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1-04-17 00:51:38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 - 잘 안 섞인 비빔밥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기존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었다. 바로 코로나 때문이다. 상영 한번 당 관객 50명이라는 숫자는 사실상 모든 상영작이 전석 매진되는 광경을 불러왔다. 이 중에 특히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는 그 해 개막작인데다가 여고괴담 간만의 신작이라는 이유로 티켓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필자는 운좋게 취소표를 구해 관람했는데, 개인 SNS에 영화 티켓 인증을 올리자 몇몇 사람들이 DM으로 영화가 어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매력적인 요소들은 많은 영화다. 먼저 한국 공포영화의 대표적인 시리즈인 여고괴담의 간만의 신작이라는 점과, 학교라는 여전히 흥미로운 공간, 그리고 세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특색을 보이는 캐릭터(주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스포일러라 정확히 언급은 안 하겠지만(GV 당시 감독도 되도록 언급하지 말아달라함) 시대의 아픔을 담아냈다는 점까지. 다만 문제는 이 흥미로운 요소들이 잘 섞이지 않는다. 마치 단편을 보는 것 마냥, 이 좋은 요소들이 좋기는 한데 갑자기? 라는 물음이 나온다. 그리고 필자가 공포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공포도도 크게 높지 않았다. 일부 갑툭튀나 그로테스크 요소나 일부 연출은 괜찮았지만, 특별히 이 영화만의 뛰어난 공포 포인트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최근 한국 공포영화들이 대부분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비교적 그럭저럭 볼만하다. GV 당시 씨네2000 대표님도 참석하셨는데, 그 당시 언질에 따르면 여고괴담을 10편까지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퀄리티라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기존의 여고괴담 시리즈 팬덤을 '적당히' 만족시켜줄 뿐, 새로운 팬덤과 일반적인 공포영화 매니아들을 사로잡기는 매우 어려워보인다. 그래도 한국 공포영화가 답이 없는 '처참' 수준까지는 아니구나 라는 희망을 주기는 하는 영화라는 평 밖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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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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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넷> 운명은 원래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1. 테러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었던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작전 도중 벽에 박혀 있던 총알이 총으로 다시 들어가는 현상을 목격한다. 작전이 종료된 후 그는 테넷이라는 조직을 찾아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inversion)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러시아 무기 밀매업자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음모를 파악한다. 이에 주인공은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가진 요원 '닐(로버트 패틴슨)'과 미술품 감정사이자 사토르로부터 벗어나려는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을 만나 미래의 공격에 맞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으려는 새로운 작전에 나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어렵다. 단지 엔트로피의 흐름을 바꿀 때 시간의 역행이 가능하다는 인버전 개념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이 불친절하다.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들은 안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상황을 가능케 하는 인버전에 대한 설명은 초반부에만 짧게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그 와중에 인물들의 동기, 행위와 인과관계 등 스토리 전개를 쫓아가는 것도 상당히 벅찬 데, 씬들이 전체적으로 짧아서 화면 전환이 잦은 데다가 장소도 금방 바뀌는 등 영화의 리듬이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이 없는 주인공이나 극단적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사토르처럼 그저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느껴지는 캐릭터들은 쉽게 공감하거나 마음을 붙이기 어렵다. 그 결과 <테넷>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값을 해내지 못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2. 하지만 <테넷>을 물리학의 이론을 빌려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로 이해할 때, <테넷>의 어려움, 난해함, 불친절함은 영화가 의도한 서사와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작중 인버전 현상이 암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인버전 될 때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과관계는 사라진다. 원래 과거의 사건은 미래의 원인이며, 미래는 과거 행위의 결과여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역행하면서 그 순서는 뒤바뀌고, 역행하는 시간이 현실에 공존할 때 원인과 결과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캣이 요트에서 다이빙하는 여인을 보며(원인) 자유롭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결과), 정작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으로 인해(원인) 요트에서 다이빙한 것처럼(결과).
