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09 21:07:05
나부끼는 번민의 돌파구
영화 <하얼빈> 리뷰
SYNOPSIS.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 김상현, 공부인, 최재형, 이창섭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하얼빈으로 향하고, 내부에서 새어 나간 이들의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이 시작되는데…
하얼빈을 향한 단 하나의 목표, 늙은 늑대를 처단하라
POINT.
✔️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역사적 순간을 담아낸 영화 타율이 좋은 우민호 감독의 작품
✔️ <기생충>으로도 잘 알려진 홍경표 촬영감독의 미학이 빛나는 작품
✔️ 이미 여러 차례 다루어진 만큼, 안중근의 거사 자체를 조망하기보다 안중근의 내면에 집중했으며, 어마어마한 로케이션과 어우러지는 비장미가 있는 작품
✔️ 많은 배우들의 합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연기 아른거리는 회화 속에서
영화는 초장부터 기존의 안중근 서사와 다른 길을 갈 것임을 명확히 한다.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독립 운동가들의 회동 모습은 마치 바로크 회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안중근 서사 하면 기대하는 역동적인 스펙타클 대신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한 의심의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이 무드야말로 실제 독립운동의 무드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독립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아는 미래가 아닌, 과연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지, 미래가 있다 한들 거기에 내 자리는 있을지 회의감과 번민 속 현재에서 걸어간 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밀정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으며, 안중근이 나타난다. 흔히 결의에 찬 장면으로 묘사되는 단지(斷指)의 순간으로 걸어들어온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의 순간조차 안중근이라는 인물 한 사람에게 확신에 찬 핀 조명을 쏘는 대신, 유령 혹은 그림자처럼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자를 그 주변에 둘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방점을 찍은 일제의 침략이 계속되고 있던 1908년에서 1909년이었으니까. 의구심과 자괴감,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정서는 빛 아래 있어도 그림자였다. 극중 가장 역동적이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조차 승리 혹은 패배를 강조하기보다 처절한 아비규환을 그리고 있다.
그 지옥도에서 안중근이 택하는 길은 만민공법을 지키고 스스로가 대한의 참모중장임을 잊지 않는 것, 다시 말해 그의 내면과 신념을 지키는 길이었다. 탄환을 명중시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로 극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대신, 영화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고뇌가 때로는 고꾸라지고 때로는 맞아떨어지는 길을 담는다. 주변 인물들과 때로는 합심하고 때로는 불화하면서, 안중근은 (실제 역사에서는 '동양평화론'이 될) 그의 길을 간다.

각지고 막힌 상자 속에서
반면 확신에 찬 인물이 있다. 릴리 프랭키가 분한 이토 히로부미는 시종 확신에 차 있다. 실제 역사에서 1-2년 후에 이루어질 경술국치(1910.08.29)를 앞두고, 단상에 서서 담담한 말투로 한일 병합을 말한다.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에서 은혜 입은 것도 없는 백성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말조차 담담하게 내뱉는다.
그의 공간은 하나 같이 각지고 막혀 있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네모 반듯한 귀족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똑같은 뒤통수는 똑같이 수그려지고, 이동할 때에도 그의 자리는 사방이 틀어막힌 기차 칸이다. 러시아 공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차 칸도 바깥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의심과 번민으로 흔들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기차와 달리, 확신으로 감싸인 공간에서 그는 남의 인생을 손발 삼아 움직이며 덤덤히 침탈의 길을 간다.

이는 얼어 붙은 두만강이나 숲이나 너른 사막으로 표상되는 안중근의 공간, 그림자와 연기가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 같은 공간과 대조적이다. 이 공간적인 대비는 마치 확신이 꼭 옳은가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가는 침탈의 길에 확신을 가진 이토 히로부미와, 끝없는 번민으로 내면의 두레박을 길어 올리는 안중근, 그리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마음. 안중근이 내면으로 던져 올린 두레박은 영화 마지막에 기어코 마중물을 길어 올렸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인물들은 죽음 이후에도 유령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는 아우라를 남겼다. 하지만 확신은 총탄에 스러진다.

푸른 꿈과 시린 번민으로 열린 공간에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이 시국'에 잘 어우러진다며 여러 차례 회자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 언제나 절망의 뒤편에 희망이 있다는 것, 이제는 진부한 문장이지만 빛은 그림자와 함께 도드라진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채로, 독립의 실낱 같은 가능성을 바라보는 괴롭고 지난한 길. 신뢰와 의심을 동시에 품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즉각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그 길을 걷는 한 인간의 고뇌. 영화는 안중근의 거사까지 직진하여 가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회전하며 주변 인물들을 에두르는 고뇌의 그림자를 품는다. 총알이 날아가는 모양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지난한 길을 갔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가늠해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마음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 보편적이다. 희망을 길어 올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두 다리를 걷어붙이고 진창에 서야 하기에. 푸른 꿈은 언제나 곱고 예쁜 자리에만 있지 않다. 그 색깔은 시린 번민의 색깔과 맞붙어 있다.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빛과 그림자가 언제나 등을 붙이고 있듯이. 그 자리는 안중근의 공간들처럼 탁 트여 있다.
