 단계지만 말이다. 과학자 도로시가 개발한 이 통역기는 봉준호가 제시하는 과학윤리의 방향성이 아닐까.
이미 폐허가 되가고 있는 지구를 떠나 니플하임으로 향하는 광막하고 무한한 우주를 떠도는 인류는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행복한 세상을 꿈꾸기 위해 우리는 우주선을 만들었던 것 이다. 영화는, 빠르게 목적지로 도달하기 위해 거슬리는 것들은 모두 거세해야 하는 것 만이 과연 정답일까 하는 질문을 고스란히 남긴다. 성공적인 테라포밍 후 그 뒤엔? 또 다른 행성으로 향하는 새로운 우주선을 개발하는 무한한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미키는 모든 소동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으스스한 꿈을 꾼다. 바닥과 일파 마샬의 손바닥 위 동그랗게 고이는 붉은 선혈, 스스로 재프린팅 되는 마샬의 몸. 빨간 점, 즉 피가 강조되는 이유는 왜일까. 기계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 사이의 모호한 경계. 인간의 자아와 경계를 넘어서서 위협을 가하는 미래에 대한 공포일까. 더 이상 AI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공지능 'HAL 9000' 의 기계장치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죽어가는, 그저 복제인간일 뿐인 미키를 품에 껴안고 진심으로 슬퍼하는 ’나샤‘처럼, 과거에 사라져간, 앞으로 태어날,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세상 모든 익스펜더블을 위해, 크리퍼와의 공존을 위해, 인류를 위해 우리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미키17>은 사랑영화인 것이다.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매끄러운 공이 평평한 바닥을 굴러가듯(장르적 쾌감) 부드럽진 않아도 네모난 기계가 울퉁불퉁한 계단을 올라가듯 (영화 내 잠깐동안 후경에 이 모습이 실제로 보인다) 기계처럼 정교하게 잘 짜여진 이 영화는, 대중의 시선과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봉준호의 강렬한 소신과 따듯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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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알려줘 흥행 멈추는법
<파묘>의 흥행독주. 역대 박스오피스에서도 20위까지 올랐다는데요!
이번주 박스오피스 분석 함께해요[국내박스오피스]
이번 주말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파묘>. <파묘>는 지난 2월 22일 개봉 이후 단 하루를 제외하곤 1위를 놓치지 않았는데요. 국내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해운대>를 넘어서며 20위에 올랐습니다. 1200만 명을 넘기게 된다면 <변호인> <부산행>, <택시운전사>를 제치며 17위에 오르게 되는데요. 과연 <파묘>는 또 한 번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요?
[북미박스오피스]
영화 <고질라X콩:뉴 엠파이어>가 2주 연속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누적 매출액 1억 3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한편 개봉주 2위에 오른 <몽키맨>이 누적 매출액 1000만달러를 기록, 3위에 오른 <고스트 버스터즈: 오싹한 뉴욕>이 8000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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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맬컴과 마리> 말다툼 그 자체가 드러낸 영화의 진정성
1. 지난 2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맬컴과 마리>는 단출하다. 등장인물은 남녀 주인공 단 2명이다. 영화의 배경은 집 안팎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흔한 회상 장면 하나 없이 하룻밤 동안 이루어지는 '맬컴(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마리(젠데이아 콜먼)'의 대화가 사건의 전부다. 그래서 영화감독인 맬컴과 배우 지망생이었던 마리 간에 말싸움과 화해, 또 다른 말싸움과 화해, 그것들이 반복될 뿐이다. 흔한 플래시백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 화면으로 장식되어서 화려한 영상을 즐기는 재미도 없다. 그러나 기교 없이 두 사람이 살아온 상이한 세계의 충돌을 진한 감정선에 담은 <맬컴과 마리>는 오히려 그렇기에 영화적인 영화다.
2. <맬컴과 마리>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영화를 세상에 선보인 맬컴은 평론가들의 호평과 관객들의 박수 세례에 매우 들뜬다. 반면에 마리는 무슨 이유에선가 기분이 좋지 않다. 축하주를 들자는 맬컴의 제안에, 평론가들의 평가와 대화를 들려주는 맬컴의 목소리에 그녀는 도통 집중하지 못한다. 맬컴은 마리의 태도에, 마리는 그 이유를 짐작조차 못하는 맬컴의 모습에 화가 나면서 둘은 길고 긴 말다툼의 시작을 알린다.
