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05 23:46:42
시듦을 인정하며 완성되는 사랑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꽃다발의 의미
- 달라진 신발과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책장
- 이어폰과 함께 듣는 음악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We Made a Flower Bouquet, 2021)
시듦을 인정하며 완성되는 사랑
개봉일 : 2021.07.1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도이 노부히로
출연 : 아리무라 카스미, 스다 마사키, 키요하라 카야, 호소다 카나타, 오다기리 죠, 토다 케이코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각자 다른 꽃을 꺾어 이리저리 배치하고 꾸미면 예쁜 꽃다발이 하나 완성된다. 색, 질감, 가지의 길이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발 안 꽃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것들이 원래부터 하나의 덩어리였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이런 꽃다발처럼 보이는 사랑을 한 청춘 남녀의 이야기다.
무기와 키누는 막차가 임박한 지하철역 앞에서 처음 만난다. 서로 부딪히며 삐끗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막차를 놓치고, 어쩌다 보니 개찰구 앞에 있던 직장인 두 남녀와 함께 바에서 첫차를 기다리게 된다. 무기는 딱히 공감할 수 없는 직장인 남녀의 대화를 불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키누는 무기의 말과 표정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각자의 길로 찢어지려던 찰나. 공통점 하나로 말문을 트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운명임을 직감한다.
무기와 키누가 생각하기에 둘은 서로 공통점이 너무도 많았다. 처음 만난 날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고, 같은 작가를 좋아하고 같은 책을 읽었고, 같은 뮤지션을 좋아했으며 같은 날의 공연 표를 사놓고 가지 못한 것까지 똑같았다. 두 사람은 첫차가 올 때까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다음을 약속한다. 그리고 상대의 사소한 행동에 설렘과 특별함을 느끼며 연인이 되고 나의 일부를 꺾어내 ‘똑닮은 우리’라는 하나의 꽃다발을 만들어간다.
무기와 키누는 이 꽃다발이 조화롭고 완벽하다고, 이대로 평생 가슴에 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는 화분 속 꽃과는 다르게 흙도 뿌리도 없는 꽃다발 속에 자리 잡은 꽃들은 각자의 속도로 시들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시들어가는 우리를 느끼며 이별을 생각한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다발,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말을 이렇게 오목조목 곱상하게 펼쳐내는 영화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누군가의 이상행동, 문제를 만드는 제3자,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잉 감정 등 호불호 포인트가 될만한 것들을 싹 배제한 채 최대한 담백하게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그린다.
시간의 흐름에 올라탄 연인
달라진 신발과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책장
아르바이트와 학교 성적 유지 정도의 비교적 무겁지 않은 책임만 주어지는 나이에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라는 불안정한 흐름에 함께 올라탄다. 이들은 키누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 부모님의 압박과 취업 문제, 작은 경제적인 문제를 맞이하지만 그것 또한 나름의 로맨스로 승화한다.
취업을 못해 집안에서 눈엣가시가 된다면 집을 나와 함께 살면 되고, 집이 역에서 멀면 커피 한 잔을 사들고 행복한 데이트 코스로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점점 깊어지고 무기와 키누는 연인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잠시 꿈을 접어두고 현실에 몰두하게 된다.
취업만 성공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더 멀리 벌어진다.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장면들이 점점 줄어들고 키누는 거실 창문 너머에, 무기는 방 창문 너머에 담기는 장면들이 많아진다. 말하지 않아도 늘 함께 신었던 흰색 스니커즈는 문 안을 바라보다 문 바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끝내 사라져버린다. 흰색 스니커즈가 있었던 자리엔 다른 모양새의 구두 두 켤레가 어색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기는 ‘돈이 없으면 키누에게 밤일을 시켜보라’는 선배의 말에 자극을 받아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지만 막상 취업을 하고 나선 키누에게 마음을 주지 못한다. 키누에게 상처를 줬던 딱딱한 면접관을 욕하던 그는 어느덧 그 면접관처럼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키누에게 상처를 준다. 일에 휩쓸리던 무기는 학생 때처럼 영화, 책, 게임을 사랑하는 키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몇 번의 갈등이 생긴다. 이때 각자의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엔 한때 즐거운 마음으로 공유했던 거대한 책장이 버티고 있다.
키누는 새로 나온 만화책이나 함께 보기로 했던 연극 등 예전에 무기가 좋아했던 것들을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노력하지만 무기는 키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일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키누는 이런 무기 앞에 앉아 빨래를 개고 옷장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빨래와 함께 섭섭한 마음도 함께 접어 넣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이 완성되는 과정
하나의 이어폰을 나눠 쓰던 두 사람
오프닝신에 나온 무기와 키누는 “이어폰 하나를 나눠 끼고 듣는 건 둘이 다른 음악을 듣는 일”이라며 분개한다. 음악은 최소 스테레오 채널(2채널)로 구성되어 있는 콘텐츠라 왼쪽, 오른쪽에서 나오는 각자 다른 소리를 같이 들을 때만 그 음악을 제대로 들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모노 채널이 아니다. 연인이라 하여 사랑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할 순 없다. 다른 채널에 있는 연인이 어떤 사랑을 원하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노력한 것만 이야기한다면 그 사랑은 온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처음 고백하던 날, 무기와 키누는 한 이어폰을 끼고 레스토랑 점원 포린의 음악을 듣는다. 어렸던 무기와 키누는 한 이어폰으로 같은 음악을 듣고 ‘무기와 키누의 사랑’이라는 똑같은 꿈을 꾸며 노력한다.
무기는 키누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회사에 취업한다. 키누도 무기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취업을 하고 무기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취미 생활을 공유하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 어떤 사랑을 원하고 있는지, 그가 이 사랑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진 헤아리지 못한다.