그렇기에 마지막 작전을 끝낸 후 그의 선택이 의지인지 운명인지 묻는 주인공에게 닐은 현실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그 운명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신이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했다 해도 우리는 살면서 이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만약 운명이 있다면,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은 미래를 결정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선행을 하든 악행을 하든 이미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래에 일어날 일 또한 과거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니깐.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지, 곧 <테넷>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재를 살겠다는 닐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을 가진 채 삶을 최선을 다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3. 이에 더해 작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주인공과 캣, 그리고 사토르의 서사 간의 대비 또한 <테넷>이 결국 운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주인공과 캣은 자신들의 미래와 그 미래를 가능케 하는 사건을 마주하고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처럼 그들은 변하지 않을 예정된 미래에 대해 조금도 알지도 못하지만, 그 미래에 자신들은 원하는 바를 이룰 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실제로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반면에 사토르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미래를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순응하나 정작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이러한 대조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 자유의지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사토르를 막기 위한 작전에서 이용당하고 있음을 깨달은 후 작전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주인공과 사토르에게 잡힌 약점에서 벗어나 인생의 고삐를 되찾으려는 캣의 모습은 사토르에게서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의식은 놀란 감독의 초기 작품인 <메멘토> 혹은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하는, 직선에서 벗어난 구조인 <테넷>의 플롯 때문에 더욱 강조된다. 작중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은 중반부, 즉 주인공이 직접 인버전 하는 순간부터 서로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후반부의 복선이자 후반부는 그 결과이고, 결말을 보고 나면 전반부와 후반부의 인과가 또 한 번 뒤집히는 것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두 시간대가 합쳐지고 한 장면 안에 서로 다른 시간대를 공존시키는 시나리오 덕분에 영화는 앞서 뭔가 어려웠던, 놓친 거 같았던, 그리고 이해가 안 되었던 장면들을 후반부에 직관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는 영화가 과학적 설정과 관련된 내용들을 세심하게 이해시키지 않은 채, 스토리 전개를 빠르게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알 듯 모를 듯한 난해함과 복잡함을 경험할 때,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운명과 삶을 체감하는 영화적 경험의 전율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4. 한편 첩보와 SF 영화라는 장르 간의 만남은 <테넷>의 운명과 주체적인 삶에 대한 메시지를 새로우면서도 가장 놀란 감독다운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의 첫 첩보물인 <테넷>은 냉전과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두 진영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첩보원의 고뇌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근래 <본> 시리즈나 <007: 스카이 폴> 같은 첩보 영화들도 타인을 믿기 어려운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의 고뇌와 외로움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서사는 이러한 장르적 특징과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에 완성도를 더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인과 미국인을 비교하는 유머가 곳곳에 포진한 것 역시 <테넷>이 영국의 상징이자 놀란 감독이 많은 애정을 드러냈던 007 시리즈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첫 첩보 영화라는 새로움은 놀란 특유의 SF 영화스러운 상상력을 만나면서 놀란 감독만의 스타일로 귀결되기도 한다. <테넷>은 엔트로피를 통해 시간을 역행할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운명을 가능한 한 과학적인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 풀어낸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우주의 섭리, 혹은 신의 명령으로 여겨질 정도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인 운명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려는 그 시도만으로도 놀란 감독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초현실적, 초자연적인 현상을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SF 영화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미 꿈과 시간, 유령 등의 의미를 풀어내기 위해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에서 과학적인 상상력을 뽐낸 바 있다.
5. 더 나아가 놀란 감독 특유의 단점들이 <테넷>에서 보여준 일부 진일보한 성과들은 메시지와 주제를 더욱 깊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놀란 감독 작품에서 여성은 주로 남성 주인공의 목표, 트라우마 혹은 이상으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전작들의 여성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묘사된 캣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있어 최소한 반발짝이나마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고, 이는 영화의 메시지가 입체적으로 제시되는 데 힘을 보탠다. 또한 평면적이고 도구화되었다고 비판받는 주인공도 최소한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데는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영화는 주인공의 이름을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는데, 이는 운명을 마주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결국 모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전작들에서 다소 무기력했던 액션 연출의 경우에는 한 단계 진보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작중 액션은 이탈리아에서의 카 레이싱과 오슬로 프리포트에서 펼쳐지는 액션처럼 과거와 미래, 현재의 사건 간의 아귀가 맞아 들어갈 때 전율을 일으켜야 하는 순간인 경우가 많다. 이때 빠르고 리드미컬한 컷들로 이루어진 <테넷>의 액션은 현실감과 타격감이 극대화된 결과 몰입감을 잔뜩 끌어올리고, 그 순간의 충격을 최대로 만든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공존시키는 상상력으로 무장한 <테넷>은 분명 난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영화다. 놀란 감독의 단점들도 여전히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수작이기도 하다. 두뇌를 자극하는 놀란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공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운명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느끼게 되는 충격과 전율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O(Outstanding, 특출남)
아무리 이해가 안 돼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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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적 장치를 빌린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영화 <도그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세트 였다. 항상 영화를 볼 때 장소가 바뀌고 실제 현실 에 있는 장소 같은 세트의 영화만 보다가 연극처럼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영화 속에서 진행 되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했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이 공간이 어색해서 뒷부분에 이 곳을 빠져나와서 다른 장소가 나오길 기대하기도 했다. 근데 영화를 보다 보니 이 세트에 익숙해져 갔고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공간 마다 경계를 나누는 벽이 없어서 감시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고 앞 뒤가 다 막혀 있어서 답답한 느낌을 극대화 한 것 처럼 보였다.
그레이스가 자신이 속해 있던 갱을 떠나 착하게 살기 위해 혹은 평화로움을 꿈꾸고 도그빌로 도망쳐왔지만 도그빌도 겉으로는 평화로우면 모든걸 회의로 정하는 민주적인 마을 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다시 약자와 강자가 나뉘어지고 젊은 여성은 또 눈요기거리가 되고 만다. 착하고 고분고분한 그레이스가 어느 순간 무시를 당하는 존재로 전락 하게 된다.이런 그레이스가 불쌍해보이기도 하였고, 왜 반발을 하지 않는지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누구나 자신보다 만만해 보이는 상대가 있으면 우위를 점할려고 하고 항상 새로운 약자를 찾아 자신의 우월감을 채우려는 것이 추한 인간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레이스가 성폭행을 당하고 누워있는 장면이 특히 이 세트의 특성이 잘 보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레이스는 도그빌 주민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옆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 다닌다. 천장에서 이 세트를 비추었을 때, 그레이스가 굉장히 작고 약자처럼 보였다. 도그빌 주민들의 입장에선 방이 다 나누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공간이겠지만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한쪽은 성범죄를 당하고 있고 한쪽은 아무렇지 않게 할 일을 하고 있는게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이 마을 주민들의 이중성을 보여주었다고 느껴졌다.
