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04 11:30:29
1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박스오피스

<베놈: 라스트 댄스>가 개봉 2주 차에도 국내와 북미에서 주말 관객 수 1위를 지켰습니다.
이전 시리즈보다 다소 낮은 오프닝 스코어로 출발해 향후 성적이 주목되었으나,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이 2억 달러(약 4,143억 원)를 돌파하며 우려를 잠재웠습니다.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였고, 북미에서는 9,000만 달러의 누적 수익을 거두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주에는 프랑스에서 650만 달러(약 89억 7,650만 원), 일본에서 380만 달러(약 52억 4,780만 원), 중국과 멕시코에서 각각 7,060만 달러(약 974억 9,860만 원), 1,340만 달러(약 185억 540만 원)의 수익을 거두며 시리즈의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타 슈퍼히어로 영화들보다 적은 예산인 1억 2,000만 달러 (약 1657억2000만원)로 제작된 <베놈: 라스트 댄스>는 이러한 흥행에도 시리즈 1, 2편의 성적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극한직업> 이후, 류승룡, 진선규가 의기투합한 <아마존 활명수>와 <보통의 가족>이 주말 박스오피스 2, 3위를 기록했으나, 각각 누적 관객 수 36만 명, 59만 명에 그치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북미에서는 <와일드 로봇>이 다시 2위를 탈환하며 장기 흥행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스마일 2>가 3위로 내려왔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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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을 위해 독립을 외치다
영웅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에도 왜곡된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들에게 딱 맞는 영화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비롯한 이야기들이 '선동'으로 비롯된 것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분명한 건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영화 '영웅'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국내 창작 뮤지컬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뮤지컬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내며 웅장함을 더한다.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진실의 노래가 전체를 울린다.
투사들의 이야기
먼저 떠나보낸 동지들을 마음에 품고 앞으로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추운 곳에서 뜨거운 결심을 다지는 독립투사들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개개인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은 채, 열강의 욕심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무력하지만 나라를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건 이들에겐 그리 중요치 않다. 그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어떤 순간에서도 강한 힘으로 치환되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을 헤쳐나간다. 그리곤 오직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친다.
누가 죄인인가.
그렇게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저마다 처한 상황 속의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점점 의지를 굳건히 다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또한 그날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미한 사건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하면서도 모두를 위한 일로 자리 잡는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애국심이 영화 속 장면들로 인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선 침략의 원흉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재판이 시작된다. 일본인 판사, 일본인 변호사, 일본인 방청객으로 구성된 이 부당한 재판 속 누가 죄인인가.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
역사영화의 대부분은 그 자체의 연출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의한 감동이 훨씬 앞서기 마련이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큰 감정을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표현되고 뜨거운 웅장함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또한 오글거릴 것 같았던 노래가 자연스럽게 흐르며 영화의 조화를 균형있게 맞춘다. 다소 빈약한 감정선과 부족한 내면의 소리로 인해 아쉽게 느껴지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 미세함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강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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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씨의 애틋하고도 치열한 삶을 응원하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니얼굴>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니얼굴>은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의 인기 셀러인 '은혜씨'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은혜씨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녀의 부스에 방문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며 얼굴을 그려주고 있다.
'니얼굴 작가' 은혜씨는 예쁘게 그려달라는 사람들에게 '원래 예쁜데요 뭘~'이라는 말을 넌지시 던지는 그런 사람이다.
은혜씨가 캐리커처를 그리게 된 계기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은혜씨의 그림에서 특별한 재능을 찾아낸 그녀의 어머니는 은혜씨가 캐리커처 일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캐리커처를 그릴 때도 옆에서 종종 조언을 해주었다.
영화의 곳곳에서 은혜씨의 어머니와 은혜씨가 투닥거리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순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은헤씨의 어머니 '장차현실'은 은혜씨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친구로서 그녀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예쁜 얼굴을 기록하곤 한다.
