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2-13 14:15:38
오지 않는 속편을 기다리며
올 때까지 기다린다

다들 속편이 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영화가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그중에서도 요청이 쇄도했던 <콘스탄틴>의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많은 팬을 기쁘게 했는데요.
<콘스탄틴>처럼 다른 영화들도 하루빨리 속편이 제작되기를 바라며 콘텐츠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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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여성 커플의 제자리 찾기
씨네랩의 초정 시사로 개봉 전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나무들이 나란히 길게 배열되어 있는 어떤 강가의 공원에 두 아이가 있다. 까마귀들이 연신 울어대는 한적한 그 공원에서 두 아이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어떤 나무 뒤에 숨고, 다른 아이는 그것을 찾기 시작한다. 한 아이가 숨은 아이 근처로 가면 숨은 아이는 그를 피해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한참 두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숨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찾던 아이는 숨은 아이가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까마귀 소리다. 영화 <우리, 둘>의 오프닝 장면이다. 이 오프닝은 향후에 등장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와 그 관계에 대한 은유가 담겨있어 궁금증을 유발한다.
영화 <우리, 둘>은 여성 커플인 마도(마틴 슈발리에)와 니나(바바라 수코바)의 이야기다. 이들은 20여 년 전 로마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지만 주변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그 관계를 알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도는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아 길러냈다. 남편과는 사별했지만 아이들과는 여전히 교류 중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마도와 니나는 바로 앞 집에 살고 있어 매일 만나고 사랑을 나누지만, 마도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알리지 못하고 있다. 니나는 마도에게 가족에게 비밀을 알리고 로마로 가서 남은 생을 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결과적으로 니나의 이 바램과 제안은 영화 내내 긴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할머니가 된 20년 차 커플, 마도와 니나의 이야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고 어려운 것을 극복하게 하기도 한다.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고 서로의 관계에서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들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꽤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에 더해서 그 관계가 동일한 성이라고 했을 때 마음속의 장벽은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우리, 둘>의 주인공, 마도와 니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외부에 공개를 하려고 했다가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담겨 있다.
영화 속 두 사람이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비밀관계를 유지했는지, 아니면 마도가 결혼하고 남편과 사별한 이후 이 둘이 다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2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 둘이 마음 깊숙이 서로를 사랑하고 원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마도와 니나가 마도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느 연인처럼 그들은 스킨십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한다. 이제 할머니 나이가 된 그들의 외모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어떤 편견도 없이 사랑하는 일반적인 부부나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눈치를 보다 말을 하지 못한 마도는 그것을 알게 된 연인 니나의 짜증도 받아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그만 쓰러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니나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공개되지 않은 관계인 탓에 공식적인 보호자가 될 수 없고, 니나가 마도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주변의 시선은 따갑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 니나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 다가가서 품어주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니나는 마도에게 다가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때마다 좀 더 과격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가 조금씩 과격해질 때마다 모든 것이 깨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영화의 템포를 빠르게 만든다.
마도의 뇌졸중 증상 이후 서서히 공개되는 그들의 관계
꽤 오랜 기간 동안 주변에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알리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그들의 달콤한 사랑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느 로맨스 퀴어 영화들과는 다르게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반응과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영화에 중점적으로 담는다. 영화의 제목이 <우리, 둘> 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의 반응과 갑작스러운 질병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도와 니나가 서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건 그들 두 사람의 힘이다.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두 아이는 마도와 니나라고 할 수 있다. 숨바꼭질을 하다 갑자기 사라진 아이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마도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는 니나로 보인다. 그 아이가 까마귀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다른 아이를 부르는데 여전히 친구를 찾지 못한다. 실제로 니나는 마도를 다시 보기 위해 간병인을 이용하거나, 한밤중에 마도의 집에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 마도를 보고 나온다. 그리고 어느 날은 마도의 딸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마치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아이가 기이한 까마귀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니나는 상대방을 찾기 위해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은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중반 마도의 상상이지만, 마도가 물속에 빠진 아이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고, 물속에 빠진 아이를 니나가 건져내는 장면은 서로의 관계를 복원한다는 일종의 영화적 암시다. 이런 은유적인 장면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여러 가지 시각으로 재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니나가 마도를 찾기 위해 점점 과격해지는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이 마도를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이용하거나,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마도의 가족을 대하는 모습은 니나의 상실감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마도와 니나의 노력
영화는 니나의 뒤를 따라가지만 마도의 반응도 놓치지 않는다. 뇌졸중 증상 이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던 화면은 니나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변하게 된다. 특히 마도의 몸 전체를 화면에 잡기보다는 마도의 얼굴 중 두 눈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니나의 행동에 따라 나오게 되는 반응을 눈의 초점이나 눈이 여기저기를 바꿔가며 보려 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니나의 노력에 마도가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노력은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니나의 노력과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니나가 싸우는 것은 외부의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마도는 자기 자신의 신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니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노력이고, 마도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이다.
