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1-11 20:00:57
역사의 결절을 목도하는 눈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리뷰
SYNOPSIS.
위안부, 강제노역, 원폭 피해자…
일제강점기 조선인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재일조선인 2세 다큐멘터리스트 ‘박수남’
그의 집에 쌓인 작품화되지 못한 10만 피트, 약 50시간 분량의 16mm 필름
기억의 망망대해에서 수집해낸 역사가 강렬하게 들려온다.
잊혀진 피해자들의 표정을 되살려내고 식민과 전쟁으로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아간다!
POINT.
✔ 이렇게 멋진 기록자, 선구자, 영화인, 작가...를 왜 아무도 저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죠? 이제야 박수남 감독을 알게 된 게 너무 아쉬울 만큼, 그냥 인생 자체가 너무 압도적입니다.
✔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정말 귀한 풋티지를 보실 수 있는 작품을 놓치지 마세요
✔ 소수자성과 당사자성, 기억과 기록에 대해 사유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영화는 11월 13일 수요일 개봉합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어두운 화면에서 목소리로 시작한다. 마의태자를 아느냐고 묻고, 딸의 이름도 마의태자에서 따왔다고 말한다. 영화 작업을 함께한 박마의 감독의 이름이 독특하더라니. 어떤 마음으로 딸의 이름을 마의라고 지었을까. 망국의 슬픔을 온몸으로 휘감고 사라진 왕자의 이름을. 그러나 마의태자에 관한 좋은 노래가 있다며 서정적으로 부르는 목소리는, 망국의 슬픔으로 이야기가 끝나게 두지 않는다. 마의태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싸매는 다정한 노랫말. 딸의 이름과 그 유래에 맺힌 노랫말. 슬픔의 자리와 그 자리를 혼자 두지 않는 마음. 박수남 감독의 인생처럼 느껴지는 오프닝 시퀀스다.
옛 사진 몇 장 위로 스쳐가는 몇 문장의 증언만으로도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보통 사람이 아님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이 예감은 148분 동안 스크린 위에서 겹겹이 펼쳐지고 풀어진다. 수많은 테스트 영상들, 수많은 인터뷰들, 방에 있었던 50시간 분량의 필름 중 10시간 분량을 풀어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10시간 분량 안에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에 관한 기록유산으로 지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 귀한 풋티지들 사이사이, 하나하나 기함할 사건들 사이사이, 박수남이라는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역사의 결절을 목격하고 지적하는 눈
잘나가는 고깃집 사장님으로 살면서 글을 쓰던 박수남 감독은 가게를 팔고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로 수많은 곳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을 기록한다. 펜으로 담기에는 언어의 한계가 있었다던, 때로는 언어 바깥에서 더 선명하게 전해지던 떨림과 침묵을 담기 위해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박마의 감독과 대화하는 장면은 다분히 인상적이다. 젊은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쉽게 설명해 주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는 박마의 감독의 말 앞에, 박수남 감독은 단호하게 말한다. 알기 쉽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고. 두 사람의 대화는 이내 '카메라 앞'을 두고 더욱 단호해진다. 박수남 감독은 한 치의 타협도 먹히지 않을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카메라, 내가 영화라고.
오랜 세월 그가 들어온 목소리들은 마치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엔딩에서 울려퍼지던 목소리처럼 그를 감싸고, 그는 이제 영화로 현현한다. 1인칭으로서의 카메라, 체화된 카메라. 키노 아이 그 이상의 카메라. 그는 기계적인 카메라의 정확성보다, 발군의 기억력과 소상한 기록의 힘으로 카메라를 역사의 경지에 끌어 올린다. 개인이 겪은 모욕과 수난의 증언들은 모여서 역사가 된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기록한 것들을 결국 거칠게 요약하면 일본 제국주의의 낯이다. 수탈하고 강제 연행할 때는 '내선일체'지만, 폭력과 피폭의 뒷수습을 할 때는 철저히 남, 아니 투명한 비존재 취급을 하는.
관동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박수남이라는 사람은 작가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차차 기록자로 나아간다. 마침내 이 영화에 이르러서서는, '이 정도면 기록 계의 무형 문화재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하는 관객이 생겨난다. 소수자로서 또 당사자로서 예리하게 포착한 감각들이 켜켜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
역사의 결절을 목격하고 지적하는 사람, 스스로가 뚜렷한 사람. 사유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교실로 만들고, 그 교실에서 만난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 이 영화에서 내가 배운 건 다음과 같다.
ㅁ 기억도 기록도 힘이 세다
가끔은 이 말 자체가 구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현실 정치와 모략이 판치는 세상에서 기억이 과연 얼마나 힘이 셀 수 있을까. 힘이 셌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구호처럼 맺힌 문장은 아닌가. 그러나 평생 동안 삶으로 기억하고 기록한 사람을 보니 이는 허망한 구호가 아니다. 실제 그의 기록 중에는 역사 교과서의 몇 줄 행방을 가르는 주효한 대목도 있었다. 목격한 일을 전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는 말 앞에서, 기억과 기록은 단순히 내 주장을 뒷받침하고 내 목소리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참으로 인간 되기 위함임을 통감한다. 그러면 결국 생각이 다른 서로를 가르는 선은 딱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가?
