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2-13 14:15:38
오지 않는 속편을 기다리며
올 때까지 기다린다

다들 속편이 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영화가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그중에서도 요청이 쇄도했던 <콘스탄틴>의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많은 팬을 기쁘게 했는데요.
<콘스탄틴>처럼 다른 영화들도 하루빨리 속편이 제작되기를 바라며 콘텐츠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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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이 글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는 가상의 상황에서 편지를 받았다고 제발 믿어주라(?)
사진 출처:다음 영화
리지 씨에게.
안녕하세요.
우선 너무 늦게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저 역시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라는 같잖은 헛소리를 최근까지도 들으면서 자란 사람이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본 친구들은 분명 징그럽고 피 튀기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올 때 저를 지배했던 감정은 당신을 향한 슬픔과 동병상련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의 부조화는 마치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의 관계처럼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마음이 꽤 오랫동안 복잡했어요. 어쩌다 거울 속의 당신을 스스로가 미워하게 된 것일까.라는 물음에 제가 감히 답을 낼 수도, 내기도 어려웠거든요. 저의 얕은 생각과 비루한 기억력을 거스르고 또 거슬러 올라가서. 그 미움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답(?)이 나오더라고요.
단 한마디였습니다. 당신의 빛남(sparkle)을 가져간 것은. 타인. 그것도 당신보다 더 나이가 들었으면 들었지.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남자의 단 한마디. 아마도 당신은 여태껏 스스로 빛을 내는 별(항성)인 줄 알고 살아왔을 텐데. 그 비수는 참 힘이 세서. 당신의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핵융합의 심장부에 꽂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당신 안의 반짝임을 스스로가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의 평판을 반사해야만 빛나는 행성이 되어버린 순간이라고 할까요. 아, 그리고 저는 당신이 새우를 씹던 하비의 입을 찢어놓지 않았다는 그 절제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저였으면 포크로 아마 콧구멍을 후벼 팠을 거예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
한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은교]에서는 이런 문장(대사)이 있습니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이죠. 분명 당신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패배감과 상실감.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 빛날 수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도 없으니 반사되어 빛나기라도 할 수 없다는 초조함이 아마도 수의 탄생을 부추기는 힘이 되어버렸으리라고 생각해요.
나였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저 역시 또 다른 나의 탄생을 막을 수 없었을 거예요. 과연 누가 당신의 선택에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그리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차라리 저는 수의 탄생 이후에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어쨌거나 서브스턴스 제공사(?)측의 말처럼 당신과 수는 하나였으니까. 두 사람 간의 균형이 지켜질 것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당신이 멍하니 TV앞에 앉아서 수의 탄생 전 보다 더 슬픈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과의 데이트에 앞서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이라도 하듯 립스틱을 빡빡 닦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미워하는 듯한 당신의 모습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언젠가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물론 그 어떤 위로도 당신에겐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수를 탄생시킨 것은 당신이고.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젊음을 누리고 싶었던 것도. 그리고 그토록 증오했지만. 어쩌면 당신에겐 가장 필요했을 하비의 인정을 바랐던 것도 당신이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더 빛나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망이 이토록 큰지. 당신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욕망이라는 게.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깊이의 우물 같은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
육신이라는 게 참 덧없지요.
분명 미워해 마지않던 50대의 당신이었잖아요. 하지만 그마저도 수에게 하루 이틀, 야금야금 빼앗기고 난 후의 당신의 눈빛은 참 아팠습니다. 그리워하고 있더군요. 커다란 액자 속 스스로가 미워했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절박감은 수에게도 찾아왔죠. 그녀가 늦게 깨달은 것인지. 당신이 일찍 깨달은 것인지. 줄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의 치아가 뽑혀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그저 한 사람의 절박함과 공포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의 정중앙에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되어야 할 그 순간에. 피를 흘리다 못해 분사하는 당신의 모습은 여태 하고 싶었던 본심을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괴물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괴물인가. 아니지, 우리 모두 괴물인거지.라고 울부짖는 것만 같았어요. 마치 영화 [샤이닝]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그 괴기스럽기도, 또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는 장면에서. 저는 허망하게 흩어지는 당신의 살점과 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주변 세탁소에서 기함을 토하며 그냥 이 옷을 버리라고 말할 것 같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꼭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아 물론 정상적인?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피를 그만큼 흘릴 수도 없을뿐더러 그만큼 흘리면 명예의 전당까지 기어갈 힘도 없겠지만. 이것은 저의 직업병이며 영화적 허용이라 보고 넘어가도록 하죠(?)
