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1-04 19:37:57
안아주고 싶은 등짝
영화 <연소일기> 리뷰
SYNOPSIS.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한 고등학교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주인 모를 유서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교감은 이 일을 묻으려고 하고, 정 선생은 우선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부터 찾아보자고 한다.
"일기야, 안녕?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어"
편지와 학생들의 글씨 모양을 비교하던 정 선생은 편지 속 한 문장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든다. 열심히 쓰다 보면 바라던 어른이 될 거란 믿음으로 써 내려간 열 살 소년의 일기. 정 선생은 일기를 읽으며 묻어뒀던 아픈 과거와 감정들을 마주하고,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POINT.
✔ 홍콩 금마장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작
✔ 독특하게도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로 첫 선을 보였는데, 평이 좋았습니다
✔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길 잃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영화, 감정의 에너지가 커다랗게 전해지는 영화. 전 요즘 이런 영화가 참 좋더라고요.
✔ 경쟁을 일상으로 여겨 온 한국인이라면, 다소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어요
✔ 10살 소년을 연기하는 황재락 배우의 얼굴이 오래 아른거릴 거예요
✔ 11월 13일 개봉
영화 <연소일기>는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의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높이를 가늠해 보며 계단을 오르고, 옥상에서 소리를 질러 보는 아이의 등짝. 영화는 이제부터 아이 삶을 따라가며 몇 번의 상승과 하강을 그려낼 것이다.
또 한편에는 '정 선생'이 있다. 영화는 현재의 정 선생과 과거의 아이를 교차해 보여준다. 기억과 현실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매개가 되는 것은 어느 날 정 선생의 학교에서 발견된 유서 비슷한 편지이다. 스스로가 쓸모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그래서 사라져도 빨리 잊힐 것이라는 말. 그 말은 정 선생을 10살 아이의 일기장으로 데려간다.
정 선생을 잡을 때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불안하게 흔들거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턱을 괴거나 엎드리거나 칠판을 보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들이 고여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10살 아이는 폭력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터져 나갈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기 안에 있다.
(언제든 우리의 현재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신의 현재가 괴롭든 괴롭지 않든) 우리는 과거에 누구나 한 번 이상 괴로움을 겪었다. 형태와 깊이는 제각각이지만, 어떤 것은 금방 잊히고 어떤 것은 영영 생채기로 남지만, 그래서 오늘 우리의 얼굴에서 어제의 괴로움이 다 읽히지는 않지만,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 선생의 동료 교사들만 보아도 그렇다. 그들에게 유서 비슷한 편지는 공허한 문장으로만 읽힌다. 어릴 때 한번쯤은 하는 생각이라면서. 그들에게도 익숙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기억 속에 문장의 기표는 남아 있지만, 그 뒤에서 터져 나갈 것 같았던 기의들은 잊혔다.
그러나 정 선생은 10살 아이의 일기장이 떠올라 버린 이상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없어, 상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본다. 유서 편지의 문장과 똑같은 일기장 속 문장을 끈으로 삼아, 교차 편집된 과거에서 10살 아이가 연필로 써내려간 일기장의 기억을 펼쳐 보여준다.
일기를 쓰게 된 계기도, 일기 속 문장들도... 10살 아이의 세상은 녹록지 않다. 필연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나이다. 남들 눈에 비춰지는 성과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히스테릭해져 가는 어머니, 아이와 다르게 뭐든 잘 해내는 동생의 모습은 다소 도식적으로 그려졌지만, 10살 아이의 캐릭터가 선명하여 그 단점을 상쇄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황재락이 연기하는 10살 아이 요우제를 사랑하게 된다. 아이는 비록 공부를 잘 못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데에 재능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문구를 좋아하는 걸로 보아, 공부 아닌 다른 데 재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10살 요우제의 재능을 헤아려 보지 않는다. 그에게는 메트로놈에 딱딱 맞는 것만이 올바른 음악이다. 정해진 박자 바깥의 풍성함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답이 아니라면 모두 틀렸다는 그의 독선은 가족을 차별과 폭력으로 물들인다. 그 독선적 세계 또한 카메라에서 계속해서 흔들린다.
부모의 편협한 시야 안에서, 10살 아이의 세상은 조금씩 쪼그라들고 무너진다. 보고 있노라면 이 일기가 10살 아이의 세상이 무너져간 기록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 선생이 유서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는 순간에도 일각에서는 폭력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세계를 보며, 얼마나 많은 세상이 이렇게 무너지고 쪼그라들고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요우제라는 10살 아이에게 맞춰진 소실점은 수많은 아이들에게로 투사된다.
그 구도 안에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실어 나르고자 한 감정이 묵직하게 전달되어 온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특히 골목 사이로 아이들이 뛰는 장면에서, 카메라 앵글을 따라 세상이 뒤집힐 때, 우리는 비로소 메트로놈 박자 바깥의 세상을 느낀다. 무너지지 않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느낀다. 거기에는 기꺼이 손 내미는 다정함, 함께 보내는 시간, 솔직하게 터놓은 마음이 있다. 그것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절절한 마음을 담아 던지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심규선의 <살아남은 아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 아이인지 모른다. 유서를 발견해도 어린 시절 한번쯤 해보는 생각 아니냐고 말하는 교사들도, 독선적인 형태의 성취만을 인정하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에게 맞추는 데 눈물도 인생도 쏟아낸 어머니도... 사실 그들 또한 과거의 어느 순간, 터져 버릴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불쏘시개처럼 나를 자꾸만 헤집어대는
어린 시절의 아름답지만은 않던 기억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 지금의 네가 되는지
들춘 기억에 귀엣말처럼 속삭여주고 싶다 (...)
