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4-11-21 14:37:20
강동원 씨, 껍데기가 참 무겁죠?
넷플릭스 [전, 란]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전, 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작품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넷플릭스가 버릇 나빠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기 시작했다. K콘텐츠로 쏠쏠하게 재미를 본 것은 인정하지만. 그 뒤로 넷플릭스를 뒷배 삼아 제작된 한국 작품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도, 그렇다고 참신하지도 않았기 때문.
게다가 최근 작품들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배우가 주연진에 들어차고 있다면, 배우의 이름값으로 인해 반가우면서도 작품 자체에 대한 우려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OTT시청자들에게야 작품 하나는 그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작품이 별로라면 손쉽게 종료 버튼 한 번으로 물려버릴 수도. 좋았다 하더라도 또 다른 좋은 것들에 파묻히기 좋을 작품들 중 하나로 남아 버릴 테니.
그러나 넷플릭스에게도. 그리고 출연진들에게도. 작품 [전, 란]은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 될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떠도는 소문(?)에 대한 억울함도. 그동안의 치욕도. 함께 벗어던질 수 있을 만큼의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는 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청자의 입장인 내게는 몇몇 출연자들에게 이번 작품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게 느껴졌다. 배우 차승원의 경우 선조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수라간에서 더 많이 마주칠 것만 같았고. 천하의 연진이도 입 닫게 만든 말솜씨의 나이스한 강아지 이미지를 과연 정성일 배우가 벗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사실 가장 큰 궁금증이자 의문은 배우 강동원에게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에게는 배우로서의 꽤 많은 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매번 배어 나오는 사투리.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얕은 호흡과 그로 인해 더 처참한 대사 전달력. 그리고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올려준데 절대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공을 세웠겠지만 그와 동시에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 벚꽃을 뿌려준 것만 같은 그놈의 용안(?)까지.
그 후광효과를 깨고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기까지 무던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특히 최근 작품들에서는, 아쉽다기보다 절망에 가까웠다. 그에게 단단히 결속되어 벗겨지지 않는 이 껍데기를 과연. 이번에야말로 주연 배우의 위치에서 벗어던질 수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였다.

그러나 작품 바깥에서의 상황은 작품 속 인물들이 맞이한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자신의 것이 아닌 영광을 가진 종려(박정민;AKA 짜증계의 신예)와 거적때기에 불과하지만 청의검신으로 불리게 해 준 옷과 검을 걸친 천영(강동원)의 모습이 그러하다. 만인지상이라는 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지만. 붉은 옷과 그 한 글자를 제외하면 그저 생떼 쓰는 수염 난 늙은 아이에 불과한 선조(차승원)까지도.
등장인물들은 껍데기가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거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기도 한다. 좋든 싫든 영화 속 인물들은 상황에 맞게 자신이 지녀야 하는 그 껍데기를 꾸깃꾸깃 눌러쓰고 삶을 연장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배역과 배우로서의 껍데기를 가장 먼저 벗어던진 사람은 놀랍게도 정성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이 켜켜이 쌓인 껍데기 논란(?)에 가장 맞닿은 통쾌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청의검신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겐신은 자신의 신분을 은닉하기 위해 꾹꾹 눌러썼던 갓을 홱 내팽개치고 말에 박차를 가한다. 앙다문 입 사이로 그의 숙적을 향한 결의가 비치는 순간은 짧았지만. 하도영의 남은 그림자를 완벽히 날려버리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정성일 배우는 자신의 숙적과의 결투를 고대한 장수인 겐신 그 자체였다.
