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05 23:46:42
시듦을 인정하며 완성되는 사랑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꽃다발의 의미
- 달라진 신발과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책장
- 이어폰과 함께 듣는 음악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We Made a Flower Bouquet, 2021)
시듦을 인정하며 완성되는 사랑
개봉일 : 2021.07.1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도이 노부히로
출연 : 아리무라 카스미, 스다 마사키, 키요하라 카야, 호소다 카나타, 오다기리 죠, 토다 케이코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각자 다른 꽃을 꺾어 이리저리 배치하고 꾸미면 예쁜 꽃다발이 하나 완성된다. 색, 질감, 가지의 길이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발 안 꽃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것들이 원래부터 하나의 덩어리였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이런 꽃다발처럼 보이는 사랑을 한 청춘 남녀의 이야기다.
무기와 키누는 막차가 임박한 지하철역 앞에서 처음 만난다. 서로 부딪히며 삐끗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막차를 놓치고, 어쩌다 보니 개찰구 앞에 있던 직장인 두 남녀와 함께 바에서 첫차를 기다리게 된다. 무기는 딱히 공감할 수 없는 직장인 남녀의 대화를 불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키누는 무기의 말과 표정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각자의 길로 찢어지려던 찰나. 공통점 하나로 말문을 트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운명임을 직감한다.
무기와 키누가 생각하기에 둘은 서로 공통점이 너무도 많았다. 처음 만난 날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고, 같은 작가를 좋아하고 같은 책을 읽었고, 같은 뮤지션을 좋아했으며 같은 날의 공연 표를 사놓고 가지 못한 것까지 똑같았다. 두 사람은 첫차가 올 때까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다음을 약속한다. 그리고 상대의 사소한 행동에 설렘과 특별함을 느끼며 연인이 되고 나의 일부를 꺾어내 ‘똑닮은 우리’라는 하나의 꽃다발을 만들어간다.
무기와 키누는 이 꽃다발이 조화롭고 완벽하다고, 이대로 평생 가슴에 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는 화분 속 꽃과는 다르게 흙도 뿌리도 없는 꽃다발 속에 자리 잡은 꽃들은 각자의 속도로 시들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시들어가는 우리를 느끼며 이별을 생각한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다발,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말을 이렇게 오목조목 곱상하게 펼쳐내는 영화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누군가의 이상행동, 문제를 만드는 제3자,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잉 감정 등 호불호 포인트가 될만한 것들을 싹 배제한 채 최대한 담백하게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그린다.
시간의 흐름에 올라탄 연인
달라진 신발과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책장
아르바이트와 학교 성적 유지 정도의 비교적 무겁지 않은 책임만 주어지는 나이에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라는 불안정한 흐름에 함께 올라탄다. 이들은 키누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 부모님의 압박과 취업 문제, 작은 경제적인 문제를 맞이하지만 그것 또한 나름의 로맨스로 승화한다.
취업을 못해 집안에서 눈엣가시가 된다면 집을 나와 함께 살면 되고, 집이 역에서 멀면 커피 한 잔을 사들고 행복한 데이트 코스로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점점 깊어지고 무기와 키누는 연인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잠시 꿈을 접어두고 현실에 몰두하게 된다.
취업만 성공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더 멀리 벌어진다.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장면들이 점점 줄어들고 키누는 거실 창문 너머에, 무기는 방 창문 너머에 담기는 장면들이 많아진다. 말하지 않아도 늘 함께 신었던 흰색 스니커즈는 문 안을 바라보다 문 바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끝내 사라져버린다. 흰색 스니커즈가 있었던 자리엔 다른 모양새의 구두 두 켤레가 어색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기는 ‘돈이 없으면 키누에게 밤일을 시켜보라’는 선배의 말에 자극을 받아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지만 막상 취업을 하고 나선 키누에게 마음을 주지 못한다. 키누에게 상처를 줬던 딱딱한 면접관을 욕하던 그는 어느덧 그 면접관처럼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키누에게 상처를 준다. 일에 휩쓸리던 무기는 학생 때처럼 영화, 책, 게임을 사랑하는 키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몇 번의 갈등이 생긴다. 이때 각자의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엔 한때 즐거운 마음으로 공유했던 거대한 책장이 버티고 있다.