영화 속 마도의 딸 앤(레아 드루케)과 아들 프레드릭(제롬 바랑프랭)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이 둘은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된 자신의 엄마와 이웃 여성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어떤 가족에게 이 일이 벌어졌어도 반응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관계를 부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분노로 표출된다. 영화에선 그들의 반응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지만 그들이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인정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자녀와 가족들의 반응이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마도와 니나에게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이 영화가 첫 연출작이다. 2020년 제10회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퀴어영화 평론가상을 수상했고, 2021년 46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데뷔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여성이 겪는 답답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고 긴박한 시선으로 담은 영화 <우리, 둘>은 기존의 퀴어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우리, 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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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즉흥 연주, 스윙걸즈
때론 가장 우연한 순간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일본 영화 <스윙걸즈>는 단순한 선택이 어떻게 열정이 되고, 결국 한 사람 그리고 모두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일본 시골 마을의 여고생들이 엉겁결에 빅밴드 재즈를 시작하면서 펼쳐진다. 여름방학, 수학 보충 수업을 피하려던 토모코와 친구들은 급식 배달을 맡게 되고, 예상치 못한 사고로 기존 밴드 멤버들이 빠지면서 얼떨결에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재즈였지만, 점차 리듬에 빠져들며 그들만의 소리가 만들어진다.
단순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고, 동기가 쌓여 몰입이 되고, 결국 ‘더 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든다. 주인공들은 재능이 넘치는 천재들이 아니다. 실수하고, 좌절하고, 악기를 제대로 살 돈조차 없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진짜 밴드가 되어간다.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며 실수를 웃어넘기고, 허름한 창고에서 땀을 흘리며 연주를 맞춰가고,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악기를 구하는 장면들은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우리는 음악을 듣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직접 연주할 수 있고, 스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빅밴드 재즈를 사랑하지만 한 번도 무대에 서지 못했던 수학 선생님, 처음엔 재즈가 뭔지도 몰랐지만 점점 빠져든 주인공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모두가 ‘스윙’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찬란하고 순수해서 더욱 여운이 남았다.
한 여름의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때묻지 않은 감성과 마음들이 한 데 모여 빅밴드를 이룰 때의 그 리듬감과 흥겨움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스윙걸즈>는 특별하다. 재즈를 몰라도,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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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함께 감독 영화 '더 문' (feat. 엑소 디오 도경수 신파)
더 문
23.08.02 개봉
SF, 12세 관람가
한국, 129분
감독: 김용화
출연: 도경수, 설경구 등
드디어 '더 문'을 보고 왔습니다!
7~8월 극장에 한국 영화들이 엄청나게 많이 걸렸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어요
제가 워낙 신과 함께를 오열하면서 봤기 때문에,,,
더 문 평가에서 신파가 잔뜩 있어 별로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
반대로 기대했던 1인이었습니다 ㅋㅋ
총평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건 4DX 아이맥스로... 만! 봐야 한다~
영상미 걍 대박입니다 이제껏 본 SF 영화 중 CG가 최고였어요
뭐 김용화 감독님 연출력이야... 신과 함께부터 증명됐던 거였죠
다만 스토리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본인 역할 제대로 하는 캐릭터가 몇 없고요
본래 이야기라는 게 기승전결 순으로 가기 마련인데
전개가 빨라서 그런가? 소재가 이래서 그런가?