너는 살아남은 아이 미움과 무관심 속에서
이 어둠은 너의 별빛을 더 환하게 할 뿐 꺼트릴 순 없어
너는 살아남은 아이 눈물의 반짝임 모아서
저 은하수처럼 흐르며 또 살아갈 거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자꾸 현실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기를 넘어 바라던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가끔은 뒤늦은 후회의 눈빛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해도, 그럼에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런 소망을 품고, 옥상에 선 아이의 등짝을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 안의 <연소일기>에는 그런 문장들이 적힌 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놓쳐버린 등짝들이. 지금이라도 끌어안고 싶은 등짝들이.
이 영화를 마주한 당신의 <연소일기>에서는 어떤 페이지가 펼쳐질까. 이 영화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 일기인 동시에, 당신 내면의 일기장을 부드럽게 펼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겨줄 것이다. Time still turn the page라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 그대로. 과거에 덮어두고 온 상처 투성이 일기더라도, 오랜 시간 흐른 후에 다시 페이지를 고이 넘길 수도 있는 법이니까. 넘어간 페이지에서 다정한 마음을 가득 끌어안고 상영관을 나올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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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페달을 밟던 여름들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걸어서는 닿을 수 없는 드랭블루아
- 같은 선에 서있는 앙토니와 아신. 같은 계층인 두 사람
- 앙토니의 짝눈, 외모 변화가 가지는 의미
- 아빠의 바이크, 자켓의 의미. 엔딩 해석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And Their Children After Them, 2024)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페달을 밟던 여름들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성장, 로맨스
러닝타임 : 145분
감독 : 뤼도릭 부케르마, 조란 부케르마
출연 : 폴 키르셰, 앙젤리나 워레스, 질 를르슈, 사이드 엘 알라미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1992년 여름 동부 프랑스. 기어가는 벌레, 날아가는 파리 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고요한 숲속 호수. 그 근처를 맴돌고 있던 15세 소년 앙토니는 지루함을 느낀다. “심심해 죽겠어.” 앙토니의 말 한마디가 정적을 깬다. 앙토니와 사촌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보트를 훔쳐 강너머 누드비치로 향한다. 앙토니는 그곳에서 부유한 집안의 딸 스테파니를 만나 사랑을 느끼고 그의 세상에 편입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신인배우상 수상 소식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큰 관심을 받은 영화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다양한 계층 갈등과 소년의 사랑, 성장을 담고 있는 아름다우면서도 아릿한 이야기다.
한여름에 만난 첫사랑과 설렘, 일탈과 만취의 짜릿함, 무모한 걸 알면서도 내뻗어보는 주먹, 바이크를 타고 시원하게 내달려보는 숲길, 그 아래 흐르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록 음악. 이 영화엔 청춘의 치기와 여름의 낭만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것을 모두 전복시키는 무거운 현실의 불편함도 함께 담겨있다.
앙토니는 특별할 것 없는, 사실 평범하다기엔 조금 모자란 집안에서 자란 소년이다. 제철 공장에서 일했던 아빠는 술독에 빠져 폭력성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고 집안 경제를 함께 책임지고 있는 엄마는 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힘이 없는 두 부모는 바이크와 여행이라는 꿈을 접어두고 현실에 한껏 휘둘리고 있다.
아직 어린 앙토니는 이런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고향을 떠나 텍사스로 가고 싶고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부촌인 드랭블루아에 사는 스테파니와 친해지고 싶다. 하지만 앙토니는 몇 번의 여름을 지나며 알게 된다. 타고난 운명을 벗어나 새로운 계층으로 편입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걸어서는 닿을 수 없는 드랭블루아
앙토니와 스테파니의 동네가 의미하는 것스테파니는 앙토니와 사촌을 드랭블루아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한다. 그런데 앙토니의 집에서 드랭블루아까지 가려면 꼭 바이크가 필요하다. 앙토니는 파티를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아빠 몰래 바이크를 훔쳐 타고 파티에 가기로 결심한다. 바이크를 끌고 나오는 앙토니를 발견한 엄마는 앙토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기곰, 인생이 언제나 재밌는 건 아냐.”
앙토니는 엄마가 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엄마를 뒤로하고 사촌과 함께 바이크를 타고 파티로 향한다. 모르는 얼굴들 사이를 헤매던 앙토니는 스테파니와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 약을 한번 들이켜고는 아주 조금 그들의 세상에 녹아든다.
앙토니는 스테파니와 친해지고 싶다. 그런데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앙토니는 파티에서 스테파니 무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약을 먹고 스테파니를 따라 수영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스테파니 무리가 무시하는 유색인종 아신에게 발을 걸기까지 하며 그들과 친해지려 한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앙토니가 붙여준 담배를 물고는 금방 파티 주최자 시몽과 함께 사라지고 앙토니가 한 발자국 다가가 키스를 시도하자 그를 밀쳐내며 거리를 벌린다. 앙토니는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파티가 끝난 후 남은 건 도난당한 바이크의 빈자리뿐이다.
