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03 16:50:53
2024년, 하이스트레인저가 선택한 영화들
2025년에는 어떤 영화가 찾아올까요?

2024년에 하이스트레인저가 투자•배급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서도 <밀레니엄 맘보>,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현재 절찬상영중이니 놓치지 마세요!
그럼 다가올 2025년의 하이스트레인저 PICK! 영화들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클레오의 세계
Ama Gloria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84분
감독: 마리 아마슈켈리-바르사크
주연: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일사 모레노 제고
개봉: 2024.01.03.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신기해요, 난 글로리아랑 함께한 추억밖에 없는데”
여섯 살 클레오는 사랑하는 유모 글로리아의 고향에서 특별한 여름 방학을 보내기로 한다.
모든 게 낯선 그곳에서 글로리아가 전부였던 클레오의 세계에도 새로운 파도가 친다.
로봇 드림
Robot Dreams

개요: 애니메이션 | 스페인, 프랑스 | 103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개봉: 2024.03.13.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도그’는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다려, 내가 꼭 다시 데리러 올게!”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개요: 다큐멘터리 | 미국 | 122분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
주연: 낸 골딘
개봉: 2024.05.15.
배급: 찬란
줄거리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진은 나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생생하게 반짝이는 뉴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제는 내 모든 명성을 걸고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운다.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 담긴 나의 일기장을 당신에게 펼쳐 보인다.
마거리트의 정리
Marguerite's Theorem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113분
감독: 안나 노비온
주연: 엘라 룸프, 장 피에르 다루생, 줄리앙 프리종
개봉: 2024.06.27.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가장 인정받는 수학 천재 ‘마거리트’는 세계 난제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연구를 증명하는 세미나에서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날 이후 충격에 빠져 학교를 그만둔 ‘마거리트’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내가 증명하고 싶은 건 나일지도 몰라”
공드리의 솔루션북
The Book of Solutio

개요: 코미디 | 프랑스 | 103분
감독: 미셸 공드리
주연: 피에르 니네이, 블랑쉬 가르딘, 프랑수와 레브런, 프랭키 월러치, 카밀 루더포드
개봉: 2024.08.14.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영화감독 마크는 자신의 새로운 걸작이 제작자들 때문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숙모가 있는 마을로 탈출한다. 머릿속에 쏟아지는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실행하기 시작하는 마크.
세계가 인정한 천재 감독과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감독을 동시에 해내는 그는 영화의 완성이 늦어지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을 꺼낸다.
위국일기
Worlds Apart

개요: 드라마 | 일본 | 140분
감독: 세타 나츠키
주연: 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카호, 세토 코지, 코미야마 리나, 쇼메타니 쇼타, 나카무라 유코
개봉: 2024.10.02.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밀레니엄 맘보
Millennium Mambo

개요: 드라마 | 대만, 프랑스 | 105분
감독: 허우 샤오시엔
주연: 서기, 고첩, 투안 춘하오, 첸 이수안, 타케우치 준
재개봉: 2024.12.31.
배급: ㈜에이유앤씨, (주) 하이스트레인저
줄거리
그녀는 하오하오와 헤어졌지만 그는 늘 그녀를 찾아냈다. 주술이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돌아왔고 스스로 다짐했다. "은행에 있는 50만 대만달러를 전부 써 버리면 그를 영영 떠날 거야"
그녀는 클럽에서 잭을 만났다. 잭은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그녀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해 줬다.
이 일은 10년 전인 2001년의 일이었다. 세계는 21세기를 맞이했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Civil War

개요: 액션 | 미국 | 109분
감독: 알렉스 가랜드
주연: 커스틴 던스트, 케일리 스패니, 와그너 모라, 스티븐 헨더슨, 제시 플레먼스, 닉 오퍼맨
재개봉: 2024.12.31.
배급: (주)마인드마크
줄거리
세상이 둘로 갈라졌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극단적 분열로 역사상 최악의 내전이 벌어진 미국. 연방 정부의 무차별 폭격과 서로를 향한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조엘(와그너 모라)’, ‘새미(스티븐 핸더슨)’, 그리고 ‘제시(케일리 스페니)’는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한다.
내 편이 아니라면 바로 적이 되는 숨 막히는 현실, 이들은 전쟁의 순간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진짜 공포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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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만 성장하는 성장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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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잘 짓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내용은 잊혀도 제목만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셀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서두에 밝히자면, 이 영화는 제목만 좋았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다한증이 있는 박춘희의 성장 이야기다. 박춘희를 위한, 박춘희에 의한, 박춘희만의 이야기. 박춘희의 주변인물과 배경과 사건들은 파편처럼 흩어져 저 멀리로 사라지고, 광활한 우주에 박춘희 혼자 남겨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너무 많은 어려움들
춘희는 중학생 때 부모가 죽는 바람에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왜 죽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데, 아무튼 부모가 죽어 혼자 남겨진 춘희는 외삼촌 부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그 누구도 춘희를 환영하지 않고, 여분의 방이 있는데도 굳이 다락방을 내어준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지만 방금 부모상을 치른 아이에게 참으로 불친절한 외삼촌네 가족이다.