키누는 새로 나온 만화책이나 함께 보기로 했던 연극 등 예전에 무기가 좋아했던 것들을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노력하지만 무기는 키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일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키누는 이런 무기 앞에 앉아 빨래를 개고 옷장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빨래와 함께 섭섭한 마음도 함께 접어 넣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이 완성되는 과정
하나의 이어폰을 나눠 쓰던 두 사람
오프닝신에 나온 무기와 키누는 “이어폰 하나를 나눠 끼고 듣는 건 둘이 다른 음악을 듣는 일”이라며 분개한다. 음악은 최소 스테레오 채널(2채널)로 구성되어 있는 콘텐츠라 왼쪽, 오른쪽에서 나오는 각자 다른 소리를 같이 들을 때만 그 음악을 제대로 들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모노 채널이 아니다. 연인이라 하여 사랑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할 순 없다. 다른 채널에 있는 연인이 어떤 사랑을 원하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노력한 것만 이야기한다면 그 사랑은 온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처음 고백하던 날, 무기와 키누는 한 이어폰을 끼고 레스토랑 점원 포린의 음악을 듣는다. 어렸던 무기와 키누는 한 이어폰으로 같은 음악을 듣고 ‘무기와 키누의 사랑’이라는 똑같은 꿈을 꾸며 노력한다.
무기는 키누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회사에 취업한다. 키누도 무기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취업을 하고 무기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취미 생활을 공유하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 어떤 사랑을 원하고 있는지, 그가 이 사랑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진 헤아리지 못한다.
무기와 키누는 첫 만남부터 수많은 공통점을 공유했기에 자연히 연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보단 무기는 키누가, 키누는 무기가 취업, 지인의 죽음, 시간이라는 변화 앞에서 자신과 같은 태도를 취하길, 같은 결말을 바라길 기대한다.
하지만 무기와 키누는 많은 부분이 닮은 타인일 뿐,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무기는 키누가 열광했던 미라전을 무서워했다. 미라전을 보고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눌 때, 키누는 전시회 도록을 펼치며 흥분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무기는 애매한 표정으로 키누의 말을 듣다가 점원이 오자마자 재빠르게 미라로 가득한 도록을 덮어버린다. 키누는 무기의 가스탱크 영상을 보다가 깜빡 잠들어버린다. 무기는 키누가 가장 재밌는 장면에서 1시간 동안 잠들었다며 아쉬워한다. 두 사람은 이러한 사소한 다름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와 다른 연인에 오래도록 실망하고 슬퍼한다.
무기와 키누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이별을 결정한다. 그리고 ‘똑닮은 우리’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고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라전과 가스탱크에 느꼈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지금껏 듣지 못했던 다른 채널에 담긴 소리를 들으며 ‘무기와 키누의 사랑’이라는 꿈의 마지막 소절을 완성한다.
시간이 지나며 무기와 키누의 꽃다발은 싱그러움을 잃어갔지만 그 과정은 전혀 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르고 시들어갔다기보단 완성되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두 사람은 아름답게 말라붙은 우리라는 꽃다발과 함께 펼쳤던 베란다 커튼을 뜯어 정리하고 각자의 길로 향한다.
이별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고 다른 이와 각자의 연애를 이어간다. 현재의 연인은 음악을 듣는 방법부터 나와는 다른, 옛 연인처럼 나와 똑 닮았다고 말할 순 없는 사람이지만 무기와 키누는 그들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찾는다.
사랑한다고 꼭 하나의 이어폰을 갈라 같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연인과 다른 음악을 듣고 다른 목표점을 가진 사랑을 하더라도 나의 것을 그에게 들려주고 그의 것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 그것 또한 사랑임을. 무기와 키노는 어린 사랑의 끝에서 그것을 깨닫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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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어 가는 한 시대를 표현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서부극을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고 나서 나름 서부극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루하고 총만 난사하는 고정된 스토리라인만이 존재할 줄 알았던 나에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시놉시스
1969년 할리우드, 잊혀져 가는 액션스타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새로운 스타들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릭’의 옆집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배우 ‘샤론 테이트’ 부부가 이사 오자 ‘릭’은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기뻐하지만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다.
