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1-22 07:41:11
‘말 없는 사람들의 말’, 어느 다큐멘터리스트의 집념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영화를 어렵게 만드느냐고. 알기 쉽게, 친절하게 만들 수는 없느냐고. 엄마가 화내며 답한다. 그럼 내가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영화는 내가 목격하고 기록한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딸의 질문에 화를 내는 재일조선인 다큐멘터리스트 박수남은 아마도 자신이 겪고 기록한 시대가 결코 쉽고 친절할 수는 없는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치열하고 집요하게, 종종 ‘어렵고’ ‘불친절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10만 피트의 길이, 50시간 분량의 필름이 남았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박수남과 그 딸이 남겨진 기록과 박수남의 삶을 교차로 엮어 만든 영화다.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의 문제에 천착한 박수남이 최초에 선택한 무기는 ‘펜’이었다. 그러나 ‘한계’를 마주했다. 박수남이 만난 재일조선인은 침묵하는 일이 많았다.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몸을 부르르 떨 뿐 그 세월을 어떻게 다 이야기하겠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박수남은 그때 결심했다.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무수한 아픔이 만들어내는 이 떨림을 온전히 담아내는 영화에 투신하겠다고. 말 없는 사람들의 말을 영상으로 담아내겠다고.
1935년생 박수남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를 고민했다면, 그와 다른 세대인 나는 영화를 보며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박수남을 일평생 사로잡은 재일조선인의 그 무수한 떨림이 관객의 신체에까지 도달하고 새로운 물음을 촉발한 것이다. 영화가 주장하듯 기억이 보존되는 한 가해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영화를 통해 되살아나는 목소리들은 기억의 수명과 가해 책임의 기한을 넉넉히 늘린다. 박수남의 기록은 후대의 기억이 되었다.
영화는 지난 100여 년간 재일조선인이 겪은 문제를 폭넓게 다룬다. 고마쓰가와 사건, 침묵과 가난에 시달리는 피폭 재일조선인과 한일 양국 피폭 피해자의 갈등과 연대, 제암리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 인터뷰, 위안부 공론화, 군함도……. 딸 박마의가 갈무리한 박수남의 기록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차별과 오욕으로 굴곡진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그려낸다. 더불어 그 한복판을 살아낸 박수남의 삶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교차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당하게 차별받는 집단의 당사자로서 차별에 맞서고 차별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서서히 깨닫는다.
148분의 긴 상영 시간 동안, 나는 박수남의 집요함에 압도당했다.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과 그로 인해 생성되는 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최초의 강렬한 각성이 어떻게 개인을, 집단을 추동하는 거대한 힘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어서였다. 이 힘은 박수남이 자신의 집념을 타인의 아픔을 기록하는 데 썼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증폭된다. 박수남의 작업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타인의 목소리에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부여해 결국은 되살아나게 한다. 치열한 기록이 윤리와 정치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정작 박수남은 과거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보지 못한다. 건강 문제로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는 당시의 장면을 기억해낸다. 그녀가 과거 기록한 것이 더는 보지 못하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낸다. 이것이 기록의 힘이다. 박수남은 스스로 기록의 의의를 증명해낸다. 시대를 관통해 세대를 잇는 집요한 기록 의지가 내내 놀라운 힘을 뿜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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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월 1주 최신 개봉영화!
경관의 피 The Policeman's Lineage , 2021
조진웅과 최우식의 만남!
영화 "경관의 피"는 위법 수사도 개의치 않는 광수대 에이스 강윤과 그를 감시하게 된 언더커버 신입경찰 민재의 위험한 추적을 그린 범죄수사물 입니다.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두 경찰이 새로운 수사에 투입되며 신선한 팀워크와 긴장감 넘치는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경관의 피"는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 조진웅과, 새로운 연기 변신을 선보일 배우 최우식의 신선한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수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
그리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경찰 민재(최우식)!
두 경찰의 색다른 팀워크!
첫번째 추천영화 "경관의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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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2게더 Sing 2 , 2021
씽의 후속작 씽2게더
'씽'의 후속작 "씽2게더"가 개봉을 하는데요
애니메이션 "씽2게더"는 오디션 그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쇼 스테이지에 오르기 위한 크루들의 고군분투 도전기를 그렸습니다.