희망에 꽉 막힌 확신 같은 건 없지만, 가능성은 사방으로 트여 있지만, 그림자처럼 담배 연기처럼 나부끼지만, 이 번민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광장 또한, 탁 트인 곳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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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흥미진진한 TMI 대방출!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로 나서며 6월 극장가를 사로잡은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흥미진진한 TMI를 전격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때론 엉뚱하기도 하고,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영화 의 뒷 이야기들은 언제나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곤 하는데요. 과연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TMI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인 피셜 공포영화 못 보는 존 크래신스키 감독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일상이 사라진 세상, 소리를 내면 죽는 극한 상황 속 살아남기 위해 집 밖을 나선 가족이 더 큰 위기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오감을 자극하는 강렬한 연출로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선사한 존 크래신스키 감독이 정작 본인은 공포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고 전해 놀라움을 안겼는데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 드라마를 생각하며 <콰이어트 플레이스 2>를 만들었다는 그는 현재의 팬데믹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속 배경은 물론, 절체절명의 위기를 따로 또 같이 헤쳐 나가는 ‘애보트’ 가족의 사투와 끈끈하고 빛나는 가족애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에밀리 블런트, 뜻밖의 웃음 참기 챌린지
‘에블린’ 역의 에밀리 블런트는 샤론 최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 에피소드로 용광로 장면을 꼽았습니다. 집 밖을 나와 새로운 은신처를 찾던 ‘에블린’이 또 다른 생존자 ‘에멧’(킬리언 머피)에게 그곳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며 아기가 숨겨진 상자를 여는 장면으로, 시나리오상에는 겁에 질린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는 드라마틱한 상황이었지만, 에밀리 블런트가 상자를 열었을 때 아기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꿈나라에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옷도 벗겨보고, 얼굴에 젖은 수건을 대보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아기의 평화로운 숙면을 깨트리지 못했는데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에밀리 블런트는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또 한 번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킬리언 머피의 전해지지 않은 편지?!
<콰이어트 플레이스 2>에서 ‘에멧’ 역으로 새롭게 합류한 킬리언 머피에 대해 “그와 작업할 수 있다면 그게 언제든, 출연료가 얼마든 상관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존 크래신스키 감독은 킬리언 머피에게 캐스팅 제안을 건넨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캐스팅 제안이 믿기지 않는다”며 제안을 단박에 수락한 킬리언 머피는 전편을 매우 인상 깊게 봤다며 생애 처음으로 영화 감상을 전하기 위해 감독에게 직접 이메일을 쓸 뻔했다는 애정 어린 소감을 밝혔는데요. 이에 존 크래신스키 감독은 “안 쓰길 잘했다. 어필하는 것 같아 다른 배우를 캐스팅했을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촬영하는 동안 감독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영리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고요 속의 강렬한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찻잔 같은 소품 하나하나에 마이크를 설치해 일상의 모든 소리를 녹음하였고 배우들과 스탭들 모두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며 촬영에 임해야 했는데요. 존 크래신스키 감독은 촬영 내내 “여러분, 이거 무성영화 아니고 유성영화예요!”라고 외치며 촬영장을 ‘콰이어트 플레이스’로 지켜냈다는 후문입니다. 이처럼 프로페셔널한 현장 분위기 덕분에 일상의 작은 소음만으로도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신선한 시리즈물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로맨틱한 하와이와 <콰플 2>의 상관관계?!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연출 제안을 고사했던 존 크래신스키 감독이 2편 제작을 마음먹게 된 것은 다른 촬영차 아내 에밀리 블런트와 함께 하와이에 있을 때였습니다. 로맨틱한 하와이에서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바로 청각 장애를 가진 딸 ‘레건’(밀리센트 시몬스)을 주축으로 한 성장 스토리였는데요. 남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에밀리 블런트는 자신도 출연하겠다며 분량 좀 많이 챙겨 달라고 했고 그렇게 2편의 제작부터 캐스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촬영장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아내로서, 배우로서 영화 제작에 큰 도움을 주었다”(존 크래신스키 감독), “남편과 일한다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작업하다 보니 호흡이 잘 맞았다. 창의적 안목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에밀리 블런트)고 전한 두 사람은 1편에 이어 다시 한번 감독과 배우로 완벽한 케미를 과시했습니다.
알고 보면 더욱 재밌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TMI 스토리 재미있게 보셨나요?