사실 이러한 오프닝은 로맨스 영화에서 빠지기 어려운 클리셰다. 현실에서도 적지 않게 경험할 수 있는터라 보는 사람을 순식간에 홀리기는 하지만 흔한 로맨스, 멜로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말싸움의 발단을 보여주는 방식은 이 작품이 한 커플의 갈등 그 이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둘은 분명 한 공간에 있지만 동시에 한 공간에 없다. 웬만해서는 컷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몇 분간 두 주인공은 방과 거실, 부엌과 거실, 거실과 테라스 등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 부엌과 거실을 좌우로 오가는 카메라 사이에는 창문틀과 같이 세로로 그어진 선이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서로의 거리, 음악과 같은 방해물 때문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제대로 된 대화도 되지 않는다. 이후 반복되는 듯 조금씩 달라지는 둘의 대화는 왜 둘 사이가 분리되어야 했는지,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 나간다.
3. 둘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서 언쟁을 벌인다. 맥 앤 치즈를 먹을지 말지로 시작된 둘의 대화는 이내 맬컴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평단의 평가 내용에 대한 의견 교환으로 이어진다. 맬컴이 자신을 감사 소감에서 빼놓은 것에 대한 마리의 불만,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 과거에 만났던 이성과 그들의 과거사가 그 뒤를 따른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영화를 둘러싼 말다툼이다. 구체적으로는 영화에 대한 의견의 충돌, 이 언쟁의 내용이 작품에 부여하는 통일성이 흥미롭다. 맬컴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흑인 여성이 미국의 의료제도 내에서 감내해야 하는 젠더 폭력을 다루는 진정한 걸작이라고 평가한 비평가를 신랄하게 욕한다. 그는 영화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고, 단지 "마음과 찌릿함"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화낸다. 영화가 한 인물을 어떤 미스터리 안에 녹여내는지 그 아이디어와 기교가 정치적의 의도에 앞서야 한다면서.
그러자 마리는 맬컴에게 말한다. 너에게는 그 마음에 있어야 할 진정성이 없다고. 너도 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나의 아픈 기억과 추악함을 아름답게 바꿔 놓으면서 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기회를, 내 진정성을 드러낼 기회를 없앴다고. 영화가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열을 내는 맬컴에게 그조차도 그 사실을 상쇄하려고 유식한 척하는 거라고 일갈한다. 영화가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예술 형태인 이상 그도 이미 정치적 의도와 메시지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순을 일깨운다. 배우 지망생에 불과한 자신과 달리 그가 대학을 나오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영화감독이라는 점에서 인종 문제와 별개로 사회적 기득권이라는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4. 이때 영화를 둘러싼 갈등을 창문 삼아 둘의 말다툼을 다시 들여다보면, 맬컴과 마리의 대화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체성의 대립이자, 그것들의 단면을 조각조각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평론가의 비평에서 시작되어 다시 그 비평으로 되돌아오는 그들의 언쟁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격렬한 토론의 장이기 때문이다. 둘은 흑인이라는 정체성 안에 묶여 있지만 남녀, 대학 경험의 유무, 기득권과 비기득권, 영화감독과 배우 지망생 등 다양한 정체성의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결코 같은 관점에서 대화할 수 없다. 맬컴이 마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거나 그녀를 캐스팅하지 않은 일도 각자에게 전해지는 무게감은 천지차이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진정성, 맬컴과 마리의 외양으로 드러난 진정성은 일원화할 수 없는 수많은 정체성의 차이인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정체성들의 충돌, 한 개인의 인생과 또 다른 개인의 인생이 총체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을 맬컴의 말마따나 실로 영화적으로, 멋진 아이디어와 기교로 담아낸다. 우선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는 인종문제에 감춰지기 쉬운 수많은 정체성의 갈등을 보다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세상이 전부 흑백인 세계에서 배우들의 피부색보다는 배우들의 입으로 전달되는 내용 그 자체에 더 주목이 간다.
스크립트를 쓰는 맬컴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와중에도 하나하나 말로 설명하는 것에 비해 마리가 잠깐의 소극을 보여주며 맬컴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해시키는 방식 역시 그 자체로 영화적이다. 영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는 심금을 울리는 대사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배우의 연기력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저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두 주인공 사이에 오가는 대사, 표정, 제스처 안에 녹여내는 것 역시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가장 진정성 있게 풀어놓는 방식으로 보인다. 그 결과 미니멀한 연출을 만난 젠데이아 콜먼과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연기력은 더욱 빛난다.