겐신으로 재탄생한 정성일 배우와 가장 많은 대립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천영이다. 그리고 다행히 배우 강동원은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약점을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했다. 이 정도면 "스울 사람"이라고 봐도 될 법한 수준의 언어 구사. 염소 같은 목소리의 소리침이 아닌. 그래도 제법 포효의 느낌이 나는 호통과 절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게 스턴트 장면을 해낸다는 장점까지 십분 살려, 두 사람의 대결 장면은 꽤 긴장감 넘치는 "대등한"승부를 보여준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작품 전체로 보았을 때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롯이 이야기의 흐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개연성도 마음에 날아와 박히지 않고. 종려와 천영사이의 오해가 빚어내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 꽤 많은 장면들이 그저 다음 장면을 위한 흐름에 쓰일 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 쉽지 않다. 그로 인해 극 중 존재하는 모든 갈등이 깊어지기보다 퍼지기만 해서 극의 후반부에 도착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또한 극 중 인물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너무 극대화되어.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어느 작품에나 악역이나 천덕꾸러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애초에 "그럴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형성되기 쉽지 않다. 분명 장면들은 아름다운데. 그 안에서 뛰어노는 인물들에서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결국 극 중 거의 모든 배우들의 선입견을 날려버릴 만큼 애쓴 영화임에는 확실한 이 작품은. 볼만한 장면들이 분명 많음에도 불구하고 봐줄 만한 작품이 되지는 못했다.
[이 글의 TMI]
1. 어제 상체 PT 받고 버스 손잡이도 못 잡는 휴먼이 됨.
2. 아보카도랑 눈치싸움 드럽게 힘드네.
3. 2025년 다이어리 구매 완료
4. 왜 아직 월급날 아니지?
#리뷰 #영화리뷰 #munalogi #넷플릭스 #전란 #박정민 #강동원 #정성일 #진선규 #김신록 #리뷰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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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락하는 존재들에 대한 헌사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 디렉티스 컷’을 오직 이미지에 취한 영화라고 평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강렬한 미장센을 통해 '추락하는 존재들'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스턴트맨 로이(Roy)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추락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에 가깝다.
영화는 192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시작된다. 스턴트 연기 중 사고를 당한 로이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을 잃은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다.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또한 농장에서 사고를 당해 다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 둘은 모두 추락을 겪은 인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추락’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위태로운 상태를 상징한다.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자, 사랑에 실패한 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 모두가 이 영화 속에서 '추락하는 존재들'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쓴 편지의 우연한 추락으로 연결된 이들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로이는 본래 알렉산드리아를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자살을 위한 약을 얻는 것) 일종의 도구로 이용하려 하지만, 그녀의 적극적인 개입은 로이의 이야기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간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오디어스(Odious)라는 폭군에 맞서는 다섯 영웅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환상 속 이야기 또한 로이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야기 속 영웅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들 중 특히 중요한 인물은 가면을 쓴 영웅 검은 도적(The Black Bandit)이다. 로이가 이야기의 화자로서 스스로를 반영한 캐릭터인 이 도적은 끊임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패하며, 결국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켜 결말을 바꾸려 한다. 환상 속 세계에서조차 인물들은 추락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이를 통해 영화는 추락은 불가피할지언정, 그것이 끝이 아니며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 폴은 영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 특히 스턴트맨들을 조명하기도 한다. 로이의 직업은 스턴트맨이며,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화면 속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배우가 영웅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철저히 소외된 존재이고, 그가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얻은 것은 부상과 절망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스턴트맨들의 희생을 조명하며,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의 추락을 가시화한다. 더 나아가, 타셈 싱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추락하는 자들’ 위에 세워진 것임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들은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로이는 자신의 내러티브 속에서 모든 것이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검은 도적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거부하며,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의 반전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방향성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추락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병원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 알렉산드리아가 웃으며 영화 속 스턴트 장면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희망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더 폴이 진정으로 조명하는 것은, 추락을 거스르려 몸부림치는 인간의 숭고함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떨어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사랑을 잃고, 희망이 꺼져가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그저 추락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며 다시 일어서려 하는가? 로이는 절망 속에서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어 간다. 검은 도적은 패배하지만, 마지막까지 싸운다. 그리고 스턴트맨들은 매번 넘어지지만, 다시 몸을 일으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영화의 환상적인 영상미는 로이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삶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 투영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말한다. 추락은 필연이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고 그렇기에 더 폴은 모든 낙오한 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추락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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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개봉 2일차 100만 돌파한 <범죄도시4>.
트리플 천만 가나요?