ㅁ 피의 대립, 국적의 대립이 아닌 역사의 대립이다
그렇기에 이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 대립도 아니고, 어떤 피를 타고났는가에 따라 답이 갈리는 문제도 아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 사이, 역사를 무엇이라 기록하고 싶어하는가의 차이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했던 역사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람과, 차마 그럴 수 없는 사람의 차이이다. 박수남 감독은 철저히 후자다. 눈물로 바다가 되도록 울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말로 못 다하는 말까지 다 담을 수 있다고 위로하는 사람.
ㅁ 인류애는 한 걸음부터
박수남 감독은 당시 소년이었던 고마쓰가와 사건의 이진우에게 편지를 쓰며 민족의 정체성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민족의 정체성은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전혀 다르다. 손을 떼라는 "상부"의 금지령을 듣지 않고, 반국가적 인물이 되기를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자신으로 살려면 어디에 살아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이므로, 민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의 정체성을 가르친 끝에 소년 이진우가 발견한 것은 인류애다. 잘못되었으면 어쩌지, 하고 옆 사람을 걱정하기 시작할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범죄가 왜 잘못되었는지 받아들이게 된다.
ㅁ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영화에 짧게 지나가지만, 지금도 원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이 있다. 피폭 다시 히로시마에 재일 조선인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인터뷰하는 한 장애인 남성은, 감독과 자신이 차별 받는 존재라는 공통점으로 서로 공감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 대목은 짧게 지나감에도 내게 너무나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서로 손을 맞잡는 방법은 그뿐이지 않을까? 뿌리는 다양성에서 찾아야 한다. 한 사람은 한 가지 정체성만 갖고 살지 않으므로, 어딘가에서는 다수파의 안온한 자리에 서지만 또 어딘가에서는 소수자의 자리에 선다. 이러한 소수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건 다양성이다. 그걸 토대로 우리는 좀더 쉽게 타인의 자리를 가늠해 보고,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이 영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묻는 영화였다. 가끔 이렇게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지는 영화가 있다. 이런 영화를 적시에 조우하는 기쁨이 있다. 이런 영화들이 등불처럼 비추어 주는 길이라면, 걸어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이 영화의 엔딩 신은 내가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의 엔딩 신 중 가장 산뜻하고 말끔했다. 이렇게 마음을 놓게 해주는 엔딩이라니. 박수남 감독은 병으로 점차 시력을 상실해 가고 있지만, 투쟁의 도구이자 기계적 정확도를 가진 '키노 아이'를 넘어서는 눈을 우리에게 빛낸다. 발군의 기억력과 끈덕진 마음으로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이 더 큰 감각을 가져온다. 50시간 분량의 필름 중 10시간 분량을 이렇게 풀어냈으니, 남은 40시간 분량의 필름 또한 언젠가 또 볼 날을 기대한다.
**혹시 저처럼 지금부터 박수남 감독님의 작품과 궤적을 따라가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둡니다.
[박수남 감독 작품]
▶ <침묵>, 2017 (퍼플레이로 보러 가기 / 편당 결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이옥선 씨가 전후 50년, 긴 침묵을 깨고 14명의 동료들과 함께 일본 정부에 사죄와 개인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 과정을 동행하며 담은 기록입니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작품 중 굉장히 시각이 독특한 작품이라며 꼭 추천한다고 하셨어요.
▶ 또 하나의 히로시마 + 아리랑의 노래 /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방문 관람 가능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이 터졌을 때, 당연히 그곳에는 조선인도 있었습니다. 강제 연행과 피폭으로 이어진 피해는 컸지만, 전후 보상 대상에서 이들은 빠졌습니다. 이들을 기록한 이 작품은, 일본이 내세우던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슬로건(?)에 균열을 내고, 현실에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 큰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 누치가후: 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 /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방문 관람 가능
*한국어 자막 없음 (영, 일)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 3월, 미군의 상륙 공격이 임박해오자, 오키나와에서는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굴 등의 은신처에서 일본인에게 받은 수류탄을 터뜨려 자결하거나 서로 목 졸라 살해하는 참극... 생존자들은 일본군의 명령과 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역사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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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내어준 길.
아바타: 물의 길
아바타가 13년 만에 새로운 후속작이 찾아왔다. 전편보다 더욱 뛰어난 영상미로 다시 돌아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만큼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자기 자신이 처하지 않은 정반대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의 이야기는 '숲'에서 '바다'로 옮겨간다. 이 시대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은 12월 14일 개봉했다.
정착과 침략.
2편에서는 판도라에 정착하여 나비족의 토루크 막토가 된 제이크 설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정착하여 나이티리와 가정을 형성하게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판도라를 차지하기 위해 찾아온 인간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동안 정착해왔던 곳을 떠나 또 다른 곳을 찾아 물의 부족인 멧케이나 족을 만나게 된다. 삶의 방식과 문화가 모두 다른 그곳에서 정착하는 것도 잠시 새로운 이들에 의해 철저히 '방해'된다. 하늘 사람들의 침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발견이 아닌 침략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착을 방해하는 침략을 막을 수 있을까.
3D 체험기.