위기-절정-위기-절정-끝 이게 다인 것 같은 느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오지만 어떻게 잘 해결하고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는데 이것도 나름 잘 해결하고
이걸 2시간 내내 반복하거든요
그래서인지 결말이 너무 허무하고 별거 아니게 느껴지더라고요
우선 신파... 생각보다 많이 없습니다
신파좋아 1인으로서 가장 아쉬웠던 건
이상원, 조윤종 대원이 너무 일찍 죽었다는 거예요
대원 둘이 일찍 죽었기에
황선우의 1인극으로 이끌어가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대표적인 1인 재난극 '터널'처럼 밀도 있는 것도 아니었고
황선우 혼자 이끌어가는 것도... 딱히 아녔거든요
대원 셋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 주다가
한 명씩 목숨을 잃어가는 편이 정말 눈물샘 폭발이었을 듯요
특히 이상원 대원이 죽는다? 이건 걍... 오열 각
근데 캐릭터 파악하기도 전에 죽어 버려서 오... 벌써? 싶었어요
물론 운 부분도 있었어요,,
황선우 대원이 여태 숨기고 있던 아버지의 비밀을 알 때요
황선우의 아버지 역시 우주센터 직원이었거든요
나래호를 설계한 사람인데 나래호가 발사 도중 폭발됐어요
황선우의 아빠는 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 생각하여 자살해요
이때 자신에게 쓴 유서를 읽게 되죠
황선우의 아빠는 승진을 목표로
나래호의 결함을 입다물었다고 고백해요
그러나 실은 아니었어요
당시 센터장이었던 김재국이 승진을 목표로 입닫자고 한 거고
황선우의 아빠는 죄책감에 자살한 거죠
이같은 줄거리가 뻔하디 뻔해서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파를 목표로 만든 장면이기에... 눈물은 나오더라구요
그러나 이런 관계성을 더 길게 잡아 줬음 어땠을까 싶어요
황선우-김재국의 관계는 과거 회상으로만 나오고
절정 부분에 가서야 서로에게 사과하며 마무리하거든요
이 얘기를 들은 황선우가 갑자기 마음을 다잡은 것도 웃기고요
재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인물간의 관계성이거늘,,,
CG에 신경 쓰느라 스토리는 퇴고 안 하셨나 봅니다
불필요한 캐릭터가 많았다고 했잖아요?
우선 윤문영의 경우 필요하긴 하지만 메인급은 아닌 것 같아요
황선우, 김재국, 그리고 한국에 도움을 주는 인물이지만
이 캐릭터는 다른 재난 영화에선 단역으로 나올 정도의
그런... 신적인 존재? 구원해 주는 존재? 거든요
김희애 배우님까지 캐스팅할 필요 있었을까 싶은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 캐릭터는 코미디 요소를 담당한 캐릭터였어요
근데 시도때도 없이 코믹 요소로 작용하더라고요
다들 심각하고 진지하고 황선우는 죽기 일보 직전인데
좀...... 상황에 따라 말을 덜 할 필요도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천문대 직원 한별
이 캐릭터를 가장 모르겠어요
차라리 김재국의 딸로 설정하면 개연성이 있기라도 하지
일개 직원일뿐인데 김재국과의 관계성도 설명 안 해 주고
다짜고짜 황선우 살리기 프로젝트에 참여
전면에 나서며 감정선조차도 한별을 따라가요
아무래도 '더 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 황선우의 감정선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 같아요
대선배라 그런가 설경구 님을 전면에 세워 홍보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황선우인 것 같거든요...
엔딩은 나름 마음에 들긴 했어요
나라와 나라, 대장과 부하로서 황선우를 구하길 명령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우주인으로서 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아무튼 저는 2D로 봤지만
생일선물로 받은 공짜 깊티로 봐서 ㅋㅋ 후회는 없었던...
그런데 이건 VOD로 나왔을 때 보면 정말 재미없을 거 같긴 해요
그냥 경험 삼아~? 4DX로 보시는 거 추천합니다!
좀 어지럽긴 하겠지만요 ㅋㅋㅋ
*스토리: 2/5점
*연출: 4/5점
*영상미: 5/5점
*연기: 5/5점
*OST: 1/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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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삶, <로드무비>
2002년 개봉한 김인식 감독의 <로드무비>는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던 ‘대식(황정민 役)’은 일자리를 잃고 노숙인이 된 ‘석원(정찬 役)’을 만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려던 석원을 구해 준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함께 떠난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던 두 사람의 앞에 ‘일주(서린 役)’라는 여성이 나타나고, 대식을 사랑하게 된 일주는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여정에 함께하게 된다.
세 사람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대식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석원을 사랑한다는 것을 석원에게 들키게 된다. 석원은 자신의 몸에 손 대지 말아 줬으면 한다며 대식을 거부한다. 일주는 대식이 진짜 여자를 못 만나 봐서 그렇다며 대식의 사랑을 갈구한다.
<로드무비>는 제목처럼, 길 위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대식, 석원, 일주는 물론 이들을 데리고 다니던 ‘민석’이나 서울역의 노숙인들 모두 갈 곳이 없는 길 위의 사람들이다. 대식은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을 거부하고 길 위의 삶을 택했다. 석원에게는 아내가 있지만, 경제적인 위기로 인해 아내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일주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식을 따라서 함께 방랑한다.