'씽'을 통해 연기력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래 실력까지 인정받은 매튜 맥커너히, 스칼렛 요한슨, 태런 에저튼, 리즈 위더스푼, 토리 켈리 등
글로벌 흥행 스타들이 '씽2게더'로 완전체 컴백할 것을 예고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또한 대한민국 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영과 윤도현이 활약을 합니다
진영은 춤이 두려운 가수 조니 역할을 맡고 YB의 보컬 윤도현은 클레이역을 맡아 열연을 펼칩니다.
콜드플레이,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아델, 숀 멘데스, 카밀라 카베요 그리고
BTS까지 글로벌 가수들의 히트곡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
두번째 추천영화 "씽2게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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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 海灘的一天 , That Day, On The Beach , 1983
39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하는 거장의 빛나는 데뷔작!
대만 뉴웨이브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의 데뷔작 "해탄적일천"이 39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합니다다.
영화 "해탄적일천"은 어느 날 해변에서 남편의 실종 소식을 들은 ‘자리’와 13년 만에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웨이칭’,
두 사람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해가는 시간을 그린 영화입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데뷔작부터 걸출한 실력을 인정받아 제28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촬영상 수상, 제20회 금마장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노미네이트 등
내로라하는 아시아 영화제를 섭렵하며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내 대만을 대표하는 거장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시대적으로 앞선 중화권 여성 서사 담은 스토리
세번째 추천영화 "해탄적일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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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피아니스트 fausse note , Broken Keys , 2020
제73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자 새해 첫 감동 실화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는 레바논 출신 지미 케이루즈 감독이 2016년에 제작한 단편영화 '녹턴 인 블랙'을 장편화한 작품입니다.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가 된 시리아를 떠나기 위해 마지막 희망인 피아노를 구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 카림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 실화 바탕으로 한 전쟁 드라마죠
제73회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과 음악상 부문에서 레바논 공식 후보로 선정되어 그 작품성을 입증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다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IS의 근거지이자 이라크와 IS의 최대 격전지였던 이라크 모술과 레바논을 오가며 촬영되었고
레바논에서는 수천 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베이루트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촬영이 중단되었으며,
스케줄을 전면 재조정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위태롭게 가로지르는 피아니스트 카림의 긴박감 넘치는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
네번째 추천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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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샷 One Shot , 2021
95분 원테이크의 리얼타임 액션
영화 "원샷"은 예고된 테러의 배후를 아는 놈을 이송하기 위해,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들이 수감된 일급비밀의 섬에 도착한 네이비 씰과 놈을 탈옥시키려는 테러단과의 실시간 대결을 그린 원테이크의 리얼타임 액션 영화입니다.
원테이크로 촬영된 실시간 탈출을 그린 '원샷'은 미국 워싱턴을 위협하는 테러 정보를 입수한 CIA 정보 분석가와
네이비 씰이 검은 섬이라 불리는 테러리스트들의 수용소에 들어간 뒤 거대한 사건과 마주하면서 펼쳐지는
실시간 탈출이라는 독특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액션 영화의 새로원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리얼한 탈출기를 그려내며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원샷"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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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가 되지 못한 프롬 퀸
승자가 되지 못한 프롬 퀸
<피어 스트리트:프롬 퀸> 영화 후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벌여놓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영화 속 대사이자 내가 영화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이렇게 만들고 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피어 스트리트 시리즈를 재밌게 보았기에 프롬 퀸이 나온다는 소식을 매우 기대했다. 심지어 티저 이미지가 아주 아름다웠고, 기괴하면서도 힙했다. 영화도 그럴 줄 알았다. 피어 스트리트는 통일된 요소와 장르를 각 시대별로 다루면서 재미를 준다. 특히 슬래셔와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거기에 캐릭터들의 서사가 긴장감을 견디고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피어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단 이 영화는 그런 장점을 다 버린 영화이다.
탈락 후보 1. 긴장감 (연출)
1시간 30분 동안 지루했다. 슬래셔 영화를 보는데 지루했다. 리뷰를 쓰고 있는 글쓴이는 공포영화를 잘 보는 타입이 아니며, 혼자 보면 소리 없이 겁에 질리는 사람이다. 근데 이 영화는 그럴 필요도 없었고, 심심할 정도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첫 번째는 긴장감있는 연출이 없다. 그냥 피가 낭자할 뿐. 사운드 연출과 장면 연출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게 이 영화의 장르 특성이다. 그런데 연출이 아주아주 실망스러운 나머지 긴장감이 사라져 버렸다. 뻔할 대로 뻔한 연출로 어느 타이밍에 뭐가 날아올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악역이 연출감이 부족한 상태로 등장해서 "나오고 들어가고" 정도로 끝난다. 재빠르게 나와서 재빠르게 죽이고 퇴장한다. 두렵고 무섭지가 않다. 마지막에 강당으로 뛰어들 때는 바보 같기도 하다.