오늘 소개해드린 정보를 통해 이미 영화를 보고 오신 관객분들, 그리고 앞으로 영화를 보러 가실 예비 관객분들 모두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재미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봅니다 :)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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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2024년 하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던 <위키드>가 개봉 첫 주 만에 누적 수익 1억 1,400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2024년 개봉작 중 세 번째로 높은 첫 주말 흥행 기록이라고 합니다. <위키드>는 현재 로튼 토마토 90%을 기록하며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의 성공과는 다르게 <위키드>의 영화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초 2016년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2019년으로 미뤄졌습니다. 그러나 그 개봉일은 유니버설의 <캣츠>에게 넘어갔고, 다시 2021년으로 연기되면서 <씽2게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감독 역시 <빌리 엘리어트>를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서 <인 더 하이츠>의 '존 추' 감독으로 한 차례 교체된 바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총 2부작으로 구성된 <위키드>는 투입된 제작비만 3억 5천만 달러 이상에 달하며, 유니버설 스튜디오 역사상 가장 비싼 영화로 기록되었습니다. 후속작인 <위키드: 파트2>는 내년 하반기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국내보다 한 주 늦게 북미에서 개봉한 <글래디에이터 Ⅱ>는 누적 수익 약 5,500만 달러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보였습니다. 제작비가 약 2억 1천만 달러로 추정되는 만큼, 국제 시장에서의 성과가 흥행 성공의 핵심이 될 전망입니다. 현재까지 해외에서 1억 6,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약 4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고작 300만 달러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편, <위키드>는 북미에서의 성공에 비해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 65만 명을 불러들이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며 침체된 극장 상황을 짐작케 했습니다. <위키드>와 함께 개봉한 <히든페이스>가 누적 관객 수 35만 명으로 2위를, <글래디에이터 Ⅱ>가 누적 관객 수 72만 명으로 1위에서 3위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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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와 프롤로그 사이에서 허우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의명'(김성철)이 초래한 혼란을 뚫고 탈출을 감행한 '이은유'(고민시), '윤지수'(박규영)를 비롯한 그린홈 아파트 생존자들. 그들은 안전캠프로 향하지만, 캠프로 향하는 길도 힘겹게 도착한 캠프도 엉망진창이다. '박찬영'(진영)을 비롯한 군인들은 코피만 흘려도 사람에게 총을 쏘고, 안전캠프는 감옥이나 다름없으므로.
반면에 홀로 아파트를 빠져나간 '서이경'(이시영)은 밤섬 특수재난기지에 특수감염인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기지 본부로 향한다. 남편 상원을 찾기 위해. 하지만 임신한 그녀의 배는 지나치게 빠르게 불러오고, 그녀는 강력한 진통 속에서도 남편을 찾고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한편, '편상욱'(이진욱)의 몸을 숙주로 삼은 의명에게 잡힌 '차현수'(송강). 그는 다른 특수감염인을 찾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의명과 대립한다. 현수는 본인을 실험체로 희생해 상황을 종결시키려고 밤섬 특수재난기지로 향하고, 상욱이 그를 막으려 들면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반도>의 패착을 반복하다
2016년 한국 영화 시장의 승자는 유일한 천만 영화 <부산행>이었다. 좀비물이라서 흥행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예상을 깨부순 결과였다. 특히 신선함이 눈을 사로잡았다. 할리우드만큼의 제작비를 쓸 수 없으니 기차와 역사라는 협소한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상황을 연출한 전략이 주효했다. 관객, 평단 모두 호평을 보냈다.
2020년에 개봉한 속편 <반도>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았다. 과한 신파, 부족한 개연성, 어색한 CG와 액션 때문에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관객의 기대와 어긋난 선택이 뼈아팠다. 관객은 <부산행>과 같은 좀비 영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스크린에는 디스토피아 세계 속 군상극이 펼쳐졌다. 자연히 실망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3년 만에 돌아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의 두 번째 시즌은 <반도>의 전철을 밟는다. <스위트홈>은 확실한 매력이 있었다. 그간 쉽게 접하지 못한 장르인 '크리처물'이었기 때문. 그런데 <스위트홈> 시즌 2는 디스토피아 장르로 방향을 틀었다. <반도>처럼 세계관을 키우고, 등장인물도 늘렸다. 그 대가로 구심점은 약해지고, 지향점도 모호해졌다. 결국 <스위트홈> 시즌 2는 본래 매력도, 시청자의 기대도 저버렸다.
3회까지는 좋았다
그래도 초반부까지는 지난 시즌의 장점과 새로운 시도를 나름대로 융화시킨 듯 보인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시즌 1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하되, 새 인물과 볼거리를 더해 신선함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 실제로 3회까지는 지난 시즌 말미에 등장한 의명과 특수감염자가 된 현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괴물답게 인간을 제거할지, 아니면 자기 능력을 활용해 인간을 보호할지 고뇌에 빠진 두 주인공의 악연을 쫓는다.