무기와 키누는 첫 만남부터 수많은 공통점을 공유했기에 자연히 연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보단 무기는 키누가, 키누는 무기가 취업, 지인의 죽음, 시간이라는 변화 앞에서 자신과 같은 태도를 취하길, 같은 결말을 바라길 기대한다.
하지만 무기와 키누는 많은 부분이 닮은 타인일 뿐,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무기는 키누가 열광했던 미라전을 무서워했다. 미라전을 보고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눌 때, 키누는 전시회 도록을 펼치며 흥분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무기는 애매한 표정으로 키누의 말을 듣다가 점원이 오자마자 재빠르게 미라로 가득한 도록을 덮어버린다. 키누는 무기의 가스탱크 영상을 보다가 깜빡 잠들어버린다. 무기는 키누가 가장 재밌는 장면에서 1시간 동안 잠들었다며 아쉬워한다. 두 사람은 이러한 사소한 다름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와 다른 연인에 오래도록 실망하고 슬퍼한다.
무기와 키누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이별을 결정한다. 그리고 ‘똑닮은 우리’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고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라전과 가스탱크에 느꼈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지금껏 듣지 못했던 다른 채널에 담긴 소리를 들으며 ‘무기와 키누의 사랑’이라는 꿈의 마지막 소절을 완성한다.
시간이 지나며 무기와 키누의 꽃다발은 싱그러움을 잃어갔지만 그 과정은 전혀 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르고 시들어갔다기보단 완성되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두 사람은 아름답게 말라붙은 우리라는 꽃다발과 함께 펼쳤던 베란다 커튼을 뜯어 정리하고 각자의 길로 향한다.
이별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고 다른 이와 각자의 연애를 이어간다. 현재의 연인은 음악을 듣는 방법부터 나와는 다른, 옛 연인처럼 나와 똑 닮았다고 말할 순 없는 사람이지만 무기와 키누는 그들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찾는다.
사랑한다고 꼭 하나의 이어폰을 갈라 같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연인과 다른 음악을 듣고 다른 목표점을 가진 사랑을 하더라도 나의 것을 그에게 들려주고 그의 것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 그것 또한 사랑임을. 무기와 키노는 어린 사랑의 끝에서 그것을 깨닫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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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군 | 박훈정의 필모그래피가 여기서 모인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국정원 요원 '최 국장'(김선호)의 주도로 비밀리에 진행하던 폭군 프로젝트.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주입해 초인을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미국 정보기관에 발각됐다. 이에 최 국장의 반대 파벌인 '사 국장'(김주헌)과 미 정보기관 담당자인 '폴'(김강우)은 폭군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남은 샘플을 미국 측에 넘기라고 압박한다.
이에 최 국장은 샘플을 빼돌리는 작전을 실행에 옮기지만, 작전에 참여한 킬러 '채자경'(조윤수)이 샘플을 빼돌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국정원과 폴이 눈에 불을 켜고 샘플을 찾아 나선 가운데 은퇴한 요원 '임상'(차승원)도 최 국장의 지시를 받아 자경과 샘플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자경은 곧 죽을 위기에 처한다.
박훈정 필모의 두 핏줄
<신세계>와 <마녀> 시리즈. 감독 박훈정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 덕분에 박훈정 감독은 흔히 누아르 혹은 액션 전문 감독으로 여겨지기 쉽다. 개봉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팬들이 속편을 기다리는 <신세계>의 임팩트도 강할뿐더러, 근래 공개된 작품 모두 비슷한 결이니까.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낙원의 밤>, 작년 여름에 개봉한 <귀공자>까지 전부 누아르 작품이니 이상하지는 않다.
그런데 박훈정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대중에게 어필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이어지는 주제의식 혹은 메시지를 찾을 수 있기 때문. <대호>와 <브이아이피>가 대표적이다. 소재나 장르 면에서는 아무 공통점이 없지만, 세부적으로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한국을 억압하는 외부의 적을 무찌르는 영화다. <대호>는 일제강점기의 일본군을, <브이아이피>는 21세기의 미국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디즈니+에서 공개된 박훈정 감독의 4부작 드라마 <폭군>은 흥미롭다. 두 갈래로 나뉘었던 그의 필모가 <마녀> 시리즈의 스핀오프에서 접점을 찾은 듯 보이기 때문. 그간 빛을 못 본 방계 작품의 메시지와 플롯을 직계라고 할 수 있는 <마녀> 시리즈의 세계관 속에서 절묘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여성 누아르라는 직계
<폭군>의 네 주인공이 얽힌 플롯을 보면 그 접점은 쉽게 드러난다. 우선 자경과 임상의 플롯은 <마녀> 시리즈와 직접 맞닿아 있다. 자경은 '연모용'(무진성)의 의뢰로 참여한 작전에서 작전 목표였던 폭군 프로젝트의 샘플을 몰래 빼돌린 킬러다. 임상은 폭군 프로그램의 비밀을 알게 된 이들을 상부의 지시대로 제거하는 요원이다. 곧 임상이 자경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숨어 있거나 탈출한 초능력자를 쫓는 <마녀>의 플롯과 유사하다.