탈락 후보 2. 캐릭터
거기에 캐릭터 서사까지 빠졌다. 피어 스트리트의 장점은 캐릭터 서사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것이다. 캐릭터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 프롬 퀸은 재밌는 프롬 파티 퀸 대회를 가지고 그 후보들을 빠르게 소비해 버렸다. 서사와 캐릭터가 생겨나기도 이전에 죽여버렸다. 허무할 수도 없다. 정도 안 쌓이고 알지도 못하니까 그냥 죽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주인공마저도 설명이 부족해서 이 프롬 파티에 대한 목표가 흐려진다. 한 편으로 끝낼 생각이라 줄이면서 빠진 건지 아니면 아예 고려도 안 하고 만든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 방식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탈락 후보 3. 스토리
캐릭터가 설명도 안 된 채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이야기도 무너진다. 1988년 셰이디 사이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프롬 퀸을 선정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이 줄거리를 텐션있게 끌고 가려면 주인공이 프롬 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시청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영화에서 너무 약하다. 주인공을 괴롭히던 그룹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남자를 가지고 싶은 건지, 바뀌고 싶은 건지 모호하기만 하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건은 대화로만 힌트가 주어진다. 이런 것은 오히려 흥미롭게 작동할 수 있었으나 다른 스토리가 연약해지며 함께 연약해졌다. 결말부로 가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건이 반전의 꽤 영향을 미치는데 그 힌트가 너무나도 미묘하다. 잘 숨겨서 안 보이는 느낌보다는 그냥 뭐가 없어서 안 보이는 느낌이다. 이런 장치들도 얕디얕아 스토리는 빗물로 만들어진 웅덩이만큼의 깊이를 가지게 되었다. 왜 피어스트리트를 달고 피어스트리트의 저주를 활용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왜 피어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달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무엇도 닮은 구석이 없다. 셰이디사이드라는 지역 빼고는 없다.
최종 퀸. 포스터
이 영화에서 가장 잘난 부분은 포스터다. 포스터는 힙하고, 패러디를 적절히 써서 예쁘게 잘 뽑았다. 그 덕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과거의 영화들을 떠올리는 포스터와 각 캐릭터의 성격이나 파트너를 알 수 있는 적절한 정보도 담겨있다. 포스터는 화제가 되어 SNS에도 돌아다녔다. 영화와 관련된 유일한 승자는 포스터다.
이 영화 내에서 그나마 남는 게 있다면 배우들이다. 수재나 선 배우는 부족한 서사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다. 주인공은 미친 듯이 답답하니 수재나 선이 맡은 메건만이 영화의 희망이다. 오컬트가 가득한 영화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여서 더욱 그랬다. 배우가 연기를 잘 해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배우들은 다 괜찮았다.
한 줄 코멘트
피어 스트리트 3까지만 보는 자가 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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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사랑하는 스웨덴 영화
❣️[Cinelab Curation]❣️
씨네랩에서 진행되고 있는 챌린지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는 스웨덴편을 진행 중인데요!
이를 기념해 특별 큐레이션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 스웨덴 영화들을 모아 봤어요❣️
소개해 드린 영화 외에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스웨덴 영화는 무엇이 있나요?
씨네랩과 함께 나눠주세요!🧡
아직 챌린지에 참가하지 않은 분들은 하단 링크를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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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마음 가는 방향으로
OVERVIEW
비밀 문자 누슈에 대한 매료로 연결된 두 명의 중국인 밀레니얼 여성을 과거와 현재에 걸쳐 따라간다. 수백 년 된 이 언어는 여성 공동체의 연대, 희망, 생존을 위한 은밀한 지원 체계로 작동하면서 중국 여성들을 세대를 넘어 하나로 묶어왔다.