사진 출처:다음 영화
마지막 인사를 뭐라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이 망설였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 라는 뭉뚱그린 말로도 그간 입은 상처를 다 보듬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동안 외로웠죠.라는 개똥철학도 건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힘내라는 뻘소리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최후는 바닥에 묻은 케첩의 말로처럼 참 처참했지만. 그러면서도 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끝나버렸죠. 이 모든 것이 아 시발 꿈처럼 느껴지는 마지막이었기에 더 어떤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당신이 겪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절대 없어지지 않겠죠. 두 번째 당신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저 역시 그 푸른 드레스를 입은 살덩어리를 괴물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제일 먼저 도망갈걸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기억될 거예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이죠. 그게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것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신.
그…. 주삿바늘은 한 번쓰고 버리신 거 맞죠? 어우.. 제발..
[이 글의 TMI]
1. 이렇게 자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연휴 내내 자는 중.
2. 이럴 거면 그냥 겨울잠을 자라.
3. 노동요 추천받습니다.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서브스턴스 #데미무어 #영화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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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의 연속, 맥락 없음의 반복
"드라마에서 큰 강점을 보였던 배우 윤시윤,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관에 들른 건 단지 그 이유에서였습니다. 윤시윤 배우의 연기를 스크린에서 본 적이 없어 궁금했습니다. 그는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긴 하나, ‘찌질한 호구’ 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이것은 제가 이 영화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칭찬입니다.
대단한 창작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방자까의 영화리뷰’를 쓰면서 나름대로 지켜왔던 원칙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점을 보려고 하자.”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에 서린 노고를 몇 마디 말로 폄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번만큼은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하겠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개인적으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던 영화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의 몇 가지 포인트들을 짚어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2월 7일(화)에 진행된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의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는 2023년 2월 8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Love My Scent
소설, 연극, 음악,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이야기를 다루는 창작물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장르와 차별점을 갖죠. 그래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영화가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을 논하며 영화를 평가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러한 평가마저도 불가능한 작품입니다. 이야기 그 자체에 허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는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받은 향수를 뿌리고 모든 사람의 첫사랑이 되어버린 '창수'가 사랑이 낯선 여자 '아라'의 마음을 얻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자꾸 '-게 되다'는 수동 표현을 쓰게 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 놓이거든요. 우연이 계속되고, 맥락 없음은 반복됩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돈 많은 회장님이 향수를 뿌리면 자신이 상대방의 첫사랑으로 보이는 향수를 만들라고 지시하며 시작합니다. 연구진은 향수의 효능이나 실험의 목적을 밝히지도 않고, 평범한 사람 몇 명에게 무작위로 향수를 쥐여주고 몰래 실험을 진행하죠. ‘창수’는 그 실험 대상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굳이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실험을 강행하는 이유가 뭘까요? 제품 개발 이후, 불법적인 유통 경로로 마법의 향수를 판매하기 위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악의 목적으로? 아닙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개발해 치매를 앓는 회장님의 부인이 젊은 시절 회장님의 얼굴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였죠.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평범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강행한다는 설정부터 이미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기까지는 사건의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설정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향수를 실험 대상 ‘창수’에게 건네는 장면을 보고, 잠시나마 이 영화를 이해해주려 했던 제가 미워졌죠. 연구진은 귀가하는 ‘창수’를 냅다 뒤쫓다가 이벤트 회사에서 빌린 듯한 스모그 머신으로 길거리에 갑자기 연기를 흩뿌리고는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이런 멘트를 날립니다. “인생이 달라질 기회! 잡고 싶지 않나?" 귀가 중에 대뜸 이런 구한말 멘트를 들으면, 대개는 깜짝 놀라거나 어이없어하며 자리를 뜰 겁니다. 하지만 지독히 착하고 오지랖 넓고 호구 같은 남자 ‘창수‘는 아리송해하면서도 향수를 넙죽 받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꿈이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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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이것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웃기는 데 실패한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순진한 ‘창수’는 그 향수를 뿌리고, 찌질한 호구에서 모든 이의 첫사랑으로 거듭납니다. 매일 버스에서 마주치는 ‘아라’도 그중 한 명이 되죠.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점이 생깁니다. 길거리에서 향수 냄새를 얼핏 맡은 사람도 좀비처럼 '창수'를 쫓아올 만큼 강력한 이 향수는 왜인지 창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준일', '복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첫사랑이 없어 떠올릴 사람이 없다면 '아라'처럼 사랑에라도 빠져야 하는데, 그런 양상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예외가 된 거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설정들은 이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들이 참 많습니다.