영화에 나오는 은혜씨의 그림들을 보다보면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얼핏 보면 투박해보이지만 어딘가 애틋한 느낌도 드는 그림들, 그리고 그림 속 얼굴들에는 사랑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이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곤 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서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바로 '은혜씨가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려서'이다.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던 은혜씨의 그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모든 그림들에 투영되었고, 이 마음들이 스크린 너머의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이 아닐까?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영화의 초반부, 은혜씨가 김정호의 노래 '하얀나비'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은혜씨의 전시회에서 우리는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과정이 담긴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 가사가 은혜씨와 그녀의 가족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자신만의 치열한 삶을 살아왔을 은혜씨, 그리고 이런 은혜씨의 그림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고 그녀를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한 어머니이자 화가인 장차현실,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낸 아버지이자 감독인 서동일.
이 영화를 통해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에게까지 웃음을 전해줄만큼 많은 다정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보냈을 그들이지만, 동시에 많은 서러운 순간들을 보냈을 그들이기에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라는 가사가 더 와닿은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누구든 그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그리고 자신만의 기억을 가지고 치열하고 애틋하게 삶을 살아가는 스크린 속 주인공을 보다보면 나도 내 삶을, 그리고 주변인의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삶을 조금 더 응원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힘을 가졌다. 생판 만나본 적도 없고, 대화 한 번 나눠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들이 구축해나가는 자신만의 삶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유쾌하고 따뜻했음 좋겠고, 괴롭고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보다는 마냥 행복하고 다정한 순간들이 많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은혜씨가 내게 이런 깨달음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참 고맙다, 은혜씨가.
많은 사람들이 영화 <니얼굴>을 통해 은혜씨의 밝고 유쾌한 미소와 그녀의 애틋한 삶을 꼭 마주하기를 바란다.
아마 영화관을 빠져나올 때는 관객 모두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담겨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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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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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독일군에 의해 침공당한 소련 어느 한 도시의 참상을 한 소년의 시각을 통해 조명한 작품.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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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
내가 여태껏 봐온 모든 전쟁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전쟁영화였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주인공이 군인으로 등장해서 전장에서의 그의 활약을 보여주거나, 나치영화의 경우에는 유대인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한 주인공 소년이 전쟁의 현실을 맞닥뜨리며 겪는 시련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했던 이 영화의 전개는 이 소년이 전쟁에 참여하여 폭탄을 실어나르든, 총을 쏘든 하며 그 군대에 어우러지고, 생존하는 전개였다.
근데, 이 영화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매우 현실적인 전쟁 상황을 보여준다.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들과 자란, 고등학생정도의 나이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 군대에 입대하면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적군을 향해 돌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소음에 정신도 못차리고 여기저기 숨느라 바쁠 것 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폭풍에 휩쓸려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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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주인공의 표정과 대사이다.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체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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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깊은 장면은 역시 마지막씬.
히틀러를 향한 주인공의 분노와 증오를 느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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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글이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되게 좋은 영화인만큼 여러분들이 한번쯤 감상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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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기회라는 <엔칸토>의 마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마법이 가득한 마을 ‘엔칸토’에는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가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미라벨(스테파니 베아트리즈)’만큼은 엔칸토의 마법 덕분에 초인적 괴력이나 치유력 같은 힘을 지닌 가족과 달리 아무런 능력도 가지지 못한 채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미라벨은 엔칸토를 둘러싼 마법의 힘이 위험에 처한 것을 발견하지만, 할머니 '아부엘라(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를 비롯한 가족들조차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평범한 자신이 오히려 가족과 엔칸토를 구할 마지막 희망일 것이라 생각하며 마법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작품인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디즈니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이 총망라된 영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답게 '가족'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키워드가 여전히 중심을 잡는 가운데,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과 넷플릭스의 <틱, 틱.. 붐!> 등을 제작하며 가장 핫한 뮤지컬 음악가로 떠오른 린-마누엘 미란다의 라틴풍 음악은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며준다. 