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11-14 15:11:20
청설 | 공감과 청량으로 빚은 계절감 충만 로맨스
<청설>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장은 손에 쥐었지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부모님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용준’(홍경). 어느 날, 그는 배달 중 들린 수영장에서 완벽한 이상형 ‘여름’(노윤서)을 만난다. 청각장애인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의 훈련을 돕던 여름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서툴지만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고, 행운까지 따른 덕분에 용준과 여름은 친구가 된다.
입이 아닌 손으로만 말하는 여름과 더 가까워지고, 소중한 사이가 되고자 노력하는 용준. 하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용준의 고백은 거절당한다. 미래와 꿈을 이야기하는 용준과의 만남이 청각장애인 동생과 부모님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여름에게는 충격이자 부담이었기 때문. 하지만 용준은 희망을 놓지 않았고, 초여름이 깊어지면서 여름도 서서히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20대라는 계절
어른들이 20대 중후반에 접어든 이들을 위로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바로 인생을 시계에 비유하는 것. 100세 인생 중 20대 중후반이면 이제 1/4 정도 지났을 뿐이니, 시계에서는 새벽 6시 언저리이고, 막 해가 뜨거나 뜨기 직전의 새벽일 뿐이라고. 그러니 설령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서 좌절스럽더라도 무너질 필요는 없다고. 간 호흡으로 인생을 보면서 내실을 다지고, 다음 기회를 노려도 충분하다고.
이 비유는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다. 마라톤 같은 달리기 경주로 바꿔도 말이 된다.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미사여구를 더해도 된다. <다크 나이트> 중 하비 덴트의 대사처럼, 인생의 새벽인 20대는 해가 뜨기 직전이라서 더 어두운 것이라고. 계절로 대신할 수도 있다. 20대는 사계절 중 이제 막 초여름이 시작되려는 시기일 뿐이니 아직 열매를 수확할 가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1년을 마무리할 연말은 까마득하다고.
대만의 동명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청설>은 인생의 초여름, 20대 중반을 마주한 청춘들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정확히는 로맨스를 곁들였다. '우리의 여름을 들어달라'(Hear Me: Our Summer)는 의미의 부제만 봐도 알 수 있다.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가 아니라 세 주인공이 각자의 여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원작과 리메이크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바로 이름이다. 특히 두 자매의 이름이 독특하다. 한국판 <청설>은 자매의 이름을 계절감 가득한 '여름'과 '가을'로 변경했다. 흥미롭게도 이 이름 덕분에 세 주인공이 마주하는 인생의 초여름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여름과 가을 자매의 이야기에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름과 가을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여름의 인생은 철저히 가을이에게 맞춰져 있다. 동생이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뚫고, 함께 올림픽에 가는 게 그녀의 유일한 목표다. 그래서 여름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가을이의 훈련비로 투자하고, 시간을 쪼개서 국제 수화를 배우러 다닌다. 영준과 썸을 타고, 연인 관계로 발전을 하려는 순간마다 그 관계를 망설이거나 끊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이와의 목표를 위해 자기 자신을 오히려 다그치는 것.
여름이에게 영준과의 만남은 터닝 포인트다. 영준은 대학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나 진로를 아직 찾지 못한 평범한 20대다. 그는 도시락 배달을 갔다가 만난 여름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에게 같이 인생의 목표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정작 여름은 충격에 빠진다. 올림픽 출전이 가을이의 목표일 뿐 자기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 처음 깨닫고, 청각장애인인 부모님이나 동생과는 다른 인생의 가능성을 비로소 발견하기 때문.
여름의 깨달음은 메타적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열매라고 생각했던 가을이의 올림픽 출전이 자신의 '가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으니까. 그렇게 여름이는 여름이 코 앞에 다가온 후에야 비로소 자기만의 가을, 새로운 인생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영준과 여름의 로맨스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여름을 마주하고는 각자의 가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격려와 위로에 가깝다.
착한데, 착하기만 한 로맨스
물론 <청설>에는 대만 로맨스 영화에 기대하는 순간도 나온다. 사랑이 시작되는 풋풋함, 착한 풋사랑이 끝나는 아픔 등. 특히 청각 장애라는 소재를 활용한 전자가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영준이 여름에게 고백하는 순간은 유독 살랑거린다. 수영장에서 번호를 따거나 커피를 같이 마실 때 말을 하는 대신 전부 수화만 사용하다 보니 설렘과 떨림이 손짓과 몸짓만큼 크게 보이니까.
여름이 영준에게 빠져드는 과정도 흥미롭다. 호감은 느끼지만 그를 친구로만 생각하던 여름. 하지만 기분 전환 차 놀러 간 클럽에서 그녀는 시나브로 그에게 스며든다. 영준이 이끄는 대로 손을 스피커에 대고, 음악을 듣는 대신 느끼면서 비로소 그의 모습을 한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연다. 수영장에서 영준의 말이 아니라 그가 보낸 물결을 느낀 후에야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장면처럼 비슷한 순간이 반복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다만 착하고 순수한 로맨스가 빛이 바래는 순간도 있다. 여름과 영준의 관계를 위기에 빠트리는 전개가 부자연스럽기 때문. 특히 여름과 가을의 자취방에 불이 나는 시점부터의 진행은 다소 갑작스럽다. 물론 세 주연의 관계에 전환점을 마련하고, 그들의 성장을 강조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작위적인 전개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영화의 분위기는 끝내 불협화음을 내고 만다.