형편상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게 된 ‘릭’과 ‘클리프’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릭’의 집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던 중 뜻하지 않은 낯선 방문객을 맞이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 이 이후로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서부극의 끝물을 그려내다
1969년은 미국에서 영화의 흐름이 바뀌는 과도기적인 시기다. 1970년 이후부터 스타워즈와 같은 대형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나오면서 기존에 유행했던 서부극이 한 풀 꺽이는 시기다. 영화의 한 장르와 과거의 스타가 함께 그 명성이 기울어져 가고 그것을 점차 받아들이는 표현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는 아역배우와 릭달튼의 대화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앞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갈 아역배우 옆에서 노쇄함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어린 배우가 그런 릭달튼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히피들 맞나?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히피들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체제운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자연을 찬미하면서 그와 동시에 기성세대의 사회통념이나 제도, 가치관들을 부정하는 집단 말이다. 히피들은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게다가 베트남전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마지막에 사람을 죽인다. 세상에나. 그렇게 가치관의 혼란을 선사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그래서 히피, 폭력 이렇게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왜 이 영화가 마지막에 히피들을 살인자로 만들고 그들을 죽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1969년 할리우드 여배우 샤론 테이트가 히피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비롯해 7명의 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돼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다고 한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동명의 샤론 테이트를 영화 속에서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클리프와 릭을 공격하게끔 해서 결국 히피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즉, 현실 속에서의 슬픔을 영화 속에서 통쾌함으로 대치한 장면으로 이해됐다.
미디어의 폭력 연구가 왜 시작됐는지 표현하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면서 해결된 궁금증 중 하나는 왜 당시 미디어 연구가 그렇게도 부정적으로 연구될 수밖에 없었나? 였다. 도대체 텔레비전이 뭐라고 그 텔레비전 영상 하나 봤다고, 텔레비전이 폭력을 야기하고 좋지 않다는 연구가 쏟아졌는지 정말 궁금했다. 거의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 매체 연구는 해당 매체의 부정적인 부분을 파헤치는 것이 목적이라도 된 것처럼 일제히 비판을 했다.
하지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히피들이 릭을 죽이러 가기 전 “나는 텔레비전에서 폭력을 배웠고, 지금 그 폭력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러 가는거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를 비롯해서 당시 프로그램드을 보면 총과 칼을 이용한 서부극들이 유행했고, FBI와 같은 범죄수사물들이 계속해서 방영됐던 것이 사실이다.
움직이는 영상이 훨씬 더 자극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그런 범죄의 구체성이 피부로 와닿을 수밖에 없기에 미디어 연구자들은 그 부정적인 영향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해됐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단지 서부극의 이야기 뿐 아니라 저물어가는 한 시대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같은 문화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서부극에 대해 향수를 느낄 수 있을 정도 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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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최고의 화제작! 영화 <티탄> 리뷰
영화가 시작하면 어린 알렉시아와 그녀의 아버지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다.
뒷 좌석에 탄 알렉시아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이상하게 흉내내며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다.
점점 소리가 커지자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다 결국 교통사고를 당한다. 결국 알렉시아는 어린 나이에 뇌에 티타늄을 심게 된다. 그날부터일까?
이 부녀가 서로에게 애정이 식어버린 것이. 영화는 이들의 전사(前史)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한 점은 이를 기점으로 이 부녀는 서로의 존재를 거의 모르는 척하며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관계로 살아간다.
영화는 티타늄을 장착한 소녀 알렉시아에서 금방 훌쩍 자란 성인 알렉시아(아가트 루셀)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모터쇼장으로 보이는 어둡고 복잡한 공간에서 자동차 위에 올라타 다소 외설스러운 춤을 추는 알렉시아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많은 댄서다.
하지만 그녀는 제 일을 열심히 할 뿐, 팬들에게나 동료들에게나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서늘한 인물이다. 마치 차가운 금속처럼.
어느 날, 그녀는 귀가 도중 사인을 요청하는 한 남성 팬을 맞닥뜨리는데, 그는 알렉시아에게 다짜고짜 자신과 만나보지 않겠냐며 부담스러운 구애를 펼진다.