동시에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린홈 아파트를 탈출한 인물의 시점에서 외부 세상을 보여준다. 군이 통제하는 암울한 서울 도심, 위압적인 정부의 대응, 비인도적인 특수감염자 실험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새로운 캐릭터의 역할이 지대하다. 시즌 2에 각각 미스터리와 긴장감을 불어넣는 매드 사이언티스 '임 박사'(오정세)와 까마귀 부대 상사 탁인환'(유오성)은 진주인공처럼 보일 정도다.
화려해진 액션 시퀀스 덕분에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실감 난다. 괴물을 상대하는 까마귀 부대는 밀리터리물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과 생생함이 강조한다. 반포대교에서 벌어진 추격씬, 서울종합운동장을 배경으로 한 폭발씬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한 층 발전한 특수감염자의 초능력도 인상적이다. 특히 현수와 의명의 액션씬은 그 자체로도 박력 넘치고, 둘의 대립과 차이를 보여주는 장치로서도 적절히 기능한다.
사라진 크리처물의 매력
문제는 4화부터다. 시즌 1에서 이어지던 이야기를 일단락하고, 새 출발을 알린다. 의명과 현수의 대립은 초점에 밀려난다. 그린홈 생존자와 까마귀 부대를 비롯해 잠실종합운동장 지하에서 살아가는 스타디움 사람들이 중심에 위치한다. 이 선택은 결정적인 실수로 보인다. 크리처물의 매력을 스스로 포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에는 괴물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군인과 일반 생존자의 대립. 그린홈 생존자와 기존 스타디움 사람들의 충돌. 스타디움 사람들과 외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까지. 괴물 없이도 풀어낼 사연이 많다. 그러다 보니 수호대가 보급품을 챙기려 스타디움 밖으로 나갈 때를 제외하면 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각각의 특징이 부각되지 않다 보니 초반에 등장한 몇몇 괴물 외에는 임팩트를 남기지도 못한다.
이에 더해 4화를 기점으로 시즌 1처럼 밀폐된 공간이 주 배경이 된 것도 문제다. 시즌 1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크리처물의 매력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파트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데 적합한 환경과 동기를 제공했다. 괴물과 맞서 싸우는 입주민들의 절박함을 강조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반면에 시즌 2에서 지하 공간은 크리처물의 매력, 장점, 특징을 살리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공간 활용법이 다르기 때문. 스타디움은 고립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분쟁을 보여주는 단순한 배경에 불과하다. 그 공간이 생존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거나 극대화해 괴물로 변하게 하는 식의 전개는 없다. '정재헌'(김남희)이 칼을 들고 괴물과 싸우는 장면처럼 강렬한 액션씬도 없다. 자연히 지난 시즌과의 비교도 피할 수 없다.
마음 둘 곳 없는 캐릭터
디스토피아물로 방향을 바꾼 중후반부 전개도 불만족스럽다. 물론 시간을 건너뛰는 부분을 활용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적절하게 활용하기는 했다. 각 캐릭터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의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마지막까지 극을 견인할 동력은 되지 못했다.
일단 감정적으로 이입할 주인공이 없다. 의명, 현수, 이경 등 이미 친숙해진 이들은 잊히고, 돌연 새 인물이 줄줄이 등장한다. 시즌 2를 시즌 1의 연장선상으로 인지하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새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조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절대적인 분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 회차는 2화가 줄었는데, 전체 분량은 70분가량 늘어난 것이 그 방증이다.
결국 시즌 2는 끝을 향할수록 답답하고 혼란스럽다. 새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전작에서 이어진 물음표를 해소하는 대신, 다음 시즌으로 넘어갈 물음표만 대거 만들어낸다. 괴물의 정체, 특수감염자와 관련된 음모, 의명의 목적, 지 반장의 행적, 임 박사의 꿍꿍이와 백신의 행방 등. 시즌 1에서 암시된 내용과 시즌 2에서 생긴 의문이 더해질 뿐, 확실하게 해결되는 내용은 많지 않다.
속편? 에필로그? 프롤로그?
그 결과 시즌 2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적인 윤곽은 보인다. 희생과 욕망을 키워드 삼아 인간 본성을 고찰하는 듯 보인다. 현수가 괴물들에게서 인간성을 발견하는 장면, 임 박사가 "인간은 바이러스고, 괴물이 백신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즌 3 내용을 암시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전체 이야기와 메시지가 잘 전달될 리 없다.
어찌 보면 예고된 난국일 수도 있다. 원작 없이 오리지널 스토리로 시즌 3까지 진행한다는 결정 자체가 로드맵의 부재를 뜻했을지도 모른다.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처럼. 실제로 시즌 2의 지향점은 끝내 불분명하다. 시즌 2를 두고 시즌 1의 에필로그라고 해도, 시즌 3의 프롤로그라고 해도 내용이 부족하고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 한국형 크리처물이라는 <스위트홈>만의 장점도 확실하지도 않다.