소재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유독 부각되는 단점도 있다. 바로 영화가 청각 장애라는 소재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청설>은 청각 장애인의 로맨스를 다루기에 독특한 작품이다. 소재를 강조하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상술했듯이 청각 장애인들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로 묘사하면서 고정관념을 빗겨 나간다. 또 템포가 늘어진다고 느껴지더라도 수화로 이뤄지는 대화를 가능한 끊지 않고 보여주려는 시도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여름이가 비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숨긴 반전이 특히 문제다. 영화적 재미는 더할지는 몰라도, 여름과 영준의 감정선을 어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주제와도 맞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게 비장애인의 로맨스였다는 점에서 청각 장애는 그저 도구로만 소비된 셈이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나 비주류 집단 배우나 캐릭터를 보여주기식으로만 활용하는 ‘토크니즘’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더 나아가 평면적인 청각 장애인 묘사도 구시대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청설>은 모든 청각 장애인을 착한 사람, 배려받아야 할 사람, 약자들로만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청각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뤄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코다>가 장애인들이 사업체를 소유하거나 지역 어업 공동체를 이끄는 식으로 그려낸 것과 비교하면 <청설>은 깊이가 얕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배우라는 눈속임
그런데 <청설>은 최소한 보는 동안에는 위의 단점이 생각나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다. 바로 영화의 감성을 온전히 살린 배우들의 힘이다. 우선 홍경이 연기한 영준의 경우 사실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일반적이고 평이하니까. 하지만 그 인물을 숨 쉬는 듯 자연스럽게 표현한 홍경의 연기는 그가 주목받는 신예인 이유를 증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기 잘못과 마음을 무심하게 고백하는 수영장 씬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여름을 연기한 노윤서는 기시감이 없지 않다. <일타 스캔들> 등에서 비슷한 결의 캐릭터를 맡았기 때문. 그러나 익숙하고 편안하게 캐릭터를 관찰할 수 있다 보니 사소한 동작 하나 놓치지 않는 표현력이 더 돋보이는 측면이 있다. 일례로 그녀는 수화를 할 때 마치 말을 하는 것 같은 입모양을 만들 때가 있다. 이러한 디테일은 여름이 사실 청각 장애인이 아니라는 반전의 복선으로 이어지면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김민주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이라는 캐릭터는 오로지 수화와 표정, 제스처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대사가 단 한 마디도 없는 제한적인 환경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혹시 모를 발성에서의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고, 아이돌다운 표정 연기와 제스처가 뛰어난 전달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부담감과 불안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 한 가지는 가려지지 않는다. 바로 개봉일이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를 기점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수능 특수를 노린 선택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제와 분위기를 고려하면 최선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 관객을 매료하기에는 생각보다 진중하니까. 또 계절감이 충만한 영화인 만큼 초여름 분위기를 강조할 수 있는 개봉시기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Poor 형편없음
배우와 감성, 분위기만 빛나는 초여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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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여 일어나라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영화 '슬램덩크'가 올해 1월 4일 개봉해 현재까지 상영 중으로 롱런 중이다. 그다지 관객몰이를 하지 못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박스오피스 1위, 상영 3개월이 되는 시점에서는 3위이다. 관객 수는 435만 명으로 스크린에 함께 걸렸던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관객 수가 많은 편이다. 유명 배우를 기용한 몇 편의 한국 영화가 100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기간 동안 추억의 애니메이션은 400만 명을 넘어섰다.
40대를 타깃으로 한 작품일 것이라 여겨졌지만, 10대 만족도는 9.65, 40대는 9.35로 오히려 만화책이 아닌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난 이들의 만족도가 더 높다. 코믹스에서 다 그려내지 못했던 가드 송태섭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연출된 작품이지만, 북산과 산왕 간의 대결이라는 그리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향해 가는 북산 팀의 이야기가 담긴 만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지 못하는 관객 층에게도 충분한 어필을 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만화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을 맡았고, 상영 시간 124분, 평점 9.27이다.
슬램덩크 만화책의 주인공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 강백호, 송태섭 중 앞의 4인의 스토리는 충분히 그려졌으나, 송태섭의 이야기는 충분치 않아 그에 관한 스토리를 쓰고 싶었다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바램이 담긴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이다.
만화책에서는 하나 누나를 좋아하고 귀에 피어싱을 낀 다소 껄렁껄렁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가드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필라소피를 농구 안에서 풀어내는 모습이 매력적이던 송태섭의 성장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영화는 송태섭의 성장 과정뿐 아니라 산왕과 북산과의 경기를 통해 강백호만이 가진, 그리고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 안경 선배, 하나 누나, 안선생, 강백호의 친구들, 그들 자신만이 가진 특유의 캐릭터를 살아있는 듯 발하며 극의 재미를 더한다.