그의 요구를 승낙하는 듯하던 알렉시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꽂고 다니던 금속 비녀로 순식간에 그를 죽이고 만다.
영화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살인하는 알렉시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린 여성에서 보이는 연약함이라는 편견을 짓밟듯이, 큰 체격의 남성마저도 단번에 죽음으로 내모는 그녀의 모습이 당당하게 그려진다.
작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은 그만큼 매섭고 저돌적인 기세로 젠더에 관해 고찰하고 인간의 충동을 유심히 묘사하는 작품이다.
당시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파이크 리가 가장 늦게 발표해야 할 최고상을 가장 먼저 발표하는 실수를 저지른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은
그 자체로도 화제 거리이지만 무엇보다 칸영화제의 선택이 이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칸영화제 역사상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은 줄리아 뒤쿠르노가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이후로) 단 두 번째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티탄>의 스타일과 메시지는 그간 칸영화제에서 애정해온 작품들의 내력과는 사뭇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거친 미장센과 도발적인 서사, 애정을 갖기 어려운 인물들의 모습은 딱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작품의 특징이었다.
특히 <티탄>은 자동차와의 성애 장면으로 개봉 전부터 이목을 모았다.
그러나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자극적인 장면보다, 그 이후 알렉시아에게 닥치는 임신이라는 상황이다.
자동차와 성관계 후 임신이라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티탄>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상식으로 고수한다.
인간이 인간 외의 다른 종, 예를 들면 동물이나 외계인과 결합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꽤 있었지만, <티탄>의 상대는 금속의 자동차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흔히 생각하는 ‘여성성’의 중요한 지표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상태가 서사에 사용된다면, 여기서 알렉시아는 살인범 용의자로 본인의 신분이 모든 미디어에 노출되자 남성으로 위장하여 살아가길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의 코뼈를 부러뜨려 오래 전 실종된 소년 아드리앵처럼 얼굴을 바꾸고, 가슴과 배에 단단한 복대를 착용해 남성으로 패싱되는 삶을 선택한다.
이로써 자신의 아들을 드디어 찾았다고 믿게 된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의 따스한 보호 아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화가 그리는 관계는 무미건조했던 알렉시아 부녀(父女)의 삶에서 온기가 가득한 아드리앵 부자(父子)로 변모한다.
그만큼 <티탄>은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꽤나 가득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고정적인 상식이나 기준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남다른 방식의 인물, 관계가 등장한다.
그리하여 <티탄>은 그 거칠고 파격적인 볼거리 속에서 새로운 삶의 탄생을 축복하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데이빗 린치, 데이빗 크로넨버그 등이 떠오르기도 하는 <티탄>의 기괴함은 올해의 가장 문제작 중 한 편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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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올해 초 개봉 소식을 듣고 보러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아 보지 못했던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고, 고양이들이 얼마나 귀엽게 나올지 기대됐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 비주얼리터러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서 어떤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지 궁금했었는데, 고양이에 대한 아이들의 귀여운 그림과 발표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시놉시스
서울 동쪽 끝, 거대한 아파트 단지. 그곳은 오래도록 고양이들과 사람들이 함께 마음껏 뛰놀고 사랑과 기쁨을 주었던 모두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재건축을 앞두고 곧 철거될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 고양이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계속 살고 싶냐고" 고양이들과 사람들의 행복한 작별을 위한 아름다운 분투가 시작된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처럼 따뜻한 아파트가 있을까?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고양이 개체수가 250마리나 된다는 소리를 듣고 적잖이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 단지 250마리나 길고양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만큼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파트 주민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지나가다보면 고양이 밥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보란듯이 써있는 경우도 많아서 도대체 저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있었던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길생활을 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고양이처럼 깨끗했고, 사람을 무서워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서 이곳이야 말로 고양이들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을 더럽다고 인식하거나 방해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함께 이 공간을 사용하고 살아가는 존재로 단지 내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고양이를 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작품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보면서 계속해서 물음표가 가득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거의 동물의 왕국 수준으로 고양이를 쫒아다니면서 촬영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양이들을 너무나도 귀엽고 예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이 있는 지하실이나 폐허가 된 아파트들 사이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고양이, 나무 위에 올라가 꽃처럼 앉아 있는 고양이, 가게 앞을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는 고양이까지. 