물론 지금 시즌 2에 대한 평가를 확정 짓기에는 너무 이른 것도 사실이다. 내년 여름 공개를 확정 지은 시즌 3가 긴장감 넘치고 화끈한 전개를 선보이다면, 시즌 2도 재평가받을 여지도 아직 충분하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다음 시즌을 위한 빌드업은 어느 정도 끝냈으니까. 단지 시즌 3를 향한 기대가 시즌 2에게 향했던 기대만큼 커지기 어려워 보이는 게 문제일 뿐이다.
Poor 형편없음
에필로그답지 않게 판이 크고, 프롤로그 치고는 지리멸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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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주 차, 위클리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지난 한 주,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 차례가 왔습니다!그럼,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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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전세계 최초 국내 개봉
ⓒ 네이버 영화
쥬라기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편인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 전세계 최초로
내달 1일(수) 국내 개봉 확정 소식을 전했다. 영화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인간과 공룡이 최후의 사투를 담았다.
팝콘 허용하자, 영화관 관객수 37.5% ↑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팝콘 취식이 가능해진 4월 25일~5월 1일까지 총 관객 수가 96만 8722명이었다. 취식 허용 이전과 비교했을 때 약 53% 증가했다.
파라마운트+, 6월 중 국내 서비스 시작
ⓒ 파라마운트 공식 홈페이지 캡쳐
파라마운트+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서비스하게 됐다. 정확한 론칭 일자는 알려지지 않았고,
6월 중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정도만 밝혔다. 다만, 단독 론칭이 아닌 티빙 내에서 번들로 서비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녕하세요>,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김환희, 유선, 이순재 배우 주연의 휴먼 영화 <안녕하세요>가 25일 개봉을 확정하였다.
영화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반창꼬> 연출부에 있었던 차봉주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애프터 양>, 6월 1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파친코'의 코고나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애프터 양>이 6월 1일 개봉을 확정 지었다.
영화의 원작은 알렉산더 와인스틴 작가의 '양과의 안녕'이다. 또한,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애프터 양>은 예매 오픈 3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한 바가 있다.
무주산골영화제, 10주년 기념 '토킹 시네마' 신설
ⓒ 무주산골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는 올해 10주년을 맞아 '토킹 시네마'를 신설했다. '토킹 시네마'는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해당 영화를 전문적이고 또 색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장건재 감독, 정성일 영화 평론가, 황석희 영화번역가, 박태훈 왓챠 대표 등
총 25명의 국내 영화 전문가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해외
<탑건:매버릭>, 개봉일 변경
ⓒ 네이버 영화
<탑건: 매버릭>은 원래 5월 25일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개봉 시기를 조율하다
결국 6월 22일 개봉으로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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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질문을 던질 때
좋은 영화는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철학적인 논쟁이나 윤리적인 이슈가 있는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대부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감독의 의견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서복> 이전에도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는 있었고 한국에서만 대성공을 거두었던 <아일랜드>의 경우 복제인간의 인권을 인정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일랜드>가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논의의 여지를 주려고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황우석 박사의 논문이 발표되며 복제 이슈가 뜨거웠던 당시로서는 소재만으로도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했다. 이후 여러 논란을 거쳐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전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지금 이용주 감독은 복제인간 소재를 꺼냈다. 소재가 낡았다고 해서 영화까지 낡으라는 법은 없지만 <서복>은 소재를 가지고 논의에 들어가기보다는 소재와 논의를 보여주는 데서 그친다.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이 기헌(공유 분)에게 하는 질문들은 질문 자체로는 의미가 있지만 영화의 맥락과 어울리지 않아 기헌을 당황시킬 뿐이다.
<서복>이 던지려고 했던 질문들은 서복의 존재에서 파생된다. 서복은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탄생했지만 뜻밖의 부작용으로 염력을 가지게 됐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쉽지만 서복을 만들어낸 임세은 박사(장영남 분)는 별도의 목적이 있었다. 임 박사의 서복 제작 동기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깊이 들어가지 못하며 서복의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고뇌를 잠깐 보여주는 선에서 머무른다. 비슷한 논의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레플리카>에서 시도된 적이 있는데 역시나 액션영화로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임 박사의 동기에 대해서는 관객과 제작진 모두가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 파고들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임 박사는 서복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감정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고 장영남이라는 배우치고 영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퇴장한다. 서복의 탄생 동기를 둘로 나눈 건 확실한 패착이었다.