설상가상으로 춘희에게는 다한증까지 있다. 다한증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다. 하필이면 학교에서 폴카댄스를 춰야 하는 상황인데, 손을 잡고 춤을 출 파트너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선생조차 불쾌해 한다. 명상센터에서 '저는 쩔어 있어요, 땀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춘희. 땀은 인생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 쩔어있는 춘희의 메타포이자 상징이다.
춘희는 어른이 된 이후 외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혼자 산다. 외삼촌네 식구들은 고등학생이 된 춘희만 내버려두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버렸기 때문이다. 춘희는 혼자 살아도 조그만 다락방에서 지내고, 다한증을 수술할 돈을 모으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깐다. 끼니도 오직 컵라면뿐이다.
중학생 정도의 아이에게 조실부모도 엄청난 충격일 테니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사실 조실부모와 눈칫밥 먹는 것, 이후 버려진 집에서 버려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왜 굳이 다한증까지 설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혹은 다한증 하나로도 충분하다. 부모를 잃거나 잃지 않거나, 평범한 가정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다한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풀어나갈 만한 이야기이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렇게까지 입체적이지 않다. 춘희는 그저 딱한 아이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보장시스템이 있는 나라이고, 생활고로 힘들 때는 각 동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 핍진한 이야기는 차치하자. 이 영화는 불쌍한 춘희 이야기이니까.
춘희와 NPC들
외삼촌네 딸, 춘희의 외사촌 유라는 춘희를 너무 싫어한다. 유라는 충분히 춘희를 싫어할 만하다. 그러지 않아도 예민한 사춘기에 갑자기 사촌이 우리집에서 살게 된다니. 더군다나 같은 학교이기까지. 영화에서 보여지는 유라는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다. 여자들은 원수의 자식에게도 생리대는 빌려준다는데, 생리대를 가져가는 춘희를 도둑년이라고 욕하는 개인적인 악행에서 나아가 수학여행에 술을 챙겨가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이기까지. 춘희를 선량한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유라가 꼭 못되처먹은 아이가 되어야 했나?
유라의 오빠이자 춘희의 사촌오빠는 식당을 운영한다. 춘희는 그 식당에서 쓸 마늘을 까주고 3만 원씩 받는다. 그 오빠란 사람은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다. "혁명에도 실패하고 사랑에도 실패"했다며 술 마시고 징징거린다. 도대체 왜 학생운동을 했는지 이유도 명분도 없고, 왜 하필 춘희에게 마늘까는 일을 주는지 모를 일이며(홀서빙직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왜 이혼위기에 처했는지 모를 일이다. 오빠를 설명하는 일련의 사실들은 그의 캐릭터를 형성하지 못한다. 혹시 춘희가 마늘을 까는 알바를 하기 위해 오빠가 있어야 했나?
춘희와 잠깐 사랑에 빠지는 주황이라는 캐릭터를 보자. 스토리상 남자주인공에 가깝다. 주황은 말을 더듬는데, 어릴 때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말을 더듬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주황의 역할은 춘희를 갑자기 사랑하고, 춘희가 돈이 없으니 돈 주겠다고 말하고, 춘희에게 차이는 것뿐이다. 춘희에게 잠깐의 행복을 맛보게 하기 위해 굳이 말을 더듬는 남자가 있어야 했나?
가장 골때리는 인물은 노숙자이다. 단순한 도식으로 보았을 때 집이 없다는 점에서 노숙자는 춘희보다 불쌍하다. 춘희는 집에 가는 길에 여자 노숙자를 발견하고, 노숙자가 맨발인 걸 보고 사촌오빠에게 받은 마사이족 신발을 준다.
이 노숙자는 총 세 번 등장한다. 춘희가 신발기부를 하기 위해 등장, 번개맞은 춘희를 살려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마사이족 명언도 아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경험을 하게 만들기 위해 노숙자가 나와야 했나? 굳이 마사이족 신발이었어야 했나?