도그빌 주민 중에서 가장 오만하다고 느껴진 캐릭터는 톰이었다. 자신이 철학자,지식인인 척하고 그레이스를 위해 도와줄 것 행동 하더니 배신을 때린다. 그리고 마지막 죽기 전까지 소설 에다가 써도 되지? 라고 하는 모습이 허울뿐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그레이스가 톰을 쏘는 장면이 가장 통쾌하기도 하였지만, 그레이스가 다시 갱으로 들어가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왜 제목이 계속 도그빌일까 궁금 했는데 마지막에 개와 같이 목줄을 찬 그레이스와 유일한 동물인 ‘모세’만 살아 남은 것과 마지막에 개만 살아남은 것을 보고 도그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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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스카의 85년 역사 깨뜨리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출처: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가 오스카 시상식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지 전세계에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넷플릭스가 1937년 제 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번의 노미네이트 된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거라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오스카 ‘최고의 작품상’ 후보에 오른것에 이어, 이번 시상식에서는 스트리밍 역사상 최초로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울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말한 MGM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10작품을 ‘최고의 작품상’ 후보에 올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영화 <위대한 지그펠트>가 3개의 트로피를 집으로 가져가는 최다 수상자였으며 영화 <라이벨리드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 <San Francisco>, <두 시민 이야기>도 수상에 함께 했습니다. 당시 MGM은 셜리 템플, 클라크 게이블, 주디 갈랜드,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헵번 등 최고의 배우들의 보금자리로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이었습니다. 한때 이 스튜디오는 "하늘에 있는 별보다 더 많은 스타를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영화계의 터줏대감이었습니다.
넷플릭스 또한 좋은 작품과 좋은 배우들이 함께한 것으로 자랑할 만합니다. 수년 동안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 구매, 출시해 온 넷플릭스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들이 영화 개봉을 많이 하지 못하게 된 올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많은 최고의 경쟁작들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오스카 시상식이 5개월 남은 상황에서 수상 기록을 깨는 데 성공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어떻게 수상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올해가 최우수 작품상을 '슬라이딩 시스템'으로 투표하는 마지막 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1년 이 규정이 채택된 이후 수상 라인업으로 8~9명의 후보자를 선정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2022년 시상식부터 다시 '스트레이트 10 시스템’으로 전환해 AMPAS 유권자들이 투표로 10편의 영화를 선정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스템은 유권자들이 5편의 영화를 뽑고, 유권자들의 최소 5%를 차지한 1등 작품이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와 아론 소킨 감독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후보를 뽑는 과정에서 안정권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엄청난 극찬을 받았고 아카데미에서 전형적으로 인정받는 많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유권자의 약 63%가 기술 부문에 속해 있으며, 이 부분에서 <맹크>는 영화나 음향과 같은 카테고리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편집, 각본, 배우 부문 등에서 석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출처: 넷플릭스(Netflix)
또 다른 넷플릭스 영화인 조지 C. 울프의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가 최고의 영화 퀄리티를 자랑하며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유리하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故) 채드윅 보즈먼은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펼친 열연으로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 2명 중 1명(다른 한 명은 <더 파더>의 배우 앤서니 홉킨스)으로 지목되고,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아졌다고 합니다. 지난 50년간 주연상 수상자 중 자신의 영화가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배우는 단 10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두 주연 배우가 주연상 유력 후보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이 영화는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도 합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카 수상에 유력한 세 작품 외에 어려운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배우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등이 주연인 넷플릭스 뮤지컬 영화 <더 프롬>이 곧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요. 보통 뮤지컬 영화는 일반 관객과 비평가의 의견이 갈린다는 특징이 있어 미국 언론 매체들은 PGA나 SAG와 같은 주요 협회에서 후보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보고 있습니다.