굉장히 다양한 고양이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고양이 생태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되어 있어서 신기했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이 고양이들이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긴 시간 동안 정서적 유대관계를 쌓아왔다는 노력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서 감독의 노력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서 보는 내내 감탄을 했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지만 고양이 화보집이 아닌가 싶을 만큼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아름답게 포착하고 있어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눈호강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고양이와 말이 통했다면
어쩌면 유토피아와도 같은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그들이 터전으로 잡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것이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에 그 영역을 바꾸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공사에 들어가고 건물이 무너지는데 고양이들을 그곳에서 살게끔 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고양이 대이주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는데 사람의 손을 많이 탄 고양이들은 입양을 결정하고, 그 외의 고양이들은 조금 더 생활반경을 넓혀 옆에 있는 동산이나 다른 아파트단지로 이주할 수 있게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래서 도대체 저 많은 고양이들을 어떻게 이주를 시킬 것인지 궁금했다. 250마리를 한데 모아두고 통째로 이삿짐 이동하듯이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역동물을 특성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기존에 밥을 주던 자리를 조금씩 조금씩 땡겨와 고양이들의 영역을 조금씩 바꿔주고, 고양이들이 천천히 이동하는 영역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었다. 이 얼마나 인내심 가득한 프로젝트인가?
이 과정에서도 다른 아파트로 이주한 고양이들이 자꾸 철거를 앞둔 아파트단지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고양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이곳은 이제 공사가 들어갈 것이라 더이상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면 되지만 고양이들에게는 이를 설명할 방법이 없기에 이 아이들을 이해시키고 위험한 공사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게끔 만들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이 아이들과 정말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던 작품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 잘 풀어낸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이 고양이들이 그곳에서도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마음에 퍼지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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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루머의 끝의 결과는?
헨리와 안은 유명한 연예인 커플이다. 헨리는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이고 안은 극장 배우이다. 둘은 서로를 너무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 하지만 헨리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유머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인기가 하락한 헨리는 자신감도 잃게 되고 자신의 아내인 안의 잘나가는 모습에 질투를 느낀다.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어 낳은 아이가 아네트라는 이름의 아이였고 헨리와 안은 부모로서 아네트를 키우게 된다. 어느 날 헨리와 안은 어린 아네트와 함께 바다에서 요트를 타게 된다. 그러나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파도가 요동치는 요트 안에서 술에 취한 헨리는 안을 바다에 밀쳐내고 만다. 왜 헨리는 안에게 못된 짓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아네트는 아으로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예술의 진가는 자기 자신의 회복이라고 말해주는 영화 <아네트>
안은 유명한 극장 배우로써 남편인 헨리에게 들키지 않게 자신의 반주자와 밀회를 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하락한 코미디언이 얼마나 비극적이게 삶을 망쳐놓는가?
헨리의 자학하는 개그와 욕설이 섞인 풍자 유머는 그를 성공하게 만들었다. 그런 헨리에게는 안과 함께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만들었고, 부담스러워할정도로 기자들의 조명을 받고 있었다. 둘을 계속 따라다니는 뉴스 가십거리에도 헨리와 안은 사랑을 계속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아네트라는 아이가 탄생하게 만들었다. 주목받는 주인공의 삶을 살았던 헨리와 안에게 이면의 모습을 어린 아네트는 보면서 자라나게 되었고 결국에 헨리는 안을 살해하고 만다. 그동안 자신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했던 관객들이 점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자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명성ㅇ르 키워가는 안에 비해 초라하게 되어버린 헨리는 아네트에게도 노래를 시키게 만들어서 아동 착취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헨리가 미쳐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 이용했던 반주자 까지도 죽여버리게 된 걸까? 때론 현실에서 헨리처럼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다가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연예인들을 볼 수 있다. 명성과 돈까지 갖고 있는 연예인들이 왜 대중들에게 멀어지게 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제기되는 루머일 수 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중들에게 루머가 확산되면 빠른 시간 안에 표적은 마녀사냥을 당하게 되거나 이유 없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로 인해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때 느끼는 감정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모를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헨리가 관객들에게 들은 욕설과 부정적인 말들로 인해 끝없는 자신감의 하락으로 모든 것을 망쳐버린 당사자가 된 것은 아마도 자신을 옭아매는 루머라는 동아줄이지 않았을까 ?
