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21 18:26:10
7월 3주차 개봉예정작
우리의 의리 넘치는 AI 로봇 메간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
🎫 7월 3주차 개봉기대작 골라왔습니다!
우리의 의리 넘치는 AI 로봇 메간이 돌아왔습니다.
<메간 2.0> 아예 병맛을 콘셉트로 들고와서 더 기대되는데 한국의 유튜버 입짧은햇님도 출연한다고 하네요..?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잠입편>,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결전편> 2편이 동시에 개봉해서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한국 제작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드디어 국내에서도 개봉하는데요,
이미 <기생충>을 제치고 북미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중 최고 흥행작에 등극하면서 금의환향 했습니다. 국내 성우진 캐스팅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병헌, 진선규, 이하늬, 양동근, 차인표, 장광까지… 과연 명성에 걸맞는 작품일지 궁금하네요 👀
이번 주 극장은 다큐멘터리부터 공포,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향연이 펼쳐질 것 같네요🔥
여러분은 추천작 중 어떤 영화 가장 먼저 보러가실 예정인가요?🤔
🎬 7월 3주차 PICK!
►<메간 2.0>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미세리코르디아>
►<킹 오브 킹스>
►<일과 날>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잠입편>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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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무채색의 꿈을 채색하는 영화
무채색의 꿈을 채색하는 영화 '오랜만이다'의 이가섭 배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영화로 선정된 '오랜만이다'는 같은 꿈을 꾸는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담아낸 영화다. 8월 13일, 엽연초하우스에서 이가섭('오랜만이다' 현수 역) 배우를 만나 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라는 작품에서 현수 역할을 맡은 배우 이가섭입니다.
영화 '오랜만이다'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오랜만이다’라는 영화는 누구나 다 겪었던 꿈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음악의 가사가 굉장히 와닿고,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로 만들어졌습니다. 음악이라는 소재, 꿈이라는 스토리, 색감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영화입니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주목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연경의 서사를 조금 주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된 연경이가 사회를 생각하면서 버스를 타고 있는 장면에서 연경이의 눈을 보면 뭔가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연경이의 감정선을 따라가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악 가사와 이런 게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통해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릴 때는 꿈이라는 게 항상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되게 무채색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저는 되게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극 중 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꿈에 대한 위로를 주는 장면이 많았는데 배우님께서 위로받은 장면은 무엇인가요.
위로보다는 공감을 한 장면이 많았습니다. 내 손 앞에 있는데도 안 잡히는 느낌을 봤을 때, 그것을 보면서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그랬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극 중에서 피아노를 치셨는데 원래부터 피아노를 치셨나요?
아니요. 이번에 역할을 위해 연습했어요. ‘떴다 떴다 비행기’도 한 손으로만 할 줄 아는 실력이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뭔가 취미가 생긴 것 같아 즐겁고 좋았습니다. 극 중에 ‘비창’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헤드폰 쓰고 혼자서 치고 있으면 괜히 ‘나 좀 뭔가 멋있어 보여’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웃음).
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OST는 무엇인가요.
‘너의 말들은’이라는 곡이요. 가사에 ‘내가 나의 말은 나를 좀 무너지게 만드는데 너의 말은 나를 안정적으로 만든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과거 연경이가 현수한테, 현수가 연경이한테 해줄 수 있는 말들이었다고 생각해서 더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영화 풋풋한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편한 영화이고, 좋은 음악들이 많이 있는 영화이니 즐겁게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민서, 신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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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부끼는 번민의 돌파구
SYNOPSIS.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 김상현, 공부인, 최재형, 이창섭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하얼빈으로 향하고, 내부에서 새어 나간 이들의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이 시작되는데…
하얼빈을 향한 단 하나의 목표, 늙은 늑대를 처단하라
POINT.
✔️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역사적 순간을 담아낸 영화 타율이 좋은 우민호 감독의 작품
✔️ <기생충>으로도 잘 알려진 홍경표 촬영감독의 미학이 빛나는 작품
✔️ 이미 여러 차례 다루어진 만큼, 안중근의 거사 자체를 조망하기보다 안중근의 내면에 집중했으며, 어마어마한 로케이션과 어우러지는 비장미가 있는 작품
✔️ 많은 배우들의 합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연기 아른거리는 회화 속에서
영화는 초장부터 기존의 안중근 서사와 다른 길을 갈 것임을 명확히 한다.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독립 운동가들의 회동 모습은 마치 바로크 회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안중근 서사 하면 기대하는 역동적인 스펙타클 대신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한 의심의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이 무드야말로 실제 독립운동의 무드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독립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아는 미래가 아닌, 과연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지, 미래가 있다 한들 거기에 내 자리는 있을지 회의감과 번민 속 현재에서 걸어간 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밀정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으며, 안중근이 나타난다. 흔히 결의에 찬 장면으로 묘사되는 단지(斷指)의 순간으로 걸어들어온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의 순간조차 안중근이라는 인물 한 사람에게 확신에 찬 핀 조명을 쏘는 대신, 유령 혹은 그림자처럼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자를 그 주변에 둘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방점을 찍은 일제의 침략이 계속되고 있던 1908년에서 1909년이었으니까. 의구심과 자괴감,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정서는 빛 아래 있어도 그림자였다. 극중 가장 역동적이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조차 승리 혹은 패배를 강조하기보다 처절한 아비규환을 그리고 있다.