이에 더해 폴리네시아 문화를 녹여낸 <모아나>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뒤를 이어 콜롬비아의 마을 엔칸토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보편적인 감성에 문화적 다양성을 더하려는 시도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그저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를 재확인하고 평범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는 전형적인 동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토피아>로 소수자와 약자의 정의와 진정한 역차별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겨울왕국 2>에서는 노르웨이의 '알타 분쟁'을 재해석해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비판했던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작품답게 <엔칸토>도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칸토> 속 마법은 뒤쳐질까 두려워하고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든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의 상징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엔칸토>는 가족 중 본인만 능력이 없는 미라벨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 아부엘라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중요한 일에서 배제당하기 일쑤이며, 가족이 아닌 이들로부터는 동정과 위로를 산다. 무엇보다도 능력의 유무가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선천적으로, 또 우연히 주어진 것이기에 미라벨의 아픔은 나날이 커져간다. 그래서 사촌동생인 안토니오가 능력을 받는 날 그녀는 실패로 끝났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동생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한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얻은 안토니오와 가족들이 사진을 찍을 때 함께 끼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절정에 달하고, 엔칸토의 마법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때 미라벨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로 사진기와 사진이 등장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과거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녀와 2021년을 살아가는 관객이 같은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디테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작중 사진기는 현실 속 인스타그램의 메타포처럼 보인다. 이전까지의 SNS와 달리 인스타그램은 텍스트가 아닌 사진과 짧은 영상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 문제는 사진과 이미지에 가득 담긴 자랑거리나 화려함이 여과 없이 전달되다 보니, 절망이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사용자들이 열등감과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그 화려함이 마치 마드리갈 가족에게 주어진 능력처럼 우연 혹은 선천적인 이유로 가능한 것이라면, 인스타그램을 보는 이들은 미라벨처럼 더 크게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접점은 결국 <엔칸토>가 미라벨을 통해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라벨의 깊은 좌절감을 보여준 후, 영화가 일반적인 전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엔칸토>는 미라벨을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고 숨은 능력을 찾기 위한 여정에 떠나보내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매개로 다른 가족들이 마음속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이를 통해 특출 난 능력을 지닌 이들도 능력이 없는 미라벨 못지않게 깊은 흉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라벨의 두 언니인 루이사와 이사벨라는 자신의 솔로곡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누구보다도 강한 괴력의 소유자인 루이사는 마을의 모든 사람을 돕고 다가오는 그 어떠한 위험도 자신이 막아야 한다는 기대에 지쳐가고 있으며, 자신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이사벨라는 설령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한다 해도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신의 본모습을 가로막고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토로한다.
영화는 미라벨의 입을 빌려 이러한 가족들의 상처가 엔칸토를 만든 마법을 지켜온 할머니로부터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갑작스러운 침략자들의 공격으로 인해 살던 집을 잃고 남편인 페드로와 사별해야 했던 그녀는 항상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받아야만 하고, 그 능력을 완전히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그녀의 신념이 낳은 기대와 의무감 때문에 능력을 받지 못한 이는 무시당하고, 능력이 있는 이들도 실패해해서는 안 되고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점점 피폐해진다고 미라벨은 말한다. 또 능력이 없는 자신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할머니에게 과도한 부담이 한 명 한 명의 개인을 억누르는 사이 공동체의 유대, 곧 마드리갈 가족의 유대와 가족을 감싸고 있던 마법의 힘이 무너진 것이라고도 항변한다.
사실 미라벨의 지적과 항변은 그저 영화 속 이야기로만 보이고 들리지는 않는다. 미라벨과 두 언니의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따르면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마땅한 구제책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실패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불안증, 강박적 완벽주의, 취약한 자부심"에 시달린다. 한편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이들은 "극심한 사기 저하와 함께, '나는 실패자야'라는 굴욕감"에 시달린다. 전자가 미라벨의 두 언니라면 후자는 미라벨이라 볼 수 있고, 이 경우 세 자매가 속한 마드리갈 가족은 결국 현대 사회에 대한 비유나 다름없다. 즉, <엔칸토>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쟁 체제와 이를 지탱하는 담론인 능력주의, 그로부터 배제되어 분노한 이들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이들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한 작품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엔칸토>는 실패한 이들을 위한 재도전의 기회와 서로 다른 개인 간의 연대 의식과 책임이라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미라벨의 삼촌인 예언자 브루노가 있다. 불길한 예언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의 미래를 잘못 보면서 할머니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던 그는 가족과 마을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처럼 가족 내에서 이질적으로 여겨지는 미라벨을 만난 후 자신의 실패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잡기로 결정하고, 미라벨의 조력자가 되어 마법이 약해지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영화는 두 번째 기회를 잡은 다른 이들의 모습도 비춘다. 미라벨에게 능력을 얻을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나,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다시금 위기에 처한 마드리갈 가족이 그간 도움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역으로 도움을 받으며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모습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왜 <엔칸토>에서 미라벨이 집과 엔칸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지, 왜 다른 디즈니 작품 속 주인공과 달리 여정을 떠나 성장하는 원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지 않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미라벨의 할아버지가 침략자들에게 맞서다가 사망했을 때 할머니는 주어진 마법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니, 엔칸토라는 마을과 그 마을을 만든 마법은 자체로 두 번째 기회다. 따라서 미라벨이 마주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모두 엔칸토 안에 있다. 그래서 엔칸토에 깃든 마법과 그 마법이 만들어낸 화려함은 단순한 시청각적 즐거움보다 더 깊고 큰 감흥과 통찰, 더 나아가 위로를 선사할 수 있다.