특히 이들이 주로 보여주는 액션 시퀀스는 이 작품이 <마녀>의 세계관임을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임상과 자경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싸우는 장면을 보면 초능력만 없을 뿐 연출이나 카메라워크가 <마녀> 속 액션 시퀀스와 유사하다. 자경이 폭군의 샘플을 자신에게 주사한 후 초인으로 거듭나 자유롭게 괴력을 자유롭게 활용할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두 캐릭터 역시 박훈정 감독이 그간 자신의 누아르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와 꼭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상은 <낙원의 밤>에 등장한 '마 이사'와 유사하다. 배우도 같고, 과할 정도로 정중하지만 폭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꼭 닮았다. 다만 퇴장이 다소 부자연스럽고 임팩트가 덜했던 마 이사와 달리 임상은 마지막까지 캐릭터성을 유지한 채 의미심장하게 퇴장했다는 차이가 있다. 그 덕분에 다음 이야기도 기대할만하다.
이에 더해 누아르 영화에 어울리는 여성 캐릭터를 유달리 잘 만드는 박훈정 감독의 솜씨는 여전하다. <마녀> 1편과 2편의 '구자윤'(김다미)과 '소녀'(신시아), <낙원의 밤> 속 '재연'(전여빈)처럼 자경이라는 인물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쌍둥이 오빠와 의식을 공유하는 이중인격 설정은 자칫 유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경, 쌍둥이 오빠, 폭군 셋이 자아를 공유하는 장면의 복선으로 작용하면서 큰 임팩트를 남겼다.
민족주의라는 방계
반면에 자경과 임상의 충돌을 초래한 최 국장과 폴의 갈등은 첩보물에 가깝다. 특히 그들이 충돌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최 국장은 민족주의자다. 그가 속한 국정원 파벌은 미국이 한국을 억압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핵무기나 IBCM을 개발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폭군 프로그램 역시 그 일환이었다. 자연히 반대 파벌인 사 국장과 폴은 최 국장의 계획을 한미동맹과 미국의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해 막고자 한다.
그런데 이 구도는 <브이아이피>에서 이미 등장한 바 있다. 고위층 탈북자인 '김광일'(이종석)의 범죄를 두고 경찰, 국정원, CIA가 충돌한다. '채이도'(김명민)는 한국 내에서 벌어진 사건이니 경찰이 수사하겠다고 주장한다. '박재혁'(장동건)은 김광일의 범죄가 외교 문제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 국정원에서 조사하겠다고 맞선다. CIA의 '폴 그레이'(피터 스토메어)는 국정원의 역량을 의심하면서 김광일의 신병을 넘기라고 요구한다.
이때 김광일을 폭군 프로젝트로, 채이도를 최 국장으로, 박재혁을 사 국장으로, 폴 그레이를 폴로 바꾸면 곧 <폭군> 플롯이다. 또 어떻게든 폭군 프로젝트를 유지하려는 최 국장의 결연한 의지, 폴에게 역공을 가하는 전개도 박훈정 감독 전작과의 공통점이다. <대호>에서는 호랑이를 잡으려던 일본군에게, <브이아이피>에서는 김광일을 추적하던 CIA에게 조선의 사냥꾼과 국정원이 각각 선수를 쳐서 물 먹이는 것과 같은 전개다.
비록 대상이 되는 국가나 기관은 다르지만, 한국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사회적 주제나 코드는 일관되게 투영되는 셈이다. 단지 <마녀> 세계관에서 그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시도는 꽤 효과적으로 몰입도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장르적으로는 눈을 즐겁게 하고, 시의적으로는 한국의 핵무장 이슈와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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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는 의미가 있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폭군>은 박훈정 감독의 음과 양이 한 데 모여 조화를 이룬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다. 만남 자체가 흥미롭지만, 만남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자가복제 같은 지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전반적인 스토리가 전작의 종합에 가깝고, 캐릭터 역시 전작에 등장한 인물들의 면면을 고스란히 본뜬 측면이 숨겨지지 않는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엿보인다. 영화가 아닌 시리즈로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폭군>은 본래 극장에서 장편영화로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후반 작업을 거치면서 디즈니+에서 4부작 시리즈로 공개됐다. 그 덕분에 주연 4인방이 한 데 모이는 4화를 제외한 앞선 3개의 에피소드는 등장인물 소개 위주로 극이 진행된다. 이는 익숙함을 풍성한 디테일로 상쇄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도는 되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다. 각 캐릭터의 특성과 매력은 확실하다. 박훈정 감독 작품 속 일부 캐릭터는 동기나 서사가 부자연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폭군>의 주인공들은 예외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영화였다면 긴박했을 각 인물의 서사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 폭군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도 후반부에 가서야 나오기 때문에 다소 불친절한 것도 사실이다.
작가적 관점에서 <폭군>은 퍽 흥미롭다. <폭군>은 대중적으로 소구력이 없었던 <대호>와 <브이아이피>의 주제의식이나 플롯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마녀> 세계관과 결합시킨 결과물이다. 즉, 박훈정 감독이 잘하던 것과 그가 보여주고 싶던 것 사이에서 드디어 찾은 균형점인 셈이다.
그와 동시에 개선점도 확인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반복되는 플롯과 익숙한 캐릭터라는 틀을 깰 때 박훈정 감독의 세계관은 더 풍성해질테니. 희망이 없지는 않다. 박훈정 감독은 <브이아이피>에서 지나치게 도구적이고 잔인하다고 비판받은 여성 캐릭터 활용법을 <마녀>부터는 장점으로 바꿔 놓은 전적이 있기 때문. 향후 이어질 <폭군> 시리즈도, 더 나아가 <마녀> 세계관에 대한 기대를 품기에 충분한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박훈정의 자가발전 혹은 자가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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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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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1960년대 플로리다 올랜도에 테마파크를 건설한 디즈니의 프로젝트 이름이다. 디즈니랜드가 개장하자 주변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숙박업이 성업을 이루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이들 모텔은 집 잃은 빈민의 숙박하는 곳이 되었다. 둘째는 빈민을 구제하는 정부 보조금 사업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리고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자본과 국가가 담아내지 못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의미를 펼쳐낸다.
