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1-04 19:37:57
안아주고 싶은 등짝
영화 <연소일기> 리뷰
SYNOPSIS.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한 고등학교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주인 모를 유서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교감은 이 일을 묻으려고 하고, 정 선생은 우선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부터 찾아보자고 한다.
"일기야, 안녕?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어"
편지와 학생들의 글씨 모양을 비교하던 정 선생은 편지 속 한 문장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든다. 열심히 쓰다 보면 바라던 어른이 될 거란 믿음으로 써 내려간 열 살 소년의 일기. 정 선생은 일기를 읽으며 묻어뒀던 아픈 과거와 감정들을 마주하고,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POINT.
✔ 홍콩 금마장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작
✔ 독특하게도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로 첫 선을 보였는데, 평이 좋았습니다
✔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길 잃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영화, 감정의 에너지가 커다랗게 전해지는 영화. 전 요즘 이런 영화가 참 좋더라고요.
✔ 경쟁을 일상으로 여겨 온 한국인이라면, 다소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어요
✔ 10살 소년을 연기하는 황재락 배우의 얼굴이 오래 아른거릴 거예요
✔ 11월 13일 개봉
영화 <연소일기>는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의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높이를 가늠해 보며 계단을 오르고, 옥상에서 소리를 질러 보는 아이의 등짝. 영화는 이제부터 아이 삶을 따라가며 몇 번의 상승과 하강을 그려낼 것이다.
또 한편에는 '정 선생'이 있다. 영화는 현재의 정 선생과 과거의 아이를 교차해 보여준다. 기억과 현실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매개가 되는 것은 어느 날 정 선생의 학교에서 발견된 유서 비슷한 편지이다. 스스로가 쓸모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그래서 사라져도 빨리 잊힐 것이라는 말. 그 말은 정 선생을 10살 아이의 일기장으로 데려간다.
정 선생을 잡을 때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불안하게 흔들거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턱을 괴거나 엎드리거나 칠판을 보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들이 고여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10살 아이는 폭력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터져 나갈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기 안에 있다.
(언제든 우리의 현재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신의 현재가 괴롭든 괴롭지 않든) 우리는 과거에 누구나 한 번 이상 괴로움을 겪었다. 형태와 깊이는 제각각이지만, 어떤 것은 금방 잊히고 어떤 것은 영영 생채기로 남지만, 그래서 오늘 우리의 얼굴에서 어제의 괴로움이 다 읽히지는 않지만,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 선생의 동료 교사들만 보아도 그렇다. 그들에게 유서 비슷한 편지는 공허한 문장으로만 읽힌다. 어릴 때 한번쯤은 하는 생각이라면서. 그들에게도 익숙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기억 속에 문장의 기표는 남아 있지만, 그 뒤에서 터져 나갈 것 같았던 기의들은 잊혔다.
그러나 정 선생은 10살 아이의 일기장이 떠올라 버린 이상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없어, 상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본다. 유서 편지의 문장과 똑같은 일기장 속 문장을 끈으로 삼아, 교차 편집된 과거에서 10살 아이가 연필로 써내려간 일기장의 기억을 펼쳐 보여준다.
일기를 쓰게 된 계기도, 일기 속 문장들도... 10살 아이의 세상은 녹록지 않다. 필연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나이다. 남들 눈에 비춰지는 성과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히스테릭해져 가는 어머니, 아이와 다르게 뭐든 잘 해내는 동생의 모습은 다소 도식적으로 그려졌지만, 10살 아이의 캐릭터가 선명하여 그 단점을 상쇄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황재락이 연기하는 10살 아이 요우제를 사랑하게 된다. 아이는 비록 공부를 잘 못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데에 재능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문구를 좋아하는 걸로 보아, 공부 아닌 다른 데 재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10살 요우제의 재능을 헤아려 보지 않는다. 그에게는 메트로놈에 딱딱 맞는 것만이 올바른 음악이다. 정해진 박자 바깥의 풍성함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답이 아니라면 모두 틀렸다는 그의 독선은 가족을 차별과 폭력으로 물들인다. 그 독선적 세계 또한 카메라에서 계속해서 흔들린다.
부모의 편협한 시야 안에서, 10살 아이의 세상은 조금씩 쪼그라들고 무너진다. 보고 있노라면 이 일기가 10살 아이의 세상이 무너져간 기록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 선생이 유서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는 순간에도 일각에서는 폭력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세계를 보며, 얼마나 많은 세상이 이렇게 무너지고 쪼그라들고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요우제라는 10살 아이에게 맞춰진 소실점은 수많은 아이들에게로 투사된다.