* 저의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씨네랩의 시사회에 참여하는 대가로 영화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 본 게시물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하니엘'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에서 업로드한 게시물이며, 원글은 출처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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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하는 다리들(Muted Bridges)
감독: 얀웨이양 Yan Wai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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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개막했다. 다큐멘터리영화를 실컷 볼 수 있는 장이다. 일산 메가박스 킨텍스,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롯데시네마 주엽, 일산호수공원 노래하는 분수대,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헤이리시네마, 수원시미디어센터, 갤러리그리브스 등지에서 43개국이 참여한 140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2024년 16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슬로건이 '우정과 연대를 위한 행동'이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단어가 연대 아닐까 싶다.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2023년부터 비(非)극장 상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올해 주제가 '풍경 landscape'이라고 한다. "생활 세계의 공간들과 거리, 건축, 조경, 자연의 풍경 안에서 오늘날 세계가 처한 위기와 관경, 저항의 운동들을 식별"(공식홈페이지 인용)한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얀웨이양의 '침묵하는 다리들'을 관심 있게 보고 왔다.
일전에도 홍콩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적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아비규환이었던 시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이번 양웨이양의 작품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3분밖에 안 되는 영상이지만, 도시의 풍경, 특히 홍콩의 다리 5개를 비추는 카메라가 함의하는 바가 크다. 감독이 조명한 다리는 홍콩 민주화운동 당시 정치적 슬로건과 항의문, 대자보로 뒤덮였던 장소다.
그 장소가 지금은 너무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거의 표백에 가깝다. 한때 뜨거웠던 시간을 모조리 소거해버린 풍경은 몇 년 전의 풍경보다도 살풍경하다.
3분의 영상 앞에서 잠시 홍콩의 거리 시위 현장을 오버랩해 본다. 뜨거웠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화롭다. 깨끗해진 홍콩의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그때의 열기를 잊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 깨끗한 다리에 때가 타고 발자국이 찍히는 동안 홍콩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마저도 잊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누가 기억해 주나.
아마 얀웨이양 같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닐까. 그러므로 기록한다.
왕가위가 작품으로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반환 직전의 홍콩 분위기 역시 진작 잊혔을 것이다. 모두가 사랑했던 그 시절 홍콩은 사라지고, 이제 중국화된 홍콩이 남아 있다.
지금 동두천시가 미군 위안부 성병관리소를 철거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반발이 거세다. 기록물을 지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3분의 다큐멘터리 앞에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폭력과 광기의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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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6.~ 10.02. 레이킨스몰 3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6일 -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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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re just gonna wait and see.
<라라랜드>
" 음악이 흐르는 LA의 별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빛나는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개봉일자에 맞춰 영화를 보지 않았다. 보고 온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City of stars'를 흥얼거리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썬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뒤에 재개봉 한 극장에서 우연하게 마주치게 된 영화였는데 이렇게 외톨이로 살 순 없겠다 싶어서 즉흥적으로 영화를 표를 끊고 봤었다. 옛날에 같이 살았던 외국인 친구가 'LALA LAND'만큼 멋진 영화가 없다고, 자기가 살았던 동네라고 영화 제목 자체가 우습지 않냐고 'LALA LAND(LA를 의미함과 동시에 꿈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 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를 몰랐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영화관이라는 게 아쉬울 만큼 환상적인 작품을 본 기분이 들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외국인들에게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소재인 것 만큼은 틀림없다. 재즈 뮤지선, 그리고 배우 지망생의 꿈을 위한 도시 LA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로맨스 영화! 낭만적인 꿈을 찾아 헤메이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우습게 붙여놓은 촌스러운 타이틀 만으로도 이미 눈길을 끄는데 오프닝 시퀀스 부터 환상적인 연출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막힌 도로 위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이 'Another Day of Sun'으로 연결되는 순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결정되는 듯 하다. 