5. 2시간에 걸친 격렬한 언쟁은 맬컴과 마리가 거듭 싸우는 와중에도 거듭 키스와 스킨십을 서로에게 퍼부은 것처럼 화해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서로를 잡아먹을 것 같던 상처 주는 말들의 형언으로 가득하던 영화의 결말은 아무런 대사 없이 조용하다. 화해하는 모습을 원경에서 뒷모습만 잡을 뿐이다. 어째서일까.
서로가 감추어 두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후련히 털어냈기 때문은 아닐까. 비로소 서로의 세계와 상황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의 대화, 폭언, 언쟁, 고함이 없어도 진정으로 서로에게 감사함을, 존중을,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마치 영화가 온전히 맬컴과 마리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영리하고 신선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동시에 가감 없이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모두 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기에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두 사람의 충돌을 진정성 안에 써 내려가는 <맬컴과 마리>는 실로 영화적인 영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싸움의 이면에서 벌어진 진정성 있는 인생, 영화, 세계의 충돌과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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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 이후 긍정적인 평을 얻고 있는<파묘> .
<검은사제들> <사바하>를 연출하며 한국 오컬트계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장재현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요. 이도현과 김고은의 파격 변신으로 벌써부터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파묘>!
이번주 개봉예정작 함께해보아요.
파묘
Exhuma
ⓒ 네이버영화
개요: 미스터리, 공포 | 한국 | 134분
감독: 장재현
출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개봉: 2024.02.22.
배급: ㈜쇼박스
시놉시스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한다.‘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CINE PICK!
베를린 영화제 공개 이후 전반적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파묘>. 이도현의 첫 상업영화 출연작, 최민식이 출연하는 첫 오컬트 영화로 예고편 공개 직후부터 각 배우들의 파격 변신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사전 예매가 벌써 11만 명을 넘어서며 설날의 침체된 한국 영화관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 네이버영화
개요: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33분
감독: 알렉산더 페인
출연: 폴 지아마티, 더바인 조이 랜돌프, 도바닉 세사
개봉: 2024.02.21.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시놉시스
함께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혼자였다 1970년 바튼 아카데미,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두가 떠난 텅빈 학교에는 세 사람이 남게 된다. 고집불통 역사 선생님 ‘폴’, 문제아 ‘털리’ 그리고 주방장 ‘메리’ 이들은 원치 않았던 동고동락을 시작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순간,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특별한 우정을 나누게 되는데…
CINE PICK!
할리우드의 명품 조연 ‘폴 지아마티’가 <바튼 아카데미>의 주연을 맡으며 세계 유수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으로 외로움과 대한 가족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담은 코미디 드라마 영화입니다.
윌레스와 그로밋 더 클래식 컬렉션
Wallace & Gromit The Classic Collection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영국 | 89분
감독: 닉 파크
출연: -
개봉: 2024.02.21.
배급: 주식회사 에이컴즈, CGV ICECON
시놉시스
천재 발명가라기엔 2% 부족한 주인 월레스 그의 동반자 천재 반려견 그로밋 그들의 평범한 일상에 수상한 손님들이 나타났다!? 치즈를 구하러 달나라로 ‘화려한 외출’을 떠난 어느 하루와 비밀을 숨긴 하숙생과 펼치는 ‘전자바지 소동’ ‘양털 도둑’으로 인한 그로밋의 수난시대까지!
CINE PICK!
영국의 단편 클레이 애니메이션 시리즈 <윌레스와 그로밋>은 영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인데요. 영화는 ‘화려한 외출’ ‘전자바지 소동’ ‘양털 도둑’등의 단편들과 국내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특별 에피소드까지 포함하여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
Sound of Freedom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 미국 | 131분
감독: 알레한드로 몬테베르드
출연: 제임스 카비젤
개봉: 2024.02.21.
배급: (주)NEW
시놉시스
아동 성범죄자를 추적하는 정부 요원 ‘팀 밸러드’. 288명의 범죄자를 체포한 에이스 요원이지만, 정작 피해 아동은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거대 인신매매 조직에 잠입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는데…
CINE PICK!