이 영화는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해 그리고 있다. 다양한 로케이션을 통해 인물들의 방랑을 표현하고, 핸드헬드 촬영은 그들의 거친 삶과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 반복적인 백샷을 통해 인물들의 뒷모습을 보여 주며, 관객들이 그들의 여정을 뒤따라가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성적 지향성, 그리고 그의 동성을 향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퀴어 시네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의 깊이가 다소 아쉽다. 극의 초반, 대식은 한 남성과 정사를 갖고 이별을 한다. 길에서 그만 지내고 같이 살자며 애원하는 남성에게, 대식은 ‘사랑 같은 것 하기 싫다’며 소리를 치고 남성의 뺨을 때린다. 또 대식은 낯선 남성과 화장실에서 일회성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대식의 정체성은 여러 상대(동성)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거부하는, 전형적인 미디어 속 퀴어의 모습을 통해서 표현된다. 그리고 대식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고백하기를 택할 만큼 절절한 사랑을 하지만, 관객은 그저 ‘처음 봤을 때부터’ 첫눈에 반했다는 대사만으로 뒤늦게 납득해야 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전부 소화시키지 못한 채 도달하는 결말은 역시 시각적으로 아름답지만, 반쪽짜리 엔딩이라는 인상을 준다. 퀴어 시네마, 동성 간의 사랑이 ‘로드무비’라는 장르와 함께 이 영화를 지탱하는 주요한 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동성애자인 인물을 구축하는 방식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대식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떠도는 것이 아니라, 떠돌기 위해 (감독에 의해) 동성애자가 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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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와 사랑에 빠진 남자, 그에게 빠진 세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보고 띵작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메시지의 전달과 음악의 결합이 굉장히 탁월했고, 오스카 피터슨의 생애와 재즈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시놉시스
재즈 아이콘이자 작곡가였던 오스카 피터슨의 사운드와 스타덤, 환상적인 연주를 통해 아티스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유산을 탐구한 다큐 콘서트 <오스타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명실공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은 피카소나 모차르트처럼 독특한 천재성을 지닌 것은 물론, 거침없는 연주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천재 재즈 뮤지션의 70년 역사를 담은 영화는 신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그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완성된 트리오 시절의 녹음, 유명 스타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전 세계를 누비며 펼친 솔로 공연뿐 아니라 미국 투어 시절 겪은 인종차별 속에서 그가 보인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인 곡 ‘자유를 위한 찬가’(Hymn to Freedom)까지 담고 있다.
* 해당 내용은 전주국제영화제 보도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음반을 사고 싶게 만들다
취미 중 하나는 집에서 LP를 듣는 것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LP를 들을 때 특히 아무일 없는 주말에 그러고 있으면 편안해져서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LP로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장르는 재즈였다. 그렇다고 재즈에 대해서 잘 알지도,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어서, 이번 영화를 보면서 재즈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스카 피터슨의 이야기를 접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예매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재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그의 곡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담아내고 있는 영화였다. 오스카 피터슨이 재즈씬에 데뷔한 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의 업적과 곡들을 순차적으로 담아내고 있어서그 연대기와 흐름을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피터슨의 명반을 구매해봐? 이러면서 바이닐 검색을 엄청 했던 것 같다.