그 구도 안에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실어 나르고자 한 감정이 묵직하게 전달되어 온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특히 골목 사이로 아이들이 뛰는 장면에서, 카메라 앵글을 따라 세상이 뒤집힐 때, 우리는 비로소 메트로놈 박자 바깥의 세상을 느낀다. 무너지지 않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느낀다. 거기에는 기꺼이 손 내미는 다정함, 함께 보내는 시간, 솔직하게 터놓은 마음이 있다. 그것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절절한 마음을 담아 던지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심규선의 <살아남은 아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 아이인지 모른다. 유서를 발견해도 어린 시절 한번쯤 해보는 생각 아니냐고 말하는 교사들도, 독선적인 형태의 성취만을 인정하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에게 맞추는 데 눈물도 인생도 쏟아낸 어머니도... 사실 그들 또한 과거의 어느 순간, 터져 버릴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불쏘시개처럼 나를 자꾸만 헤집어대는
어린 시절의 아름답지만은 않던 기억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 지금의 네가 되는지
들춘 기억에 귀엣말처럼 속삭여주고 싶다 (...)
너는 살아남은 아이 미움과 무관심 속에서
이 어둠은 너의 별빛을 더 환하게 할 뿐 꺼트릴 순 없어
너는 살아남은 아이 눈물의 반짝임 모아서
저 은하수처럼 흐르며 또 살아갈 거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자꾸 현실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기를 넘어 바라던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가끔은 뒤늦은 후회의 눈빛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해도, 그럼에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런 소망을 품고, 옥상에 선 아이의 등짝을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 안의 <연소일기>에는 그런 문장들이 적힌 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놓쳐버린 등짝들이. 지금이라도 끌어안고 싶은 등짝들이.
이 영화를 마주한 당신의 <연소일기>에서는 어떤 페이지가 펼쳐질까. 이 영화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 일기인 동시에, 당신 내면의 일기장을 부드럽게 펼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겨줄 것이다. Time still turn the page라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 그대로. 과거에 덮어두고 온 상처 투성이 일기더라도, 오랜 시간 흐른 후에 다시 페이지를 고이 넘길 수도 있는 법이니까. 넘어간 페이지에서 다정한 마음을 가득 끌어안고 상영관을 나올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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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ㅇ난감 | 색다른 외관에 못 미치는 깊이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대학생 '이탕'(최우식). 어느 날, 그는 편의점에 난입한 취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퇴근길에 그들과 다시 마주쳤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급하게 자취방에 숨은 그는 미처 숨기지 못한 범행 도구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면서도, 사망자가 악독한 범죄자였다는 뉴스를 보면서 묘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예상치 못한 목격자 '선여옥(정이서)이 등장하면서 이탕은 더 큰 난관에 봉착한다. '장난감'(손석구) 형사가 이끄는 수사망이 점점 그를 조여올 뿐만 아니라 여옥의 협박과 갈취도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 이에 자수와 도주를 두고 고심하던 이탕은 결단을 내린다. 모든 증거를 지우기 위해 살인자가 되어 살기로.
<살인자ㅇ난감>의 명암
한국 영화 시장에는 네 번의 성수기가 있다고들 한다. 여름 방학, 크리스마스, 추석과 설날 연휴.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특히 명절 연휴의 위력이 옛날 같지 않다. 작년 추석에는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미집>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 설 연휴에도 <도그 데이즈>, <데드맨>, <아가일> 모두 외면받았다.
대신 그 자리를 OTT가 채웠다. 특히 넷플릭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대형 한국 콘텐츠가 연달아 흥행하는 중이다. <살인자ㅇ난감>도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공개된 후 3주 차가 되도록 국내외에서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한 몸인 법. <살인자ㅇ난감>에는 성적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한국 콘텐츠의 고질병, 부족한 뒷심이다. 에피소드 8개 중 앞선 절반은 환상적이다. 출연진 말마따나 '팝(pop)하다'라는 표현이 안성맞춤인 독특한 연출이 정주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풍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각 캐릭터는 표류하고, 극은 동력을 상실한다.
살인자의 난감함을 꽃피우다
<살인자ㅇ난감>의 매력은 예상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이미지의 향연에서 비롯된다. 이탕은 선여옥을 죽이려 한다. 그녀의 거실에서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탕. 그 순간 화면이 전환된다. 탕과 여옥은 거실에 있지 않다. 웬 꽃밭에 있다. 그곳에서 탕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여옥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친다.
특히 이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그것도 순식간에, 빨간 피는 가능한 등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색다른 배경, 교차 편집, 짧고 담백한 묘사가 한 데 어우러지니 임팩트는 강렬하다. 잔혹함을 대신하는 상쾌한 이미지를 보면 '이 드라마는 다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팝한' 연출의 힘은 휘발성이 아니다. 살인자의 난감함이 아름다운 화면과 대조를 이루며 더 명쾌하게 드러나기 때문.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이후 충격에 빠진 이탕. 그의 정신적 피로감과 죄책감은 그가 선여옥을 죽일 때만큼이나 독특하지만, 기묘한 환각으로 표현된다. 그 덕분에 그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잃고 점점 살인에 빠져드게 되는 일련의 흐름도 더 설득력 있게, 직관적으로 제시된다.