이 애니메이션 원독자들은 2023년 이 시대의 40대 들일 것이다.
그들은 X 세대라 불리며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문화 가운데 컸으며, 그들은 새로운 물결을 만든 세대들이다. 자신들이 학습되고 부모 세대로부터 받은 익숙함들은 그들이 접하게 된 새로운 문화나 교육들과는 이질감이 생겨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층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기존 문화와 흐름에 아무것도 모르고 편승하기에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위치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과 고민 가운데 봉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물결을 만들며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거대한 기존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세상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결은 무척이나 넓고 깊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타협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과 그 물줄기 안에서 편승하는 듯 보이지만, 마음 안에 담겨 있는 열정을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 되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서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 자들에게 이 영화는 일어서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단지 추억을 회상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추억을 딛고 일어나 마음속의 열정으로 다시 그 거센 물줄기 안에서 새로운 물꼬를 틀라고 촉구하는 듯 보인다.
OST는 비트 있게 생동감을 주며 움직이고, 북산고 선수들의 호흡과 관객의 호흡은 정확히 일치한다.
더빙과 자막 중 자막을 선택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의 흥미를 더해줄 것이다.
40대여,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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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통해 전하는 감동 메시지
씨네렙에서 영화 <디베르티멘토> 시사회에 초대를 했다. 음악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음악이 잘 짜인 스토리와 결합하면 영화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며, 보는 내내 행복감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는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열일곱 살 쌍둥이 자매 자히아와 페투마에게 음악은 엄마아빠의 사랑과 함께 삶의 전부다. 두 자매는 알제리 이민자 가정출신으로 겪는 차별과 장벽에 종종 노출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첼리스트라는 꿈을 향한 열정과 엄마아빠의 격려로 도전하고 극복해 나간다.
영화 제목인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18세기 중엽에 나타난 격식을 벗어나 자유스러운 형식으로 만든 기악 모음곡으로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칭한다. 이른바 ‘멋대로의 음악’으로 희유곡(嬉遊曲)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 자매가 직접 결성하고 이름 지은 디베르티멘토 오케스트라는 파리의 전문음악학교 학생과 파리 교외의 음악도, 프로 연주자, 선생님, 다운 증후군의 소녀까지 단원으로 함께한다. 그들은 모두 함께 각자의 소리들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며 감동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의 중심에는 클래식 음악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세 가지 춤곡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사로잡는다. 라벨의 ‘볼레로’, 프로코피예프의 ‘기사의 춤’, 생상스의 ‘바카날'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스토리와 연계하여 보는 사람에게 깊은 몰입을 하게 한다.
그 외에 베토벤 교향곡 7번, 슈베르트 교향곡 5번,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등 다양한 클래식 명곡들이 나온다. 이 들을 웅장한 사운드로 들을 수 있어 새삼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영혼이 정화된 느낌으로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물었다
“영화 어땠어요?”
아내가 엄지척을 하며 '강추!'라고 답했다.
나의 생각도 아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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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 똑같은 패턴은 이제 그만
많은 사람들이 권선징악을 원한다. 권선징악은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꽤나 단순 명쾌한 의미다. 하지만 의미의 단순 명쾌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권선징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의 테두리를 교묘하게 벗어난 범죄자들이나 가벼운 심판을 받고 출소한 범죄자들이 다시 보복을 일삼는 일들은 그 사례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두 건의 사건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사회의 심판이 생각보다 통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그런 범죄자들에 대한 심판이 생각보다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해외에서도 이런 심리가 있을 것이다. <이퀄라이저> 시리즈나, <존윅> 시리즈 같은 영화들이 계속 사랑받는 건, 조금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복수나 처벌들이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영화 속 주인공들의 처벌 방식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틀을 빌려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마석도 형사의 재등장
영화 <범죄도시4>는 2017년에 개봉한 1편 이후 계속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석도 형사(마동석)는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인물이다. 사실 마석도 형사에게 온전히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조금은 무식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범죄자 체포나 처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오히려 범죄자들에게 당하는 일반 사람들이나, 마석도 형사의 팀에 있는 조금 평범해 보이는 동료들에게 더 감정이입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마석도 형사에게 반가움을 느낀다. 어쨌든 관객들에게 악의 처단이라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이 시리즈가 이어지게 하는 주요 동력이다.
이번 네 번째 영화에서는 온라인 불법 도박 관련 사건을 다룬다. 이번 편의 사건 역시 실제 경찰 수사가 이루 졌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재구성했다. 영화의 빌런은 백창기(김무열)와 IT천재 장동철(이동휘)이다. 백창기는 엄청난 살기로 사람들을 마구 죽이면서 필리핀 현지에서 도박장을 관리한다. 반면 장동철은 사업가적인 기질과 프로그래머 능력을 활용해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돈을 빨아들인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빌런은 백창기다. 그는 그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상대에게 일단 칼을 쑤셔 넣는다.