REVIEW
예외는 있었겠지만, 수천 년의 중국 역사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했고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비밀 문자인 ‘누슈’를 통해 때로는 신세 한탄을, 때로는 이루지 못할 꿈을 적어 내려가면서 여자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연대할 수 있었다. 이제 교육 기회가 균등해졌고, 여성의 권리도 전보다 나아지고 있기에 ‘누슈’는 더 이상 계승되기 어려운 ‘잊혀져 가는 문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문자 ’누슈‘를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두 여성을 통해 ’누슈‘의 역사와 중국 역사 속에서 여성의 의미, 그리고 그들이 ’누슈‘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조명한다. 물론 ’누슈‘의 원래 의미와는 정반대로, 그저 예쁜 캘리그라피로만 인식하고 상업화하려는 관료들의 모습은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불평등 속에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기록하려고 노력해 온 중국 여성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전진수)
세상 다른 수많은 사회처럼, 중국 봉건사회 또한 여성을 기존 제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교육과 사회생활은 요원했고, 자연스레 여성이 스스로 남긴 기록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전족으로 발 뼈를 부수고 살을 뭉쳐 손쉬운 이동의 자유마저 금했다. 거기서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는 여자들은 자기들만 아는 문자를 만든다.
함께 괴로워했던 여자들만의 문자. 그 문자로 시를 짓고 노래를 하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자는 응원을 전했다. 아주 오래 비밀로 내려오던 문자는 세상에 알려진 후로 누슈(女书)라고 불린다. 문자 그대로 여자가 썼다는 담백한 명칭이지만 거기 얽힌 이야기들은 주렁주렁 많다.
영화는 누슈의 어제와 오늘을 고루 비춘다. 누슈의 전승자인 후신이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몇 년 전부터 누슈를 배우기 시작한 쓰무라는 인물을 더하고, 누슈를 실제로 집에서 배운 누슈의 마지막 명장이자 후신을 가르친 허 선생님까지 이어, 누슈를 계속하는 이들을 담는다.
이들은 누슈를 사랑하고, 누슈의 의미를 지키고자 하지만, 가뜩이나 생은 쉽지 않은 것. 의미까지 더해 업고 가기가 쉽지 않다. 세상은 이들의 누슈를 향한 애정과 같은 시선으로 누슈를 바라보지 않는다. 후신의 글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위한 자리에서 선물로 주어진다. 은밀한 여자들의 글씨였는데, 술잔을 든 남자들을 위한 선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글씨와 시로 시작한 누슈는 이제 춤과 공연의 대상이다. 누슈 글씨를 쓰고 있는 여자들에게 몰려온 남자들이 "마을 미녀"들이 글을 쓰고 있다며 동물원에 온 것처럼 굴고는 "친구 하자"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
후신은 누슈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지만 이혼의 기억을 “여자로서의” 실패로 여기는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 다재다능하고 누슈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는 쓰무는 약혼자가 쉼 없이 던지는 말을 들으며 고민에 빠진다. 하루 만에 누슈를 해석해 왔던 듬직한 남자라 생각했응 텐데, 아직 결혼도 하기 전부터 쓰무를 들들 볶으면서도 자기는 부담 주고 있지 않다 말한다. 이들이 사는 오늘의 누슈를, 누슈의 기억을 가진 허 선생님도 바라본다. 그는 오늘날의 누슈가 원래의 누슈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누슈 작품은 대다수가 자매애에 대한 것이다. 원부가를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누슈는 고통이 해소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마치 남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여성 간의 연대와 지지를 택했다.
여전히 마을에는 새 신부가 나오고, 새로운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그중에는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사랑 아닌 것들도 사랑을 가장한다. 그 허위의 이면에는 몰이해와 몰상식이 있다. 누슈를 인정하고 누슈를 위한 행사에 서 있지만 정작 누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들처럼. 사랑과 결혼을 말하며 결국에는 상대가 취해야 할 도리를 가르치려 드는, 결혼도 하기 전부터 임신에 좋다는 쓴 약을 먹이고, 밥 먹으러 가는 길에 입에 귤이나 넣어주고, 여자가 알아들은 말을 굳이 되풀이해 설명하는 남자처럼.
봉건제도 속의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남자들의 몰상식이 횡행할 때, 누슈의 노래 가사는 생생하게 살아 여기까지 전해진다. 왜 여자들은 마음껏 놀 수 없는지, 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지 묻는 노래 가사는 본질을 비춘다. 이런 질문은 새롭고 급진적인 사상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연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뿐인 것을. 대약진운동의 흐름 아래 남녀가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일을 했던 시절을 피부로 기억하는 이들은,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피부로 안다.