4월 마지막주 씨네뉴스 함께해요
<범죄도시4> 역대 한국영화 사전 예매량 신기록 달성
영화 <범죄도시4>가 개봉일 24일 예매율 90%를 뛰어넘었습니다. 같은 시각 예매량은 83만 4000여 장을 넘으며 지난해 1000만 영화에 오른 전편 <범죄도시3>의 개봉 당일 예매율과 예매량을 모두 뛰어넘으며 흥행을 예고했습니다. <범죄도시4>의 손익분기점은 약 350만 명으로, 현재의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손익분기점을 뛰어넘어 1000만 영화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찬욱 <동조자> 전 세계 20개국 1위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동조자>가 전 세계 20개국 1위에 올라섰습니다. <동조자>는 남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에 미국으로 떠난 베트남 스파이가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그립니다. 1인 4역을 소화해 내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시아계 미국인 ‘소피아 모리’로 등장하는 산드라오의 연기가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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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주연의 스릴러 영화 <설계자>가 5월 29일 개봉한다고 합니다. 영화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강동원을 비롯해 이무생, 이미숙, 김홍파, 김신록, 이현욱, 이동휘, 정은채, 탕준상까지 연기파 배우들이 한데 모여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영화 <원더랜드> 티저 예고편, 캐릭터 포스터 공개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 대세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으는 영화 <원더랜드>가 지난 23일 캐릭터 스틸, 티저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가족의 탄생>, <만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신작으로 오는 6월 개봉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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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호〉, 신파가 죽어야 한국영화가 산다
암울한 모습의 2092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승리호〉는 나쁘지 않은 오락 영화다. UTS라는 거대 기업이 주도하여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버리고 화성 이주를 시도한다는 게 영화의 큰 얼개다. 여기에 우주 쓰레기 청소부가 UTS의 음모를 발견하고 쫓는다는 설정이 더해진다. 캐릭터들은 적당한 매력을 갖췄고 비주얼은 ‘한국형 우주영화’라는 수식어를 빼고 봐도 어색함이 없을 만큼 빼어나다. 〈승리호〉는 적당한 교훈과 재미, 시각적 쾌감이 어우러진 영화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다. 〈승리호〉의 이야기 동력은 신파다. 태호(송중기 배우)의 부성애가 없으면 영화는 전개되지 못한다. 부성애가 언제나 신파인 것은 아니지만, 〈승리호〉의 부성애는 신파가 맞다. 부성애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에 기대 그 어떤 새로운 감정선도 만들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신파를 욕함에도 왜 신파는 상업영화에서 걷어지지 않는 걸까?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신파가 보편적 정서를 대변한다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파는 주로 가족적 감정에 기반을 둔다. 가족이 주는 평온함, 안온함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많은 상업영화는 이 안온함·평온함이 어떻게 깨지고 복원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문제는 여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관객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형 신파가 가족주의를 당연한 감동의 코드로 삼을 때 상상되는 대중의 범주는 지나치게 협소하다. ‘정상가족’으로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가족 실천 혹은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이 여기저기서 가시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주의적 신파가 ‘보편적 정서’의 구체적 내용으로 상상될 때, 이들은 ‘대중’의 범주에서 배제된다. 가족주의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대중으로 인정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대중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언젠가부터 한국영화는 상업성을 들먹이며 규범적 정상성의 경계를 확정짓는 판관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도 한국영화에 그런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가족주의 신파는 보편적이라서 선택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상업영화에 선택됨으로써 보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선택의 이유는 창작자의 무능(혹은 게으름)이다. 변화를 마주하길 거부하고 익숙한 상상력을 아무 고민 없이 끌어다 쓰는 것이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설령 한때 가족주의적 신파가 ‘보편’ 정서였다 하더라도, 이제는 변화한 현실에 맞는 다양한 감정선이 영화의 전면에 드러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무책임한 자기복제를 반복하며 철 지난 상상력을 재생산하는 한국영화의 가족주의적 신파는 폐기되어야 한다.