평범해진 살인자
하지만 <살인자ㅇ난감>은 첫인상의 이점을 더 살리지 못했다. <살인자ㅇ난감>의 신선함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핵심은 발상의 전환이다. 살인을 잔인하지 않게 다루는 연출과 미장센이 돋보였다. 문제는 다른 부문에서 발상의 전환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즉, 살인의 외양만 바꿨을 뿐, 이야기의 본질은 색다르지 않다. 그 결과 <살인자ㅇ난감>의 초반과 후반은 괴리감이 극심하다.
캐릭터의 완성도가 그 방증이다. 주인공 이탕은 자기 직감대로 사람을 죽이고, 사망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자기 살인을 정당화한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대학생의 면모도 지녔다. 살인 이후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자수를 결심하며, 가족의 품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살인이라는 거대한 충격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청년이 이탕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이었다.
그런데 배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이탕이라는 캐릭터는 평범해진다. 그는 노빈의 도움을 받아 자기 직감이 옳음을 확인한 뒤 범죄자를 처단한다. 마지막까지도 범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정의롭다고 믿는 살인을 저지른다. 이처럼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어야 한다"는 신념을 거침없이 실천에 옮기는 그는 다크 히어로에 가깝다. 살인의 무게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전반부의 이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살인 장난감도, 살인자 난감도 찾을 수 없다
'송촌'(이희준)과 장난감 형사의 존재감도 덩달아 유명무실해진다. 송촌은 본래 이탕의 내적 고뇌를 드러내는 장치여야 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죽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명확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탕에게 "죽어야 할 놈을 판단하는 너 스스로를 믿을 수 있냐"라고 묻는다. 살인 대상의 범죄를 인지하고 죽이는 자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윤리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에 이탕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윤리적 딜레마를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그들 간의 차이점은 논제가 던져지자마자 퇴장한다. 분위기만 잡은 후에 이탕을 정의의 사도로, 송촌을 그에 맞서는 마지막 빌런 정도로 간략히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살인자'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것 같았던 첫인상을 후반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장난감 형사의 문제는 더 크다. 그는 범죄자를 법의 범위 내에서 단죄해야 하고, 죽어야 할 사람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경찰 혹은 검사 캐릭터다. 자연히 그와 이탕의 대립은 익숙하다. 그 와중에 드라마가 은연중에 이탕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그와 이탕의 대립각은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이에 더해 평면적인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적다. 장난감과 아버지의 묘한 관계, 아버지와 송촌의 과거를 토대로 형사가 살인자가 되는 이야기를 쌓으려 한 시도는 엿보이나 역부족이다. 세 인물 간의 감춰진 이야기가 단순한 애증과 부조리로 귀결되기 때문. 손석구라는 배우의 독특한 마스크가 아니었다면 더 희미한 캐릭터였을지도 모른다.
반복돼서 더 아쉽다
사실 후반부가 맥 빠지는 현상은 <살인자ㅇ난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한국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문제다. 피카레스크 성향의 원작을 영상화할 때 선인-악인, 가해자-피해자로 나눌 수 없는 캐릭터가 단순해지면서 뒷심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스크걸>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웹툰 원작의 경우, 흥행이나 편의성을 고려해 대중적인 플롯에 맞춰 각색이 자주 이뤄진다. <살인자ㅇ난감>의 후반부도 마찬가지다. 연결성과 흐름은 깨져도, 이탕 중심으로 구도를 간략화했다. 장점도 분명하다. 한정된 분량 내에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보여준 색다른 연출을 고려하면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평범하다는 인상도 부정할 수는 없다.
기대감을 한껏 부풀린 나머지 용두사미가 된 셈이다. 객관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가능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옭아맨 <살인자ㅇ난감>이 유독 아쉬운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또 하나의 뒷심 부족을 목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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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Db 최고 평점을 받은 영화 (10점만점 9점 이상)
전세계 최대 영화 사이트 #IMDB 의 최고 평점을 기록한 영화들.
IMDB는 국적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영화의 정보를 찾을 수 있으며 영화뿐만이 아닌 다큐멘터리,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TV 쇼, 자동차/비디오 작품, 비디오 게임 정보도 찾을수 있는데요.
이 평점은 이 사이트의 유저 평점으로, 비평가들의 평점에 비해 대중적인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편입니다. IMDB에서 평점을 준 유저가 수만에서 수십만에 달하며 영화 쇼생크 탈출은 평점을 단 유저가 무려 200만명이라고 합니다.
대중의픽 명작 영화들! IMDB의 9점을 넘긴 영화들 같이 알아보실까요?
12인의 성난 사람들
<9.0/10>
최후의 판결을 앞둔 12명의 배심원들은 최종 결정을 위한 회의에 1명을 제외한 11명 전원이 스페인계 미국 소년을 유죄로 판결을 내린다.나머지 1명이 이 사건은 소년의 범죄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끝까지 소년의 무죄를 주장하는데..
대부
<9.0/10>
새로운 대부가 된 마이클 꼴레오네는 변화된 시대에 맞추어 가족 사업을 합법적인 기업으로 확장시키려고 노력한다.하지만 쿠바에서 일어난 반군 사태로 가까스로 미국으로 되돌아오고 다른 패밀리의 배반으로 '마피아' 청문에까지 서게 되는데..