누슈를 둘러싼 남자들의 모습은 촌극에 가깝다. 어떻게 저러나 싶을 만큼 우당탕쿵탕 엉망진창이다. 방향성과 타깃조차 설정하지 않고서 상용화를 하겠다고 설치고, 누슈 관련 행사 무대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여성조차 세워놓지 않은 주제에, 제막식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현판을 떨어뜨리고 난리가 난다. 그들을 보며 역설적으로 누슈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21세기에 저러고 있다니 봉건사회에선 어땠을까. 욕하고 때리지 않으면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도망칠 수도 없는 발을 부여잡고 집안 모든 남자들의 발을 씻겨야 했던 여자들의 삶에 누슈가 어떤 의미였을지.
언어의 본질은 소통이다. 허 선생님과 후신 사이의, 편지를 읽고 틀린 문장을 바로잡아 주는 장면이 뭉클하니 아름다웠던 이유는 바로 그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글자는 의미를 갖는다. (마케팅도 거기서 시작했어야 했다. 누슈 상용화로 뭐라도 해보려고 한 멍청한 중국 남자들이여.)
세상의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양한 말을 듣고, 세파에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후신과 쓰무를 비롯한 동시대의 수많은 여자들은 자기 삶을 살아간다. 어떤 여자는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이 너무 힘드니 그냥 이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누슈를 받아들인 이들은 앞길을 몰라도 마음 편한 길로 걸어가 보겠다 한다. 내가 떠받들어 살려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강해질 때 새롭게 피어날 세상임을 인지한 것이다.
이들은 누슈를 통해 과거와 대화하면서 오늘을 넘기고 내일로 향한다. 누슈 가사 속의 든든한 큰언니들이, 괴로운 한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모르고 가는 길이라도 씩씩하게 나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2023. 04. 29. 17:00 CGV전주고사 8관 (247)
2023. 04. 30. 19:3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358)
2023. 05. 01. 16:30 CGV전주고사 5관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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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하지 못한 첫사랑과 다시 헤어지기 위해 떠난 여행
여행길에 나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행을 떠난 남자 지미(허광한)다. 혼자 집에 돌아온 지미. 가족들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지미는 가족들에게 "혼자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이제 어엿 중년이 된 지미. 쓸쓸한 눈빛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우두커니 서서 길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놓고 온 것이 있는 듯하다. 생각에 잠기는 지미. 지난 기억들이 서서히 생각난다. 애써 떠오르는 옛 생각을 뒤로하고 그냥 걷는다. 어느새 도착한 지하철. 지하철에 타려니 예전 생각이 난다. 그 애도 그냥 여행 삼아 여기저기를 떠돈다고 했었지. 10대 때 만났던 아미(키요하라 카야). 지미와 아미는 18년 전 대만의 노래방에 처음 만나 운명 같은 만남을 시작한다.
우연처럼 만나
이 영화에서 우연은 두 인물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우선 첫째. 아미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우연이다. 아미는 여행 중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왜? 여행하며 살고 싶으니까. 이유가 간단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만이라는 나라를 고른 것도, 지미를 만나게 된 것도 전부 다 우연처럼 느껴진다. 더 나아가 아미 입장에서 대만이란 나라를 굳이 처음으로 고를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대만으로 건너가도 세계일주라는 목적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에 관한 부분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는지가 중요하다. 세계일주라는 목적이 중요하지 않다. 그 세계일주 동안 우연히 '어떤 것'을 통해 '무엇을'느끼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느끼는 것들을 아미가 '특정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밑줄 쳐져 있다. 이 매개체('특정 방식')의 속성을 생각해 보면 영화가 기획의도를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이 매개체는 받아들이고 느낀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연이라는 특정한 상황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연출로 보여준 촘촘함이 돋보였다.