지난 시리즈들과 구도나 전개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엄청나게 악한 빌런을 초반에 등장시키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마석도 형사를 비롯한 그의 팀이 어떤 특정한 사건을 수사하다 빌런의 존재감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누군가가 억울하게 다치거나 죽음으로써, 마석도 형사가 범인을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수사 중간중간 유머코드도 빼놓지 않는다. 이번 편에서는 조선족 장이수(박지환)를 다시 등장시켜 지루해질 타이밍에 유머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좁은 공간에서 최종 빌런과 마형사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넣는다.
빌런의 악랄함은 높이고 있지만, 아쉬움도 높아지고 있는 시리즈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서 똑같은 구성과 전개를 보이지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빌런이다. 이번 영화의 빌런도 꽤나 강력해 보이지만, 점점 그 강도가 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범죄도시> 시리즈 최고의 빌런은 1편의 장첸(윤계상) 일 것이다. 가장 큰 무게감과 공포를 전달했던 그 빌런 이후, 다양한 배우가 연기한 악랄한 빌런이 등장했지만, 기억에 남는 빌런은 2편의 강해상(손석구) 정도다. 3편의 빌런은 이름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3편의 빌런은 부패경찰 주성철(이준혁)과 일본 조폭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도 강력했지만, 이름까지 기억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4편의 빌런 백창기 역시 강력함을 전달한다. 하지만 캐릭터를 연기한 김무열 배우의 조금은 선한 얼굴이 악랄한 느낌을 다소 희석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동안 김무열 배우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양한 빌런을 연기한 경험이 있다. 그가 연기했던 다른 악한 캐릭터들과 겹쳐 보이는 것도 강렬함을 방해하는 요소다. 그래서인지 이번 4편은 이전 시리즈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카드를 하나 추가했다. 바로 음악감독을 바꾸는 것이다.
이번 <범죄도시4>의 음악감독은 작곡가 윤일상이 맡았다. 윤일상 음악감독은 김무열 배우에게 보이는 선함을 가리기 위해 그가 등장할 때 나오는 테마음악을 좀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빌런 백창기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다양한 악행을 벌일 때, 관객은 음악과 상황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좀 더 무섭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음악 감독이 바뀐 영향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필리핀 카지노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카지노의 분위기에 맞는 배경음악이 나오고, 액션이 벌어질 땐 좀 더 경쾌한 음악이 등장한다. 특히나 마지막 비행기 격투 장면에선 이 영화의 시그니처 음악이 흐르며, 통쾌함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건 유머일 것이다. 유머도 적절하게 영화 곳곳에 뿌려져 있는데, 이번 편에서는 장이수가 등장해 유머 파트를 담당한다. 많은 관객들에게 이미 사랑받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좀 더 편안하게 그의 엉뚱한 행동을 기다리며 웃을 준비를 하게 된다. 마석도 형사의 유머도 간간히 등장하지만, 그의 말장난 유머는 생각보다 타율이 높지 않다.
1,2,3편의 종합판
<범죄도시4>는 어쩌면 1편, 2편, 3편의 종합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시리즈에서 사랑받았던 요소들을 총망라하여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극악한 범죄자들이 마석도 형사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 모습 자체는 무척 통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이야기가 그렇게 촘촘하지 않다 보니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는 것이 큰 문제다. 비슷한 전개 방식에 빌런만 바꿔 끼워 넣은 방식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 8편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생각보다 적은 제작비를 이용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마석도 형사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네 편의 영화가 보여준 방식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더라도 관객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만들지 않을까. 마석도 형사는 사실 시리즈 내내 폭력적인 방식으로 깡패나 범죄자들을 단죄해 왔다. 그가 벌인 난장의 뒤처리는 늘 동료 형사의 몫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도 담겨야 하지 않을까.
<범죄도시4>는 여전히 적정한 재미를 준다. 기존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던 관객이라면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너무 똑같이 전개되는 이 영화의 느슨한 이야기에 실망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영화에 실망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과 이야기 전개를 조금 더 촘촘히 해서 좀 더 관객들이 몰입하여 따라갈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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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를 이겨내는 우주적 다정함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은 우리를 다른 인생으로 이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무술 고수, 영화배우, 맹인 가수, 요리사 등등이 될 수 있고 심지어 돌이 되는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미국에 건너와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삶을 꾸려가고 있는 중국인 이민자 에블린(양자경)의 삶이 있다. 수북이 쌓인 영수증 더미에 깔리기 직전의 그는 쇠약해진 아버지(제임스 홍)를 돌봐야 하고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쿠안)와는 이혼하기 직전이다. 세무당국의 세무조사와 남편의 이혼 요구 그리고 딸 조이(스테파니 수)의 여자친구 문제가 에블린에게 한꺼번에 덮쳐온다. 이런 에블린에게 모든 우주를 구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모든 우주를 혼돈에 빠뜨리려 하는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단다.