그 지옥도에서 안중근이 택하는 길은 만민공법을 지키고 스스로가 대한의 참모중장임을 잊지 않는 것, 다시 말해 그의 내면과 신념을 지키는 길이었다. 탄환을 명중시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로 극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대신, 영화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고뇌가 때로는 고꾸라지고 때로는 맞아떨어지는 길을 담는다. 주변 인물들과 때로는 합심하고 때로는 불화하면서, 안중근은 (실제 역사에서는 '동양평화론'이 될) 그의 길을 간다.
각지고 막힌 상자 속에서
반면 확신에 찬 인물이 있다. 릴리 프랭키가 분한 이토 히로부미는 시종 확신에 차 있다. 실제 역사에서 1-2년 후에 이루어질 경술국치(1910.08.29)를 앞두고, 단상에 서서 담담한 말투로 한일 병합을 말한다.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에서 은혜 입은 것도 없는 백성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말조차 담담하게 내뱉는다.
그의 공간은 하나 같이 각지고 막혀 있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네모 반듯한 귀족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똑같은 뒤통수는 똑같이 수그려지고, 이동할 때에도 그의 자리는 사방이 틀어막힌 기차 칸이다. 러시아 공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차 칸도 바깥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의심과 번민으로 흔들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기차와 달리, 확신으로 감싸인 공간에서 그는 남의 인생을 손발 삼아 움직이며 덤덤히 침탈의 길을 간다.
이는 얼어 붙은 두만강이나 숲이나 너른 사막으로 표상되는 안중근의 공간, 그림자와 연기가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 같은 공간과 대조적이다. 이 공간적인 대비는 마치 확신이 꼭 옳은가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가는 침탈의 길에 확신을 가진 이토 히로부미와, 끝없는 번민으로 내면의 두레박을 길어 올리는 안중근, 그리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마음. 안중근이 내면으로 던져 올린 두레박은 영화 마지막에 기어코 마중물을 길어 올렸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인물들은 죽음 이후에도 유령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는 아우라를 남겼다. 하지만 확신은 총탄에 스러진다.
푸른 꿈과 시린 번민으로 열린 공간에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이 시국'에 잘 어우러진다며 여러 차례 회자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 언제나 절망의 뒤편에 희망이 있다는 것, 이제는 진부한 문장이지만 빛은 그림자와 함께 도드라진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미래를 알 수 없는 채로, 독립의 실낱 같은 가능성을 바라보는 괴롭고 지난한 길. 신뢰와 의심을 동시에 품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즉각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그 길을 걷는 한 인간의 고뇌. 영화는 안중근의 거사까지 직진하여 가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회전하며 주변 인물들을 에두르는 고뇌의 그림자를 품는다. 총알이 날아가는 모양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지난한 길을 갔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가늠해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마음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 보편적이다. 희망을 길어 올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두 다리를 걷어붙이고 진창에 서야 하기에. 푸른 꿈은 언제나 곱고 예쁜 자리에만 있지 않다. 그 색깔은 시린 번민의 색깔과 맞붙어 있다.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빛과 그림자가 언제나 등을 붙이고 있듯이. 그 자리는 안중근의 공간들처럼 탁 트여 있다.
희망에 꽉 막힌 확신 같은 건 없지만, 가능성은 사방으로 트여 있지만, 그림자처럼 담배 연기처럼 나부끼지만, 이 번민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광장 또한, 탁 트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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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걸 뒤엎어버리고 새로움을 맞이하다
모든 걸 뒤엎어버리고 새로움을 맞이하다.
<티탄> 영화 리뷰
폭력과 충격
티탄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폭력적이고 기괴한 표현 방식으로 다가왔다. 개연성으로 엮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은유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보기가 힘들 정도로 폭력적이고 기괴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에너지가 영화를 보는 사람을 끌고 가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강력한 표현 방식으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일까?