배우 조지 클루니가 주연, 감독을 맡은 넷플릭스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단지 조지 클루니가 8개 후보에 오른 배우이고, 오스카상을 두 번 수상한 경력이 있다는 점과 공동 제작한 영화 <아르고>가 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도 당연히 작품상에 오를 것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작, 촬영, 오리지널 스코어, 시각 효과 등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한다면, <미드나이트 스카이> 역시 오스카 시상식 후보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블랙위도우>와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 개봉이 2021년으로 밀려났지만, 실제로는 올해 오스카 경쟁자가 기록적으로 많습니다. 아마존 스튜디오, 애플 TV 플러스, HBO 맥스, 훌루를 포함한 스트리밍 콘텐츠가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점에 대해 버라이어티는 “스트리밍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올해는 영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넷플릭스는 꾸준히 최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마케팅하는 데에 집중한 만큼, 단지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극찬을 받은 2018년 작품 <로마>, 2019년 작품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가 수상을 놓쳤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그 ‘유리천장’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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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룩이 온기와 구원이 되기까지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야적장에서 하루종일 석탄과 장작을 나르며 일하고 집에 돌아온 빌 펄롱(킬리언 머피)의 손은 까만 얼룩이 져있다. 빌은 모자와 외투를 벗어두고,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에 묻은 검댕을 꼼꼼히 닦아낸 후에야 아내와 딸들이 있는 거실로 들어간다. 펄롱은 비누와 솔만 들어있는 케이스를 꺼낸 후 세면대에 받아 놓은 물이 까맣게 변하고 자신의 손은 깨끗해질 때까지 비누 거품을 내고 솔로 문지른다. 펄롱이 손을 씻는 과정을 클로즈업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다섯 딸에게 한 점의 더러움도 묻히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좁은 현관 통로는 따뜻하고 깨끗한 거실로 들어가기 전 더러움을 닦아내는 중간 지대의 역할을 한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이어지는 좁은 문은 닫혀 있지 않지만 집의 공간을 분리한다. 영화 속 카메라는 문틀 너머에 펄롱을 위치시키며 일정한 거리감을 조성한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어린 시절, 새벽에 수녀원의 석탄 창고를 들어갔을 때, 수녀원에서 겁먹은 소녀들을 볼 때 문틀 안의 펄롱이 느끼는 감정은 고독함과 고뇌다.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클레어 키건은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라는 문장으로 펄롱의 고뇌를 표현한다. 삶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강력하게 붙잡는다.
1920년대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까지 이어진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조금이라도 타락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여성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삶의 자유를 빼앗았다. 미혼모, 성매매 여성, 고아, 남자들에게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까지 대상은 불명확하며 넓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의 여성들이 가는 감옥이었다. 아일린은 우리의 딸과 그 아이들은 다르다며 차갑게 선을 긋는다. 마을 사람들이 짐짓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수녀원의 영향력이 마을 전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펄롱의 딸이 다니는 세인트마거릿 학교는 수녀원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수녀원은 펄롱의 야적장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이고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돈을 주고 있다. 감금된 여성들의 노역으로 쌓아 올려진 풍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장면이 있는 법이다.
선의는 언제나 옳다고 배워왔지만, 현실에서 선의를 베푸는 것은 복잡한 용기다. 누구나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상황에서 선뜻 손을 내미는 일은 무언가를 무릅쓴 사람의 행동이다. 까맣고 차가운 석탄은 스스로를 태워 밝고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울 용기와 작은 불씨가 필요하다. 펄롱에게 그 부싯돌 역할이 된 인물은 수녀원에 의해 석탄 창고에 갇힌 어린 소녀 세라다. 어깨에 무거운 석탄을 둘러업고 석탄 창고 안으로 들어간 펄롱은 어둠 속에서 세라를 발견한다. 공교롭게도 미혼모였던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는 출산을 5개월 앞둔 채 수녀원에 의해 석탄창고에 갇혀 추위와 어둠에 떨고 있었다. 기댈 곳 없는 아이를 보호하는 일은 수녀원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되고 만다.
펄롱은 자주 어릴 적 기억에 휩싸인다. 주로 창과 거울을 통해 이어지는 플래시백은 펄롱의 과거와 현재를 묶어준다. 아버지가 없었던 어린 자신과 자식을 키우며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얼굴은 과거의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괜찮은 걸까?” 펄롱은 아일린에게 묻는다. 아일린은 경제 사정을 묻는 것인지, 부부의 안위를 묻는 질문인지, 자녀들의 미래를 묻는 질문인지 의아해하며 적금을 넣고 있으니 괜찮다고 답한다. 그러나 ‘우리’에는 그보다 더 넓은 의미의 가족,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안위를 포함하고 있다. 펄롱은 어린 세라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본다. 모두가 자신의 딸이자 어머니다.
펄롱은 세라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 어린 자신 역시 구원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달리 어린 세라의 아이를 엄마와 헤어지게 두지 않는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이 그랬던 것처럼 세라와 그의 아이를 보호하며 한 가족을 지키게 된다. 펄롱은 세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좁은 현관 통로에서 간단하게 손을 씻은 펄롱은 아직 얼룩이 가득한 세라의 손을 잡고 거실로 함께 들어간다. 언제나 고독함과 고뇌와 고단함의 프레임이었던 문틀 너머로 희망과 확신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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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나고 정말이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각종 활동을 해보기 위해 몇 장의 자기소개서, 몇 차례의 면접 등을 준비하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있다. 바로 객관성. 사실을 전달하고, 팩트를 체킹하는 일에는 물론이고,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작성하는 일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장착해 주관성이 만들어낸 억측의 구렁텅이에 빠져선 안 된다. 이런 객관성과 주관성을 이야기할 때에 꼭 빠지지 않는 소재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을 순전히 객관성의 영역으로 치부하기엔 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창의력과 독창성의 의미가 퇴색된다. 또 예술을 오로지 주관성의 영역이라 하기엔 예술을 창작자들을 비롯한 전체 예술 비평가들의 존재가 무안해지며, 그들의 평가 또한 예술의 한 분야로 평가되는 요즘, 예술의 객관성을 빼놓고 예술을 거론하기엔 무리이다. 이렇듯 예술을 주관성과 객관성의 이분법적 논리로 분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영화 <위플래쉬> 내의 대사에도 이런 관점이 등장해 더욱 재밌었다. 영화 속 "앤드류"가 한 말, 예술과 음악엔 객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편견을 갖지 않을 수 있고, 주관성을 가진 무언가에 내 식대로 생각하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위플래쉬>를 전부 관람한 후 필자의 머릿속엔 단 한가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난 객관성을 잃었다.' 영화 <위플래쉬>를 분석하고, 나만의 평을 내려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잃었다는 사실은 필자의 뼈 아픈 실수이지만 또 그런 실수를 유도하게끔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뜻으로도 생각된다.