2009년 1편 개봉 당시, 3D로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이번만큼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 3D로 관람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3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위해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관람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입체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CG가 아니라 직접 찍은 것 같은 현장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3D 안경 자체의 어두움 때문인지 화면 색감을 그대로 볼 수 없어서 아쉬웠고 약간의 멀미가 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안경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이 거대한 세계관을 둘러싸듯 본연의 조화가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는 이 진부함이 아쉽게 느껴지지만 내면에서 차오르는 분노에 조금씩 스며드는 따뜻함이 자리 잡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정착한 이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속편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뛰어난 영상미를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기대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더욱 거세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현실이다. 나의 본질과 내가 서있는 곳을 돌아볼 수 있었던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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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가족의 울타리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혈연관계가 만들어진다. 부모와 형제들과 맺은 관계는 살아가는 모든 시간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 전통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일은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어떤 사람들은 혈연, 자기 핏줄이라는 것에 굉장히 집착하기도 했다. 이런 혈연관계 아래에서는 각자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을 나눠서 하기도 하면서 각자는 가족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또 챙기면서 끈끈한 관계를 맺으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왔던 사람들은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떨어져 살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에 대한 의무감도 자연스럽게 약해졌다. 최근에는 1인 가구나 비혼 인구도 늘어나면서 더욱더 그 가족의 단위는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끼리 한 집에 산다거나 어떤 감정적 교류를 하면서 살아가는 가족 아닌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로 대안 가족 또는 유사 가족이라고 부르는 집단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함께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유사가족이 되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영화 <브로커>는 주인공들이 일종의 유사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과거 혈연관계가 시작되는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은 한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아이는 서서히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 <브로커>에서는 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가족의 울타리에 들어갈 기회를 박탈당해버린다. 아이 우성의 엄마인 소영(아이유)은 한 성당의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내려놓고 돌아선다. 그리고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그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들은 아이를 돈 받고 파는 일종의 브로커다. 이 첫 장면이 지나가는 시점에 주요 등장인물들은 가족의 울타리를 깨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 같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파는 브로커인 상현과 동수는 그렇게 나쁘지 않게 보인다. 그들은 아이를 구매할 구매자를 찾는데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이상해 보이는 구매자는 걸러낸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양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아이 우성의 엄마 소영은 상현과 동수가 브로커임을 알게 된 이후 아이의 판매에 동참한다. 그렇게 더 까다롭게 아이를 키울 부모를 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아이의 울타리를 깨는 사람에서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주려는 사람들로 서서히 바뀌어나간다.
아이를 버린 엄마 소영은 미혼모다. 그만의 사정이 있고, 아이에 대한 애정도 그렇게 많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꽤 반항기 있는 말투와 센 화장이 그가 살아온 태도를 보여준다. 반면 상현은 이혼남이다. 도박으로 인해 가족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고, 그 관계도 좋지 않다. 그리고 동수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 맡겨져 자라온 인물이다.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인물이다. 이 세 인물은 삶에 어딘가 결핍이 있다. 그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있고, 이후에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삐뚤어진 삶을 살게 되온 건지도 모르겠다. 이 세 인물 모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전혀 없거나 깨져버린 인물이다.
관계가 깨진 인물들이 아이를 위해 다시 만들어가는 가족의 울타리
이렇게 자신의 삶이 깨진 채 살아가고 있는 세 인물이 우성이라는 한 아이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이고, 그 아이를 좋은 부모에게 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세 인물이 이루지 못한 삶의 어떤 부분을 채워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들은 아이의 삶이 자신들처럼 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브로커 일을 꽤 오래 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상현이 큰 생각 없이 아이를 넘길 것만 같지만 그마저도 마지막에는 마음을 돌린다. 그리고 아이 우성의 부모를 택하는 과정 속에서 엄마 소영의 마음도 서서히 풀려간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른 채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어나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영과 상현, 동수는 아이와 밀접한 위치에서 부모를 찾으려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외부인의 시선이 등장한다. 바로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버려진 아이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상현과 동수를 수사해 왔다. 그들은 상현의 집 근처에 잠복하며 아이가 거래되는 순간을 이용해 상현과 동수를 잡으려고 하는 인물들이다. 특히나 수진은 외부에서 이들의 대화를 도청하거나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브로커 역할을 하는 이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들의 다른 모습을 본 이후에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수진의 역할은 외부자의 시선일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역할도 한다. ‘낙태와 살인 중 무엇이 더 나쁜가’ 나 ‘낙태와 아이를 버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쁜가’ 같은 복잡 미묘한 사회적 문제들을 소영과 수진의 대화를 통해서 던지고 있다. 조금은 기능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주지만 수진이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소영, 상현, 동수 세 인물의 동선에 수진의 동선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다. 그렇게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도 하나로 연결되어 합쳐진다.