충격 속 이야기들
이 영화가 말하고 자 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영화를 돌아보았다. 주인공은 알렉시아이자 아드리앙이다.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모두 비춰준다. 그렇다고 주인공을 양성이라고 칭하기엔 그 이상의 젠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자동차와도 관계가 가능했고 그로 인해 임신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젠더를 자꾸 뒤엎어버리는 설정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알렉시아 가지고 있던 성적 대상화된 여성성의 모습을 아예 비틀어버린다. 알렉시아의 처음과 끝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면 성적 대상화된 여성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특히 처음 레이싱걸로서 춤을 추는 주인공과 소방차 위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말한다. 두 장면을 비교해서 보면 여성의 미가 대상화된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또 대상화된 여성성으로 임신이 있다. 고귀하고 신비롭게 여기는 임신을 이 영화에서 두려움으로 보여준다. 변화하는 몸과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이 보는 사람에게도 느껴져 임신이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
전환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로도 성에 대한 생각을 비틀어버린다. 뱅상은 남성성을 힘들게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약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위하여 남성성을 억지로 이어 나간다. 그 모습이 괴롭게 느껴질 정도로 뱅상은 남성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뱅상은 결국 약으로도 남성성을 지키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장면에서 다양한 측면으로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남성성, 여성성, 젠더 자체에 대한 인식을 비틀어서 전달한다.
주인공과 뱅상은 결핍이 있고 각자의 성에 잡혀있는 채로 시작했다는 점이 비슷하다.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의 결핍이 있고 성적 대상화된 여성성에 사로잡힌 레이싱걸로 살아가고 있었고, 뱅상은 실종된 아들로 인해 사랑을 주고자 하는 대상
의 결핍이 있고 소방대장의 위치를 위해 남성성에 끌려다녔다. 이런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잡혀있던 성에서 해방되고 서로로 자신들의 결핍을 채워가며 새로운 신인류를 맞이했다.
비틀고 뒤집어
감독은 주인공과 주위 인물들로 모든 것을 비틀어버린다. 그 방법이 다소 폭력적이
고 기괴해 받아드리기 어렵지만 나는 이것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충격을 표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독은 기존의 성과 모든 고정된 이미지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새로운 세상은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어야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 같다.
한 줄 코멘트
충격으로 뒤엎어지고 발견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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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 아래 드러난, 사라지는 노동의 초상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씁쓸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마다 인간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또 동시에 환호했다.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던 19세기 초, 산업혁명은 노동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생산 방식을 예고했다. 인터넷이 보급될 때, 우리는 전 세계가 연결되는 편리함에 놀랐지만 수많은 중개업이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자, 종이를 비롯한 전통적 산업은 점점 축소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일터를 잃었고, 누군가는 평생의 경력을 송두리째 부정당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도 대체로 무심히 지나쳤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이 익숙한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종이 산업이라는 디지털 시대의 직격탄을 맞은 영역을 무대로 삼는다. 만수(이병헌)가 다니는 제지 회사는 더 이상 종이를 팔 수 없고,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우리의 손에 쥐어진 순간 이미 사양 산업이 되었다. 감독은 굳이 제지 산업을 선택하며 이 시대가 가장 가혹하게 외면한 직업군을 끌어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만수라는 한 노동자를 두고, 노동자가 맞닥뜨린 절망과 비극을 다층적으로 묘사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과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직면하게 된다.
[첫번째 감정] 만수의 절박함
만수의 삶은 해고 통보 한 장으로 흔들린다. 그 순간부터 그는 단지 직업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삶 전체를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곧 새로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수개월이 지나며 점차 희미해진다. 통장 잔고가 비워지고,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을 때, 만수의 절박함은 단순한 실직자의 초조함을 넘어서는 어떤 광기로 다가온다.
그 절박함 속에서 만수는 범모(이성민), 시조(차승원), 선출(박희순)과 같은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다시 찾아간다. 그들은 만수처럼 흔들리는 존재이자, 동시에 만수가 가진 경력과 전문성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 같은 인물들이다. 좁아진 일자리라는 문틈은 그들을 경쟁자로 만들고, 만수는 생존을 위해 그들을 제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듯 연출된 살해 장면은 가까이 다가가 보면 결코 웃을 수 없는 비극이다. 마치 자기 자신의 분신들을 하나씩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만수는 마지막에 혼자 남는다. 자동화된 제지 공장에서, 인간 노동자가 필요 없는 곳에서 그는 홀로 기계와 함께 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다시 ‘노동’을 얻었지만, 그것은 그가 지켜내고자 했던 경력도, 가족도, 자존감도 모두 잃은 뒤에야 주어진 자리였다. 과연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만수의 절박함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으나, 결국 그가 지켜내고 싶었던 본질마저 스스로 파괴한 것이 아닐까.