앙토니는 소외된 집안의 아들, 스테파니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다. 두 사람 사이엔 가난한 집안과 잘 사는 집안이라는 계층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어린 앙토니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스테파니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만 매번 다른 이유로 실패한다.
앙토니와 스테파니가 들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두 사람은 앙토니가 살고 있는 가난한 동네와 스테파니가 살고 있는 부유한 동네를 주제 삼아 이야기를 나눈다. 앙토니는 가난한 동네엔 나체족 집시들이 캠핑카에 모여 살고 있다고 운을 뗀다. 이때 스테파니는 자신도 어릴 때 할머니와 잠시 그 동네에 살았는데, 그때 스테파니의 아빠가 담장을 쳐서 들판에 있는 나체족을 안 보이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스테파니와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음을, 그 동네에 사는 앙토니와 스테파니 또한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같은 선에 서있는 앙토니와 아신
앙토니와 아신은 파티에서 처음 만난다. 앙토니는 부잣집 백인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아신에게 발을 걸며 자신은 그와 다른 계층의 사람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앙토니에겐 슬픈 일이지만 사실 앙토니와 아신은 ‘소외된 사람’이라는 같은 계층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계층은 두 사람의 아빠 세대부터 이어진다. 앙토니와 아신의 아빠는 제철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였고 노동자와 이민자로 상위층보단 하위층에 속한 삶을 살아왔다. 아빠들과 다른 시대를 살아온 앙토니와 아신은 이런 접점이 없어 일찍 친구가 되지 못하고 서로를 오해했을 뿐이지, 결국 두 사람의 삶은 비슷한 길로 흘러간다.
바이크 사건 이후 앙토니와 아신은 오해를 쌓아간다. 앙토니에게 앙심을 품은 아신은 바이크를 불태워 돌려주고 화난 아빠에게서 도망친 앙토니는 다른 바이크를 타고 그를 찾아가 총을 겨눈다. 겁먹은 아신은 오줌을 지리고 앙토니를 반드시 죽일 거라 다짐한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서있는 바닥을 보면 중앙에 그어진 선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두 사람을 충돌시키거나 그들의 다름을 표현하는 경우엔 선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을 갈라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팽팽한 대립이 일어나는 신임에도 불구하고 앙토니와 아신을 같은 선 위에 나란히 세워놓는다. 앙토니와 아신이 같은 선 위에서, 같은 계층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연출은 이후 96년에 앙토니의 아빠 파트리크가 호수로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실감한 파트리크는 삶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호수로 걸어들어간다. 이때 위에 있는 달빛이 물에 반사되어 마치 파트리크가 그 달빛 위를 걸어가는 듯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아신은 그걸 지켜보다가 파트리크가 사라지자 그가 걸었던 달빛 방향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그를 구하려 한다. 물이 깊어지자 뒤돌아 빠져나오긴 했지만 아신 또한 파트리크와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앙토니앙토니의 짝눈, 외모 변화가 가지는 의미앙토니는 짝눈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92년, 사촌은 “네 짝눈 때문에 여자들이 도망친다”라고 앙토니에게 장난 어린 디스를 한다. 앙토니는 그에 딱히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헛소리 말라는 듯 받아칠 뿐이다. 이때 앙토니는 앞머리를 길게 길러 자신의 짝눈을 반쯤 덮어두고 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앙토니에겐 외적인 변화가 생긴다. 사춘기를 상징하는 여드름의 흔적이 점점 옅어지고 머리는 점점 짧아진다. 그러면서 앙토니는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다. 그는 마지막 여름이었던 의가사 제대 직후 스테파니에게 차였을 때, 처음으로 자신의 짝눈을 제대로 의식하고 만져본다. 정말 짝눈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건가? 생각하는 것처럼.
앙토니의 짝눈은 그의 외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가난, 그의 계층을 상징하기도 한다. 짝눈을 머리카락으로 덮고 있던 92년의 앙토니는 자신의 가난과 집안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테파니에게 끝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도전하고, 아신과 같은 낮은 계층의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94년 여름. 16세의 앙토니는 머리를 조금 짧게 자른다. 앙토니는 여전히 스테파니에게 구애를 하긴 하지만 스테파니가 받아주지 않자 이전에 자전거 앞을 막아세웠던 바네사를 찾아가 관계를 가진다. (바네사는 이웃사촌으로 앙토니와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이때의 앙토니는 자신을 쫓아오는 무언가에서 도망치거나 사랑하는 것을 쫓는 모습을 보여준다.
96년 여름. 18세가 된 앙토니는 군 입대를 위해 머리를 짧게 깎는다. 재회한 앙토니와 스테파니는 육체적 관계를 나누지만 구경꾼들에 의해 중단된다. 스테파니는 바로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 앙토니는 헤드라이트를 따라 멀어지는 스테파니를 지켜보고만 있다.