물론 <엔칸토>가 결점이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다. 마드리갈 가족에 속한 인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각 능력의 조합이 보여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전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 뮤지컬 애니메이션인데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 결국 마법이라는 환상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암시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디즈니스러운 결말이 내포한 근본적인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거나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충분한, 어쩌면 충분함 이상의 위로를 건네는 디즈니다운 매력이 가득한 우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A(Acceptable, 무난함)
배제당하거나 완벽해지는 것에 이골이 난 모두를 위한 두 번째 기회의 땅, 엔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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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는 셈 치고 이 메디컬 드리마를 봐야하는 다섯가지 이유
▷한줄평 : 우리에겐 영웅적 서사가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
▷드라마 : 중증외상센터, 넷플릭스 2025.1월
▷평점 : ★★★
지난 2025년 1월 24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메디컬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볼까 말까? 고민이다.
<종합병원>1994년, <허준>1999년, <하얀거탑>2007년, <뉴하트>2007년, <골든타임>2012년, <굿닥터>2013년, <낭만닥터 김사부>2016년,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년
등과 같은 메디컬 드라마를 보아 왔던 터라 뭐 새로운 게 있을까 싶다.
으레 뛰어난 의술을 자랑하는 천재 의사를 중심으로, 그를 추종하는 초짜 후배 의사, 노련하고 헌신적인 간호사,
그리고 주인공과 갈등을 일으키는 원장단의 인물 구도는 메디컬 드라마의 전형이다.
중간중간 위험천만하고 긴박한 수술 장면도 빠질 수 없고, 간간이 눈물 쏙 빼놓는 감동적인 사연과 신파가 들어가면 금상첨화이다. 뭐 이제 새로운 게 있을까?
그런데도, 요즘 <중증외상센터>를 보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지금 우리에게는 슈퍼 히어로가 필요하다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기만 하다. 작년 초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암초처럼 수면 아래 자리하고 있고,
최근에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위기는 정점으로 향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연일 TV 뉴스에 도배되는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이 지치고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를 일거에 해소해 버리는 백강현(주지훈)과 같은 슈퍼 히어로의 등장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이럴 때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판타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폭발음과 함께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블록버스터급 주인공의 등장 장면은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대놓고 이야기한다.
8부작 정주행하면 약 7시간(411분) 동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의 향연에 푹 빠져들 수 있다.
2023년에 이미 촬영을 마친 드라마를 이제서야 공개하는 것은 때를 보는 지혜가 남다르다고나 할까? 노림수가 엿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틸컷 / 출처 : 페이스북
둘째,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한국대학교병원 중증외상팀에 새롭게 부임한 백강현(주지훈)을 중심으로, 항문외과에서 스카우트된 양재원(추영우), 책임감 강한 시니어 간호사 천장미(하영),
마취통증의학과 레지던트 박경원(정재광)이 중증외상센터의 원팀으로 세워져 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나라의 중증외상센터가 법적, 제도적 미비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백강현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판타지 속 영웅들로 교화되어가는 듯하다. 마치 어벤저스팀과 같이 말이다.