[두번째 감정] 미리의 초조함
미리(손예진)의 감정은 만수와는 다른 방향에서 다가온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점점 초조함으로 바뀌어간다. 집을 팔고 소비를 줄이며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 애쓰지만, 끝내 그것만으로는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재혼가정이라는 점은 그녀의 불안에 더 큰 무게추를 단다. 아이들이 만수를 ‘진짜 아버지’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덧붙여지면서, 미리에게 가족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구조물처럼 보인다.
그녀가 가장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뭐라도 하라'는 것이다.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들어와야 그나마 가족이 지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미리는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만수의 비밀을 알고난 이후에도, 그것을 덮어버리는 선택한다. 그건 합리적이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가족을 지키기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초조함은 그녀를 진실로부터 눈을 감게 만든다.
영화 말미, 새로운 일터로 향하는 만수를 바라보는 미리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것은 온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아니다. 초조함을 꾹꾹 눌러 담은 채, 그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이다. 미리는 그렇게 비극적인 사회적 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자기기만적인 인물로 남는다. 그래서 마지막 미리의 얼굴은 오랜시간 관객의 기억에 남는다.
[세번째 감정] 사회의 무관심
만수와 미리의 고군분투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영화 속 그들이 겪는 비극은 우리 사회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대체로 알지 못한다.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기계의 등장, 인터넷의 도래, 스마트폰의 확산. 우리는 늘 편리함의 기억만을 간직했을 뿐, 그 과정에서 사라져간 노동자들의 삶에는 무관심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추정할 뿐, 대부분은 관심없이 현생에 집중한다.
영화는 이 무관심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만수가 다시 취업한 자동화 공장은 완벽히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혼자 기계와 일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외면했던 수많은 노동자의 마지막 얼굴을 보여준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고, 누구도 묻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다만 ‘편리함’뿐이다. 그 텅빈 공간 안에서 만수는 과연 예전과 같은 영광스러운 직업 정신을 가지게 될까. 그리고 곧 인간으로 혼자 근무하던 만수 역시 제거되지 않을까.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에 묻는다. 언젠가 당신이 그 자리에 선다면, 사회는 당신의 절박한 외침을 들어줄 것인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답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이고, 단지 소비자로서 편리한 기술을 사용하면서 개개인의 삶은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누가 만수 같은 노동자에게 신경을 쓰게 될까. 여전히 우리는 그 무관심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박찬욱이 전하는 서늘한 사회의 단면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도 불편한 사회적 진실을 예리하게 끄집어낸다. 노동자끼리 서로를 제거하며 생존을 꾀하는 설정은 냉혹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기술 발전으로 사라지는 직업군의 절망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사회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수가 중얼거리는 '어쩔수가없다'는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폭력에 맞닥뜨린 개인의 절규로 다가온다.
연기 또한 탁월하다. 이병헌은 절박함과 광기, 그리고 겉으로 웃으며 내부가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구현했다. 손예진은 초조하지만 굳세고,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미리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이성민과 차승원, 그리고 범모의 아내를 연기한 염혜란의 존재감 역시 인상적이었다. 특히 염혜란은 평소에 보여주지 못했던 관능적인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무게를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촬영과 미장센 역시 주목할 만하다. 햇빛이 만수의 얼굴을 집요하게 비추는 장치는 사회적 변화라는 거대한 자연현상을 은유한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빛, 그러나 잠시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 위 햇빛을 가려주는 순간은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지를 상징한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절망만을 말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미약한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선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무겁고,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관심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에 설지도 모를 우리 자신의 얼굴을. 사회는 늘 변화를 맞이했지만, 그 변화의 대가를 누가 치렀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박찬욱은 이번 영화로 다시금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혹은 다른 길은 없었을까?' 이 질문은 단지 만수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는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노동자 개인의 절박함, 가족의 초조함, 사회의 무관심이라는 세 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본질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동시에 얼마나 많은 것을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를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언젠가 자신이 만수의 자리에 선다면, 과연 '어쩔수없다'는 말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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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깨뜨린 시스템에 대한 분노, 마녀
우리가 사는 일상은 그저 무심하게 지나간다. 큰 사건이 없다면 그 일상에 고마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불행한 일이 있거나, 본인이 아파 그런 일상을 누리기 어려울 때 그제야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삶을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무심히 스치듯 지나가는 매일매일의 일상이 모아져 만들어지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주변에 소중한 사람도 생기고, 같이 무언갈 공유하는 기쁨도 알게 된다. 그런 기쁨들이 더욱 일상을 소중하게 만들기도 한다.