어쨌든 '아라'와 사랑에 빠진 '창수'는 또 갑자기 의문의 남성으로부터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는 협박을 받습니다. 협박남은 '창수'에게 향수에서 시작된 사랑이 진짜 사랑이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죠. 착하고 순수한 '창수'는 '아라'의 마음을 조작했다는 죄책감과 고민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애초에 '창수'는 '아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향수를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가짜 연기와 함께 등장한 이상한 사람이 공짜로 준 향수를 그냥 뿌린 것뿐입니다. 그게 첫사랑 유발 향수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죠. 그런데 바로 그날, 하필 첫사랑이 없었던 '아라’가 그 향을 맡은 겁니다. '창수'는 그날 이후에 '아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향수를 쓴 적도 없고요. 그러니 관객은 ’창수‘가 왜 저렇게 벌벌 떨며 긴장하고 괴로워하는지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히 협박범의 협박도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창수'에게는 귀책 사유가 없거든요. 게다가 이 의문의 남성이 향수의 제조자이면서 '아라'의 전 남자친구라니요? 긴장감을 유지해야 할 이야기는 줏대 없이 흐물거리는데, 우연과 맥락 없음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쓸데없이 그 힘을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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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듦새보다 더 저를 화나게 했던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영화 전체를 뒤덮은 PPL입니다. 영화관에 들고 가는 메모장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PPL 제품을 적으며 작품을 보았을 만큼,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에는 노골적인 PPL이 다수 등장합니다. 주인공 ‘창수’의 직업은 대놓고 자동차 딜러입니다. 이 영화에 쉐보레 자동차가 등장한 시간을 다 합치면 족히 십 분은 될 겁니다. 삶에 치여 제대로 된 양복 하나 사입지 못하는 ‘창수’는 작품 속에서 장비를 단단히 챙겨 캠핑을 두 번이나 갑니다. 거기서 육개장도 두 번이나 먹습니다. ‘창수’가 사는 곳은 서래 더 하임. 건물 전경과 로고를 하도 많이 보여줘서 외워버렸습니다. ‘창수’와 ‘아라’의 사랑이 맺어지는 곳은 하필 아쿠아플래닛 광교점입니다. 데이트 삼아 수족관 곳곳을 한참 보여줘서 평생 아쿠아플래닛은 안 가봐도 될 것 같습니다.
PPL을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대본을 수정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의 과도한 PPL. 영화 제작을 위해서는 이런 식의 투자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건 잘 알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요? 관객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가는데, 광고 영상만 잔뜩 보고 나오면 안 되죠.
