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오늘날 아일랜드의 HIV 감염인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강렬한 고찰을 담은 영화. 당사자 발화 예술과 사회적 낙인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이다.
PROGRAM NOTE
숀 던 감독은 2017년 연극 「급류」를 발표했다.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는 HIV/AIDS 감염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을 구성하여 만든 연극이었다.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러 숀 던 감독은 공동 연출자 애나 로저스와 함께 과거 인터뷰이들을 다시 찾아가 카메라에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리고 과거 연극을 만들 때 얼굴과 이름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연극적으로 재현했던 배우들을 중첩시켜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재의미화한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가상의 충돌은 아일랜드 사회가 HIV/AIDS를 어떤 방식으로 터부시했고 감염자들을 차별해 왔는지 깨닫는 기회로 다가온다. 또한 6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감염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된 변화가 그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활동가의 역할이었음을 확인시킨다. 비밀을 말할 수 없는 자들에게 비밀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이 사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일랜드의 상황을 넘어 한국의 상황 속에서 감염인 당사자의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전해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동윤]
한 가지 개인적인 경험. 나는 HIV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다. 그것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여기까지 듣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인도에서 HIV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집집마다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도록 하고… 뭐 그런 일을 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내 손을 붙들고 우는 아주머니의 손등을 토닥이거나 등허리를 끌어안기도 자주 했다. 그들이 해준 음식을 먹거나 그들과 같은 모기에 물리는 것으로는 옮지 않지만, 혹시나 알게 모르게 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가 나 있었다면, 그래서 혈액과 혈액이 닿는다면, 옮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적지만 존재했다. 사실 그러다가 옮는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 검사를 받으려니 머뭇거리는 내가 있었다. 결국 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참을 뭉적거리다, 채용 검진을 받아야만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병원에서 같이 검사를 해버렸다. HIV 검사 결과는 채용 검진 결과보다 늦게 나오니 따로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HIV 검사 결과만을 받아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이름을 부르더니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거다. 아니 왜? 음성이라면 그냥 결과지만 주고 끝내도 되는 거 아닌가? 왜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하지? 나 혹시라도 양성인가?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들어선 진료실에서 나는 거의 U턴하다시피 했다. “음성입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 마디만 딱 듣고.
아주 짧은 시간의 간접 경험으로도, 그려볼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바이러스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지를. 그 바이러스가 단순히 몸을 아프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인 낙인과 함께 온다면?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HIV/에이즈가 차별, 멸시, 낙인의 대상이 아닌 사회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도에서의 그것과 아일랜드의 그것은 분명 다를 텐데. 이 영화 속 사람들은 어떤 사회를 살아가며,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누군가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들어간 영화관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뜻밖에도 매우 연극적인 독백이었다. 이어 아예 대놓고 연극 무대와, 연극을 연습하기 딱 참해 보이는 체육관마저 나온다. 이토록 연극적인 느낌으로 펼치는, 고백과 비밀에 대한 독백. 그러나 내용을 들어보면 지극히 보편적인 말이다. 이건 사실일까? 아니면 연극 연습일 뿐인 걸까?
사실은 곧 밝혀진다. 숀 던 감독은 영화에 직접 뛰어들어, HIV 감염인들을 만나고 이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직접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명과 대역을 쓰지만, 이들은 가명과 대역 뒤에 숨는 게 아니라 이 또한 목소리를 전하는 한 가지 방법임을 느끼게 된다. HIV가 왜 사회에서 침묵과 회피의 주제가 되었는지, 왜 당사자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지 숀 던 감독은 질문한다.
1인칭의 목소리는 힘이 있다. 언제나 그렇다. 똑같은 이야기도 보고서의 단조로운 톤으로 읽으면 ‘그런가 보다’ 싶은데, 누군가가 1인칭의 경험담으로 묶어내는 순간, 그냥 담백한 사실의 나열만 해도 저절로 힘을 갖는다. 보다 보면 왜 이 영화가 세상에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다. HIV 감염인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나와야 한다. 삶은 계속되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척해서도 안 된다. HIV의 고통—꼭 관련 질환보다는 사실 사회적인 시선과 불안이 더 큰 그 고통—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할 필요가 있다.
현명하고 생생하게 연출해 낸 덕분에, 관객은 이 영화가 표상하는 인물들과 쉽게 연결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을 마음이 생긴다. 영화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조금 울컥했다. 세간에서 HIV는 지난 세기 죽음의 공포로 다가왔다가 잊힌 것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꼿꼿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절망시킬 것도 아닌. 한 바퀴 돌아 삶을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는 어떤 것.
이 영화에도 나오지만, HIV 감염인을 “PLWH” 혹은 “PLWA”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eople living with HIV/AIDS, 그러니까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의 로비가 낙인을 강화한다며 못마땅해하는 ‘sufferer’라는 표현도, 우리가 ‘환자’라고 했을 때 단어 대 단어로 달달 외운 ‘patient’라는 단어도 적절치 않다. 사실 HIV는 바이러스이니 보균자 혹은 감염인이 맞고, AIDS의 S는 신드롬, 질환의 가능성을 안은 상태를 뜻하니 환자라는 말도 적절치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에이즈 환자’라고 느껴, 적절한 표현을 많이 고민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인도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주로 가족 단위였으며, 그래서 가족으로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방법에 대한 건전하고 올바르고 밝은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아마 한국에서라면 ‘에이즈 환자’를 위해 뭘 하든 훨씬 힘들었을 거라고. 한국에서 HIV/에이즈로 신고한 사람의 96%가 남성이다. 가족 단위로 이야기할 내용은 이미 아니라는 뜻이다.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의 비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세계적으로 에이즈는 감소세였는데, 한국은 증가세를 보였다가 오히려 반대로 코로나 이후에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숫자만으로 함의점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예감이 있다. 인도 사람들보다, 이 영화 속 아일랜드 사람들보다, 우리나라의 HIV 감염인은 입을 쉽게 열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데 내가 HIV 감염인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그래서 이들과 내가 과연 무엇이 다르지?”였다. 물론 그중에는 감염인 상태로 매일 밤 다른 상대를 찾아 침대로 끌어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교통사고로 수혈을 잘못 받아 안타깝게 감염인이 되었다가 시력까지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긴 하다. 나 개인과 비교했을 때 보다 보건 차원에서 문제 있는 생활을 한 사람도 있고 훨씬 기구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HIV 감염인에 곧장 꽂히는 차별의 시선과 달리, 비감염인의 삶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일상에 큰 차이가 없었듯이, HIV 또한 사실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에 깊숙하게 뛰어들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으고 그들의 입이 된 숀 던 감독이 대단해 보였다. 각자의 이야기와 이름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가릴 자리를 잘 알고 가린, 영리한 연출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터부시하는 것과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질문을 던지며, 이 사회의 감염인들의 목소리를 궁금해한다. 좋은 영화는 이렇게 나의 생에 질문을 떨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