<9.0/10>
배트맨을 제거하기 위해 광기어린 악당 ‘조커’를 끌어들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커의 등장에 고담시 전체가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배트맨은 사상 최악의 악당 조커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마지막 대결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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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0>
시실리아에서의 이민과 모진 고생 끝에 미국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의 두목 돈 코를레오네. 갖가지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사람들은 그를 ‘대부(代父)’라 부른다. 부모의 복수를 위해 시실리로 돌아와 조직적 범죄를 통해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쇼생크 탈출
<9.2/10>
촉망 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는 아내와 그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어느 날, 간수장의 세금 면제를 도와주며 비공식 회계사로 일하게 되고 신참내기 ‘토미’로부터 ‘앤디’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얻지만, 노튼 소장은 ‘앤디’를 독방에 가두고 ‘토미’를 무참히 죽여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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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산으로서 살아가는가
도시에 사는 '피에트로'와 산에 남은 유일한 아이 '브루노' 알프스에서 만나 친구가 된 두 소년은 자연을 누비며 우정을 나눈다. 그 후 성인이 된 '피에트로'는 아버지 '조반니'가 세상을 떠난 뒤 산으로 돌아오고 '브루노'와 재회한다
<여덟 개의 산> 줄거리
브루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벽돌공으로 피에트로는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며 집을 나오며 방황하는 삶을 이어나간다. 자연에서 우정을 이어나가던 둘은 그렇게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인다. 긴 시간 동안 부모와 연을 끊고 살아가던 피에트로는 아버지 부고 소식을 듣고 예전에 브루노와 함께 놀던 곳으로 돌아간다. 연락 한번 않던 아들, 피에트로와는 달리 브루노는 피에트로의 부모님과 자주 만나며 지냈고, 그런 그에게 피에트로의 아버지는 예전에 셋이 갔던 산 중턱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했었는데, 이 부탁은 그가 죽은 뒤 피에트로와 브루노가 다시 그 산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한참을 방황하며 자신의 가족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던 피에트로는 그와 반대로 살아가고 있던 브루노와 함께 집을 만들면서 가족들과 다시 소통을 하고 산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들은 다시금 우정을 회복하며 자신들을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하는데,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산에서 뛰어놀며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삶이 이어져 나가면서 서로의 삶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실패나 사랑 등을 하며 다르게 살아간다. 서로 다른 삶이 어떻게 교차되고 이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호흡이 매우 긴 영화이다. 콘텐츠를 즐기다 보면 후반부쯤 가서는 거의 결말에 가까워지는구나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씬이 나와도 계속 영화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하지만 화면에서 보여지는 지연의 광활함만으로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영화 중반 즈음에 피에트로가 브루노에게 여덟 개의 산과 중심에 있는 수미산에 대해 얘기해 주면서 영화 제목이 등장하는데,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수미산을 오른 사람과 여덟 개의 산을 오른 사람 중 누가 더 우월한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세계 각지의 산들을 오르면서 살아온 하지만 아버지와 브루노가 올랐던 산은 아직 오르지 못한 피에트로와 자신이 평생 산 곳의 산만을 오르며 살고 있는 브루노 둘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처럼 생각했을 때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부러워 하기도 하고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기 때문에 둘 중 더 우월한 것은 없다는 나만의 답을 내놨다.
피에트로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브루노가 올랐던 산들도 하나하나 올라가며 지도를 채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그 역시 브루노, 그리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브루노와 함께 만든 아버지의 집이 있는 산이 수미산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떠났던 수미산을 아버지의 죽음에 의해 다시 돌아오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린 브루노와 그의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냈지만 브루노의 죽음으로 다시금 그 산을 떠나게 된다. 아마도 피에트로는 그 산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돌아간다 한들 그 산은 더이상 피에트로의 수미산이 아닐 것이다. 여덟 개의 산, 그리고 중심에 있는 수미산을 통해 두 사람의 다른 삶을 그려낸 <여덟 개의 산>을 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여덟 개의 산>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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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
오늘의 영화는 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 멜로/로맨스, 드라마 | 한국 | 33분
감독 | 조용익
출연 | 이수경, 엄태구
등급 | 12세 관람가
줄거리
감독 지망생 도환은 지난 연애로 고통받고 있는데, 프리랜서 모임에 나갔다가 이상하게 매력적인 은하를 알게 된다. 그녀의 도움으로 그는 지난 연애의 문제점을 알게 되고, 그의 시나리오 또한 해결책을 찾게 된다. 은하와 도환은 전화와 문자로 계속 가까워진다. 도환이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지만, 그는 또다시 상처받을까 두렵다.