영화는 모든 인물이 결국 연결되고 가족처럼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겼다. 특히나 이야기 중 어떤 인물이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반복해서 내뱉는 말은 꽤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그런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고 꼭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의지하는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엄마나 아빠 역할을 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성별에 상관없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제는 정해져 있는 성역할도 없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든 가족 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시선이 영화 <브로커>에 담겨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영화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영화다. 먼저 브로커 상현 역할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그동안 보여줬던 송강호만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무심하지만 속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결국 모두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인물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그는 이번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는데, 지금까지 모든 송강호의 연기가 녹아있는 이번 연기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엄마 소영 역을 맡은 배우 아이유는 과거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인 지안과 비슷한 연기를 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범죄를 저지르고 아픔을 숨긴 채 날카롭게 반응하는 캐릭터이지만 조금씩 따뜻함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센 반응을 보이는 인물인 소영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수 역할을 맡은 배우 강동원도 그가 상처를 숨기고 부드러움을 보이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그동안 보여줬던 로맨스 캐릭터 연기를 이번에 같이 보여주면서 관객의 웃음을 부른다. 그리고 형사 수진 역을 맡은 배우 배두나도 그가 잘 보여주는 조금 딱딱해 보이고 감정이 없는 것 같지만 조금 다른 따뜻한 선택을 하는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캐릭터를 맡았다는 점에서 그의 비중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꽤 중요한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에서 비슷한 유사 가족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온 경험이 있다. 그는 소외된 계층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감독인데, 이번 <브로커>에서도 미혼모, 낙태, 고아, 아이 브로커 등의 문제를 한 영화에 녹아내 화두를 던지고 있다. 기존에 그가 일본에서 만들었던 영화들에 비해 너무 부드럽고 얕게만 문제를 다루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감독이 한국 배우들을 이용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던지고 있고, 각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연기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꽤 안정적인 영화를 완성해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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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브로커>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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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이었던 내가 마블에 발을 들여놓다
마블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마블에 빠지게 만들어준 영화 <블랙위도우>. 캐릭터의 반이 죽어서야 마블에 입성한 사람으로써 눈물을 머금고 주행 중이다. 마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가 그 화려함에 반했고, 캐릭터에 반했던 작품이었다.
영화 <블랙위도우> 시놉시스"모든 것을 바꾼 그녀의 선택” 어벤져스의 운명을 바꾼 블랙 위도우, 그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벤져스의 히어로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레드룸의 거대한 음모와 실체를 깨닫게 된다.
상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태스크마스터와 새로운 위도우들의 위협에 맞서 목숨을 건 반격을 시작하는 나타샤는 스파이로 활약했던 자신의 과거 뿐 아니라, 어벤져스가 되기 전 함께했던 동료들을 마주해야만 한다.
폭발하는 리얼 액션 카타르시스! MCU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첫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끽하라!*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블랙위도우>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마블 입문용으로 괜찮은 작품이지 않을까?
마블 영화에 문외한인 사람으로서 이제까지 본 유일한 마블 영화는 <닥터스트레인지>였다. 베네딕트 컴버비치를 보기 위해서, 그가 나온 작품이 마블이었기에 본 것일 뿐이었다. 마블 영화에서 등장인물도 존재만 알고 도대체 그들이 뭘하고 돌아다니며 이 세계관이 어떠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웅장한 bgm만 알았달까? 한마디로 말하면 천연기념물이었다. 안본눈, 안본뇌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영화 <블랙위도우>를 다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마블 영화를 보고 싶다! 였다. 블랙위도우라는 캐릭터가 멋지게 다가왔고, 마지막 장면에서 한 가족을 지켰고, 다른 가족을 이제 구하러 가야된다고 말하며 끝이 난다. 그 다른 가족이 어벤저스를 말하고 있어서 그 시리즈를 안 본 나로써는 어벤저스와의 관계성을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영화 <블랙위도우>는 천연기념물과 같은 마블 입문자들에게 블랙위도우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면서 다른 마블 캐릭터들에 대한 호기심과 그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신 짱이야!
개인적으로 영화 <블랙위도우>의 액션신은 굉장히 좋았다. 다른 분들은 블랙위도우의 액션신들이 기존 마블 캐릭터들의 작품보다 그 화려함이 덜했다고들 하시는데 뭐,,, 나는 비교 대상이 없으니,, 상관없다. 근데 보지 않았지만 초능력이 없는 블랙위도우의 액션, 이 정도면 굉장히 화려한 것이 아닌가 싶긴 하다.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거의 육탄전을 중심으로 액션신이 진행돼서 막 뭐 빔쏘고 천둥 내리치고 주먹 날라가고 그런것보다 정말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싸우는 블랙위도우의 액션신이 큰 타격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솔직히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서 그 강도가 떨어질 뿐이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나. 빌딩에서 떨어지고 차에서 구르고, 그래도 살아나는 끈질긴 나타샤의 생명력!!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걷고 싶어서 합정에서 홍대까지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가 발목이 나갔는데,,, 나타샤는 너무 강철이었다. 오토바이와 타체이싱, 그리고 위도우들끼리의 액션신까지 보는 내가 다 스트레스가 풀리고 왜 액션신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다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올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솔직히 마음이 아프다. 이제야 마블에 입성햇는데 그리고 블랙위도우로 마블에 입성했기 때문에 최애 캐릭터인데!! 죽었다니!! 그럼 이제 스칼렉 요한슨의 나타샤는 못보는 것인가..? 블랙위도우 2,3, 안나옵니까아!! 나왔으면 좋겠다.