에블린은 여러 우주 중 하나에서 각 우주의 기술과 기억, 감정을 불러올 수 있는 ‘버스 점프’의 알고리즘을 개발한 인물이다. 알고리즘을 개발한 우주의 에블린은 능력이 출중했던 한 아이의 버스 점프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 아이는 모든 우주의 자아를 동시에 경험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무한한 다중우주를 혼돈에 빠뜨린 빌런 ‘조부 투파키’가 탄생한다. 이 조부 투파키가 세탁소를 운영하는 우주의 딸 조이다. 에블린은 다중우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딸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우주의 자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된 그는 엄청난 지식과 힘을 얻었다. 무료하던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베이글 위에 올려버렸다. 가운데가 뻥 뚫린 검은 베이글 위에 온 세상을 올리자 그는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은 ‘무’이며, 부질없다는 진실을.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이 부질없는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진정한 죽음이다. 검은 베이글은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부 투파키의 블랙홀이다. 또 한 가지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에블린이 자신과 같은 것을 보는 것이다.
조부 투파키 혹은 조이는 끝없는 버스 점프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힘과 지식을 얻었을지 모르나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며 혼란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버스 점프에 갇혀 있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는 것이다. 조이 역시 이 윤회와도 같은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의 플롯을 간단하게 보자면, 모녀간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단 한 사람의 이해와 공감이면 딸이 가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바로 엄마다.
우주의 진짜 적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다. <에에원> 속 베이글은 이 세상의 허무를 상징한다. 새하얀 공간에 둥실 떠있는 까맣고 가운데가 뻥 뚫린 베이글 말이다. 에블린이 싸워야 하는 것은 조부 투파키나 딸 조이가 아니라 세상의 폭력과 허무함 그리고 염세주의다. 이에 맞서는 단서는 남편 웨이먼드가 준다. 평소 웨이먼드가 세탁소 곳곳에 붙여놓은 하얀 바탕에 가운데가 까만 장난감 눈알은 베이글에 대항하는 다정함의 상징이다. 폭력과 고통 앞에서 자비와 연민을 가지라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에블린은 미간 근처 이마에 장난감 눈알을 붙이고 다정함의 방식으로 싸운다. 다른 우주의 어떤 누구라도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손가락이 핫도그가 되어버린 우주일지라도.
멀티버스다운 영화적 스펙터클을 경험한 끝에 도달하게 된 곳은 다정함이다. ‘우리는 다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이처럼 거창해야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의 삶은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세탁하고 세금 내는 일이 지긋지긋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른 우주의 또 다른 나, 멋진 삶을 사는 나를 꿈꿀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여기의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코인세탁소에서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이 삶을 사랑할 수도 있다. 에블린은 모든 우주의 자신을 보고 왔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조이와 여기 있는 삶을 선택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평범하게 여겨지는 현재, 여기의 사랑을 멀티버스의 차원에서 설명해냈다. 무한한 다중우주를 거쳐 온 우리의 지금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현재 여기에서 서로 다정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곧 기적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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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과 인간의 운명, 야누스란 이름의 괴물
욕망이란 구덩이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 그리고 그 구덩이에 빠져버린 이카로스
욕구란 생존이라는 본능에서부터 발생한 모든 생명체들이 추구하는 목표 혹은 소망입니다. 하지만 모든 욕구를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한 법,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공간에서 욕망이라는 감정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감정은 어떻게든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고자 하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결과물이 극히 미미하고 빈약한 양일지라도 끊임없이 반복하여 빈 공간을 채워나가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게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빈 공간을 인정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또는 그 동기로부터 발생한 새로운 동기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그 공간을 채우는 행위의 의미가 180도로 달라지게 됩니다. 즉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욕망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인 존재입니다. 이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는 인간의 채울 수 없는 욕구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특히 약점으로서의 욕망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 욕망에 관련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탈출이 불가능하다시피 한 미궁 라비린토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이카로스에게 밀랍으로 만든 날개라는 무기와 동시에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새로운 동기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이는 태양이란 신적이고 경외의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새로운 욕망을 낳았고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조언과 경계를 무시하게 되었으며, 결국 추락이라는 날로 바뀌어 스스로를 베고 맙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탠턴 칼라일은 여러모로 이카로스와 닮은 점이 많은 주인공입니다. 서커스의 독심술사 피트로부터 독심술을 배우고 싶다는 그의 욕망은 부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새로운 욕망을 낳았습니다. 그 욕망은 더욱 많은 돈을 갈망하도록 만들었으며, 종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하게 됩니다. 특히 칼라일이 탐내는 독심술에 관한 전문가이면서 그 모든 내용을 담은 공책의 소유자이자, 칼라일의 독심술에 대한 욕심에 대해 경계와 염려를 하는 피트의 모습을 통해, 그는 신적인 경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다이달로스와 대응되는 존재임을 인지하게 해 줍니다. 다만 칼라일은 이카로스와 달리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스승이면서 경외의 대상을 살해했다는, 선을 넘었다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욕망이란 선을 넘느냐 마느냐에 따라 무기가 될 수도 약점이 될 수도 있으니, 그 선을 넘어버린 칼라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괴물, 그 이름은 인간. 야누스란 이명을 가진