2018년에 개봉했던 <마녀>는 주인공 자윤(김다미)이 일상을 보내는 모습들이 영화 초반에 담겼었다. 어린 시절 기억을 잃은 자윤이지만 그를 보호해주는 양부모가 있고, 그의 단짝 친구도 그와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일상에 참여하고 있는 자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고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깨뜨리는 어떤 집단 시스템에 대항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그것이 그가 누리던 일상을 망가뜨려버리고 만다. 그렇게나 지키고 싶어 했던 그 일상을 자윤은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마녀> 세계관을 이어가는 두 번째 영화
<마녀 파트2>는 1편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가는 영화다. 대신 자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다른 소녀(신시아)를 등장시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 속 소녀는 어떤 실험실에서 탈출해 제주도 어딘가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는 피를 뒤집어쓴 채로 돌아다니다 우연히 탄 차에서 경희(박은빈)를 괴롭히던 깡패들과 만난다. 그리고 경희를 괴롭히는 깡패들은 자신의 초능력으로 응징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 소녀가 일상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끌고 가고 있다.
<마녀> 시리즈에서 일상은 중요하다. 자윤과 소녀 모두 어린 시절의 평범한 일상을 보낸 적이 없다. 그래서 그것을 경험한 자윤은 그것을 깨버린 시스템과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고, 2편이 등장하는 소녀는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그 평범한 일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경희를 만나고 그의 동생 대길(성유빈)을 만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소녀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밥을 먹고 마트를 가고, 잠을 자고 산책을 하는 아주 평범한 그 일상을 처음 경험해보는 소녀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환희가 가득하다.
영화 속 소녀가 처음 일상을 경험하는 모습은 어린아이가 처음 경험할 때 보이는 반응 자체다. 그것을 보고 도와주는 경희와 대길은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 어쩌면 어색해할 소녀에게 최선의 환경과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렇게 소녀에게 다가간 일상은 곧 자신이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마녀 파트2>에서도 일상은 주인공의 마음을 결정하게 하는 강력한 요인이 된다. 거대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경험한 자유와 감정은 자신이 가진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
소녀의 일상을 빼앗아 초능력을 만드는 시스템
<마녀 파트2>에는 백총괄(조민수)가 등장한다. 1편의 닥터 백(조민수)의 쌍둥이인데 그는 수많은 초능력자를 만들어낸 시스템을 이끄는 그야말로 총괄이다. 그가 만든 시스템은 아이를 도구로 활용하여 시스템의 힘을 극대화시킨다. 아이들의 일상을 빼앗아 초능력의 극대화를 시킨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영화에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과 삶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의 액션은 1편의 타격 액션에서 염력을 쓰는 초능력 액션으로 조금 형태가 바뀌었다. 그리고 더 많은 능력자들을 등장시키면서 조금 볼거리를 다양화했다는 느낌도 든다. 영화는 주인공 소녀에게 일상을 선물한 뒤, 그 선물을 빼앗으면서 벌어지는 액션을 폭발적으로 담았다. 기본적으로 그 형태는 바뀌었지만 1편의 이야기 구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1편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능력자들은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소녀를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주인공 소녀를 이기기는 역부족이다. 그 능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에 맥이 빠지는 느낌도 있다.
영화에는 소녀를 추적하는 시스템의 특수요원 조현(서은수)과 장(이종석)을 비롯해 깡패 두목 용두(진구)가 등장하고, 중국에서 온 초능력자들도 등장해 이들을 한 장소로 모이게 만든다. 인물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액션 대결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느낌도 준다. 너무 많은 인물들이 한 곳에 엉키면서 액션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각자가 가진 정확한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소비되고 만다.