〈승리호〉가 ‘한국형 SF의 시작’이 아닌 ‘한국형 신파의 게으른 반복’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다. 신파의 폐기는 상업영화가 사는 길이다. 상업영화가 관객 수를 이유로 낡고 보수적인 습관을 반복하는 한, 기민한 감각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내는 영화는 영원히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다. 〈승리호〉도 같은 꿈을 꾸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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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트 블란쳇의 괴물 같은 지휘에 내내 압도당하다
성공이란 이런 것
성공이란 이런 것이다. 인터뷰 대기 중인 타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청중 앞에 섰다. 인터뷰의 취지는 새로운 책을 홍보하는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 대화가 시작된다. 첫 번째 주제는 성별에 관한 이야기다. 남/녀 지휘자를 나누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에 관한 질문이다. “아니요. 큰 차이점은 없는 것 같아요. 우주 비행사를 예로 들어봅시다.” 영어 발음을 들려주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를 설명한다. 다른 소재는 타르의 파트너다. 특별한 성 정체성이 타르의 마에스트로 생활에 지장이 갔냐는 질문이다. 딱히 없다. 다른 주제는 지휘자에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지휘자들이 인간 메트로놈이 된다는 것에 동의하나’는 질문이다. 다음 주제는 객원 지휘자와 메인 지휘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의견을 설파하는 타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베를린의 마에스트로답게 답변에 머뭇거림이 없다.
누가 봐도 타르는 성공한 인물이다. 물론 클래식계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팬데믹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그녀는 업계 최고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타격까지는 오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리디아. 오늘도 여지없이 일을 하고 있다. 리디아의 수행비서로는 프란체스카가 있다. 일정을 공유하는 프란체스카. 그런데 이유가 무엇인지 프란체스카에게 뭔가 이상이 있는 듯하다. 관객들만 아는 찜찜함은 일단 뒤로 무시한다. 대학교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는 리디아. 어떤 남학생이 수업에 들어왔다. 리디아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교수로서 존경도 받고. 성공한 마에스트로로서 명예와 권위를 쓸어 담고 있었다. 이제, 그 높은 위치에서 조금씩 비틀대기 시작한다.
곡선으로 휘기
이 <타르>는 불친절한 영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명확한 서사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통 a라는 일이 있으면 b가 그 결과로 따라온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 중 하나다. 당연하다. 우리가 아는 세상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화법은 그런 쪽이 아니다. 리디아가 처하는 수많은 상황이 있다. 이 갈등의 배경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실제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을 했는가? 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리디아와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선배 마에스트로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연출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할 것 같은 리디아의 마에스트로 활동과도 관련이 있다. 이 장면들이 어떤 식으로 연출됐는가? 는 후반부 리디아가 어떤 인물들과 회의를 진행하는 신에서도 알 수 있다(물론 이 장면 아니어도 이런 연출은 자주 보인다). 영화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삭제해서 더 거리감이 있는 시각으로 주인공을 바라보게끔 도와준다.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연출 방식은 영화의 가장 처음, 두 번째 시퀀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살짝 ‘이거 이런 영화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볼 때 극장에 살짝 늦게 들어갔다. 영화관에 들어가니 상영관에 가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는 영상이 나왔다. 그리고 직후에 영화 첫 장면이 나왔다. 첫 장면이 뭐였을까? 바로 엔딩 크레디트이다. 엔딩 크레디트는 보통 ‘엔딩’에서 나오니까 이 장면은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 모순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프닝을 시작하는 영화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이 굉장히 길다는 점, 바로 직후의 인터뷰 신이 사실상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는 세 가지 소재였다는 점, 극후반부에 대한 묘한 수미상관이 그에 대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순서를 뒤엎고 시작한 셈이다. 또 앞 문단에도 썼던, 리디아와의 인터뷰는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보통 이런 연출 방식을 가졌던 영화는 차고 넘쳤다. 이번 달 개봉작에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리디아의 행보를 전반부에서 어떻게 수거했는지를 생각하고 보니 <타르 TAR>의 성과가 눈에 들어왔다.