다른 캐릭터 지미가 받아들이는 우연 역시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지미가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어느 관점에서 보면 좀 이상하다. 소위 말하는 개연성의 측면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지미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지미의 우연은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왜? 그것은 글쓴이가 바로 윗문단에 쓴 내용 때문이다. 지미의 우연은 지미의 어떤 것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아미의 '무엇'과 관련이 있다. 단지 이 영화가 아미의 우연을 돌아보는 지미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미의 최종 목적지가 아미와 관련한 무언가라는 것이 핵심이라서가 아니다. 지미가 그 여행을 통해서 하나하나 얻었던 것들이 아미가 대만에 있으면서 느낀 감정들과, 또 여주인공이 표현하는 무언가와 등치 되는 지점이 있다. 18년의 시간이 엇갈렸지만 남, 녀가 여행을 떠나 공통적으로 느낀 것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이게 로맨스 영화의 낭만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역할도 하지만 이야기의 주제 측면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지우고 싶지 않은 흔적
이 영화가 기존에 오마주한 작품이 있다는 건 양날의 검처럼 느껴진다. 우선 변주하고 있는 것. 영화의 내실이다. 이 영화가 인물들에게 남은 사랑의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전면에 내세우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의 첫사랑과 현재의 지미와의 관계는 시차가 18년이나 나고, 그 사이에 어떤 인생은 바뀌고도 남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랑의 힘을 생각해 보면 이 결과는 당연하다. 다들 첫사랑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바뀐 기억이 하나쯤은 있잖아? 영화는 지미의 여행으로 둘의 사랑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사랑이 두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갔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사랑이 가진 보편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속성을 영화의 특이점을 잡은 영리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가 비슷하다는 건 초반만 봐도 후반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어떤 점에서는 변주를 더 뒀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편지 중요하고. 시차 중요하고. 후반부 중요하고. 이런 것들이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예상이 되는 플롯이다(심지어 본작에 제목이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예술가가 어떤 영화를 오마주해서 무엇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소재까지 겹치게 보여줄 필요 있을까? 이는 후반부 아미가 보여주는 장면과도 이어지는 단점이다. 이 장면들은 원작과의 관계를 위해 의도적으로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이 오마주 원작과 공통점을 만들어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이 가진 내면을 이렇게까지 보여주지 않고, 그냥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이 영화만의 인장이 더 선명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물이 어떤 사정이었는지는 오리무중 하더라도, 더 지미의 입장을 부각함으로써 이야기의 날카로움을 깎는 것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은 또 다른 영화와의 오마주다. 어떤 영화의 오마주? 한국 기준으로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다. 이 영화와 본 작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어느 게 모체인지 너무 딱 알 것 같았다. 뭐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박찬욱 감독도, 홍상수 감독도, 이창동 감독도 이 영화와 비슷한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감독의 색채가 너무 최근이라서 겹쳐 보인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후반부에 힘을 줬다. 당연하다. 아니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쾌감 내지는 감동이 커야 할 텐데 그냥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가 생각나서 김이 샌다. 왜? 작년 개봉작인 영화와 공통점을 찾으면 쉽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인생의 목적을 잃은 남자다. 애써 쌓아 온 직업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위기에 처했고, 첫사랑에 실패했다는 아픔이 인물을 관통하고 있다. 반대측면에서 여자 주인공은 사연이 후반부에 드러난다. 그 사연을 뒤로하고 여주인공이 사랑을 만난다는 설정이 있다. 물론 작년 개봉작과 지금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할 때 번작이 더 좋은 영화다. 인물의 당위성이라는 측면에서 전작보다 성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실함에 기대어 줄거리를 거의 똑같이 가져가는 이 영화가 게으르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작과의 차이점? 90년대에 개봉했던 레전드 멜로. 90년대 그 멜로와의 차이점? 작년에 개봉했던 멜로 영화. 감독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특정 장르의 클리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거 어디 허씨요
허광한 배우는 다양한 얼굴을 담았다는 점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글쓴이는 허광한 배우가 대만의 송중기 배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사람이 미소년 타입이라서? 물론 비주얼적으로도 공통점이 있다. 송중기 배우가 최근에 나온 <화란>은 특유의 소년스러움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85년생의 중년이지만 소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허광한 배우 역시 마찬가지로 소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이 영화에서의 허광한 배우는 10대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대표적으로 과거의 지미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엄마 왜 저 안 깨웠어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부터 시작해 아미를 만나기 전의 모든 상황은 10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외모만 10대인 것이 아니라 행동도 10대다. 이걸 10대와 30대간의 거리감을 멀리 떨어트려서 묘사했기 때문에 생생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10대의 행동거지를 생생하게 포착한 허광한 배우의 노력도 대단했다.