빨라진 액션 하지만 기시감이 들게 하는 이야기
1편과 마찬가지로 2편에도 좋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 소녀 역을 맡은 신시아 배우는 1편의 김다미 배우와 마찬가지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야기에 완전히 녹아들어 천진난만하거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다음 출연할 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경희 역의 박은빈 배우나 대길 역의 성유빈 배우도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캐릭터로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깡패 두목 용두 역을 맡은 진구 배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지질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시선을 끈다. 그리고 이전에 강한 역을 맡지 않았던 서은수 배우는 이번에 액션 비중이 높은 특수요원 역할을 맡아 실감 나는 액션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1편에 이어 2편에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와 인물 구도를 통해 조금은 반복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액션의 밀도를 키우고 다채로운 장면들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편의 반복처럼 느껴져 기시감이 들게 한다. 하지만 1편에서 김다미 배우를 발굴한 것처럼 신시아 배우를 새롭게 주연으로 발탁하여 영화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영화 <마녀 파트2>는 3편으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박훈정 감독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연출할 예정이다. 2편까지는 아주 새롭다고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슈퍼히어로 시리즈로서 3편에서 맺어질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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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왜 우리는 살면서 잔인한 기억을 한 번쯤 겪게 될까요? 월요일에 들었던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금새 나는 한 가지의 끔찍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 주의 내가 그 시간에 고통받았냐? 아니다. 지금의 나는 19과 20에 겪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 300번째 한 후, 내가 겪었던 고통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실 별 것 아니다. 별 것 아니었다는 결론에 달한 것이 나의 트라우마 극복의 전부다. 이겨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머릿속에 새기는 것일 거다. 근데 이것과 별개로 내가 무언가에 휘둘려 살았던 기억은 나의 행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대체 왜 그랬지. 이 트라우마가 만든 창피한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그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난 누군가를 생각하는 법 자체를 몰랐다. 사랑받는 법도 주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방황했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바보 같은 순간이 머릿속에 스쳐가는 오늘이다. 그때의 시간은 어리다는 말로 전부 수식할 수 없으니 오늘 밤도 이불을 뻥뻥 차게 생겼다.
다행인 점은 있다. 내가 미쳤지 싶었던 때에서 얻은 건 있으니 말이다. 이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사랑받는 인생은 무엇이고, 그걸 주는 삶이란 또 어떤 것인가? 에 관한 것이다. 이건 살면서 굉장히 중요했다. 내 정신연령이 죽을 때까지 10대에 머무를 순 없잖아? 세상의 모든 애정이 이성 간의 사랑과 그것이 아닌 무언가로 나뉜다면 삶이 퍽퍽해질 것이다. 물론 선을 넘는 건 나 역시 부담스럽겠지만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무언가를 잘 보듬으려고 한다. 살다 보니 정말 사랑이 전부였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할 때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타인에게 더 당당해지기 위함이었다. 또 언제는 그가 한 말 한마디가 내 동기부여의 전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이성 간의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누구에게 진심인 편이 된다는 건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았다. 진정성은 사소한 것에서 왔었다. 내가 지키는 소소한 것에서 섬세함이 생기고 그 사람의 말에 설득력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상대방은 보통 '이 사람이 진정성을 갖고 행동하는구나'라고 느껴 나를 좋아해 준다. 보통 그런 지레짐작은 맞는 말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이 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속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싫다.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에 유달리 집착했던 나는 앞과 뒤가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태도에는 단점이 있다.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짝사랑을 심하게 한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에 취해있으면 그 사람에게 맞춰진다. 그러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진다. 사랑받기 위해서다. 정서적인 무언가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어떤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다가 크게 다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점점 뒤가 없어진다. 모 아니면 도인 내 방식이 가끔 질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마음을 막을 수 있느냐. 글쎄. 아마 아닐 것이다. 지극히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나는 진정성을 위해 내 언어로만 행동하고 말한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이 사람이 언젠가 날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간 후의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잃고 나서 난 이런 것들을 배웠다고 자위하는 건 이제 질렸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무서운 게 많아지는 셈이다. 차라리 누군가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다칠 일도 없을 텐데. 난 오늘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무서워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필연을 운명에 빗댄 영화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이유에는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좀 심각하게 극단적이다. 아버지에게 알맞은 애정을 받지 못한 채로 자란 마츠코. 시크한 아버지가 웃음을 주지 않은 것에 마음이 답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츠코는 일찍 취업에 성공해 선생님이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다. 교사로서의 일과 도중, 마츠코가 재직하던 중학교 제자가 누군가의 돈을 훔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츠코는 이 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게 되고 작가 지망생인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도 못했고 믿었던 학교에서까지 배신당한 마츠코. 이번에는 정말 날 사랑해주는 곳을 찾은 것 같았다. 근데 그건 잠깐 뿐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재림이라는 말과 함께 미래가 밝았던 첫 번째 남자 친구는 예술가의 지나친 우울함 때문인지 자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두 번째 남자 친구는 첫 번째 남자 친구에게 열등감이 가득했던 인물이었다. 마츠코를 얻음으로써 이 열등감을 해소하려 했었다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한다. 자기 내적의 무언가 때문에 마츠코를 이용한 것이다. 연이은 이별 후 직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마츠코. 새로운 일터는 마사지방이었다. 업계 톱으로 잘 나갔던 그녀지만 이내 회사가 무너지게 되고 다시 위기에 봉착한다. 이 시기에 원래 살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마츠코 연락 없음'이란 글을 읽게 된다. 아버지의 애정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홀로 집을 나와 독립을 시작하고 세 번째 남자 오노 데라를 만나게 된다. 이 남자의 정체는 사기꾼이었다. 후에 마츠코를 배신하자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네 번째 남자를 만나 삶을 살던 도중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8년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로 나온 마츠코.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는 교사 시절 도둑 누명을 쓰게 만든 제자였다. 제자 류와의 사랑에 빠지는 데는 성공하지만 정작 끝은 좋지 못했다.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갔다 온 후 마츠코를 돌보기를커녕 주먹 한대 쳐버리고 류는 도망친다. 결국 버림받게 되는 마츠코.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 은둔하며 TV만 보다가 우연히 본 아이돌에게 빠지게 된다. 하는 거라곤 그 아이돌에게 편지 보내는 것 빼곤 아무것도 없던 마츠코. 감옥 동기가 재기할 수 있을 거라며 건넨 명함에 행복 회로를 돌리다 후반부에 허무하게 객사하게 된다. 그게 영화의 끝이다.