어린아이 무디는 엄마 핼리와 함께 매직캐슬 모텔에 산다. 마찬가지로 모텔에 사는 친구 스쿠티와 어울리며 장난과 말썽의 경계를 분주히 오간다. 아직 계급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감정을 학습‧체화하지 못해 천진난만한 무디의 표정과 연보랏빛으로 예쁘게 칠해진 매직캐슬의 외양은 무디가 살아가는 공간이 아름다울 것만 같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자본의 폭력과 국가의 무관심이 상처 내지 못한 데가 남아 있음을 환기시키듯이.
그러나 환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천진한 무디에게도 자신의 계급을 분명히 인지해야 하는 순간, 즉 삶이 친구들과의 재미난 놀이로만 채워지는 게 아님을 깨달아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핼리는 누구보다도 일하고 싶다.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정부 보조금 수령 자격도 점차 위태로워진다. 믿고 의지하던 친구와 큰 싸움에 휘말린 후에는 그나마 의지할 곳도 사라져버린다.
물론 아직 바비가 남아 있기는 하다. 바비는 매직캐슬의 관리인이다. 매직캐슬은 여러 문제가 쉼 없이 발생하는 곳인 동시에 가난한 사람이 서로에 기대어 팍팍한 삶을 꾸려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바비가 있다. 늘 방세를 독촉하며 거주자들을 윽박지르는 바비는 사실 제법 따뜻한 구석을 갖춘 남자다. 모텔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소아성애자를 쫓아내고, 알게 모르게 투숙객들을 배려하며,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도 눈감고 넘어가준다.
무디와 핼리의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완전히 끊긴 순간에 본격화된다. 부자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싸구려 향수를 팔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핼리는 그것만으로는 돈이 충분하지 않자 매직캐슬에서 성매매를 하기 시작한다. 핼리가 손님을 받을 때면 무디는 욕조에 거품을 풀어놓고 목욕을 한다. 작고 초라한 모텔방은 핼리에게 거주지이자 경제활동의 공간인 동시에 양육의 공간이다.
하지만 성매매는 매직캐슬이 허용할 수 있는 ‘일탈’의 범위를 넘어선다. 성매매가 발각되어 아동보호국에 무디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핼리. 그가 그토록 간절하게 찾아 헤맬 때는 보이지 않던 국가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등장해 무디를 빼앗는 데 자신의 힘을 선보인다. 권력기관은 자신의 권한을 휘두르는 데에는 민첩하지만 그 권한을 위임한 존재를 돕는 데는 지독히 게으르고 무능하다.
무디는 어린아이지만 이제 자신의 삶이 과거와 같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눈물을 글썽이며 친구의 손을 잡고 ‘진짜’ 매직캐슬이 있는 곳, 디즈니랜드로 뛰어간다. 아직 더 놀고 싶다는 듯이, 매직캐슬에서의 행복을 연장하겠다는 듯이, 혹은 더 이상 행복한 일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무디와 핼리 그리고 이들이 대표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무디는 아마 위탁 가정을 전전할 것이다. ‘선의’로 무디를 돌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왜 무디가 이렇게 화가 나 있고 슬퍼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디는 점점 엄마 핼리가 걸었던 길을 따라갈 것이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가 일하지 않고 복지 예산을 축낸다며 손가락질할 것이다. 핼리가 낳은 무디가 다시 핼리로 성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랜드가 제공하는 행복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희생한 대가임을, 국가는 행복을 빼앗긴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별 관심이 없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꾸리는 방치된 자들은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음을 폭로한다. 친구와 꼭 잡은 채 해맑게 디즈니랜드로 뛰어 들어가는 무디의 뒷모습이 지독히 슬펐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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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노웨어 스페셜 (Nowhere Special,2020)
개봉일 : 2021.12.29. (한국 기준)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연 : 제임스 노턴, 다니엘 라몬트, 에일린 오하긴스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직업을 가진 ‘존 메이’의 이야기를 다루며 삶과 죽음, 외로움과 보이지 않는 인연에 대해 풀어낸 영화 <스틸 라이프>로 유명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7년 만의 신작(개봉 날짜 기준)이 2021년의 끝, 아주 살포시 국내에 개봉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아빠 존과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의 이야기다. 존은 매일같이 다양한 모양의 창문을 닦으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수많은 일상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아들 마이클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존은 끝없이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그만큼 미안한 아들을 바라보며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웃기도 하고, 또다시 책임감 한 아름을 짊어지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은 한없이 소중하면서도 복잡하고, 아프고,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끊어낼 수는 있지만 끝내 부정할 순 없는 단 하나의 인연이니까. <노웨어 스페셜>은 가장 힘이 될 수도 가장 큰 아픔과 죄책감이 될 수도 있는 이 인연으로 이어진 존과 마이클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며 잔잔한 슬픔과 감동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존과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 마이클. 존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이클을 보며 여러 고민에 빠진다. 순수한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또 아이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위해 어떤 것을 남기고 가야 할지. 아이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어떤 이들에게 아이를 맡겨야 할지.. 같은 답 없이 무거운 고민들 말이다.
존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얹어진 짐을 묵묵히 견디며 마이클을 위한 새로운 가족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현실에 놓인 마이클을 보며 항상 미안함을 느낀다. 비싸고 멋진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는 집안 형편, 존이 일을 나갈 때면 엄마가 아닌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 하는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회통념상 그다지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아닌 것 같다는 죄책감까지. 존은 이제 부족한 아버지의 손을 떠날 마이클을 위해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한다.