그 외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기타 등등 모든 영화 속 인물들은 춘희의 성장을 돕기 위한 NPC에 불과하다. 심지어 춘희에게 꽤 중요한 인물이었던 외할머니의 죽음도 외숙모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그때 춘희가 문상을 갔는지, 울었는지, 절망에 빠졌는지, 무감정했는지 궁금하다. 외할머니는 유일한 춘희 편이었으니까.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에게 부모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유라의 불안, 혁명도, 사랑도, 이도저도 해내지 못한 사촌오빠의 좌절감, 비록 말을 더듬지만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해주는 것을 경험하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주황의 성장, 춘희가 선물해준 신발을 신고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나가게 될 노숙자의 변화는 춘희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오직 춘희의 성장만을 위해 전개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춘희 외에는 그 누구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는 전혀 넓어지지 않고 오직 춘희의 자아만 부풀어오른다.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 만나기
다시 말하지만 춘희는 '불쌍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조실부모와 천대와 왕따 등등을 모조리 경험했다. 작은 다락방에 갇혀 살았던 춘희는 어른이 되어도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다락방 같은 안전기지에 갇힌다.
그런 춘희가 우연히 책을 기부하려다 명상센터를 알게 되고 거기에서 주황을 만나 타인과 관계를 맺어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춘희는 조금씩 성장한다.
이야기 초반에 춘희는 번개를 맞고 쓰러진다. 우리는 번개를 맞은 춘희의 앞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게 되는데, 그 변화란 어린 춘희의 등장이다.
1.조실부모한 고아 / 2.다한증 / 3.눈칫밥 먹는 더부살이 / 4.매일 컵라면 먹기 / 5.평생 마늘까기 / 이 정도의 설정도 너무 많은데, 6.번개맞기 / 7.어린 춘희 만나기가 추가된다.
어린 춘희를 등장시키기 위해 번개를 때리는 게 뜬금없지만, 아무튼간 어린 춘희를 만난다는 것은 위로받지 못했던 내면의 어린아이와 마주하는 일이다. 차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던 그 시절의 불쌍하고 어린 나를 어른인 내가 안아주는 것,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가가는 것. 그러므로 너는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라 태어나길 잘한 아이라는 것. 그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다.
결국 춘희는 그 집을 떠난다. 자발적으로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사촌오빠가 투룸 정도 얻을 수 있는 돈이라며 봉투를 내밀고, 사촌오빠에게 갑자기 왜 그랬냐고 화를 내며, 라면이 아닌 고기를 사먹고 나서 이사간다. 이사를 가도 여전히 마늘을 깐다.
어른 춘희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춘희는 이제 다락방이라는 안전기지와 상처받은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영화에서는 보여주지도, 다루지도 않더라도 외삼촌네 식구나 주황, 노숙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성장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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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다 보려고 한다. 다른 작품들이 좋더라도 이 작품을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영화들 중에서도 절망적인 영화들이 한두 편씩은 있으니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직면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분명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똑바로 바라보는 건 너무 무섭고,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상처받을 것 같다. 상처받은 어린이는 마음 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 별안간 툭 튀어나온다. 우리에게 번개가 떨어질 일은 극히 드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처투성이 불쌍한 어린이를 잘 위로하고 달래주어서 마음 속 감옥에서 풀어주는 수밖에.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춘희에게 떨어진 번개처럼,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태어나길 잘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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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할 수 있는 기만, 대체할 수 없는 마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넬리는 친구 레네와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그렇게 가고 싶던 고향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고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거쳐야만 했다. 고통으로 점철된 상처를 보여주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시대의 참혹함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돌아온 고향은 모든 것이 파괴된 모습이었고 고통스러운 사실이 넬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에도 유일하게 자신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피투성이였던 넬리는 얼굴 재건을 위해 성형수술을 해야 했고 이전과는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게 달라진 얼굴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 남편 조니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고 ‘피닉스’에서 만난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슬픈 사실에도 쉽게 슬픔을 드러낼 수 없는 넬리에게 조니는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와이프 넬리를 연기해달라고 부탁하고 넬리는 그를 수락한다. 넬리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던 추억은 조니 에게 있어서 바래진 추억일 뿐이었을까. 웃지 못할 연극이 계속되면서 애써 외면해왔던 현재의 모습에 파고들면서 끝을 보이고 있었다.