리드미컬한 음악과 춤추는 사람들, 음색이 돋보이는 음악과 색감으로 무장한 오프닝 시퀀스라니 '이걸 어떻게 원테이크로 찍었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시작부터 뮤지컬 영화임을 입증하듯 '음악에 집중하세요'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여담으로, 아침 출근길에 자주 이 노래를 듣는다. <라라랜드>의 주인공처럼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것 마냥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색을 참 잘 활용하지 않았나' 였다. 인물들의 드레스나 배경, 흘러가는 장치 등에 색깔을 눈에 띄게 사용함으로써 영화 속 스크린이 아닌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또한 인물들에게 특성 색깔을 부여함으로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환경을 쉽게 표현하기도 한다. 안정감을 주지만 답답한 느낌을 만드는 초록색,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의 열정과 정열 욕구 그 자체를 표현하는 빨간색, 동시에 세바스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어 원색적인 미아와의 대조되는 베이지 톤. 미아(엠마 스톤 분)의 우울감과 맞닥뜨린 현실감을 상징하는 파란색, 아침과 저녁의 경계선에 주인공 둘을 섞어놓은 듯한 보라색 등 원색적인 색깔을 활용함으로써 인물의 상황과 개성이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좋은 미장센의 요소였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눈에 띄도록 사용된 색깔들을 상황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도 큰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
<라라랜드>가 인기있었던 가장 큰 이유 바로, 'City of Stars', 'mia & sebastian’s theme', 'Start A Fire'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OST들이 그 주인공이겠다.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의 말처럼, 음악이 영상이나 대본만큼 스토리텔링을 하는 아주 큰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덕분에 감정적으로 솔직하고도 다채로운 표현력을 가진 음악들이 영화 내내 폭죽처럼 터진다. 뮤지컬 영화의 생명을 결정하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삽입된다는 것 또한 <라라랜드>가 가진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다. 여타 뮤지컬 영화가 그렇듯 뜬금없는 전개로 시작되는 음악이 낯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의 인위적인 연출과 개연성 없는 음악은 도리어 거부감을 부를 뿐이니까 말이다. 하나, <라라랜드>는 인물간의 대화에서 그리고 주요 장면에서 배경음악처럼 뮤지컬 요소를 활용한다. 메인 스토리의 구축 지점에서 주인공들이 직접 연출하는 배경음악은 뮤지컬 영화 특유의 몰입감을 한층 더하는 듯 하다. 만나게 되는 지점부터 이별을 맞는 지점, 그리고 후의 우연한 만남의 지점까지 현실감과 더불어 가슴 아프지 않은 이별을 만들어 내는 섬세한 연출력이란 ...
겨울을 시작으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계절을 따라 진행되는 내러티브 또한 탄탄하고도 감미롭다. 오프닝의 계절, 진정한 재즈 음악을 찾는 세바스찬과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준비하는 미아의 시련이 마치 겨울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 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봄으로 넘어온 둘은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야경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춤을 추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우연의 연속으로 손을 잡고 키스를 나눈다.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열정적인 둘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나 그들의 현실은 사랑보다 냉정하다. 현실과 타협할수록 꿈과 멀어지게 되는 세바스찬을 보며 미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윽고 가을 되고, 꿈에 대한 논쟁으로 둘은 갈등을 맞게 되고 둘의 관계도 흔들리게 된다. 이윽고 마찰이 잦아진 그들은 사랑도 꿈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이별을 마주한다. 이윽고 5년이 지난 겨울, 둘은 그토록 원했던 꿈의 위치에 서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을 마추고 이윽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계절은 지나 다시 돌아오긴 하되,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서로를 추억하며 '만약'이라는 화법으로 연출한 엔딩까지 ... 익숙하고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꿈과 사랑을 계절에 비유해 전개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낭만'으로 정의해두고 싶다. LA에 대한 이상을 갖게 만들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낭만.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동안 눈가 귀가 즐겁다 못해 발을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작품의 퀄리티를 높히는 작품성이 좋았던 만큼 대중성도 굉장히 잘 잡아낸 듯 하다.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장면들을 요구하는지 감독이 그대로 알아내 화면 속에 담아낸 것 처럼 보였다. 또한 라이런 고슬링과 엠마 스톤 두 배우 모두 이 영화에 찰떡같이 어울렸는데, 두 배우 모두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과정이 아마 세바스찬과 미아 두 인물의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본과 음악 외에도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부의 지루함이 있긴 하나, 극 설명을 위한 초반부를 넘어서면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영화 메인 OST 'City of Stars'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그리피스 천문대의 화려한 별들의 향연과, 로스앤젤레스 야경 속 보랏빛의 풍경, 90년대를 연상케 하는 재즈바와 할리우드 배경까지 ... 주인공 둘의 스탭을 따라가며 영화 중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스토리 외적으로도 볼거리가 넘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영화보다 한편의 무대처럼 보이는데, 이는 조명의 영향도 큰 듯하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지 않는 핀 조명을 극 중 전개에 자연스럽게 활용함으로써, 영화 속 연출임은 분명하나 마치 실제로 무대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끔 시각화했다. <라라랜드>는 촬영도구나 연출적 요소 속에 디테일을 많이 숨겨놓은 영화인데 일일히 하나하나 설명이 어려울 만큼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영화를 빠르게 전개시키면서 이런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니 그저 신기할 다름이다.