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줘도 항상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뿜어내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소중한 인생의 한순간이 비치고, 그 안에서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주연을 맡은 연기 천재 다니엘과 제임스의 눈빛
<노웨어 스페셜>의 강점은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도 있지만,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제임스 노턴과 다니엘 라몬트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4살의 나이로 <노웨어 스페셜>을 통해 데뷔한 다니엘 라몬트와 따뜻하고 깊은 눈빛을 보여준 제임스 노턴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온갖 부자 서사가 뚝딱 만들어진다.
특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는 다니엘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며 나의 4살 시절을.. 반성하게 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그때쯤 나는 엄마한테 “이건 뭐야?” 정도의 질문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진정한 ‘연기 천재’구나 싶다. 내가 결혼을 일찍 했으면 .. 저만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 나이니까.. 이모를 넘어 사실상 엄마의 눈으로 흐뭇하게 지켜봤던 것 같다. 이 배우가 어떻게 성장할지 정말 정말 기대된다. 만약 <노웨어 스페셜>이 뛰어난 영화가 아니었다고 해도, 다니엘 라몬트를 발굴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순간
툭,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화이자 ‘우리 감정에 솔직하게, 오랜만에 울어보자’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부터 그렇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홀로 남겨질 어린아이. 그리고 ‘새 부모를 찾는다’는 포스터에 박힌 절절한 문구와 대놓고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낼 영화라며 경품으로 쓰인 두루마리 휴지까지. 누가 봐도 ‘이 영화는 슬플 것이다,’, ‘눈물 나는 영화다.’라는 느낌이 확 온다.
하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감정 없이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을 봐, 슬프지. 울어봐!하는 식으로 절망과 슬픔을 쌓아가는 형식이 아니다. 이야기는 잔잔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간혹 고통을 느끼는 존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존은 묵묵히 평소처럼 일을 하고, 마이클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책을 읽고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원을 거닌다.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 이들을 만나는 약속을 제외하면, 존과 마이클의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간다. 평온하고 온전하게, 사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말이다. 커다란 흔들림 없이 두 사람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존과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존은 이 이야기의 끝에서 마이클의 새로운 선택을 접하며 지금껏 알지 못했던 마이클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사실 관객들을 울리는데 어린아이와 부모의 눈물만큼 확실한 장치가 없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그런 치트키 같은 장치를 전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을 마냥 이별, 마지막 같은 슬픈 의미로 풀어내지 않으며 이별보다는 죽음 앞에서도 온전할 사랑에 대해, 앞으로 더 긴 인생을 살아갈 아이의 선택에 집중한다.
나는 <노웨어 스페셜>을 보며 만들어진 관객들의 눈물엔 억지 눈물이 단 한 방울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낀 <노웨어 스페셜>은 억지가 아닌 진실된 감정이 가득한 영화였으니까.
노웨어 스페셜 시놉시스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바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것.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창문 너머로 비치는 다양한 인생의 흔적들,
그리고 존의 눈에 들어오는 다른 가족들의 순간들
창문 청소부인 존은 매일같이 여러 손님들의 창문을 닦는다. 화려한 장식품이 가득한 가게, 음식점, 아이를 키우는 잘 사는 가정집의 창문. 크기와 모양새, 달려있는 높이도 모두 다른 창문 너머엔 방주인의 인생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의 놀이방엔 장난감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존이 닦고 있는 가게 유리창 너머엔 비석 모양의 장식품이 가득하고, 그 가게 반대편엔 화목해 보이는 한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존은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마이클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이 해주지 못한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집의 자식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가끔 마이클이 던지는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라는 물음이 “나도 엄마가 있어?”라는 의미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엄마는 어디로 외출했어?” 정도의 질문이길 바랐을 것이다. 조금 더 배워 선망받는 위치에서 일하고, 부유한 환경에서 마이클이 원하는 강아지도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을 것이고, 마이클이 자라 친구들과 운동을 배울 때면 그 옆에서 유니폼을 챙겨들고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존의 눈에 비치는 다른 가족들의 모든 순간들이, 특별하고 아리게 다가온다. 평범하고 완전한 가족, 존은 마이클에게 그런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일
이제야 4살이 된 어린 마이클은 존을 가장 좋아한다. 존의 팔뚝에 있는 타투를 따라 그리고, 함께 생일 케이크를 고르고, 존의 목에 올라타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을 좋아하고, 장난감이 많은 놀이방이 없어도, 그저 우리가 함께하는 ‘우리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순수한 아이. 그게 마이클이다. 마이클에게 존은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유일한 가족이다.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 하나 없이, 마이클은 그저 존을 사랑한다.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린아이다. 마이클은 존의 34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당연하게도 초를 1개 더 꽂을 35번째 생일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존은 마이클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기 위해 함께 동화책을 읽고, 죽은 딱정벌레를 보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죽음은 마냥 슬픈 것이 아닌,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뿐이라고, 떠난 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의 주변에 남아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마이클은 조금씩 죽음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이클뿐만이 아니라 존 또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꿔간다. 영화의 초반, 존은 새로운 가족 후보들을 만나면서 아이가 아빠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하냐는 질문에 그저 “창문 청소부로요.”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어린 마이클이 부족했던 가족과 그에 대한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길 바랐지만, 영화의 후반부엔 생각을 바꾸고 마이클을 위한 편지와 자신의 물건 몇 가지, 그리고 떠나버린 아내의 장갑을 남긴다. 나의 죽음이 마이클의 괴로움과 상처가 아닌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마이클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존은 그렇게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멈추지 않고 흐를 마이클의 시간, 그리고 마이클의 선택