허광한 배우는 시간을 18년을 빨리 감기해 청년이 된 지미의 모습도 능숙하게 묘사한다. 지미가 지하철에 있는 모든 장면은 정말 굉장하다. 촬영부터 이 인물이 고립됐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촬영에 인물이 호응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생동감이 넘치는 10대의 지미와는 다르게 30대의 지미는 사람을 대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듯하다. 허광한 배우는 지미의 닳고 닳은 내면을 포착해서 이 감정을 중심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10대의 지미를 생동감으로 보여준 것과 대조적으로 인물의 특성을 간결하지만 깊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별하기 싫다면
가끔 그런 이야기들을 만난다. 이건 진부하다. 하지만 분명 내 마음 속에 다가오는게 있다. 이 영화는 분명 그런 영화다. 익숙한 작법에 편승한 영화. 그리고 그 작법을 영화 안에서 대놓고 티 내는 영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지미가 떠난 여행은 각자 이별하지 못했던 사랑과 몇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충분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그대로, 우리 일상의 많은 분들은 이 세상과 빛을 내는 것 같다. 그 빛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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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주변을 잊지 않는 따뜻함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이 개인의 과거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과업이나 책임감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이들은 그저 자신을 위한 성취감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걸어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구원과 회복을 찾으며, 때로는 나 자신을 위해, 때로는 더 큰 목적을 위해 나아간다. 목표가 모든 사람을 구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것은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표가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예를 들어 환경이나 자연재해를 연구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을 넘어 더 큰 대의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단지 개인의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삶을 구하는 일이다. 때로는 돈이 되지 않는, 보상받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집중하는 목표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영화 <트위스터스>는 이런 목표를 가진 주인공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케이트는 토네이도를 연구하며 그것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녀는 외모적으로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내면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바로 토네이도가 언제 발생하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하는 직감이다. 영화는 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녀가 토네이도를 연구하며 그 피해를 줄이려는 과정을 따라간다. 케이트의 목표는 단순한 연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토네이도에 대한 그녀의 집념이 재난의 극복이라는 희망이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첫 번째 감정] 케이트의 상실감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케이트가 목표에 집착하는 건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녀는 과거에 토네이도 연구를 함께하던 세 명의 친구를 잃었다. 그들은 토네이도에 맞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힘을 억제하려고 화합물질을 투입하면서 실험적인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이 사건은 케이트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고, 그녀는 더 이상 현장에 나서지 않고 기상청 사무실에서 날씨만을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의 목표는 단지 이론적인 성과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상실감은 너무나 깊어서, 그녀는 더 이상 전처럼 용기를 내기 어려웠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우리는 이러한 케이트의 모습을 본다. 그녀는 토네이도를 막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실감은 그녀의 의욕을 완전히 잠식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에 출근하지만, 누군가 토네이도에 대한 예측을 물어올 때면 눈빛이 살아난다. 그녀는 토네이도에 대한 연구를 사랑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 목표를 아직 포기하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친구 하비(안소니 라모스)가 찾아와 다시 연구를 시작하자고 설득하기 전까지, 케이트는 자신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하비의 설득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케이트의 마음속 뚜껑을 서서히 열어 그녀가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도록 만든다. 다시 토네이도 연구에 뛰어들면서 케이트는 자신의 진짜 목적을 깨닫게 된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토네이도에 희생당할 사람들을 최대한 막고자 함이다. 자신이 자라온 지역에 매년 출몰하는 토네이도들은 그녀에게 삶의 목적을 주었고, 하비의 설득은 그녀가 잊었던 목적을 다시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그 모든 상실감을 이끌고 다시 일주일 동안 하비와 토네이도를 쫓는다.
[두 번째 감정] 타일러의 자신감
영화 속 또 다른 인물인 타일러(글렌 파월)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그런 유튜버로 보인다. 그는 토네이도 속에 차를 고정시키고 폭죽을 터뜨리는 등의 기행을 일삼으며, 조회수를 얻기 위해 그 모든 도발적인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타일러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한 관심 끌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벌어들인 수익을 토네이도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었다. 타일러는 밝고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그는 토네이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 일부러 무모한 행동을 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감을 유지하려 한다.
영화 중반 타일러는 케이트에게 두렵기 때문에 계속 도전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두렵지만 소와 맞서는 카우보이들처럼 그는 토네이도를 쫓으며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실감을 가진 케이트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타일러는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토네이도에 맞서고, 케이트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토네이도를 쫓는다.
타일러의 과거는 극 중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토네이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진실하다. 그는 단순히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타일러는 케이트를 만나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구원자로서의 자질을 끌어내고, 두 사람은 함께 토네이도 연구에 뛰어들게 된다. 타일러는 케이트에게 그녀의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켜 주며, 그녀가 다시 연구를 시작하도록 돕는다. 그는 토네이도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타일러와 케이트의 만남은 두 사람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적들을 상쇄시키며,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준다.