영화 <위플래쉬>는 끌어들임과 매혹 그리고 빨아들임을 영상화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영화예술의 미학적 진수를 담아내 모든 이들의 객관성을 무너뜨리는 굉장한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굉장히 무난한 하얀색의 폰트로 작성된 타이틀이 검은 화면을 배경으로 보여지고 뒤에선 본인이 음악 영화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드럼 영화임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스네어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모두 거치고, 어두운 복도 끝엔 빛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좁은 방 안에서 연주하는 한 남자, 주인공 "앤드류"가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달리 인과 줌 인을 통해 카메라는 그에게 다가갔고, 이후 숏에서 그 시점은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또 다른 주인공 "플래처"의 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 <위플래쉬>는 시점과 구도의 미학을 완벽히 이해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프레임 속 황금 비율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프레임의 대각선이 모이는 중앙점과 그 위 쯤일 것이다. 영화는 그 점보다 더 놓은 지점에 인물을 어두운 복도와 외로운 불빛 하나로 이루어진 공간에 배치하여 의도적으로 인물을 작아보이게 하고 연약한 존재로 비춰지게끔 연출했다. 이후 등장한 "플래처"의 시점을 통해 보이는 당황한 "앤드류"의 당황한 눈빛과 불안정한 몸짓, 아직 부족해보이는 연주 실력은 그를 더욱 작게 만들었고, 관객은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각 인물들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고, 무슨 입장에 처해있는지 별다른 대사 없이도 눈치챌 수 있다.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모든 배경과 사건의 조짐을 시작과 동시에 암시한다.
어떠한 부분을 연습해야하는지 어느정도 알려준 "플래처" 교수의 힌트에 따라 "앤드류"는 더블 타임 스윙을 연습한다. 결국 그는 찾아온 기회에 가뿐히 스카웃되어 "플래처" 교수의 '스튜디오 밴드'로 입성하게 된다. 영화 속엔 재즈 밴드라 일컬을 수 있는 밴드가 총 4개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두 밴드가 바로 "앤드류"의 첫 밴드인 '나소 밴드'와 '스튜디오 밴드'이다. 물론 두 밴드 사이엔 어느 정도 수준 차이가 존재하지만, 실력 차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밴드 구성의 의미이다. 두 밴드 모두 젊은 20대 청년들이 모여 이뤄진 밴드이기에 교수가 자리에 없을 때나 학교에 도착해 본인 연주를 준비할 때면 공간은 떠드는 소리에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채워진다. 하지만 교수가 들어왔음에도 전혀 그 태도가 변치 않고 유지되며 문제있는 실력에 따끔히 지적하지 않는 교수로 구성된 나소 밴드와 달리 지정된 시각이 되자 문이 부숴져라 세게 열면서 들어오는 "플래처" 교수와 만반의 준비를 끝맺히고 교수의 콜싸인에만 집중한 학생들로 구성된 스튜디오 밴드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대표한다. 문제되는 사항이 있는 경우, "플래처" 교수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욕설과 분위기로 학생을 압도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주인공 "앤드류"의 시선을 따라가고, 전지적인 시점에서 카메라 촬영을 한다 하더라도 "앤드류"의 관점과 입장을 따라 움직인다. 이런 카메라의 움직임과 구도는 스튜디오 밴드의 공포서린 분위기를 "앤드류"의 관점에서 담아내 그가 느낄 두려움과 불안함을 관객이 피부에 와닿게끔 유도한다.
영화가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인물 구도는 바로 상하 관계이다. 영화 <기생충>이 보이는 선이나 보이진 않지만 유추할 수 있는 무언의 선으로 인물 간의 구도를 설정하고, 그 구도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출했다면 영화 <위플래쉬>는 두 인물이 잡힌 투 샷 속 각 인물의 고개와 몸이 쏠린 정도 등의 움직임과 서 있는 인물과 앉아있는 인물의 수직적 위치를 통해 상하 관계를 구사하여 인물 간 주종관계를 설정한다. 상대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위치와 발성으로 묵직하게 누르는 "플래처" 교수의 공포스러운 교수법은 영화 <위플래쉬>가 당시 교육계에서 화제의 영화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플래처"라는 인물을 그저 악마의 인간화로만 비춰지게 방치하지 않았다. "앤드류"가 첫 합주를 앞두고 복도에서 대기를 할 때 찾아와 부모님과의 관계를 묻고, 존경하는 재즈 뮤지션들의 생애 그리고 그 생애 중 가장 인상깊은 사건인 '심벌 던지기'를 말하는 씬을 볼 때면그는 굉장히 좋은 사람, 친절한 교수처럼 보여진다. 물론 이에 대해 양의 탈을 쓴 늑대, 착한 척하는 괴물이라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후 경연장에서 동료 지휘가의 딸을 만나 친절히 대화하고,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에 아이와 약속까지 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좋은 사람이다. 영화는 공간을 기준으로 "플래처"를 구분한다. 자신의 밴드원들이 존재하는 공간, 음악이 존재하는 공간에선 그 누구보다 치밀하고, 날카로우며, 프로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지만, 이후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제자의 죽음, 제3의 공간에선 굉장히 따뜻하고, 온화한 인물이다.