곡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라이브 밴드로 그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밴드 장면 전후로 이 곡이 만들어지고, 이 곡을 가지고 투어를 다닐 때의 피터슨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물론 피터슨의 곡을 조금 더 듣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솔직히 음원이나 앨범에서 찾아 들을 수 있기에 밴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 음악은 점차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피터슨의 이야기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을 알려주는 인터뷰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접목되어서 솔직히 좋았다. 이러한 이야기가 끝난 뒤 다시 밴드음악이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노래를 듣다보니 그 곡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고비를 뛰어 넘은 사람
오스카 피터슨이 언제나 전성기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기에 은퇴하는 그 날까지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사람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뛰어났기에 전성기 시절보다 떨어진 기량임에도 압도적이긴 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 발전적인 연주를 보여준 오스카 피터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체능계에서는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퇴를 생각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피터슨의 경우에는 뇌졸증이 와 왼쪽 마비가 오면서 왼손의 기량이 현격하게 떨어졌음에도 이 과정에서 은퇴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피터슨은 기존에 트리오 편성을 쿼터로 바꾸면서 자신의 떨어진 왼손 기량을 받춰줄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전성기 시절의 피터슨은 왼손으로 베이스를 다 만들었기에 다른 악기의 반주가 없이도 독주가 가능했었다. 이 지점이 다른 피아니스트와의 차별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비 이후 기량이 떨어지자 그만둘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쿼터에 도전함으로써 더 풍부하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고 연주했다는 그 도전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간만에 음악다큐를 보고 그 명반을 찾아 들으면서 영화관을 기분 좋게 나왔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재즈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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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지 않는 악만큼 중요한 것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라사와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 딸과 살고 있는 남자 타쿠미(오미카 히토시)다. 조용히 일 하는 중인 타쿠미. 장작을 열심히 팬다. 톱으로 나무도 자른다. 일하다 담배 한 번 피워준다. 이런 타쿠미에겐 일행이 있다. "타쿠미 상!" 타쿠미에게 다가오는 타쿠미의 친구. 타쿠미는 친구에게 자연물의 많은 것들을 알려주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눈다. '땅와사비' 하나를 뽑는 타쿠미. 친구에게 "너희 우동집에 이거 넣어서 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니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그런데, 딸 하나(니시카와 료)는요?" 사실 타쿠미는 건망증이 심하다. 하나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때가 오면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내 정신 좀 봐! 사랑하는 딸을 데리러 가는 타쿠미. 그러나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더 건넨다. "오늘 우리 동네에 글램핑을 짓겠다면서 워크숍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 올 거죠?"라고 묻는 친구. 타쿠미는 "간다"라고 답한다. 모든 것이 상류에서 하류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영화는 서늘하게 이 마을에 일어나는 일들을 비추고, 특별한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일반적이지 않다. 영화의 느릿느릿한 템포때문에도 그렇고, 인물의 감정선엔 특히 더 그렇다. 영화의 많은 것들은 상황만 몇 개 보여줄 뿐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 덕에 영화가 좀 뭉뚱그려진 채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왜 타쿠미는 타카하시를 죽인 거야? 하나는 어떻게 된 거야?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아 의문점만 생긴다. 단순히 줄거리와 결말만 그럴까?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기이할 정도로 길어서 어느 부분에서 장면이 끊길지 예상이 잘 안 간다. 단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만 직관적으로 들어와서 '이 영화가 복잡다단한 인간성을 보여주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가 엔딩에서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공격하는 일이 영화 내내 반복됐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를 위해 영화의 몇 키워드에 대해 써 볼 것이다.
첫 번째 키워드는 단절이다. 글쓴이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단절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다. 이 팬데믹 사태는 영화에서 두 사건에 개입하며 인물 간의 갈등을 드러낸다. 우선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마을의 어느 곳에 글램핑 터를 짓는 것이다. 이 글램핑 터를 짓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영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으니 정부에 보조금을 받기 위해'다. 이 공사는 곧 양 측을 갈라놓는 계기가 되어 중반부까지 인물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또 다른 단절은 의사소통의 단절이다. 워크숍에서 박살이 난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주민들에게 "사장에게 말하고 오라"라는 피드백을 듣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사장과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 의사소통은 무언가 특별하다. 바로 줌(zoom)으로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 역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고 보기 어렵다. 타카하시와 마유즈키의 상사는 두 사람의 주장을 별로 귀담아 안 듣고 그냥 무작정 "선주민 남자(타쿠미)에게 글램핑 터 부지의 관리인 직을 제의해라"라고 말한다. 이 대화는 방식의 측면에서도 제약이 많은데 내용도 알차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 둘의 상사 간의 대화가 단절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암시하는 연출이다.