[세 번째 감정] 케이트와 타일러, 하비의 따뜻함
영화 속 인물들은 단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토네이도를 쫓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토네이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연구하여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지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따뜻함은 단순히 재난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선다. 그들은 토네이도를 직접 마주하며,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 중반부부터 그들의 따뜻함은 점점 더 드러난다. 피해 지역을 돕는 그들의 활동은 단순한 과학적 연구를 넘어선다. 특히 마지막 재난이 닥쳐온 작은 마을을 돕는 과정에서 그들은 단지 연구자나 과학자가 아니라, 그 지역사회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는 영화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따뜻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들의 따뜻함과 진정성은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케이트는 결국 자신을 희생하여 토네이도 안으로 뛰어든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한 연구 성과를 넘어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에 있었다. 그 장면은 그녀의 과거 상처와 그 상처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결합된 순간이었다. 케이트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목표가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이삭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영화의 의미
영화 <트위스터스>는 정이삭 감독의 연출 아래, 재난 영화라는 장르를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정이삭 감독은 이전에 <미나리>를 통해 가족의 이야기와 그 속에서의 희망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트위스터스>에서도 그는 재난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의 따뜻함과 희생을 강조하며, 단순한 스릴러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정이삭 감독은 자연재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빛나는 작은 인간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했으며, 평단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단순히 재난 영화로서의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목표를 깊이 탐구하며 큰 감동을 주었다.
영화 속 배우들 역시 인상적이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각자의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며, 토네이도라는 거대한 위협 속에서도 인간적인 감정과 진정성을 전달했다. 케이트 역의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내면의 상처와 강한 의지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타일러를 연기한 글렌 파월과 하비를 연기한 안소니 라모스 또한 각자의 개성과 감정을 잘 살려내며, 캐릭터 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그 목표를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진정한 영웅들로 그려졌다.
<트위스터스>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강렬한 재난 영화다. 영화 속에서 토네이도의 거대한 힘과 파괴적인 위력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최신 CG 기술을 활용해 토네이도를 보다 정교하게 묘사한 점이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토네이도의 형태와 움직임을 더욱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정보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트위스터스>의 CG는 토네이도의 모든 디테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토네이도가 형성되는 순간부터 그 속에서 날아다니는 잔해들, 지표면에서의 바람의 움직임까지도 매우 실감 나게 묘사되었다. 특히 거대한 토네이도가 도시와 자연을 휩쓸며 파괴하는 장면에서는 그 규모와 파괴력이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러한 CG 효과는 관객에게 단순한 시청 경험을 넘어선 몰입감을 제공하며, 마치 토네이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만든다.
특히 이 영화는 4DX 상영관에서 감상했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4DX로 영화를 보면 토네이도의 강력한 바람과 폭풍우가 고스란히 체감된다. 좌석이 토네이도의 회오리바람과 함께 흔들리고, 물이 뿌려지는 등의 효과는 관객이 마치 영화 속 토네이도 안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는 순간, 그리고 무거운 물체들이 날아다니는 순간까지도 관객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재난의 긴박함과 위협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 주며, CG로 그려진 토네이도의 현실감과 결합되어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 <트위스터스>는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의 따뜻함과 희생을 강조한다. 케이트는 자신의 목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 그녀의 행동은 단순한 과학적 연구를 넘어선 진정한 인간애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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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을 건 탈출 게임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 (영화리뷰)[이스케이프 룸2]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 이스케이프 룸2 노웨이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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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임> 예고편
1984년 불가리아 정부는 소수 민족을 탄압에 나선다.
세계 기록을 보유한 역도 챔피언 `나임 슐레이마늘루`는 호주에서의 전지훈련이 끝나 불가리아로
귀국하자마자 터키식 이름이 적힌 여권을 빼앗기고
불가리아식 `나음 슐레이마노프`가 적힌 새여권을 받게된다.
고민 끝에 호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탈해 터키로의 망명을 성공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불가리아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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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이혼 좀 합시다> 공식 예고편
일본 TV 드라마계의 최정상급 각본가 쿠도 칸쿠로와 오오이시 시즈카. 사상 처음 넷플릭스에서 성사된 이들의 콜라보! 남편은 정치인, 아내는 배우, 결혼 5년 차 쇼지 부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지금 위기에 빠졌다. 바람, 불륜 그리고 이혼까지! 둘만의 문제에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며 대소동이 벌어지는데. 이 좌충우돌 이혼극은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주연인 마츠자카 토리, 나카 리이사를 비롯해 니시키도 료, 이타야 유카, 야마모토 코지, 후루타 아라타 등 초호화 출연진이 모여 선사하는 울고 웃는 이혼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