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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글다2025-05-30 15:37:45

숨차도록 뛰어간 그곳에서도 무니가 행복할 수 있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후기

 

 

생존기 ≠ 어드벤처

 

 

 

동화 속 주인공들이 살 것 같은 보랏빛 건물과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 그리고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까지 더해져 ‘디즈니월드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라는 포스터 속 홍보 글은 꽤 영화의 분위기와 맞아 보인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동화 같던 보라색 건물은 히든 홈리스들의 주거지인 모텔이고, 아이들도 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영화에는 보랏빛 건물과 무지개, 아이들도 모두 존재하지만 ‘디즈니월드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새로운 차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신나게 달려간 아이들의 다음 행동이 차에 침을 뱉고, 말리는 어른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밝은 에너지와 명랑함을 보여주는 아이들이지만 복지 밖의 그늘에서 찌든 묵은 때는 숨겨지지 않는다. 영화는 신나는 어드벤처가 아닌 아이들의 시선으로 포장한 ‘히든 홈리스’(모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의 생존기이다.

 

 

 

동화가 아닌 현실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다 밝힌 션 베이커 감독의 말처럼,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내용은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고 현실적이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더라도 똑같이 자신의 삶을 살 것 같은 다큐멘터리처럼 모텔 ‘매직캐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중 전기차단기를 내린 아이들 때문에 사람들이 객실 밖으로 나오는 신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롱쇼트를 가득 채운 히든 홈리스들과 매직캐슬의 거대한 모습은 관객들을 압도한다. 그 속에서 관객은 짐작만 했었던, 말 그대로 숨겨져 있는 수많은 히든 홈리스들을 처음으로 직시한다.

 

 

 

동화처럼 보이려는 카메라와 달리, 감독은 동화를 보여줄 생각이 없다. 악당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계속되는 동력은 아이들의 웃음과 밑바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부딪침 뿐이다. 점점 커지는 충돌과 반대로, 변함없는 아이들의 웃음은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끝을 향해 나아간다. 악당의 소행이 아닌 단순한 이해관계의 충돌. 영화는 그게 다이다.

 

 

 

적나라한 현실 속에서도 관객들은 ‘영화’라는 매체에 거는 기대로, 동화 같은 끝맺음을 희망한다. 그리고 매직캐슬의 관리인 바비의 등장은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무니의 짓궂은 장난도 받아주고, 위험에서 지켜주는 모습은 ‘조력자’라는 명칭을 얻기에 충분하다. 바비가 무니를 입양하는 동화 같은 엔딩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상상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악당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동화 속 주인공의 단짝인 완벽한 조력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비는 무니를 입양해 행복하게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들에게도 버림받은 매직캐슬의 101호 투숙객이다. 현실엔 동화 같은 끝맺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관객을 끝없이 추락시킨다.

 

 

 

쓰러진 나무 딜레마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무니는 젠시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좋아하냐면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이야(Cause it’s tipped over, and it’s still growing)”. 쓰러진 나무처럼 무니도 쓰러진 채로 자란다. 모두가 하늘을 향해 자라지만 무니는 중력을 거스를 힘이 없기에 묵묵히 자신의 방향으로 자란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자라는 것이 맞듯, 무니도 적절한 보호와 양육을 받으며 자라야 한다. 그렇지만 엄마 앞에서도 울지 않았던 무니가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딜레마에 빠진다. 옳은 것이라도 이렇게 싫어하는 아이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맞는 것일까?

 

 

 

디즈니월드

 

 

 

시네마스코프 비율과 35mm 코닥 필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술력으로 테마파크 분위기까지는 어찌저찌 만들어낸 키시미의 매직캐슬과 달리, 매직킹덤은 핸드헬드 기법으로 쉴 새 없이 흔들리면서 아주 잠깐 보임에도 디즈니월드가 세계 최대, 최고의 테마파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디즈니월드는 꾸며내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행복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영화 속 잠깐의 등장이, 무니가 (비록 원하지 않았지만) 이제 겪을 세상은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도 아름답고 컬러풀한 세계일 것임을 의미한다고 믿고 싶다.

 

 

 

비록 떠나는 뒷모습만 보여주기에 웃음을 짓고 있는지, 눈물이 맺혀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무니는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엔딩크레딧 뒤로 들리는 디즈니월드의 소리는 아이들이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 웃고 있을 것이라는 감독의 약속을 속삭이며 관객들을 현실로 돌아오게 해준다. 무니의 모험은 영화가 끝난 이후 시작된다.

작성자 . 맹글다

출처 . https://brunch.co.kr/@nomin-zoo/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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