끝없이 바닥 치는 내면의 마음이 과거의 따뜻한 사랑을 되찾기엔 왜곡된 진실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의술로도 원상태로 돌릴 수 없었던 겉모습과 마음이 남기는 흔적이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고통과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그와 함께하면서 시작된 기만을 비롯한 연극이 비극의 끝을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 자리로 자신을 옮겨 온다. 복수보다 무서운 용서가 마지막을 맴돌며 온몸에 전율이 피어오른다. 당연하게 여겨진 것을 잃어가며 소중한 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당연하게 여겨 어쩌면 외면했던 것들의 다른 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는 역사의 왜곡은 개인의 왜곡으로 이어져 예견된 비극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습을 감추고, 눈을 감을 텐가. 이제는 대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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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2021)> 리뷰
《박강아름 결혼하다(2021)》는 정직한 이름표를 단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 우리는 제목으로부터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주인공이 박강아름이라는 사람이라는 것, 그가 결혼을 했다는 것, 이에 따라 다큐멘터리의 테마는 ‘결혼’이라는 점. 그런데 재미있는 건, 결혼 생활에서 나타나는 일을 기반으로 하하호호 예쁜 프랑스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3유로 커피를 사치라고 부르는) 적나라한 삶의 단편을 엮어낸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게 감독이자 출연진인 박강아름은 자신만의 방식과 시각으로 왜 자신이 결혼을 했는지를 추적해보고, 결혼이란 대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거대한 시놉시스가 있는 것은 아니나,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매분 매 초를 관객이 관람하며 함께 겪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작 몇 마디 문장으로 다큐멘터리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이겠으나,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영화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감독인 박강아름은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학업을 이어간다. 부부 중 불어에 더 능통한 사람인 그가 행정과 경제를 담당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남편인 정성만은 가사를 (그리고 훗날 육아가 추가된다) 맡는다. 성만에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나는 식모입니다, 식몬데 무슨 이름이 있어요, 정도로 대답하는 건 코믹하게 보이나 분명 유의미한 장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을 위해 프랑스 이주에 참여하였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성만의 세계는 자꾸만 좁아지며, 이것이 안쓰러운 아름은 그에게 일주일에 한 번 문을 여는 ‘외길 식당’ 운영을 제안한다. 이 외길 식당은 이사를 비롯한 기타 여러 사유로 인해 시즌제로 운영된지라 두 사람이 프랑스에 있는 내내 운영된 것은 아님에도, 성만에게 분명한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아름은 임신한다. 아이가 생겼다. 보리는 귀여운 두 사람의 아이이지만 여전히 성만이 독박 가사와 독박 육아를 지속한다. 이따금 부침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굳이 엄청난 통계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일들이 앞으로 펼쳐지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가부장적 제도 하에서 정상 가족이라 불렸던 시스템이 해체되고 있으며 가족 내 구성원의 권력구도가 기존과는 다르다는 걸, 그리고 이런 변화의 속도는 가속하리라는 것을. 예컨대 아름-성만 부부가 프랑스로 오게 된 것 역시 이주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igration)에 부합하는 사회적 현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감독이 보다 집중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래. 결혼 말이다. 남들 다 한다는 결혼, 안 한 사람에겐 왜 안 하냐는 말이 쉽게 따라붙는 이 제도. 결혼은 대체 뭘까?
비혼을 외치는 청년층이 많아진다는 점, 정상가족의 해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외길 식당의 손님들처럼 결혼을 위한 이주 역시 발생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가족 가치관은 분명 예전과 다르다. 다만,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긴 어렵고, ‘부분적으로 탈전통적으로 변화(최연주, 문정희, 안정신 (2020))’ 했다고 하는데, 아름과 남편 성만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요소를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기존 성별분업의 단순한 젠더 역전에 기인하고 있어, 기존 시스템의 젠더 관계를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 성만은 자신을 ‘식모’로 규정하며 돌봄/가사 노동을 담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돌봄/가사노동은 육아휴가 등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를 전통적인 ‘아버지’로 규정하기보단 ‘어머니’ 포지션으로 인식하는 듯 보인다.
반면 아름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펀딩을 받는 등 경제적 책임을 이끌고, 프랑스인에게도 어려운 관공서 서류 제출 등을 신경 쓰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남편을 위해 외길 식당을 먼저 제안했음에도 좋은 식재료를 쓰는지라 늘 발생하는 적자를 떠올리고, 매 순간 가계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성만과 싸우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인 보리가 태어난 후에도 지속된다. 물론 아름 역시 가사노동에 일부 참여하지만, 주 양육자 포지션에 위치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러한 모습에서 나는 김경민(2021)이 인용한 러딕의 구절을 일부 반복하고 싶다. 그러니까,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자녀를 낳는 경험’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으나 ‘자녀 양육자로써 운명 지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름은 그렇게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한 일상 속에서 아름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결혼을 하려 했을까? ‘아버지’라는 위치에 더 가까운 – 그러니까 집안의 ‘가장’인 그는 거듭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비혼주의자였던 성만과 결혼했고, 아이 계획을 세울 때 침묵한 성만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을까…….