욕망에 사로잡힌 칼라일은 독심술을 적극 활용하여 쇼에 참석한 관객들을 쥐락펴락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사탕발림으로 상담을 해 주는 척하면서 농락합니다. 스탠턴의 겉모습과 행보만 본다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고 당당한, 뚫을 수 없는 강인한 갑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실상 그 속은 누구보다도 가냘프고 연약하기만 합니다. 반대로, 몰리 혹은 릴리스와 같이 나약해 보이거나 강인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인물들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거나, 더 나아가 잔인함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인간의 욕망과 더불어, 이러한 인간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인 야누스에 관해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먼저, 영화 중간중간에 첫 시작의 배경이었던 낡은 집에서 칼라일의 늙은 아버지와 관련된 컷들을 반복하여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해당 상황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이를 통해 칼라일의 욕망을 쫓는 행위는 아버지와 관련된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듯한 정반대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극단주 클렘의 수집품 에녹과 괴인을 찾으러 들어간 유령의 집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문구들을 통해서 구체화됩니다. 출산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에녹의 이마에 박힌 눈은 관찰자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는 클렘의 대사와, 자신의 죄를 비추라는 거울 위에 쓰인 문구를 통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을 상기시킵니다. 죄책감은 칼라일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으며 그는 죄책감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화술로 사기를 치는 겉모습과 달리,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두려워하고 도망치려는 본모습을 통해 칼라일도 사기의 대상이 된 인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어떨까요, 클렘과 에즈라를 비롯해 릴리스는 외강내유라고 할 수 있는 칼라일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인물들입니다. 세 인물들은 모두 정상적이고 평범하거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채로 영화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셋 모두 공통적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인물임이 밝혀집니다. 아편을 이용해 사람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그 사람을 극단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과정을 아무렇지 않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클렘, 아내를 잊지 못하는 듯했지만 수많은 여성들을 폭행하고 살해하기까지 한 에즈라, 칼라일의 본질을 꿰뚫고 자기 자존심을 짓밟은 대가로 천천히 나락으로 끌어당긴 릴리스. 이들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야누스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묘사를 통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들에서 항상 등장해 왔던,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제는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 협의의 괴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음에도 말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야누스, 비단 칼라일뿐만이 아닌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이 야누스에 속한다. 그 속에 숨기고 있는 게 괴물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그 외의 은유, 황홀한 미술과 함께
마지막으로 칼라일, 그의 아버지, 그리고 피트 사이를 운명이란 주제로 관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세 인물 간에는 술이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됩니다. 칼라일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어머니가 가족을 버리고 전도사와 떠나게 하며 그 전도사는 칼라일을 성추행까지 함에도 아들을, 가족을 보호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기만 했음을 대화를 통해 드러냅니다. 칼라일은 그러한 아버지를 추위 속에서 얼어 죽도록 내버려 두고, 그의 시체를 구덩이에 묻고 집과 함께 불태우고 떠납니다. 칼라일이 극단에서 일을 시작한 후 스승 혹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었던 피트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였기에, 메틸알코올이 어떤 상자에 담겨 있는지를 알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메틸알코올을 피트에게 가져다 줌으로써 그를 살해합니다. 이후 릴리스에게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임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던 칼라일 본인조차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였고, 점차 무모한 결정들을 내리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종국에 다다라, 클렘이 알려줬던, 괴인을 길들이는 방식을 그대로 언급하면서 일자리를 제안받았음에도 "자신은 그 연기를 위해 타고났다"라고 말하는, 완전히 술의 노예가 되어버린 칼라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걷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에는 그 악몽의 길을 똑같이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술을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이 운명을 깨닫고 체념한 듯 웃는지 우는지 파악이 힘든 표정을 통해 가장 충격적이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가히 인상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는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로 영화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여러모로 감독의 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와 많은 부분에서 대척점에 위치해 있는 영화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성이 가득 차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와 달리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는 그러한 감성은 1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청록색이 영화를 상징하는 색이었다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청색과 더불어 주황색으로 대표되는 불빛의 색깔이 영화를 대표하는 색입니다. 불빛이라 하면 따뜻함이란 인상이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나이트메어 앨리>에서의 불빛은 전혀 따뜻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1940년대 시골 배경이 가져다주는 음침한 기운과 함께 건조하고 메마른 느와르 장르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용도로 사용될 뿐입니다. 아울러, 앞서 언급했던 겉과 속이 다른 야누스적인 모습을 칼라일의 중심선을 기준으로 푸른빛과 주황빛이 각각 반쪽을 비추는 연출을 통해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 시대상을 담아낸, 고전적이지만 우아함이 살아있는 복식과 배경은 황홀감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연 거장의 비주얼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여전하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예술이었습니다.
아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 술.