두 번째로 암시하고 있는 이 영화의 단절은 건망증이다. 타쿠미는 뭐든 잘 잊어버린다. 영화 초반부에 딸 하나를 데리러 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친구 덕에 그 약속을 떠올린다. 사실 처음 볼 때 이 장면을 그냥 별 것 없다고 넘겼다. 깜빡 잊어버리는 건 그냥 우연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잊어버린다'라는 모티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본다면 분명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타쿠미는 앞과 뒤에 일어난 일 중 먼저 발생한 사건을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가 (후술 하겠지만) 자연의 순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특별하다. 타쿠미는 전을 잊어버리고 이후에 일어난 일만 기억했다. 이 결과로 딸 하나를 데려오는 걸 잊어버렸다. 영화가 전에 일어난 일을 잊어버린 자에게 소소한 벌을 내렸다고 볼 수 있고, 역시 타쿠미는 사건의 전부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않아 '단절'을 체화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하나를 둘러싼 단절도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초반부에 하나는 사슴의 사체(뼈)를 본다. 아빠에게 "얘는 총에 맞았다"는 말을 들은 하나. 이 하나는 연이어서 사슴을 목격한다. 초반에 사슴이 죽은 걸 봤다. 그다음 장면은 사슴이 살아있는 장면이었다. 그다음의 다음 장면은 하나가 사슴에게 공격당한 뒤의 장면이다. 이 장면들이 시간 순서대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글쓴이가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두 번째 장면이 진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느 순간부터 혼자 다니는 모습만 나온다. 이야기를 이끄는 동력도 뭣도 없는 채 신화의 한 장면 같은 장소를 돌아다닌다. 하나가 공격당했다는 묘사가 있을 리가 없다. 엔딩에서 코피 흘리는 하나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신기루 같은 하나의 행보를 더 신비롭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소파에서 잠을 자는 하나. 카메라는 아버지 타쿠미가 하나를 업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이 끝나면 다시 하나가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과연 뭐가 진짜일까? 어떤 장면이 영화의 메인 플롯인지는 하마구치 류스케도 모를 것 같지만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와 관련된 몇 장면들은 순리를 벗어나는 연출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나는 "숲 깊은 곳에 들어가면 사슴에게 공격당할 수 있어"라는 경고를 무시한다. 종합해 보자. 하나는 섭리를 어기는 존재다. 이를 영화 안의 이야기로, 또 연출로 보여주고 있다. 단지 하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그 모든 모순을 이을 뿐이다.
단절 다음으로 설명하고 싶은 키워드는 양 측간의 갈등이다. 영화는 성실하게 두 집단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한다. 이 소시민스러운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우선 전반부. 영화의 주인공이 타쿠미이기 때문에 타쿠미 쪽 서사가 나온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귀여운 딸 하나와 함께 산다. 어떤 장면에선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길을 걷는 장면이나 자연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있다. 인물의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사실 영화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쿠미한테 어떤 사정이 있건 없건간에 살인자는 살인자 아닌가? 하지만 이 묘사는 후반부에 타카하시와 마유즈키가 자동차에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차 안 대화 장면은 사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기시감이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에서 자동차 안의 대화를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과정으로 소화했다. 이 장면은 그 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역시 적용된다. 관객들도 인물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 장면의 역할까지 본다면 두 세계에 정을 붙인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 소개팅 앱이나 마유즈키의 직업이 요양보호사였다는 사실이 굳이 들어간 이유는 역시 이 둘(타카하시, 마유즈키)도 그냥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차 안 대화 장면이 들어간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야기의 중후반인데, 이 영화가 가령 <매그놀리아> 내지는 <도그데이즈>(2024)같이 각자의 입장이 중요한 옴니버스 영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 타카하시-마유즈키의 인간적인 면모는 초반부에 들어가야 적절하다. 왜? 이 둘에게도 마음을 열 만한 가치가 충분하고 역시 주인공이니까.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과감하게 중후반부에 배치한다. 이 장면 이후 '하나가 실종되고 - 타카하시가 살해당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을 통해 그린 인물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보여주는지 느껴지는 듯하다. 두 사람은 전적으로 동격에 놓인 선량한 사람이다. 악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 영화의 살인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더 직설적으로, 우리는 이 영화 하이라이트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100%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것들이 서로 충돌하며 작용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위에서 단절과 양 측의 갈등에 대해 서술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필연이다. 사실 글쓴이가 쓰지 않은 부분이 있다. 단절과 갈등에 대한 부분을 더 깊게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위에서 쓴 '단절'과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은 필연이라는 키워드 하에 묶여있다. 첫 번째 예시. 마유즈키가 팔을 다치고 하나가 공격당한 사건이다. 이 둘은 전적으로 별개의 사건이다. 마유즈키는 집에서 쉬는 걸 선택했고 하나는 촌장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공통점을 가지며 반복된다. 두 인물은 자연의 경고를 들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두 인물에게 공통된 필연이 주어졌고 이 필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점이 갈린 것이다. 두 번째 예시. 주인공의 집에 회장님이 와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후반부에서 다시 반복된다. 무엇으로? 