더불어 이 영화가 코미디를 사용하는 방식도 전체적으로 한숨이 나옵니다. 스토리 흐름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억지 개그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캐릭터(’복길’)를 넣는가 하면, 어떻게든 웃음을 터뜨리려는 대사를 잔뜩 넣어서 가뜩이나 맥락 없는 이야기를 더 흐트러뜨려 놓죠.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웃으라고 넣어둔 개그 요소에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지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전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작 이런 개그에 웃어버린 저 자신에게 짜증이 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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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이 영화를 강하게 비판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을 찾기가 도무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한국 영화의 평균을 낮추는 이런 작품이 앞으로는 부디 줄어들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잘 안되면 OTT에 팔아넘길 요량으로 PPL을 점철시켜 대충 찍어내는 영화, 이제는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점점 비싸지는 영화표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Summary
삶에 치여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 ‘창수’. 낯선 이에게 받은 향수를 뿌리자마자 여자들이 달려든다. 가족에 치여 누굴 좋아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여자 ‘아라‘. 어느 날, 매일같이 타던 버스에서 나는 향기에 두근대기 시작한다. ‘창수’에게 이끌린 ‘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서툴러도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던 그때,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 애인 ‘제임스’가 폭로한 ‘창수’의 비밀! 내가 사랑에 빠진 게, 향수 때문이라고?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임성용
출연: 윤시윤, 설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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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지켜온 침묵을 벗어나게 해 준 것
숲 속
밖으로 나오기 싫었다. 분명히 자기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던 코오트. 그냥 무시할까 싶었지만 소녀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점점 더 굽어지는 허리. 집 안에 들어가도 숨고 싶은 기분이다. 침대 밑 공간으로 들어가는 코오트. 유달리 말이 없는 소녀 코오트에게 가족이란 족쇄 같은 존재다. 사실 이 집에 엄청난 경사가 있다. 바로 코오트의 동생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도 코오트는 영 기쁘지 않다. 어두운 낯빛. 가족 안에서 유달리 겉돌던 코오트. 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오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에게 뭔가를 빌려 뭔가를 마시고 싶었던 코오트. 음료수 마시려고 책상에 놨다. 남자 애들이 그 찰나도 허락하지 않았다. 책상을 퍽 치고 지나간 아이들. 잔에 동동 띄어놓은 음료수가 모두 옷으로 튀었다. 화가 난 코오트. 하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코오트에게 침묵은 익숙했으니까.
아버지에게로 향한 코오트. 차에 탔다. 누군가를 태우는 코오트의 아버지. 어머니는 아니다. 젊은 여자였다. 이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더라도 아버지의 내연녀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건 ‘경마 책 좀 읽으면 안 돼?’라는 말이다. 여전히 어두운 조명이 드는 집 안.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던 도중 부모님의 대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다. 바로 코오트의 동생이 나오기 전까지 주인공이 친척 집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집 하나. 중년의 여자가 환한 표정으로 코오트를 반긴다. 그 순간, 메말랐던 코오트의 삶에 화사한 빛이 내려온다.
밝거나 어두운 집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부분은 조명이었다. 글쓴이는 집의 대비를 어떻게 줬는가? 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도입부. 코오트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어두운 집. 가난한 집안이라는 경제적인 세팅이 있지만 한낮에 어두울리는 없다. 이야기에서 코오트의 원래 집이 언제 들어가는지를 중심으로 본다면 이 연출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두운데 사람에 물건에 화면에 온갖 것이 다 들어가니 안 그래도 갑갑한 기분이 더 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집에서 빛이 향하는 방향에 대해서 써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사촌 에블린에 집에 도착했을 때의 장면이다. 주인공이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층계를 올라간다. 빛이 들어가는 방향은 환하지만 그 아랫부분은 어둡다. 이 색채 대비는 사실상 코오트의 내면세계와 대비된다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공간에 왔기 때문에 빛이 들었지만 아버지가 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둡다. 또 다른 연출요소로는 ‘속박’을 어떻게 형상화했는가?라는 점이다. 이는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왠지 모르게 자유로워지는 느낌에 임팩트를 준 연출 역량이 돋보인다. 이렇게 영화는 소담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꼼꼼하고 섬세하게 미장센에 힘을 줬다.