98년 여름. 앙토니는 오랜만에 사회로 나와 사촌과 그의 아내, 아신, 스테파니를 만난다. 사촌은 부유한 뒤립씨 딸 클레망스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아신도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있었다. 두 친구를 만난 후 앙토니는 아빠의 바이크를 훔쳐타고 드랭블루아에 가던 날처럼 아신의 바이크를 훔쳐타고 스테파니를 찾아간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우리의 사랑은 네 상상일 뿐이라며 단호하게 희망의 불을 꺼버린다. 계층을 넘기 위한 앙토니의 마지막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앙토니는 짝눈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계층, 현실을 확실히 인식한다. 그리고 지금껏 애써 품어온 희망을 포기하겠다는 듯이 훔친 아신의 바이크를 돌려주겠다는 연락을 남긴다.
아빠의 바이크, 자켓이 의미하는 것
앙토니는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자유로움과 희망을 느낀다. 시원한 바람과 그 뒤를 따라오는 새로운 삶을 향한 설렘. 그는 바이크를 타고 스테파니를 향해, 미래를 향해 달린다. 앙토니의 아빠도 언젠간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바이크를 타고 자유로움과 희망을 느끼던 삶.
하지만 아빠는 자신의 계층을 바꾸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아들은 아빠의 자켓을 입고 언젠가 아빠가 달렸을 그 숲길을 달린다. 그들(어른들)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세상이 변해 누드 비치는 누드 비치가 아니게 되었고 도시를 이끌었던 제철공장은 문을 닫는 변화가 생겼지만 사람들 간의 계층은 여전히 견고하다.
앙토니가 아빠의 바이크를 훔쳐 파티에 가던 날처럼 계층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즐거운 인생을 살면 좋을 텐데, 엄마의 말처럼 인생이란 언제까지나 즐거울 수 없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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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영화의 단점
가끔 유럽영화를 보는 일을 곧잘 한다. 이번에 본 영화는 그저 새로운 추리가 끌려서 봤을 뿐이었는데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듯하다.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닌데 개연성이 모두 의도되었다는 것이 너무 잘 느껴진다. 그래서 매력이 반감된다.
1. 낯선 언어의 공격
이 영화는 모든 대사가 폴란드어이다. 그래서 단점까지는 아닌데 조금 낯설었다. 언어란 참 감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폴란드어는 어떤 intonation으로 감정을 표현하는지를 몰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결국 표정으로만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대로 듣는 재미는 있었다. 배우의 표정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악인의 표정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모든 일엔 장단이 있는 것이고 모든 일이 내게 불리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2. 개연성이 있긴 한데, 너무 의도성이 짙다
몇몇 유럽 영화들을 보면서 느꼈던 지점들이 있는데, 개연성이 있든 없든 모든 사건들이 의도성이 많이 보인다. 액션영화도, 추리물도 긴장감이 중요하고, 관객들에게 이 사건이 왜 있어야 하는지 납득시켜야 하는데, 유럽 영화들을 보고 있으며 감독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이건 영화니까, 이 정도의 사건이 등장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맥락이 조금 이상한 거 같아도 이해해줘. 영화적 허용 같은 거 있잖아."
라고 말이다.
예전에 영화 '킬러 인 브뤼셀'에서도 느낀 지점인데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 없는 모든 사건들이 그저 배치만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개연성이 중요한 나에게는 이 총질을 하는 이유가 뭔지 납득이 안되어 재미가 정말 없었다. 그런데 이 'w살인사건'과 같은 영화에서 또 그런 걸 느꼈다. 관객이 우선이 아닌, 감독의 의도가 우선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관객으로서 이해되지 않아 이잉?한 느낌.
3. 여러분도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추리물을 보다 보면, 범인이 그냥 보일때가 있다. 배경이 시골마을인만큼 나오는 인물들도 많지 않으니 다들 누가 범인일지 예상이 가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이 남편을 빨리 좀 버렸으면 했는데, 감독은 남편 캐릭터를 주인공의 성장으로 엮고 싶었던 듯하다.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은 게, 그저 답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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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한 힐링 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큐레이션 주제는 바로 '잔잔한 힐링'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어디갔어, 버나뎃
ⓒ 네이버 영화
synopsis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 건축가 버나뎃. 조용히 살고 싶지만 소란스러운 환경 때문에
까칠한 이웃이 된 버나뎃은 가족여행을 준비하던 중 자신이 국제 범죄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cine pick!
뉴욕타임즈 84주 베스트셀러에 오른 동명 소설 『어디 갔어, 버나뎃』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은 로맨스 대표작 '비포' 시리즈를 제작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연출하여 인물의 내면을 다채롭고 밀도 있게 그려냈다.
알로, 슈티
ⓒ 네이버 영화
synopsis
매일 바쁜 도시, 지긋지긋한 직장생활, 우울증에 걸린 아내…
우체국장 ‘필립’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따뜻하고 여유로운 남부 프랑스로 전근을 계획한다.
cine pick!
소박하고 소소한 이야기로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행복 목욕탕
ⓒ 네이버 영화
synopsis
강하고 멋진 엄마 후타바, 서툴고 철없는 아빠 가즈히로, 사춘기 딸 아즈미, 이복동생
아유코까지 후타바가 이끄는 네 명의 가족은 행복 목욕탕을 운영한다.
cine pick!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6개 부문 수상하였으며, 그 외에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갓 헬프 더 걸
ⓒ 네이버 영화
synopsis
위태로운 방황의 시기를 겪던 이브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자신이 정말로 원하고 잘하는 것을 깨달은 이브에게 뜻밖의 위기가 찾아온다.
cine pick!