출처 | 다음 영화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를 보면 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택을 받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정말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과연 왜일까. 아마 좋아하던 누군가가 떠올라서, 혹은 누군가를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서 아닐까. 도환과 은하가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렸던 것처럼 이 영화 또한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에 의해 관객이 끌렸던 것 같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싱그러움"
영화를 생각하면 딱 한 단어가 떠오른다. '싱그러움'. 싱그러운 초록 풀로 꽉 차있는 배경, 귀뚜라미와 매미 소리, 채도 높은 색감. 영화 속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에 의해 마치 싱그러운 여름 한가운데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풍경과 함께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는 영화의 싱그러움을 더욱 극대화했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사랑스러운 두 배우"
이수경 배우는 항상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 최민식은 한 인터뷰에서 이수경 배우를 "천생 배우, 동물적인 본능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며 칭찬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감독과 동료 배우는 이수경 배우를 '본능'의 배우라는 말하는데요. 그러니까 이수경 배우는 계산 없이 본능적으로, 그 캐릭터 자체가 되어 연기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수경 배우가 연기한 '은하'하는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조금 포스가 있고, 센 악역을 주로 맡았던 배우 '엄태구'의 로맨스 영화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엄태구 배우의 입덕작이었다고 말하는 팬들도 많고, 관련 영상 댓글을 보면 엄태구 배우가 더 많은 로맨스 작품을 찍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적혀있다. 한국인이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이 '하여튼 웃겨', '하여튼 희한해', '하여튼 이상해'라고 하던데 극 중 은하가 도환에게 빠지게 된 것도 이게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금은 찌질하게 묘사되는 도환이지만...하여튼 웃기고, 희한하고, 이상하다.
출처 | 다음 영화
"은하의 시점은?"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도환의 시점만 있을 뿐, 은하의 시점은 알 수 없었다. 극 중 은하는 도환에게 "여자를 단순히 그냥 이별 통보하는 대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여자는 나름의 이별을 준비해 온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다가가는 건 어때요? '너무 남자 시점으로만 보는 영화보다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리는 이야기를 한다. 작품 속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싱그러운 로맨스 영화를 찾고 계시다면 <시시콜콜한 이야기> 어떨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왓챠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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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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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릿한 얼굴 위로 하얀 빛
SYNOPSIS.
그녀는 하오하오와 헤어졌지만 그는 늘 그녀를 찾아냈다. 주술이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돌아왔고 스스로 다짐했다. "은행에 있는 50만 대만달러를 전부 써 버리면 그를 영영 떠날 거야"
그녀는 클럽에서 잭을 만났다. 잭은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그녀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해 줬다.
이 일은 10년 전인 2001년의 일이었다. 세계는 21세기를 맞이했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POINT.
✔️ <비정성시>, <카페 뤼미에르>, <쓰리 타임즈>, <자객 섭은낭>...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자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작품
✔️ 세기말 청춘의 정서를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작품.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의 빠른 속도 속 젊음을 담았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 대배우 서기의 저력을 볼 수 있는 작품. 시나리오 없이 시놉시스로 시작해서 촬영한 영화라고 (아니 뭐라고?) 해요.
✔️ 금마장 영화제 촬영상, 영화음악상, 음향효과상 + 겐트 영화제 감독상.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받았어요.
✔️ (재)개봉은 2024년 12월 31일. 밀레니엄처럼 찾아올 새해의 새벽에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빛이 어슴푸레한 터널 안으로 배우 서기가 분한 '비키'가 터널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뚝뚝 비트가 떨어지는 음악 위로, 긴 머리가 흩날리고, 현란한 무늬의 옷에 감싸인 팔을 휘적거리기도 하고... 그 위로 영화 시놉시스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한다. 헤어져도 계속해서 찾아오는 연인과 매인 듯 자꾸 돌아가게 되는 연인. 3인칭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내레이션 이후 터널 끝에서 계단을 내려간 비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면, 방금 들은 내레이션이 영화에 그대로 펼쳐진다. 영화 전반은 비키의 내레이션이 나온 후 그 내용을 화면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내레이션은 2001년으로부터 '10년 후', 즉 2001년작인 이 영화를 기준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비키는 '나'라는 1인칭 대신 '그녀'라는 3인칭을 사용해 내용을 풀어낸다.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져 모든 걸 버리고 서로에게 엉겼던 진득한 풋사랑은, 회상의 말보다 영상 속에서 더 지리멸렬하다.
어리고 철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연인의 관계는 대부분 어두운 조명 속에서 흘러간다. 밤의 간접 조명, 거의 블랙라이트 조명에 가까워 흰 옷이 푸르게 비치는 클럽의 조도, 희미한 빛, 깜빡이는 불빛 아래서나 그들은 서로를 원하고 있다. 그들에게 투명하고 올곧은 직사광선은 내리쬐는 법이 없다. 아침이 되어도 빛은 간유리나 비닐이 덕지덕지 발린 창을 투과하여 들어오며, 그나마도 끊임없이 소리를 빚어내는 유리 문발에 걸려 갈가리 조각난다.