운동과 방향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는 방향이다. 영화는 많은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서 타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이 몇 번 나온다. 그런데 그 와중에 쿵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귀찮은 것이 스크린을 타고 관객에게 까지 전달된다. 이 소음 연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흥미롭다. 어쩔 때는 등 뒤 스피커에서 들린다. 또 어떤 때는 오른쪽 뒤에서 들린다. 이 소리의 방향은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동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영화는 한 장소에 또각또각 걸어가는 인물들의 동선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어떤 일에 처하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리디아가 이런 일들을 맞이하는 이유, 자아가 약해서는 무조건 아니다. 오히려 리디아는 자기만의 세계와 예술세계를 확실하게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리디아가 여러 일들에 직면하는 이유는 이렇게 뚜렷한 자기 주관 때문인 걸로 묘사된다. 영화가 이 예술세계로 인해 무너지는 내면을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은 영화에서 가장 큰 신선 함이자 강점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강박과 불안이라고 하는 것의 속성을 탐구한 것이다. 글쓴이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잘 생각해 보면, 아예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을 나이가 들수록 못 봤던 것 같다. 다들 마음속에 불안 하나쯤은 품고 산다. 이렇게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은 늘 일상 속에 있다. 그리고 어디서든 갑자기 튀어나온다. 이는 영화에서 제시되는 음악 중 하나인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의 결함을 어디에서 찾는가?라는 영화의 발상이 <4분 33초>의 접근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매번 생각 외의 어떤 것으로 예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어떤 것은 빼고 줄이면서 지독한 예술과 삶의 불완전성을 그린다. 처음 느꼈다. 없어지게 함으로써 이 모든 인생사의 일들이 자연재해처럼 느껴지게 하는 표현방식도 있다는 것을.
그냥 어려운 영화가 아니야
이렇게 어려운 영화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연출하지 않았다. 이런 연출 방식과 신선한 인물서사를 그리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다. 이번 아카데미 수상이 유력하다고 알고 있다. 이 값을 한다. 영화 전체적으로 러닝타임에서 휘몰아치는 광기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잔잔한 것이 있다. 이렇게 모순적인 설정을 보여주기 위해 이 리디아라는 인물은 내면에서 단단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 단단한 내면이 점점 약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인물은 두 개의 큰 에피소드를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혹시?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인물의 내면을 그렇게 놀랍지 않다. 이 글을 쓰는 글쓴이나 읽는 여러분도 다 이런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이 봐 왔다. 이건 사실 말이 쉽지 실제로 캐릭터를 구현하고 표현하기는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입체적인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타르가 담당하는 대사가 굉장히 많다. 우선 타르가 등장하는 인터뷰 신은 긴 롱테이크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말 많은 인터뷰를 롱테이크로 했다? 안 그래도 많아 보일 것 같은 장면을 어떻게 외웠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 롱테이크의 장면만 덩그러니 있는 것은 또 아니다. 리디아가 처한 입장이 영화에서 다양하게 제시됐기 때문에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야 한다. 분노, 좌절, 우울함, 즐거움, 행복 같은 감정 이면에 돌아버릴 것 같은 인물의 내면을 품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이 끌고 가는 영화 서사를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렇게 구구절절 영화의 특성을 썼다. 이 영화에 설명하고 싶은 것들이 굉장히 많다. 신선했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불규칙적인 사건 제시로, 위치를 뒤엎어 만든 인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직선적으로는 달리지만 좀 특별한 방식으로 서사를 전복하고 있다. 영화는 전형적인 것을 아예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 집에 쫓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집에 쫓아간다고 하면 보통 누군가가 사는 공간을 생각하기 쉽다. 여기서 뒤집어진다. 이 어떻게? 의 방식이 영화에서 사건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인물을 낙하시켜 떨어트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호하게 표현해서 인물에게 더 집중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집중시키거나 그렇지 못하게 영화를 촬영을 설정한 부분도 흥미롭다. 이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비유나 리다아가 안고 있는 묘한 어설픔, 약간의 섹슈얼한 몇 인물들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또 좀 특이한 제목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영화 제목은 좀 이상하다. ‘타르’와 ‘TAR’가 두 번 들어간 것이다. 타르 타르? 뭔가 과거의 영화 제목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TAR가 총 두 번 반복된다. 이 부분은 흥미롭다. 영화 내적으로 리디아가 작곡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예술과 인생의 상관관계를, 또 둘 중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묘사한 인물 설정이 탁월하다고 느껴진다.