이런 영향력은 드라마에서 중증외상팀을 중증외상센터로 발전시키고, 우리나라의 권역외상센터로의 외연의 확장으로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실제로 2012년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이국종법)에 따라 5개 권역외상센터(Regional Trauma Center)가 설치되었으며,
지금까지 총 17개의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주1] 한 개인의 성장이 조직의 성장과 전 사회의 성장까지 도모한다는 점에서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해 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틸컷 / 출처 : 페이스북
셋째, 생명을 살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중증 외상 환자 발생 비율이 사무직보다는 노동직이 높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주2]
외상사고는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버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거나, 화재가 발생하여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군대에서 총기 사고가 나거나, 산행 중 추락하는 등으로 발생한다. 이렇게 외상사고는 바로 나 자신, 나의 가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병원조차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드라마 장면 중 병원에서 가장 많은 수익이 나는 곳으로 장례식장, 식당, 주차장이 언급되는 것은 웃픈 현실이다.
그래서 의료시스템은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운영이 되어야 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우리나라가 암 치료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역량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중증외상사고 대응은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투자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준다.[주3]
그래서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 돈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본질에 충실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은 우리 사회에 무엇이 중요한지 경종을 울리는 일이다.
‘우리는 계속 뛰어야 했다. 환자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24시간, 365일. 한순간이라도 우리가 멈추면 누군가의 심장도 털컥 따라 멈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뛰어야 했다. 환자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기 위해 우린 계속 뛰어야 한다.'
<중증외상센터> Episode 03 : 우린 계속 뛰어야 한다 / 양재원(추영우)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틸컷 / 출처 : 페이스북
넷째, 빌런(악역)들조차 귀엽고 사랑스럽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주인공과 갈등을 벌이는 빌런(악역)의 등장이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중증외상센터와 백강혁(주지훈)은 병원장 최조은(김의성)과 기조실장 홍재훈(김원해)에게는 눈엣가시이다.
그 대립 갈등 속에서 애제자 양재원(추영우)을 빼앗기고 백강혁을 적대시하는 항문외과 한유림(윤경호) 과장의 연기는 당연 압권이다.
이들 악역들의 전략이 그리 주도면밀하지 않고 허술하기만 하다. 그래서 갈등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금세 해소되어 버린다.
초반에 적대적이었던 한유림(윤경호) 과장이 오히려 백강혁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역할로 교화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귀엽기만 하다.
메타버스 속 가상 현실은 우리네 상황과 매우 닮아 있지만 현실 타개를 돕는 여러 인물들의 등장은 지금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바램의 투영인듯싶다.
답답하지 않고 쉽다. 빠르다. 속 시원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틸컷 / 출처 : 페이스북
다섯째, 우리나라 외상센터의 현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웹 소설과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자는 2018년 이국종 교수의 수필 <골든아워>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학교 외상외과 전문의로 재직하면서 권역외상센터 설치, 닥터헬기 도입 등을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주4]
병원 경영진과의 갈등을 여과 없이 언론에 노출했었다. 2011년에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인질을 구출하는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예화는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 아프리카 수단에서의 총격전으로 부상당한 군인을 에어 앰뷸런스로 이송하고 치료하는 스토리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는 닥터헬기를 이용하여 사고 현장에 신속하게 접근하여 골든타임 내에 처치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병원 자체적으로 헬기를 보유하기 어렵고 소방청 소방항공 소방헬기를 이용해야 한다.
(작중 배경은 2015년으로 2022년 기준 지금은 총 8호기의 정부 지정 닥터헬기가 운용되고 있다)[주5]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응급헬기의 사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헬기 이착륙 위치를 아무 곳에나 할 수 없어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그래서 장면 곳곳에 보건복지부 장관 강명희(김선영)의 등장과 지원은 반갑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틸컷 / 출처 : 페이스북, 이국종 교수(현재 국군대전병원장), 경기도에서 운영 중인 닥터헬기 'AW-169' /출처 : 경기도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인물들로 가득하다.
마치 영화 속 영웅적 인물이 등장해 문제를 해결하듯, 현실에서도 변화를 이끌어낼 인물이나 정책에 대한 갈망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암울한 새해 벽두에 던지는 화두가 유쾌하면서도 묵직해 보인다.