함께 카니발에 놀러 간 존과 마이클이 거울의 방을 지나는 장면을 보면, 거울에 비친 마이클이 존보다 더 크게 표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존이 떠나더라도 마이클의 시간은 계속될 거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존이 세상을 떠나도 아이의 시간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간 존보다 더 큰 어른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 위해선 우선 어린 시절을 보살펴줄 새로운 가족을 만나야 하는데.. 존은 이 문제에 대해 혼자 무거운 고민을 반복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홀로 중대한 결정까지 짊어진 존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그러던 중, 존은 문득 ‘내가 이 아이의 결정을 대신해도 되는 걸까?’ 의문을 갖게 된다. 앞으로 새로운 가족과 살아갈 사람은 마이클이고, 마이클도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궁금증을 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인데 말이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마당,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유한 집안, 장난감 하나쯤은 쉽게 사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부모, 사회 통념상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두 부모가 있는 가정. 존은 이러한 조건들에 집중했지만, 마이클은 조금 달랐다. 마이클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사탕의 수를 세나갔던, 처음으로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라고 질문했던 집을 선택한다. 그 집은 마당도 없었고,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고, 안정적인 커플도 아니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만큼, 새로 올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다’고 말하던 유일한 집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른의 눈으로 본 가정 환경이나 부유한 경제력도, 커다란 마당도 아닌 새로운 가정에서 살아갈 아이의 마음, 그리고 아이를 향한 어른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존은 전혀 부족함 없는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마이클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오래도록, 아프지 않게 아름답게 지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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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와 울림이 있는 영화 <땅에 쓰는 시>
<땅에 쓰는 시>는 83세의 나이로 현역 조경가 정영선 님의 삶과 일상을 담은 다큐 영화다.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사과 꽃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자란 그녀는 학창 시절 남다른 글 솜씨로 모두가 시인이 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꽃과 자연에 대한 타고난 감수성으로 펜으로 시(詩)를 쓰는 대신 흙과 나무, 풀과 꽃들로 땅에 시를 쓰는 삶을 살아왔다.
정영선 님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보고도 감탄하며 그들과 대화를 즐긴다. ‘잘 잤니?’라고 묻고, 집을 나설 때는 ‘잘 다녀올게.’하고 인사한다. 그녀가 정원을 조성할 때 마음에 두는 말이 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 백제의 건축을 두고 이야기한 검이불루(檢而不陋)와 조선의 창업을 도운 정도전이 경복궁을 가리켜 말한 화이불치(華而不侈)다.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이조 백자로 연상되는 한국의 미적 감각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정영선 조경가의 손을 거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원 모습은 눈을 뗄 수 없는 벅참을 가져다준다.
선유도 공원
영화는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선유도공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겸재 정선은 선유도에서 아름다운 한강의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정영선 님은 폐정수장이 방치된 선유도를 생태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폐허의 흔적 위에 녹색의 생명력을 더하여 찾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공간이 되었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정영선 님은 여의도 샛강을 메워 대형 주차장과 축구장 시설을 만들겠다는 한강관리사업소의 계획을 듣고 기겁을 했다. 김수영의 시, ‘풀’을 읊으며 멋진 생태공원을 만들고자 관계자를 설득했다. 그렇게 서울 한복판에서 화초와 물고기, 철새가 사는 야생의 자연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생태공원이 탄생했다.
서울아산병원 신관 정원
병원은 기본적으로 콘크리트 건물이다. 환자는 물론 의료진에게도 삭막한 분위기다. 병원은 마음이 힘든 사람이 오는 곳인데 이런 환경에서 어찌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환자가 나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쉴 수 있고, 병실에 누운 환자들이 창 너머로 계절의 변화와 생명력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간호하는 가족들이 소리 내어 울거나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병원에 그럴만한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정영선 조경가는 과감히 병원 지하주차장 위에 거대한 인공 숲을 조성하여 힘든 사람들을 품으며 위로하는 정원을 만들었다.
러닝타임 2시간 남짓의 영화를 본 후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곳의 탐방리스트를 적어본다. 선유도 공원, 여의도샛강 생태공원, 서울아산병원 신관 정원, 폐철도선을 활용한 경의선숲길, 용인 호암미술관 희원, 남양주시 다산생태공원,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 아모레퍼시픽 용산 사옥, 크리스천 디올 성수 스토어, 제주 오설록 이니스프리...... 시집을 읽는 마음으로 한국의 미를 담은 정원들을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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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스는 인재(人災) 영화다
줄거리
애미티는 여름 피서객을 상대로 한철 장사를 하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그러나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의 마을에 비상등이 켜진다. 바다에서 상어한테 물어뜯긴 듯한 시체를 발견한 것. 바다를 싫어하는 경찰서장 브로디는 당장 해수욕장을 폐쇄하지만, 시장은 장사를 해야 한다며 경비를 강화하고 그대로 해수욕장을 열기로 한다.
결국 한 소년이 상어의 습격을 받게 되고, 시장은 그제야 상어를 잡아야 한다는 브로디의 말에 따른다. 많은 상어 사냥꾼이 몰려오지만, 브로디의 눈에 띈 건 딱 두 명. 상어를 연구하는 박사 '매트 후퍼'와 마을의 어부인 '퀸터' 선장. 세 사람은 함께 상어를 사냥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감상 포인트
1. 눈썰미 좋은 사람들한테는 티날 수 있지만, 나 같은 막눈에게는 상어가 제법 리얼하다.
2. 언제 일이 터질 지 모른다는 압박감과 공포감으로 보는 영화.
3. 죠스는 과연 천재(天災)일까, 인재(人災)일까.