이 외에 아쉬웠던 점은 동양인에 대한 묘사다. 뭐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상대적인 걸 보여주고 싶어 이런 연출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얼핏 보면 이 나라 사는 분들이 살짝 기분 나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또한 영화의 엔딩 역시 이런 맥락에서 좀 ‘아니다’라고 느낄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장면을 지켜보는 입장이 어떤 사람들과 오버랩되는지를 생각해 보니 영화의 모호한 부분이 좀 깔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호불호가 갈릴 엔딩이라은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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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그댈 속일지라도
*스포일러 있음*
포스터부터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배경, 설정, BGM, 전개와 결말까지... 굉장히 '동양'스럽다. 뻔하디 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환상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디즈니답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떤 애니메이션이든지 동양의 가족으로 넘어오면 무조건 희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간다. 라야의 아버지인 벤자 족장은 딸을 살리는 대신 자신을 희생하고, 시수의 남매들은 시수를 대신해 희생하고, 나마리는 어머니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한다. 부모든 자식이든 형제든 어느 한 쪽은 희생하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같은 '가족'을 다루더라도 [엔칸토]나 [코코]에서는 그들의 단합과 화합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개개인의 역량과 감정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만, 그래도 우린 가족이라는 식이다. 가족단위를 개인의 집합으로 보느냐, 공동체의 일환으로 보느냐, 등등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이제는 이런 틀을 깰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게 별것 아닌 듯해도, 은근히 이야기를 만들 때 제약을 가하게 되고 그러면 이야기에 점점 차별성이 사라지게 된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배경이 현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려 해도, 뿌리 깊게 박힌 인식들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어린 소녀가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성장해서 세상을 구한다는 도입부 역시 그다지 특색 있는 편은 아니다. 판타지 액션 소년만화에서 흔히 봐왔던 설정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계기가 좀 싫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순수한 의지나 목표 때문이 아닌, 책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움직이게 된다는 것 자체가 괴롭다. '네가 마지막 희망이야!'라는 식의 무거운 짐을 아이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 자체가 싫달까...
그럼에도 한 가지 좋았던 점을 뽑아보라고 한다면 라야의 아군이 뻔한 듯, 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일 경우에는 함께하는 '파트너'를 지정할 뿐, '팀'을 만들지는 않는다. [겨울왕국], [주토피아], [모아나], [라푼젤]... '팀'을 구성해서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것은 보통 소년만화의 주된 흐름이다. 마법 소녀 물에는 팀을 꾸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보통 모험을 한다기보단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나 라야는 다섯 대륙의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그들은 서로를 믿고 힘을 모아 화합하기에 이른다.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힘을 합친다는 전개는 뻔하지만,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것만은 굉장히 신선한 듯하다. 내가 다른 영화에서 그런 걸 못 찾았을 수도 있고.
안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 보는 내내 재미는 있었다. 영상미도 있었고, 오히려 뻔한 스토리라서 부담없이 봤다고 해야할까? 기억에 남는 명작이라고 할 순 없어도, 볼만한 영화인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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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미완성인 퍼즐
이 글은 디즈니 플러스 [나인 퍼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번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오는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는 바람에 이젠 선입견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은 바로 "애매하다'라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긴 했다.
하지만 85퍼센트는 족히 넘는 확률로 이런 감정을 느끼다 보니 해당 OTT에 대한 기대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고 작품을 본다면 오히려 더 많은 작품과 접할 가능성도 크고, 그중에서 나의 이런 오만함을 비웃어줄 작품이 나타날 거라는 생각도 동시에 있긴 하기에. 그런 미련에 가까운 마음이 내가 계속 디즈니가 제공하는 시리즈에서 관심을 거둘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나에게 [나인 퍼즐]은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내 마음속 이 짙은 구름을 선입견이라는 견고한 비석으로 바꿔버리는 작업에.
사진 출처:한겨레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윤이나(김다미)라는 인물의 설정이었다. 두드러지는 "영 앤 리치"콘셉트는 아마도 최종회까지 보고 나서야 왜 그녀의 재산에 대해 과장되었다라고 느낄 정도로 말해야 했는지에 대해 "느끼게"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좋게 봐준다면 그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견은 없다.(아님)
그러나 그녀가 인물로서 가지는 매력에 대해 말하자면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에 가까울 지경이다. 제로에 가깝다는 말이다. 프로파일러로서의 실력을 믿고 건방진 것인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이 한 톤으로 다 해결되는 대사. 다 큰 성인이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팔랑거리는 듯한 이나의 몸짓. 감을, 혹은 감길 생각이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깜빡이는 눈. 거기다 끼얹은 죽은 삼촌의 막대한 유산을 받아 번쩍번쩍하기만 한 그녀의 모든 물건들.