섬세하고 꼼꼼하게
영화에서 강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화법이다. 영화는 디테일한 부분을 잘 살려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글쓴이는 이 근거로 코오트의 캐릭터 세팅을 꼽고 싶다. 말이 없다는 것. 그동안 코오트 가족이 주인공을 기죽게 키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설정이 유효하다. 이 속성은 주인공의 어떤 특징과 이어질까? 사회성과도 이어진다. 이 인물은 이야기를 전개하며 부족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영화 내내 노출한다. 이 부족한 사회성에 관한 인물들의 리액션이 아주 흥미롭다. 또 부족한 소통방식으로 인해 에블린 가족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어떻게 대비되는지를 봐도 역시 흥미롭다. 단순히 기능적으로만 딱 갔다 붙여 놓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가족 설정 역시 이에 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는 방식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말이 없다는 것. 왜 말이 없을까? ‘어떤 것’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반대로 주인공을 향한 어떤 종류의 말은 많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서 인물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은 주인공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말과 ‘어떤 것’이 동격에 놓이는 연출에 유심히 집중하신다면 감상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또 소소하게 살리는 요소들이 아주 흥미로웠다. 바로 말과 소의 대비다. 당연히 코오트가 시골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농장 묘사가 들어가기에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것은 도박을 묘사하는 방식이 되고 다른 것은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기능하게 한다는 점이 대비된다. 이는 후반부에서 비슷하게 대비된다. 두 가족의 입장? 후반부에 드러난다. 이 가족이 처해있는 상황이 반대가 되는 것이다. 극 중에서 물을 활용한 방식도 마찬가지다. 가장 결정적인 대비는 엔딩에서 드러나는데 이 부분까지 집중한 채로 보신다면 영화의 연출이 얼마나 꼼꼼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영관 좀 늘려줘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야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다. 이 부분은 역시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작동한다. 이 장면을 위해 등장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짜여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확히 의/식/주의 요소를 영화에서 다 품고 있다. 우선 옷의 관점. 이 옷에 관한 연출은 이야기에서 핵심으로 작동하고 강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식과 주에 관한 부분이다. 먹는 것. 초반부 카이트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에서 가족들이 뭔가 먹고 있다. 여기서 어두운 조명 탓에 뭐 먹는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초중반부를 넘어서 보면 숀이 카이트에게 주는 것들이 화면비에 비해 두드러지게 촬영한 부분이 이에 대한 예시다. 촬영으로 카이트의 내면 묘사를 구성한 것이다. 다음은 집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에서 카이트는 어떤 일을 벌인다. 당황하는 에블린. 이 사건에 대해 잘 생각해 본다면 역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어떤 집에서는 이런 행동을 벌이지만 자기 집에서는 침대 밑에 숨는다. 심지어 자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대비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의식주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펼쳤는가? 주인공의 위치로 인한 대비(집)도 있었지만 이 부분은 전적으로 카메라의 방향과 관련이 있다. 주인공은 말이 없다. 왜 말이 없을까? 자기를 둘러싼 폭력은 잦지만 반대측면에서 부족했던 뭔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말이 없으면 어떻게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지? 주인공의 시점 쇼트다. 주인공이 어느 것을 바라보는가. 주인공의 표정은 어떤 형태인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주인공은 어떤 모습인가. 친절하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보다 코오트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 것이다. 이는 각자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와도 관련이 있다. 왜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전달이 이뤄지는가?를 보여준 이 영화가 수작으로 뽑힐 만한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은 이렇게 우리가 그 감정에 동참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상영관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작품이지만 마석도의 주먹 한 방에 묻히기엔 아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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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당신을 사랑했더라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당신을 사랑했더라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최악의 다른 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수많은 선택 속에서도 또 다른 선택을 하는 율리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의 이상향과 사랑은 빠져들었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에는 많은 문제에도 포기하지 않는 성격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가 아닌 정신과 감정을 좇던 율리에는 사람 자체를 담는 일을 선택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무엇이든 해내며 끊임없이 변화를 마주하는 율리에 와 그를 아우르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로 하여금 최악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큰 힘을 싣는다. 좀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한 여자와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랑은 왜 그에게 있어서 최악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율리에는 정착하지 못한 채 지나간 시간 앞에서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편안함 앞에서 족쇄를 느끼기도 하고 낯섦에서 자유를 느끼며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율리에는 현재의 감정과 지금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감정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들을 남겨둔 채 세상이 멈춘 것처럼 끊임없이 달린다. 그렇게 도착한 사람과 사랑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놀라우면서 동시에 부러웠다. 도저히 쉽지 않은 그 선택은 자신을 위해, 자신에 의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것 중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 없기에 더더욱 그랬다. 현실을 생각하면 과거와 현재를 제쳐두며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선택할 수 없었을 텐데 그는 온몸으로 혼란에 부딪힌다.