작년 미국에서 개봉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한 흥행작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인신매매 구출작전을 펼친다는 미국 비영리단체의 인물 중 하나인 팀 발라드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제작비의 10배나 되는 흥행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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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같은 얼굴을
극장의 존폐 위기를 말하는 시대다. 코로나19의 영향을 영화계만 받은 건 아니지만, OTT 경쟁의 시대까지 겹치면서 영화계는 예상보다도 큰 타격을 입었다. CGV는 한동안 극장을 축소 운영했고, 상상마당 시네마를 비롯한 작은 영화관들도 잠시 문을 닫았으며, 서울극장조차 역사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영화의 주요 수입원인 극장이 휘청거리는데 영화계가 휘청거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좋은 성적이 기대되던 영화들조차 극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겼고, 어렵게 개봉한 영화들도 흥행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흐름이 반복되면서 제작 자체가 위축될 위기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악순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티켓 값에 포함되는 영화진흥위원회 발전기금 또한 고갈 위기라는 말이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긴급 좌담회가 열리고, 의견을 개진하고... 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극장가의 반등이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와중에 CGV는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 코로나19 이후로만 몇 번째인지. 어려움은 알겠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변방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CGV 이 망할 것들아... 망하지 마... 제발.
그러던 중,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영화의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강진아 배우의 옆얼굴을 보는 순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아라는 배우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고 꼭 힘주어 말하고 싶다. 그를 자주 본 것은 아니다. 몇 페이지나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내가 제대로 본 것은 <소공녀>와 <빛과 철> 두 작품뿐이다. 그러나 볼 때마다 기억에 남았다. 잠깐 내려와 링거를 꽂으면서도 예의상의 친절함과 싹싹함을 잊지 않는 사회인 문영의 얼굴이.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다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여동생에게 참다 참다 한 마디 건네는 올케 소은의 얼굴이. 평생 문영과 소은으로 살아온 사람이나 지을 수 있는 표정과 아우라를 내뿜고 있어서. 억지로 아우라를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건 더 어려울 것 같은데 강진아라는 배우는 늘 멋지게 해냈다. 그래서 더 길게, 더 자주 보고 싶다 생각하던 배우였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그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영화다. 이 어려운 시국에 봄처럼 찾아와, 들꽃처럼 보는 이의 마음마저 다정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영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태어나길 잘했어' 말해주고 싶은 영화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주인공은 배우 강진아가 연기하는 춘희. 걸어간 자리마다 척척한 물 발자국이 남을 만큼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을 앓고 있어, 수술을 받기 위해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어려서부터 얹혀 산 친척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서도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성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외로운 이들이 으레 그렇듯, 춘희의 성실도 바라보는 입장에서 속이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 정도 천성이기도 하겠지만, 기댈 데 없이 오래 살아온 이의 노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일 마늘을 까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식구들이 모두 떠난 옛날 집에서도 어린 시절 쓰던 좁은 다락방에서 잠을 청하고, 그렇게 조용히 성실하게 살던 춘희의 일상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춘희도 앞으로 나아간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가장 큰 장점은 촘촘하게 설계된 인물들이다. 영화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까지 세심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세필화처럼 꼼꼼하게 그려냈다. 그 결과 생생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이 가득해서, 인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마음이 훈훈해진다. 잘 그려낸 인물은 그 자체로도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인물들 상당수가 이 각박한 세상을 훌륭하게 헤치고 살아가기엔 좀... 쉽지 않을 것 같은, 어딘가 어수룩하고 그래서 귀여운 사람들이다. 주황과 춘희 사이에서 오가는 연애의 스파크는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풋풋해 사랑스러우며, 어느 날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는 과거의 춘희와 현재의 춘희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춘희라는 인물이 잘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발돋움해 왔음이 느껴져 뭉클하다. 자기도 넉넉하지 않으면서, 마주친 노숙자의 걸걸한 태도에 겁을 먹었으면서도 그 옆에 신발을 놓아두고 가는 춘희의 다정함 또한, 인물들 사이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 사이에서 춘희의 성장은 정말, 민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궤적을 남기고 일어난다. 늘 속 없는 사람처럼 미소를 짓거나 덤덤하게 대답하던 춘희가 마침내 하고 싶었던 말을 또박또박 전하는 순간, 옆얼굴임에도 불을 품은 것처럼 빛나는 눈동자에서 형형한 힘이 느껴졌다. 그건 춘희라는 인물의 성장이자, 강진아라는 배우의 빛이었다.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이야기를 나아가게 할 정도로 인물이 힘이 있지만, 정작 사건은 크게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조금 산발적이다. 과거 춘희와 현재 춘희의 교감은 기대보다 훨씬 미진하게 진행되었고, 정작 개인적으로는 크게 기대하지 않은 주황과 춘희의 연애사가 훨씬 재미있었다. (둘의 연애는 정말 너무 하찮고 너무 귀엽다.) 사건이 조금 헛도는 느낌이라,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메시지가 의도만큼 힘 있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느꼈다.