빈티지한 패션과 색감 그리고 음악이 만나 감성적인 연출로 눈과 귀 모두 즐겁게 만드는
영화이다. 잔잔한 영화이지만,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영화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네이버 영화
synopsis
매사추세츠 퀸시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사는 리. 잔뜩 쌓인 눈을 치우던 어느 날,
형 조가 심부전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한다.
cine pick!
버라이어티, 워싱턴 포스트, 데드라인 등 주요 매체에서 2016년 최고의 영화 TOP 10에 선정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맷 데이먼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화제를 모았다.
어린왕자
ⓒ 네이버 영화
synopsis
친구 하나 없이 엄마가 짜놓은 인생 계획대로만 살던 소녀는 옆집의 괴짜 조종사 할아버지를
통해 다른 행성에서 온 어린왕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
cine pick!
1억 4,500만부 이상 발매된 생텍쥐페리 원작 '어린왕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영화
<어린왕자>는 CG 그래픽과 스톱모션을 조합하여 다양한 매력을 선사한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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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은 호러지만 안은 따뜻한 겉바속촉형 호러
만약 과거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를 괴롭히던 부랑자들을 한두 대 두들겨 팰 수 있을까. 물론 폭력은 나쁘지만 아쉬움이 있다. 왜 날 괴롭히던 애들에게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었나?라는 아쉬움이다. 운동을 열심히 했으면 그렇게 무시당하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성인이 되고 나서 겪었던 몇 흑역사가 여기에서 온 것 같아 또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시간을 돌린다면 내가 내 힘으로 나 자신을 지킬 것이다. 맘에 안 드는 놈에게 찍소리 못하며 당할 바에 운동 열심히 하는 게 나 자신을 지키는 좋은 방법인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년시절은 서로 이어져있다. 당당하지 못하면 맘에 드는 이성에게 말 한마디 걸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 친해지고 싶은 상대와 오히려 안 좋은 관계로 이어지기 쉬웠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결국 나를 만드는 일이란 걸 윗 문단을 쓰며, 또 이 문장을 만들여 다시 한번 느낀다. 극복은 사람 살면서 정말 어려운 난관 중 하나다. 어쩌면 10대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전가한 과제를 아직까지도 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뒤로 돌아갈 수 있다면 솔직히 나한테 까부는 놈 한 방 쳤을 것 같다. 살면서 누구의 얼굴에 주먹을 꽂은 적이 단 한 번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아직도 난다. 때리지만 않는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때의 객기가 살면서 중요하다는 걸 미리 알았을 텐데 말이다. 이 소년 피니는 글쓴이보다 더 한 두려움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가면 쓴 남자가 관객과 소년을 납치했다. 탈출하는 방법은 이번 주 수요일에 극장에 가는 것이다. <블랙폰>이다.
연쇄 납치범
1978년 미국. 한 범죄자가 덴버라는 마을에 활개 치고 있었다. 죄목은 유아 납치. ‘더 그래버’라는 범죄자는 복면을 쓰고 덴버 마을 곳곳에서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었다. 범죄 수법 공통점은 납치된 곳 근처에서 검은 풍선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공포에 떠는 마을. 그러나 남매 피니와 그웬에게 더 무서웠던 건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설명이 어려운 한 요인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버지 혼자만 남게 된 후 아이들은 점점 받는 상처가 늘어났다. 걸핏하면 맞는 아이들. 오빠 피니에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악몽 같은 10대를 보내고 있던 피니. 이런 피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줬던 건 급우 로빈과 여동생 그웬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피니. 화장실에서 나쁜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피니에게 폭언을 하고 있었다. 맘에 안 드는 놈 하나 패고 있던 로빈은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나쁜 놈들을 모두 쫓아낸 로빈과 피니. 로빈은 피니에게 “이제 너 스스로가 너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해”라고 말한다. 순수한 근력은 셌지만 자기를 지키는 방법을 몰랐던 피니. 그런데 더 악몽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자기를 지켜주던 친구 로빈이 납치됐다. 곧이어 악몽보다 더한 현실이 일어났다. 피니마저 그래버에게 납치됐다. 지하에 갇힌 피니. 탈출에 유용할 정보는 독방에 덩그러니 있는 고장 난 검은색 전화기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검은색 전화에서 울리는 의문의 전화벨. 통화 상대는 그래버에게 피살당한 친구들이었다. 피니는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은 아이들과의 통화를 시작한다.
블룸하우스 발 호러영화?