유리알 부딪는 소리는 이내 관계의 파열음으로 발전한다. 목욕 수건과 샤워 타올 차림으로 경찰을 맞이하는 이 커플의 결말은 결국 (이 시대 창작물에 흔했던 방식 중 하나로) 비키를 몰아넣으며 일단락되지만, 내레이션에서 "주술" 같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이 사랑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파멸의 원인이 남긴 자욱이 너무 깊어, 설령 내게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떼어내기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무감하게 삐그덕거리며 공허하게 지속된다. 하오하오가 몇 번이나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강조하듯 상반된 빛이다. 검푸른 클럽 디제잉의 빛을 집안에까지 가져오는 하오하오와 달리, 붉은 계열 물건이 많은 비키의 방은 언제나 난색 조명으로 밝혀져 있다. 간유리와 유리 발로 깎이고 깨져 들어오는 빛일지언정 같은 빛 안에 있던 날들은 이미 바랬다.
사랑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와도 발을 내딛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사랑을 징검다리처럼 밟아야만 발을 내딛는 이들이 있다. 땅 위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서는 대신, 사랑에서 다음 사랑으로, 때로는 불안한 발을 서서히 옮기느라 두 개의 돌 위에, 발을 괴고 있는 것이다.
휘적휘적 걷던 비키는, 유리알 같은 파열음을 남기며 끈질기게 이어져온 하오하오와의 인연이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섰을 때 잭을 만난다. 잭은 의아하리만큼 충성스러운 자세로 비키를 보호한다. 억지로 약을 빼앗아야 했던 하오하오와 달리, 그는 부엌에 서서 비키에게 먹일 무언가를 요리한다. 끊임없이 괜찮다는 말을 해준다.
그러나 잭의 요리는 비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매운 소스를 몇 번이나 다시 뿌려야 하고, 반대로 잭의 담배는 비키에게 너무 강하다. 도무지 맞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먼저 펼쳐진 후에 영상이 펼쳐져 비교적 알기 쉬웠던 전반부와 달리, 잭의 시간은 영상이 먼저 펼쳐진 후 내레이션으로 정리된다. 하오하오에 비해 잭은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엉망진창으로 자기를 좀먹는 관계라는 걸 알았다 해도,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헤어지라는 댓글이 빗발칠 (아니면 <무엇이든 물어보살> 나와서 서장훈에게 한 소리 씨게 듣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제될) 하오하오여도, 그와의 관계는 최소한 비키에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잭이 아무리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해도 그는 비키에게 미지의 세계다. 그가 해결하려고 애쓰는 일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 수 없다.
결국 잭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키의 얼굴은 내내 흐릿하다. 잭의 집 부엌에는 큼직한 창이 나 있지만, 비키에 앉아있는 거실은 여전히 난색 조명으로만 겨우 밝혀져 있다. 잭의 자동차를 타고 그에게 얼굴을 온통 기대고 있을 때조차, 비키의 얼굴은 터널 속에서 스치는 조명으로 짧고 흐릿하게만 보인다.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조차 햇빛이 유리에 푸르게 반사되어 얼굴은 흐릿하다. 손에 쥔 머그컵에도 흐린 얼굴 무늬가 찍혀 있다.
영화 내내 비키의 얼굴은 흐릿했다. 흐릿한 간접 조명에 그림자 져서, 클럽의 검푸른 조명에 실루엣만 남아서... 심지어 일본 혼혈 형제와 함께 향했던 유바리 시에서 신나게 눈밭을 뛰어 다니던, 모처럼 생기 있어 보이던 그 날조차 눈밭에 푹 찍은 얼굴은 흐릿한 흔적만을 남겼다. 사랑 비슷한 것에서 사랑 비슷한 것으로, 제 발로 땅 딛고 가기보다 불안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겅중겅중 넘어온 비키의 사랑이 그랬듯.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눈 쌓인 유바리 영화의 거리를 걸을 때, 낯선 외국어를 입내 내어 따라할 때 비로소 비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난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내레이션은 잭과 하오하오의 순간들을 무감하게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 대한 감상을 밝힌다. 그리움이 묻어 있던 잭의 외투를.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는 눈사람처럼 느껴졌던 하오하오, 그의 불안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눈 추억을. 비로소 비키는 사랑의 온전한 서술자가 된다.