이러한 나타샤 팬들의 질척거림을 예상했는지 스칼렛 요한슨은 이 작품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향하는 작품이라 설명했다. 처음에는 왜!! 죽었자나!! 나는 나타샤 못보잖아!! 이랬다가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면 영화 <블랙위도우>는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그 중간다리의 역할을 굉장히 잘해준 작품이었다.
시기적으로 시빌워와 인피니티워 사이의 시기로 이미 앤드게임까지 나온 현재의 시점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고 나타샤의 과거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새롭게 블랙위도우를 이을 옐레나를 등장시키면서 앞으로 마블의 주역으로 세계관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캐릭터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지만 미래의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를 잘 맞춰주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블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게 마블의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준 매력적인 작품 <블랙위도우>. 안 나올거 알지만 그래도 시즌2, 3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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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로운 캐릭터와 게임 원작이 함께 빛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때는 명예로운 비밀결사 '하퍼'의 일원이었지만, 하퍼의 맹세를 깬 후 아내를 잃고 딸 '키라'(클로이 콜먼)를 책임져야 할 홀아비가 된 '에드긴'(크리스 파인). 그는 ‘홀가(미셸 로드리게스),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포지’(휴 그랜트)와 함께 도적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포지의 친구 ‘소피나’(데이지 헤드)는 에드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부활의 서판’을 훔치자는 것. 아내를 다시 만날 생각에 들뜬 에드긴은 동료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그러나 모험은 실패하고, 그는 홀가와 함께 감옥에 갇힌다. 시간이 흘러 탈옥에 성공한 에드긴과 홀가는 부활의 서판을 되찾기 위한 팀을 다시 꾸린다. 옛 동료인 마법사 사이먼, 변신의 귀재 드루이드 '도릭’(소피아 릴리스), 언제나 진지한 팔라딘 '젠크’(레게 장 페이지)까지. 제각기 아픔을 지닌 이들은 한 팀이 되어 지상과 지하, 삶과 죽음을 넘다 드는 모험에 나선다
<D&D>, 할리우드 판타지 영화의 명맥을 잇다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는 판타지 영화의 세상이었다.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등이 쏟아져 나오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빛이 비치는 곳에는 그림자도 있는 법. 2010년대 이후 히어로 영화에 밀려난 판타지 영화의 기세는 예전 같지 않다. <호빗> 시리즈가 체면치레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후발주자는 좀처럼 기를 피지 못했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역시 해리 포터 팬들에게 실망만 안긴 채 마무리됐다. 그나마 HBO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 넷플릭스 <위쳐>처럼 드라마 쪽에서 흥행작을 배출하는 중이다.
끊긴 듯 보이는 할리우드 판타지 영화의 명맥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한 영화가 있다. 바로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이하 <D&D>)다. 디오라마 게임판 위에서 장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테이블톱 롤플레잉 게임(TRPG, Table-top Role Playing Game)인 '던전 앤 드래곤'을 영상화한 이 작품은 게임 시리즈 속 유명 세계관인 '포가튼 렐름'을 무대로 삼은 판타지 활극이다. 사실 외관만 놓고 보면 <D&D>는 진부하다. 기사와 마법사 등장하고, 드래곤과 괴물들, 난쟁이 등이 판치는 세상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그러나 <D&D>는 대중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 다른 판타지 영화들과는 달리 관객의 눈길을 계속해서 붙잡아 두는 마력을 갖고 있다. 마치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를 보는 듯한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합이 그 정체다.
<D&D>, 중세 판타지 버전 <가오갤>?
<D&D>에는 캐릭터가 많다. 빌런을 제외한 주연 캐릭터만 해도 다섯 명이나 된다. 캐릭터가 많다 보면 영화는 자칫 균형을 잃기 십상이다. 캐릭터 비중의 균형은 무너지고, 서사는 꼬인다. <D&D>는 다르다. 원작이 롤 플레잉 게임이라는 점을 살려 한 명 한 명에게 명확한 역할과 특성을 맡긴다. 캐릭터가 복잡하지 않으니 영화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원작 게임의 설정에 집착하지 않기에 더 효과적이다. 하퍼를 착한 비밀결사, 레드 위저드를 악의 온상으로 간단하게 묘사하는 식으로 간단히 알려주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또 캐릭터 간의 극명한 차이점은 예상치 못한 유머 포인트다. 그 덕분에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중세 영웅담은 유쾌한 활극으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D&D>의 캐릭터는 사실 낯설지 않다. 각 인물의 특성이 <가오갤>의 주인공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이라 할 수 있는 에드긴은 시종일관 류트를 든 채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십분 활용해 동료들을 이끌어 나간다. 이 대목은 음악 빼면 시체인 스타로드, 피터 퀼을 연상시킨다. 홀가는 검, 도끼, 쇠사슬 등 웬만한 무기를 모두 다 다루는 전사다. 시니컬한 성격 덕분에 에드긴과 재밌는 콤비도 이룬다. 가모라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마법사 사이먼은 로켓을 닮았다. 스타로드와 투닥거리면서도 필요한 장비를 뚝딱 만들어내는 로켓처럼, 사이먼은 에드긴과 시종일관 갈등을 빚으면서도 마법 아이템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어떤 동물로도 변할 수 있는 드루이드 도릭은 온몸을 변형해 동료들을 지원하는 그루트처럼 활약한다. 마지막으로 매사에 진지해 유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팔라딘(성기사) 젠크는 힘은 강하지만 사고방식이 독특해 대화가 힘든 드랙스를 재해석한 결과처럼 보인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캐릭터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는 과정도 <가오갤>과 비슷하다. <D&D>는 의지할 가족을 잃은 이들이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래 질서의 수호자인 비밀결사 하퍼 중 하나였던 에드긴은 하퍼의 맹세를 저버린 결과 아내를 잃고 도적이 된 도망자다. 홀가는 다른 종족인 남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본인 종족에서 쫓겨나고, 결국 남편과 이혼한 외부자다. 사이먼은 최고의 마법사인 '엘민스터'의 후손이지만, 선조의 명성을 조금도 쫓아가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는 실패자다. 드루이드인 도릭은 오래전 악마의 피가 섞인 혈통이라는 이유로 인간 세계에서 배척된 소수자다. 젠크는 악의 무리인 '레드 위저드'의 사상과 지향을 거부해서 쫓겨난 추방자다. 이들은 모험을 통해 애정을 싹 틔우고,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난다. 그래서 <D&D>는 유쾌하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은 활극이다. 은은하게 감동적이다. 사이좋게 체포되고 도망 다니던 은하계의 사고뭉치들이 한 팀이자 가족이 된 <가오갤>처럼.