마유즈키와 타카하시가 상사와 비대면으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둘은 겉으로 보기에 목적과 내용이 아예 다르다는 점에서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대화는 상호 간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렇게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일이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각기 다른 입장에 놓인 인물들이 당연한 순리를 거치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과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을 잊어버린 것 역시 상호 충돌한다. 하지만 둘이 별개의 것인 거랑 이 두 사건은 하나의 키워드로 엮인다. 타쿠미가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그 줄기다. 이렇게 두 별개의 사건이 하나의 필연으로 이어진다는 방식은 영화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과도 이어진다. 바로 초반부 타쿠미와 하나가 사슴의 뼈를 보고 "총을 맞았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둘은 별개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 장면을 묘사하는 전후의 톤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전반부는 다큐 같은 템포였지만 후반부는 판타지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에 두 사건은 별개의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 같다. 하지만 이 두 장면 역시 공통점이 있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장면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이 간다. 명확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이럴 땐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필연적인 일들을 엇갈리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필연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것들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가 존재해서 이 사건을 연결시킨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단순히 플롯에서만 이런 맥락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향이나 편집, 촬영 같은 것도 이 충돌을 시청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초반부.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걸어가고 있다. 영화가 있는 그대로 보여줄 거면 하나를 만나고 업히고 하는 장면을 보여줘도 된다. 하지만 영화는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해서 부녀를 보여준다. 이러면 뭐가 생기냐. 이야기가 초장부터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기이하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이 장면에 들어가는 음향은 역시 이 연출의 연장선상이다. 사운드가 부녀간의 감정을 쭉 보여주는 듯하다가 갑자기 끊는다. 단절이다. 우리가 영화까지 가는 감정선은 단절되지만 영화 안의 내적논리는 그 순간에도 재생되고 있다. 심지어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들리다가 끊기는 형태는 반복된다. 단절의 이미지를 하나로 이어서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영화의 편집 역시 이상한 리듬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마치 사운드가 들리다가 끊기는 것처럼 영화가 테이크를 길게 뺄 때의 규칙이 안 보인다. 가령 초반에 주인공이 물통에 물을 채울 때를 본다면 그냥 물만 길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들고 지나가는 것까지 다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한다. 또 어떤 장면에선 두 사람의 시점을 고의적으로 충돌시키는 편집까지 보여준다. 가령 주인공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을 보면 재미있다. 카메라에서 땅와사비 뽑는 장면을 보면 땅와사비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장면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자연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자연물의 시점을 동시에 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타쿠미가 자동차를 끌고 주차하는 장면을 보면 초반에는 타쿠미의 차량을 보여주다가 후반에는 차 뒤편에 있는 여자를 카메라가 보여준다. 이 주차 장면이나 땅와사비 장면이나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 안의 누군가도 함께 등장시킨 것이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이야기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두 사건에 묘한 선후관계를 제시해서 필연으로 만든 걸로 모자라 카메라워킹으로 영화 안에 존재하는 3자를 등장시킨 것이다. 악인이 존재하지 않지만 3자는 존재하다는 것. 그리고 이 3자가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3자는 무엇일까? 영화의 첫 장면과 가장 마지막 장면이 아예 다른 맥락임에도 이야기의 틀을 이룬다는 점에서 수미상관처럼 느껴지고, 엔딩에서 새끼 사슴과 하나를 동일시시키고, 이 폭넓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영화 등장인물들이 지키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묻게 하는 것. 그게 무엇일까?
글쓴이는 이 엇갈리지만 영화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을 한 단어로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쓰다가 갑자기 네이버 검색창에 '순리'라고 검색하면 '순한 이치와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이라는 의미가 나온다. 이치와 도리. 당연하게 당면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 하나처럼 영화 안에서 독립된 사건으로 움직이는 인물들도, 타쿠미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물도, 타카하시처럼 사람은 착하지만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은 사람들도 이 순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 생각은 영화에서 하나가 실종되면서 시작되는 장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장면의 시작을 잘 보시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쪼르르 흘러가는 장면이 기점이다. 이 장면은 영화 안에서 맥락이 생기기도 한다. 워크숍 장면에서 마을회장 할아버지는 "상류에서 만들어진 일이 하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하류의 사람들이 상류의 주민들을 원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이에 힘입어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말한다. 영화 안에서 개입을 지양하고 순리에 따르자는 논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하나의 실종도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라는 맥락이라는 걸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하나의 실종이 순리에 따른 결과가 되는 셈이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물론 영화는 하나의 실종만을 순리로 단정짓지 않았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들은 영화 전,후반부에 두 개나 있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벌인 각각의 실수는 인물들에게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실수를 저지른 인간들은 영화 안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 첫 번째 실수는 타카하시의 것이다. 