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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to2025-01-07 13:30:12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영화 <은빛 살구> 리뷰

바닥은 포셀린 타일로, 발코니 문은 폴딩 도어, 소파 옆에는 작은 아일린 그레이 테이블을 놓아야지. 방 한 개는 무조건 암막 커튼이 있는 서재로, 빔 프로젝터, 식기세척기, 건조기, 커피머신은 필수.

 

내게 마법처럼 수도권 신축 아파트 한 채가 생긴다면 이런 즐거운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비정규직 자리를 간신히 지키고 있고, 신혼부부가 되어야 겨우 주택청약에 당첨되는 데다, 계약금은 차치하고서라도 앞으로 내야 할 중도금이 산더미이다. 우리의 주인공 '정서'는 뒷바라지까지 해줬건만, 그는 꼭 절반씩 돈을 내길 원하고, 타일이 깔릴 아파트 한 칸을 얻어내기 위해서 그녀는 계약금 절반을 구해 와야 한다.

 

 

 

계약금을 구하기 위해서 그녀는 오래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생겼을 일들, 야근을 하는 척 하며 뱀파이어 이야기를 그려내기도 전에 포기해버렸을 예술과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본다. 그러는 동안 관객은 청약으로 당첨된 아파트 같은 건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서울로 돌아갈 때쯤엔 이 돈이, 아파트 한 채가, 그리고 결혼이 이렇게까지 해서 달성해야 하는 건지를 질문하게 된다. 그에 화답하듯이 영화의 결말은 결혼 상대였던 사람이 도덕적인 결함을 드러낼 때 정서를 폭발시키고, 진짜 굶주림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주인공이 거리를 지나다 운명처럼 스친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 갈증을 해소하는 낭만을 그려내기 위해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이전의' 낭만, 그러니까 달콤한 주택청약의 꿈으로 이루어진 가짜 낭만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아파트, 결혼식, 흰 돈봉투와 미래의 반려견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녀가 갈망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고, 우리가 쫓아야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겨우겨우 재현해 보려고 했던 평범함이 아니라 정서가 자신의 힘을 발휘하여 써낸 이야기처럼, 우리를 진정으로 배고프게 하는 것들.

 

그것을 얻어내는 순간이 엔딩을 장식하기 때문에 <은빛살구>는 끝내 주인공의 미래를 기대하도록 만든다.

 

*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자 . ri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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