그가 지나쳤던 것들에 의해 다시 배우기도 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아가고 생각으로 그치지 않는 행동은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자신의 본질을 찾아간다. 받아들이는 의연함과 현재에서 비롯된 미래를 잃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 내가 사라지면 내가 기억하는 너도 사라질 거라는 말로 남는다는 것도 그가 했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가 했던 선택이 결코 쓸모없는 행위가 아녔음을 방증한다. 수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후회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하는 이유인가 보다.하지만 그 사랑에도 끝은 존재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람들이 흩어져 사라지고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을 마주한다. 사랑할 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최악이었던 내가 보였다. 사랑할 땐 최악이 되었던 '나'는 '나'를 사랑하기에 더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수많은 챕터를 넘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가 했던 선택과 사랑은 그저 치기 어린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욕심, 누군가에겐 상처였던 율리에의 사랑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며 진정으로 원하던 사랑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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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우리 안의 특별함을 깨닫는 신호
뉴저지주 패터슨에 살고 있는 패터슨(애덤 드라이브)은 어김없이 오전 6시 눈을 뜬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직장인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직장으로 향하는 도중엔 아침에 본 성냥갑에서 받은 영감으로 시를 구상한다. 사실 패터슨은 버스기사이자 시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중에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내인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뿐이다. 로라는 패터슨이 언젠간 위대한 시인이 될 거라 굳게 믿지만 자신을 드러내기 꺼리는 남편의 모습에 답답해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내고야 마는 로라의 성격으론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오늘도 반려견인 마빈과 밤 산책을 마친 후 돌아온 패터슨은 다음 날을 준비하며 잠자리에 든다.
<패터슨>은 참 굴곡이 없는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패터슨이라는 평범한 개인의 하루가 7번이나 반복돼서 나열되니 굴곡이라는 것이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루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 짐 자무시는 같은 인물의 하루를 극한으로 파고들어 간다. 한 우물만 파는 것만큼 지겨운 것은 없고 영화에서 지겨움만큼 힘겨운 적(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면 자무시 감독이 남겨 놓은 평범한 개인의 삶에 담긴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특별함이란 TV나 유튜브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정작 자신은 평범하다고 주장한다. 패터슨의 본업은 평범한(?) 버스기사다. 하지만 그의 비밀 노트엔 여느 시인들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하다. 아내인 로라만이 패터슨의 특별함을 알고 끊임없이 격려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아내의 칭찬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아내의 꿈에 진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로라의 꿈은 일주일 동안 여러 번 바뀐다. 컵케이크 집 사장에 기타리스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인테리어 업자까지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번 바뀌는 로라의 산만한 모습에 패터슨은 언제나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지만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의심이 무색하게 행동의 결과를 내는 것은 언제나 로라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자신이 맛없어 남긴 컵케이크는 대박이 났다. 패터슨은 영화 속에서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지만 로라를 향한 그의 표정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보인다.