블룸하우스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맞다. 호러 영화에서 그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회사가 제작한 영화는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효율을 뽑는 작품들이 많았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겟 아웃>, <해피 데스 데이> , <23 아이덴티티>, <위플래쉬>까지 이 제작사는 감독의 역량이 중요한 호러/스릴러 영화에서 좋은 타율을 선보였다. 그중에서 내 기억 속에 세 번째로 기억에 남았던 게 뭐냐? <살인 소설>이었다(첫 번째는 <위플래쉬> 두 번째는 <겟 아웃>). 스콧 데릭슨이라는 이름이 사실 생소하긴 하다. 나중에 마블에 입덕 하고 나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맡은 감독이었다고 하나 개인적으로는 그 작품마저 그렇게 인상 깊진 않았기 때문에 그냥 흘려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다시 <살인 소설>로 들어간다. 이 <살인 소설>은 글쓴이 개인적으로 저평가가 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기준으로 호러영화의 대표 격하면 <컨저링>이나 <쏘우>가 나오곤 하는데 이 두 작품보다 <살인 소설>이 밀린다 곤 생각 않는다. <살인 소설>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잘 활용한 영화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기괴한 이미지를 삽입하는데 이 장면이 끌고 가는 공포가 후반부까지 쭉 이어진다. 또 어딘가 익숙하지만 살짝 변용한 톤이 중간중간 기억에 굉장히 강하게 남는다. 또 사운드 연출이 잘돼서 점프 스퀘어가 비교적 덜 식상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는 이 스콧 데릭센의 장기가 잘 들어가 있다. <살인 소설>을 봤다면 느껴지는 장면 장면들이 곳곳에 보인다. 약간 예전 비디오 돌려보는 듯한 시퀀스가 주요 장면마다 배치가 됐다. 또 사운드 연출이 인상 깊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제목은 <블랙폰>이다. 당연히 전화기가 중요한 소재다. 띠리리링 하는 전화 효과음 설정이나 역시 비교적 덜 식상하게 만드는 사운드 연출까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스콧 데릭슨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또 영화의 연출 측면에서도 죽은 친구들과 피니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장면마다 죽은 친구들을 묘사하면서 피니에게 어떤 힘을 주고 있는지도 어렵지 않게 잘 묘사했다. <헤어질 결심>에서 볼 수 있었던 방법이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인물의 시점을 드러내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잘 썼다. 이 턴에 이런 시점을 보여주면 영화가 박진감이 있고. 또 후술 할 에단 호크의 포스를 묘사하는데 효과적이고. 이런 디테일을 잘 살렸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강점은 감독의 이런 연출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확실한 틴에이저
아마도 확실하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지점이다. 이 영화는 중반부에 갑자기 장르를 비튼다. 철저하게 호러 톤을 유지하던 영화는 10대 소년의 내면이 주요 소재가 된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는 공포는 두 가지다. 학교와 집에서 겪는 공포다. 이 공포는 별개인 것 같지만 사실 공통점이 있다. '대안이 없어도 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즉슨 피니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도 주인공은 살 만하다. 아버지가 허구한 날 여동생 허리띠 때려도 피니는 외롭지 않다. 누구보다 든든한 여동생이 있으니까. 학교에서 미친놈들이 괴롭혀도 별 일 아니다. 로빈이 구해주면 되니까. 그러니까 피니는 괴롭긴 해도 자기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꿀 필요도 이유도 못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맞닥뜨리는 공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냥 이 상황이 익숙한 것이다.
극에서 제시되는 납치라는 설정은 이 익숙함을 광폭하게 비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이 두 공포가 병렬적으로 제시되며 피니를 괴롭힌다. 일단 여동생과 로빈이 없는 환경은 첫 번째 공통점을 가진다. 또 그래버가 피해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이 영화의 어떤 장면과 오버랩되는 것은 절대 그냥 만든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피니가 겪고 있는 공포를 좀 더 색다르게 표현했다. 그래야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 닿아있다. 또 이렇게 설정을 의도적으로 대치시켜야 인물이 두 공포 중 하나만 극복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엔딩에 인물들이 고르는 선택지에 탄력이 생기는 셈이다.
물론 이 후반부의 장르 변화가 아쉽다고 생각할 분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호러 분위기를 에단 호크의 카리스마와 점프 스퀘어가 어느 정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이게 뭐가 공포영화나?'라고 생각할 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김새는데 엔딩은 거의 기름을 붓는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호러 장르이기 이전에 피니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 주신다면 감상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니가 정말 겪어야 했던 공포는 자기 내면에 있다. 이렇게 찍어 누르는 세상 속에서 바꿀 생각을 않는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이 영화에 작동하는 굉장히 큰 공포일 지도 모른다. 이 공포야말로 소년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극복해야 했던 처음 관문이다.
앉아있기만 해도 무서워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에단 호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저씨 연기 잘하는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래버에 빙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그래버가 납치 수법을 관객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신이 있다. 이때 뭔가 엉거주춤하는 자세와 낮게 깐 목소리톤으로 관객들을 장악한다. 이 연기에는 살짝 페널티가 있다. 바로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빛과 표정연기로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시작한다. 가면을 잘 고른 감독의 공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에단 호크의 개인기가 빛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시퀀스는 그래버가 피니를 납치한 후가 중심이 된다. 이 그래버에게는 과제가 있다. 바로 극에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래버는 최소한의 동선으로 피니에게, 또 관객에게 공포감을 준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납치되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바로 먹는 문제가 걸릴 것이다. 이 음식 주는 장면도 에단 호크는 두렵게 소화한다. 굉장히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살짝만 비틀어서 호러 분위기를 조성했던 섬세함이 돋보인다. 또 영화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익숙한 방식으로 연기하는 것이 잘 느껴진다. 바로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다. 카메라 워킹부터 목소리 톤까지 살짝살짝 바꿔가며 극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다. 이 영화가 10대 소년의 극복기를 다룬 것만큼이나 '호러 무드'를 품고 있는 이유는 이 배우의 충격적인 연기가 뒷받침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인물의 연기를 구경하는 것은 영화의 주요한 재미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더 배트맨>의 리들러가, 또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그린 고블린이 연상이 되는 엄청난 연기였다. 앉아있고. 서있고. 뭘 들고 있고. 내려놓고 있고. 뛰고. 몸싸움을 하고 단어 한 글자만 나열해도 장르가 되는 퍼포먼스 하나 만으로도 비싼 티켓값의 2/3은 구성한다고 보는 쪽이다.