그 자리에 영화가 있다. 정갈하게 낡아 가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의 흐릿한 얼굴을 비춘다. 흰 눈처럼 빛을 반사해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고, 1인칭의 언어로 나의 사랑을 서술하게 한다. 아무 것도 없이 흰 눈만 내리는 것 같은 그 거리에, 영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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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한 세상, 진격만이 정답인가 순수함이 해답인가. 저 육교 위 청춘들에게 답이 있긴 한걸까
최근 우리 사회에 벌어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엄청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려본다. 2024년 12월 3일, 해가 지고 달이 하늘을 뒤덮은 어스름했던 그 시간. 이 사회의 정의를 구축하고,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의지 하나로 정의를 무너뜨리고 진실을 덮으려 했던 그날, 과연 그들이 찾고자 했던 정의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입에서 빈번히 내뱉어지는 말은 모두 '국가 안전보장'이라는 헌법상 개념에 수렴한다. 실제로도 국가는 국민의 생명, 신체, 기타 재산을 보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혼란스러운 것은 어디까지가 보호이고, 어디까지가 침해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는 데에 있고 결국 이 부분이 대한민국의 혼돈을 야기했다. 혼돈이 찾아오면 언제나 주목되는 것은 혼돈을 잠재우는 누군가. 우리나라가 위대한 이유에 대해 말해보라 한다면 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위대한 이유를 12월 3일 국회의사당으로 한걸음에 달려온 그 시민들의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린 보호와 보장의 탈을 쓴 무소불위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 일어났고 그렇게 시민들의 저항은 정의가 되었다. 이게 정의이고, 진실이지 않을까. 하지만 열띤 저항의 방법을 택하지 않고도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 영화는 이 지점을 꼬집는다. 급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위 '들이받기' 그리고 이미 오염되어 버린 세상에서 벗어나 순수함만을 갈구하는 순수주의, 다시 말해 '도피'. 무엇이 답일까. 아님 대체 답이란 존재하긴 한 걸까.
영화 <해피엔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해석과 극단적으로는 영화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확실한 것은 어쩌면 감독은 10대의 눈을 통해 전 세계가 놓인 이 정치적 문제 상황들을 타개할 방법들을 모색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결과 맞이한 두 갈래로 나뉜 육교의 갈림길 속 그 무엇도 답이 될 수 없어 어정쩡 거리는 주인공 "유타"의 입장이 지금 우리의 입장이 아닐까. 그 무엇도 답이 될 수 있지만 그 무엇도 답이 되어줄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의 반영.
일본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는 유타, 한국계 혼혈인 "코우"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밍" "아타" "톰"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있지만 과거 일본의 테크노풍 음악을 즐기는 음악동아리 친구들이다. 어느 날 학교에 늦게까지 놀던 친구들은 교장선생님의 새 차를 보게 되고 장난치고 싶었던 것인지 차를 세로로 세워둔다. 결국 이 사건은 모든 일의 원흉이 된다. 교장선생님은 그 사건을 테러라 규정하고 앞으로의 사건 사고들을 예방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학교 곳곳에 CCTV를 달고 AI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교칙 위반 행위들을 적발해 벌점을 부여했다. 이들과 같은 반이던 "후미"는 학생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학교의 만행에 자신의 시위대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과 함께 분개했고, 이를 지켜보던 코우는 관심이 가기 시작해 시위에 함께 한다. 그런 죽마고우의 새로운 발걸음과는 달리 유타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학교의 지나친 간섭에도 개의치 않아 하자 코우와 유타는 각자의 관념 차로 인해 다투게 된다.
어떠한 영화든 주가 되는 앵글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영화 <다크나이트>의 경우 하단 앵글을 통해 작중 악당이었던 "조커"의 걸음을 악독하게 표현했다. 영화 <샤이닝>의 경우 클로즈업을 통해 주인공 "잭"의 실시간으로 변하는 표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영화 <해피엔드>의 경우 이를 부감 쇼트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제 3자 혹은 전지적인 시점으로 영화 속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이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듯한 시점 내지는 카메라 앵글이 가장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영화 속 갈등의 진원지는 단순히 교장선생님 혹은 그 옆의 선생님이 아닌 어디선가 개인을 은밀하게 감시하고 추적하는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런 카메라 앵글을 통해 인물들의 움직임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는 그 인물들을 감시와 권력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또 하나 인상 깊은 영화적 장치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멀리서 대화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내레이션이나 보이스오버 등으로 직접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 자리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상상에 기인한 입을 통한 대사로 들려준다는 점이다. 이는 각 인물의 성격과 특히 10대들의 순수하고도 어리숙하고 유치하기까지 한 정서를 관객이 몸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화의 주제와도 닮아있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런 몇몇 씬들은 모두 학생들인 10대 청소년들과 어른들 간의 다툼 혹은 사회의 벽에 부딪혀버린 무기력해진 10대들의 모습을 담은 씬이라는 점에서 이를 또 다른 10대의 눈과 생각을 통해 해석한다는 점은 영화의 서사와도 맞닿아있다.