감상평
'빠밤~ 빠밤~'
지금 아무런 음이 없는데도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죠스]라는 영화에서 이 음악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알려준다. 엄청난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하면서 평화로운 화면에서조차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마력의 음악이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
컨저링이 개봉할 당시에 포스터에 적혀있던 말이다. 이 말의 시초가 바로 죠스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영화 [죠스]는 상어에 관한 이야기지만 상어가 나오는 장면은 손에 꼽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완벽한 상어 모형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봇까지 만들었지만 물에 들어가니 고장 났다고.
오히려 그게 감독에게 발상의 전환을 안겨준 셈이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상어 나오는 장면 없이 무서운 상어 영화"를 만든 셈이다.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다리, 그런 사람에게 다가오는 지느러미, 상어 시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여기에 깔리는 음악까지. 더할 나위 없이 무섭다.
게다가 실제로 상어 사냥을 나갔을 때는 그들의 배에 접근하는 노란 부표만으로도 엄청난 긴장감을 보여주고, 부표의 거센 움직임으로 긴박한 전투를 보여주었다. 천재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옛날 작품이다 보니 모형이 리얼하진 않다. 전체적으로 튀어나오는 모습을 볼 때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왜 이 모형을 숨기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은. 하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막눈이라서 그런지 '그래도 제법 리얼한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같이 보던 동생은 모형인 게 너무 티 나서 순간 긴장감이 확 죽어버렸다고. 눈썰미 좋은 살마들은 웬만해선 흐린 눈 하고 보기를 추천.
상어보다도 내가 더 관심 있었던 것은 인간의 욕망이었다.
서장이 자신의 권위와 장사 수익만을 위해 해수욕장을 열었기 때문에 어린 소년이 희생당했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이건 인재(人災)였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가 검은 장례식 복장을 입고 우는 장면에서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개봉한 영화인데, 왜 내가 태어난 이후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까.
게다가 그런 어머니를 옆에는 버젓이 거짓말하는 인물들이 서 있다. 바로 상어 사냥꾼들. 영화 내에서 유추해 보자면, 그들은 상어를 직접 잡은 게 아니라 어디서 가져온 상어를 잡아온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소년을 잡아먹은 그 상어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서장은 이 거짓된 사진을 앞세워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생각밖에 없다. 결국 희생자의 부모 앞에서도 욕망에 젖은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은 상어의 모습보다도 소름이 끼친다.
영화 [죠스]는 이런 인물들 간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어 사냥을 나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더 집중적으로 비출 뿐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이런 비판적인 이야기를 주류로 다룬다고 한다. 원작 소설이 있었다는 건 영화를 보고 알았는데, 오히려 영화보다 책이 나와 더 잘 맞을 것 같다.
더불어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상어를 잡는 사냥꾼들이나, 퀸트 선장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고 할까. 특히 퀸트 선장의 배에 수많은 상어 이빨을 보며 역겨웠다. 그냥 해수욕장을 비워서 먹이가 없다는 걸 알았으면 상어는 다시 해안가로 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애당초 상어가 해안가로 온 이유도 먹이가 부족해서는 아니었을까.
여러 이익이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로지 답은 없겠지만, 상어가 갑자기 나타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변했을 때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우린 때론 그 이유를 찾기보다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해결하는 데에 더 목을 맨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왜?'를 묻는 것이다.
영화 [죠스]에서도 사람들이 조금만 더 '왜'를 물었더라면 훨씬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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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삶의 관계에 대한 스필버그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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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다가온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무섭다. 어린 새미. 엄마, 아빠랑 손 잡고 극장에 가기로 했다. 극장이 무섭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 미치와 아빠 버트는 아들을 달랜다. "상영관에 가면 막상 사람들이 거인처럼 보일 거야. 근데 그건 다 연기하는 거라고." 귀엽게 설명한다. 용기를 내는 새미. 손 꼭 잡고 극장으로 들어간다. 새미와 부모님이 보기로 했던 영화는 <지상 최대의 쇼>다. 러닝타임이 재생된다. 영화에 정신이 팔려 미친 듯이 빨려가는 새미. 특히 그 영화의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장면은 기차가 추돌사고를 일으키는 신이었다. 대박! 어떻게 저렇게 만들지? 설마 진짜 기차를 부술리는 없을 테고. 금세 집으로 돌아가서 이 장면을 구현하고 싶어졌다.