전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불빛, 과연 기예르모 델 토로 답다
두말하면 입 아픈 배우진, 아쉬운 점
액션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느와르 장르, 심리극은 배우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은 이전의 리뷰들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했었습니다. 당연히, <나이트메어 앨리>의 출연진들을 확인해 보면 연기력을 걱정한다는 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습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나이트메어 앨리>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가장 두껍고 중요한 줄기인 칼라일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연기해 냈습니다. 앞서 말했듯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 연기로 정점에 다다른 피날레를 당연히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 외에 순수하고, 그렇기에 두려움에 빠져 있는 루니 마라의 몰리,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자만감,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오만함과 도도함을 가진 케이트 블란쳇의 릴리스 등등, 모든 배우들이 영화를 구성하고 받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이트메어 앨리>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고,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많은 메타포와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치밀한 플롯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에 이를 분석하고 곱씹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고 전형적인 이야기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새로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나이트메어 앨리>는 150분이란 긴 러닝타임에서 불필요한 부분이 없이 꽉 차있는 영화입니다. 불필요한 부분이 없다는 건 그만큼 몰입감이 강하다는 의미이지만, 이는 긴 러닝타임으로 인해 관객들이 피로감을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는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 파트가 불필요하게 길고 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감상평을 한 관객들이 대다수인 부분에서, 극단 파트의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방식이 달랐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영화를 꽉 채우고 받쳐주는 명배우들의 연기 향연
그리고 아쉬운 러닝타임과 극단 파트의 진행 방식
감독의 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에 비할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이트메어 앨리>는 충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곳곳에 담긴 요소들을 파헤치고 느꼈던 모든 내용들을 글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표현력으로 인해 여기까지가 제 한계였습니다. 올해, 아니 그동안 작성했던 리뷰들 중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글임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네요. 완벽하게 느낀 영화의 리뷰보다 긴 리뷰라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설명할 거리가 많다 보니 이렇게 된 느낌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글에 담지 못한, 더 많은 내용을 따로 작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여하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매력에 더 빠지게 만드는 정말 좋은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였습니다.
I was born for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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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를 이끌어 가는 대화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이자 세 편의 단편을 엮어 만든 소품같은 영화다. 걸작임에도 러닝타임이 길고 등장인물이 많아 관객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두 시간여의 적당한 러닝타임에 편당 주요 등장인물의 수가 세 명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등장인물의 자리를 꿰찬 것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다. 이들의 대화는 때로는 독백의 형태로, 때로는 낭독의 형태로, 때로는 상황극의 형태로 발현되어 우연을 드러내거나 상상을 이끌어 낸다. 보다 스케일도 크고 로케이션도 다양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등장인물 수도 적고 배경도 한정되어 있지만 이들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드라이브 마이 카>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세계의 주목을 집중시켰던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는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열정>의 전개 방식에 <해피 아워>의 서사를 담은 것만 같은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감독의 초심을 담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어째서 복잡한 비유나 상징을 이용하는 대신 직설적인 발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영화 언어에서 발화 언어를 통한 서사 전개는 촌스러운 방식으로 여겨진다. 직접성보다는 간접성을 통해 수용자의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예술은 정답을 이끌어낼 여지가 있는 직설적인 표현을 꺼려한다. 아예 언어가 배제되는 회화나 무용의 경우는 색감이나 예술가의 신체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발화 언어를 사용할 선택지가 있는 영화 예술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예술성을 평가받기도 한다. 대사에 복잡한 비유와 상징을 담아 직설성을 배제하기도 하지만 대개 발화 언어는 직접적인 표현 방법에 쓰인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담보로 하는 예술인 영화는 대사를 알쏭달쏭하게 꼬는 대신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의미를 함축하더라도 직접적인 의미 전달과 간접적인 의미 함축이라는 두 역할을 수행하게끔 만들곤 한다. 이는 추리물을 포함한 반전 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관객에게 반전의 충격을 안겨주려면 간단한 대사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전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더라도 나레이션을 사용해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우연과 상상>은 소소한 반전을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플래시백이 전혀 없다. 등장인물들은 현재 시점에서만 존재하며 과거의 이야기는 전부 대사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플래시백을 영화 기법에서 제외하는 경우 관객은 한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사는 전부 진실에 기반하는 것인가? 3화 「다시 한번」에서 아야(카와이 아오바 분)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반전은 아야만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아야의 말에 의구심을 느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야가 드러낸 진실이 진실인지 아닌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과 상상>의 대화들은 내용의 진실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관객이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다. 대개는 즐거움인데 대화가 <우연과 상상>을 한층 좋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이유는 정작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들에게는 진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연과 상상>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그야말로 충실하게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첫 에피소드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퇴근길 택시에 합승한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와 츠구미(현리 분)의 대화를 오래도록 보여주지만 대화의 내용은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츠구미가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이 대화 직후에 이루어진다. 메이코는 택시에서 내려 어딘가로 향하고 그 곳은 바로 츠구미가 만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분)가 일하는 곳이다. 