"플래처"라는 인물이 그저 화가 많고, 다혈질적이며,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걸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라고 영화는 답한다. 물론 이를 표출하고 행하는 방법은 충분히 잘못되었지만 영화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재즈와 음악에 진심인 면을 강조했고, 이는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등장하는 씬의 존재적 의미를 강화시킨다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보조 자리에서 메인 자리로, 갖은 고생과 수 많은 일들이 지나고 나서야 그토록 원했던 스튜디오 밴드의 메인 드럼을 꿰찰 수 있었다. 이 점에도 의심쩍은 부분은 있다. 이후 장면에서 언급되듯 "앤드류"가 스튜디오 밴드에 입성할 수 있었던 데엔 "플래처" 교수의 힌트가 있어서였고, 메인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도 타인의 귀책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런 고생 끝에 차지한 메인 자리도 새로운 곡, 새로운 드러머의 합류로 위태로워지기 시작하고, 본인이 자리를 꿰차게 되었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없던 난항들이 겹쳐 노력과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되자 "앤드류"는 그동안의 설움이 터져 경연장에서 "플래처"를 덮쳤고, 결국 퇴학당한다.
"앤드류"는 흔히 말하는 아웃사이더 중 하나이다. 영화의 초반부 혼자 연습실에 남아 외로이 연습하는 씬에서도, 연습을 마치고 향한 자취방에 가는 길, 파티 중인 옆 방을 뒤로한 채 쓸슬히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그의 등에서도 그리고 어느 밴드에 가서도 인정받지 못해 그저 불안한 눈동자만 돌리는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위플래쉬> 내엔 보통의 타 영화들처럼 대화가 영화의 전반적인 씬을 지배하거나 서사를 담당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씬, 음악만이 존재하는 씬, 연주하는 씬들이 그 역할을 대체한다. 하지만 그 몇 안되는 대화씬, 세기 좋은 수량의 소통 장면이 영화 전체에 주는 영향력은 수와 반비례한다. 작품 속 대화 씬을 모두 종합해 보면 뮤지션으로서 최선을 다 하고, 죽을 힘을 다해 분투하는 "앤드류"의 노력들을 어쩌면 부정하거나 거부하거나 그 노력들과는 반대되는 이들과 나눈 대화들이 전부다. 여자친구 "니키"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아버지를 만나 영화를 관람하고, 아버지의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하는 그 모든 씬들엔 "앤드류"가 걷고 있는 길들을 무시하려는 눈빛 내지는 음악으로서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권유하고자 하는 시선만이 존재한다. 또한 대비되는 점은 음악이 존해하고, "앤드류"가 드러머로서 존재하는 공간엔 항상 침묵, 압박, 공포만이 존재하지만 인간 "앤드류"로서 존재하는 공간엔 위로, 환영, 평안의 말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앤드류"가 가고자 하는 길엔 대화보단 행동, 위로보단 압박, 평안보다 음악이 더욱 중요해보이고, 이는 영화의 구조 전체를 구성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영화의 종반부 "앤드류"가 내린 선택으로 귀결된다.
영화 <위플래쉬>엔 음악 영화답게 음악이 끊이지 않고, 음악을 업으로 하는 이들을 담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들의 퍼포먼스 또한 빈번히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 <위플래쉬>는 음악을 뮤지컬 영화 속 음악처럼 사용한다는 점이다. "앤드류"는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 인물로 보이고, 다른 이들과도 막역한 사이로 못 지내는 성격인지라 주인공 치고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의 심정, 배경, 분위기 등을 행동과 눈빛을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데, 이에 도움을 주려 영화는 인물의 심정이 중요히 드러나야 하는 씬에서 재즈 음악을 들려주어 음악의 분위기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앤드류"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들 뿐만 아니라 "앤드류"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영상들 또한 관객에게 소리와 함께 보여주게 되는데, 이 때 등장하는 연주법은 영화의 종반부에 나올 연주의 복선이기도 하다. 영화 <위플래쉬>는 이렇듯 음악 하나, 영상 하나 허투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후 등장할 모든 씬, 모든 장면들을 위해 초반부부터 빌드업을 이런 방식으로 쌓아가기 시작하고, 최종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 내에서도 이 지점들을 통해 설명하게 된다.