원작의 힘을 빌려 차별화에 성공하다
<가오갤>의 중세 판타지 버전 같아 보이는 <D&D>. 그러나 <D&D>를 그저 <가오갤>의 아류로 취급할 수는 없다. 원작 게임의 요소들을 적절히 녹여내면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에드긴과 홀가는 새 팀원을 모으기 위해 이곳저곳을 여행하는데, 영화는 그 과정에서 복잡한 설명 없이도 넓은 세계관의 장소나 역사, 종족들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킨다. 도릭이 팀에 합류하는 과정을 통해 '우드엘프'라는 종족을 소개하고, 그들과 인간의 악연을 설명한다. 또 젠크를 영입하면서 악당인 소피나와 레드 위저드의 과거사 및 목적을 알려주기도 한다. 원작에 등장하는 각종 아이템을 스토리텔링에 결부한 지점도 흥미롭다. 작중 주인공들은 모험 중에 자기 상처를 직시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트라우마를 떨쳐내면서 개인적으로 성숙해지고, 팀으로서도 단단해진다. 이때 영화는 분기점마다 아이템을 하나씩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개한다.
사이먼이 '분리의 투구'를 사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는 투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고고조 할아버지인 엘민스터의 환상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데 성공한다. 공간을 초월하는 통로를 뚫어주며 모험 내내 활약하는 '여기저기 스태프'의 등장도 비슷하다. 전 남편을 다시 만난 후 마음에 상처를 입고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기로 결심한 홀가. 그녀는 과거 전 남편에게 선물했던 지팡이를 다시 챙겨 나온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알고 보니 '여기저기 스태프'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부활의 서판'도 마찬가지다. 모험이 시작될 때 이 마법 도구는 에드긴이 하퍼로서의 맹세를 깬 업보로 잃은 아내를 되살려 낼 수단이었다. 그러나 모험이 끝날 때, 이 서판은 그의 아내를 살려내지 못한다. 대신 에드긴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다섯 주인공이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지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제목에 걸맞은 액션과 볼거리도 게임의 매력을 스크린 위로 적절히 불러온다. 주인공들은 '언더 다크'라는 지하 세계에 내려가 던전에 사는 드래곤을 만나고,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이 추격전은 마치 관객이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반적인 드래곤이 아니라 비만 체형을 자랑하는 드래곤이 등장하다 보니 신선한 재미도 있다. 또 후반부에는 하이썬 경기라는 일종의 미궁 탈출 게임에서 촉수 달린 흑표범 같은 괴물이나, 사람을 녹이는 슬라임 괴물처럼 원작 게임에서 모습을 비춘 바 있는 생명체를 등장시켜 긴장감을 더한다. 각 캐릭터의 능력을 고루 활용한 클라이맥스도 인상적이다. 비록 액션의 스케일이 크다고 할 수는 없어도,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내 극복하지 못한 한계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빌런의 활용법이 발목을 잡는다. 소피나가 지나치게 일차원적으로 소비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피나는 주인공 일행 모두를 패퇴시킬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다. 에드긴을 배신하도록 포지를 부추기고, 포지마저 자기 계획을 위한 꼭두각시로 이용할 정도로 교활한 면모도 있다. 에드긴을 붙잡기 위해 그의 딸로 위장해 덫을 놓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능력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소피나는 영화의 최종 빌런에 걸맞은 위압감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다음 시리즈를 위한 발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레드 위저드의 교주라고 할 수 있는 '스자스 탐'(이언 핸모어)을 소개하고, 악의 근원인 그가 어떻게 세력을 키우려 하는지 알려주는 도구다. 그래서 소피나가 주인공들을 위기로 몰아넣으면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꺾어야만 하는, 또 꺾을 수 있는 전형적인 악역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암시된 까닭이다.