낭만적인 LA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 로맨스인 만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동시에 LA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 '꿈'에 대한 좌절과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 또한 좋은 메시지 중 하나였다. 사랑과 꿈 사이의 경계선에서 버거워하는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라라랜드> 제목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하다.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 사랑이라는 초점이 메인인 것 만큼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에 더욱 초점을 맞춘 듯 하다. 남녀가 서로 만나 끌리는 동안 그들의 가진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조언하고 위로하는 과정은, 스스로 정립할 수 없던 꿈을 이야기 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 처럼 보인다. 두 인물 모두 꿈에 대한 본질적인 불안감과 그 꿈의 정체성에 관한 깊은 고뇌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는 양상은 차이를 보인다. 꿈과 현실을 타협하기를 여러번,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진정으로 서로의 눈을 맞추는 순간은 아프면서도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환상적인 OST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몽환적인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색감이 될 수도 있으며, 좋아하는 배우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 그 이유일수도 있다. <라라랜드>가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힐 만큼 그 요소들이 밸런스 있게 적절히 잘 조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뮤지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의 기본 단계들을 잘 지켜냈으며,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전개 또한 신선하고 뭉클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도록 화려한 화면과 색감을 적절히 잘 사용했으며 주인공의 연기가 섬세했던 덕분에 관객의 감성을 잘 어루만질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해질 지도 모르는 2시간의 타임라인 속에 감독이 하고싶었던 말들을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결말까지 '환상적인'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라라랜드>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사람의 감정을 분출해내고 터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 듯 하다. 전작인 <위플래시>와 최근 작품인 <퍼스트맨>만 보아도, 인물 개개인의 가진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극찬하고 '황홀하다'라고 표현하는 영화 <라라랜드>, 최근까지도 여러 극장에서 재개봉을 하고 있는 추세이니 혹여 보지 못했다면 꼭 영화관에서 보길 추천한다.
사진 출처 : <LALA LAND>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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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한 맛이지만 강렬한 "에이리언: 로물루스" /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 / 새로운 젊은 캐릭터들 / 강렬한 긴장감과 몰입감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에이리언: 로물루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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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 15세기 미모왕 더 킹: 헨리 5세
흥해라 이 영화
더 킹 헨리 5세
- 노는 게 제일 좋을 나이에 왕이 된 헨리 5세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 모두를 마주하게 되는데...
왕권을 둘러싼 물리적 정신적 싸움을 리얼하게 그린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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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상> 30초 예고편
끊임없이 착취가 벌어진 성희와 수영의 '삶'과 '몸'.
자본이 숨기려고 했던 노동과 지우려고 했던 존재들.
그들을 품고 있는 ‘사상’.
자본이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풍경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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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드 헤어> 메인 예고편
1989년 LA,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는 애나는 스타 VJ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볼품없는 곱슬 머리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특별한 미용실을 추천해 주는 동료, 애나는 그곳에서 찰랑이는 생머리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머리카락에 주문이라도 걸린 듯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지만 애나는 곧 머리카락이 피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