더블 타임 스윙. 파라디들. 300 비트.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가 이런 음악 용어들을 관객들에게 잘 설명하는 건 아니었을까. 마치 메디컬 장르 영화나 드라마의 좌우측 하단엔 의학 전문 용어에 대한 해설이 등장하게 되는데, 영화 <위플래쉬>는 행동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대답을 이었다. 영화는 그 연주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전 철저한 빌드업을 통해 등장을 대비했고, 등장을 더욱 화려하게 하면서 관객을 설득시켰다. 심지어 영화는 연주를 하는 인물이나 연주를 하고 있지 않는 보통의 인물이나 가리지 않고 그들의 손과 귀 그리고 입에 집중하게끔 유도했다. 손의 방향, 손가락의 움직임 그리고 귀 장식과 귀의 모양 등 신체를 지속적으로 비추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훈련시켰고, 이후 등장하는 연주씬에서 그 모든 요소들을 풀어내 긴장감과 흥미진진함 모두를 겸비한 장면으로 만들어내었다. 연주곡으로 선정한 곡들 또한 예사롭지 아니하며, 굉장히 인상적이다. 재즈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고, 각 종류별 구사할 수 있는 음악적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그 많은 선택지 중 드럼, 일렉 기타, 스케일 별 트럼펫 등의 관악기로 구성된 빅 밴드 음악, 그 중에서도 드럼 연주가 귀에 꽂히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각 악기별 독특한 등장 타이밍과 솔로로 만들어진 악기 라이벌링까지 겸비된 음악. 이 모든 재즈의 매력적인 점들을 모인 곡이 바로 영화 <위플래쉬>의 대표곡인 'Whiplash'와 'Caravan'이다. 영화는 이 악기 라이벌링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각 파트별 솔로를 담당하는 악기를 클로즈업하여 비추고, 솔로가 타 악기로 변경하게 되는 때가 오면 샷을 끊지 않고 스위시 팬을 통해 촬영하였으며, 각 악기별 연주자들의 손, 관악기의 경우 입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해 황홀한 연주의 황홀한 연출을 구사했다. 모든 솔로가 모두 마쳐져 다시 모든 악기가 하나가 되는 때면 팬을 통해 구성원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마침내 멈춘 카메라는 드럼에 포커스를 맞춰 연주자의 고된 표정, 현란한 손놀림과 발놀림 그리고 앞에서 압박을 주고 있는 지휘자 "플래처" 간의 알 수 없는 신경전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일련의 사고가 있고 난 후 모든 드러머로서의 삶을 접고 평범한 한 20대 청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다 우연히 한 재즈 바에서 피아노를 치는 "플래처"를 만난다. 그는 "앤드류"의 증언과 함께 학부모들에게 그의 폭력적인 교수법이 고발되어 교수직에서 쫓겨나 모 프로 밴드에서 지휘를 맡는다고 한다. 그는 "앤드류"를 만나 그 교수법에 대해 스스로가 내린 결론을 이야기한다. 그 때 등장한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 "세상에서 제일 나쁜 두 마디가 있다. 그정도면 됐어."
"앤드류"의 아빠는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아들 "앤드류"에게 음악이 아닌 평범한 삶도 생각해볼 것을 은연 중 틈틈히 주입시켰다. "앤드류"의 여자친구인 "니키"도 평범히 대학교를 다니지만 아직 본인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영화 <위플래쉬> 속 오직 "앤드류"만이 최고가 되기 위해, 위대해지기 위해 아둥바둥, 손이 찢어지는 것도 참아가며 연습했다. 그의 이러한 성격이 과연 "플래처"를 만나 생긴 것일까? 그의 욕망, 링컨 센터에서 연주를 하겠다는 의지, 침대마저 연습실로 옮기고 만나는 여자친구마저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 헤어지자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플래처"를 만나 더욱 강화되었다면 몰라도 그의 집착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 대답한다. 어쩌면 "플래처"와 "앤드류"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최고가 되기 위해 집착하려는 남자와 최고를 만들기 위해 집착하는 남자가 만났고, 알 수 없는 신경전과 밀당이 오고 갔기에 모종의 동질감이 생기지 않았을까?'그정도면 됐어'의 보통 수준이 아닌 최고가 되기 위한 두 남자의 끝이 다가온다.
"플래처"의 권유로 치웠던 드럼을 다시 꺼내어 그의 공연을 도우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잘만 하면 이전의 모든 사건, 사고들을 묻을 수 있을 만큼 큰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플래처"는 "앤드류"에게 다가갔고, 모든 일들의 원흉은 "앤드류"라 지목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전한다. 사실 그 공연엔 "앤드류"가 연습하지 않은 곡들이 선정되어있었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곡들에 "앤드류"는 함정에 빠져 결국 공연장에서 이탈하고야 만다. 공연을 보러와 준 아버지에게 안긴 "앤드류". 포옹도 잠시 결의에 찬 눈빛을 한 그는 앉음과 동시에 신 들린 연주를 펼친다.