'괜히 휴 그랜트를 캐스팅한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악역, 포지가 있어서 아쉬움은 더 크다. 스테레오 타입인 소피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부활의 서판을 얻으려는 모험이 실패로 귀결되자, 포지가 자기를 속인 줄 모르는 에드긴은 그에게 서판과 딸을 부탁한다. 감옥에서 탈옥한 후, 에드긴은 맡겨둔 서판도 되찾고 딸과 재회하기 위해 포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보물도, 딸도 되찾지 못한다. 포지가 키라를 가스라이팅하고, 그녀의 애정을 악용해 부녀의 재회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포지는 옛 동료인 에드긴을 붙잡아 포상금까지 챙기려 한다. 이처럼 포지는 동료애도, 가족애도, 부성애도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한 가족처럼 끈끈해지는 에드긴 일행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그들과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셈이다. 이는 별다른 능력을 지니지 못한 사기꾼 포지가 소피나를 제치고 진짜 악역의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이유다.
축구에는 육각형 스트라이커라는 표현이 있다. 결정력, 몸싸움, 연계 능력, 스피드, 시야, 패스, 슈팅 등 공격수가 가져야 할 모든 능력치를 고르게 가진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숨겨진 진의가 있다. 육각형이 큰 선수에게는 완벽한 공격수라는 칭찬이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에게는 무색무취하다는 비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등장한 판타지 영화 <D&D>는 다행히도 전자에 가깝다. 익숙하지만 정감 가는 캐릭터의 향연, 원작을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액션, 원작을 알면 더 반가울 볼거리, 예상외의 진지함이 묻어져 나오는 스토리까지. 모두가 만족할 둥글둥글한 매력이 넘친다. 루키가 기대 이상의 데뷔전을 치른 이상, 이제 중요한 건 그의 다음 발걸음이다. 과연 육각형을 더 키울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속편을 기다려본다.
A(Acceptable, 무난함)
캐릭터의 합을 내세워 우직하게 나아가는 반가운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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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10 = 사랑’, 누가 뭐래도 사랑!
‘75+10= 85’가 아니다. 사랑이다. 누가 뭐래도 사랑! T는 도저히 이해 못 하는 이 답의 도출 과정을 보여주듯 <달짝지근해: 7510>는 MBTI는 물론, 성향도 성격도 다른 치호(75)와 일영(10)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10~20대의 달콤한 사랑은 아니지만, 이에 못지않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달짝~지근한 40대의 사랑은 가슴을 요동치기에 충분하다.
신은 그에게 외모와 친화력 대신, 미각을 줬다. 절대 미각으로 두부 과자를 만들어 회사 성장에 큰 공을 세운 치호(유해진). 그는 오로지 집, 회사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가 좋아하는 건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와 과자,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형 석호(차인표)다. 도박에 빠져 살며 매번 돈만 가져가는 못난 형이지만, 치호에겐 소중한 가족. 그러던 어느 날, 석호는 캐피털에서 일하는 미혼모 일영(김희선)의 대출 상환 요청 전화를 받고, 치호에게 이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형의 빚을 갚기 위해 캐피털을 찾은 치호는 우연한 사고로 일영과 연을 맺게 되고,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달짝지근해: 7510>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남과 다른 성향과 과거를 지닌 이들을 사려 깊게 바라보고 응원하는 작품이다. 굳이 나누자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보단 <펀치 드렁큰 러브>에 가깝다. 서로 다른 성향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이루는 과정은 같지만, 사회에 잘 융화되기 어려운 이들(치호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일영은 미혼모라는 점)이 만나 서로의 빈 곳을 메우고, 사랑하고, 힘이 되어주는 부분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펀치 드렁큰 러브>의 베리(아담 샌들러), 레나(에밀리 왓슨)의 러브 스토리와 닮았다.
영화의 전반부는 두 캐릭터의 상반된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충분히 할애한다.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사랑하는 로코 공식은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이들이 얼마나 사회적 편견과 시선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치호는 그냥 쳐다봄에도, 째려보고 꼬나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일영은 미혼모라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지만, 치호와 반대로 미소와 해탈 어법으로 대응한다. 마치 예전부터 받았던 편견에 생긴 마음의 굳은살을 매만지며 말이다.
이런 사회적 편견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치호와 일영은 서로의 공통점을 차차 알아가고, 각자의 빈 곳을 메워준다. 치호는 일영에게 장롱면허 탈출을 도와주고, 일영은 치호에게 건강을 위한 집밥을 제공한다.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더 가까워지는 이들은 뒤늦게 사랑의 감정에 빠진다.