그가 방황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 일부분은 아름의 과거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최연주, 문정희, 안정신 (2020) 은 개인의 가족가치관은 개인 자신의 성장 경험에서 발생한다 말한 바 있다. 즉, 자라는 동안 매일 봐온 가족/부모의 가치관 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하여 미래의 결혼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름 역시 이러한 부분을 설명하고자 함인지, 영화 내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짤막하게 언급한다. 남동생에게만 집중한 아버지, 아버지에게 관심을 끌고자 애썼던 어린 소녀에 대해서. 하지만 오로지 과거에서만 대답을 찾아야 할까? 어쩌면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저도 모르게 안정적인 가정을 꿈꿔왔을지도 모르지만, 아름은 과거에서만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는 외길 식당 시즌 2를 계획하고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손님들에게 묻는다. 짧은 시간 동안 신선한 시각과 사유가 점차 흘러들어온다. 프랑스의 팍스(PACs)라는 새로운 개념도 그렇게 영화에 등장했다. 그러나 아름은 여전히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결혼이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이라지만 사회/문화적으로 결혼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한다. 아름이 말했듯 입덧이란 미디어에서처럼 우아한 ‘우욱’ 정도가 아니었고 개인마다 다른 신체적 증상이었다. 마찬가지로 결혼 역시 미디어에서 비춰주는 양 매일매일 완벽하고 풍성한 생활을 담보하는 사회 시스템이 아니며 연애시절처럼 매양 낭만적일 순 없다. 주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결혼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는 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즐거울 때야 상관이 없겠다만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 이해한다 해도 어렵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간이 연애 시절보다 늘어난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결혼의 단면일 것이고,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그런 과정을 미화하지 않았다.혼전 합의서를 통해서든 아니든, 합리적으로 가사를 분담하고 경제적 책임감을 공유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젠더가 단순히 전복된 관계를 살고 있는 아름-성만 부부가 기실, 처음부터 끊임없이 합의하고 민주적인 가정을 이룩하고나 노력했을지라도 아마 이 과정은 어느 순간부터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시점은 보리가 태어난 이후일 확률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이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키울 때엔 너/나를 가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족의 공동체적 특성이 강조되고 가족 구성원 간의 자원 공유가 미덕으로 수용(나성은 (2014))’되는 동안, 가족 내의 권력관계는 쉽게 기울어지기 마련인데, '사랑'과 '협력'이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린 이상 구성원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는 점차 미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결혼(생활)은 그럼 무엇인가? 에 대한 내 대답은 '글쎄'이다. 몇 천년 전부터 인류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하려 했지만 여전히 질문을 하고 있는데, 내가 감히 이것이 정답입니다, 하고 무언가를 내놓을 자신은 없다. 정 안되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순 있겠다만, 다큐멘터리와 함께 고민하다 보면 관객은 관객 나름의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만 한 걸까? 아마 영화 내에서 아름이 자신이 겪는 결혼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어떤 캐릭터성을 강조/축소하고, 일상을 편집한 측면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여튼 결혼에 대해 환상을 심어주는 멋진 드라마와 영화는 이미 많으니까, 그러한 미디어와(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마음속으로 떠올리고)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동시에 펼쳐 놓고 생각해보자. 결론적으로 결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 모든 것의 총체라고밖엔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아웅다웅 삶을 일체화 시키며 추억을 쌓고, 헤어질 수 없는 사이로 변모하는 과정 말이다. 외길식당의 손님이 말했듯 자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을지라도, 결혼이란, 관계의 한 자락에서 낭만에 취해 이런 선택이 있었기에 내가 네 곁에, 그리고 네가 내 곁에 있나보다 대화할 수 있는 삶의 한 양태가 아닐지.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 참고문헌
김경민 (2021).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좋은 엄마’ 되기: ‘어머니됨(mothering)’ 인식과 실천에 대한 고찰. 비교문화연구, 27(1), 5-56.
나성은 (2014). 남성의 양육 참여와 평등한 부모 역할의 의미 구성. 페미니즘 연구,14(2), 71-112
최연주, 문정희, 안정신 (2020). 미혼 남녀의 가족건강성과 결혼의향의 관계 : 가족가치관의 매개효과. 한국지역사회생활과학회지, 31(4), 66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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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 크루즈> - ‘허무맹랑한 꿈을 진짜로 만드는 아마존 모험’
정글 크루즈 (Jungle Cruise)
개봉일 : 2021.07.28 (한국 기준)
감독 : 자움 콜렛 세리
출연 : 드웨인 존슨, 에밀리 블런트, 에드가 라미레즈, 제시 플레먼스, 잭 화이트홀
‘허무맹랑한 꿈을 진짜로 만드는 아마존 모험’
디즈니가 딱 디즈니답게 만든, 여름을 겨냥한 정글 모험 영화 <정글 크루즈>. <캐리비안의 해적>을 이을 액션 어드벤처란 말에 <캐리비안의 해적>같은 모험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테고, 마음을 비우고 동심으로 돌아가 모험 놀이기구를 즐기듯 즐긴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재밌게 즐기고 온 영화였는데, 전체적인 흐름상 묵직한 한방이 없어서인지 ‘무색무취’라는 불호 리뷰도 예상보다 많아서 조금 놀랐다.