집에 도착했다. 직접 그 장면을 만들어보는 새미. 아버지에게 핀잔도 듣지만 새미를 멈출 수는 없다. 꿈이 생기기 시작한 새미. 꿈을 영화감독으로 정했다. 현재 2023년의 누군가가 말해도 '정말?' 할 말을 1950년대에 했으니 오죽할까. 아버지는 이런 새미의 목표를 취미쯤으로 생각한다. 반면 어머니 미치는 생각이 다르다. 춤추는 걸 좋아했던 미치. 아들 새미가 영화감독으로서 잠재력을 펼치길 바라고 있다. 아무튼 새미 가족은 사이가 좋다. 카메라를 새미에게 사준 아버지 버트. 취미든 아니든 알 바 아니다. 이제 새미의 세상을 만들 때가 왔다. 꿈 앞에 나아가는 새미. 그런 세미 앞에 거친 인생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신이 된 남자
한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것도 이 방대하게 넓은 영화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됐다면 그 공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죠스>로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스필버그. 영화적 상상력은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발현됐다. 외계인들과의 첫 만남을 묘사했던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사실 이 영화를 지금 2023년 본다고 하면 살짝 루즈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봐도 신선하다고 느낄 부분이 몇 있다.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 다 <E.T>라는 영화를 알고 있다. 골판지 돌돌 말아 만든 것 같은 비주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른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었던 스필버그. <미지와의 조우>가 스릴러/미스터리적인 특성을 띈 것과는 반대로 <E.T>는 동화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 분이 같은 장르 안에서 템포를 바꾸는 것에만 능한 게 아니다. 그냥 영화를 잘한다.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릴러 <마이너리티 리포트> 로맨스 <영혼은 그대 곁에> 등 장르와 시대를 가로질러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여준 것이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나이가 들면 늘 하던 것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 사람에게 그런 건 없다. 물론 전체적으로 스필버그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톤은 그대로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은 지속해 왔다. 최근 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까지 스필버그는 뭐에 홀린 듯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홀렸던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왜 영화를 사랑하게 됐는지를 러닝타임동안 옴니버스 형식으로 설명한다. 또한 두 번째로 영화를 만들 때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게 됐는지도 보여준다. 또 가장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청년 스필버그의 영화관에 영향을 줬는지도 보여준다. 엥? 그냥 전기영화 아니야? 이 영화는 뻔한 전기영화와는 다른 감이 있다. 바로 러닝타임 내내 이런 가치들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피소드 하나당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이런 가치들이 하나로 묶여있는 듯한 연출법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핵심과도 이어져있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의 부모님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아버지 버트는 아들의 꿈이 취미라고 생각하지만 카메라를 사 준다. 또 이 버트라는 캐릭터는 아버지로서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어떤 문제가 있어서 영화의 핵심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다. 또 어머니 미치는 아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다. 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들의 꿈을 후원한다. 이 영화를 좋아하고 예술가적 특성이 마음 안에 있는 그녀가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도 영화에서 재미있게 묘사된다.
무관은 정말 서운해
사실 아카데미를 그렇게까지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뭐 오스카에서 상 하나 못 받았다고 영화 가치가 떨어지나? 그런 건 없다. 글쓴이만 해도 작년 수상작인 <코다>보다 <드라이브 마이카>나 <파워 오브 도그>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감독상 정도는 줄 만 했잖아?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역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새미는 영화 안에서 몇 작품을 찍는다. 이 작품은 새미의 삶과 별개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의 그대로 현실을 담고 있다. 극 중 극이 품고 있는 서사 중 몇몇 장면이 현실의 어떤 지점에서 영화화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정밀하고 섬세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현실과 영화와의 사이라는 지점은 영화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과도 이어져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은 이 ‘현실과 영화사이의 교집합’은 곧 ‘새미의 예술관’, 즉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술관’과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토대가 단단해진 스필버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버지가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였다는 것(<라이언 일병 구하기>) 외로웠던 유년시절에 판타지적인 요소로 아로새긴 친구(<E.T>), 퇴색되어 버린 가족의 사랑(<A.I.>)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뮌헨>)까지 그의 실제 행보를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도 다른 감동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판단이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우리가 만약에 한 6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60년의 세월 동안 쌓은 입지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지나가다가 만난 아무 나도 '어려운 시기 이겨내서 지금 행복하게 잘 산다'류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곤 한다.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라면 이 드라마틱한 성장서사를 더 전하고 싶지 않을까? 영화는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물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대한 이야기? 없다. 영화를 위한 거룩한 희생? 감정적으로 들끓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이 사건들을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적인 반응에 강점이 찍힌 건 작품 상영 후를 묘사하는 지점 쪽에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족들에 대해서 무작정 안 좋게 묘사한다던가, 영화에서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을 무조건 감싸준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영화의 핵심 중 한 부분('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화한다는 것')과도 닿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촬영은 엔딩과도 관련이 있다. 엔딩에서 그렇게 연출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화에서 두 사람의 촬영방식을 구현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새미가 찍는 극 중 영화, 스필버그가 기획한 장면 연출이다. 또 어떤 장면에서 빛을 활용한 촬영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영화에서 품기는 분위기를 더 매력 있게 만든다.
이 둘이 부부
사실 이 <파벨만스>를 글쓴이가 전부터 기대했던 이유는 두 주인공 때문이다. 바로 폴 다노와 미셸 윌리엄스다. 폴 다노는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선 굵은 연기를 한 것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다. 또 <더 배트맨>에서는 적은 노출로 어떻게 하면 광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한 티가 났다. 이렇게 테크닉 화려하게 때려 박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지만 이 사람은 따뜻한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연기력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은 다른 배우들 쪽에 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테크닉이 다른 영화들처럼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폴 다노는 대체불가한 장점을 과시하며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밀양>의 송강호 배우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미셸 윌리엄스는 연기의 정석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 폴 다노처럼 개성 있는 해석능력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미셸은 반대로 그 세계와 인물을 오롯이 이해하고 순간마다 서려있는 감정연기를 풍부하게 보여줬다. 이 마치를 가로지르는 캐릭터 특성은 호기심과 신선함이다. 뭔가 새로운 걸 찾아 나서는 성격인 미치. 이 신선함에 대한 강박은 인물을 후반부까지 이끄는 좋은 동력이 된다. 걸핏하면 몰입이 깨질 수도 있는 인물을 영화의 엔딩까지 적절하게 끌고 갔던 것은 이 미셸 윌리엄스의 덕이 크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양자경과 케이트 블란쳇이 유력했던 탓에 이 분이 엄청 언급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미셸 윌리엄스는 인물의 입체성을 이 세계가 품고 있는 질서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느낀다.
모든 걸 포함하는 이야기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역시 엔딩이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에게도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솔직히 처음 극장 문을 나올 때 '이걸?' 싶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서 다시 돌아보니 이 영화의 엔딩으로 이 장면만큼 깔끔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어려운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첫 장면과 끝장면이 왜 그 부분으로 시작할까?를 생각해보신다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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