분출되지 못하는 패터슨의 감정은 반려견 마빈을 통해 드러난다. 패터슨과 마빈은 사이가 안 좋다. 산책을 가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기본이고 집 안에선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갈등이 펼쳐진다. 이는 이성과 본능의 충돌을 패터슨과 마빈의 모습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양분된 패터슨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은 세탁소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래퍼를 만났을 때다. 노랫소리를 따라간 세탁소에서 패터슨은 문 뒤에 숨어 조용히 노래를 듣지만 마빈은 래퍼 앞에서 대놓고 자신을 드러낸다. 장소에 상관없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래퍼를 향한 두 캐릭터의 상반된 태도를 통해 이성과 본능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를 놓고 보면 마빈이 패터슨의 비밀 노트를 찢어버린 것은 어느 정도 그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패터슨은 복사본을 원하지 않았다. “번역본을 만드는 것은 우비를 입고 샤워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한 일본 시인의 말에 공감하는 패터슨의 모습으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패터슨은 스스로 시인보다는 버스기사라고 생각한다. 버스기사는 시인이 될 수 없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 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위대한 예술가들은 현재 기억되는 것과 다른 과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시인이 반복하는 ‘아하!’는 평범함에 빠져 확신을 갖지 못하던 패터슨에게 자신이 지닌 특별함을 상기시켜주는 신호인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한 번쯤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소개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통일하지 않고 홀로 짬뽕을 시키는 것조차 튀는 행동으로 간주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함이 지나치면 참된 자신의 모습은 점점 잊혀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평범함의 늪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짐 자무시 감독은 <패터슨>으로 꺼지지 않는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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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초적인 웃음이 필요할 땐 과거로 회귀할 것
가끔 옛날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또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90년대 영화들을 다시 찾아본다. 요새 영화들에서는 대단한 서사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웬만한 서사들이 그 때까지 나온 영화들에서 다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00년대 헐리웃 영화들은 90년대의 황금기스러운 느낌보다는 로맨틱 코미디, 원초적 코미디가 더 많았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트랜스포머'같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영화들도 많이 등장했었지만 그런 영화들보다 그런 코미디 영화들을 즐겁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내 인생의 오글거리는 하이틴 영화들은 그 때 봤던 게 전부이지만 그 때 많이 보아서 지금 환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간에 요새 다시 향수에 젖고자 하는 미친 감성에 젖어 보았던 영화가 '화이트 칙스'였다. 굉장히 어설프지만 원초적인 웃음을 주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었는지도 기억이 없는데, 참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한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흑인에 대한 비하가 넘쳐나고, 그 비하가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당연시되던 사회였구나 다시 실감하게 된다.
1. 아무리 봐도 어색한 티가 나는 분장
영화는 두 재벌 상속녀로 위장하기 위해 흑인인 경찰이 백인으로 위장하는 분장을 감행한다. 참 누가 봐도 안닮았는데, 이걸 겉모습으로 알아채는 인간이 없다는 게 정말 웃긴 지점이다. 오히려 여자 치고 너무 운동 신경이 좋아서 수상함을 느끼지, 외양에서는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인 '허무하게 웃기기'이다. 약간 밑도 끝도 없는 개그를 보고 나면 아니 저게 뭐야 하다가 막판 가서 와하하 웃게 되는 그런 시간차 공격 같은 개그들이 넘쳐난다. 지금에 와서 그 영화를 처음 보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처음엔 웃기 보다는 경악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지점이 이 영화의 장점인데, 처음부터 영화의 목적이 코미디이기 때문에 관객을 웃기려는 데에 많은 공력을 들였다는 것이 보인다. 물론 웃음의 소재가 다소 원초적이지만 가끔 이런 영화도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참 웃긴 건 이 영화도 유치한 건 매한가지인데, 왜 요새 만들어지는 코미디 영화에서 큰 감명을 받지 못할까. 이 영화도 그다지 작품성을 논하기는 조금 애매한 그저 오락 영화이고, 웃음의 코드가 대단히 고급스럽지도 않은데, 이 영화는 계속 보게 되면서 다른 코미디 영화들은 식상하다고 느낄까. 그건 나의 위선인가, 아니면 코미디 영화가 그만큼 발전이 더딘 장르인 것인가.
2. 웃음의 소재가 비하인 것은 조금...