필자에게 있어 영화 <해피엔드>는 액자식 구조 같아 보였다. 액자식 구조를 취하는 서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아무래도 외부와 내부를 오가는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흐름 그리고 유기성일 것이다. 본 작품의 내부는 어쩌면 외부의 반영본 혹은 축소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미래의 도쿄, 국가는 지진을 대비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대비하기 위해 긴급명령을 내렸고, 보호 목적의 행위들은 애먼 코우와 같은 순수혈통 일본인이 아닌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 시위를 당기게 했다. 영화 속 사람들은 우리 세계의 모 국가를 떠올리게끔 위대한 일본을 다시 세워야 한다면서 외지인, 비순혈 일본인들을 비국민(非國民)이라 몰아갔고, 결국 코우와 후미 그리고 시위를 모의하는 인원들이 모두 함께 분개했다. 이러한 상황에 반영인지, 학교는 교장선생님의 차량 '테러' 사건 이후 학생들의 보호와 안전을 목적으로 이전부터 맘에 안 들었던 코우와 친구들의 음악 동아리실을 밀어버렸고 AI를 통한 지속적인 감시 그리고 국가의 소위 '갈라치기'식 행정을 똑같이 베껴 교육에 있어서도 차별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학교가 학생들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를 가만두고 볼 수는 없어 학생들이 일어나 시위를 하는 것을 그저 혈기 왕성한 10대 청소년들의 어른들에 대한 반항 혹은 반발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반항 혹은 학교에의 대항이 아니라 근미래의 일본 사회에 대한 반발이고 일본의 기득권층 내지는 권력층에 대한 학생들의 뜨거운 저항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러한 저항이 혁명이 될 수 있었을까? 영화는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나아가 일본 사회에 대한 10대들의 저항이 되었을 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또한 '과연 그러한 변화만이 문제 해결의 답이 될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10대들의 저항을 통해 학교는 변화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 하지만 항상 변화가 있으면 거기엔 조건이 달린 법, 학교는 자동차 테러 사건의 진범이 자수하게 되면 모든 일들을 철회하겠다고 한다. 이에 학생들의 갑론을박이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했는데, 이때 유타가 앞으로 나가 자신이 진범임을 당당히 밝히며 퇴학당한다.
자동차 테러 사건을 함께한 이들을 정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유타와 코우로 추론할 수 있다. 코우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후미와 함께 배우고 목도해나가면서 사회에 분개하면서 동시에 어릴 때와 똑같이 아무 생각 없이 음악과 유치한 장난만 치려는 유타에게 실망감을 느껴 그에게 비난을 쏟는다. 유타는 공부를 잘하지도, 엄청난 부자이지도 않다. 그저 일본의 옛날 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10대 청소년이다. 유타와 코우를 동일선상에 두고 본다면 건실함, 성실함 그리고 흔히 말하는 '좋은 사람'에 부합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코우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두 공범이 한 장소에 놓여 사건의 진범으로서 발각될 절체절명의 순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유타가 강당 앞에 나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코우로 하여금 학교의 지원을 계속해서 받게끔 엄청난 선택을 내렸다는 것은 영화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급진적으로 진격하는 코우와 같은 정신을 옹호하려고도 유타와 같이 순수함만을 추구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도피를 택한 이들을 비난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종반부, 학교에서 퇴학당한 유타는 전부터 다니던 음악 기기 판매점에서 일을 계속했고, 코우는 그렇게 정상적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함께 졸업하게 된 밍과 아타는 서로의 미래를 걱정하다 연애를 시작하는 눈치였고, 코우 유타 아타 그리고 밍은 그들이 늘 찢어지던 육교 위에서 방향을 달리하며 찢어졌고, 영화의 초반부 씬처럼 유타와 코우가 육교 위 갈림길에 서서 서로에게 무언의 아쉬움을 보낸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 명은 교복 차림, 한 명은 사복 차림이라는 사실, 또 너무나 편하고 친근했던 둘의 사이가 전과 같지 않으며 둘 다 이제 청소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반부와 같이 먼저 발길을 돌리는 코우, 유타는 우두커니 갈림길 중앙에 서있다 코우에게 한번 더 인사를 건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 전처럼 코우와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죽마고우였던 두 소년이 각자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성이 너무 달라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던 아쉬움과 작별의 슬픔. 어쩌면 그들이 건넨 '다음에 보자'라는 말의 '다음'에는 기약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처연한 생각까지도 들게 한다. 순수함을 잃은 소년의 갈 곳 잃은 눈 그리고 순수함을 잊지 않으려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소년의 아쉬운 발걸음은 영화가 하고자 했던 모든 말들을 대신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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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만에 넷플릭스 전세계 1위 한국 드라마 지옥 정주행 하기(해석)
넷플릭스 오리지날 한국 드라마 지옥 1~3 편의 내용입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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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라이트 감독 신작,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강추 ?)
- BGM Solace - Nomyn Voyeur - Jingle Pu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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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유미의 세포들 시즌2> 메인 예고편
"예쁘다" 강력한 돌직구 매력이 온다! 티빙 오리지널 [유미의 세포들 시즌2] 6월 10일 TVING 단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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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레센도> 메인 예고편
점점 세게, 점점 강하게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꿈꾼다!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에두아르트’는 평화 콘서트를 위해
오디션을 거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뽑는다.
수십 년간 이어온 분쟁과 갈등을 넘어 오직 음악을 바라보고 모였지만,
깊이 담겨 있던 분노와 증오는 이내 서로를 공격한다.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지휘자 ‘에두아르트’는 진심을 담아 노력하고
영원히 평행선을 걸을 것 같던 이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연을 하루 앞두고
팔레스타인 클라리넷 연주자 ‘오마르’와 이스라엘 프렌치 호른 연주가 ‘쉬라’가 사라지는데…
오케스트라 공연은 무사히 열릴 수 있을까?
평화를 향한 희망의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