<정글 크루즈>는 전설 속 달의 눈물을 찾아 떠나는 아마존 모험 이야기다. 주인공 릴리와 맥그리거 남매는 모든 병을 다 고칠 수 있다는 전설 속 달의 눈물의 존재를 부정하는 수많은 학자들을 뒤로하고 위험한 아마존으로 향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들었던 전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만약에 그것이 진짜 존재한다면 수많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면서.
릴리 남매는 조금 특별하다. 릴리는 ‘바지 입은 여자’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다른 학자들처럼 앉아서 학술회를 즐기기보단 편안한 옷을 입고 직접 모험에 뛰어들길 즐기는 인물이다.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누나 릴리를 따라서 아마존 모험에 나선 맥그리거는 학자로서의 멋과 품위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모험이 진행될수록 아마존에 적합한 행색으로 변화하며(?)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정글에선 모든 게 당신을 죽일 수 있어요.”라며 승객들에게 겁 한 바가지를 들이붓는 듬직한 풍채를 가진 ‘프랭크’는 가짜 위험과 가짜 모험으로 가득한 아마존 크루즈를 운영하는 선장이다. 당장 빌린 돈도 갚을 수 없는 팍팍한 살림살이와 다 낡은 크루즈 한 대가 그가 가진 전부다. 프랭크는 타이밍 좋게 마주친 돈 많은 손님 릴리의 모험 가이드를 승낙한다.
시선 끄는 것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당당한 여성 릴리와 그녀의 모습이 아직은 신경 쓰이는 선장 프랭크. 이들은 전설과 그에 얽힌 저주 속으로 뛰어든다. 많은 이를 살릴 수 있을 거라 전해지는 전설 속엔 이기심과 욕심으로 만들어진 풀지 못하는 저주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전설을 믿으려면 저주도 믿어야 한다.’는 말처럼 전설 속 달의 눈물을 얻기 위해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단단히 엉켜버린 저주를 풀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 모험에 뛰어든 이타적인 사람과 커다란 위험을 끌고 아마존으로 들어온 자의 대립이 끝없이 이어지고, 저주의 비밀이 조금씩 풀리며 잔잔했던 모험에 즐거운 스릴을 더한다.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스릴 넘치는 이들의 모험의 끝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사실 이전에 나온 모험 영화가 정말 많다 보니 이 이야기의 흐름을 아예 예상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아주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함께 즐긴 크루즈 모험이 나는 꽤 즐거웠다.
정글 크루즈 시놉시스
미지의 세계 아마존에서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스릴을 선사하는 재치 넘치는 크루즈 선장 프랭크(드웨인 존슨). 고대 아마존의 전설을 쫓아 영국에서 온 식물 탐험가 릴리 박사(에밀리 블런트)가 의학의 미래를 바꿀 치유의 나무를 찾는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면서, 순탄치 않은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아름답지만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열대우림으로 함께 모험을 떠나고 수많은 역경과 초자연적인 힘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 나무에 얽힌 비밀이 드러날수록 릴리와 프랭크는 더욱더 커다란 위험에 처하고 인류의 운명도 위태로워지는데… 전설을 믿는다면 저주도 믿어야 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달의 눈물을 찾겠다 다짐한 박사 릴리는 모두가 믿지 않는 전설을 찾아 위험한 아마존으로 향한다. 릴리는 여자는 무조건 풍성한 치마를 입는 게 정상인 시대 배경에 굴하지 않고 편안한 셔츠와 바지, 부츠를 선택한다. 아마존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복장이지만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릴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신경 안 써”라고. 이타적이고 강단 있는 여주인공 릴리는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물러나지 않는다. 현시대에 알맞게 설정된 ‘매력적인 여주인공’인 그녀는 고구마가 아닌 사이다 그 자체다.
“난 많은 사람들 돕고 싶어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 달의 눈물을 찾는 릴리와 더 많은 싸움을 위해 치유 능력을 이용하려는 요아힘. 그리고 오래된 저주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프랭크와 아기레. 네 사람은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의 눈물을 찾는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 저주를 끝내기 위해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각자 너무도 다른 목표지만 이들은 모두 달의 눈물을 원한다.