영화의 가장 코믹한 캐릭터 중 하나인 라트렐이라는 농구선수가 나온다. 흑인인데, 백인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가 사실은 흑인 남자였다는 사실에 실망하는데, 포커스가 남자였다는 것때문에 실망한 것이 아니라 흑인이라서 실망했다는 지점이 '이건 요새 나오면 안되는 대사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흑인에게 맛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둥 이런 대사들도 참 요새 나오면 논란 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그 시절이니 용인된 대사들이 참 많이 보였다. 주인공들이 모두 흑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대사들이 참 많이 나오는데, 그걸 현재를 살아가는 흑인이 본다면 불쾌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헐리웃 영화에서 동양인들은 너드 혹은 전문직종으로만 그려지는 게 동양인 입장에서 세상 답답한 것처럼 말이다.
뭐,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뭔 불만이 많냐 싶을 수도 있지만 코미디라는 것이 누군가를 비하하지 않고 웃기는 것은 생각보다 고급 스킬이기 때문에 그런 고급 유머를 구사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장면은 배출한.
이 영화의 명장면은 그 클럽에서 댄스 배틀하는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뭐라고 그렇게 여러번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여자들끼리의 춤배틀인데, 어딘지 모르게 안무를 억지로 외운 것 같은 몸치 바이브들도 웃긴데, 다 같은 몸치이면서 누가 이겼네 졌네 하고 있는 것도 코미디 포인트였다. 그 다음에 주인공들이 백인 여성으로 위장하고서 세상 올드스쿨 느낌나는 춤을 추는 것도 재밌었지만 말이다. 뭐랄까, 그 배틀 장면은 허세에 점령당해 버린 남자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오글거리는데, 그래 어디까지 오글거리나 보자 하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장면이다.
OTT 영화들은 성행하는데, 볼게 없다고들 한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과거로 가보시라고 추천한다. 지금보다는 확실히 영화들이 기술적으로 만듦새가 어색한 지점이 많긴 한데, 오히려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그 내용이 더 새롭다. 그때에는 새로이 등장했던 서사여서 그런지, 요새 더 발전된 서사들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투박한 서사가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90년대 영화들을 돌려보게 된다.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들이 참 많다. 음, 그런 의미에서 '화이트 칙스'는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라고까지 칭송하고 싶진 않지만 가끔 삶이 무료할 때 대책없이 웃고 싶을 때 꺼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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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랜75 - 또 다른 의미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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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영상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2월 8일 개봉하는 '플랜75'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된 영상입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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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14? ?국내 영화제?!?
?씨나병의 영화정보 #14? ⠀ ?열네 번째 주제? ⠀ ? 국내 영화제?! 영화제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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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옥스포드 살인사건> 메인 예고편
옥스포드 대학 인근의 호화 저택에서 어느 날, 저명한 암호해독가가 살해당한다.
암호해독가의 절친한 친구였던 수학자 아서 셀덤 교수(존 허트)와 이 곳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원생 마틴(일라이저 우드)이 현장을 최초로 발견하고, 곧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날 이후, 셀덤 교수에게 의문의 기호가 적힌 편지가 배달되고
다음날에는 반드시 기이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 옥스포드 대학 일대가 공포에 휩싸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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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 예고편
“엄마, 어쩌다 그런 선택을 했어요?
난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정말로요”
엄마의 비밀을 찾아온 해외입양인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의 아주 특별한 시간여행!선희 엥겔스토프, 한국 이름 신선희.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덴마크 가족에게 해외 입양됐던 선희는 한국에 와서 친생모를 찾는 한편,
한 미혼모 시설에 머물며 미혼모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 생명을 임신한 게 축복이 아니라 감춰야 할 비밀이 돼버린 채 출산을 기다리는 미혼모들.
이들에게 양육의 선택권을 주고 싶어하는 시설 관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반대와 한계 상황에 부딪친 엄마들은 결국 아기와 헤어지게 된다.
선희는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시간을 뛰어넘어
그 오래전 자신이 태어난 날 입양동의서에 사인해야 했던 엄마의 슬픔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데……
이제껏 우리가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해외입양인 감독의 가장 생생한 시선과 진짜 목소리가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