그 질문이 뭐냐. 영화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는 "사슴은 그래서 어디로 가지?"라는 질문이다. 타카하시는 이 질문에 그냥 대충 얼버무린다. 인간의 개발을 위해서라면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 위협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 사슴의 생사에 대해 깊게 탐구하지 않은 인간의 벌이 뭘까? 타쿠미에게 글램핑 터의 관리자 역할 같은 걸 대안으로 내민 벌은? 살인이다. 목숨을 잃는 것이다. 이 영화가 필연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고 길게 쭉 썼다. 이 필연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인간의 개입에 대해 경고하는 자연을 무시하고 대충 얼버무리다 처형당한 인간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까? 자연에 의해 팔을 다친 마유즈키는 타쿠미의 집에서 쉰다. 경고를 마지막엔 받아들인 마유즈키는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이다. 만약 타쿠미와 동행했다면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실수에 의한 처벌'이라는 부분에 근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두 번째로 범한 실수에 대해 적는 것이다. 영화가 두 상황을 필연으로 잇는다고 길게 써왔다. 그럼 이 것(타쿠미의 살인)과 유사한 상황이 영화에 있다는 뜻이겠지? 글쓴이는 총성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 총성이 탕 울린다. 이 총성 때문에 사슴이 죽었다는 걸 타쿠미는 이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관한다.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소리지만 원인을 규명하지 않는다. 이는 곧 타쿠미도 타카츠키와 유사하게 자연의 경고를 방관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에 노력하지 않은 것. 이는 영화 후반부 타카츠키가 의무를 포기한 것과 겹쳐 보인다. 그럼 어떻게 돼? 당연한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나태한 인간이 방관한 탓에 애 먼 사슴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슴은 총을 쏜 인간에게 분노해서 하나를 공격했다. 심지어 하나는 마유즈키처럼 자연의 경고, 그러니까 회장 할아버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조건이 충분하다. 이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자를 보여주면서 순리를 묘사하는 만큼 엔딩에서 타카하시가 살해당하는 장면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에 연장선상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 내지는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심지어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대신 그 이유를 뭉뚱그려 보여준 것이야 말로 영화의 기획의도를 살리는 좋은 선택이다. 애초부터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면 자연 그 자체지 인간이 아니다.
카메라와 편집도 이 이야기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그대로 구현한다. 하나 보여준 다음 사슴 보여주고 사슴의 피살 보여준 다음 하나를 비춘다. 이건 편집이 의도적으로 두 존재를 동일시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살인을 저지르고 하나와 함께 도망가는 타쿠미를 먼발치서 익스트림 롱쇼트로 찍는다. 어느새 형상조차 보이지 않으면 의식이 흐릿한 타카하시가 몸을 비틀거리면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중후반부 차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가락국수집에서의 장면을 통해 강박적으로 대칭을 이룬 것과는 대비된다. 균형을 어긴 인간이라는 걸 영화가 기술적인 부분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그냥 뚝딱 만든 각본 같아 보이지만 영화 안에 잡혀있는 내적 체계가 굉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영화 안에서 구현하는 것. 이거야 말로 영화의 목적이자 모든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천천히 쌓아 올려 한 번에 터트렸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정성이, <우연과 상상>에서 인간이 서로를 마주하며 일어나는 묘한 스파크가 터졌던 그 순간을 엔딩으로 치환시켜 관객에게 강력한 충격을 선사한다. 또한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예술의 속성과 동일시했던 것이 굉장히 신선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우리 세상에 살고 있는 무형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괴력을 보여준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치를 거부한 인간에게 응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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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판은 깔았으나 재미는 그닥
#영화 #올드가드 #리뷰
액션, 판타지│미국│124분
감독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출연 샤를리즈 테론, 키키 레인오랜 시간을 거치며 세상의 어둠과 맞서운
불멸의 존재들이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또다시 힘을 합쳐 위기와 싸워나가는 이야기#리뷰문의
adonai0919@gmail.com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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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OPENING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올해 제천엔 누가누가 왔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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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2067> 메인 예고편
“반드시 구해낼 것이다”
지구 종말이 도래하고, 산소가 중요한 화폐가 된 서기 2067년.
‘타임머신’이라고 불리는 일명 ‘크로니컬’이 발명되고,
407년 뒤, 2474년 미래에서 보낸 메시지가 도착한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 미래를 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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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하 : 테이크 온 미> 티저 예고편
메가 히트송 ‘Take On Me’의 주인공
레전드 밴드 a-ha의 탄생과 성공 그리고 음악으로 연대하는
이들의 무대 위, 무대 밖의 진짜 이야기
전율의 이름 a-ha의 스크린 콘서트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