굳이 옛날이야기를
영화를 보고 나서 느껴지는 뜨거운 무언가는 좋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1970년대 이야기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의문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밀폐된 공간 탈출하 기다. 바로 호러영화의 근본으로 이어진다. 호러영화의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아미타빌의 저주>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피비 랜 나는 복수극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귀신 씐 집이라는 소재 <엑소시스트>까지 미국 호러영화의 전성기는 197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쭉 이어졌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렉터가 생각나는 빌런이나 특정 장르에 무언가 쓰였다는 점까지 아마 감독이 당시 호러영화에 대한 리스펙트를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점도 있어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점도 있다. 바로 여동생 캐릭터다. 여동생 캐릭터에 어떤 코드로 읽힐 수 있는 몇 가지 설정이 있다. 이 코드가 무엇인지 쓰면 스포일러가 된다. 그런데 극을 보고 나서 딱 알 수 있는 건 이 설정은 사실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곁다리로 스윽 지나가는 느낌이다. 뭐 검은색-흰색의 색채 대비나 그래버가 쓴 가면이 영화의 특정 코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굳이 여동생 서사에 그런 소재들을 넣어 집중을 깰 필요가 있었는가? 는 의문점이 든다.
또 피니의 설정이다. 피니 이야기 물론 좋았다. 관객들도 뿌듯할만한 충분한 이야기 구성이었다. 그런데 이 피니와 블랙폰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살짝 인과관계를 제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극에서 중요한 것이 다른 부분이기 때문에 생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헐겁다면 충분히 헐겁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여동생에게 부여한 설정 하나가 피니에게도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설명을 좀 더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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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하는 사람들
<타이페이 스토리>는 대만 뉴웨이브를 이끈 감독 에드워드 양 감독의 1985년 작입니다. 원제는 <청매죽마>로,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더불어 에드워드 양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타이페이 3부작 중 하나이자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죠. 캐스팅 목록에서 특이한 점이 눈에 띄는데, 에드워드 양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를 이끈 세계적 감독 허우샤오시엔이 주인공으로 분했습니다.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는 것을 보면, 영화를 잘 찍는 감독은 영화에 잘 찍히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인물들의 한 손에는 언제나 담배 한 개비가 들려있습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는 스크린 대부분을 채우죠. 어떤 프레임에선 담배 연기만 보여줄 때도 있습니다. 연기는 희미하게 허공으로 퍼져나가며 흩어집니다. 마치 80년대 대만의 과도기 속 오래된 연인 아룽(허우샤오시엔)과 수첸(채금)의 관계처럼 말이죠.
“저녁마다 창밖을 바라보며 야구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아룽을 기다렸다.”는 수첸의 대사는 퍽 낭만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관계에는 연민만 남아 마음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을 끄고 나서야 겨우 상대에게 진심을 꺼낼 수 있을 만큼 무기력해 보입니다. 그마저도 “우리 미국으로 가는 건 어때?”라는 제안은 “이민 가서 뭘 할지가 문제지.”라는 대답으로, “결혼하자.”라는 제안은 “결혼이 답이 아니다”라는 대답으로 겉돕니다. 상대가 진정 원하는 것을 바라볼 힘조차 상실해 버린 채 담배 연기처럼 부유하는 그들은 상대를 더욱 우울하게 하고 지치게 만듭니다. 에드워드 양 특유의 차가운 톤의 화면은 이런 무력감을 화면 곳곳으로 퍼지게 하죠.
그들의 무력감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요? “이 건물들을 봐. 어떤 건물이 내가 디자인한 건지 모르겠어. 전부 똑같아 보여. 내가 있든 없든 점점 더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자신들이 놓여있는 공간에 주목합니다. 마천루로 뒤덮인 공간과 아직 마천루가 되지 못한 공간들. 옥탑의 네온사인이 빛나는 공간에서 누군가는 도박에, 술에, 빚에 찌들어 갑니다. 더욱 빠르게 높아져만 가는 공간 속에서 80년대 대만 사람들은 더욱 빠르게 낮아져 가고 있죠.