연구소의 실장 신학선(박병은 분)이 서복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서복이 과연 인간인가'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고 사람처럼 말을 하고 성장하지만 서복은 실험실에서 태어났고 인간과는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탄생 동기가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서복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신 실장의 의견이다. 따라서 실험체로서 서복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은 신 실장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관객에게 서복이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인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며 인간이 아니라고 대답하더라도 서복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 영원히 고통받아서는 안된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대답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복이 박보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복이 인간의 형상이 아닌 생명체였다면, 혹은 서복이 박보검이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다른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서복이 기헌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모두 서복을 인간이라 인지하며 심지어 기헌에게 동생을 잘 챙기라는 연민섞인 시선마저 보낸다. 그렇기에 서복이 인간이냐는 질문은 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동물실험마저 윤리적이지 않다는 논의가 나오는 시대에 복제인간이 인간인가/복제인간은 이용되어도 좋은가에 관한 질문은 신학선의 무자비한 캐릭터를 설정해주는 데 머무를 뿐이다.
서복을 탄생시킨 연구소 서인의 회장인 김천오(김재건 분)는 서복을 가지고 신의 역할을 하려 한다. 서복이 줄 수 있는 영생을 나눠줄 이를 악인이 선택하겠다고 한다는 발상은 꽤 낡았으며 그다지 유효하지도 않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일은 이미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와 받지 못하는 자로 나뉘는 사회에서는 이미 평균수명에서 차이가 나며 의료 혜택이 동등하게 분배되는 곳에서는 정작 의료진이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의료 수준의 질이 낮다. 자세한 논의는 이미 <식코>에서 마이클 무어의 무자비한 카메라가 다룬 적이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다룰 수 있는 시대는 오래 전에 도래했으며 관련 논의도 마무리된지 오래다. 차라리 사형제도 폐지 쪽이 이제는 동일 주제를 다루는 쪽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영생의 무의미함에 대해서는 뱀파이어물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기록이 있어 <서복>은 늦은 감이 있다. 결국 회장이 다루는 주제도 마찬가지로 회장의 판에 박힌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며 돈에 환장한 늙은이 캐릭터조차 식상해 주제도 캐릭터도 서사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헌이 서복에게 갖는 질문들은 보다 복합적인 편이다. 다만 기헌의 질문들은 본인 스스로가 갖는 의문이기보다는 서복이나 다른 캐릭터들이 던지는 질문을 흡수하는 것에 가깝다. 기헌은 서복을 통해서든 아니든 자신이 가진 질병을 치료하고 더 살고 싶어하는데 정작 그이유는 알지 못한다. 서복은 기헌에게 "내가 왜 민기헌 씨를 살려줘야 하는데요?"라고 묻지만 기헌은 대답하지 못한다. 이외에도 서복은 기헌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기헌은 잠시 생각해 보지만 결국엔 단 하나의 질문에도 스스로 답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헌은 서복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이를 통해 기헌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증거는 서사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기헌은 서복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서복이 인간의 형상, 특히 박보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복에게서 채취한 치료제로 삶을 연장하려던 기헌은 채취 과정을 알고 나서야 서복을 보호하려 든다. 서복에게서 치료제를 채취하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서복이 실험실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라면 서복에게서 치료제를 채취하는 것은 정당한가? 기헌은 서복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도로 실험실로 데려오지만 스스로는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캐릭터다.
마지막으로 서복이 서복 자신에게 갖는 질문들은 꽤나 심오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질문한다. 서복은 자신이 누구의 DNA로부터 탄생했는지 알고 있었으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기원을 탐구하고자 한다. 서복을 연기한 박보검은 연민을 자아내면서도 때로는 무자비하고, 사회적 규칙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서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배우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서복이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서사에서 자리가 온전히 잡히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서복은 자신의 기원을 찾아내고 인류에게 영생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탐구하면서도 결국엔 실험실로 돌아가길 자청한다. 단순히 기헌을 살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영화 후반 서복이 내리는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서복은 서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철학적인 인물이지만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행동하는 경향이 짙다. 서복의 질문들은 시사점이 많지만 논의를 시작하기보다는 철학수업 첫시간에 듣는 질문을 나열할 뿐이다.