카즈아키와 이코는 역시나 긴 대화를 이어가지만 대화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메이코가 이 장소를 떠나는 순간이 되어야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카즈아키가 메이코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대화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물들의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화가 거의 들리지 않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다. 그리고 카즈아키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유리창 내부의 공간으로 이동했을 때 발생하는 대화는 주로 메이코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는 대화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인물들의 행동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혹은 맥거핀으로 유연하게 사용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문은 열어둔 채로」에서 관객의 시선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발화 언어는 나오(모리 카츠키 분)가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 분)의 책을 낭독하는 부분이다. 상당히 오랜 시간 일부러 민망한 부분을 골라 낭독하는 나오의 목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유도하지만 동시에 세가와 교수가 보이는 반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민망해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멈추게 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낭독을 듣는 세가와 교수는 이 낭독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일까. 문을 닫으려는 나오의 행동만을 저지하며 긴 낭독을 듣고 나오의 고민상담을 해준 세가와 교수는 나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고서야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나오의 질문에 대한 세가와 교수의 대답은 일반적으로 관객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관객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가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이 에피소드의 결말 또한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다. 특히 가장 충격적인 결말은 나오의 발화가 아닌 오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2화 또한 대화를 훌륭한 매개체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화를 발화 언어의 목적 그 자체에 가장 충실하게 활용한 에피소드는 3화인 「다시 한번」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에피소드의 가장 큰 반전은 아야의 입을 통해 전달되지만 아야와 나츠코(우라베 후사코 분)는 결론적으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츠코를 자신의 집에서 대접하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야는 사실 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어떤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던 것임이 드러난다. 반면 대화 자체가 목적이었던 나츠코에게 이는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이후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 쪽은 나츠코가 아니라 아야다. 관객에게 가장 큰 충격을 전달하는 것은 이후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지만 서사를 마무리짓는 것은 폭로 이후에 이어지는 상황극이다. 특히 아야가 나츠코를 배웅하며 역 앞의 육교에서 벌이는 상황극은 대사는 상황극일지언정 두 캐릭터의 감정만큼은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 에피소드에서도 대화는 아야와 나츠코의 과거를 들려주고 스스로를 힐링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실제로 심리 치료에도 사이코드라마라는 비슷한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다지 변화가 없는 배경, 적은 수의 등장인물을 가지고 대화만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이끌어 냈지만 사실 대화가 서사를 잇는 매개로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우연과 상상>은 영화 예술에서 대사의 활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어려운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지 않아도, 혹은 대사 없이 이미지로만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대사는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하마구치 감독이 증명해낸 셈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는 영화지만 <우연과 상상>은 초심으로 돌아간 감독이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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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푸라기 짐승들'...미쳤습니까?? 리얼 솔직 리뷰 (*스포없음)
?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 리뷰 영상 (*스포없음)
'1917'도 재미있지만, 이 영화도 진짜 재미있습니다
제가 안 이러는 거 잘 아시잖아요?-시놉시스
[사기, 배신, 살인...
모든 것은 돈 가방과 함께 시작되었다.]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 빚에 시달리며 한탕을 꿈꾸는 태영.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힘들게 이어가는 가장 중만.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申 것을 탐하게 되는 연희.
인생 벼랑 끝에 몰린 그들 앞에 거액의 돈 가방이 나타나고,
마지막 기회라 믿으며 돈 가방을 쫓는 그들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큰돈 들어왔을 땐 아무도 믿음 안돼”]
고리대금업자 박사장, 빚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미란, 불법체류자 진태,
가족의 생계가 먼저인 영선, 기억을 잃어버린 순자까지…
절박한 상황 속에서 서로 물고 물리며 돈 가방을 쫓는 사람들.
최선이라 믿은 최악의 선택 앞에 놓인 그들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한탕을 계획한다.처절하고 영리하게, 절박하고 날카롭게!
지독한 돈 냄새를 맡은 짐승들이 움직인다!-스태프
장르: 스릴러, 범죄
감독: 김용훈
각본: 김용훈
원작: 소네 케이스케의 소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제작: 장원석
촬영: 김태성
미술: 한아름
음악: 강네네
편집: 한미연
출연: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정만식, 진경, 신현빈, 정가람 외
제작사: (주)비에이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급사: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촬영 기간: 2018년 8월 30일 ~ 2018년 11월 30일
개봉일: 2020년 2월 19일
상영 시간: 108분#지푸라기라도잡고싶은짐승들리뷰 #지푸라기리뷰 #지푸라기짐승들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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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신공룡> 1차 예고편
도라에몽 50주년 기념대작!
오리지널 스토리로 돌아온 진구와 쌍둥이 공룡의 어드벤처!진구는 공룡 엑스포 화석 발굴 체험에서 발견한 화석을 공룡알이라고 굳게 믿는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 타임 보자기로 화석을 되돌리자 새로운 종의 쌍둥이 공룡이 태어났다!
진구를 닮아 미덥지 못한 큐와 말괄량이 뮤.
사랑을 듬뿍 주며 키우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진구는
큐와 뮤를 원래 시대로 데려다 주기로 결심하고,
친구들과 함께 6,600만 년 전 백악기로 모험을 떠난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와 공룡들의 도움으로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
진구와 친구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수수께끼의 섬.
공룡이 멸종했다고 알려진 백악기에서 큐와 뮤, 그리고 진구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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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니키리라고도 알려진> 메인 예고편
‘프로젝트(Projects)’, ‘파츠(Parts)’ 시리즈의 주인공, 사진 작가 ‘니키 투(Nikki Two)’.
그리고 그녀의 정체성을 파헤치고자 하는 ‘진짜’ 니키, ‘니키 원(Nikki One)’.
‘니키 원(Nikki One)’은 자신의 다큐멘터리 속 등장하는 ‘니키 투(Nikki Two)’가 허구이고,
자신이 ‘진짜’ 니키 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니키가 진짜 니키일까?
당신이 알고 싶었던 ‘니키 리’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