불완전한 그녀의 상태를 그렸다고 하기엔 그녀의 자아는 너무도 견고하고. 그러면서도 그녀의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정돈되어 있다. 그러니 이나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기이함일 수밖에.
사진 출처:KBS연예
사실 더 큰 문제는 실패한 외적인 설명을 제외하고서라도 반드시 이끌고 가야만 했던 소프트웨어적인 설정들에서도 대패(=선거비 한 푼도 못 건진 이준석처럼)했다는 것이다.
소시오패스나 ADHD를 기반으로 한, 트라우마를 가진 천재 캐릭터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녀의 재능은 출중하다기보다 직감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사건의 배경에 대한 조사가 이미 다 되어 있는데 카레남(A.K.A김한샘, 손석구)은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다시 파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고. 이나의 추리 속도가 한샘과 비교했을 때 정말 "찰나의 순간"만큼만 빠르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화만 서로 잘 받았다면 아마도 이미 잡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다면 재기 발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캐릭터로서는 성공했느냐. 한다면 이마저도 실패에 가깝다. 이나는 10년 전의 그 사고 때도 이런 모습을 버리지 않았다. 이 태도가 내겐 비호감일지언정 그녀가 극을 관통하며 반드시 지켜야 할 아이덴티티 같다고 느꼈지만. 그녀의 이런 모습마저도 마지막화에선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세상엔 둘도 없이 대를 이은 죄인이 되어버린다.
진실은 뼈아플 수 있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잔인할 수는 있지만. 그녀가 말하고 보여주는 모습은 설득당하기엔 조금은 성급했고, 밀고 나가기엔 거부감이 컸다.
사진 출처:뉴스 원
그리고 이 드라마의 형식에 대해 말한다면. 이마저도 아쉽지만 내 취향에는 조금 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분명 눈치챌 수 있는 떡밥은 많았고, 연결했을 경우 꽤 맞아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애초에 범인은 그 필드 밖에 있었기에 트릭이나 알리바이를 설명할 의무 따위는 홀라당 없어진다. 시리즈의 말미에 가서야 마치 고자질처럼. 얘가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방식의 추리물은 내 취향이 아니기에. 견고하게 만들어진 트릭들에서 매력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범인의 정체에 대해서도 반전을 주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알겠으나. 이 "사실"이 오히려 범인이 저지른 그 어마어마한 연쇄살인에 있어서의 의문을 갖게 한다. 이는 아마도 "누가"에 집중하기보다 "왜"와 퍼즐조각에만 집중하게 했던 것이 마지막에 가서야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나마 머리에 남는 것이라곤 고해성사에 가깝다 할 수도 있을 살인자의 마지막 비명소리뿐. 분명 퍼즐은 다 완성되었건만 내가 들고 있는 퍼즐은 어딘가 마치 불에 타 버린 듯 뻥 뚫려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글의 TMI]
1. 이번 주말에 나는 들기름 막국수를 먹을 것이야.
2. [브링 허 백] 조조로 예매했는데 극장에 나 혼자인 거 같은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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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말도 괴물이 밤말도 괴물이 듣는다는 마을'
자그마한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예민보스 덕분에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가족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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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강아지도 '개' 귀엽다! 행복만 가득해지는 [도그데이즈] 메인 예고편 공개? 2024년 기분 '개' 좋은 영화 2월 7일은 극장에서 [도그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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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약물 중독 치료시설의 충격적인 실체가 드러난다!
마약에 찌들어 범죄를 일삼던 '유타'는 자신의 삶에 지쳐가던 찰나 마약 중독 치료 센터를 알선해 주는 '우드'를 만난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치료 센터에서 마약을 끊은 '유타'는 '우드'와 함께 일을 하게 되고, 이곳이 마약 중독자를 치료해주는 척하며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뒤로는 마약을 알선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제 마약 중독자로 재테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