<서복>이 비록 낡기는 했지만 매력적인 소재를 발견한 건 사실이다. 서복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 나아가 연구 윤리와 트롤리 딜레마까지 다루려 했던 노력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가 시사하려 하는 바가 캐릭터 설정에 머무른다면 박보검과 공유의 조합으로도 커버할 수 없다. 이용주 감독이 이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밀도 있는 서사가 <서복>에서는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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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여성의 성장기
* <바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바비 (2023)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마고 로비, 라이언 고슬링, 아메리카 페레라, 케이트 맥키넌, 엠마 맥키, 시우 리무 등
장르: 드라마, 판타지, 코미디
상영시간: 114분
개봉일: 2023.07.19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클래식 장난감, '바비 인형'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어릴 적 바비 인형을 갖고 논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이름을 모를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날씬하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을 두고 만들어진지 60년도 넘은 이 오래된 인형의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까. 모두가 바비 인형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바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저 마르고 예쁜 백인 금발 여성을 모델로 한 스테레오타입 인형 정도로만 여겨져 왔을 뿐 '바비'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궁금함을 가진 사람은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미디어 속 '바비'는 언제나 예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존재로만 비쳤으니까.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의 성공으로 할리우드 차세대 여성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그레타 거윅' 감독. 그는 예쁜 인형의 전형으로 소비된 '바비'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로 결정했다. 주연과 제작을 함께 맡은 배우 '마고 로비'와 함께 '바비 프로젝트'를 이끌며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Barbie is everything'. 사실 '바비인형'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젊은 여성을 모델 삼아 수많은 종류의 인형을 생산해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주었던 존재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그레타 거윅' 감독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핑크빛 낭만으로 가득 찬 '바비랜드'를 구현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바비의 드림 하우스를 현실 공간에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긴 충분했다.
'바비랜드'를 소개하는 극의 초반부는 아기자기하고 황홀한 핑크빛 세상 그 자체다. 주인공 '바비(마고 로비)'를 비롯해 극에 등장한 수많은 '바비'와 '켄'들은 어딘가 핀트가 조금 나간 듯한 행동들로 놀이 속에 등장하는 장난감들처럼 그려지고, 실체 없는 모션만으로 이뤄진 행동들은 이곳이 현실과 분리된 판타지적 공간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바비랜드'의 곳곳을 스크린에 최대한 예쁘게 펼쳐 놓아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정도에 그친다.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껍데기뿐인 장면이라는 감상을 유발하진 않는다. '바비'들의 흥겨운 댄스파티 같은 장면들은 세상이 평화롭고 완벽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단편적이고 순수한 가치관을 보여주기에 아주 적절했다. 매일 그런 바비들처럼 산다면... 아마 '전형적 바비'처럼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일은 절대 없을 터이다.
하지만 동화는 딱 거기까지다. '바비랜드'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넘어온 '바비'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만의 단꿈 속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바비'가 마주한 인간 세상의 첫인상은 무언가 뒤틀린 듯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비랜드'에서 여성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 대통령도, 대법관도, 물리학자도, 의사도 모두 여성인 '바비'였고, 남성인 '켄'은 그저 '켄'일뿐이었다. 현실 세계 역시 '바비'가 살고 있는 이상향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당황을 금치 못한다. 여성차별을 해결하고, 페미니즘을 완벽하게 실현하는데 자신이 일조했다는 착각 속에 살았던 '바비'는 친구라 여겼던 여학생들에게 잔인한(?) 팩트 폭격을 맞고 충격에 휩싸이기까지 한다.
'바비'의 각성을 기점으로 극의 템포와 장르는 급격히 뒤바뀐다. 앞서 '바비'와 '켄'을 통해 남녀의 전복된 성 역할을 보여준 '바비랜드' 시퀀스만으로 본작이 페미니즘 성향을 띤 영화라는 걸 예감하긴 어렵지 않다. 주체적인 여성들과 그들에게 눈길조차 못 받는 엑스트라 남자들로 이뤄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보편성을 탈피한 영화이니까. 하지만 '바비'가 현실 세계로 넘어온 직후부터 <바비>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며 페미니즘 자체가 스토리의 핵심임을 또렷이 각인시킨다. 모든 여성들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던 '바비랜드'와 달리 현실은 '바비'를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시선이 가득하고, 그들은 숨 쉬듯 추파를 던지며 당연하다는 듯 존중 없는 태도를 보인다. '바비랜드'에서 여성들이 차지했던 직업군들은 모두 남성들의 손아귀에 있고, 하물며 '바비인형'을 만든 마텔사의 임원들도 온통 남자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여성보다 뛰어나다는 이유로 고위직을 하나씩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마텔 사의 임원들은 도망친 '바비' 한 명을 붙잡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고 멍청하게 그려지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건 '켄'의 태도 변화다. 언제나 '바비' 옆에서 조역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그는 현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접한 가부장제에 신선한 매력을 느끼고,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을 표출한다. 급기야 그는 '바비랜드'를 마초적 정신과 구시대적 성차별이 만연한 '켄덤'으로 바꿔버리기까지 한다. 