전설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려는 요아힘은 저주에 걸린 아기레와 동료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아마존엔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달의 눈물을 지키는 부족과 형제처럼 자란 프랭크를 모두 가차 없이 찔러버린 아기레, 더 많은 싸움을 위해 치유의 힘을 이용하려는 요아임. 이기적이고 잔인한 힘을 끌어안은 무거운 잠수함이 아마존을 휘젓고 프랭크는 그를 막으려 한다. 오래된 전설과 저주의 진실이 한순간에 밝혀지고 달의 눈물을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쓰려던 인물들은 전설을 온전히 마주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릴리 일행은 전설의 달의 눈물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영화의 후반부, 한 개뿐이었던 달의 눈물을 써버린 릴리에게 아마존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 마치 자신을 존중해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릴리와 프랭크, 맥그리거는 아마존 강의 흐름을 역행하지 않고 그 무엇도 필요 이상으로 해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을 존중했고 달의 눈물을 지키는 부족원들과도 서로의 물건을 나누며 자연스레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과 전설을 믿고 존중하던 이타적인 인물들은 결국 원하던 전설을 손에 얻는다. 뻔하고 당연하지만 이처럼 모범적인 결말은 또 없을 것이다.
릴리는 달의 눈물을 찾는 모험을 통해 자신이 믿는 전설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했고, 프랭크는 거짓말로 꾸며진 오래된 인생과 저주를 벗어나 진짜 소중한 것이 있는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된다. 모두가 가짜라 말했던, 가짜로 채워져 있었던 전설을 믿음과 용기를 통해 진짜로 바꿔놓은 멋진 아마존 모험이었다. (릴리와 프랭크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감정선이 두텁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이보다 더 깊이 들어갔으면 뜬금없는 로맨스 느낌이 났을 것 같아 이 정도가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름 영화,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엔 충실히 복무한 영화 <정글 크루즈>. 너무 무겁지 않은, 오랜만에 동심을 깨워줄 만한 영화를 찾는다면 딱 제격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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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전주에서 미야케 쇼 감독님을 만나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다.
소설가 세오 마이코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월경증후군 (PMS)로 고통받는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를 앓는
야마조에의 이야기를 담았다. 5월 2일 개막시사 후 진행된 기자회견과
5월 3일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해 보았다.
Q. 원작 소설에서는 PMS를 막기 위해서 잡초 뽑기를 했는데,
영화에서는 세차로 바꾼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A. 잡초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해 주셨는데 굉장히
세세한 대사 부분까지 봐주셔서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말씀을 드리자면 사실은 소설 속에서는 이 잡초를 뽑는 이 부분이 굉장히
독특하게 저한테 다가왔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책을 읽고 생각을 했던 것은
몸을 움직여서 잡초를 뽑고 그걸로 인해서 새로 나아간다 이런 부분들이 어쩌면
조금 책이랑 다른 느낌이 이지 않을까, 조금 다른 인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잡초 뽑기가 영화에서는 그렇게 큰 이제 인상을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다른 액션들을 뭔가 같이 보자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여러분들 영화에서 보신 계속 뭔가를 담는, 사용해 왔던 물건들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그런 이제 모습들을 보면서 뭔가 똑같아 없는 것 같은 그런 효과를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꼭 중점적으로 봤으면 하는 장면이 있다면? A. 그동안 영화 작업을 하면서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많은 배우진들과
영화를 촬영을 했습니다. 많은 출연자들이 굉장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셨어요.
사실 주연 두 분의 연기도 너무너무 훌륭했지만 구리타 과학이라는
회사 안에서 좀 연세가 있으신 베테랑 선배님들의 연기와 중학생
어린 중학생 2명의 연기를 주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희 영화는 한 번 보면 다 한 번 보고는 다 모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두 번 번 어떤 분들은 세 번을 보셔야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은 분들이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자전거에 대한 설정이 좀 궁금한데요.
원작 소설에서는 그 자전거가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매체로 쓰이지만
영화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장면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을까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에서는 남자주인공이 자전거를 빌려서 여자주인공이 입원한 병원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는 씬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영화에는 반대로 여자주인공이 예전에 아르바이트에서 썼었는데,
지금은 내가 안 쓰니까 네가 써하면서 전달을 합니다.
스쳐 지나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라스트신을 보면 야마조라는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쭉 가는 씬이 있잖아요.
자전거 자체는 후지사와 상이 준 것이지만 그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 내가 받은 이 물건이 그녀는 없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에 대한 존재를
그 자전거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스쳐지나가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 자전거를 놓고
영화만 이야기를 하지만 물건일 수도 있고 생각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없지만 갖고 있는 게 우리 영화에서 큰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옛 선조에게서 받았지만 우리에겐 있고 선조는 이 세상에 없는 것과 같은 것.)
저희 영화의 주인공 한 명은 공황장애가 있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여러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봐주세요.라고 말씀은 못 드려요.