<참고자료>
[주1] 나무위키(권역외상센터) :https://namu.wiki/w/%EA%B6%8C%EC%97%AD%EC%99%B8%EC%83%81%EC%84%BC%ED%84%B0?from=%EC%A4%91%EC%A6%9D%EC%99%B8%EC%83%81%EC%84%BC%ED%84%B0
[주2] 한겨레21(『교통사고 사망률도 유전되는 더러운 세상』/김기태 기자) :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8725.html
[주3] 닥터프렌즈(외상외과의 역사/원작자 Dr.이낙준) : https://www.youtube.com/watch?v=oWwSVw7dGJk
[주4] 세바시 797회 강연 (이국종 교수편, 2017년 8월 7일) : https://www.youtube.com/watch?v=A_zuHvBlvkA
[주5] 중앙응급의료센터(닥터헬기운용 현황) : https://www.e-gen.or.kr/nemc/business_doctor_helicopte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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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핵심 사건은 엄마의 죽음과 뫼르소의 살인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해변에서 동료와 갈등 관계에 있는 한 아랍인 남성을 총으로 쏘는데 재판에서 핵심이 되는 건 살인 행위가 아니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대체로 시큰둥한 태도였고, 바로 다음 날 애인을 만나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눴다. 이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카뮈가 고발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부모자식 관계를 비롯한 일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권태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이방인》에는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죄’로 여기고 응징한다. 카뮈의 말마따나 ‘부조리한’ 세상이다.
영화 〈썬다운〉은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다. 런던에서 거대 육류사업을 하는 어머니를 둔 닐과 그의 동생 앨리스 그리고 앨리스의 두 자녀가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고급 호텔과 아름다운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던 그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앨리스와 그 자식들은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닐도 그에 동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닐은 공항에서 여권을 놓고 왔다며 다음 비행기로 런던에 가겠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지독히 평온한 표정으로 허름한 호텔로 가 다시 휴가를 즐기기 시작하는 닐. 런던으로 돌아간 앨리스는 계속 그에게 전화하여 여권은 찾았는지, 언제 비행기에 탈 것인지를 묻는다. 닐은 계속 거짓말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멕시코인 여자친구를 사귀기까지 한다.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 듯한, 그러나 동시에 자유가 깃든 닐의 표정이 압권이다. 닐의 얼굴은 해방과 자유가 반드시 환희를 동반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닐이 보여주듯, 해방과 자유는 ‘오랫동안 갈망하던 것’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평온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결국 폭발한 앨리스는 직접 멕시코로 닐을 찾으러 오고 그에게서 적당한 연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회사 경영권과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서명을 받는다. 사실 이는 앨리스의 요구가 아닌 닐의 제안이다. ‘상식’의 세계에 속한 앨리스는 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닐의 제안에 ‘만족’한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닐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던 택시기사가 앨리스를 강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닐은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그가 앨리스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살인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그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은 그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주요 ‘근거’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쓰러진 닐은 암이 발병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듯 홀로 병원을 걸어 나온다. 닐은 돈도, 가족도, 여자친구도 버리고 떠난다. 여전히 예의 그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그러나 이제는 자유를 갈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표정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점에서) 동시에 소극적이기도 한(모든 것에서 그저 도망칠 뿐이라는 점에서) 닐의 저항은 일상의 부조리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닐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 듯 다르다. 바닷가에서 친구와 신경전을 벌이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아랍인이 지니고 다니는 칼에 비친 태양 빛에 이끌려 그를 살해한다. 《이방인》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쟁적인 장면이다. 〈썬다운〉에도 뫼르소가 보았을 태양 빛을 담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그 태양빛은 닐을 살인하게 하지 않는다. 닐의 자유는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는 자유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였음에도 엄마의 장례식을 트집 잡는 사회에 부조리를 느낀다.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의식의 깊이를 더해가며 자유에 도달한다. 여기서 아랍인은 그의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닐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도구화하지 않는다. 내내 계급적 조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닐이 가진 재산에 비해 그가 연금으로 요구하는 돈은 ‘소탈’해 보이기까지 하다. 닐의 자유에는 《이방인》에서 도드라지는 여성혐오도 없다. 멕시코 출신의 미셸 프랑코가 〈썬다운〉에서 그린 자유는 분명 《이방인》의 자유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뫼르소, 닐…. 카뮈가 쏘아 올린 자유의 계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내가 센 것이 맞다면 총 여섯 번이다.
**카멜 다우드는 소설 《뫼르소, 살인사건》(문예출판사, 2017)에서 아랍인의 관점으로 《이방인》을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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