이 영화는 많이 비극적이다. 선생님이란 좋은 직업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과할 정도로 사랑을 찾는다. 2021년의 우리가 보기엔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영화의 주인공이 보여준 행보와 같은 질문을 우리의 삶에 던질 수 있다. 과연 사랑이 그렇게나 중요할까? 주인공의 자존심까지 다 팔아가며 받고 싶을 만큼 관심과 애정이 우리 삶에서 중요할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거 말고 하나 더 있다. 그거 받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극적으로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는가? 어차피 누군가는 어떤 인물의 삶에서 떠나갈 수밖에 없다. 겉보기엔 오해로 멀어지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당연하다. 모든 영화에는 엔딩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필연적인 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불륜이든 풋풋한 첫사랑이든 우리는 끝이 어떤 결말로 이뤄질지 뻔히 아는데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연인이 아니고 친구관계이거나 형이나 누나로 불려지는 사이여도 마찬가지다. 단 한 가지의 예외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잘 알면서도 우리는 운명을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생각해보자.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단지 섹슈얼한 무언가가 아니라 존경과 우정, 공감의 의미여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감정이야 말로 우리 인생의 전부다. 내가 느끼기엔 -내 기준- 이성 간의 사랑보다 이 감사함의 표시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형들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난 게이가 아닌 것처럼 세상은 다양한 감정들로 이뤄져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존경이라는 말이 식상해질 때 누군가에 대해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봐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순수한 동기부여는 이런 것들이다.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 모습을 사랑해줄 인간이 있다면 그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이 소중한 이유가 이거 아닐까? 거의 대다수에게 가족이란 어떤 일을 겪어도 내 편인 존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잘하는 것일 테지. 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근데 난 이기적 이게도 이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싶다. 가족이 주는 무언가는 항상 고마운데. 나는 그 외에서도 쓸모를 찾고 싶다. 난 개 같던 20대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았던 것 같다. 그 뭐 같던 순간에서 제일 찌질한건 나였단 걸 깨달은 후에도 다른 뭔가를 찾았던 것 같다. 이런 인간관계의 결말? 항상 같았다. 난 정말 나밖에 모른다. 친해지는 걸 못해 별것 아닌 것에도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던 기억이 생생하고, 또 정신상태가 무너져 있을 때 본능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던 모습이 선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나란 걸. 남 탓 열심히 해도 어차피 원인은 나에게도 있다. 정말 타인이 100% 잘못해서 무언가 발생한 경우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 경우가 절대다수라고 하면 그건 추한 남 탓이 될 것이다. 과연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외부에서 우리의 쓸모를 증명받고자 한다. 우리 엄마나 아빠만 해도 자기 직업에 진심인 사람이다. 심지어 아빠는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왔고 몇 박사들의 책에도 참여한 바 있다. 단순히 엄마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걸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대학생 때 보이는 학생회, 대외활동 뭐 이런 것들도 그 예시다.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회 활동과 여의도 중앙정치는 사실 (물리적으로만) 거리가 멀고, 대외활동과 같이 외부의 일은 끝이 다 정해져 있다. 해단식 하면 자주 못 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을 한다고 해서 취업문이 활짝 열리지는 않는다. 이렇게 시시하고 재미없게도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정해져 있는 결말로 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이 모든 걸 벌였고 또 넘어지며 좌절한다. 같은 행동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게 되고 비슷한 순간을 마주한다. 씨발. 왜 나는 이거밖에 안 되는 인간이지. 나의 출생만으로도 세상에게 사과할 이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잠수 타다 죽을 때가 되면 내 머리를 방망이로 쳐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근데 우리 거의 대부분은 이 미련을 잊어버린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이제 그런 필연이 중요해지지 않아 진다는 뜻이다. 왜? 그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주 못 보는 사람이더라도, 애초에 표현하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산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약하며 말이다. <중경삼림>과 <노매드 랜드>를 봤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난 항상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름다웠던 순간을 다시 돌이키는 것만큼 인생에서 즐거운 건 없다. 토익 공부를 해도, 유럽에 가도, 사고 싶었던걸 사도 항상 무언갈 상상하고 있었다. 현실은 아니었다. 어떤 선택지를 골라서 내 결과 중 아무것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난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마음 한편으론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자. 영원한 건 없다. 뭔 선택지를 골라도 나는 아팠을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받을 줄 몰랐고 하는 것도 서툴렀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영원히 혼자 사는 것이다. 그럼 외롭기만 하지 사람에게 상처 받는 일은 없어 좋을 것이다.