영화 속 그들은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도시화의 과도기에 선 대만은 그들을 포용하지 않으려 하죠. 아룽 역시 야구를 그만둔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야구를 하던 당시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인물입니다. 다트 던지기를 하던 도중 ‘야구를 했다면서 왜 그렇게 못하냐’는 도발에 ‘네가 야구에 대해서 뭘 알아.’라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걸 보면요. 그리고 그는 자신을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결혼한 옛 연인의 곁을 여전히 맴돕니다. 그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야구를 했던 당시의 자신을 떠올리려는 몸짓으로만 보일 뿐이죠. 이런 것을 보면, 그는 스스로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기억에 휩쓸리듯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신의 위치를 잃어갑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아룽이 머물러 있는 과거는 더더욱 빠르게 뒤로 쳐져 가는 것이죠.
이 영화가 표면적으론 치정극이긴 하지만, 에드워드 양의 영화답게 별다른 감정의 고조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스크린을 여러 상징과 단서들로 채워 해석을 요구하는 어려운 영화도 아닙니다. 단지 응시할 뿐이죠. 그런 점에서 지루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당대의 정신적 공기를 드러내 주는 알맞은 리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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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보다는 평범한 내가 좋다.
부부싸움. 어릴 적 너무 잦은 그 상황에 노출된 나는
우리 집의 영웅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반장, 회장 등. 감투에 관한 임명장을 정기적으로 가정에 제출했다. 또한 공부로 승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그 시절 학교 대표로 장기자랑, 응원단장, 축제 사회자 등. 그런 행위들을 통해 부모님을 이따금씩 나의 공연장으로 불렀다. 부모님들께서는 사이가 어려운 사이에서도 함께 나를 보러 왔었고, 순간적으로 나마 가정에 평화의 기운을 맴돌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나의 십 대는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거인이 되고 있었다.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부부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을 일찍 터득한 이 거인은 먹고 싶은 것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철없는 동생이 혹이라도 부모님께 졸라대며 갖고 싶은걸 사달라고 할 때는 비밀스레 상황을 정리(?)하는 전투력도 높아져 갔다. 그렇게 가정의 경제 상황과 부부 관계가 호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자라 갔다. 내 키보다 나는 더 자랐고, 내 나이보다 훌쩍 더 커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가정을 지켜야 했고, 그 몸부림은 처절했다.
영화 <거인>은 그 시절 나를 선명한 기억 속으로 이끌어 갔다.
영화 <거인>의 보육시설인 그룹홈 에서 사는 한 고등학생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영재는 이미 나이가 되어서 그룹홈에서 나가야 하지만 무책임한 아빠 집에 절대 들어가기 싫다. 결국 그가 만들어낸 전략은 자신을 책임져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삶이다. 그룹홈에서 모범생으로 살아가며 천주교 신부가 되겠다고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절망의 삶은 후원물품을 훔쳐 팔고, 거짓으로 자신의 인격을 채우는 거인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자신의 절망을 먹어버리고, 타인이 원하는 육중한 거인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그룹홈에 아빠가 찾아온다. 이쪽저쪽 빌붙어 살아가던 아빠는 그룹홈에 동생마저 떠맡기려 한다. 이 모습에 영재는 거인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숨겨왔던 들끓는 분노를 터트리고 만다. 영화 속 영재는 결국 또 다른 보육기관으로 향하며 끝을 맺는다.
<최우식의 연기는 너무 리얼해서 과거의 나의 모습과의 오버랩속에 영화 내내 어려웠다.>
영화가 마친 뒤 영재의 모습을 통해 한 가정에 영웅이 되길 원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염없는 절망과 갈등을 먹을 수밖에 없던 그때. 숨이 막혀 턱 끝까지 차오르며 버겁게 견디던 내 삶에 말해줬다면,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영웅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영웅이 있었기에 우리 부모님은 요즘 두 분이 순대국밥을 같이 먹으러 다닌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거 보면, 또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영웅이 되고, 거인이 되어야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아니면 부모의 문제는 두 분에게 맡기고 나는 나를 더 책임지며 살아야 했던 걸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이토록 나의 내면세계를 건드린 이유는 아마도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태용 감독’이나, ‘나’ 나 이제는 거인이 아닌 "나 "로 살아갈 수 있으니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결론은 거인보다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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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루프를 이렇게 빠져나오다니/로맨틱 코미디/ 어제도 오늘 내일도 오늘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팜 스프링스” 후기입니다. 엔드 크레딧 직전 훈훈한 짧은 쿠키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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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삼칠 리뷰 - 이름을 빼앗긴 소녀, 지옥에서 희망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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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발견한 가장 빛나는 만남”
열아홉 윤영은 엄마와 단 둘이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얼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장에서 일하는 청각 장애가 있는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
착한 마음과 성실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뜻밖의 사고는
윤영을 피해자에서 살인자로 돌변시켜 교도소에 몰아넣고
‘윤영’이라는 이름대신 ‘이.공.삼.칠.’이라는 수감번호로 불리게 만든다.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10호실 동료들은 윤영을 지켜주기 위해 희망의 손길을 내미는데…
반드시 돌려줄게 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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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우린폭망했다> 공식 예고편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 그 모든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하나의 공유 오피스에서 출발한 '위워크'는 10년 만에 470억 달러 가치의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400억 달러의 가치가 날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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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대 너머에> 메인 예고편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숙.
다른 이들의 기억 속을 헤매는 지연.
과거의 기억 속으로 던져진 경호.
서로의 기억 너머,
존재의 의미를 찾는 히치하이커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