앞서 주체적인 여성들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바비'들이 덜떨어진 '켄'의 옆에서 커피를 타거나 치어리딩이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개탄스러움에 이마를 퍽 짚게 된다. 특히 가부장제에 취한 '켄'들의 모습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같잖은 이유로 서열 싸움을 벌이는 뮤지컬 신은 실소를 유발할 정도다. 이에 맞서는 '바비'들의 활약은 남성 중심 사회에 가려진 여성들의 기지와 단결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대립이 아닌 화합으로 뭉친 여성들은 영리한 전략으로 '바비랜드'를 원상복구시키는 데 성공한다. 결국 '바비'는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에 사로잡힌 남성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허울뿐인 남성 중심 사회의 비효용성, 그리고 스스로가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이들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특히 후반부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의 긴 독백 신은 페미니즘 교과서라 느껴질 정도로 극의 메시지를 강하게 주입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바비'는 남성은 원래 멍청하고, 여성은 우월하며 뛰어난 여성들이 이끄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장하는 영화일까. 각본상 그렇게 보일 만한 지점이 있긴 하지만 본작이 '성별 갈라치기'나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작품이라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켄'의 허점이 남성을 비판하는 요소로 활용되었지만, '바비' 역시 마냥 완벽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켄'이 '바비'에 대한 존중을 잊은 채 '켄덤'을 건설하려 했던 것처럼 과거 '바비'들 역시 '켄'의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완벽하고 단단해 보였던 '바비'들의 논리는 '켄'의 허점 투성이인 가부장제가 들어서자마자 쉽게 무너졌고, '전형적 바비'는 누군가 구하러 올 때까지 가만히 주저앉아 있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수동적인 면을 지녔기도 하다. 특히 한 나라 안에서 권력 신장을 위해 성별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한국의 현 사회와도 많이 닮았다. 급진적인 전개이긴 하지만 '바비'와 '켄'은 결국 화해를 한다. 투표를 통해 '바비랜드'로 다시 복구한 대신 '켄'의 역할도 존중할 것이라는 게 결론. 이를 통해 <바비>는 여성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게 아닌 여성을 억압하고, 괴롭혀 온 사회의 편견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를 주창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 바비'의 서사를 살펴보면, 이는 곧 여성들의 성장 과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아무런 변화 없이 평화로운 나날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극 초반부의 '바비'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선을 가진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같다. 현실 세계에 나와 비로소 세상은 온갖 위험과 문제들, 불합리와 불평등이 숨 쉬듯 벌어지는 곳이란 걸 깨달은 '바비'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금씩 알아가는 십 대들을 닮았다. 그리고 '바비'의 발명가 '루스 핸들러'를 만나 자아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은 마치 사회에 막 진출하려는 성인들의 내적 혼란을 대변하는 듯하다. 인간으로 살 것인지, 인형으로 살 것인지 깊은 고민과 함께 불안을 느끼는 '바비', '내가 그래도 될까'라며 확신을 못 가지는 '바비'. 그런 '바비'에게 마음 가는 대로 하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루스'. 캐릭터에 갇혀 주어진 역할대로만 살려고 했던 '바비'는 끝내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바비'들이 '바비랜드'를 '켄'으로부터 되찾는 과정보다 '전형적 바비'로 보여준 한 여성의 성장기가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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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게임?에 앞서 복습하는 목숨을 건 방탈출 게임? '이스케이프 룸'
영화 흥신소 - 알고보면 쓸데없이 재밌는 영화리뷰
'이스케이프 룸2 : 노 웨이 아웃' 관람에 앞서 복습하는 '이스케이프 룸'입장료 없다는 말에 덜컥 들어와버린 방탈출게임장
우승하면 만달러의 상금을 받지만
실수하면 목숨을 받아가는 곳#출구가_입구 #원룸_데쓰매치
과연 이들은 이곳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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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과 달 리뷰 - 상실의 고통을 가진 두 여자의 러블리한 치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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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남편의 첫사랑이 목하 열애 중이었던 곳으로
나 홀로 뚝 떨어지게 된다면?
남편과 사별 후 평소 남편이 살고 싶어 했던 제주도로 이사 온 민희는
성격 좋은 동네 이웃 목하와 그의 음악하는 아들 태경을 만나 친분을 다지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한 순간,
목하가 남편의 첫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본의 아니게 상실의 아픔을 분노 게이지로 다스리게 되는 민희,
평온했던 일상 속 잊고 지냈던 오만년 전 ‘구 남친’의 기억을 강제 소환당한 목하.
두 여자의 예측 불가, 밀고 밀리는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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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쿄 리벤저스> 메인 예고편
기대 없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20대 청년 타케미치는
어느 날 뉴스를 통해 첫사랑 여자친구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유일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었던 그녀를 떠올리던 타케미치는
특별한 타임리프를 통해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되고
그녀를 살리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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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데이 시프트> 공식 예고편
《데이 시프트》,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 예정. 제이미 폭스가 영리한 딸을 부족함 없이 키우고자 열심히 일하는 아빠로 등장한다. 샌 페르난도 밸리에서 수영장 청소부로 일하는 이 남자. 성실하고 평범한 노동자처럼 보이지만 진짜 돈벌이로 하는 일은 따로 있었으니. ‘세계 뱀파이어 사냥꾼 연합’의 일원으로 뱀파이어를 사냥하고 죽이는 것이 바로 그의 본업.