그러나, 가실 수 있는 분들은 꼭 가셔서 이 영화관에서의 그 깜깜한 상황에서 영화를
본다는 게 저희 영화랑 굉장히 잘 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분들이 가셔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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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은 ‘성장’의 다른 이름
노르웨이 오슬로에 사는 율리에. 그녀는 뛰어난 성적으로 의대에 입학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는다. 의대 진학은 ‘최고’라는 인정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기에 금방 싫증이 난 것이다. 자신의 관심사가 외과가 아닌 정신‧심리에 있다고 결론 내린 그녀는 심리학을 전공하나 이 역시 금세 그만둔다. 그다음은 사진 촬영이다. 요컨대 율리에는 방황 중이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 방황하는 율리에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중년에 접어든 악셀이라는 남자로 풍자 만화 작가인 그는 지적이고 신중한 구석이 있다. 율리에는 그와 사랑에 빠지고 동거를 시작한다. 율리에와 악셀은 오랜 기간 만남을 이어가며 사랑을 키운다.
부유하던 율리에에게 안정감을 줄 최적의 남자였던 악셀. 그러나 율리에는 점차 자신이 악셀과의 관계에서 얻은 안정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혼란에 빠진다. 나이가 있는 악셀은 아이를 원하고 작가라는 직업 탓인지 모든 걸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그가 작품 창작에 몰두할 때면 율리에는 그의 뒤에서 외로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어느 날 말다툼 끝에 악셀이 “뭘 하고 싶은데?”라고 묻는다. 그러나 율리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율리에가 악셀과의 사랑을 통해 갈구하고 얻어낸 것이 사실은 공허한 것에 불과했음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율리에 마음의 빈자리가 점점 커져가는 건 당연하다.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남자가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파티에서 만난 에이빈드는 악셀과는 많은 것이 다른 남자다. 다소 마른 체형에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악셀과 달리 에이빈드는 몸집이 크고 유쾌하며 다정하다. 율리에가 엑셀과의 관계에서 결핍을 느꼈던 감정, 관능의 교류도 훨씬 수월하다. 처음 만난 날 술에 취해 서로의 겨드랑이 냄새를 맡고 같은 변기에 소변을 보며 즐거워하는 율리에의 표정에서 그녀 마음의 방향은 이미 결정된 듯 보인다.
율리에가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결핍’이 키워드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삶의 목표가 없어 혼란스러울 때 만난 안정감을 주는 악셀, 감정적 공허함을 느낄 때 이를 충족해주며 등장한 에이빈드는 모두 율리에의 실현되지 않은 욕구를 충족해주는 대상이다. 그리고 율리에는 두 남자와의 사랑으로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여러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즉 율리에는 사랑으로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완전한 나”, 즉 외부에 덜 의지하고 자신에게 말미암은 단단함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 ‘VERDENS VERSTE MENNESKE’와 영어 제목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는 모두 ‘세계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어 제목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도 비슷한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율리에는 과연 ‘최악’일까? 악셀과 에이빈드와 사랑하고 이별한 후 성장한 율리에는 이기적인 여자일까?
그렇지 않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여성이 늘 남성 주체의 확립 과정에서 소모되어왔다는 점 때문이다. 설령 율리에가 이기적인 목적으로 두 남자와의 사랑을 활용했다손 치더라도 멜로영화의 젠더 저울이 반대로 기울지는 않는단 소리다.
두 번째는 인간은 누구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며, 이 욕구를 동반한 채 타자와 조우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퍼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간다. 문제는 타자와 윤리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이지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가 아니다.* 불완전하며 열려 있는 존재는 누구나 타자를 필요로 한다. 율리에와 마찬가지로 악셀과 에이빈드도 그녀와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학습하고 변화를 마주했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그들의 몫이다.
두 번의 사랑 끝에 마침내 어른이 된 율리에는 평온해 보였다. 청년의 방황, 사랑의 열정, 결별의 아픔을 거친 율리에를 인상적으로 연기한 레나테 레인스베는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자격이 충분하다. 사랑하는 모두가 ‘최악’을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율리에의 평온에 다다를 수 있기를.
*이를테면 페미니즘은 타자와 평등하게 만나기 위한 방법론, 인식론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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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복지식당> 메인 예고편
“나는 반드시 중증 장애인이 되어야 합니다” 2022년 올해의 질문이 될 영화! [복지식당]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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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스트 도터> 어워즈 예고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올리비아 콜맨 주연 [로스트 도터] 어워즈 예고편 최초 공개! 전 세계 37관왕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아카데미시상식 각색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후보! "이 영화는 대단한 업적이다" 극찬에 극찬을 이어가는 걸작 [로스트 도터] 7월 14일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