영화는 뻔한 사랑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의 사랑 방법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틈만 나면 아재 개그를 날리고, 밥 먹다가 방귀를 뀌는 등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이 이어지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서로를 배려, 이해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누가 뭐라든 이들 애정행각의 주체는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석호의 반대와 일영의 대학생 딸에 관련된 이슈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끊을 수가 없고, 한 번 나눈 마음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게 인지상정. 사랑에 서툴지만 서로를 기다리고 배려하며 그 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별나 보이지만 아름답고, 풋풋해 보이지만 성숙한 이 로맨스가 관객들의 마음을 이끄는 건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한(연출, 각색), 이병헌(각본) 감독의 시선에 기인한다. 두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다르지만, 이들은 영화를 통해 모두 사회 울타리 안 보다 밖에 있는 이들에게 주목하고, 응원과 희망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치호와 일영처럼 서로 다르지만 숨겨진 공통점을 알고 손잡은 두 감독의 사려 깊은 시선은 영화에 잘 녹아 흐른다.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유해진과 김희선은 그 자체로 치호와 일영이 되어 우연히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으로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특히 유해진은 치호가 가진 순수한 소년의 이미지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김희선은 드라마 <토마토> 등 1990년대 보여줬던 캔디형 캐릭터를 바탕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등 각각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차인표, 한선화, 진선규는 물론, 정우성, 염혜란, 임시완, 고아성 등 카메오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보는 맛을 더한다.
숏츠가 주류인 시대, 도파민 중독 시대에 <달짝지근해: 7510>은 긴 시간 우려내야 하는 사골국 같은 영화처럼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로코이고 이는 단점으로 보이기 쉽지만, 남을 향한 이해와 배려가 상실된 각박한 세상 속에서 영화는 오히려 빛을 낸다.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한 감동의 수프처럼, 치호와 일영의 사랑은 감동과 위로를 동시에 전한다. ‘75+10= 85’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공식도 함께~사진제공: 마인드마크
평점: 3.5 / 5.0
한줄평: 별나 보이지만 아름답고, 풋풋해 보이지만 성숙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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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주년이 지난 둘리는 과연 진짜 어른이 된 걸까?
시놉시스
둘리는 1억 년 전에 부모님을 잃고 빙하 속에 갇혀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남극의 펭귄 무리가 실수로 건드려서 둘리가 있는 빙하가 서울로 가게 된다. 빙하가 서울에서 발견되었다는 특보로 인해 사람들은 빙하를 캐가기 시작하고 남겨진 건 뿌리만 남은 빙하와 둘리였다.
한창 여름철에 영희와 철수는 청계천에 버려진 공룡 인형(둘리)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아빠인 고길동의 반대로 둘리는 쫓겨나려고 하는데...
과연 둘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둘리를 만나면서 고길동은 더 불행해졌다. 둘리가 평범한 동물이 아닌 초능력을 가진 아기공룡이여서이다. 고길동은 단지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고 한 것뿐인데 둘리가 나타나 망쳐버린다.
이 둘과의 신경전은 계속되는데 정말 고길동이 안타까우면서 둘리가 미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귀여운 공룡인 둘리의 행보를 보며 코믹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둘리의 주변 등장인물들도 매력이 있었는데 서커스단에서 온 또치와 밤하늘에서 별똥별로 떨어져 오게 된 도우너 그리고 언젠가 슈퍼스타가 되길 바라며 기타 연주를 열심히 하는 마이콜까지 전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었다.
도우너가 가진 타임 코스모스로 시간 여행을 해서 어린 고길동을 만나 혼내주려는 장면과 우주로 나가게 되면서 바요크라는 우주 해적단에게 쫓기는 이들의 사투를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잠시 스포일러를 말하자면 얼음별이라는 설정이 영혼들만이 가는 사후세계인데 그곳에는 죽은 둘리의 색시와 엄마가 있었다. 바요크 우주 해적단이 얼음별을 차지하면서 영혼들을 노예로 부리는데 이들을 풀어줄 인물이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바로 그건
우주를 구하는 건 고길동이었다. 이 예언을 우주 가시고기가 말하면서 마지막에 소드 마스터 고길동이 세상을 구한다. 결국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아기공룡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시사회를 보면서 40주년을 맞은 둘리의 모습에 너무 감동받았다.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이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세로 지금의 10대들은 많이 모를 것이다.
그래도 둘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뻤고 좋았다!
둘리는 과연 어른이 된 것일까?
하니엘의 그것이 알고 싶다 <둘리 얼음별 대모험 편>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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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를 품은 배트맨, 새로운 고민을 가지고 돌아오다!
맷리브스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을 맡은 새로운 배트맨이 돌아왔습니다.
다크나이트 시리즈 이후 배트맨 솔로 영화는 오랜만인데요.
배트맨 솔로영화 답게 무척 어둡고 혼란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브루스 웨인, 배트맨의 고민을 잘 느낄 수 있죠.
분위기와 어울리는 영화 음악과 빌런 리들러의 존재가 배트맨의 생각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줍니다.
다크나이트 이후 무척 만족스러운 배트맨 솔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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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9? ?영화 제공이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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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허슬> 공식 예고편
운이 다한 농구 스카우터(애덤 샌들러).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실력을 가진 선수를 외국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결국 그는 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 천재 선수를 미국에 무작정 데려가는데. 두 사람은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NBA의 승리를 거머쥐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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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예 12년> 오스카 예고편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미국 내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州)로 팔아 넘기는 것.
음악가 '솔로몬 노섭', 노예 '플랫'!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실화!
1841년 뉴욕.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에게 노예 신분과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12년의 시간 동안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나게 되는데…
단 한 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12년 간의 기록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