아쉽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몇 번이나 손가락을 머뭇거렸다. 나는 왜 이 영화에 아쉬움을 느꼈으면서도 아쉽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가. 사람마다 취향과 기준이 다른데 좀 아쉬울 수도 있지, 그 사실을 왜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있는가. 이유가 뭘까. 이 마음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니, 이 영화의 진심에 공명하는 마음이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주목한 끝에 빚어진 영화라는, 이들을 안아주는 영화라는 진심이 분명하게 전해졌던 것이다. 이 영화만이 가진 힘은 인물을 촘촘히 설계했다는 것도, 배우들이 연기를 감탄 나오게 잘했다는 것도 (강진아 배우만 언급했지만 홍상표 배우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호연도 대단히 빛나는 영화다)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을 향한 애정에 있었다.
주황과 춘희가 처음 만난 모임처럼, 어수룩하고 상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신경림의 시 한 구절처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다정하게 보듬는 것. 그게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와 관객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달팽이 점액처럼, 땀 찬 손처럼 끈끈하게.
모두가 오래 버텨온, 버틸 힘이 점점 사라져 가는, 어렵다고 말하는 시대다. 영화들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어려운 때에, 봄꽃 같은 이 영화의 얼굴을 본다. 독립영화의 면면을 이뤄온 배우들의 든든한 얼굴을, 다정한 마음을 가득 담아 영화를 만든 제작진의 이름을, 영화 속 펼쳐지는 배경의 나지막하고 다정한 길거리를.
망하지 않을 거다. 힘들고 모자란 대로 끈끈한 손을 맞잡는 이런 영화가 있는 한. 이 영화 정말, 태어나길 잘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봄꽃 같은 얼굴을 마주하고 행복해지길. 태어나길 잘했다는 말을 다정하고 질척하게, 더 많이 주고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CineLab'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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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도그로 잃어버린 몸찾는 액션 스릴러!
윤계상 배우가 주연을 맡은 유체이탈자가 개봉했습니다.
12시간 마다 유체가 이탈하여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는 신기한 설정인데요.
게다가 다른 사람을 옮겨다니는 사람이 기억을 잃은 상태라 더욱 긴장감을 높이죠.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긴장감은 높습니다.
핫도그와 노숙자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근접액션, 차량 액션, 총기 액션 등 다양한 액션이 포함되어 있어 볼거리도 많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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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walke starring actor Yoon Kye-sang has been released.
It's a strange setting that the fluid escapes every 12 hours and enters another person's body.
In addition, it raises tension even more because he who move around people have lost his memories.
The movie lead the story with limited space and limited characters, but the tension is high.
the main character track clues through hot dogs and homeless people.
There are many things to see as it includes various actions such as close action, vehicle action, and gun action.
Please refer to the video for detailed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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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그레이트 샤크> 메인 예고편
행복한 휴가를 떠난 5명의 여행객.
그러나 우연히 상어에 의해 훼손된 시체를 발견하고
그들의 여행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인다.
높아지는 불안감 속에 급히 수상 비행기에 오르지만
굶주린 상어 떼의 습격으로 망망대해에 조난 당하고 만다.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탔지만
그들 주위를 맴도는 식인 상어 떼로 인해
점점 두려움이 극한으로 치닫는데…
극한의 공포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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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30초 예고편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슬픔과 갈망을 들여다보는 최면술사 ‘제니아’.
그의 능력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마을이 떠들썩해진다.
모두가 그를 만나고 싶어 혈안이 된 가운데, 미스터리에 감추어진 ‘제니아’의 최면술이 사람들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당신의 불행과 고통을 몰아내는 중입니다. 제가 셋을 세면 눈을 뜹니다. 하나, 둘, 셋,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