영화의 종반부, 영화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부분이자 러닝타임 내내 공들여 쌓아올린 바벨탑을 화룡점정할 시간이다. 영화 <위플래쉬>는 가장 중요한 그 순간, 대사를 모두 삭제하고 오로지 음악 그리고 "앤드류", "플래처"만 남겨둔다. 초중반부부터 복선으로 이어졌던 버디 리치의 연주와 결을 같이하는 드럼의 현란한 솔로가 이어진다. 그동안 연습해왔던 더블 타임 스윙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게 소리를 구사한다. 영화는 초중반부에 <Whiplash>와 <Caravan>을 조금씩 들려주기만 할뿐 전체를 들려주거나 연주 전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곡 전체가 궁금했던 찰나 영화는 그 답답함에 시원한 사이다라도 되어주듯 현란하게 칼춤을 춘다. 이미 곡이 끝났어야 할 타임인데도 "앤드류"는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플래처"도 그에게 와 협박을 하고, 방해를 하려 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연주가 지속되자 "앤드류"에게 다가간 "플래처". 영화는 "플래처"의 눈을 바라보게끔 유도한다. 그의 눈엔 어느새 최고의 뮤지션을 찾았다는 기쁨과 제자의 몰입된 그 순간을 완성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진정한 광기어린 자가 풍기는 아우라에 눌린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마구잡이처럼 이어질 수 있었던 "앤드류"의 연주는 "플래처"의 지휘로 데크레센도 형태를 취하다 "플래처"의 지휘로 다시 크레센도되어 완벽한 드럼 솔로로 변주한다.
해당 씬엔 특별한 대사나 감정을 유발하는 특별한 연출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앤드류"의 연주다. 슬로우 모션, 손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트래킹 샷, 계속해서 튀겨지는 피와 땀만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한다. 영화 <위플래쉬>의 종반부가 훌륭한 이유는 말로써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서 그간의 설움, 과정, 노력, 애환, 고통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내었기 때문이다. "앤드류"와 "플래처", 곡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서로 콜싸인을 맞추려 눈을 마주한다. 상하관계, 주종관계처럼 수직 위치로 배치되었던 눈은 동등한 수평선의 위치에 놓여진다. 비록 눈에 익스트림 클로즈업되었지만 우린 "플래처"가 "앤드류"에게 어떠한 말을 전한 걸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알 순 없지만 그 말을 들은 "앤드류"는 "니코"를 만난 씬을 제외하고 거의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엔딩을 화려히 장식하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100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어떨 때엔 더 도움이 되고,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영화는 더 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무엇을 더 해야 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가 아마도 영화의 진수인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 <위플래쉬>는 그 진수의 향연이지 않았을까? 본 작품에 대한 평가 내지는 한줄평을 보면 "플래처"의 악랄한 교수법을 비판하고 이를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로 생각해 평가한 평들이 많다. 물론 그 지점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필자의 생각에도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에 그 요소를 결코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만 작품을 관람하기엔 너무도 아까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재즈와 드럼, 밴드가 운용되고 연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감독이 만들어낸 너무도 아름답고도 체계적인 연출 그리고 이를 더욱 빛내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매력적인 영화음악이 존재하는 영화가 <위플래쉬>이다. 그 어떤 요소로도 본 작품은 정말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는 내가 지금 어디있는지도, 윤리가 무엇인지도, 내 귀에 들리는게 무엇인지도 잊고 그저 즐기게, 미치게 한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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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순간.
이 무더운 여름조차 싱그러운 분위기로 새겨주어 본격 여름이 그리워지는 영화인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소개하려고 한다. 세대와 세대를 잇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따뜻한 영화는 2년이 넘은 지금도 바래지지 않은 채 색을 유지하고 따뜻함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은 정말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지만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환갑을 맞은 정연은 일본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딸을 만나러 일본에 간다. 비가 무수같이 떨어지는 날, 딸이 아닌 손녀인 안이 마중 나와 있다. 일면식도 없던 손녀와 택시를 타고 딸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정적 그 자체다. 손녀 안은 한마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통화를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정연이 집을 돌아본다. 그 모습을 보던 안은 밖으로 나가자고 말하고 정연은 안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긴 외출을 하고 돌아와 우연히 손녀의 휴대폰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갈 곳을 잃어버리다가 한 대상을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를 원망을 자신을 상처 내면서 까지 쏟아붓는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드는 원망이라는 마음은 누군가가 되짚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 왠지 모를 미안함과 민망함이 몰려오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다가갈 수도 없다. 의외의 지점에서 겹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언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눈빛, 몸짓, 그 외의 비언어적인 요소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아픔을 공유한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이루어져서 서로의 마음을 잘 두드릴 수 있었다. 타인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 좀 늦어도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는 모습이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짧게만 느껴지는 영화의 여운은 끊어지지 않을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안이 서울로 왔을 때, 서로 어떤 표정으로 다시 만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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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x나로 미국이 건설했지만 딱하나 놓친 한 가지 [영화리뷰/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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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워크 : Movie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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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중기 스타일의 액션 /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 / 보고타: 기회의 땅 / 권해효, 이희준의 물오른 연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보고타: 기회의 땅"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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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메이커> 캐릭터 예고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 앞에 그와 뜻을 함께하고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열세인 상황 속에서 서창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치고 '김운범'은 선거에 연이어 승리하며,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서게 된다. 대통령 선거를 향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고 그들은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중 '김운범' 자택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로 '서창대'가 지목되면서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치열한 선거판, 그 중심에 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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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채플웨이트> 15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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