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이 당연한 정답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건넨다. 과연 그게 맞아?라고 말이다.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한심한 순간을 반복한다. 나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홍상수나 윤종신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우리 인생에서 이것에 공감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는 생인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갈 것인가. 우리는 실패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다. 퍼주지 말걸. 비극적인 사건에 놓인 우리를 위로하기보단 학대한다. 영화는 이런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극도로 비극적인 인물 설정? 현실적이지 않은 게 맞다. 근데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것에 공감한다. 상처 투성이에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아 사과받으면 그게 다 없던 일이 되나? 또 그 사람들이 사과를 과연 몇 번이나 했나? 또, 뮤지컬을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한 이유? 비비드한 색감? 우리에게 이 마츠코의 삶을 비극이라고 재단할 권리가 있을까? 그 때 만큼은 행복했을텐데. '왜 굳이 3자 주인공이 나왔는가'나 '뮤지컬+색감배치'의 이유는 우리의 인생을 대변한다. 우리는 원래 이 모양 이 꼴로 살 수밖에 없다. 근데 이런 영화와 현실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왜? 인간의 가치는 무얼 받느냐가 아니라 무얼 주느냐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비록 비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겹쳐 좌절하는 삶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극단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근데 어떻게 전개하나? 도 중요하다. 바로 주인공을 따로 설정해 그 인물로 하여금 마츠코의 일대기를 좇게 만든 것이다. 이럼 뭐가 되냐? 어느 정도 객관화가 된다. 극한의 비극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마츠코가 어떤 인물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너무 타인의존적인 측면도 있었던 건 맞지만 당연히 좋은 부분도 많이 볼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원인이 사랑의 결핍이더라도 괜찮다. 마음의 구멍 한 구석을 인정하게 되는 것도 다 좋으니까, 무서워서 숨지는 말자. 그게 우리가 인생을 사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병의 마수에 빠져 방황하고 나서 얻은 결론도 이와 비슷하다. 어차피 결론이 똑같다면 한 번쯤 또 한 명에게 모든 사랑을 다 가져다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 자신이 인기가 없더라도 누군가의 인생이 옳다는 증명이 된다면 그 나름대로 성공한 삶일 것이다. 난 나에게 이 말을 해준 사람의 이 문장을 이루기 위해 그 20대를 보내왔고, 한 번도 진정성이 없었던 적 없었으며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래서 난 내가 한 말에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이 혐오스럽게 느껴지더라도 한 번쯤은 필연에 부딪히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는 난제를 돌파하는 방식일 것이다. 영원한건 없다 하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 마음이 괴롭다면 병원에라도 꼭 가자. 그것이야 말로 구멍이 난 사람에게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400% 확신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모름지기 이 영화가 말해주는 바와 같이, 인간의 가치는 무얼 받느냐가 아니라 뭘 해주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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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Rabbitgumi 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는데요.
최근 마블 영화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는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마블 영화에요.
완다의 서사가 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어, 시리즈인 완다비전의 내용을 알고 가야 캐릭터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여러가지 영화에 대한 느낌을 전달 드립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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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주얼과 흥이 살아있는 모아나 2 / 전작보단 별로인듯 / 열정적인 음악과 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모아나 2"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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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상선언> 캐릭터 예고편
영화 #비상선언 캐릭터 예고편 대공개! ✈️ 사상 초유의 항공재난에 맞선 인물들의 긴박감과 절실함!? 개봉까지 무한 재생 안내 말씀?드리며 8월 3일, 극장에서 탑승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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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제약회사 '엄브렐라'가 철수한 후 폐허가 된 '라쿤시티' 어릴 적 끔찍한 사건을 겪고 고향을 떠났던 클레어가 돌아온 그날 밤, 라쿤 시티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한다. 남은 시간은 7시간, 죽음의 도시를 탈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