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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모프2024-12-12 21:26:37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영화 <인터스텔라> 리뷰

 

 

세상은 어둠이다. 삶은 절망이 가득하다. 해가 뜨는 것 같으면 저물고, 사랑을 할 것 같으면 이별이 찾아온다. 우주에는 생명보다 죽음이 보편적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그 광대한 어둠과 절망 그리고 죽음 앞에, 생명은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는 인간이 절망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몸부림치며 한줄기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가까운 미래의 지구는 환경 재앙이 닥친다. 식물 재배가 점점 불가능해져 옥수수만 남은 상태이고, 거대한 황사폭풍이 주기적으로 닥친다. 과학은 퇴보하는 중이며 인류는 당장 오늘 먹을 것을 걱정하는 처지다. 한마디로, 인류는 천천히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옥수수 농장을 하고 있는 쿠퍼(매튜 맥커니히)는 한때 우주 비행사이자 엔지니어였다. 그는 인류의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의 딸 머피(맥켄지 포이, 제시카 차스테인, 엘렌 버스틴)는 자신의 방 책장에서 책이 자꾸 떨어지는 현상에 의문을 갖는다. 할아버지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했다지만, 쿠퍼는 딸에게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그 현상을 주목한 머피와 쿠퍼는 숨겨져 있는 NASA기지로 가는 길을 알게 된다.

 

 

 

과학적인, 혹은 논리적인 사고가 흔히 인간적이지 않고 냉소적이며 사랑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자연현상이나 거대한 힘 앞에서, 신이나 악마, 운명으로 여기며 순순히 무릎 꿇지 않고 그것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분석해 헤쳐나가려는 힘. 여기서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진행될수록 더한 절망이 다가온다. 예기치 않은 이별, 죽음, 거짓, 희망일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은 절망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어두운 밤은 인간에게 소리친다. 이제 그만 절망을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거대한 자연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쿠퍼와 만 박사의 꾸물거림은 얼마나 생명이 하찮은지 알게 해 준다. 그 절정은 바로 가르강튀아라고 불리는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시간이 촉박한 인류에게 시간마저 빼앗아버린다. 그러나 그 절망들을, 어두운 밤을 쿠퍼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빛과 희망이 사라지는 곳 블랙홀. 그러나 그 절망마저도 인류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이용한다.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는, 한발 물러서서 멀리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관찰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길바닥에 붙어 있으면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차원을 한 단계 높여서 위에서 바라보면, 가로질러서 가는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 영화에서는 웜홀과 블랙홀이라는 극단적 물리현상을 절망이자 방법으로 보여줬지만, 생각해 보면 현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의 시작에서, 쿠퍼와 그의 딸 머피, 아들 톰은 학교에 가다가 타이어가 펑크 난다. 둥근 타이어가 펑크 난 타이어(Flat Tire)가 되었다. 3차원이 2차원이 된다. 그러자 그들 머리 위로 주인을 잃은 드론이 날아다니는 걸 발견한다. 과학 기술이 점점 없어지고 제품이 사라져 가는 시대이니 만큼 그런 고성능 기기들은 아주 값진 것이다. 쿠퍼는 그 드론을 갖기 위해 펑크 난 타이어로 달려간다. 차는 1차원인 선 위(도로)를 달리지만, 드론은 3차원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쿠퍼는 드론을 쫓기 위해 1차원을 넘어서서 옥수수밭을 뚫고 2차원으로 돌진한다. 

 

옥수수밭을 뚫고 지나가는 이 장면은, 영화 중반부 웜홀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영화의 마지막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아주 유사하다. 끝없이 부딪히는 입자들을 뚫고 해답을 찾아 나선다.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 원래 가야 할 길이 아닌 공간을 가로질러간다. 그리고 결국 그 평면도 끝나버리는 절벽 끝 절망의 끝에서, 드론을 해킹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마치 사건의 지평선 끝에서 중력 방정식에 필요한 데이터를 인류의 것으로 만드는 것과 맞물린다. 인류가 가장 크게 맞닥뜨린 절망은 바로 중력이다. 그러나 그 중력을 이용해 절망은 희망으로 바뀐다.

 

 

 

절망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이 삶이고, 광활한 어두운 밤이 우주의 본질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쿠퍼가 옥수수밭을 가로질러 달렸듯이, 웜홀을 통과해 갔듯이, 블랙홀을 스윙바이로 이용했듯이, 블랙홀로 들어가면서도 절망하지 않았듯이, 생각의 차원을 바꾼다면 절망은 바로 희망의 불씨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가는 쿠퍼 일행에게, NASA 책임자인 존 브랜드(마이클 케인)는 계속해서 딜런 토마스의 시를 읽어 준다. 그 시는 우리에게 아무리 어둠의 시대가 오고 삶이 절망으로 가득하더라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고 소리치고 저항하라고 외친다. 그래야 그 끝에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시오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사라져 가는 빛에 대해"

 

작성자 . 카시모프

출처 . https://brunch.co.kr/@casimov/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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